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 : http://blog.daum.net/manrimuoun3638/8483075
백두산족에게 고함
번역 해설 : 봉우 권태훈
펴낸이 : 송순현
이 책을 엮으며
여기에 실린 글은 모두 봉우 권태훈 옹의 수필, 일기문 등에서 가려뽑은 것이다. 봉우 선생님께서 틈틈이 써 두신 글들이 두꺼운 노트로 수십 권에 달하나, 해방 전의 글들은 일제하의 고등계 요시찰 인물로서 수십 차 예비검속 및 투옥으로 집을 수색당할 때 모두 압수당하였고, 해방 뒤에 쓰신 글들만이 열 댓 권 정도의 분량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도 주로 50년대부터 80년대 최근까지의 글들로 엮어졌으며, 엮는 과정에서 어느 부분은 실리고, 어느 부분은 다음으로 발표를 미루게 되었다. 실린 내용은, 이 분이 평생을 통해 추구해 온 백두산족의 뿌리사상에 대한 고찰, 그 뿌리를 튼튼히 하고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하여 지향해 나갈 겨레의 앞날에 대한 좌표들, 백산대운과 황백전환기를 맞이하는 한민족을 미래상. 또한 개개인의 영성개발을 위한 근본적인 정신수련 문제의 제기와 자아에 대한 진지한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다.
봉우 권태훈 옹은 단기 4233년(서기1900년) 1월 20일, 서울 재동에서 출생했다. 4세부터 서당교육을 받았으며, 8세에 유교의 경전을 모두 마쳤다. 그 이전인 6세에 어머니로부터 민족 고유의 호흡수련법인 조식법을 배웠다. 10세 때 서울 비원 근처에 있던 "단군교 포교소" 를 지나다가, 숙명적으로 항일적 심경을 갖고 있던 그는 민족 고유의 것에 대한 갈증 때문에 단군교라는 말에 사로잡혀 그곳에서 대종교를 부흥시킨 민족종교 지도자 나철 선생을 만났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그는 당대의 많은 정신적인 스승들, 민족주의자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민족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자각, 또 한편으로는 자기 성찰을 통한 내면 탐구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한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 정신의 깊이와 당당한 자세로 일본 정신계를 놀라게 했던 그는 민족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멀리 바이칼호까지 오랜 탐사를 했으며, 일곱 차례에 걸쳐 백두산을 등정했다.
단기 4258년(서시 1925년) 개천절을 맞아 그는 계룡산 북쪽 기슭에 "연정원" 이란 이름의 정신수련원을 창설하여 동지들과 함께 정신수행과 순수한 민족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그가 세상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것은 단기 4317년(서기 1984년)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소설 "단"(김정빈 지음)에 우학도인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부터이다.
1년만에 30만부이상이 팔린 초베스트셀러의 기록을 수립한 이 책에서 그는 억눌렸던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우고, 새로운 미래상을 예시하여 이 땅의 모든 사상과 학문분야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올해 (단기 4322년)에 90세를 맞이한 그는 아직도 대종교 총전교의 직책을 맡아 민족 고유의 단군사상을 후학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한국단학회 연정원"을 이끌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기존의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야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독특한 체험을 겪게 된다. 그 목소리는 현대를 사는 모든 이에게 때로는 아주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껄끄러움으로, 때로는 느닷없는 자부심과 경이로움으로 다가오지만, 결국 우리겨레의 고유한 정신적 자산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희망을 지니게 한다.
또한 민족문화 연구의 지평을 그 뿌리에서부터 넓혀 주므로 진정한 '조선의 얼'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지도 자명해 지는 것이다.
너무도 민족주의적임을 주장하면서 근본적인 대자연의 도를 깨닫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참된 나를 다시 찾아서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데 헌신하자는 이 야인의-얼핏보면 너무도 모순된-외침에 적잖이 당혹해하는 이도 많으리라. 하지만 가장 민족주의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이 분에게는 너무도 잘 적용된다. 즉, 겨레없는 깨달음도, 겨레없는 세계평화도 이 지상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성스러울 정도로 지극한 민족에 대한 사랑은 절대로 편협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다. 그것은 결국 근본적인 '참나'의 발견과 구원으로 이어지며, 나아가 온 민족들의 집합체인 세계의 거룩한 평화공존에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민족애를 사상시키는 이 분의 사상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무의미함을 밝혀둔다.
내가 이 책을 엮게 된 동기도 전적으로 이에 대한 감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생을 일관되게, 민족에 대한 사랑을 뜨겁게 간직하며, 민족고유의 정신을 투철히 깨닫고 실력을 배양하며, 당면한 민족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외진 길을 참으로 고집스럽게도 이 날까지 걸어오심을 보았을 때, 그 지극한 순수함에 나는 감동하였다.
또한 우리의 민족주의의 기원은 어디에서부터 설정함이 마땅한가 하는 것도 깊이 고찰하게 되었다. 봉우 선생님에게 있어서 민족의 뿌리에 대한 깨달음은 전 우주사의 근원적인 깨달음과 직결되어 있다. 그것은 곧 태초의 만물 생성의 비밀이며 또한 소우주인 '나'란 존재의 비밀이기도 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세속적인 현실문제를 멀리하며 사람의 공동체에서 벗어난 존재이고, 정치인이나 기타 현실 참여적인 사람들은 세속적 존재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즐겨하지만 봉우 선생님은 여기서도 멀리 벗어나 있다.
나는 봉우 선생님의 남겨진 모든 글들을 읽으며, 이 땅위의 모든 이들과 더불어 공감을 형성할 많은 부분들이 있다고 느꼈으며 나만이 그 값진 체험을 향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엮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신력 함양과 깨달음에 대한 본격적인 서술, 옛부터 전해 내려온 각종 정신연구의 분야들-주역, 천문, 지리, 산법, 병법-에 관한 논술, 그리고 고대 체력단련법으로서의 '속보법요지' 및 '체술요강'에 관한 내용은 이 책에 실리지 못했다. 추후에 세상에 발표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그 글들은 이 분야에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차 있어서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바가 못되었다. 그래서 우선 몇 가지만을 골라 스승의 허락을 받은 후에 원고 정리를 한 것이 바로 이 책이 되었다. 책의 어느 부분이라도 잘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얄팍한 지식과 어두운 머리 때문이다.
스승의 원문 서술에 쓰인 많은 용어들이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말들이 있고. 문체 역시 요즘 사람 눈에는 익숙지 않은 글들이 많았으므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약간의 단어 수정이 불가피했음을 밝혀 둔다.
