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39] 고려(高麗) 연대기 1

양해천 2018. 1. 23. 13:11

[홍익인간 339] 고려(高麗) 연대기 1

2012년 06월 03일 (일) 08:54:03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 제1대 태조(太祖) 신성태왕(神聖太王:서기918년~서기943년) 

서기876년에 송악에서 왕륭의 아들 왕건이 탄생하였다. 

서기895년에 궁예가 인제(저족), 금성, 철원 등 강원도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송악의 대호족인 왕륭과 왕건 부자는 궁예의 부하가 되었다. 궁예는 왕륭을 금성태수로, 왕건을 부하 장수로 삼았다. 

서기899년에 양길이 궁예를 치려 하였다가 오히려 기습을 받고 패하여 달아났다. 이에 궁예는 신라의 북부지역을 거의 장악하였다. 

서기900년에 견훤이 완산주(전주)에서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궁예의 세력이 커지자 국원, 청주, 괴양의 괴수 청길과 신훤 등이 궁예에게 항복하였다. 

서기901년에 궁예가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연호를 태봉(泰封)이라 하였다. 이때 궁예는 약40세였다. 

서기904년 가을에 궁예가 청주의 민가 1천여호를 철원성으로 옮기게 하고 수도를 철원으로 정하였다. 국호를 마진(摩震)이라 하고 연호를 성책(聖冊)이라 하였다. 남쪽을 사벌주(상주)와 북쪽으로 평양까지 점령하였다. 

서기905년에 궁예가 도성에 화려한 궁전과 누각을 지었다. 평양성주 금용이 궁예에게 항복하였다. 

서기911년에 궁예가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하고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 정개(正開)라 하였다. 

서기918년 무인년(戊寅年) 6월에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등 제장(諸將)의 추대로 왕건(王建)이 새벽에 곡식더미 위에 앉아 군신(君臣)의 예를 행하고, 네 장군과 1만여 군사를 이끌고 궁예의 왕궁으로 쳐들어가 승리하였다. 이때 궁예는 변장을 하고 왕궁을 빠져 나갔다가, 분노한 백성들에게 살해당하였다. 이에 왕건이 철원의 포정전에서 즉위하여 국호를 고려라 하고, 연호를 천수(天授)라 하였다. 

서기919년에 수도를 송악의 남쪽에 정하였다. 

서기920년에 후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였다. 

서기926년 1월에 대진국(大震國)이 거란(契丹, 遼)에 망하였다. 북쪽에서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한 발해 유민들이 고려로 몰려들자 기꺼이 받아 들였다. 

서기926년에 후백제의 인질 진호가 고려에서 돌연 사망하자, 견훤은 고려의 인질 왕신을 죽이고 고려의 공주성을 침공하였다. 

서기927년에 후백제의 견훤왕이 신라의 경애왕을 죽이고 김부(경순왕)를 즉위시켰다. 공산전투에서는 고려의 신숭겸이 전사하였다. 

서기930년에 고려가 고창(안동) 전쟁에서 후백제를 크게 이겼다. 서경에 학교를 창설하였다. 

서기931년 봄에 고려 왕건이 기병 50여명을 이끌고 경기 땅에 이르자 경순왕이 영접하였으며, 수십일간을 머물다 경순왕의 사촌동생 유렴을 볼모로 데려갔다. 

서기934년에 신라의 30여개성이 고려에 항복하였다. 후백제 견훤왕의 막내인 금강(金剛)이 장자인 신검(神劍)에게 피살되었다. 이해에 견훤왕이 고려에 투항하였다. 견훤을 상보(尙父)로 삼고 양주를 식읍으로 내렸다. 

서기935년에 신라 제56대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려 하자, 이에 태자는 홀로 항복을 반대하고, 궁을 떠나 개골산에서 평생 삼베옷을 입고 살아 마의태자라 불렸다. 결국 경순왕이 왕건 태조를 찾아가 항복하였다. 이에 왕건은 낙랑공주를 경순왕에게 시집보내어 사위로 삼고, 신라를 경주로 고쳐 김부를 경주 사심관으로 삼아 식읍으로 내렸다. 왕건은 경순왕의 백부 억렴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서기936년에 후백제의 신검이 고려와의 선산(善山)전투에서 패하여 항복함으로써, 멸망하였다. 이로써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거란이 사신30명과 낙타 50필을 고려에 보내왔으나 태조왕건은 거란이 발해와 동맹을 맺었다가 갑자기 배신하여 멸망시킨 것을 들어 사신30명은 섬으로 귀양보내고 낙타는 굶어 죽게 하였다. 

서기943년에 박술희에게 훈요십조를 남겼다. 이해에 67세로 붕하였다. 왕건 태조는 876년생이 되어 서기860년경생인 궁예보다 약 15세정도 적은 것이 된다. 

<어제훈요> 
1. 불교를 장려하되, 승려들의 사원 쟁탈은 금지시켜라 
2. 서열에 관계없이 덕망있는 왕자로 왕위를 잇게 하라 
3. 거란의 풍속과 언어를 본받지 마라 
4. 경전과 역사서를 많이 읽어 옛일을 거울로 삼아라 등 

2. 제2대 혜종(惠宗:서기943년~서기945년) 

태조 왕건의 태자 무가 즉위하였다. 

왕규가 왕제 요와 소를 참소하였다. 

왕규가 혜종의 침실에 벽을 뚫어 왕을 죽이려 하다 실패하였다. 

혜종의 이복동생인 요가 서경을 지키던 왕식렴 장군을 불러 왕규의 세력을 꺾었다. 

서기945년 9월에 혜종이 붕하고 왕식렴의 추대를 받은 요가 23세로 즉위하였다. 요의 외가는 강력한 호족세력인 충주 유씨 가문이었다. 

3. 제3대 정종(定宗:서기946년~서기949년)] 

반대세력인 박술희를 제거하고 왕규를 역모로 잡아들여 처형하였다. 

서경에 도읍하려고 대대적인 성을 쌓았다. 

광군(光軍) 30만명을 조직하여 거란에 대비하게 하였다. 

서기947년에 정종이 27세로 붕하였다. 아우 소가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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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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