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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05]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

양해천 2018. 1. 22. 09:37

[홍익인간 205]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

2012년 01월 21일 (토) 14:14:06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홍사(鴻史) 서문(序文) 1- 

서기전268년경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인 공빈(孔斌)이 지었다는 홍사(鴻史) 서문(序文)이 있다. 공빈은 공자의 7세손으로서 공자순(孔子順)이라고도 한다. 홍사는 아마도 위나라와 관련된 역사서가 아닌가 하는데, 이 홍사 서문에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의 역사와 관련된 내용이 함축되어 있어 여기서 소개하기로 한다. 

[원문 및 해석] 

東方有古國 名曰東夷 
동방에 오래된 나라가 있어 이름하여 가로되 동이(東夷)라 한다. 

星分箕尾 地接鮮白 
별자리로는 기미(箕尾)에 해당하고 땅으로는 선백(鮮白)에 접한다. 

始有神人 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 與堯竝立 
처음 신인(神人) 단군(檀君)이 계시어 드디어 구이(九夷)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君)이 되시니 요(堯)와 병립하였다. 

虞舜 生於東夷 而入中國 爲天子至治 卓冠百王 
우순(虞舜)은 동이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들어와서 천자가 되어 다스리게 되니 백왕을 뛰어넘었다. 

紫府仙人 有通之學 過人之智 黃帝受內皇文於門下 代炎帝而爲帝 
자부선인은 도통의 학문이 있고 다른 사람의 지혜를 넘었으니 황제가 그 문하에서 내황문을 받아 염제를 대신하여 임금(帝)이 되었다.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年憂 吾先夫子稱之 
소련과 대련은 상(喪)을 잘 치러 삼일을 게으르지 않고 삼년을 슬퍼하였으니, 우리 선부자께서 칭송하였다. 

夏禹塗山會 夫婁親臨 而定國界 
하우(夏禹)의 도산회(塗山會)에 부루(扶婁)께서 친림하시어 나라의 경계를 정하셨다. 

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而爲殷湯之賢相 
유위자(有爲子)는 하늘이 내신 성인(聖人)으로서 꽃다운 이름이 중국(中國)에 흘러 넘쳤으며, 이윤(伊尹)이 그 문하에서 수업하여 은탕(殷湯)의 현명한 신하가 되었다.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人國 
그 나라는 비록 크지만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그 군사는 비록 강하나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풍속은 순박하고 두터워 길가는 사람은 서로 길을 양보하고 먹는 사람은 밥을 건네며 남녀는 자리를 달리하여 함께 앉지 않는다.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가히 동방 예의(禮儀)의 군자(君子) 나라라 할 것이다. 

是故 殷太師箕子有不臣於周朝之心 而避居於東夷地 
이러한 고로 은태사(殷太師) 기자(箕子)가 주(周)나라 조정에 신하가 되지 않을 마음이 있어 동이(東夷)로 피하여 살았던 것이다.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우리 선부자(先夫子)께서도 동이(東夷)에 살고싶다 하여 누추하다 생각하지 않으셨고, 

吾友魯仲連亦有欲踏東海之志 
내 친구 노중련(魯仲連)도 역시 동해(東海)를 답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余亦欲居東夷之意 
나도 역시 동이에 살고 싶다. 

往年賦觀東夷使節之入國其儀容有大國人之衿度也, 
작년(서기전269년)에 동이 사절의 입국을 부관(賦觀)할 때, 그 의식과 용태에 대국(大國)의 금도(衿度)가 있었다. 

東夷蓋自千有餘年以來 與吾中華 相有友邦之義 
동이는 대개 천년을 넘게 지금까지 우리 중화(中華)와 서로 우방의 의리를 지녀왔다. 

人民互相來居往住者接踵不絶 
백성들이 서로 오고가며 사는 것이 줄을 이었고 끊이지 않았다. 

吾先夫子 印夷不以爲陋者 其意亦在乎此也 
우리 선부자께서는 이(夷)가 누추하지 않다고 생각하셨으니 그 뜻이 역시 여기에 있는 까닭으로, 

故余亦有感而記實情以示後人焉 
나 역시 느낀 점이 있어, 실제의 정황을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魏 安釐王 十年 曲阜 孔斌 記 
위나라 안리왕 10년(서기전268년) 곡부에서 공빈이 쓰다. 

[역사적 고찰] 

동방(東方)이란, 공빈이 위 홍사(鴻史)의 서문을 쓸 당시에 위(魏)나라 또는 위나라가 속하였던 주(周)나라의 동쪽에 있는 땅이라는 의미로서, 조선(朝鮮) 즉 단군조선(檀君朝鮮)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배달나라는 중국의 실질적인 역사가 되는 황제헌원의 나라로 볼 때 단순히 그들의 동방이 아니라 동서남북 사방이 되며, 단지 수도가 산동지역인 동방에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이후 주(周)나라 전국(戰國) 시대에 사방의 이(夷)를 각각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부른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 된다. 

고국(古國)이란, 옛날 나라 즉 옛날에 존재하였던 나라로 해석하기 보다는 역사가 오래된 나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동이(東夷)는 그냥 옛날 나라가 아니라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의미가 된다. 이는 특히 다음에 나오는 자부선인(紫府仙人)을 동이(東夷) 사람으로 기록한 취지에서 보더라도 분명해진다. 

동이(東夷)는 주나라 전국시대에 단군조선 본국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원래 단군조선은 구이(九夷)의 나라인데, 주(周)나라가 원래 서이(西夷)의 나라로서 서기전1122년에 중원에 있던 은(殷)나라를 쳐서 멸하고 차지한 후, 서기전403년 이후 전국시대에 들어 주나라를 스스로 중화(中華), 중국(中國)이라 본격적으로 칭하면서 주나라의 사방에 있던 단군조선의 자치제후국이 되는 이(夷)를 나누어 각각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비하하였던 것이 된다. 다만, 이때 동이는 오랑캐라는 의미가 아닌 점에서 그들이 동방의 단군조선 본국(삼한)을 더 이상 비하하지 못한 증거가 된다. 