끝으로, 스승의 글이 담고 있는 현재적 가치와 그 의의를 공감하고 이 책 발간에 적극 힘써 준 정신세계사 편집주간 류시화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본문의 서문과 맺음말 및 제1부 '나에게서 구하라' 등은 그의 정리로 이루어 졌다.
정신세계사 송순현 사장님과 편집부 여러분의 노력에 깊은 고마움을 표하면 아울러 서울과 계룡산의 연정원 동지들과 함께 스승님의 어록이 출간된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단기 4322년 1월
엮은이 정재승
내 살아온 생을 돌이켜 보니
내 나이 여든 아홉이던 무진년(1988)은 그 마지막 날을 대황조님의 영정 앞에서 고요히 보내고, 그 자리에서 닭울음소리를 들으며 기사년(1989) 첫 날을 맞게 되었다. 내 살아온 구십 여 년 동안 늘 같은 인생으로 별다른 일이 없었다. 벌써 내 나이 아흔이 되었다. 참으로 순식간의 일이다. 홀로 고요히 앉아 지나온 생을 돌이켜보니 변함이 없이 여전하다. 변하고 싶어도 변할 것이 없고, 변하지 않으려 해도 역시 잘 변하는 것이 인생이런가? 그래서 내가 청년시절에 '깊이 생각해 보니 인생이라는 것이 한 조각 뜬구름 같은 것이요, 괜히 혼자서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라고 쓴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 시절의 생각이요, 오히려 구십의 나이를 눈앞에 둔 지금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한 세상을 그냥 왔다 가라고 이 우주가 인간에게 생로병사를 내린 것이 아니요, 자유자재한 능력을 허락한 것이 아니다. 이 우주가 어떤 사람을 그 시대, 그 민족, 그 나라에 태어나게 하여 잘 기르시는 것에는 깊은 뜻이 있다. 그저 뜬구름처럼 왔다가 가라고 이 숨막힐 정도로 엄청난 인생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득 돌이켜보니 이 우주가 개벽한 이후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빚만 지고 살다간 목숨이 이 우주에 얼마나 많은가? 그것을 생각할 때 내 머리에는 무어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이 몰려든다.
나야말로 지난 여든 아홉 해라는 긴 세월을 살았으나,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외상 살이 인간임에 틀림없다. 나 역시 우주가 나에게 생명을 내린 깊은 뜻을 살피지 못한 채 빚진 인생을 살아왔다.
옛사람 말씀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였다. 이 역시 나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그간 지나온 마흔 아홉해 동안의 자신의 잘못을 알았다.' 라는 옛사람의 말을 생각하고 나 역시 '나이 아흔이 되어서야 지난 여든 아홉 해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앞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그런 대로 두 눈빛이 흙으로 가리워지기 전까지 정진을 다하여 이 우주에 진 빚을 만에 하나라도 갚아볼까 하고 이 책을 내놓은 것이다.
단기 4322년 1월 봉우 권태훈
차례
이 책을 엮으며
내 살아온 생을 돌이켜 보니
1. 나에게서 구하라
2. 백두산족에게 고함
3. 구도자의 자세
4. 연정원에 대하여
이 책을 끝맺으며
1. 나에게서 구하라
나에게서 구하라
옛부터 지금까지 정신을 수련하느니, 무슨 비법을 배우느니 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 비법이 스승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무에서 유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것은 제자에게 어디서 어디까지 가야하며, 또 이런 산을 넘어 저런 물을 건너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해 주는 것에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도중에 거쳐가야 하는 멀고 험난한 길을 자세히 지도해 주는 것이 스승이요, 잘 가고 못가는 것은 스승의 책임이 아니다. 항상 내 자신이 잘 가야 하는 것이니, 비록 스승의 도움은 바랄 지언정 목적지까지 잘 가고 못 가는 것은 자신에게서 구해야 한다.
나에게서 구하라.
하늘을 놀라게하고 땅을 진동시킬 비법도 모두 나 자신의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러한 마음 하나가 그 이루고 못 이룸을 좌우하는 것이다. 물론 스승이 가르쳐 주는 길이 옳지 않다면 이는 그 스승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공부의 이루고 못 이룸은 자기의 정성된 노력 여하에 있으며 나 자신밖에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만고불변의 법칙이요, 진리다.
세상의 일반학문은 스승이나 친구의 도움만 가지고도 아주 어리석지만 않으면 상식선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수련에는 비록 신선과 부처가 지도하더라도 본인인 내가 성의가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나를 구하라.
내 안에서 나를 구하면 신선도 될 수 있고, 부처도 될 수 있는 법이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수운 선생의 말씀에 '인내천'이라는 내용이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사람의 마음이 곧 천심이요, 사람의 움직임이 곧 하늘의 뜻이다.
이것을 알라.
천지인,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한 몸이니 하늘을 알고자 할진대 가장 가까운 곳인 나에게서부터 연구해 나가면 하늘도 알 수 있고 땅도 알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근본 원리다.
사람의 사람됨과 천지의 천지 됨이 동일한 원리에서 이루어지며, 만물의 나고 자라고 거두고 돌아가고 하는 일도 바로 그 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높은 것이 하늘이요, 낮은 것이 땅이며, 높고 낮은 것을 동시에 갖춘 것이 바로 사람이다.
여기서 갖추었다 함은 하늘과 땅의 중간자적 존재인 사람으로서 자신의 지혜를 키워 나가면 하늘도, 땅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하여 산천하지, 즉 위로는 하늘에 통하고 밑으로 땅에 이어지려면 내 안에서 진정한 나를 구해야 한다. 내 밖에서 나를 구한다면 그것은 나 아닌 다른 것은 구한 것이다.
현대의 고도화된 물질 문명 사회에서 과학만능을 자랑하지만, 눈 있는 자가 본다면 벼룩이 장판 위에서 뜀뛰기를 하며 자기의 용맹스러움을 자랑하나, 사람이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우리의 정신수련도 역시 그 한계가 없다. 누구나 자기의 간 것만큼 갔을 뿐,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았다.
누구나 자기의 간 것만큼 갔고 그 이상은 억천겁을 갈수록 더 닦아야 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우주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시간적으로는 돌을 맞부딪칠 때 반짝 일어나는 불꽃처럼 짧고, 공간으로 보면 가이없는 바닷물 위에 떠있는 좁쌀 알만큼 미미한 존재라고 하였다.
