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7만년 한 민족사

3. 한인조선

양해천 2018. 1. 23. 15:01

3. 한인조선

가 개요

한인조선은 15만 년 전부터 아시아 대륙으로 들어온 네안데르탈인들이 바이칼 호수에서 처음으로 가족화 집단화되고 언어와 불이 만들어지고 빗살 무늬 토기가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나라(집단)를 말한다. 먼저 서양학문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위서라고 하고 있는 환단고기 삼성기와 부도지에 기록된 내용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현재까지의 과학적 결론과 비교해 보기로 한다. 우선 집단이 인류 최초로 모였다는 것은 부도지와 삼성기가 같다. 즉 창시자 효과가 우리 조상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부도지는 모계 사회와 높은 곳의 성이 추가되어 있고 삼성기는 그렇지 않다. 말이 창조되면서 사람이 된 것은 부도지에서 음으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더욱 세부적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부도지가 인종의 피부색을 처음 사람으로 묘사한 한 점은 말이 퍼져나간 것을 잘 못 표현한 것으로 보이고 시대는 삼겅기 전 하의 63.182년 쿠엔틴 엣킨슨의 약 5만 년 전이라는 주장이 개략적이지만 부도지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 문헌과 유적 상 한인시대 분석

1) 부도지

원제 : 符都誌. 박제상 저 | 김은수 역 |한문화 |2002.01.10, 부도지(符都誌)는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저술했다는 사서인 《징심록》의 일부이다. 1953년에 그 후손인 박금(朴錦)이 그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일반에 공개되었고, 1986년 번역본이 출간되어 널리 알려졌다. 부도지(符都誌)는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저술했다는 사서인 《징

심록》의 일부이다. 1953년에 그 후손인 박금(朴錦)이 그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일반에 공개되었고, 1986년 번역본이 출간되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 김시습에 의해 번역되었고, 그 필사본이 보관되고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현존하는 《부도지》의 내용은 원본의 내용을 연구했던 기억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저 자 [편집] 박금의 본명은 박재익이며, 박제상의 55세손이다. 1895년 함경남도 문주(지금의 문천)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1925년~1934년)에는 동아일보 기자로서 활동했으며, 만보산 사건을 취재하기도 했다.

징심은 3교(敎) 15지(誌)로 되어 있다.

상교 -부도지(符都誌), 음신지(音信誌), 역시지(曆時誌), 천웅지(天雄誌), 성신지(星辰誌)

중교 - 사해지(四海誌), 계불지(??誌), 물명지(物名誌), 가악지(歌樂誌), 의약지(醫藥誌) 하교 - 농상지(農桑誌), 도인지(陶人誌), 나머지 3지는 알 수 없다. 부도지 외에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 등을 복원했다고 하나 일반에 전해지지 않는다.

第一章 : 마고성(麻姑城)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성(城)이다.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하였다. 성중(成中)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管)을 쌓아 놓고, 음(音)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黃穹)씨요, 둘째는 백소(白巢)씨요, 셋째는 청궁(靑穹)씨요, 넷째는 흑소(黑巢)씨였다.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穹姬)씨요,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巢姬)씨였다.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麻姑)의 딸이었다. 마고는 짐세(朕世)에서 태여나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의 정을 받아,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天人)과 두 천녀(天女)를 낳았다. 합하여 네 천인과 네 천녀였다.

麻姑城은 地上最高大城이니 奉守天符하야 繼承先天이라, 成中四方에 有四位天人이 堤管調音하니 長曰 黃穹氏오 次曰 白巢氏오 三曰 靑穹氏오 四曰 黑巢氏也라. 兩穹氏之母曰穹姬오 兩巢氏之母曰巢姬니 二姬는 皆麻姑之女也라. 麻姑ㅣ生於朕世하야 無喜怒之情하니 先天爲男하고 後天爲女하야 無配而生二姬하고 二姬ㅣ赤受其精하야 無配而生二天人二天女하니 合四天人四天女야라.

第二章 : 선천(先天)의 시대에 마고대성(麻姑大城)은, 실달성(實達城)의 위에, 허달성(虛達城)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 여(呂)의 음(音)만이 하늘에서 들려 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도, 또한 이 음(音)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朕世)다. 짐세 이전에, 율려(律呂)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星辰)이 출현하였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할 때, 마고가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아, 두 딸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와 음절(音節)을 맡아보게 하였다. 성중(城中)에 지유(地乳)가 처음으로 나오니, 궁희와 소희가, 또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아,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기르고, 네 천녀에게는 여(呂)를, 네 천인에게는 율(律)을 맡아보게 하였다.

先天之時에 大成이 在於實達之上하야 與虛達之城으로 ?列하니 火日, 暖照하고 無有具象하야 唯有八呂之音이 自天聞來하니 實達與虛達이 皆出於此音之中하고 大城與麻姑ㅣ赤生於斯하니 是爲朕世라. 朕世以前則律呂幾復하야 星辰巳現이러라. 朕世幾終에 麻姑ㅣ生二姬하야 使執五音七調之節하다. 城中에 地乳始出하니 二姬又生四天人四天女하야 以資其養하고 四天女로 執呂하고 四天人으로 執律이러라.

第三章

후천(後天)의 운(運)이 열렸다. 율려(律呂)가 다시 부활하여, 곧 음상(音象)을 이루니, 성(聲)과 음(音)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實達大城)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의 지역에 떨어드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수운(水雲)의 위로 덮고, 실달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려, 물 가운데에 땅이 생겼다. 육해(陸海)가 병렬(?列)하고, 산천(山川)이 넓게 뻗었다. 이에 천수의 지역이 변하여, 육지가 되고, 또 여러 차례 변하여, 수역(水域)과 지계(地界)가 다 함께 상하가 바뀌며 돌므로, 비로서 역수(曆數)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5]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빛이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고, 초목(草木)과 금수(禽獸)을 살찌게 길러내니, 모든 땅에 일이 많아 졌다. 이에 네 천인이 만물(萬物)의 본음(本音)을 나눠서 관장(管掌)하니, 토(土)를 맡은 자는 [6]황(黃)이 되고, [7]수(水)를 맡은 자는 [8]청(靑)이 되어, 각각 궁(穹)을 만들어, 직책을 수호 하였으며, [9]기(氣)를 맡은 자는 백(白)이 되고, 화(火)를 맡은 자는 흑(黑)이 되어, 각각 소(巢)를 만들어, 직책을 지키니, 이것으로 인하여 성(姓氏)이 되었다. 이로부터 [10]기(氣)와 화(火)가 서로 밀어, 하늘에는 찬 기운이 없고, 수(水)와 토(土)가 감응(感應)하여, 땅에는 어긋남이 없었으니, 이는 음상(音象)이 위에 있어, 언제나 비춰주고, 향상(響象)이 아래에 있어, 듣기를 고르게 해 주는 까닭이었다.

後天運開에 律呂再復하야 乃成響象하니 聲與音錯이라. 麻姑ㅣ引實達大城하야 大城之氣ㅣ上昇하야 布幕於 水雲之上하고 實達之?ㅣ平開하야 闢地於凝水之中하니 陸海?列하고 山川이 廣圻이라. 於是에 水域이 變成地界而雙重하야 替動上下而斡旋하니 曆數始焉이라.以故로 氣火水土ㅣ相得混和하야 光分書夜四時하고 潤生草木禽하니 全地多事라.於是에 四天人이 分管萬物之本音하니 管土者爲黃하고 管水者爲靑하야 各作穹而守職하고 管氣者爲白하고 管火者爲黑하야 各作巢而守職하니 因稱其氏라. 自此로 氣火共推하야 天無音冷하고 水土感應하야 지무흉戾하니 此는 音象이 在上하야 常時反照하고 響象이 在下하야 均布聽聞姑也라.

第四章

이때에, 본음(本音)을 관섭(管攝)하는 자가 비록 여덟 사람이었으나, 향상을 수증(修證)하는 자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여 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못하였다. 마고(麻姑)가 곧,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出産)을 하게 하니, 이에네 천인이 네 천녀와 결혼하여, 각각 삼남(三男) 삼녀(三女)를 낳았다. 이가 지계(地界)에 처음 나타난 인간의 조상(人祖) 였다. 그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여, 몇 대(代)를 지내는 사이에, 족속(族屬)이 불어나, 각각 3000명의 사람이 되었다. 이로부터 12사람의 시조는 각각 성문(城門)을 지키고, 그 나머지 자손은 향상(響象)을 나눠서 관리하고, 수증(修證)하니, 비로서 역수(曆數)가 조절되었다. 성중(城中)의 모든 사람은, 품성(稟性)이 순정(純精)하여, 능히 조화(造化)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血氣)가 맑았다.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고, 걷고 할 수 있으므로, 내왕(來往)이 자재(自在)하였다. 임무를 마치자, 금(金)은 변하여 먼지가 되었으나, 그 성체(性體)를 보전하여, 혼식(魂識)이 일어남을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도 능히 말을 하고, 백체(魄體)가 때에 따라 움직여, 형상을 감추고도 능히 행동하여, 땅 기운(地氣) 중에 퍼져 살면서, 그 수명(壽命)이 한이 없었다.

