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여행이 너무 짧다>
저녁 무렵,
한 젊은 여성이 전철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노을을 감상하며 가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중년 여인이 올라탔다.
여인은 무슨 이유에선지 큰 소리로 투덜거리며 젊은 여성의 옆자리 좁은 공간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끼어 앉았다. 그러고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옆으로 밀어붙이며 들고 있던 짐가방을 그녀의 무릎 위에 걸쳐 놓았다.
그녀가 처한 곤경을 보다 못한 맞은편 남자가 그녀에게, 왜 옆 사람의 무례한 행동에 아무 항의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느냐고 물었다.
젊은 여성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거나 언쟁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우리가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까요.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거든요.”
함께 여행하는 짧은 시간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툼과 무의미한 논쟁으로 허비하는가?
너무나 짧은 여정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단점을 들추고, 잘못을 비난하며, 불쾌감 속에 시간 흘려보내는가?
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작자 미상의 이 이야기의 저자는
우리에게 충고한다.
“누군가가 마음에 상처를 입혔는가? 진정하라. 함께하는 여행이 짧다.
누군가가 당신을 비난하고, 속이고, 모욕 주었는가?
마음의 평화를 잃지 말라.
함께하는 여행이 곧 끝날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괴롭히는가?
기억하라, 우리의 여행이 짧다는 것을.
이 여행이 얼마나 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내릴 정거장이 언제 다가올지 그들 자신도 예측할 수 없다.”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는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라는 라틴어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이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당신 차례. 죽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이다. 대구의 천주교 성직자 묘역 입구에도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고 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나 불멸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불편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내가 자각하듯이 다음의 사실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다.
‘나는 이곳에 잠시 여행 온 것이다.
나는 곧 떠날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간단하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의 무게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된다. 끝없이 계속되리라는 것은 그저 우리의 상상일 뿐이다.
여기,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가 있다.
가까이 오라, 사랑하는 이여.
우리 서로를 어여삐 여기자.
당신과 나
갑자기 사라지기 전에.
역설적이게도 삶의 기쁨은 이곳에서의 나의 머묾이 제한적이고 유한하다는 자각에서 시작된다. 봄의 풀꽃들도 그것을 아는 듯하다. 지저귐을 막 배우기 시작한 어린 새도 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의 가슴 안에 그 새의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
- 신작 산문집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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