이런 가운데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비바람 부는 대로 세월을 허송할 수 없으니, 전광석화 중에서라도 만년불변의 자세를 지니고 나를 내 안에서 구하면 이것이 바로 '순리에 따라 살며 일체를 받아들이면서 쉼없이 정진하는' 배우는 사람의 길이 될 것이다. 천 가지, 만 가지 말과 글이 모두 다 먼저 행함보다 못할 것이다.
나에게서 구하라.
나밖에 내가 없다.
나를 내 안에서 구해 얻음이 있어야 비로소 나 아닌 다른 남도 미루어 알 수 있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고 나 아닌 남을 안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죄인이 되고 남에게도 죄인이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나는 모르되 나 아닌 남을 잘 말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늘이 못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그대로 사람의 상태에만 머물러 있다. 내가 내 마음의 일부마저도 거느리지 못하면서 감히 남을 거느리려고 생각한다는 것, 그것을 죄라 하지 않고 무엇을 죄라 하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덕이나 공은 세우지 못할지라도 죄인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서 구하라.
나에게서 나를 구하라.
나의 한계
세상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나는 어떠하다느니, 나는 무슨 일을 하겠다느니, 나의 장래일을 위하여 내 과거일은 이랬어야 하느니, 나와 남을 비교하느니 하는데 대체, '나' 라는 것의 한계를 잘 알 수 없다.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세상에 나온 후부터 나라고 이름붙여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기까지 일생을 통해 더불어 사는 이 육체를 바로 '나'라고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나' 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만약 세상에 나온 이 육체를 나라고 한다면, 이 육체가 나오기 전에는 나라는 것이 없었을 것이요, 또 이 몸이 죽어지면 나라는 것이 자연 소멸될 것인가? 세상의 해석은 이 방면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야 알 수 없고 또한 죽어지면 그 이후의 세계도 알 수 없는 것이니 '나' 라는 것은 한계가 아마 이 정도인가?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렇다.
이 육체가 생기기 전에는 나라는 것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 육신이 온 후에 내가 생겼다고 한다면, 또 그래서 이 육신을 '나' 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육신이 죽었더라도 그 육신이 나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호흡이 정지되고 이 몸에 열이 식어서 시체가 되면 그때까지 나를 대표하던 이름으로 그 시체를 부르지 않고 다만 누구의 시체라고 하는 일개 송장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나에게 가장 가깝던 사람도 모두 나를 피한다.
따라서 이 육체가 나를 대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불변하는 '나'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육체가 내가 아니라면 무엇이 나란 말인가?
어떤 이는 정신이 곧 나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 육체는 무엇인가? 또는 정신과 육체를 합한 것이 곧 나라고 하나, 그렇게 되면 정신이 육체를 떠나는 찰라에 나라는 것도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속에서 볼 때 이 정신, 이 육체를 다 떠나서도 나라는 존재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자주 체험하게 된다. 즉, 내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후에도 여전히 나를 대표한 이름이, 아무개라는 명칭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름이 곧 나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또는 내가 출생하기 전의 몸도 나요, 현재의 몸도 나요, 미래의 몸도 불변하는 나라고 하니 무엇이 진정한 나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각자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하나 어느 '나'가 진정한 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이러한 주제는 애초부터 아주 한계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것 같다.
먼저 '나' 라는 것을 잘 찾아야 이 한계를 알 수 있다.
저마다의 주장이 다르니 지금 말을 하고 있는 나도 이 한계가 의심이 나서 매듭을 짖지 못하는 것인지, 또는 나 자신의 결론이 있으나 말을 안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그대에게 맡긴다.
그저 나의 한계를 알 수 없다는 의문을 남겨두고 뒷날의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는 것이다.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내가 있다 없다 함도 모두 나요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나'라
없고 또 없고, 비고 또 비어도 나 아님이 아니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 또한 나로 말미암으니
세상 사람들이여, 삶과 죽음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빈 산 밝은 달에 '참나'를 깨달으라
공자의 제자 자로가 죽음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생을 모르는데 어찌 사를 알리요?' 라고 반문하였다. 공자가 삶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질문을 한 자로가 삶을 모르면서 죽음에 대하여 알려고하니 이를 지적한 것이다.
말하자면 비교할 근거가 되는 생을 알지도 못하면서 죽음을 무엇하러 묻는가 하신 것이다. 나의 생부터 깨달으면 자연히 죽음은 알 일이라는 뜻이다.
자로가 생을 모르면서 사를 묻다가 반문을 당하긴 했지만, 자로 역시 '나의 한계'에 의문을 가졌던 듯 하다.
역시 공자의 제자인 안자는 온종일 어리석은 사람처럼 앉아있기만 하였으나, 공자는 그를 두고 '힘써 배우는 사람 또한 이와 같다'고 하였다. 더불어 안자는 '가장 높은 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순임금은 누구이며, 나는 또 누구인가' 라고 하였다.
공자와 안자는 생을 깨닫지만 한 것이 아니라 천년 만년 이전까지 나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나를 해석하였다. '나'라는 것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 유아독존하라는 말씀이다.
이 정도로써 그대의 후일 공부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나만 깨달으면 나의 한계도 알 수 있고, 내 주변의 물질의 이치도 알 수 있다.
나를 안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자기가 자기를 아는 일이다.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고 남이나 남의 일을 안다면 이보다 더 곤란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자기의 과거 현재의 경력이나 실력이나 또는 업적으로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가 잘알고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의 학력도 알 수 있고, 자기의 업적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자기의 성품이나 일을 꾀하는 힘이 얼마만큼 되느냐 하는 것도 자기 이외에 누가 알 것인가? 그러니 냉정히 자기를 살펴서 자기의 힘에 맞는 일을 하면 일에 실패가 없을 것이다.
먼저 내가 나를 알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으로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스스로를 평가해 보아야한다.
내가 나를 바르게 평가할 때 비로소 남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만사에 무리가 없다고 했다. 즉 무슨 일이든지 조화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 일을 보면 남을 알기를 잘하는 사람도 자기를 알지 못해서 일에 실패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모든 일이 순리에 따르지 못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자기가 자기를 알더라도 왜곡된 평가를 내려서는 안된다. 용서없이 바른 평가를 내려야 한다.
무슨 일을 할 때나 남을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나를 아는 것 역시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부분적으로는 자기를 아는 것이 쉬울지 모르나 전체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본질을 알기는 어렵다.