時에 管攝本音者ㅣ雖有八人이나 未有修證響象者故로 萬物이 閃生閃滅하야 不得調節이라. 麻姑ㅣ乃命四天人四天女하야 ?脇生産하니 於是에 四天人이 交娶四天女하야 各生三男三女하니 是爲地界初生之人祖也라. 其男女ㅣ又復交娶하야 數代之間에 族屬이 各增三天人이라. 自此로 十二人祖는 各守城門하고 其餘子孫은 分管響象而修證하니 曆數始得調節이라. 城中諸人이 稟性純精하야 能知造化하고 飮?地乳하야 血氣淸明이라. 耳有烏金하야 具聞天音하고 行能跳步하야 來往自在라. 任務己終則遷化金塵而保己性體하야 隨發魂識而潛能言하고 時動魂體而潛能行하야 在住於地氣之中하야 其壽無量이러라

第六章 :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수찰(守察)을 금지하니 이는 또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율(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에 덮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32]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33]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혈육이 탁(濁)하게 되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명기(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白巢氏之諸人이 聞而大驚하야 乃禁止守祭하니 此又破不禁自禁之自在律者也라. 此時에 食實之習과 禁祭之法이 始하니 麻姑閉門撤冪이러라. 已矣오 食實成慣者ㅣ皆生齒하야 唾如蛇毒하니 此는 强呑他生故也오 設禁守祭者ㅣ皆眼明하야 視似치目하니 此는 私 公律故也라. 以故로 諸人之血肉이 化하고 心氣ㅣ酷變하야 遂失凡天之性이라. 耳之烏金이 化作兎沙하야 終爲天聲하고 足重地固하야 步不能跳하며 胎精不純하야 多生獸相이라. 命期早熟하야 其終이 不能遷化而 하니 此는 生命之數ㅣ 惑 縮故也라.

第七章 : 이에 사람(人世)들이 원망하고 타박하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眷屬)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 또 포도의 열매를 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가니, 황궁(黃穹)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하게 여겨 고별(告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의 미혹(迷惑)함이 심대(甚大)하여 성상(性相)이 변이(變異)한 고로 어찌할 수 없이 성중(城中)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오. 그러나, 스스로 수증(修證)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 남김이 없으면, 자연히 복본(復本) 할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시오.]하였다. 이 때에 기(氣)와 토(土)가 서로 마주치어, 시절(時節)을 만드는 광선(光線)이, 한 쪽에만 생기므로, 차고 어두웠으며, 수(水)와 화(火)가 조화를 잃으므로, 핏기 있는 모든 것들이 시기하는 마음을 품으니, 이는, 빛을 거둬들여서 비추어 주지 아니하고, 성문이 닫혀 있어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於時에 人世ㅣ怨咎하니 支巢氏ㅣ大恥顔赤하야 率眷出城하야 遠出而隱이라. 且氣慣食萄實者와 設禁守祭者ㅣ亦皆出城하야 去各地하니 黃弓氏ㅣ哀憫彼等之情狀하야 乃告別曰 諸人之惑量이 甚大하야 性相變異故로 不得同居於城中이라. 然이나 自勉修證하야 淸濟惑量而無餘則自然復本하리니 勉之勉之하라. 是時에 氣土相値하야 時節之光이 偏生冷暗하고 水火失調하야 血氣之類ㅣ皆懷猜忌하니 此는 冪光이 卷撤하야 不爲反照하고 城門이 閉隔하야 不得聽聞故也라.

第八章 :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전날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복본(復本)을 하려고 하니, 이는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곧 젖샘을 얻고자 하여, 성곽의

밑을 파해치니, 성터(城址)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混濁)이 지극하여, 청정(淸淨)을 보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 제족(諸族)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꺼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도(理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혹량(惑量)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청정(淸淨)은 이미 없어지고, 대성(大城)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가.]하였다. 이 때에 천인(天人)들이 분거(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하고자 하므로, 황궁씨가 곧 천부(天符)를 신표(信標)로 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분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靑穹)씨는 권속(眷屬)을 이끌고 동쪽 사이의 문을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가고, 백소(白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사이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黑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사이의 문을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已矣오. 出城諸人中悔悟前非者ㅣ還到城外하야 直求復本하니 此未知有復本之時所故也라. 乃欲得乳泉하야 掘鑿城廓하니 城址破損하

야 泉源이 流出四方이라. 然이나 卽化固土하야 不能飮철이라. 以故로 城內에 遂乳渴하니 諸人이 動搖하야 爭取草果하니 混濁至極하야 難保淸淨이라. 黃穹氏ㅣ爲諸人之長故로 乃束身白茅하고 謝於麻故之前하야 自負五味之責하여 立誓復本之約이러라. 退而告諸族曰五味之禍ㅣ反潮逆來하니 此出城諸人이 不知理道하고 徒增惑量故也라. 淸淨已破하고 大城將危하니 此將奈何오. 是時에 諸天人이 意決分居하야 欲保大城於完全하니 黃穹氏ㅣ乃分給天符爲信하고 敎授採葛爲量하야 命分居四方이라. 於時에 靑穹氏ㅣ率眷出東間之門하야 去雲海洲하고 白巢氏ㅣ率眷出西間之門하야 去月息洲하고 黑巢氏ㅣ率眷出南間之門하야 去星生洲하고 黃穹氏ㅣ率眷出北間之門하야 去天山洲하니 天山洲는 大寒大險之地라. 此는 黃穹氏ㅣ自進 難하야 忍苦復本之 盟誓러라.

第九章 :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洲)에 이르니, 어느덧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의

현상이 있었다.

分居諸族이 繞倒各洲하니 於焉千年이라. 昔世出城諸人之裔ㅣ難居各地하야 其勢甚盛이라. 然이나 殆忘根本하고 性化猛獰하야 見新來分居之族則作群追跡而害之러라. 諸族이 已定住하니 海阻山隔하야 來往이 殆絶이라. 於時에 麻故與二姬로 修補大城하고 注入天水하야 淸掃城內하고 移大城於虛達之上이러라. 是時에 淸掃之水ㅣ大漲於東西하야 大破雲海之地하고 多滅月息之人이라. 自此로 世界之重이 變化하야 曆數生差하니 始有朔?之象이라.

第十章 :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 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45]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

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黃穹氏ㅣ到天山洲하야 誓解惑復本之約하고 告衆勸勉修證之業이라. 乃命長子有因氏하야 使明人世之事하고 使次子三子로 巡行諸洲러라. 黃穹氏乃入天山而化石하야 長嗚調音하야 以圖人世惑量之除盡無餘하고 期必大城恢復之誓約成就러라. 於是에 有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니 此卽天地本音之象而使知其眞一根本者也라. 有因氏ㅣ哀憫諸人之寒冷夜暗하야 鑽燧發火하야 照明溫軀하고 又敎火食하니 諸人이 大悅이라. 有因氏千年에 傳天符於子桓因氏하고 乃入山하야 專修契불不出이라. 桓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야 大明人世證理之事하니 於是에 日光均照하고 氣侯順常하야 血氣之類ㅣ庶得安堵하고 人相之怪ㅣ稍得本能하니 此는 三世修證三千年에 其功力이 庶幾資於不 者也라.

박제상(朴堤上, 363년 ~ 418년 추정) 신라의 충신이다. 자는 중운(仲雲), 호는 관설당(觀雪堂)·도원(挑園)·석당(石堂) 등이다. 혁거세 거서간의 9세손, 파사이사금의 5세손이며, 영해 박씨(寧海朴氏)의 시조이다. 《삼국유사》는 김제상(金堤上)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삽라군(?羅郡)의 태수직을 수행하였다. 눌지 마립간 즉위 10년(426년)에 왕의 명을 받아, 고구려에 볼모로 있던 눌지 마립간의 동생 복호(卜好)를 구하여 신라로 돌아왔으며, 이어서 야마토에 볼모로 있는 왕자 미사흔을 구하러 건너갔다. 왕자를 구출하여 신라로 보낸 후, 그를 신하로 삼으려는 인교 천황의 설득을 거절하다가 죽었다.

2) 삼성기전 상

환국 개창

吾桓建國 最古 有一神 在斯白力之天 爲獨化之神 光明照宇宙 權化生万物 長生久視 恒得決樂 乘遊至氣 妙契自然 無形而見 無爲而作 無言而行

우리 환족(桓族)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 한 신(神)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의 하늘에 있으며 홀로 우주의 조화를 부리는 신이다. 광명으로 우주를 비추고 권화(權化)로 만물을 낳으며, 불로장생하사 항상 즐거움을 누린다. 지극한 우주의 현기(玄氣)를 타고 노닐고 자연에 오묘하게 부합하며, 형상 없이 나타나고

무위로 만물을 지으며 무언으로 행했다.

안파견 환인

日 降童女童男 八百於黑水白山之地 於是 桓因亦以監? 居于天界 ?石發火 始敎熱食 謂之桓國 是謂天帝桓因氏 亦睨安巴堅也 炩七世 年代不可考也

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黑水)와 백산(白山) 사이에 내려보냈는데, 이때 환인(桓因)이 감군(監?)이 되어서, 천계(天界)에 거주하며 돌을 쳐서 불을 만들어 처음으로 음식을 익혀 먹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를 환국(桓國)이라 이르고, 이 환인을 천제(天帝) 환인씨(桓因氏), 또는 안파견(安巴堅)이라 칭하였다. 환국은 7세(世)를 전했으

나, 연대는 고찰할 수가 없다.

삼성기 전 하권

옛글에 말한다. '파나류산 밑에 한임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 동쪽의 땅이다.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이니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혹은 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혹은 白多國), 사납아국,선비국(혹은 통고사국), 수밀이국이니 합해서 12국이다. 천해는 지금의 북해라 한다. 7세에 전하여 역년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안함로

안함로(安含老)는 안함(安含)은 신라 진평왕 때의 승려(578~640)로, 속성은 김씨(金氏)이고 신라 십성의 한 사람으로, 왕명을 받고 중국 수나라에 가서 불법을 배워 왔다. 저서에,《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가 있다. 성은 김씨이고, 안홍법사, 안함법사, 안함태(安含殆) 화상 등으로 불린다. 신라 십성(十聖) 가운데, 한 분이시다. 23세(601, 진평왕 23) 때, 수나라로 가서 열반에 이르는 십승(十乘)의 비법과 심오한 불교 경전과 진문(眞文)을 공부하고 5년 후, 서역의 승려들과 함께 귀국하였다. 일찍이, 세속 너머의 세계에 뜻을 두었던 안함로는, 사물에 통달하고 지혜가 밝아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오고가고 머무름을 무애 자재하게 뜻대로 하였다. 또한, 물 위를 걷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범상치 않은 신통력을 보였다고 한다.---『해동고승전』---

이로 보건대, 그는 고대 선맥(仙脈)을 계승한 도통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삼성기, 상』 서두를 통해서도, 안함로는 불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불선(儒揤仙)과 상고시대, 신교문화를 회통한 당대의 고승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선덕여왕 9년(640), 만선도량(万善道場)에서, 62세로 입 적을 하였다.

