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328] 사국시대 왜(倭) 연대기 2
2012년 05월 26일 (토) 08:20:34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11. 제20대 반정왕(反正王: 珍) : 서기406년~서기410년(5년)
서기407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서기408년에 신라가 왜(倭)의 대마도를 정벌하려는 것을 중지하였다.
12. 제21대 윤공왕(允恭王: 濟) : 서기412년~서기453년(42년)
서기415년에 왜가 신라와 전쟁하여 패하였다.
서기418년 가을에 왜의 인질이었던 신라의 미사흔이 박제상의 희생으로 귀국하였다.
서기440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서기444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13. 제22대 안강왕(安康王: 興) : 서기454년~서기456년(3년)
14. 제23대 웅략왕(雄略王: 武) : 서기458년~서기479년(23년)
이때부터 일본서기의 역사기록이 실제 연대기 역사와 일치하게 된다.
서기459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서기462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서기463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서기476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서기477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15. 제24대 청령왕(淸寧王) : 서기480년~서기484년(5년)
서기482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16. 제25대 현종왕(顯宗王) : 서기485년~서기487년(3년)
서기486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서기497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17. 제26대 인현왕(仁賢王) : 서기488년~서기498년(11년)
18. 제27대 무열왕(武烈王) : 서기500년~서기506년(8년)
서기500년에 왜가 신라를 침입하였다.
19. 제28대 계체왕(繼體王) : 서기507년~서기531년(25년)
서기523년에 백제의 오경박사 단양이와 고안무가 왜(倭)에 파견되어 왔다.
20. 제29대 안한왕(安閑王) : 서기534년~서기535년(2년)
21. 제30대 선화왕(宣化王) : 서기536년~서기539년(4년)
22. 제31대 흠명왕(欽明王) : 서기540년~서기571년(32년)
서기552년에 백제의 노리사치계가 왜에 불교를 전하였다.
서기553년에 백제의 혜총이 왜의 성덕(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혜총이 일본에 계율종을 전파하였다.
아좌태자가 왜의 성덕(쇼토쿠)태자의 초상화를 그렸다.
서기556년에 일본에 가 있던 백제의 혜 왕자가 귀국하였다.
23. 제32대 민달왕(敏達王) : 서기572년~서기585년(14년)
24. 제33대 용명왕(用明王) : 서기586년~서기587년(2년)
25. 제34대 숭준왕(崇峻王) : 서기588년~서기592년(5년)
서기588년에 백제 기술자들이 일본의 나라 지방에 비조사를 창건하였다.
26. 제35대 추고왕(推古王) : 서기593년~서기628년(36년)
서기601년경 백제의 관륵, 동장이 천문, 지리, 역법, 둔갑술 등을 왜에 전해 주었다.
27. 제36대 서명왕(舒明王) : 서기629년~서기641년(13년)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의 딸 즉 보황녀(寶皇女)인 제명(濟明)이 왕후가 되었다.
서기631년에 백제에서 무왕의 손자 부여풍(夫餘豊:태자 의자(義慈)의 아들)이 파견되어 왔다.
28. 제37대 황극왕(皇極王) : 서기642년~서기644년(3년)
황극왕은 제명(濟明)이라 기록되며,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의 딸인 보황녀(寶皇女)이다.
29. 제38대 효덕왕(孝德王) : 서기645년~서기649년(5년)
30. 제39대 백치왕(白雉王) : 서기650년~서기654년(5년)
31. 제40대 황극왕(皇極王: 天豊) : 서기655년~서기661년(7년)
제36대 황극왕이 다시 왕이 되었다.
서기660년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항복하여 망하였다.
서기660년에 부여풍(夫餘豊)이 백제로 급히 되돌아가니, 무왕의 조카인 복신이 부여풍을 왕으로 세워 부흥운동을 시작하였다.
풍왕은 왜에 구원병을 요청해 놓았다.
이후 백제에서 부흥운동이 3년간 이어졌다.
32. 제41대 천지왕(天智王) : 서기662년~서기671년(10년)
천지왕은 백제 제30대 의자왕(義慈王)의 아들 부여용(夫餘勇)이라고 하며, 황극왕(제명)의 조카로서 고모(姑母)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이 된다.
서기663년 6월에 부여풍이 반역을 꾀하던 복신을 죽였다.
백제 풍왕이 왜(倭)에 사신을 보내어 구원병을 독촉하니, 왜가 구원병 27,000여명과 전함 1,000여 척을 보냈다.
이에 당나라는 백제부흥군을 분열시키기 위하여 왕자 융(隆)을 백제왕으로 삼아 손인사와 함께 파견하였다. 이에 민심이 흔들렸다. 이때 유인궤는 주류성을 치기로 하였고, 이에 손인사와 유인원이 이끄는 당군과 문무왕의 신라군이 주류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유인궤는 부여융과 함께 전함을 거느리고 웅진강에서 백강으로 진격하다 왜군을 만났다. 당군은 4전4승하여 왜 전선 400여척을 불태웠다. 이에 풍왕(豊王:의자왕의 아들)이 사라졌다. 백제의 모든 성이 함락당한 뒤에도 지수신이 홀로 임존성을 지켰는데, 흑치상지가 당군에 투항한 후, 흑치상지에 의하여 임존성이 무너져, 백제의 부흥운동은 완전히 끝났다.
풍왕(豊王)은 이때 왜(倭)로 돌아갔던 것이며, 서기672년에 형 부여용(夫餘勇)인 천지왕(天智王:서기662년~서기671년)을 이어 천무왕(天武王:서기672년~서기686년)이 되었던 것이고, 서기672년에 국호 왜(倭)를 고치어 일본(日本)이라 한 것이 된다. 백제 제30대 의자왕에게는 태자 효, 이하 왕자로 태, 융(隆), 용(勇), 풍(豊) 등 50여명이 있었다.
33. 제42대 천무왕(天武王) : 서기672년~서기686년(15년)
서기672년에 국호 왜(倭)를 고치어 일본(日本)이라 하였다.
천무왕은 천지왕(부여용)의 아우가 되는데 부여용의 아우인 부여풍(夫餘豊:豊章)이 된다.
34. 제43대 지통왕(持統王) : 서기687년~서기697년(11년)
35. 제44대 문무왕(文武王) : 서기698년~서기707년(10년)
<이하 왜(일본) 역사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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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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