세상에는 먼저 자기 자신을 평가해 보고 나서 일을 시작하기보다 맹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이 맹목적인 무리가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어떤일을 하기전에 먼저 내가 나를 알 수 있는 길을 찾으라. 맹목적으로 세상의 여러 길을 활보하지 말고, 나는 누구 인가에 대한 해답을 먼저 찾으라. 그 외에 다른 길이 있지 않다.
대자연의 삶
인간으로 탄생한 것을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가장 무의미한 우연의 산물인 듯 여겨지고, 탄생 후의 주위 환경과 교육여하에 따라 그 삶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졌기 때문에 흔히들 인생을 부생, 뜬구름처럼 떠도는 삶이라고 말한다. 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가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반해 가난과 병으로 일생을 보내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 인간살이를 고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인간으로 탄생한 것이 맹목적인 우연에 있는 것은 아니며, 삶 자체가 부생이나 고해인 것은 더욱이 아니다. 단지 이 우주 대자연의 크나큰 수레바퀴 속에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따라 돌고 도는 가운데, 각자가 무의미한 우연에 의해서 이 지상에 나오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뿐이다.
세상에 나와서 남과, 또 사물과 맺어지는 인연이라는 것은 모두가 각자의 판단과 결정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아무 관계도 없는 우연으로 그 인연이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삶은 반드시 그 뜻이 있는 것이지 뜬구름 같은 부생이 아니다. 또한 무수한 세월을 두고 전전하던 잘못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어 나온 것이니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수도 있는 이 자리가 어찌 고해라고만 단정할 것이겠는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천지의 대자연은 변함이 없으나, 인간의 행위는 여러모로 그 대자연을 위반하고 대자연에 역행하는 방향으로만 달려간다.
하늘은 어느 때고 그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인간에게 부여하지만, 인간들이 스스로 끊임없는 윤회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시작한 이래, 이것을 자각하신 성자들이 세상사람들에게 그 윤회의 고통을 스스로 택하지 말고, 그 사슬에서 벗어나(해탈하여) 극락을 얻으라고 수없이 일깨워 왔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젼히 술취한 듯, 꿈꾸는 듯 그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이 이 현상을 보다못하여 현실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이 삶을 부생이라하고, 극락을 만들 수 있는 낙토를 고해라고 오해하였다. 또 마음 속과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수 있는 이곳을 지옥이라고 생각하여 죽어서 갈 천당을 희구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것은 비단 현 인류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태초 이래 인류가 시작된 뒤부터 계속되어온 문제다. 그리하여 이처럼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잘못을 되풀이하여 윤회하는 삶이 마치 정상적인 대자연의 삶인양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으라.
피와 살과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이 몸안에 불멸의 대생명력이 무한히 내포되어 있다.
이것을 자각하라.
이 몸이 가장 뜻깊은 몸이요, 이삶이 가장 즐거운 삶이요, 지금의 이 세계가 바로 극락세계이다. 이 세계 외에 또다른 극락세계가 있지않다. 이 삶보다 더 의미있는 삶이 있지 않다.
인생은 고통이라고 부르짖는 인류로 태어나서 이 현실세계를 극락으로 생각하고, 지상 극락건설을 크게 외치면서 자기 자신과 남을 자각시키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윤회라는 피동적 삶의 형태를 극복하는 사람의 자세다.
또다른 삶과 또다른 세상을 꿈꾸지 말라. 그대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천국을 느끼고, 진리를 찾으라.
이것이 바로 옛 현자들의 깨우침이며, 대자연계에서 쉬지 않고 흘러 나오는 소식이다.
내가 나를 안즉 능히 남을 알고
윈래 밝은 것을 다시 밝히니 도가 이루어진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모든일을 알고
주변을 돌보면 덕이 세워진다.
이것이 바로 생의 최고의 목표라,
뜻을 세움이 낮으면 그 배움이 보통의 수준을 넘지 못하니
반드시 이러한 최고의 것으로 뜻을 세워서
비상한 힘을 내어 쉬지 않고 나아가라.
그리하면 미록 타고난 재주와 성질이 크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능히 지혜로운 자의 대열에 서게 될 것이나
모든 배우는 이들은 마땅히 힘쓰고 힘쓸지어다.
내가 나를 생각해 보면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만사에 거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서 반드시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강태공이 병서에서, 힘이 같으면 지혜로써 판가름이 나고 지혜가 같으면 덕으로써 판가름이 난다고 말한 뜻이다.
비록 내가 남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도 그 역량의 차이가 있을 때는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능하나 남을 물리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 그 차이가 자신을 지킬수도 없을 만큼 크다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때를 기다리는 일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만 가지 조건이 모두 불리한 줄 알고 내 자신이 남을 물리치려는 의사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불의를 품고 공격해 온 다면 비록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지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덕이다. 남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서 만사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남을 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남을 알기전에 우선 자신을 알지 못해서 실패가 많은 것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이다. 그래서 옛사람의 말대로 지나침과 부족함이 다 중용을 벗어나는 일일지니,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맞지 않는 일이요, 그렇다고 과대평가하는 것도 역시 옳지 못한 일이다.
한 치도 빗나감이 없이 정확히 나의 위치를 알아야 비로소 그 분수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내 자신을 생각해 보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붓을 들고 이 글을 쓰면서도 나를 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내가 지난 90년간 걸어온 현실의 위치가 과연 무엇이며, 또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상과 실력이 어느 정도의 범위를 갖고 있는 것인지 조금도 덧보태거나 빼지 않고 평가해보자는 것이다.
스스로 내가 나를 평가할 때 흔히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나, 나는 지금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살펴보고, 그리고 옛사람들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나 되는지, 또 나아가 때를 만났을 때 내가 어느 정도까지 될 것인가를 스스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학자라면 으레껏 갖고 있어야 하는 뛰어난 문장력과 여러 재능에는 아주 문외한인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선비될 자질은 없다. 다만 역학을 좀 연구하고 각 철학사상을 흘낏 좀 들여다본 일이 있어서 약간의 지식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학문의 탐구에 있어서도 여러 고매한 성현들의 해박한 문장보다는, 종일토록 어리석은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있던 공자의 제자 안자를 사모한 나머지 문자를 가지고 논하는 일을 피하고 다만 그 근본을 밝히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따라서 쟁쟁한 학자의 대열에는 감히 끼어들 엄두를 못내지만 가끔 진지한 토론석상에 참여하여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줄은 안다. 정통 교리에 밝지도 못하면서 가끔 경전의 근본 뜻을 나름대로 피력해보거나 통속적인 학설은 대충 말할 수 있으나, 그것도 말뿐이지 전문가가 못된다. 다만 유불도의 사상서를 비롯한 온갖 학문서적을 좀 취미 가져서 읽어 보았기 때문에 비록 충분하진 못하나 아주 문외한은 아니라는 평을 들을 따름이다.