이암

이암(李?, 1297년 ~ 1364년)은 고려 말의 문신이다. 본관은 고성(固城), 호는 행촌(杏村),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원래 이름은 군해(君?), 자는 익지(翼之)이며 후에 이름을 암(?), 자를 고운(古雲)으로 고쳤다. 판밀직사사 감찰대부(判密直司事監察大夫)인 존비(尊庇)의 손자이며, 철원군(鐵原君) 우(瑀)의 아들이다. 도촌(桃村) 이교(李嶠)가 그의 동생이다. 이들의 가문은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누대공신재상지종(累代功臣宰相之種) 문벌가였으며, 조선 개창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후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李原)을 비롯하여 조선초기와 조선중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관과 무관을 배출하면서 조선의 명족이 되었다.

이암은 고려 말기 최고의 명필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그의 글씨는 조맹부의 송설체에 견줄만하다고 했고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유려하고 힘있는 글씨가 조맹부를 능가한다고 평가한다. 근래에 일제 강점기 반출 문화제 환수 등 사회적 관심에 따라 그의 글씨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암은 서예가로서뿐만 아니라 시와 그림에도 뛰어났다.

* 유적: 서론의 카터 이홍규, 박창법 교수, 카터 코벨, 김희용씨 기록 참조

해설

부도지를 위서가 아니고 믿을 수 있는 문헌이라고 확신하게 하는 부분은 장수, 하늘에서도 거주한 것, 신통력, 홍수 등이다. 특히 지유

를 먹었다는 점은 생명은 건드리지 않고 떨어진 과일만 먹어 자연을 사랑했다는 점은 성경의 원죄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신라 고승이 쓴 삼성기전 상에는 창시자 효과(후기)의 장소가 시베리아이고 홀로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창조주를 명시했음이 현대의 과학적인 결과와 일치한다. 한국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는 고려의 학자 이암이 쓴 삼성기전 하에서 한국의 건국을 엣킨슨의 5만 년 전보다 더 오랜 6만3천년으로 기록한 점이 흥미롭다. 삼성기전 하는 수만 년 동안 언어가 전파된 범위(흑, 백, 황, 청 인종의 분리)와 아리안의 이동, 4대강 문명, 중국어와 인도 유로어의 기원이 한국에서 시작된 점을 시사한다. 그래서 부도지와 환단고기 삼성기는 서양과학에 물든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위서가 아니고 조상의 진실이고 양심으로 진서이므로 존중받아야 한다.

다. 과학으로 본 한인시대 분석

* 부도지,한단고기가 진서(眞書)라는 전제아래 보면 아래와 같다

1) 개요

- 년대 및 기간: 한단고기 삼성기에 의거 3.301년 또는 63.182년

- 지역과 범위: 천해 동쪽 동서 2만리(만리 장성의 두 배), 남북 5만리(북극에서 적도까지), 12연방으로 구성

- 시대 구분 및 방법:

63.182년의 경우는 언어시대로 홍수 이전 창시자 효과를 거쳐 홍수까지 고대 역사가 인류 최초의 농경 집단에게 언어를 위주로 하여 표식(숫자, 부적 등)과 함께 전승 된 것이고 3.301년의 경우는 홍수 이후 농경문명 시대에 제사장들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삼한 시대라 고 통틀어 부른 이름이다.

- 관련되는 조상들의 기록 요약: 한단고기 삼성기 전 상하권에서

* 원동중: 나만과 아만, 아이사타, 구한, 부유, 인구 많아, 천산, 장수, 무병, 군대 없음, 추위 막음, 역대 7대, 파나류산, 천해 동쪽, 남북5만리 동서2만리, 12연방

* 안함로: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 시베리야 하늘, 한 신, 빛, 장수, 쾌락, 지극한 기, 무형, 전지 전능, 600명이 모여서(일단의 지혜로운 가족 단위로 보임) 시작, 흑수 백산, 천계, 불을 사용, 국명 한국, 역대 7대

* 원동중: 이조 건립에 반대한 고려 말 저술가

* 안함로: 신라 진평왕 때의 승려(578~640)로 속성은 김씨(金氏)이고 신라 십성의 한 사람으로, 왕명을 받고 중국 수나라에 가서 불법을 배워 왔다. 저서에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가 있다.

* 환단고기 삼성기 전 하권

옛글에 말한다. '파나류산 밑에 한임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 동쪽의 땅이다.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그 땅이 넓어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이니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혹은 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혹은 白多國), 사납아국,

선비국(혹은 통고사국), 수밀이국이니 합해서 12국이다. 천해는 지금의 북해라 한다. 7세에 전하여 역년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위의 기록으로 추론할 수 있는 한인의 나라는 다음과 같다.

- 한국의 범위: 파미르(파가 많이 나는 높은 곳이라는 뜻)고원 동쪽 바이칼 호수 동쪽지역의 남북 5 만리 동서 오 만리의 넓은 지역을 의미한다.

- 한국의 구성: 12국으로 창시자 효과와 동시 폭발한 삼신 언어가 전파되어 자연신 종교로 새로운 삶의 방법이 전체 아시아 네안데르탈인에게 전파된 범위로 유럽, 인도와 같은 바이칼 외의 지역에서는 삼신 언어가 전파되기 전까지 식인을 계속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예: 영국의 드루이드교, 카니발, 할로윈 데이)

- 한국이 유지된 기간: 한단고기 삼성기 전 하권에 3.301년과 63.182년으로 두 가지 기간을 제시하고 있다.

둘 다 홍수 이후(BC 8천 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3.301년은 홍수 이후에 최초로 나타난 왕조의 존속 기간을 말하고 역대가 7세로 한 왕이 500년 이상 통치하였는데 7개 왕조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성경에서 주장한 당시 인간의 수명, 홍수 이전 요하 유적 인골의 700년-1천 년의 인간 수명과 일치하므로 7세가 정확한 기록이다.

63.182년은 네안데르탈인들의 바이칼 창시자 효과 발생 시기와 일치하므로 이 책에서는 63.182년을 주장한다.

* 그 이유는 첫째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에도 필요에 의거 숫자가 사용되어 63.182년이라는 숫자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반복되는 밤과 낮 과 계절 및 이를 토대로 하여 설정한 일년 365 일이라는 개념과 사냥에 소요되는 인원수를 정하고 많은 가족에게 식량을 나누는데 필요한 숫자의 개념은 명사와 동사 이전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이었다.

필자는 환단고기에서 한님의 나라 63.182년 기록 자체가 바이칼 언어 폭발 이후에 만 단위까지 수의 개념이 설정되었다는 증거로 본다.

역대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B.C.7199)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任)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각 왕의 특징

- 안파견 한인: 홍수 전부터 홍수가 끝났을 때까지 안전한 산 위에서 살아오면서 호모사피엔스의 전통을 이어온 제사 계급의 대표로 보인다.

땅을 굳건히 했다는 것은 강우나 홍수로부터 바이칼 지역을 복원한 것으로 판단한다.

- 혁서 한인: 이 때에 삼신 제사의 중심이 안전을 위해 티벳, 부탄, 신강, 청해 등 산악으로 옮겨간 듯하다

- 고시리 한인: 과거 홍수 전의 전통을 회복하려고 노력한 왕으로 여성

- 주우양 한인 : 가장 멀리 이동한 왕으로 한문화 된 순수 우리 말로 보면 비가 오는 양자강이라는 느낌이 들므로 양자강 남쪽을 개척한 왕으로 간주한다.

- 석제임 한인: 중원의 치수와 많은 사람들의 계도를 사명으로 한 왕이다.

- 구을리 한인: 여성으로 산악을 중심으로 제사에 치중한 왕이다

- 지위리 한인: 여성으로 과거와 현재, 산악과 평야 인들을 서로 화합시키는데 애쓴 왕이다.

2) 12연방의 이름과 위치 분석

비리국: 고대 한국어 "버린다"에서 온 말로 어두운 서쪽에 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이란 즉, 페르시아이다,

양운국: 구름을 만드는 지역의 의미로 현재의 양자강 지역이다.

구막한국: 넓은 바이칼 북쪽 시베리아에 아홉 개의 많은 집단으로 흩어져 사는 사람들

구다천국: 아홉 개나 되는 많은 하늘을 가진 나라로 산이 많은 흥안령 남북 산악 지역의 집단

일군국: 하나의 무리라는 뜻으로 섬에 사는 일본인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황하 및 양지강 문명 이전(기원전 3-4천 년) 전에 양자강 남쪽 지역에 살던 토착 네안데르탈인과 해안으로 이동한 사람들 및, 북뽁 산악을 따라 남하한 묘족이 혼합되어 있었으므로 12 연방의

분류 및 명명은 한문이 생긴 이후로 보이고 그 이전에는 말로 전승된 것이다.

우루국(혹은 필나국), 필리핀 지역으로 고대에는 많은 부분이 아시

아 대륙에 연결되어 있었다.

