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76(설비(雪匕)의 비밀)-1

림주에서 아군과 헤어진 도치일행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변장을 하고 태산으로 향했다. 그들은 태산으로 향하는 중간에 무림에 떠돌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태산 입구에 도착한 일행은 앞으로 삼개월간 먹고 마실 음식과 의복 그리고 각자의 무기들을 만들 재료를 구입하고 객점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봐! 마수........무림인들을 우릴 사호팔랑이라고 부르던데........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어보면 좋은 말 같지는 않는데 말이야.”

도치가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마수에게 물어보자 마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사호팔랑(四狐八狼)을 풀어보면 4마리 여우와 8마리 늑대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들으면 괜찮은 뜻 같지만 그들의 의도를 해석하면 흑도의 개라는 뜻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켁~ 뭐야. 개?..........우리가 개란 말이야.”
“킥킥킥~ 무림은 백도 무림인들의 세상이야. 백도 놈들 입장에서 무림맹을 공격해서 오당오향의 삼천오백 무사들을 도육한 우리가 좋게 보이겠어. 십이견(十二犬)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악무룡은 재미있다는 킥킥거리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중원무림인들은 배화교의 음모도 모르고 자신들을 흑도의 하수인쯤으로 알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남들이 어떻게 부르던 상관하지 마세요. 우리가 명예를 얻거나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무림맹을 공격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만 아니면 되는 겁니다. 자~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해 보조. 먼저 곽지향님........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디죠.”

마수의 말에 식사를 하던 곽지향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태산 주봉인 옥황정(玉皇頂)과 바로 옆에 있는 봉우리사이에 계곡이 있고 계곡중간쯤에 복잡하게 엉켜있는 미로 같은 동굴이 있어요.”
“그럼 우리가 가는 곳이 동굴입니까?”
“동굴은 아니고, 동굴을 통과하면 산으로 둘려 쌓인 분지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바로 그 분지입니다. 그런데 그걸 왜 물어보시는 거죠.”
“분지라?........곽지향님은 그곳 지하에 용암이 흐르고 있다고 하셨는데.......직접 보셨습니까?”
“분지로 향하는 동굴은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시간을 두고 한풍(寒風)과 열풍(熱風)이 번갈아가며 불어오는 동굴이 있었어요. 아버님은 그 동굴 밑바닥에 용암이 흐르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럼 직접보신건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예~ 동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보통 바람이 아니었어요. 당시 아버님 같은 고수도 들어가길 포기하셨죠. 아버님 말씀으로 특수한 옷을 입거나 아니면 빙공이나 화공의 고수가 아니면 접근조차 힘들겠다고 하셨어요.”
“야~ 마수.........왜 자꾸 물어보는 거야. 우리도 이유나 알고 듣자.”

도치의 말에 마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제가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다른 분들께 몇 가지 질문이 있어요. 여기 있는 분들 중에 잠마동에서 익힌 화령마공(火靈魔功)외에 다른 심법(心法)을 익히고 계신 분이 있나요.”
“그걸 왜 물어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가살수문의 독문심법인 내검심법을 익히고 있다. 네 말대로 잠마동에서 화령마공을 익히기는 했지만 내검심법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화령마공을 익히는 것은 포기했다.”
“저도 화령마공을 알고는 있지만 제가 익히고 있는 독공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천독심법이라는 심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이막수님과 곽지향님은 가전심공을 익히고 계시고.......또 다른 분도 있나요.”
“나도 가전심법을 알기고는 있지만.......어차피 벽력세가의 심법이나 화령마공이나 화(火)을 기본으로 하는 심공이라 화령마공을 익히고 있다.”
“금막비님은 혹시 사천당가의 가진심법을 익히고 있지 않나요.”
“후후후~ 당가의 무공을 알고는 있지만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한다. 그래서 심법도 기존에 익히고 있던 심법을 버리고 화령마공을 새로 익혔다. 그런데 대체 왜 물어보는 거지.”
“이런 말씀드리면 발끈할 분도 계시겠지만 현실을 직시하자는 의미에서 드리는 말씀이니 차분하게 들어주세요.”
“어휴~ 답답해. 뜸들이지 말고 말해라”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십이사들이 익히고 있는 무공의 대부분은 잠마동에서 익힌 겁니다. 물론 이막수님이나 악무룡 등 몇 분은 잠마동에 들기 전부터 어느 정도무공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던 분들도 계시죠.”
“모두 알고 있으니 가지쳐내고 본론만 말해.”