종교관에 있어서도 나 자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어느 종교든 신앙을 피하고 있지만, 그 스스로의 믿음이라는 것이 약하기 때문에 따히 확고한 철학을 지녔다고도 할 수 없다.
또 법률 지식을 약간 주워들은 관계로 남의 시시비비를 잘 가리다가 구설수에 오르곤 하는 것이 바로 나다.
쓸데없이 의협심을 갖고 있어서, 비록 세상 처세하는 데에는 내 분수나 지키고 있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강자보다는 약자편을 드는 일이 많아서 세상 사람들은 나를 두고 '일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고 좋지 않게 평한다.
또 비록 분수를 지킨다고는 하지만 욕심이 많아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백일몽을 꾸는 것이 바로 나다.
뿐만 아니라 세상일의 흐름을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여 간간이 호언장담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군사학에는 남이야 무엇이라든지 나대로는 예나 지금이나 군사를 전부 통솔할 자신은 없어도 아무 지방이고 한쪽의 임무만은 맡을 자신이 있다. 내가 나대로 수십년을 두고 여러 곳에서 일어난 전쟁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예측해 보면 별로 빗나가는 일이 없었다. 이것만은 비록 전문가는 아니나, 내가 예나 지금이나 때를 만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스스로 자신한다. 그것도 그냥 자신이 있을 뿐이다.
경제쪽에는 정말 문외한이요, 외교에도 자신이 없고, 그 밖의 다른 부분에는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 쓸모가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사람을 모아 어떤 일을 도모하는 능력이 없다. 또 포용력이 많지 않아서 남의 상관이 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누구의 아래에 머물러서 윗사람을 섬기고 더 아랫사람을 교육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무 실권 없는 구경꾼으로는 적절할지 모르나, 위급한 상황에 처한 군대 외에는 실권 있는 일이면 모두 자신 없다. 다만 부정부패한 일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기강을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는 데에 좀 엄정하게 하는 성격일 따름이다.
옛날에 살았다고 해도 나라에 아무일이 없을 때에는 별필요가 없는 인물이요, 괜히 위태로운 말을 하다가 권력가진 자에게 미움만 받기 십상이였을 것이다. 나라가 위급할 때라면 약간의 공을 세울 소질이 좀 있지 않을까 생각들 뿐이다.
또 현세상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쓸모가 없다. 과학적으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정신적으로 미천한 실력이 있으나 아직 말로 표현할 시기가 못되고 더구나 민족정신을 일깨울 실력도 어느 모로 보든지 부족하다.
마음만은 있으나 일을 해보면 현실적인 계산이 따르지 못해서 '뜻은 있으나 일을 이루지는 못한다' 라는 말이 나에게 어울린다.
이렇듯 내가 스스로 아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때, 지금의 나는 현실 속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최상은 내가 바라지 않고, 그 다음은 내가 적당하지 않고, 그 다음의 실질적인 업무분야에는 내가 자신이 없고, 이 이상 그 이하가 모두 부적격이다.
경제적으로도 아주 문외한이요, 정신적으로도 그저 주변에서 맴도는 일개 학인에 불과하다. 단계를 밟는 자리가 아닌,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면 일시적으로 필요한 인물일 모르나, 그 밖에는 아무 용도가 없는 인물이다.
따라서 나는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중간도 아닌 그러한 위치에 처해있다.
세상사람들은 다 제각기 자신의 위치가 있으나 나는 어리석어서 그러한 위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
세상사람들은 다 약간의 힘과 지혜와 덕을 자랑하나, 나는 어리석어서 자랑할 만한 힘과 지혜와 덕이 없다.
누구나 한정된 인생을 살면서
인생은 한정된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누구나 한정된 인생을 산다.
그 인생의 한계를 모르고 무궤도하게 살아나가면 그 산다는 것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된다. 다같은 인생으로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그 한정된 인생을 가장 뜻있게 소비한 사람이 최상의 지혜로운 인물이요, 가장 무의미하게 소비한 사람이 최하의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최상과 최하의 중간에도 천차만별이 있다. 한 번의 인생을 살았다는 다 같은 자격으로 최종점에 가서 보면 그 인생의 질이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왔다가 간다는 점만 같을 뿐, 그 인생의 답안과 공식이 천차만별이다.
그대는 어떤 답안과 공식을 가지고 이 한정된 인생을 살아가는가?
그 담안과 공식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요, 좀더 자세히 나누면 세가지다. 두 가지란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이며, 선해질 수도 있고 악해질 수도 있는 중간도 있어서 세 가지로도 나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한정된 인생으로 흔적도 없이 냄새도 없이 왔다가 간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같다. 이것이 바로 무에서 유가 나고, 유에서 1이 나고 1에서 2와 3이 나와서 천지만물이 모두 동일궤도를 걷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며, 이점에서는 만물이 모두 같은 상황이다.
이왕 왔다가 갈 바에야 선이니 악이니 할 것 없이 흘러가는 대로, 되어가는 대로 살다가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이들도 그 숫자가 대단히 많다, 현 세계의 사조인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또는 그 중간노선을 걷는 나라나 모두 동일한 물질문명의 혜택을 입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이 현실주의, 실용주의가 극에 달한 나머지, 사람들은 살아서 어떤일을 하든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아무 주저없이 마음내키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 전 인류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그 원인이 물질 문명에 있다. 물질문명의 단점이 현재의 우리의 삶에서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고대문명이라고 하면 동양의 정신문명을 일컫는다. 정신문명에서는 물질보다 정신에 치중해서 비록 한정된 인생일지라도 우주 대자연의 순리와 흐름에 충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비록 육체는 한정이 있으나. 정신만은 우주와 한 흐름이 되어서 개벽 이전부터 다음에 오는 개벽 뒤까지라도 영원히 우주와 함께 한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 바로 정신문명의 핵심이다. 비록 끝없이 변화하는 육체 속에 있을지라도 정신의 영원성을 망각하지 않으며, 육체를 위해 정신을 희생하는 불명예를 범할 수 없다는 것이 정신문명의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물질문명은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에 치우쳐서 우주원리를 무시하고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생애를 살아간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것이 인간의 고귀한 삶을 파괴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정신문명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뿌리내린다면, 원리로 보아서 그 가치가 얼마되지 않는 국한된 육체를 위해서 인생을 희생시키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현 세계는 유물론이 극치에 달해서 유심론이 아주 땅에 떨어졌으며,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무슨 고대 소설이나 듣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우주에는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물극필반의 이치가 있어서 오래지 않아 다시 정신문명으로 되돌아가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만 홀린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한정된 육체의 소중함만 알아서 무한한 정신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흐름에서 서둘러 깨어나야 한다.