객현한국: 초기 한문의 의미로 해석 가능하며 이동해 온 현자(제사 집단)이 세운 한국으로 지금의 요동 지역이며 용산 문명의 발상지로 보인다

구모액국: 많은 어머니들이 있는 나라라는 의미로 실량 염려가 없으며 한님의 나라 발상지인 바이칼 지역으로 보인다

매구여국(혹은 白多國): 매 국가가 한국과 같고 한국을 추종하는 많

은 토착민의 나라로 황하 지역으로 판단된다.

사납아국,: 서남아시아라는 발음이 와전 된 이름으로 서남붨에 있는 나라인 인도를 지칭한다.

선비국(혹은 통고사국): 조선의 종의 나라 또는 조선의 종들이 사는 나라라는 뜻으로 바이칼 주면 농민들의 나라로 후에 중국의 주류를 이룬 이씨들의 근거지로 노예였기 때문에 한국에 반감이 있다.

수밀이국: "소머리:라는 말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소를 이용하여 맨 처음 농사를 지은 수메르(메소포타미아)지역으로 보인다.

다. 이 시기에 관한 조상들의 기록을 재음미해본다.

* 부도지 第5章 오미의 난

이 장에는 사방으로 흩어진 호모사피엔스와 서쪽으로 간 사람들이 상한 포도를 먹고 인성을 상실하여 식인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성경 함의 기록의 근원)

* 부도지 第九章

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洲)(하천 가를 초기 한자로 표현한 것)에 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모두 여성으로 모계 사회의 표현으로 보임)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잦은 홍수를 지칭한 것)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밀물 썰물 현상?)과 판(지진 ?)의 현상이 있었다.

* 부도지

신라시대 <징심록>의 원저자인 박제상의 책이 필사본으로 영해 박씨 문중에 비서로 전해 내려오다가 해방이후 이북에서 피난을 온 후손 박금씨가 피난시 북에 두고 온 것을 울산의 피난소에서 기억을 되살려 일부분을 써낸 것으로 징심록 15지 중 1지인 <부도지>와 <소부도지>, 김시습의 <징심록 추기>, 박금의 징심록에 덧붙인 뒷날의 기록 등이 포함된 책이다.

신라 박재상의 이 부도지에 의하면 최초 인류의 시대는 여성 상위 시대였고 여자가 제사장이었다. 최초로 식량 문제로 인종의 분리가 일어났고 일부 인간이 포도를 따먹으면서 정신이 혼미해 졌고 서로잡아먹어 대 이동이 시작되었다고 하나(제6장 오미의 난) 필자의 생각에는 이때 창시자 효과가 일어났고 일부 남성우위 집단이 서쪽, 동쪽,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 해 서쪽은 아리안 족(기원전 2-3만 년 전 인도 북부 스텝지역 거주), 동쪽은 아메리카 인디언, 남쪽은 중국 등 동남아시아인 등으로 흩어졌다고 본다. 이들은 모두 파미르, 천산 알타이 지역에서 얻은 하늘제사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명체를 연결되어 있다는 샤머니즘 언어를 소유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 중 백인의 형성에 영향을 준 아리안은 기원 전 1만 2천 년 경부터 인도로 들어가 샤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바라문교의 계급 사회를 만들었고 산스크립트어, 인도 유로어를 만들었

으며 힌두교를 만들었는데 불교는 초기 제사장 계급이 만든 바라문의 계급사회에서 탈출하기 위한 토착민의 반응으로 생겨났다. 그래서 석가에 대한 개인 숭배와 마음수련을 빼면 불교는 샤머니즘과 똑 같다.

 

* 삼성기전 상편(신라, 승려 안함로 지음)

吾桓建國最古有一神在斯白力之天爲獨化之神光明照宇宙權化生万物長生久視恒得決樂乘遊至氣妙契自然無形而見無爲而作無言而行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於是桓因亦以監?居于天界?石發火始敎熱食謂之桓國是謂天帝桓因氏亦睨安巴堅也炩七世年代不可考也

우리 한(桓)1)의 건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일신(一神)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오래 살면서<長生久視> 늘 쾌락을 즐겼으니<恒得快樂> 지극한 기를 타고 노닐고 <乘遊至氣>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妙契自然> 모습 없이 볼 수 있고<無形而見> 행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無爲而作> 말없으면서 다 행하였다.<無言而行> 어느 날인가 동녀동남(童女童男) 800이 흑수(黑水)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한인(桓因)은 또한 감군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 한인씨(天帝 桓因氏) 또는 안파견(安巴堅)이라 하며, 7세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3) 유적이 증거하는 한인 조선

가) 1만 3천 년 전 철기 문명 흑피옥

“흑피옥의 연대 측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고고학은 물론 세계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흑피옥의 최초 발견자인 김희용씨(전남 광주)의 의뢰로 정건재 교수(전남 과학대) 가 지난 2008년1월 9일 제시한 ‘흑피옥(黑皮玉; 검은 칠 옥)’의 연대가 1만4000여 년 전이라는 추정 결론을 냈다.

김씨와 

함께 흑피옥을 연구해온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좌측 사진)는 2008년 1월16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흑피옥을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AMS) 연구센터에 제공, 흑피옥에 사용된 염료의 성분 분석과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앞서 정 교수가 흑피옥 1점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1만4300년 전후 60년으로 나오자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있었다.

이 같은 의심과 의혹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서울 대 측에 검사를 맡긴 것이다. 소장 중인 흑피옥 20여점 가운데 9점을 AMS연구센터에 전달한 우 교수는 “홍산문화(紅山文化; BC 4500~3000)에서 정식으로 발굴된 것과 모양이 똑같은 흑피옥 7점을 포함한 총 9점”이라며 “염료의 성분을 우선 분석한 다음 연대를 측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AMS연구센터장인 윤민영 교수(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연구센터장(연구교수)가 참여하는 측정 결과도 마찬 가지였다. 우 교수는 “홍산문화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은 이번 흑피옥이 1만4300년 전후의 연대로 드러날 경우 ‘내몽골 흑피옥 문명’과 요서(遼西) 지역 홍산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하문명(遼河文明)이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전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똑같은 모양의 흑피옥이 여러 점 나오기 때문이다. 또 “1만4000~6500년 사이로 나타난다면 흑피옥 문화가 지속돼왔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셈”이라면서 “ 모양이 똑같은 옥기가 나오는 흑피옥 시대(1만4300여 년 전)와 홍산문화(6500~5000년

전) 사이의 공백기 약 8000년을 이어줄 수 있는 물증”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산문화 옥기와 똑같은 흑피옥의 연대가 홍산문화와 같은 시대로 확인된다면, 흑피옥 문화가 홍산문화로까지 계속 이어졌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요하문명은 황하(黃河) 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졌고, 요하 명으로 명명됐으며, 요하문명 지역에서는 중원지역에 없는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비파형동검 등 만주일대-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계통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요하문명을 주도한 세력은 우리 민족의 선조와도 곧바로 연결되는 사람들이다. 즉, 흑피옥 문화가 요하문명 지역으로 시간차를 두고 계승됐다면 ‘흑피옥문화→요하문명·홍산문화→한반도’로 흐르는 이동 경로 설정도 가능해진다. 연대가 확인되면 세계 최초·최고 문명의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동시에 요서지역 홍산문화 선조들과의 직접적인 계승관계, 요하문명을 주도한 우리 민족 선조와의 직접적인 연결 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구석기 시대는 문명에 도달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기존 학설도 뒤집힌다. 최초의 인류문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 교수는 “김씨가 가지고 있는 흑피옥만 수 백여 점이다. 이번 서울대 조사결과를 토대로 더욱 광범위하게 연대를 측정하겠다.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흑피옥 관련 논문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던 김씨는 “흑피옥이 발견된 주변에는 신전, 벽돌 식 무덤 등 고대문명의 흔적이 역력했다”며 “인류가 직립보행하기 전 반 직립 상태의 고대문명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이 발견으로 종래의 4대 문명(BC 3.000-5000)도

중국의 고대 문명도 모두 고조선 문명보다 만여 년 이후임이 확인되고 지금 내이멍구(내몽고) 자치구의 고비사막이 마지막 빙하기 이후 초원이었으며 그곳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살아남아 이집트나 크로마뇽인, 또는 중국인, 중앙아시아인들 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문명을 이루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고조선 인들이 4대 강 문명보다 훨씬 이전의 문명임이 증명되었고 지금까지의 4대 문명론이 무색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정권은 이 흑피옥이 발견된 요하 문명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 흑피옥의 흑피의 성분

우실하교수가 2008년 1월 16일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연구센터에 성분분석 및 연대측정을 의뢰한 9점 흑피옥의 성분분석표를 보면 약 23종의 성분이 섞여있는데 중국학자들이 분석한 결과는 약 35종의 각종 중금속이 표피에 섞여 있다.

이 흑피옥의 발견으로 고교 교과서의 신편 한국사 편성에서 고대를 02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03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로 도구 재료를 통해 역사 발전 단계를 구분한 서양의 이론은 의미가 없다.

2) 한인의 나라의 또 다른 흔적 : 카터 코벨의 보고 유네스코는 최근 문명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발표했는데 존 카터 코벨(John Carter Covell·1910∼1996)과 존 엘렌 코벨(John Alan Covell. 1916 - 1990) 카터 코벨은 미국 태생의 동양미술 사학자로 서양인으로는 맨 처음 일본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캘리포

니아 주립대와 하와이 주립 대에서 동양 미술사를 가르쳤던 인물이다. 