성질 급한 도치가 말하자 마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우리가 상대할 적(敵)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강한 놈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력으로 그들을 이길 수없습니다.”

마수의 말에 이막수는 어의가 없다는 표정이고 나머지 일행들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수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지옥 같은 잠마동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극한의 상황을 몇 번이나 극복한 사람들이다. 무림에서 제법 고수라고 알려진 각대문파의 명숙들도 자신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영창평원의 혈투를 거치며 삼천오백의 무림맹 무사들을 초토화시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자신들이 이길 수 없는 적이 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또한 배화교의 혈영대와 흑풍대만 상대했습니다.하지만 배화교의 주력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마영대와 귀영대입니다.


“비약이 심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했던 고수들 중에는 무림 백대고수에 속한 사람들도 많았고 단 12명으로 무림맹을 초토화시킨 사람들이 우리들이야.”
“물론 우리들 손에 죽어간 고수가 많습니다. 하지만...........모두 암살이었습니다. 그것도 한명이 아니라 이인일조로 움직였죠. 다시 말해 일대일로 그들과 붙었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 말은 인정할 수없다. 암살도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막수님의 말씀도 맞습니다. 암살도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이렇게 질문하죠. 앞으로 우리가 상대해야할 적은 소림의 홍인, 무당의 현원, 화산의 화원명입니다. 그들은 모두 우내십기의 직전제자들이며 우리같이 속성으로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 좋은 스승 밑에서 체계적으로 무공을 수련한 자들입니다. 여기서 그들과 일대일 정면승부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분 있습니까? 제 생각으로 우리 중에서 그들과 일대일 대결에서 밀리지 않을 분은 일사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암습을 한다면 이사님도 가능하겠죠..........배화교도 이야기 할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배화교의 흑풍대와 혈영대만 상대해봤습니다. 하지만 배화교의 주력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마영대와 귀영대입니다. 마영대와 귀영대를 흑풍대나 혈영대와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일당백의 용사들입니다. 또 있어요. 배화교의 광명좌우사, 사대호법, 오산인.........휴~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드네요.”
“이막수........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마수의 말이 맞아. 우리가 잠마동에서 환골탈태를 거치고 생사혈관이 타동 되었다고 하지만 우내십기 같은 스승 밑에서 체계적으로 무공을 수련한 자들과 비교하면 우리가 밀려. 또 배화교에는 우리가 모르는 고수들도 많을 거야.”
“부디 쳐보지도 않고 미리 겁부터 먹자는 거야. 대들 왜이래.”
“이막수님.......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막수님의 말씀대로 미리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앞으로 닫칠 일에 대비해야 합니다.........이것도 말씀드리죠. 사실 따지고 보면 마령단이 우리에게 해만되는 약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가 마령단을 복용했기 때문에 생사현관이 타동 되고 환골탈태를 한 겁니다. 우리의 내공이 급격하게 올라간 것도 마령단의 힘이죠. 또한 마령단을 먹을 때는 가만있어도 마령단의 힘으로 내공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마령단을 먹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노력해야만 내공이 향상된다는 겁니다. 제가 곽지향님께 동굴에 대해 물어보고 다른 분들께 내공심법에 대해 물어본 것은 곽지향님이 말씀하신 동굴이야말로 우리가 익히고 있는 화령마공을 단시간에 향상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뭐야?........그럼 우리 모두 화령마공을 익혀야 한다는 말이야.”
“이막수님이나 곽지향님은 내검심법과 천독심법이 화령마공과 상충된다고 말씀하셨는데.......두 분도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양의심공을 익히면 두 가지 상반된 내공이라도 동시에 익힐 수 있습니다.”
“양의심공?.........무당파의 양의심공(兩儀神功)을 말하는 거야?”
“예~ 제가 다행히 구결을 외우고 있습니다.”
“양의심공은 나도 알고 있어. 잠마동에 있었잖아.”
“잠마동에 있던 무공에 대해서도 설명하죠. 여러분은 모르시겠지만........잠마동에 있는 무공들 중에는 원본과 비교하서 누락되거나 변형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중원 흑백도의 무공들 중에 그런 것이 많았죠.”
“그건 마수님의 말씀이 맞아요. 우리 가문의 천독백화장도 누락된 부분이 있더군요.”
“우리 가문의 무공구결들도 누락된 부분이나 멋대로 해석한 부분이 있었어.”