사물의 이름에 대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이름이 없고, 존재하는 것에는 반드시 이름이 있다.'
이 말은 불변의 원리이다.
그러나 우주만물이 모두 그 존재의 형태에 합당한 바른 이름을 갖고 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세상의 일만가지 사물이 모두 이름을 갖고는 있지만 과연 그 이름이 그 존재에 합당한가가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우리가 우주만물을 그 각각의 형태에 맟추어 이름을 정할 때에 그 기준이 무엇인가? 크고 작음, 길고 짧음, 무겁고 가벼움 따위의 여러 가지 외형적인 기준이 있을 수도 있고, 색깔과 고리의 기준이 있는가 하면, 동식물과 광물, 생존기간의 장단, 또는 그 성질과 구성성분도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땅위에 인간이 갖고 있는 그러한 기준들이 모두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기준을 가지고 그 기준에 따라서 이름을 정한다고 해도, 그 이름은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며, 어느 것이 가장 합당한 이름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 기준이 일치할 수 있을지라도 기준 전체가 동일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이 그 형태에 적합하지 않으면 형태의 올바른 모습을 알기 어렵고, 또 이름에 형태가 걸맞지 않으면 그 이름은 바른 이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 정도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우주에서 형태에 합당한 올바른 이름, 또 이름에 합당한 올바른 형태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이것이 나는 의심스럽다.
유교에서 '격물치지' 라고 하여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진정한 앎에 도달한다' 라고 말하는 것도, 어떤 사물의 이름을 정할 때 그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올바른 기준을 세울 만한 밝은 지혜의 소유자가 되어야 바른 형태, 바른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세상에 '격물치지' 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스스로 '격물치지' 할 수 없을 때는 옛성인이 이름 붙인 것을 맹종하는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것을 생각해 보자. 옛 성인이 이름 붙인 그 형태가 불변하는 것인지 변하는 것인지, 우리는 스스로 '격물치지'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 도리가 없다. 개중에는 변하는 것도 있고, 불변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낮과 밤이라는 형태를 예로 들어보자, 낮이라는 형태는 해가 떠서 지기 전까지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요, 밤이라는 형태는 그 정반대일 것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통하는 기준이다.
길다, 짧다라는 형태 역시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것보다 긴 형태, 그것보다 짧은 형태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가볍고 무거움, 약하고 강함, 멀고 가까움 등도 어떤 특정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정한 것이다. 이렇게 이름 붙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두루 통할 수 있는 것이며, 이 밖에도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 친구사이 등도 불변의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품의 선하고 악함이나, 지혜롭고 어리석음 따위는 비록 그 극단은 누구나 알기 쉽지만,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지혜로울 수도 어리석을 수도 있는 중간의 경우는 명석한 통찰력이 아니면 딱히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렵다. 다시 말해 중간 위치에 있는 인간은, 아무리 선하다고 명명된 인간일지라도 악하다고 명명된 인간보다 더 악한 경우가 있을 것이며, 악하다고 명명된 인간일지라도 선하다고 명명된 인간보다 더 선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바르게 합당한 이름을 정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굳이 도덕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법률로 따져서 판결에 승리한 사건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하다고는 볼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에 붙여진 이름이 꼭 올바르다고 누가 증명할 것인가?
우주만상이 모두 안 그런 것이 없다. '격물치지' 하는 안목으로 보면 온갖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각기 이름을 갖고 있다. 그 이름은 그것을 정한 사람의 기준에 의해 붙여진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시공간에 지배를 받은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 기준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내 나이 구십을 살고 보니 세상의 모든 이름이 그 대상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 경우가 드문 듯하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니, 그 이름을 통해서 형태를 바로 알기도 어렵다. 하나 세상사람들은 본질을 바로 알려고 노력하기보다, 옛사람들이 정해놓은 이름을 가지고 그것이 그 사물의 본질인 양 생각하기에 바쁘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존재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갖고 있는 이름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 이름의 편견을 바르게 보아야 한다. 이름을 바로잡으면 형태 또한 바로 알게 된다. 이름과 사물의 본질을 서로 부합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사물의 본질과 사물의 이름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있으나, 무엇보다 먼저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그 꿰뚫음에 따라서 바른 이름을 정하고 나서 일에 착수하라.
나의 잘못을 용서하지 말라.
인생을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와 실수를 범하는 일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의 잘못은 잘 지적하고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용서하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
언제나 자신의 행위를 제3자가 되어 비판하라. 옳은가, 그른가 깊이 생각해보고 일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른 줄 알면서도 남이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자신의 죄를 더 크게 하는 일이다.
옛사람의 말씀에 '자신을 나무라면 밝아지고, 자신을 용서하면 어두워진다' 라고 하였다. 남을 나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나무라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면 점점 사람의 행실이 올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금방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안다. 다만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이 강해서 늘 그릇된 행위를 범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으나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이를 잊지 말라.
어떤 경우에서나 나의 잘못을 용서하지 말라.
옛어른은 하루에 세 번 반성하라 하였으나,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크게 반성할 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용서하려는 생각이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서 구하라'는 의미다. 물론 스승이나 벗의 도움을 받지 말고 혼자서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체는 '나 자신'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범하는 잘못은 보통으로 생각하고, 남의 잘못은 특별하게 생각하면서 지적하고 나무란다. 이러한 사람은 진리를 구할 때에도 '나'에게서 구하지 않고 남에게서 구한다.
나의 잘못을 용서하지 말라.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을 때에는 먼저 자신의 잘못에 비추어 보라.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스스로 용서하는 부류 속에 나 또한 포함되어 있는 지라, 나 스스로를 책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이 가을비에 생각한다.
여름의 무더위가 길어 농사에 손해가 적지 않았는데, 그 이후엔 가뭄이 계속되어 파종한 채소가 잘 나지 않는다고 걱정들을 하였다. 그러더니 팔월이 지나선 하루도 비가 안 오는 날이 없었다. 더불어 바람까지 세어 곳곳에 피해가 적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도 늦더위를 피해 밤이면 냇가의 반석 위에서 노숙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비가 오면서 날씨가 추어지자 따뜻한 방을 찾기에 바쁘다.