코벨은 1978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일고대사, 한국미술, 불교, 도자기 등에 대한 1400여 편의 칼럼을 썼고,‘한국이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 ‘한국문화의 뿌리’ 등 5권의 한국문화 관련 책을 냈다. 이 책을 근거로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할 수 있는 증거는 요동성 근방 만주 지역에서 대량의 곡식 탄이 발견됨으로 시작되었다. DNA검사결과 자연 산이 아닌 교배종이란 것이 판명됨으로서 농사 기술이 첨단 과학을 이룩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군량미로 생각되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한 전쟁이 있었던 듯 하다는 의견 1만 7천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의 DNA 검사 결과 평균 수명 1000세에 달한다고 한다. 이 결과는 성경의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의 수명과 환인 조선 7대 3301년 재위 기간 400-500년 기록이 사실과 일치한다. 즉 제사장 제도로 유지되었던 유일한 환국 나라 역사를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것이다. 사람이 하늘이라 믿는 신앙은 사람을 계급으로 지배할 수 없는 사상임이 드러난다.

이 시기에 한반도는과연 어떤 상황이었을까?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것을 살펴보자. 우선 홍수를 피해 산 위에서 살던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주요 강변과 해변으로 내려와 수렵과 체취를 시작했을 것이다. 남성집단이 갈라진 이후 전 한반도에도 다른 지역

처럼 샤먼이 있었으나 중앙의 통제는 미미하였고 한인시대 기록으로 미루어 선비국(鮮卑國)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 아시아 남북5만리 동서 2만리가 불모지였던 시대에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호모엘렉투스를 포함한 네안데르탈인과 바이칼에서 진화한 호모사피엔스가 섞여 있었고 모계사회와 부계 사회도 섞여 있었으며 그 수는 5만 명 내외로 보인다. 이들이 한반도 지역 인간의 최초 조상이다. 

이들은 지금 우리들의 원래 조상이 아니며 이 원주민들의 피가 북쪽에서 이동해온 주류 즉, 한인 시대 바이칼 인들인 한국(韓國)인들의 피와 섞여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필자의 생각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이름이 동서 2만리 남북 오만 리 시원 민족의 이름인 한국이라고 가진 것이 그 후에 중국인들에게 밀려 황해 연안에서 가졌던 이름인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을 갖지 않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라. 한인 시대에 일어난 중요한 일: 아리안(백소씨)의 서진

아리안은 오늘날 서양인의 혼혈 선조이다. 게르만, 앵글로색슨, 나아가서 슬라브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지배한 서양인의 선조가 바로 이

아리안이었는데 이들은 15만 년 전부터 유럽에 정착한 토착한 네안데르탈인과 서진하여 인도에 정착한 인도 조선인의 혼혈로 일반적으로 아리안 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아리안이 서양인의 선조라는 가설을 정형화시킨 이는 비교 종교학자였던 막스 뮐러(Max Muller)였다. 그는 고대 인도의 언어였던 산스크리트(Sanskrit)가 영어의 어원임을 입증하였다. 종래 그리스(Greek), 라틴 등의 어원에 대한 연원을 밝힌 셈이다. 실제로 고대 인도의 최고신인 천신은 드야우스(Dyaus)라고 한다. 그리스의 제일신인 제우스(Jeus)와 동의어이다. 즉, 그들은 동일한 민족이었으나, 신에 대한 견해의 차이 등으로 말미암아 둘로 나뉘게 되었다. 그 일파는 중동,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갔고, 또 다른 일파는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대륙으로 침입해 온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아리안은 피부가 희고 코가 높으며, 키가 큰 골격이다. 인도의 원주민인 드라비다 인과의 혼혈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전형적 인도인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현재 쓰고 있는 영어라는 문자에서는 놀랄 만큼 많은 산스크리트적 영향을 들 수 있다. 언어학자들은 이제 산스크리트가 영어의 어원이라는 사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고 우리의 언어 한국어는 시원어로 이 산스크리트어어 어휘와 지금까지 약 20여만 개가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 인도에 침입한 아리안들은 처음에는 펀자브(Punjab) 지역에 정착하다가 서서히 그 활동 무대를 갠지스 강 유역으로 옮긴 3)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천산에서 가지고 온 철기 농기구를 이용하여 농경지 정착 생활을 영위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인도의 원주민들은 여러 부족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드라비다 인(Dravidian)

등 몇몇 종족만이 확인될 따름이다. 침략자 아리안들은 원주민과 격렬한 전쟁에서 손쉽게 승리하였다. 그 까닭은, 첫째,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전쟁에 능하다는 점, 둘째, 문명 발달 단계에 있어서 원주민들이 청동기 문명 단계에 머무른 데 반해, 그들은 이미 철기 문명에 접어들었다는 점, 셋째, 월등한 체력 조건 등을 꼽을 수 있다. 전쟁에서 이긴 정복 민족으로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들은 원주민을 노예화시킨다. 또,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선별적 우월 의식을 강하게 내보였다. 그 우월 의식의 사회화가 바로 카스트(caste) 제도이다.

4) 한인 시대의 다른 특징

가) 인구 조절 능력

인구조절기능은 자연의 특권이다 인간애게 필요한 만큼 식물을 베풀어주고 자연의 섭리대로 탄생과 죽음을 계속하면 되도록 우주와 지구가 진화하였다. 여기에 맞서서 자식을 많이 낳아 복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거나 자연을 개발해야 한다는 종교(기독교)적, 문명적인 생각은 인구 조절이 불가능해 져서 지구는 결국 사람들로 꽉 차고 나중에는 이 사람들로 인해 파괴될 것이다. 2017년 현재 지구상 적정인구는 7억인데 비해 70억에 달하는 인구가 이를 증거한다.

나) 수명: 1천 세 이상

만약 인간이 자연에 완전히 최적화된 삶을 영위한다면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이루고 모든 기도가 응답되고 영원히 살게될 것이다. 이 당시의 인간 삶의 상황을 상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네안데르탈인들이 열매의 수확조건인 햇빛을 따라 온 것을 설명한다.

"오래오래 살면서<長生久視> 늘 쾌락을 즐겼으니<恒得快樂> 지극한 기를 타고 노닐고 <乘遊至氣>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妙契自然> 모습 없이 볼 수 있고<無形而見> 행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無爲而作> 말없으면서 다 행하였다.<無言而行>"

는 당시 인간의 수명이 천 년 이상이었음을 증거 한다. 이 사실은 1931-45년 간 일본이 요동을 점령하면서 요동성 인근에서 파낸 조상들의 인골에 대한 탄소 연대측정을 일본 국립 미토 대학에서 실시한 결과 판명되었다. 불행하게도 이 유전자의 이름을 일본의 rn국립대학 이름인 미토를 붙이고 있다. 세계의 유전학계는 지구 중력의 증가가 인간 단명의 원인이라고 알고 있으나 인간 수명 연장과 관련하여서는 "오래 오래 살면서" 라는 말에 유의해야 한다.

다) 가족 중심 집단

샤머니즘의 기본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생리적인 것으로 인간집단의 구성과 관련하여 이러한 구성은 서양식의 인간집단 구성단위인 사회가 아닌 가족이다. 핏줄도, 예의, 염치도 없는 잡종끼리 무슨 이익으로 모이고(게쉘 사프트), 공동체로 모이(게만샤프트)는 것이 아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모인 것이 가족이다. 그 다음이 일가친척이고 고향이고 민족이다. 2차 대전 이후 한국전쟁, 월

남전쟁, 아프칸 전쟁을 겪고 쏘련이 망한 후에야 백인들은 비로소 "우리가 동방의 민족주의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고 고백하였다. 가족제도의 반대는 사회주의인데 모든 인간이 문제는 사회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집단이다. 생명도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인본주의가 북한의 공산주의이다. 여기에 돈과 계급이 추가된 것이 바로 유대인과 영국이 만든 서구식 사회로 자본주의이다.

서양의 사회가 7천년 유지되고 있다면 우리의 가족주의는 그 열 배인 7만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서구인들과 북한의 사회가 고향이 없는 반면 우리의 가족주의는 고향이 있고 나라가 있다. 그래서 돈과 계급이 없는 통일은 반드시 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라) 시간 개념 결정

인류가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시간 개념은 원래 천산에서 수만 년에 걸쳐 생겨났다. 일년 동안 하늘과 자연을 관측하고 기록한 이후에 생긴 것이다.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필수적인 행동이다. 4계절도 그렇다. 인간의 길흉화복이 모두 하늘의 이치대로 결정된다고 생각했으니 제사장 집단들은 수천 대에 걸쳐 평생동안 하늘을 관측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명을 정하고 생일을 정했다. 진짜 북쪽이 북극성이며 이 북쪽도 북두칠성을 따라 2만5천년간 이동한다는 점을 밝혀내기 까지는 수만 년이 걸렸다. 그래서 천부경에서는 一始無始一이라고 했다. 서양의 시간 개념은 우리의 10간 12지에서 일주일 개념도 우리의 음양 오행에서 나왔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운명이 사주 팔자에 의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회교도들의 인샬라는 자연

순응이기보다는 힘과 돈에 대한 순응으로 보인다.

마) 여성 우위 집단

당시의 제사장은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남성우위나 수의 개념이 집단을 지배하지도 않아 자연스러운 생명 탄생의 모체인 여성을 우위로 삼았고 여성 우위의 집단이었다. 삼성기 전 하편에 기록된 7세 한인의 이름 중 "리"자가 붙은 이름은 여성으로 보인다. 예: 지위리 한인, 그을리 한인 등 한웅과 단군이 서자로 불리는 것도 모계 사회 까닭으로 보인다.