이막수와 곽지향의 말에 마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알기로 잠마동에 있는 대부분의 무공은 배화교 시안에 의해 모아진 것들입니다. 아~ 얼마 전에 궁아님에게 들어보니 북해빙궁의 천상루도 비급을 모으는데 협조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각대문파에서 정말 중요한 무공들은 아예 책으로 남기지도 않고 구결로만 전해지는 무공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개방이죠. 개방의 타구봉법은 오직 구결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아시겠지만 시안이나 천상루가 각대문파의 비급들을 어떻게 모았을 가요? 몰래 잠입해서, 돈으로 매수해서, 몸 받쳐서.......뭐 이런 식이었겠죠.”
“뭐야~ 그럼 우리가 익힌 무공들이 알맹이 빠진 허접한 무공들이란 말이야.”
“하하하~ 그건 아닙니다. 우리 중에서 중원흑백도의 무공을 사용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도치님의 혈무도법, 사우님의 마령월광도법은 전대기인의 절기들이고 이막수, 곽지향, 악무룡님은 가전무공을 주로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전대기인들의 무공절기들은 대부분 진본입니다. 그리고 잠마동 마지막 관문에 있었던 배화교의 절기들도 진본입니다. 즉 혈무도법이나 마령월광도법, 화령마공, 화령마검, 절정마검 등은 모두 진본이라는 말입니다.”
“마수.......너의 말을 종합해 보면 무당파의 양의심공도 핵심적인 부분이 누락되거나 변형되었다는 말이잖아.”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양의심공은 잠마동에서 본 것이 아니라..........마가의 서고에서 본 겁니다. 배화교의 군사로 있는 마가는 자기가문의 서고를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마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수가 말하는 마가는 자신은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이 태어난 가문이다. 마수는 서자지만 마가의 자식이기 때문에 마가의 서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 뭐야.......결론적으로 모두 화령마공을 익히라는 말이네.”
“예! 우리가 화령마공을 익혀야 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 두 가지만 말하면.......화령마공이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의 내공심법이자 가장 단시간에 속성으로 익힐 수 있는 심법이기 때문입니다........두 번째 이유는 대부부의 독은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령단의 독도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죠. 반대로 화령마공은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령단은 앞으로도 보름에 한번씩 우릴 괴롭힐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화령마공을 익힌다면.......마령단의 독을 조금은 중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렇군.......이제야 무슨 말이지 알겠어.”
“이건 제 생각이지만........우리가 만일 화령마공을 극성으로 익힌다면 마령단의 독을 스스로 해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독과 화(火)는 상극이기 때문이죠. 이런 경우도 가능합니다. 곽지향님이 전설로만 전해지는 독중지성(毒中之聖)의 경지에 드신다면 마령단의 독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겠죠.”
“독중지성!.........음~ 꿈같은 이야기죠. 무림사(武林史)에서도 독중지성이 나타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한마디로 전설일 뿐입니다.”
“그래요. 전설이죠........하지만 전혀 가망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알았다. 대충 식사도 끝났고.......마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았으니 이제부터 열심히 수련해 보자. 자~ 모두 출발하자.”