하늘에서의 기미(箕尾)라는 별자리는 북동동방(北東東方)에 있는 바, 동이(東夷) 지역이 곧 북동동방(北東東方)이라는 것이며, 당시 주나라의 수도를 기준으로 하면 북동쪽이 되는 연나라 땅 동쪽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땅에서의 선백(鮮白)이라는 나라는 곧 선비(鮮卑)를 가리키는 바, 동이가 선비와 서쪽으로 접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리하여 선비와 서쪽으로 접하고 있는 동이 즉 단군조선의 군후국은 구려국(句麗國)이 된다. 선비국의 북쪽에는 단군조선의 봉국(封國)인 몽고리(蒙古里)가 있으며, 그 남쪽에는 역시 단군조선의 봉국인 흉노(匈奴)가 있고, 그 서쪽에는 12한국(桓國)의 하나이며 배달나라의 제견의 천자국이면서 단군조선의 자치제후국이 되는 견이(畎夷:畎族)가 있었다. 선백(鮮白), 선비(鮮卑)라는 글자와 그 소리로 볼 때 “새빛”, “신선한 빛”이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 된다. 

선비국은 역사적으로 한국(桓國)의 연방국이던 12한국의 하나로서 서기전5000년 이전부터 존속해온 나라이며, 단군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통성을 이은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을 배반하지 않고 종주국(宗主國)으로서 섬긴 것이 되는데, 서기전1622년에 단군조선에서 선비국의 남쪽이 되는 남선비(南鮮卑)에 대인(大人)을 봉한 사실이 있으며, 선비족은 서기500년경까지 중국의 북쪽 지역에서 나라를 세우기도 하였다. 

신인(神人) 단군(檀君)은 단군조선 개국 시조이신 단군왕검(檀君王儉)을 가리키는데, 신인(神人)은 신성(神性)을 지닌 인물이며, 단군(檀君)은 단국(檀國)의 작은 임금이라는 말로서, 곧 배달나라의 본왕(本王)인 천왕(天王)의 아들인 천군(天君)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배달나라 임금인 한웅은 스스로는 왕(王)이나 제후들의 입장에서는 중앙조정의 임금으로서 상국(上國)의 임금이므로 천왕, 천제가 되는 것이 되며, 따라서 한웅의 아들인 단군은 곧 천군(天君)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배달나라 한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천자국의 임금은 스스로 제왕(帝王)이라 참칭하며 단군(壇君)은 될 수 있어도 절대 단군(檀君)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즉, 요임금, 순임금, 하우 등은 절대 단군(檀君)이 아니며 배달조선을 반역하였을 때는 천제나 천왕의 허락없이 하늘에 제사를 함부로 지내는 단군(壇君)을 흉내낸 것이 된다. 

구이(九夷)는 단군조선 구족(九族)을 가리키는데, 고대중국에서는 이 구족을 가리켜 구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즉, 서기전5000년 이전에 형성된 한국(桓國) 시대의 구한(九桓)을 구이(九夷)라 하여 단군조선을 구성한 근본백성임을 나타낸 것이 된다. 구족, 구한, 구이는 곧 황족(黃族:황이), 양족(陽族:양이), 우족(于族:우이), 방족(方族:방이), 견족(畎族:견이), 현족(玄族:현이), 백족(白族:백이), 남족(藍族:남이), 적족(赤族:적이)이다. 

여기서 군(君)이란 임금을 가리키는데, 요(堯)를 군(君) 등으로 밝히 아니한 것으로 보아 요(堯)는 군(君)아래 제후에 해당하는 지방의 왕이 되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것이 될 것이다. 신인 단군(단군왕검)이 임금(君)이 되어 요(堯)와 병립하였다는 것은, 당시 단군왕검과 요임금이 나라를 세워 함께 존재하였다는 것이며, 이는 서기전2357년에 요임금이 당(唐)이라 칭하고 단군왕검은 서기전2333년에 조선(朝鮮)이라 칭하고서 서기전2324년에 요임금이 자신을 토벌하러 갔던 단군조선의 사자 유호씨에게 굴복하여 천자로 인정받음으로써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될 때까지 약 10여년간 거의 대등한 나라로 병립하였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이후에는 요임금의 나라는 단군조선의 정식 천자국에 불과한 것이 되어 제후국이 되는 것이다. 이는 단군조선의 신하이던 순(舜)이 요를 유폐시키고 천자자리를 찬탈한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된다. 

우순(虞舜)은 우(虞)나라 순(舜)임금을 가리킨다. 우순이 동이(東夷)에서 나서 중국(中國)에 들어가 천자(天子)가 되어 다스리니 백왕을 뛰어넘는 정치를 펼쳤다는 것은, 원래 순이 단군조선에서 환부(鰥夫)라는 직을 수행하며 서기전2324년에 아버지인 유호씨(有戶氏)를 따라 당요(唐堯)를 토벌하러 갔던 것이고, 이후 서기전2314년에 요임금에게 등용되고 다시 서기전2294년에 요임금의 섭정이 되었으며, 다시 서기전2284년에 아예 요임금을 유폐시키고 천자자리를 찬탈하였고, 서기2280년에 사공(司空) 우(禹)에게 치수를 맡기어 서기전2288년에 발생하였던 요순시대 대홍수를 결국 서기전2267년에 마무리함으로써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던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이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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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 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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