5) 기호, 문자, 그림 등 통신 수단의 개발

한인 시대의 통산수단 중 가장 빈번한 것은 물론 인간끼리 소통 수단인 언어가 주류를 이루겠지만 그 다음 중요한 것은 하늘과의 소통과 자연과의 소통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기본 소통수단인 언어 외에 기호를 비롯하여 숫자와 그림이 나타났다. 기호는 숫자를 표시하는 기호가 먼저고 그 다음이 음운 문자, 상형문자 순으로 본다. 흑피옥에 나타난 표시로 볼 때 아라안은 저들이 좋아한 여성의 몸과 가축의 모양을 본 딴 문자(산스크립트문자, 영어 알파벳)를 만들어 가져갔고 미개한 화하족들은 상형문자를, 제사장들인 조선인들은 음운 문자로 혀의 모양을 본 딴 가림토를 만든 것 같다. 부적은 부도의 글로 인간 이외의 존재와의 대화에 쓰였고, 아시아 고대인 동굴 유적에 있는 그림을 통해 내세를 소원하기도 했다. 반면에 서양의 돌굴벽화(예 프랑스 남부 베제르 계곡의 크로마뇽 동굴)의 인육을 먹는 그림은 인육을 많이 먹게 해달라는 동물적 염원의 표현으로 보인다.

6) 자연사랑. 인간사랑

조상들의 문헌과 지역 내 유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상들의 삶의 핵심은 생명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은 말과 행동의 기준 즉, 양심이 첫째 조건이 되었고 이 양심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환경을 사랑하는 것 즉 창조주로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살아있는 열매는 먹지 않고 지유(떨어진 열매)만 먹었다. 여기서 원죄, 즉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의 근거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돌을 깨지 않았고 집과 무덤도 쓰러진 나무만 사용했다. 구, 신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 시대 구분은 백인들 것이다. 기독교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나 한국인은 홍익인간이 국시이다. 서양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도 재검토해야 한다..

7) 선계. 천국과 지옥, 도통한 사람, 제사장

홍수이전 지구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여 진화한 제사 집단이 있었다. 중력의 영향을 안 받고 하늘 위(천국)에 또는 산 위에 살며(신선) 의식주의 제한 없이 기도하는 데로 또는 자연의 의지대로 언행 했다. 후세 종교에서 발견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인식의 기원이다.

라. 바이칼에서의 창시자 효과

1) 개요

많은 서양 학자들은 5-7만 년 전 이들 네안데르탈인들에게는 아프리카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약 5만 년 전에 현생인류가 행동하는 방식에 갑작스러우면서도 확실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즉, 인류가 동굴벽화와 뼈로 만든 공예품을 창조하고, 과거에 비해 크게 진화한 사냥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이러한 갑작스런 창조활동 발전이 추상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 복잡한 언어의 등장이라는 혁신에 힘입어 나타났다는 것이다. 뉴질랜드대 앳킨슨 박사의 연구는 이와 같은 관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음운, 자모음 및 음조와 같은 명료한 언어단위, 그리고 “창시자효과”라고 알려진 인류유전학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창시자효과에 따르면 큰 집단에서 아주 작은 개체수가 떨어져 나갔을 때, 분리된 집단에서 유전변이 및 복잡성의 점진적 손실이 일어난다고 한다. 필자는 앳킨슨 박사는 음운에서 이런 창시자 효과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낸다면 현대 구어의사소통이 한 대륙에서 시작된 후 다른 곳으로 확장되었다는 이론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추정했고 이 프랑스계 뉴질랜드 백인이 붙인 창시자라는 이름을 근거로 창조주 하나님 즉 창세기에 기록된 인류의 말이 시작된 시기 즉 태초를 생각하게 되었다.

 

* 크웬틴 엣킨슨(Quentin Atkinson)

뉴질랜드대 교수. 2011년 4웡 그는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음소 다양성이 증명하는 창시자 효과의 연쇄와 언어의 아프리카 기원설(Phonemic Diversity Supports a Serial Founder Effect Model of Language Expansion from Africa)’이라는 논문을 통해 약 5만 년 전에 현생인류가 행동하는 방식에 갑작스러우면서도 확실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인류가 동굴벽화와 뼈로 만든 공예품을 창조하고, 과거에 비해 크게 진화한 사냥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러한 갑작스런 창조활동 발전이 추상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 복잡한 언어의 등장이라는 혁신에 힘입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또 필자는 엣킨슨의 창조자 효과 가설이 앞 서 유전자 이동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산과 바이칼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확신한다. 일부 서양 학자들은 언어의 분화는 중동에서 바벨탑 때문이라는 성경의 가설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지만 필자는 한단고기 전 하권 삼성기의 기록대로 63.182년(유전자 이동도의 시기 보다 약 1만년이 앞선다)전에 창시자 효과가 일어났으며 그 장소가 네안데르탈인이 동진을 멈추고 정착한 바이칼 호수 일대라고 확신한다.

2). 바이칼 창시자 효과의 근거

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유라시아 대륙에서 해를 따라 동진 하던 네안데르탈인이 따뜻한 남쪽으로는 히말라야산맥에 막혀 못 가고 북쪽으로는 추위에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 물이 많고 따뜻한 바

이칼 호수를 만났다는 지리적, 환경 적 이유

나) 쿠엔틴 엣킨슨이 이 현상에 성경 창세기에서 유대인들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기록이 암시하는 창시자(창조자) 효과라는 이름을 붙인 점

* 유대인들의 유래

고대 한국의 분파인 수밀이(수메르)계 에벨을 조상으로 하는 민족으로 기원 전 2.600년 경 시리아 인근 에볼라에서 도시를 만들어 동서 교역을 담당하던 민족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고 그래서 이 아람어가 동서간의 교역 언어가 되었다. 이들은 아브라함 때 아라비아 반도의 유프라데스 강 하구, 갈데아 우르에 살았다

다) 전술한 이홍규 교수의 당뇨병 치료를 위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지도에도 네안데르탈인이 바이칼 호수에서 사방으로 확산된 표현이

나타난다.

라) 한단고기 전 하권 삼성기의 기록대로 63.182년 전에 시베리아 하늘 아래에 가장 먼저 한국이 건설되었다는 기록

마) 송성대 교수(제주대)의 "문화 지리학 강의"에서 인류가 아시아에서 동진 하다가 역진을 했다는 기록(서울 법문사, 1994 p 156)

3) 바이칼 지역에서 일어난 일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언어가 아프리카 시절 8천여 개에서 수 십 배로 폭발하였다. 이곳에서 최초의 인류 공용 언어가 생긴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러시아의 언어학자 세르게이 스타로스틴 교수는 우랄 알타이어가 중국어의 모어(母語)라고 주장하였고 구한말 선교

사로 한국어 연구 전문가인 호머 할버트는 한국어와 인도어(타밀어, 드라비다어, 산스크립트어)는 그 어원이 같다고 주장했다. 바이칼에서 언어가 폭발했다고 함은 그 이전에 수 만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집단 생활이 시작되었고 가족생활과 자연에 대한 적응이 시작되었으며 인간은 자연과 인간 등 환경을 알아야 산다는 데서 아리랑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고 알아야 사람이 된다는 인식이생기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인식은 사람은 당시 인간을 둘러싼 환경 즉 자연과 동류 인간을 알고 환경의 법칙에 적응해야하며 이들을 사랑해야 산다고 하는 인식으로 발전했고 동류에게 언어라는 형식으로 전 지구상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인식이 샤머니즘, 즉 삼한이즘이고 그 전에 하나의 언어라는 뜻의 한이며 이 샤머니즘이 샤머나즘이고 샤머니즘을 소유한 인류가 바로 최초의 호모사피엔스이다. 지금 인류의 하나님은 바로 이 자연의 창조주 알에 대한 샤머니즘에서 나온 것이다.

* 세르게이 스타로스틴

세르게이 아나톨례비치 스타로스틴(러시아어: ܡܵ݀ܳܵ?ܹ ܐ݂ܾܽܰ?ܻ݌ܸܵܲ݇ ܡ݂ܰ?ܾ݂ܸ݀݁ܽ, 1953년 3월 24일 ~ 2005년 9월 30일)은 러시아의 역사언어학자이다. 스타로스틴은 조어(祖語)에 대한 연구, 특히 알타이어족과 드네카프카스어족 가설에 대한 연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키란티 조어, 티베트버마 조어, 예니세이 조어, 북카프카스 조어, 알타이 조어를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 그의 아들 게오르기 스타로스틴도 언어학자이다.

* 호머 할버트

호머 베잘렐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년 1월 26일 ~ 1949년 8월 5일)는 미국의 감리교회 선교사이자, 육영공원에 교사로 근무하여 영어를 가르쳤던 교육인으로 한국의 항일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그의 한국어 이름은 헐벗 또는 흘법(訖法), 할보(轄甫)이었다. 그는 고종 황제의 최측근 보필 역할 및 자문 역할을 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을 해왔다. 고종 황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외국인이었고, 한국의 분리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였으며, 1907년 헤이그 비밀밀사에 적극 지원하여 밀사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지지했다. 그는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매우 유창하게 하였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대한제국 시대에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어니스트 베델(영국 출신)과 더불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마. 5만년 아리랑 세계

1) 아리랑의 의미

아리랑은 최초의 호모사피엔스인 우리 한국이의 조상들이 우주를 포함한 자연에 대해 가지게 된 생각으로 인간은 우선 알아야한다는 데서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 동사 어휘 "알다(안다)"와 또 인간이 모든 부분이 알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자연에서 나왔다는 뜻이 합성된 가장 기본적인 단어였다. 그래서 인간의 기본 조건은 아는 것이고 그 다음 모든 자연은 살아있고 자연은 해치면 인간에게 재앙이 온다는 생각이다. 이 아리랑이라는 단어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최초 호모사피엔스 인식의 원형으로 수만 년 간 인간의 언어 발전의 기준이 되어왔으며 현생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생각의 근본이 되어왔다. 인간만 가지고 있는 언어를 통한 생각, 양심, 정서, 웃음, 가족 애, 자연관찰, 자연에 대한 적응방법, 육아. 집단 생활 방법 등 문명이전의 모든 인간성은 이 아리랑에서 유래되었다. 한국인은 동류 애의 발로로 최초언어인 창조주 인식을 전세계에 전파했다는 것이 앞서 이동도 C와 D 분산의 의미이다 원조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 개념은 아리랑 노래를 통해 수만 년 동안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2). 언어 "알다"라는 의미를 가진 아리랑

가) 언어(아는 것)의 시초

초기 네안데르탈인에게 언어가 있었느냐? 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은 없다. 대체로 아프리카에서 북상할 때 다른 영장류와 비슷한 수준, 즉, 의식주, 생식, 가족 활동에 필요한 숫자를 포함하여 8천여 개의 어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대다수 동서양 학자들이 주장하는 정설이다.