우리를 괴롭히던 늦더위도 하룻밤의 비바람으로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청량한 기운이 더욱 가까이 찾아든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말하던 '청량한 기운이 들판에 찾아드니 등불을 가까이하여 책을 벗하라'가 아니고 무엇일까?
오늘은 가을비가 창문을 적신다.
창밖의 나무들도 가을비에 마냥 젖는다.
어제오늘 계속되는 가을비와 가을바람에 온 세상을 덮었던 더위의 위엄이 어느 곳으로인지 알지도 못하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것이 하늘이며, 이것이 선이며, 이것이 또 인생이다.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순서를 잃지 않고 오는 것인데, 사람들은 봄이면 그 봄이 영원히 계속될 줄로 생각하고, 여름이면 역시 내내 여름이 될 줄 안다. 춘하추동 어느 것이든 다 그 극에 달하면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무엇이 다르리요.
가을비의 청량함에 더위가 흔적 없이 사라짐을 보면서 세상사도 오래지 않아 늦더위가 이러한 청량함으로 변하리라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예순 다섯에 쓴 시
넓디넓은 하늘과 땅 사이에는
문도 없고 담장도 없으니
오고감에 형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중에
옛부터 성인, 진인, 신인, 철인들이 횡설수설하며 경전을 지었구나
넓은 바닷물 위에 좁쌀알같은 인생 백년을
하늘과 땅에 부끄럼없이 산다는 것 또한 어려우니
세월은 번개처럼 순식간이나
삶의 자취는 길이 남아 있구나
일생을 크게 평하면 공을 쌓음과 죄를 지음일진대
그것은 오로지 선과 악의 두 글자로 나뉘어진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태어난 자에게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한 가지 이치가 있으니
마음을 집중하여 바르고 크게 나아가면 늘 만족을 얻을 것이요
사사로운 욕심으로 잘못을 들어가면 늘 만족을 얻지 못하리라
있음과 없음의 우주 역사 속에서
저마다 나름대로 생의 문장을 수놓는다
가소롭구나, 풀잎에 달린 이슬같은 인생이여
어느덧 예순 다섯의 나이를 맞이하니
앞으로 길면 삼십 년, 짧으면 이십 년밖에 남아 있지 않구나
결국 눈빛이 땅에 떨어짐을 어찌 면할 수 있으랴
물이 흘러가고 구름이 걷히니
본래면목이 드러나는데
애써 무엇을 이루려 함이 무슨 이로움이 있으랴
여기 맑은 향 한 대 사루고 차 한 잔을 마신 후
고요히 앉아 밝은 가운데 바라보니
푸른 산 흰 구름은 절로 한가롭고
밤낮을 흐르는 물만 공연히 분주하구나
이제 늙은이가 되어 마음을 평온히 하고
기운을 풀고 앉았으니
하늘과 땅이 태평하여 큰 바다와 같도다.
단기 4298년(서기 1965)년 5월
불행도 내게 있고 다행도 내게 있다
행복이나 불행을 초월하여 일을 한 사람에게는 품삯이 나오고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삯이 나오지 않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다. 원리를 벗어나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비상사태가 있을 수도 있으나 이것은 예외로 하고, 우리는 일을 하여 품삯을 받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하며 일을 안하여 품삯을 못 받는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다' 라고 한다. 그렇다면 불행도 내게 있는 것이고 다행도 내게 있는 것이 아닌가. 청소년 시절에 학업에 전념한 사람이 장년, 노년 시대에는 자연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되고, 반대로 청년기에 유랑하던 사람은 장년, 노년 시대에 낙오되어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또 학식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 근검 절약하여 저축한 사람이 늙어서 경제적으로 풍요한 위치를 가지게 되는 것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말하자면 실적이 있는 사람은 지위와 행복을 얻게 되고, 실적이 없는 사람은 불행만을 받을 뿐이다. 실적이 크면 클수록 답안도 크고 작으면 작을수록 답안도 작은 법이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내게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불가항력으로 이 예를 벗어난 것을 원리로 알아서는 안된다.
신은 공정하기 때문에 일을 한 사람에게는 삯을 주시고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삯을 안 주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이 원리를 생각해보고 각자에게 가장 알맞는 직장을 택하여 역량대로 일을 하면 신이 거짓함이 없고 또 한시도 지체함이 없이 곧 심판을 내리시고 보수를 주시리라는 것이다. 비록 불행한 입장에 있을지라도 누구를 원망하지 말아야하며 또 누구에게 기대어서도 안된다. 스스로의 힘을 양성하여 심판은 신에게서 받아야한다.
행과 불행은 자신의 실적대로 되는 것이다.
자기를 비판하면 밝아지고 용서하면 어두워진다
누구든지 남의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나 자신의 잘잘못을 공정하게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일이 지난 뒤에는 혹 자기비판을 해서 이 일은 잘못되고 저 일은 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무슨 일을 해 나가면서 하는 일의 장래 시비를 미리 예측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다.
자기가 자기의 일을 하며 남이 일하는 것을 비판하듯 공정한 양심적 비판을 가해 보는 사람이 몇 사람인지 각자가 생각하라는 것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취급하면 타인이건 자기이건 옳은 것은 옳은 것이요,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용서 없이 확실한 평가를 내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못하고 남을 비판하기는 가장 분명하게 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데는 아주 우물쭈물한 채 어둡기만 한 것이 세상 사람에게 보통 있는 경우이다.
이것이 자신을 비판하면 밝아지고 자신을 용서하면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는 아무래도 용서해가며 추진하는 관계로 일해 나가는 데 오산이 많고 실수가 많아서 성공을 못하는 것이다.
그릇된 생각만 없다면 누구든지 개과천선하고 성공의 길을 밟기 용이하리라고 본다.
뜻을 세움이 높지 않으면
인생 백년을 온갖 걱정과 생각들 속에서 세상 풍파를 겪으며 살아가다 죽으면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성현군자, 영웅호걸, 문장 명필 등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는 사람도 많고, 반면에 나쁜 냄새를 후세에 남기는 사람들 또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세계 인류 가운데 죽은 후에 그 이름이 그 나라 역사책이나 인간의 야사, 또는 세계역사 위에 영구히 전해지는 인물은 어느 나라든지 십만 명에 한명 정도가 될까말까한 것이다. 해와 달과 함께 빛나고, 하늘과 땅과 같이 오래가는 이름을 전하는 사람은 동서고금에 우주의 역사가 있은 이후 몇 사람이 안 되지 않는가. 조용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이 그리 바쁠 필요가 있어서 항상 온갖 풍파를 무릅쓰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걱정과 근심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서글픈 나머지 웃음만 나오게 된다.