마수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은 곽지향의 안내로 태산으로 올라갔다. 이제 그들은 삼개월동안 외부와 단절하고 무공수련에만 전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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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이 다른 일행과 별도로 움직이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일단 아군의 말대로 사사천교에 잡혀있는 배화교 일당에게 정보를 깨내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일행의 안전을 위해서다. 무림인들은 십이사 일행이 사사철기군과 동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군은 스스로가 미끼가 되어 무림인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돌려 다른 일행에게 부상을 치료할 시간을 벌어주자는 이유도 있었다. 

수혜와 궁아라를 북해빙궁으로 보낸 아군은 마음이 허전해서 마차의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에 비치는 풍경은 아군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하얀 눈이 쌓인 산과 들판만 보인다. 아직 겨울이라 눈이 녹지 않은 모양이다. 사사철기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마차는 사사천교가 있는 온주로 달려가고 있는데 현재는 개봉을 지나 령능이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초벽하는 아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벽하야. 술 좀 그만 마셔. 무슨 여자가 그렇게 술을 좋아하니.”
“호호호~ 내 별호가 취봉이야.......취봉이 무슨 뜻인지 알지. 술 취한 봉.........당연히 취해야지.”
“내가 무슨 말을 못해요.”

벽하의 얼굴이 붉어졌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모양이다. 벽하는 창밖을 바라보던 아군의 어깨를 때렸다. 아군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벽하를 바라본다.

“야~ 내가 궁상떨지 말라고 했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소하나 내가 숨 막혀 죽는 꼴 보고 싶어. 잊으라고는 안 해. 하지만 우리랑 같이 있을 때는 우리 생각도 해죠.”
“제가 또 멍해졌군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너 바보야. 다시는 그런 말하지 말라고 했지. 죄송한지 알면 죄송할 짓을 하지 말란 말이야.”
“초벽하.........무슨 말버릇이야. 닫치지 못해.”

소하가 벽하의 말에 불같이 화를 낸다. 벽하는 소하를 보며 피식 웃더니 들고 있던 술을 벌꺽벌꺽 마셔버리고 소매로 입술을 닫아낸다. 아군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인다.

“정말 바보 같죠. 알았어요.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할게요. 제가 고민한다고 생각될 문제도 아닌데........휴~”
“소하는 가만히 있어..........우리 확실하게 하자.........나 너 좋아한다고 했어. 사랑한다고 했어. 솔질하게 말하면 나 자존심 무지 상한다. 내가 부족하니. 소하가 부족해. 우리가 벽궁수혜나 궁아라 보다 부족한 거야. 그런 거야.”
“벽하야. 수혜님이나 아라님은 지금 없잖아. 군랑이 그리워하시는 것이 당연한 거야.”
“웃기지마.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너는 일년에 한번 만나는 친구가 소중하니 매일 보는 친구가 소중하니.”
“친구면 같은 친구지 무슨 말이야.”
“좋아.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넌 일년에 한번 만나는 친구한테 잘해주니 매일 보는 친구한테 잘해주니.”
“글쎄........왜 물어보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만나는 친구는 반가우니까 더 잘해줄 것 같는데.”
“그게 아니야. 난 말이야. 일년에 한번 만나는 친구보다는 매일 보는 친구에게 최선을 다할 거야. 왜~ 일년에 한번 만나는 친구야 한번 만나면 끝이야. 하지만 매일 보는 친구는 미우나 고우나 계속 만나야 돼.............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이해해. 하지만 앞으로 계속 볼 사람은 우리들이야. 군랑.......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어.”

