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97]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6
2012년 04월 28일 (토) 09:19:48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11. 제11대 동천제(東川帝:서기227년~서기248년)
산상제와 소후의 아들 교체가 19세로 즉위하였다.
동천제도 단군(檀君)이라 한다. 한맹의 절기가 될 때마다 삼신(三神)을 평양의 기림굴(箕林屈)에서 제사하여 맞이하였다. 여기서 단군이란 곧 천군(天君)으로서 제천(祭天) 제사장(祭司長)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삼륜구덕(三倫九德)의 노래가 있어 이를 권장하였으며, 조의선인(皁衣仙人)은 모두 선택되었는 바, 나라 사람들이 그 선출됨을 긍지로 여겼다. 삼륜구덕은 배달나라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윤리도덕(倫理道德)의 덕목이다.
<우씨를 태후로 봉하다>
서기228년에 동천제가 산상제의 정비 우씨를 태후로 봉하였다.
*서기228년에 촉나라 제갈량이 제2출사표를 쓰고, 위(魏)나라를 치는 북벌을 시도하였다.
<우씨 태후가 훙하다>
서기234년 우씨 태후가 훙하여 산상제릉 옆에 모셨다. 우씨는 고국천제의 왕비였다가 산상제의 비가 되었고 동천제의 태후가 되었다.
*서기234년에 촉나라의 제갈량이 10만 군사로 위(魏)나라를 치는 최후 북벌을 단행하여 오장원(五丈原)에 본진을 설치하였으나, 병으로 군중에서 54세로 죽었다.
<위나라와 화친하고 오나라의 사신을 베다>
서기236년에 오나라 사신이 왔으나 목을 베어 위나라로 보냈다.
<요동의 공손연을 합공(合攻)하다>
서기238년에 요동의 공손연(公孫淵)이 반란을 일으키자, 위(魏)나라의 사마의가 군사를 이끌고 요동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공손연을 공격하니, 동천제가 구원병 1천여명을 보내 위나라를 도와 승리로 이끌었으나, 보답이 없었다.
<위나라의 서안평 공격>
서기242년(위나라 정시 3년)에 고구려가 위나라의 요동 서안평(西安平)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여기서 위나라는 조씨(曹氏)의 나라이며, 서안평은 서기980년경 이전까지 난하의 최상류 쪽에 소요수가 되는 청수하의 동쪽에 위치하여 요동에 속하고, 거란의 초기 수도이던 임황(臨潢)l인 것이다.
<제2환도성 함락>
서기246년(위나라 정시 5년)에 위나라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이 군사 1만여명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였으나, 동천제가 군사 2만으로 비류수에서 역습하여 위나라군 3,000여명을 참하고 다시 양맥에서 3,000여명을 죽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에 동천제가 진격하다 관구검이 필사적으로 반격하므로 패전하여 관구검이 환도성을 함락시키고 동천제를 쫓았다. 죽령 부근에서 밀우가 이를 막고 유옥구가 밀우를 구했다. 동천제가 남옥저로 향하니 유유가 계책을 내어 적장 왕기를 찾아가 살해하고 자결하였다. 이에 동천제가 추격군을 전멸시키고 환도성으로 진격해 관구검을 축출하였다.
환도성은 국내성 안에 있는 산성이며, 고구려 때 제1, 제2, 제3 환도성이 있었는데, 이때 위나라 관구검에게 함락된 것은 제2환도성이 된다.
<평양 천도>
서기247년에 평양(平壤)으로 천도하였다.
여기서 평양이 대동강 평양인지 아니면 국내성 또는 환도성 부근의 평양인지 불명인데, 관구검이 제2환도성을 파손하였던 것이 되며, 이를 복구하기 위하여 일시 천도한 것이 된다. 서기293년에 선비족 족장 모용외가 침입한 도성은 여기 평양성이 되며, 서기339년에 환도성으로 천도하기까지 93년간의 수도였던 것이 된다.
<신라와 화친하다>
서기248년에 신라의 첨해왕이 사신을 보내와 화친하였다.
12. 제12대 중천제(中川帝:서기248년~서기270년)
동천제의 태자 연불이 24세로 즉위하였다.
황비연씨와 관나부인의 상호 질투 속에서 관나부인이 황비연씨를 지나치게 모함하므로 관나부인을 바다에 버렸다.
*서기252년에 오(吳)나라의 손권이 71세로 병사하였다.