나) 언어(아는 것)의 발전

여기서 말하는 언어의 발전은 8천여 개라는 어휘 수가 뉴질렌드 진화 심리학자인 쿠엔틴 엣킨슨 교수가 주장한 창시자 효과가 나타나 수백, 수천 배로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가설은 앞장의 인류이동도(14~16p)가 바이칼 지역임을 함께 뒷받침하고 있어 더욱 확실하다.

다) 언어(아는 것)의 전파

바이칼에서 한국인이 최초 언어를 사용하고 이를 전 세계에 전파한 증거는 첫째. 이홍규 교수의 미토콘드리아유전자의 이동 방향이 바이칼에서 사방으로 분산된 것 둘째. 우리 민족의 유전자 주류가 북방 바이칼에서 한반도로 왔다는 이홍규 교수의 주장 셋째 러시아 언어학자의 우랄알타이어가 중국어와 인도유로어의 모체라는 주장, 넷째, 지금도 우리말에 남아있는 최초 언어로 만들어진 흔적, 등이다. 이중 문명의 기반이 된 소위 문자가 말로 전해진 이름을 그대로 표현 할 수밖에 없었던 말이 있었으니 바로 고대부터 인류가 공통적으로 같이 사용해야만 했던 세계의 주요 지명이다. 이 지명들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핵심은 바로 아리랑의 축어(縮語)라고 볼 수 있는 단어, 즉 "알"이다. 수 만 년 전부터 고대인들은 알이 전파된 주 경로를 따라 "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알"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알아야 인간이다. 2. 내 주위의 모든 인간과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즉, 살아있음을 바래야 한다. 3. 이모든 것은 창조주가 하신 일이니 알이 창조주다. 요약하면 말, 사랑, 창조주라는 의미를 가진 알이라는 핵심언어가 말이 전파된 주요경로에 그대로 지금까지 전승되어 왔다. 이 말은 4대 강 문명, 서구문명이 아무리 승자독삭(勝者獨食) 법칙으로 조작할 래야 할 수 없었던 어휘이다. 천손, 난생 설화는 후세 인간이 만든 것이다.

우선 알의 발생 지역은 빽빽한 알 즉 바이칼 ,알 사람들이 먹던 물은 알물(지금의 아무르강) 알이 제사지내던 산 알타이 알의 울타리 우랄산맥 달이 지는 쪽으로 멀리 이동해야 해서 알을 버리는 사람들의 나라 페르시아 알을 맡은 사람들의 땅 알마하타 알이 제일 많이 바뀌는 곳 아제르바이잔. 알을 기억하자 알알해, 돌로 궐(궐)을 짓는 사람들의 땅 돌궐(터키), 알을 알았다는 뜻의 알 알았산=아라랏산, 알을 벗어난 지역 알프스(매우 중요). 알이 씨가 먹기 틀린 곳 이틀란티스(인구의 반이 사생아, 가족개념이 없었고, 빗살무늬토기가 전해질 수 없었다) 아틀라스산맥(동물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여 사람되기 틀린 지역), 알의 뿌리 아프리카, 알에서 멀리가 아메리카 알에서 새가 날아가는 곳 알라스카 등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유의해야 할 곳은 알프스 너머에 있는 땅이다. 그곳은 수천 년 전(기원전으로 보임)까지 아프리카 언어 외의 언어가 없던 백인의 지역이었다. 드들의 언어인 인도 유로어의 전파는 아프리카>아시아에 이르는 육지 이동로 외에 고대인류의 또 다른 이동로인 해양이 있었는데 이 길로 알의 전파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항구이름과 지명에 알이 붙은 곳은 찾아 볼 수 없으나 반면에 한국어의 생활 용어가 동남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이들 지명에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산위 족(중국 쿤밍 산위에 사는 종족), 바다 위족(필리핀 바다 위에 사는 종족), 항구로는 보 하이(보바이 보의 배=발해=천진), 상하이(상 배 위의 배 곳) 문바이, 두바이드이 있고 주요해안지역 이름으로는 그리스=그랬어가 있다. 그리스에서는 불의 신 이름을 불로 맡았어=프로메테우스가 있고 우리처럼 "네! 네!"라고 답변한다.

3) "자연과 함께" 라는 의미인 아리랑

가) 개요

바이칼에서 형성된 인간의 창조주에 대한 인식이 생긴 갓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수 만년이 걸린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최초로 "알"이라는 명칭이 나타난 시기를 근거로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엣킨슨 박사가 창시자 효과가 나타난 시기를 기원전 5만년이라고 했고 삼성기 전 하권에 한국의 건국은 기원 전 7만 년이며 게르만족의 모체인 아리안 족이 인도 북부 초원지대에 나타난 시기가 기원전 2-3 만 년 전이라고 했으므로 알이 나타난 시기는 대략 기원전 5-6만 년 전으로 보인다. 따라서 인간이 창조주를 알게되기 까지는 바이칼 일대에서 멈춘 이후 1-2만년이 소요되었을 것이고 우리 한국의 역사 속에서는 한인 건국 시대와 창시자 효과 시대가 그 시기가 일치한다.

이 1-2만년간 있었던 일을 현재의 인간의 여러 특징을 고려하고 고기를 참조하여 묘사해 볼 수 있겠다. 우선 자연에 대한 오랜 관찰 결과를 입에서 입으로 후손에게 전했을 것이고 이를 구전이나 아프리카에서부터 사용해온 단순한 숫자나 기호를 활용하여 남겼으리라고 본다. 이 사상이 바로 천부경의 사상이며 원래는 숫자로만 되어 있었을 것이고 요약하면 하늘, 땅, 사람 즉 자연이 하나라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역사 이후 인간집단이 문자로 만든 인본주의 사상과는 시작부터 서로 상극이며 대조되는 말이다. 이 자연주의 유일신 사상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그 속에 있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자연에서 나왔고 모두 살아있으며 각기 그 역할이 있으므로 서로 영향을 미치고 의지 해야한다는 사상이다. 결과적으로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알과 같은 생명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창조주 즉 자연을 바이칼 거주 수만 년 만에 알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천부경은 홍수 이후에 이 사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한문화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나) 아리랑의 전파

지구상 마지막 빙하기인 뷔름 빙하기에 바이칼 호에서 창시자(알) 효과가 있은 이후부터 홍수 이전까지 수 만년은 지구의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이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에게 인식된 "알"이 주도하는 알"의 세계였다.

부도지의 기록에 따라 바이칼의 호모 사피엔스가 동서남북으로 분산된 사실은 전술한 이홍규 박사의 미토 콘드리아 유전자 이동도에서도 분명하게 증거 한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손(알의 자손)이라고 하였으며 특히 서쪽으로 간 족속은 자신들의 이름을 아예 알족(아리안: "이안"은 한문의 "인"에서 따온 것으로 보임)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바로 기원전2-3만 년 전에 인도 북부 발하슈 호와 알알해 지역 초원 지대에 있었던 아리안 족이다. 바이칼에서 분산한 이 들 제 족은 모두 가는 곳마다 자신들이 살던 지명에 알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4대강의 인본주의 문명 발상지는 여기서 제외된다. 이 알의 시대에 알 족이 거쳐간 알의 지역은 위 그림과 같다. 언어의 전파 경로를 기록한 유일한 기록인 박재상의 부도지를 인용하여 동. 서, 남, 북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1 북쪽: 황궁씨

이들은 바이칼 알 집단의 지도자들로써 주된 임무는 길흉을 점치고 계절과 자연 칼 호수의 북쪽인 천산 쪽으로 갔으나 추워서 남쪽으로 돌아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다. 알의 주도집단인 제사장 집단으로 바로 우리 민족이다.

-2 동쪽: 청궁씨

이들은 해가 뜨는 동쪽으로 간 사람들로 에스키모와 인디언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육로나 해로를 따라 베링 해협을 건너가면서 그 땅을 알라스카(알에서 새가 날아간 곳) 또는 알류산 열도라는 이름을 지었다.

-3 서쪽: 백소씨

이들이 바로 아리안족으로 달이 지는 서쪽으로 간 사람들로, 과거 네안데르탈인들의 지나온 길을 따라 시베리아의 북쪽 초원지대를 따라 서진 하다가 인도로 가서 간지스 강 인다스 강 문명을 남겼고 인도 유로 어를 만든 아리안 족이다. 이들은 서진 하면서 발하슈호, 알알해, 알아랏, 알프스산 등 지명을 남겼다. 재미있는 말은 알프스라는 이름으로 한국어로 알을 벗어났다는 뜻으로 보이며 이는 당시 그곳 사람들이 식인종이었음과 그 의미가 일치한다.

-4 흑소씨

이들은 남쪽 따뜻한 곳으로 간 사람들로 중국의 황하, 양자강을 거쳐 베트남, 인도네시아 쪽으로 갔는데 이들에게서는 알이라는 지명을 찾아 볼 수 없으나. 중국 곤명의 샤니(산위)족, 필리핀의 바자우(바다위)족, 마오리 인들의 니무(나무)등 이름에서 우리말을 찾을 수 있다.