아군은 입술을 깨물고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초벽하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고 있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겉에 있는 사람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또한 떠나간 사람보다는 겉에 있는 사람이 소중하다는 말이다. 아군은 양손으로 얼굴을 한번 문지르고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요.........앞으로 두 분 앞에서는 두 분만 생각하겠습니다.”
“군랑........벽하가 취한 모양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아닙니다. 벽하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잘못한 겁니다.”
“그래.......그래야지. 우리 다시는 이런 이야기하지 말자. 그리고 언제까지 존댓말 할 거야. 술 마시면 반말인데 정신만 멀쩡하면 존댓말이내...........그냥 터........알았어.”

아군은 머리를 긁적거린다. 아직까지 남에게 반말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당장은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소하는 아군과 벽하의 대화가 끝나자 가라앉은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참~ 군랑은 천면역용술을 익히고 계시죠.”
“예~ 익히고 있습니다.”
“저기..........바보 같은 질문인데.......지금 역용하신 거 아니죠.”
“예! 그런데 왜 물어보시는 거죠.”
“이런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아무래도 군랑을 위해서는 말씀드리는 편이 좋겠어요. 군랑은 현재 무림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군랑뿐만 아니라 나머지 일행도 무림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죠.”
“남들이 주목하고 있으니 역용하고 피해 다니라는 말씀인가요?”
“물론 그런 뜻은 아닙니다. 군랑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인처럼 피해 다닐 필요는 없죠. 맞서 싸워야할 상대는 당당하게 싸워야합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군랑의 지금 얼굴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너무 끌어요. 무림에는 별별 사람이 많습니다. 실력도 안 되면서 이름난 고수들만 찾아다니며 귀찮게 구는 놈들도 많고, 쓸데없는 공명심에 실력도 모르고 덤비는 놈들도 많습니다. 군랑의 얼굴은 영장평원의 전투를 치루며 너무 많이 알려졌고 또 군랑의 얼굴을 본 사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야야~ 쉽게 말해라. 어중이떠중이 덤비는 것도 귀찮고.........네 얼굴에 도화살이 끼어서 이년저년 달라붙는 것도 신경 쓰이니까 역용하고 다니라는 말이야.”

벽하의 직접적인 말에 소하는 얼굴을 붉히며 벽하를 째려본다. 벽하가 속에 있는 말까지 서습 없이 지껄이니 소하의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아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평소하고 다니던 얼굴로 역용하려다가 30대 초반의 영준한 남자로 역용을 했다. 평소 역용하고 다니던 얼굴도 무림인들에게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얼굴이면 되겠습니까?”
“음~ 나쁘지 않네. 소하야 어때. 이 얼굴이면 좋겠냐.”

소하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슬며시 고개를 들고 아군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군이 평소 역용하고 다니던 얼굴은 멍청하고 덜떨어진 얼굴이었다. 그 얼굴보다는 지금의 얼굴이 백번 낮다.

“좋군요. 너무 늦어보이지도 않고 지금 얼굴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이 얼굴을 하고 다니도록 하죠.”

아군의 말이 끝났을 때 갑자기 마차가 다급하게 멈추어 아군의 앞에 있던 벽하가 아군에게 쓰려졌다. 아군은 벽하를 안아주며 중심을 잡았다. 소하는 무슨 일이가 싶어 마차의 창문을 열고 철기군의 대장을 불렸다.

“무슨 일이죠.”
“앞을 젊은 스님 다섯 분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냥 밀고 전진합니까?”
“무슨 일이지 물어보세요.”
“사사철기군이 사호팔랑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끼이잉~ 푸들..........푸드~”

관도가 쩌렁쩌렁 울리는 사자후가 터지니 철기군의 말들이 사자후에 놀라 대오가 흐트러진다. 아군과 소하의 눈이 마주친다. 대체 누가 찾아온 것일까? 

“아무래도 절 찾아온 손님 같군요.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누군지도 모르지 않습니까?.........잠시만 기다리세요.”
“먼저 자신의 정체부터 밝히라고 하세요.”

소하의 말에 철기대 대장이 큰소리로 소하의 말을 전했다.

“소승은 소림의 홍인이고 나머지 분들은 사대금강입니다.”

