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367

홍익인간 7만년 역사 – 연호 계산법

조홍근님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자료출처 : 민족사관 홈페이지 알자고 http://www.aljago.com/index.html 원문보기 : http://www.aljago.com/bbs/zboard.php?id=hanmunhw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6 연호 계산법 ▲© 천산태백 칼럼니스트 천부(天符) 72398년 63,182년 -1 + 3,301년 -1 + 1,565년 -1 + 서기전2,333년 + 서기2,020년 = 72,398년 서기전70378년 계해년 + 서기2020년 = 72398년 ▲ © 천산태백 칼럼니스트 한기(桓紀) 9217년 3,301년 -1 + 1,565년 -1 + ..

[홍익인간 366]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단군조선(檀君朝鮮) 삼한(三韓)의 정통후예국

[홍익인간 366]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단군조선(檀君朝鮮) 삼한(三韓)의 정통후예국2012년 06월 30일 (토) 00:41:52천산(天山) sppopsj@yahoo.co.kr1. 대한민국 땅은 단군조선 마한(馬韓) 땅이자 후삼한(後三韓) 땅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땅은 역사적으로 단군조선 시대의 마한 땅이다. 서기전2333년 무진년 10월 3일에 단군왕검께서 송화강 아사달에 수도를 삼고 구족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시어 조선(朝鮮)을 개국하셨다. 단군왕검 천제(天帝)께서는, 천자(天子)가 다스리는 천하(天下)의 나라인 요임금의 당(唐)나라와 구분하여, 천왕격(天王格)의 비왕(裨王)으로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을 임명하여 각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을 다스리..

[홍익인간 365]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대청(大淸) 연대기

[홍익인간 365]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대청(大淸) 연대기2012년 06월 29일 (금) 08:19:33천산(天山) sppopsj@yahoo.co.kr청나라는 소위 만주족(滿洲族)이 세운 나라이다. 만주(滿洲)라는 말은 지명이나 원래는 만주(滿珠)라는 족속의 명칭에서 나온 것이다. 만주(滿珠)는 주신(珠申)이라고도 불리는 숙신(肅愼)의 후예이다. 숙신은 곧 단군조선 초기에 마가(馬加) 신지(神誌)가 송화강 동쪽 지역에 봉해진 제후국인 것이다. 숙신은 이후 말갈, 읍루, 여진으로 불렸다가 역사상 마지막으로 만주(滿洲)로 불리고 있는 것이 된다. 청나라 왕족의 성씨인 애신각라(愛新覺羅)는 애신(愛新)의 만주말이 금(金)을 가리키며 신라 김씨에서 파생된 각라(覺羅) 김씨(金氏)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역사..

[홍익인간 364]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9

[홍익인간 364]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92012년 06월 28일 (목) 08:34:50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서기1876년 2월에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었다. 1. 조선은 자주국으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2. 부산과 2개의 항구를 개항한다. 3. 일본은 조선의 연해를 자유로이 측량할 수 있다. 4. 조선에서 범죄를 저지른 일본인은 일본 관리가 재판한다 등 서기1876년 7월에 일본과 조선은 몇 가지 보충 협약을 맺었다. 1. 개항장에서 일본인의 통행거리를 정한다. 2. 일본 화폐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3. 일본 선박의 항해세를 면제한다. 4. 일본 상품에 대하여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 서기1879년에 지석영이 종두법을 실시하였다. 서..

[홍익인간 363]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8

[홍익인간 363]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82012년 06월 27일 (수) 08:17:02천산(天山) sppopsj@yahoo.co.kr22. 제22대 정조(正祖:서기1776년~서기1800년)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아들인 세손이 즉위하였다. 세손의 즉위를 방해하고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앞장선 홍인한, 숙의문씨, 정후겸 등이 처형당하고 홍술해와 김귀주는 흑산도로 귀양갔다. 서기1776년에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서기1777년 8월에 홍씨 일파가 정조를 시해하기 위하여 50명의 자객을 궁궐안으로 들여 보냈는데, 모두 수비병에게 붙잡혔다. 이에 홍상범 일당과 은전군이 사약을 받았다. 이에 영조는 홍국영을 도승지 겸 숙위대장으로 삼아 나라일을 맡겼다. 홍국영은 누이를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