서기259년에 위나라 위지해가 군사를 이끌고 침공하였으나, 중천제가 군사 5천으로 양맥 계곡에서 위나라 군사 8천을 죽이고 대승하였다.
*서기263년에 촉나라가 위(魏)나라의 사마소에게 멸망하였고, 유선은 사마소에 의하여 안락공에 봉해졌다.
*서기264년에 오나라 황제 손휴가 죽고 손호가 즉위하였다. 이해에 위(魏)나라의 사마소가 진왕(晋王)이 되었다.
*서기265년에 사마소가 죽고 장남 사마염(司馬炎)이 위(魏)나라 원제(元帝) 조환(曹奐)으로부터 강압적으로 선양받아, 국호를 진(晋)이라고 하였다.
서기270년 10월에 중천제가 붕하였다.
13. 제13대 서천제(西川帝:서기270년~서기292년)
중천제의 둘째 아들 태자 약로(약우)가 즉위하였다.
*서기276년에 오(吳)나라의 손호가 진(晋)에 투항하였다.
서기280년 겨울에 대장군 달가가 기병을 거느리고 숙신을 기습하여 추장을 죽이고 단로성을 점령하였다. 이에 7개부락이 항복하였고, 서천제는 달가를 안국군에 봉하였다. 여기서 숙신은 고구려의 동북쪽에 있는 부족으로서 단군조선의 숙신에서 유래된 나라이며, 고구려 때에는 길림에서 두만강에 걸치는 지역 즉 동부여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서기280년 3월에 오(吳)나라가 진(晋)나라에 망하였다. 손호는 귀명후(歸命侯)에 봉해졌다.
서기286년 봄에 서천제의 아우 일우와 소발이 반란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14. 제14대 봉상제(烽上帝:서기292년~서기300년)
서천제의 태자 상부(삽시루)가 즉위하였다.
봉상제가 숙부 안국군을 살해하였다.
서기293년에 선비족 족장 모용외가 도성(평양성:봉황성?)까지 침입하였고 이때 고노자가 모용외를 축출하였다. 여기서 도성은 서기247년에 천도한 곳으로서 대동강 평양인지 국내성 부근의 평양인지 불명인데, 단군조선 말기인 서기전425년에 장당경의 남쪽에 위치한 해성(海城)을 평양이라 불렀던 사실을 보면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는 해성의 평양이나 소위 봉황성일 가능성이 많다. 한편, 졸본, 상춘(늘봄:눌현), 국내성(집안), 환도성, 평양의 5경을 염두에 두면 대동강 평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봉상제가 아우 돌고에게 역적모의를 하였다 누명을 씌워 사약을 내렸다. 이에 돌고의 아들 을불이 도망하였다.
서기296년에 선비의 모용외가 다시 고구려를 침입하여 고국원에 이르러 서천제의 릉을 도굴시도 하였으며, 고노자가 신성의 태수로 봉해져 지키니 모용외는 다시 침범하지 않았다.
서기298년에 궁전 증축을 감행하였다.
서기300년에 가뭄이 들어 흉년이 들었다. 8월에 국상 창조리가 사냥나간 봉상제를 체포하여 폐위하고서 별궁에 가두고, 돌고의 아들 을불을 추대하였다. 이에 봉상제는 아들과 함께 자결하였다.
15. 제15대 미천제(美川帝:서기300년~서기331년)
<현도군 정벌>
서기302년에 미천제가 3만여 군사를 이끌고 현도군을 공격하여 포로 8,000여명을 잡아 평양으로 이주시켰다.
여기 평양은 서기247년부터 서기339년까지의 수도이던 평양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대동강의 평양인지 아니면 국내성 부근에 있는 해성(海城) 평양이나 소위 봉황성인지 불명이다.
<서안평 점령>
서기311년에 요동 서안평을 점령하였다.
<낙랑군과 대방군의 완전 축출>
서기313년에 낙랑군을 멸망시켰다. 이후 고구려 역사에서 낙랑군의 지명이 등장하지 않게 된다.
서기314년에 대방군을 멸망시켰다. 이후 고구려 역사에서 대방군의 지명이 등장하지 않게 된다.
<선비족 모용외의 침입>
서기319년에 모용외가 장군 장통을 보내어 고구려 하성을 기습공격하여 고구려 장수 여노자를 생포하고 민가 1천여호를 약탈하고 극성으로 돌아갔다. 이에 미천제가 군사를 보냈으나 모용외의 아들들에게 패하였다.