홍인과 사대금강이라는 말에 소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홍인과 사대금강이라면 얼마 전 십이사와 흑도 무림을 조사하기 위해 소림사에서 출발했다는 고수들이다.

“소하........아무래도 제가 나가보는 것이 좋겠어요.”
“위험해요. 저들이 무슨 목적으로 찾아왔는지 모르잖아요.”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냥 철기군으로 밀어버리고 가요.”
“안됩니다. 저들이 정말 홍인과 사대금강이라면 철기군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건 군랑 말이 맞다. 사사철기군이 아무리 무적해도 홍인과 사대금강이라면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들이 공격할 의사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공격했겠죠.”

아군은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소하와 벽하도 불안한지 아군의 뒤를 따라 나선다. 아군이 밖에 나와 살펴보니 철기군의 앞에 20대 중반의 스님과 40대 중반의 스님 4명이 봉을 들고 서 있었다. 스님들은 마차에서 나온 아군일행을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절 찾아오신 겁니까?”
“아미타불! 시주는 누구요. 소승은 사호팔랑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소.”

아군은 합장을 하면 말하는 젊은 스님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스님은 이제 잘해야 25세정도로 보이는데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는 계인이 선명하고 얼굴은 후덕한 보살을 연상하게 할 만큼 부드러운 미소가 보인다. 또한 키는 크지 않지만 덩치는 곰처럼 크고 단단하게 보이고 몸에서는 부드러운 기도가 느껴지고 있었다.

“저는 아군이라고 합니다. 무림인들은 절 마수마랑이라고 부르더군요.”
“아~ 마수마랑이시군요. 겉에 있는 분들은 누구죠.”
“전 하후소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초하벽공자님입니다.”
“그러시군요. 전 홍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안 보이는군요.”
“볼일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아군의 당당한 말에 홍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아군을 바라본다. 아군도 홍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군은 눈동자가 따끔거린다. 홍인의 눈빛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군도 지지 않고 수라기를 끌어올려 눈에 집중하니 아군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아미타불~”

홍인이 불호를 외우며 허리를 숙였다. 아군은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잠깐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홍인은 허리를 숙이며 내공을 일으켜 아군을 공격했고 아군은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홍인의 공격을 흘려버린 것이다. 

“스님........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험~ 험~ 시주에게 몇 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말씀하세요.”
“소문에 시주와 나머지 일행이 흑도와 관련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군요. 소문의 진위여부를 불어보시는 거라면.........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죠. 시주들은 왜 무림맹을 공격했죠.”
“무림맹은 배화교의 소굴이었습니다. 맹주나 당주나 향주들 그리고 군사, 총관이라는 놈들이 모두 배화교의 간세들이었습니다.”
“이놈~ 누굴 모함하는 것이냐. 반각대사님이 배화교의 간세라고.........사숙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당장 반각대사님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아군의 말에 홍인의 뒤에 있던 사대금강 중 한명이 발끈하고 나선다. 무림맹의 맹주는 소림사 출신의 반각대사였고 반각대사는 영장평원에서 아군의 손에 죽었다. 홍인이나 사대금강의 입장에서는 반각대사의 원한을 갚아주어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 아군은 반각대사를 배화교의 간세라고 말하고 있다. 홍인은 손을 들어 사대금강을 진정시켰다.

