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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337] 고려-요금원 남북국시대 역사 개관 1

양해천 2018. 1. 23. 13:10

[홍익인간 337] 고려-요금원 남북국시대 역사 개관 1

2012년 06월 01일 (금) 19:01:15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고려는 신라 말기에 시작된 후고구려의 연장선에 있는 역사상의 나라이며, 후백제와 신라를 통합한 나라로서 서기936년에 소위 후삼국을 통일한 나라가 된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 이전인 서기926년에는 대진-신라의 제1남북국 시대에 신라의 북국이던 대진국(발해)이 망하면서 그 왕족이 고려로 귀순하였는데, 이후 대진국의 땅에는 서기907년에 시작된 거란의 요(遼)나라가 들어서 고려와 남북국 시대를 이룬 것이 된다. 

요나라의 뒤에는 여진의 금(金)나라가 이어 고려와 남북국 시대를 계속하였고, 이어서 몽고의 원(元)나라가 고려와 남북국 시대를 이은 것이 된다. 

거란족은 고구려 시대에 고구려의 한 부족이었으며, 거란의 왕족은 곧 고구려 고씨의 후예로써 그 왕을 아버지(阿保機:아보기:아부지)라 하였는데, 거란(요)이 남국이 되는 고려에게 거란이 고구려의 정통계승국임을 주장하였으나, 고려의 서희에게 설득당하여 고려를 또한 고구려의 정통국으로 인정하였던 것으로 된다. 

여진족(女眞族)은 글자 그대로 고구려(高句麗)의 려(麗)와 대진(大震)의 진(震)이라는 끝자가 조합된 려진(麗震)에서 나온 말로 보이는데, 역사속의 여진족은 스스로 고구려와 대진의 후예임을 자처한 것이 된다. 신라와 고려의 교체기에 신라의 종성(宗姓)인 김씨(金氏)가 여진으로 들어가 왕(王:阿骨打:아버지)이 되었는 바, 처음에는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다가 뒤에는 고려를 아우의 나라 즉 형제국으로 삼았으며, 다시 고려를 신하의 나라 즉 군신관계로 바꾸었던 것이 된다. 

몽고족은 원래 단군조선의 봉국(封國)의 후예들이며, 고구려의 부족이었던 것이 되는데, 역사상으로 볼 때 고구려 이전에는 흉노와 돌궐에 속한 적이 있었고, 고려 중기에 이르러 세력이 떨치어 서방으로 유럽까지 영토를 확장하게 됨으로써 실질적으로 단군조선 이후로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된다. 

이로써 고려시대는 북쪽의 요, 금, 원 나라와 병립하여 우리 역사상 제2의 남북국 시대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거란의 요(遼)나라와 남북조를 이룬 포괄적 배달겨레의 역사가 되는 5대 10국 및 송(宋)나라의 역사를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단군조선의 지손(支孫)이자 백제(百濟)의 후손의 나라인 일본의 역사도 다음 기회로 미루어 생략한다. 

1. 고려 역사 개관 

가. 건국 
고려는 신라 말기인 서기901년에 궁예가 시작한 후고구려에서 시작되었는데, 서기918년에 궁예를 몰아낸 왕건이 국호를 고려라 칭하였다. 

나. 수도 

태조 왕건은 수도를 철원에서 서기919년에 송악의 개경(開京)으로 옮겼다. 

고려는 평양을 서경(西京)이라 하고, 한양을 남경(南京)이라 하였다. 

다. 과정 

서기993년에 거란의 요(遼)나라가 후방의 위험을 없애려고 고려를 치려고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는데, 고려가 청천강 유역에서 요의 군사를 크게 무찌르자 요나라가 사신을 보내와 회담을 청하였고, 이때 고려의 서희가 가서 담판으로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내세우니, 이에 요나라는 앞으로 고려가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거란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물러갔으며,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의 강동6주를 고려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이후 고려가 계속 비공식적으로 송과 교류하자 요나라가 이를 구실삼아 다시 침략해 왔는데, 고려에서 강조의 난이 일어나자 요의 성종이 서기1010년에 4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가, 서경을 제쳐두고 개경까지 내려와 함락하였으나, 식량보급이 끊기어 되돌아갈 수 밖에 없어 화친을 맺엇다. 

서기1018년에는 고려왕이 조알하고 강동6주를 돌려달라는 요구를 고려가 묵살하자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와 깊숙이 쳐들어 왔다가, 식량이 떨어져 산길로 숨어 도망쳤으나, 강감찬이 귀주에서 완전히 포위하여 몰살시켰던 것이다. 

이후 거란이 약해지자 여진족이 차츰 통합하여 고려에 복속된 여진부락 등 고려의 동북 변경을 위협하였으며, 이에 고려는 매번 패하였다. 

서기1107년에 3년동안 별무반을 편성하여 군사를 훈련시킨 윤관이 다시 여진 정벌에 나서 동북 9성을 쌓았는데, 쫓겨 갔던 여진족들이 다시 쳐들어와 9성을 돌려달라고 애걸하므로 고려는 여러번 논쟁을 벌이다 결국 돌려 주었다. 

이후 여진은 고려에 조공을 바쳤으나, 서기1115년에 아골타가 금(金)나라를 건국하여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쳐서 양자강 이남으로 쫓았으며, 이에 금나라는 고려에 군신관계를 요구하였는 바, 당시 권신이던 이자겸이 자신의 세력유지를 위하여 굴복하였고 이후 금나라는 고려를 침략하지 않았다. 

고려는 이후 서기1170년에 정정부의 무신란으로 무신정권이 되었으며, 서기1231년에 몽고의 침입을 받아 항복하였다가, 몽고가 다루가치를 남겨두고 물러가자 서기1232년에 무신정권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이후 몽고는 계속 침입을 하였고, 결국 서기1270년에 무신정권의 실권자이던 김준과 임연이 차례로 제거되어 무신정권이 100년만에 끝나고 강화천도 40년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삼별초는 항복하지 않고 강화도를 장악하고 이후 진도에 기지를 건설하여 전라도와 제주도 등 서남해안 일대에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였다. 서기1273년에 고려와 몽고의 토벌군이 제주도의 삼별초군을 공격하여 진압하였다. 

고려는 원의 정치간섭을 받았으며, 이후 공민왕이 반원정책을 펴고 개혁정치를 하였으나 권문세족들에 의하여 개혁에 실패하였다. 

고려는 무신정권이 성립된 이후 서기1193년에 명종의 명에 따라 개경의 안화사(安和寺)에서 <금판(金版)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몽고 침입으로 서기1236년부터 <목판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서기1239년에 금판 팔만대장경을 완성하고, 몽고 간섭기이던 서기1294년에 <금판 묘법연화경>과 <금판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완성하였으며, 서기1377년에는 <금판 천지팔양신주경>과 은율국사에 의하여 <금판 부모은중경>이 완성되었다. 이처럼 고려는 불교국가로서 불경을 중히 여기고 금판이나 목판에 불경을 새김으로써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발원하였던 것이 된다. 

이후 고려는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여 전제개혁을 단행하던 신흥사대부 세력의 중심인 이성계에 의하여 서기1392년에 망하게 된다. 

라. 역년 

고려는 서기918년부터 서기1392년까지 역대로는 36대, 인물로는 34대로 475년의 역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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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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