서기320년에 미천제가 요동을 지키고 있던 모용외의 아들 모용인을 축출하였다.
16. 제16대 고국원제(故國原帝:서기331년~서기371년)
미천제의 태자 사유가 즉위하였다.
이때 5호16국 시대로 모용외의 아들 모용황이 연(전연)을 세웠다.
서기335년에 북쪽에 신성을 축조하였다.
<전연의 침입>
서기339년에 전연의 모용황이 신성으로 침공하였다. 환도성과 국내성을 수리하고 환도성으로 천도하였다. 여기 환도성은 국내성 안에 있는 산성이며, 제1, 제2, 제3 환도성이 있는데, 이때 수리한 산성을 제3환도성이라 한 것이 된다.
<국내성 증축>
서기342년에 국내성을 증축하였다.
<제3환도성 함락>
서기342년에 전연의 선비족 모용황이 4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침입하고 나머지는 북쪽으로 침입하였는데, 고국원제의 아우 무가 5만의 군사로 북쪽을 지키고 고국원제는 1만 군사로 남쪽을 지키다, 모용황이 고국원제의 군사를 격파하고 환도성을 점령하였다. 이에 고국원제가 단웅곡으로 피하였다.
모용황은 미천제의 무덤을 파서 시체를 꺼내 싣고 태후와 왕비, 5만명의 백성을 폴로 잡아가고 궁궐에 불을 지르고 환도성을 헐어버렸다.
<평양 천도>
서기343년 봄에 고국원제가 전연에 사신을 보내 미천제의 시체를 돌려받았다. 7월에 평양의 동황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여기 평양은 서기247년부터 서기339년까지 93년간의 수도이던 곳이 되는데 이 평양의 동쪽에 성이 있어 동황성이라 한 것이 된다,
<전연의 침입>
서기345년에 전연의 모용황이 모용각을 보내어 고구려의 남소성을 함락시켰다.
<모용황이 죽다>
서기348년에 전연의 모용황이 죽고 모용준이 왕이 되었다.
<백제를 침공하다>
서기355년에 고국원제가 군사 2만으로 백제를 쳤으나 치양 싸움에서 크게 패하였다.
<전연이 망하다>
서기370년에 전진이 전연을 멸망시켰다. 이에 전연의 태부 모용평이 고구려로 도망하여 왔으나 고국원제가 모용평을 전진으로 압송하였다.
<근초고왕에게 전사하다>
서기371년에 백제의 근초고왕이 3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한강 전투에서 백제 제13대 근초고왕에게 패하여 전사하였다.
여기 평양성은 대동강의 평양이 된다.
17. 제17대 소수림제(小獸林帝:서기371년~서기384년)
고국원제의 태자 구부가 즉위하였다.
<불교 수용>
서기372년에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함께 승려 순도를 보내 왔으며, 이에 불교를 수용하였다.
<태학 설치>
서기372년에 태학(太學)을 설치하였다.
<율령반포>
서기373년에 율령을 공포하였다.
<유기 편찬>
역사책 유기(留記) 100권을 편찬하였다.
<초문사 창건>
서기374년에 동진에서 온 승려 아도의 건의로 최초의 절인 초문사를 창건하였다.
<백제를 치다>
서기376년에 백제 북쪽의 옛 영토를 일부 수복하였다.
<백제가 침공하다>
서기377년 10월에 백제가 3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까지 진격하였으나, 소수림제가 몸소 군사를 이끌고 가서 대승을 거두었다.
18. 제18대 고국양제(故國壤帝:서기384년~서기391년)
소수림제의 아우 이련이 즉위하였다.
<후연의 요동과 현도 점령>
서기385년에 고구려가 전연의 왕족 모용수가 세운 후연의 용성으로 침공하여 요동과 현도를 함락시키고 포로 1만여명을 잡아왔다.
<요동과 현도를 잃다>
서기385년 11월에 후연의 모용농에게 요동과 현도를 다시 잃었다.
<백제의 침공>
서기389년에 백제가 고구려의 남쪽 변방을 침입하여 약탈하였다.
서기390년에 백제가 고구려의 도압성을 함락하고 2백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고구려가 신라의 내물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인질을 보내면 도와주겠다 하니 실성을 인질로 잡히겠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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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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