“무림맹이 배화교의 소굴이었고 맹주 등이 배화교의 간세였다는 말입니까?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직접 조사해 보세요. 반각대사는 맹주가 되기 전에 제 손으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제 손에 죽은 반각대사가 무림맹의 맹주가 됐더군요. 목정신니, 단목신검, 무극신검, 영결개 등 오당오향의 당주와 향주들은 모두 우리들 손에 죽었어요. 그런데 죽은 그들이 살아나서 무림맹을 장악했더군요.”
“지금 시주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시주는 지금 본사뿐만 아니라 구파일방과 칠대세가 모두를 능멸하고 있는 겁니다.”
“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배화교는 50년 은하대전 이후부터 중원을 공격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소문에 우리 십이사를 흑도가 키웠다고 하는데 그것도 모두 배화교가 꼬며낸 거짓말입니다. 우리 십이사를 끼운 곳은 배화교 입니다.”
“하하하~ 시주는 날 바보로 압니까? 배화교가 시주들을 키웠는데 왜 시주들이 그들을 공격합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배화교는 우릴 마령단에 약에 중독시키고 개처럼 부려먹었어요. 약에 중독된 우리는 어쩔 수없이 배화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우리는 배화교의 속셈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화교는 우릴 개처럼 부려먹다가 나중에 강시로 만들려 했어요. 그래서 마령단의 해약을 찾고 배화교의 음모를 밝히기 위해..........무림맹을 공격한 겁니다. 무림맹의 총관이라는 놈이 배화교주의 삼공자였기 때문이죠.”
“사숙 더 이상 들을 필요 없습니다. 자기 입으로도 반각대사님을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 사사천교와 천마마련이 저놈들을 감 쌓고 있는 것만 보아도 저놈들이 흑도의 주구라는 증거입니다. 무엇을 망설이시는 겁니까?”

조금 전에 발끈하던 사대금강이 다시 끼어들며 공격자세를 취한다. 홍인도 아군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조용히 지켜보던 하후소하가 손을 들었다. 철기대의 대장은 소하의 신호를 보고 대오를 정비하며 창을 들었다. 

“소림은 우릴 너무 무시하는 군요. 십이사는 우리 사사철기군이 보호하고 있으므로 십이사를 공격하겠다는 것은 곧 우리 사사철기군을 공격하겠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사대금강도 소하의 말에 움찔한다. 사대금강도 사사철기군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사철기군이 끝까지 십이사일행을 보호하겠다면 십이사일행을 잡기는 포기해야한다.

“다들 진정하세요. 오늘은 사호팔랑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서 찾아온 겁니다. 일단은 물러가도록 하죠.”
“사숙 이대로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다른 건 몰라도 반각대사의 원수는 갚아야 합니다. 저놈 입으로 반각대사를 죽었다고 시인하지 않았습니까?”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반각대사를 죽인 건 배화교가 사주한 겁니다. 하지만 책임지라고하면 굳이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사람을 죽었으면 당연히 목숨으로 갚아야한다.”

사대금강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건 곤란하군요. 죽은 거야 겁나지 않지만 아직 할일이 많아서 죽을 수없습니다.”
“하하하~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 구나. 사숙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숙께서 나서지 않겠다면 저희들이라도 나서겠습니다.”
“진정하세요. 우린 사사로운 원한을 갚고자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만 갑시다. 조사해보면 알겠지요.”
“사숙조 정말 이대로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감히 제 말을 거역하겠다는 겁니까?”
“아.......알겠습니다.”

홍인스님의 말에 사대금강이 마지못해 몰려난다. 

“오늘은 이만 물려가겠습니다.”
“저희들도 멀리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참~ 소문에 들으니 당신은 천면역용술을 익히고 있다고 하던데.......지금 얼굴도 역용한 겁니까? 들리는 소문과 얼굴이 틀려서 물어보는 겁니다.”
“예! 역용한 얼굴입니다.”
“허허 참~ 고약한 노릇이군.........알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갑시다.”

홍인이 고개를 흔들며 몸을 날리고, 사대금강은 아군을 다시 한번 째려보고는 홍인의 뒤를 따른다.

“휴~”

하후소하의 긴 한숨소리가 들린다. 아군은 살아지는 홍인과 사대금강을 바라보더니 마차로 향했다. 홍인과 사대금강이 오늘은 그냥 물려갔지만 다음에 찾아올 때는 오늘처럼 쉽게 물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군의 마음이 무겁다. 벽하와 소하가 아군을 따라 마차에 오르니 사사철기군은 다시 사사천교를 향해 출발했다.

<<계속>>

ps : 조금 늦었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생각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군요. 그사이에 손가락이 굳었나.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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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향(睿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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