-5 해안으로의 이동

그리스 설화집인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인간이 신에게 바칠 제물에 대해서 신과 협정을 맺고 있을 때, 소의 뼈를 가지런히

프로메테우스의 계락을 간파한 제우스는 분노하여 인류에게서 불을 빼앗는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속여 꺼지지 않는 불을 회향목 안에 넣어 인간에게 몰래 주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프로메

테우스(그리스어: ԰ՑՏՌՇՈՅ??)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한 세대 앞서는 티탄 족에게 있는 신이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 선지자(先知者)'이라는 뜻이다. 티탄 족인 이아페토스의 아들이며, 아틀라스, 에피메테우스, 메노이티오스, 헤스페로스 등의 형제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제 1세대 티탄족인 이아페토스와 바다의 요정인 클리메네(혹은 아시아) 사이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원래 티탄 신들의 심부름꾼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흥미를 끌게 되는 사건으로는 그와 제우스 사이에 벌어진 권력다툼이다. 이 사건이 인간의 운명과 간접적으로 얽힘으로써 프로메테우스의 존재는 인류 문명사에서 신화적 해석을 하는 데 종종 언급된다. 더군다나 아래에 보게 될 권력다툼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철학에서 즐겨 다루어진 소재로 손꼽히기도 한다.

이 기록에서 티탄족의 불의 신 이름이 그 발음으로 볼 때 그 어원이 원래는 한국어 "불을 맡았어"에서 온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로써 바이칼 창시자 언어는 해양 길은 통해 그리스까지 전달되었고 "알"이 그리스 12신 이전의 창조자 이름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를 증거 하듯 중국,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이집트, 히브리 모두 우주가 알이었다는 창조신화를 가지고 있다. 정렬하여 이를 윤기가 흐르는 비계로 감싸고, 살코기와 내장을 가죽으로 감싸 제우스신에게 어느 것을 가져갈 것인지 선택하게 하였다.

바. 호모 사피엔스

1) 호모사피엔스의 의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호모사피엔스는 창시자 효과 이후 언어가 발전된 기간 인 약 7-9만년 간 생겨난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인류를 말한다. 호모(Homo)는 원래 흙이나 먼지를 뜻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에서 나온 말이다. 결국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게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도 결국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종명(種名)인 사피엔스(sapiens)는 ‘생각이 깊은, 슬기로운(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 영어 세이지(sage)와 뿌리가 같다. 서양 사람들은 이 호모사피엔스의 원류는 인정하지 않고 저들이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슬기 슬기 인간)가되어 갑자기 유럽에서 크로마뇽인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저들이 하는 말은 어디서 배운 것인가? 저들도 사고와 생각은 언어로 한다. 우리 한 민족에 의해 언어가 처음 등장한 수 만년 이후 이 말은 안다. 천지인에 대한 사랑, 창조주라는 뜻을 가진 아리랑(축약어 알) 으로 발전되었고 이 생각은 동(인디언), 서(아리안), 남(동남아, 남태평양) 북(에스키모)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서쪽으로는 이동민족인 페르시아를 비롯하여 아리안이 인도를 거쳐 유럽으로 가면서 말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인도 유로어이다. 그래서 스타로스틴 교수의 주장처럼 이 인도 유로어와 중국어, 일본어는 모두 우랄 알타이어에서 나갔다.

* 69.095년의 근거

1. 원동중 저 환단고기 삼성기 전 하권 한국의 건국 시기 기원 전 63.182년

2. 한웅조선 지속 기간 1.565년

3. 단군조선 지속 기간 2.233년

4. 현재 기원 후 2015년 총계 69.095년

2) 언어 시대

가) 인간성 형성시대: 창시자 효과~홍수 이전 69.000년-14.000= 55.000년 간은 하나의 한국이 있던 시대로 호모사피엔스의 언어가 형성되고 전파된 시기였다. 이 때에 인간은 지역별로 나름대로 자연에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연에 적응하였고 채집 생활에서 식량 확보를 위해 사냥이 시작하고 (당시의 고고학 적 유물에서 개선된 사냥 도구를 발견함) 나아가 더 많은 인구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 자연 현상의 관찰을 시작했는데 낮과 밤, 계절을 비롯하여 시간을 측정하며 동식물과 해, 달, 별 등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했는데 그 결과 시계, 달력 등이 생겼다. 또 하늘, 땅, 사람(天地人)이 하나의 생명으로 생겨나 흘러왔고 인간도 이 속에서 나왔다는 삼신 사상이 생겨났다. 서양 사람들의 표현에 의하면 소위 샤머니즘이 생성되었으며 (천부경, 삼일신고 참조) 모계 사회가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 이 시기의 모계사회에 관한 기록은 우리 민족 국가인 신라시대 박재상의 부도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유대인들이 쓴 성경 창세기 인간 창조의 부계 위주 기록은 홍수 이후 인구가 불어나자 방어와 농사, 지중해 바다생활에 남성의 인력이 필요했던 점을 고려해서 생긴 것으로 보이나 성경은 모계를 강조한다.

나) 인종과 민족성의 형성

언어가 생기고 지구상 전지역으로 전파되면서 햇빛을 받는 정도에 따라 지역별로 피부색갈이 다른 인종이 나타나고 의식주 삶의 방식에 따라 지역별로 각기 다른 민족성이 형성되었다. 이 인종과 민족성은 문명이후에 판별된 것이지 문명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인종과 민족성은 호모사피엔스 이전부터 서로 다르게 진화되어 왔는데 인종의 경우 황인종은 대체로 회귀선과 극권 사이의 중위도 지방과 한대지역에서 살아왔고 흑인종은 적도 인근 지역으로, 남회귀선과 북회귀선 사이에 태양의 빛을 가장 많이 받고 우기와 건기가 있고 사막과 우림으로 형성된 연평균 기온이 20도가 넘지역에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살아온 인종이다.

백인종은 네안데르탈인 이전부터 어둡지만 지중해와 멕시코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따뜻한 지중해와 대서양 서안에 살아온 인종이다. 이들의 피부가 흰 것은 그 주류가 햇빛이 약한 극지방에서 살아왔

기 때문이다. 밀란코비치의 지구세차이론에 따라 북극이 약 5만년 동안 일라스카 서쪽에서 영국 쪽, 즉 본초자오선을 따라 23.6도 이동하는 동안 그 축선에 주로 살았던 인종이다. 이들의 수만, 수 십 만년 어둠 속 삶이 언어, 음악, 과학 능력을 비롯한 편익의 재능과 개인주의 상대를 죽이고 먹어야 사는 잔인한 성품을 만들었다. 다음 민족성의 경우 대체로 도서와 육지, 해안과 내륙, 농경지역과 비 농경지역, 높은 곳과 낮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다) 홍수

도표에서 보는 것 같이 기원전 14.000년 경 마지막 뷔름 빙하기가 끝날 무렵부터 기원전 8.000년까지 약 6천 년 간 지구상에는 인류

의 생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바로 기독교에서 노아의 홍수라고 말하는 대 홍수이다. 이 때에 성경에서 말하는 소위 하늘 위 궁창이 비가 되어 없어지고 땅위를 덮었으며 해수면이 약 140m나 높아졌다, 해변과 강가 사람들이 죽었고, 아틀란티스 등 많은 저지대와 해안 도시가 이때에 바닷물에 잠겼다.

상기 도표는 미국의 기상학자 엔써니 왓츠가 발표한 것으로 성경을 신성시하는 백인들에게 큰 저항을 불러일으킨 내용이다.

엔써니 왔츠(Anthony Watts)

1958년 생, 미국태생. 퍼듀대 졸업

기상예보학자. 해당 블로그사업(1978~현재) KPAY-AM(칼리포니아 시카고 지역 온라인 방송 사주

저서: 기후 변화를 보는 관점

웹싸이트 wattsupwiththat.com

이 홍수의 원인에 대해 현재까지 확실한 결론은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이 홍수의 결과로 인간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구 중력의 엄청난 변화와 대기의 변화 즉 생태계의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홍수 이후 6-8천년 문명 기간보다 거의 10배에 달하는 언어시대를 더 중요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언어시대 즛 홍수 이전과 문명시대 즉 홍수 이후의 지구 환경을 비교해 보자.

우선 홍수이전의 지구 환경은 그림처럼 하늘 위 궁창이 있어 중력이 약해 인류의 키가 4m 이상이 되었고 자외선이 약하고 습도가 높아 그런지 활성산소 생성이 거의 없어 커터 코벨 박사의 증언에 따르면 1만7천년 전 요동성인근 유골의 유전자 수명이 1000년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6만여 년은 우리나라의 한인시대에 해당되고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뜻대로 되었다. 살아있는 것(동산의 실과)는 죄로 여기고 먹지 않았으며 자연이 주는 것(떨어진 과일 즉 지유(地乳)만 먹어 치아가 없었고 자연에 완전히 적응하여 오래 오래 살았다(박재상의 부도지) 성경 창세기 6장 1절-4절에는 에는 "하나님의 아들들(동방의 한국인)이 사람의 딸의 아릿다움을 보고 결혼하는 지라 이

때부터 수명이 단축되었다"고 쓰여 있다. 반면에 홍수 이후 문명시대의 인류는 키가 작고 모여서 인구를 불리고 조직화하고 편익을 증진시켜 의식주를 해결함으로써 인류가 자연을 통제하려고 시도한 결과 인간의 크기가 작아지고 수명이 단축되었으며 무리를 짓고 당파를 만들었으며 민족의 하나님 만 찾고 자연을 해치는 정도가 점차 심해져 지구 자체가 파괴되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을 만들었다. 모든 종교와 학문이 지구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출처 : http://armymission.org/hani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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