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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90]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43

양해천 2018. 1. 18. 15:35

[홍익인간 90]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43

2011년 10월 05일 (수) 07:43:0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조선(朝鮮) 제3대 가륵(嘉勒) 천왕(天王)의 역사 -[가림토(加臨土)] 

7. 상형문자 진서(眞書)와 소리글자 가림토(加臨土) 

소위 한자(漢字)는 원래 배달나라 그림글자(符圖文)에서 나온 것이며, 글(契)이라는 말 자체가 그림(그리다의 명사형) 또는 그리다(동사)라는 말의 명사에 해당하는데, 단군조선 시대의 그림글자 즉 상형문자는 진서(眞書 :참글 = 참 그림글자)라 불렀고, 서기전924년에 왕문이 만든 부예(符隸)라는 상형문자가 있다. 

그림글자를 올바르게 읽는 소리(발음)가 바로 정음(正音)이며, 정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가림토(加臨土)이다. 가림토의 원형은 이미 배달나라 초기부터 있어 왔으며, 서기전2181년에 38자로 정립된 것이다. 그림글자(眞書,신전)와 소리글자(正音)는 지금의 소위 한자(漢字)와 한글로 이어지는 것이 된다. 

한자의 원류가 되는 그림글자를 단군조선 시대에는 신전(神篆), 진서(眞書), 전문(篆文)이라 불렀으며, 서기전1122년 은(殷) 나라가 망한 이후 변형(變形)의 은갑골문(銀甲骨文)이 유입되어 서기전924년에 왕문(王文)에 의하여 부예(符隸)로 통용된 후 중국글자와 통일화된 것이다. 

서기전2267년에 단군조선 태자부루가 전문(篆文)으로 된 천부왕인(天符王印)과 금간옥첩(金簡玉牒)을 순(舜)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에게 전수하여 주었으니, 그 전문이라는 것이 바로 신전(神篆), 진서(眞書)인 것이며, 황제헌원(黃帝軒轅) 이후 전해진 중국측 글자와 같은 계통의 그림글자이다. 

서기전2267년경부터 서기전2247년경 사이에 우(禹)가 세운 치수기념부루공덕비

중국역사상 문자를 처음 도입하여 쓰기 시작한 사람은 황제헌원이며, 배달나라의 제후로서 배달나라 문자를 도입한 것이며, 그 문자는 창힐(蒼詰)의 조족문(鳥足文), 과두문(蝌蚪文), 자부선인(紫府仙人)의 우서(雨書) 등이며, 이러한 글자는 배달나라 글자로서 당연히 단군조선에 이어진 것이 된다. 

단군조선의 영역은 산동지역과 발해만 유역의 동쪽 지역인 바, 이는 치우천왕의 수도와 청제(靑帝) 창힐(蒼詰)이 책임지고 다스리던 땅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단군조선에 그림글자가 있었음을 당연한 것이 된다. 그림글자에서 소리글자가 생겼으니 자연스런 발전이 된다. 

서기전2181년에 단군조선에서 가림토38자를 정립할 때는 150여년이 지난 태평시대이며, 하(夏)나라는 서기전2224년에 세워져 63년정도 지났고 거기에다 초기 약30년간 단군조선의 사자군대에 쫓기어 전쟁을 하였으므로 소리글자 만들 가능성은 거의 전무(全無)하였다 할 것이다. 

황제헌원 이후 소위 중국의 글자는 하(夏) 나라에 전해졌으나, 단군조선의 후원으로 건국된 은(殷) 나라가 소위 갑골문(甲骨文)을 사용하여 하나라 문자는 은문(殷文)으로 대체된 것이 된다. 하(夏)나라 문자는 과두문(蝌蚪文), 조족문(鳥足文), 우서(雨書)일 가능서일 많다. 

은갑골문은 초기에는 단군조선의 신전(神篆)의 형태로 추정되며, 시간이 흘러 변형되거나 새로 생긴 글자가 있어, 서기전1122년경에 이르러 단군조선의 그림글자와 달라진 것이 많았던 것으로 되고, 이에 왕수긍은 단군조선의 삼일신고를 은문(殷文)으로 번역하였다는 식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그림글자를 신전(神篆), 전문(篆文)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단군조선 중기 이후의 문자가 되는 은갑골문의 이전의 원래의 글자로서 그 원류가 된다 하겠다. 혹시라도 서기전2267년에 우(禹)에게 전해진 금간옥첩(金簡玉牒, 神書)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의 중국어(中國語)는 고립어(孤立語)로서 황제헌원 시대에는 분명히 배달나라 말을 썼으므로 교착어(膠着語) 계통이었을 것이나, 배달나라 문자를 도입하여 그들의 언어로 굳어지니 음독(音讀)으로 된 고립어가 된 것이다. 고립어는 시각적인 언어로서 그림글자로 된 문장언어(文章言語)가 된다. 

배달나라 시대 황제헌원 때를 기준으로 하면, 배달나라 말은 구어체가 되며, 황제헌원의 백성들이 쓰던 말은 문장체, 문어체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문장언어(文章言語)가 폐쇄적인 중토문화(中土文化)로 이어져 소위 중국어가 형성된 것이며, 고립어로서 전해진 것이 된다. 

지금 한자의 글자모양이 진시황 이후로 통일화 되었으나, 그 이전에는 그림글자로서 다양한 측면이 있었으며, 그림글자의 원류는 배달나라이고, 은갑골문 문화는 단군조선 중기의 문화에 해당하는 것인 바, 글자의 모양이 바뀐 한자도 당연히 우리 글자인 것이다. 

삼일신고(三一神誥)는 서기전2333년경에 새긴 청석본(靑石本)과 서기전1122년경이후 왕수긍이 새긴 단목본(檀木本)이 있었는데, 청석본은 북부여가 소장하였고, 단목본은 위씨조선이 번조선을 차지하여 소장하다가 모두 병란으로 잃었다 하는 바, 청석본은 신전(神篆), 단목본은 은문(殷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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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27년 이상 족보와 한중일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이세신궁 원시한글 축문 국내 최초 역사적 해독 및 해석 
*소위 우왕비(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문 국내 최초 역사적 해석 
*명도전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 해독 검증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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