각자가 자기의 생전에 최고 기록을 돌파해 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죽기 전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비록 목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죄될 것은 없다고 본다. 그러니 항상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깊이 생각해가며 무슨 일이나 탈선함 없이 꾸준히 해 나간다면, 큰 성공까지는 장담하기 어려우나 일생을 죄없이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가 과오가 없을 것인가? 다만 그것을 고쳐 착하게 하는 것이다' 라는 옛말도 있으니 일생을 통해서 하나하나의 언동에 과오가 없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답안에서 남보다 과오가 적은 사람이라는 평을 들으라는 것이다.
쉬지 않고 노력을 하라고 하면서 어찌 여유있게 충분히 생각하여 일에 착수하라는 것인지 혼동이 될지 모르나, 너무 바빠서 생각을 덜하고 선악의 구별도 못한 채 일을 벌이기 쉽기 때문에 일을 당하거든 너무 분망해 하지 말고 항상 여유있는 마음으로 정신을 거둬들여서 충분한 생각을 해야된다는 것이다. 선악의 가림도 없이 백가지 일을 바쁘게 하는 것보다 한 가지 일이라도 충분히 생각해서 선하고 성곡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비록 초목과 더불어 썩어 갈지언정 그래도 마음만은, 마음뿐 아니라 하는 일까지도 우주사의 누구라 하는 이름있는 사람들이 하던 일을 해보는 것이 일생을 보내는 재미요 취미라는 말이다. 뜻을 세움이 높지 않으면 그 배움이 모두 낮은 데로 돌아간다는 옛 성인의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자기 실력을 아주 생각하지 않고 망령되어 자신을 높여서 허영심만 가지고 실력이 없는 공염불같은 목표만 정해서는 안 될 것이요, 자신이 감내할 만한 일을 택해서 목적을 삼아 평생 해 나가면 살아서 성공이 가능하다고 본다. 나도 백발이 성성한 노경이나 소년시절에 뜻을 세운 것을 조금도 변함없이 추구하고 있는 중이요, 다만 내 추진력이 약하여 시작한 지점에서 오늘까지 나온 지점의 거리가 얼마 되지 못한 것이 최대 결점이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아주 탈선하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여기면서 내 눈빛이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 얼마나 진보될 것인가를 기대해 본다.
소아와 대아의 한계
세상사람들은 걸핏하면 소아니 대아니 하는 말들을 잘한다. 그러나 나는 이 한계를 잘 알 수가 없다. 소아나 대아나 공통된 점이 많은 것 같고 그 차이점이 얼른 눈에 안 띄는 것이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소아요, 어디까지가 대아인가 하는 의문이 없지 않다. 사람으로 테어나서 소아도 될 수 있고, 대아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닭이 울면 일어나서 늘 선을 행하는 자는 순임금의 무리이고, 닭이 울면 일어나서 항상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는 도척의 무리다' 라고 소아와 대아를 구분했는데 이는 자기 양심에 비추어 판단할 일이요, 밖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는 알 수 없다. 무심으로 악을 행하면 비록 악행이라도 벌하지 않고, 무심으로 선을 행하면 비록 선행이나 상을 주지 않는다고 평한 곳도 있는데 이것은 자기 내면의 양심상의 비판이요, 현실적으로는 밖으로 드러나게 선을 행해야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행위를 드러내야 악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 가운데 소아가 있고 악한 사람 가운데도 대아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선인이나 악인이라는 것은 세상사람들의 안목에 의한 일시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주공의 유언과 왕망의 근신을 세상 사람이 현세에서 관측하면 그 한계를 잘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대성인과 대악인의 엄청난 차이로도 일시적으로는 그가 소아인지 대아인지를 구분하기 곤란하거든 하물며 세인들이 소아니 대아니 평하는 것을 가지고 어디까지 진실에 부합되는지를 알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자기 자신도 목적을 확립한 사람이 아니면 주위환경으로 인해 혹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으니 그 소아성과 대아성을 어느 여가에 평할 것인가.
예를 들어 만리 길을 두 사람이 같이 가는데 한 사람은 소아를 위해서 목적지에 가고, 다른 한 사람은 같은 목적지를 가되 대아를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만 리 동행 중에야 그 동행인의 목적이 다른 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목적지에 가서도 두 사람의 실행한 일이 완전히 성공한 뒤에야 갑은 대아를 위해서 간 사람이고 을은 소아를 위해서 간 사람인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목적지까지 갔더라도 성공을 못하면 누가 그의 실행했던 일이 소아를 위한 것인지 대아를 위한 것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길을 가는 도중에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아무런 흔적도 없을 것이니 이런 구분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옛사람들은 평생의 큰 계획을 가슴속에 품고도 밖으로는 성공을 못하게 될 경우에 대비하여, 문장명필이나, 형정지학이니, 의약복서니, 은둔이니 하며 목적지에 가기 전에라도 부수적으로 이런 것으로라도 자기를 대표할 유업을 남기려고 고심하였던 것 같다. 군자라고 대아만 되라는 것도 아니요, 호걸이라고 소아만 되라는 것도 아니다. 자기의 습성이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같은 이 세상 백년을 지낼진대 소아도 될 수 있고, 대아도 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으므로 될 수 있으면 대아를 목표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대아와 소아의 한계가 아주 분명해서 보통사람은 절대로 대아라는 선을 넘지 못한다 해도 무슨 짓을 해서든지 넘어 보고자 할 것인데, 그 한계가 아주 모호하므로 마음만 먹으면 바로 먹고 실행만 올바르게 한다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왜 소아에서 방황하며 대아를 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소아와 대아의 한계는 일을 행하기 전에는 타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점으로 보면 대아인 소아도 있고 소아인 대아도 있다. 여기서 구분이 곤란하다는 말이다. 말로는 쉽게 구분을 하나 그 한계는 알기가 곤란해서 소아도 될 수 있고 대아도 될 수 있는 관계로, 될 수 있으면 그 한계를 초월하여 대아로 가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화를 받는다
어떠한 일이든지 일한 사람이 상이나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일하지 않은 사람이 남의 상이나 벌을 받는다면 이것은 공평치 못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상에서는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법률도 이 불공평함을 범하곤 한다. 어떠한 특수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이 조직화된 불법행동에 이용되기도 한다.
현 사회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증거 문제로 아무 죄없는 말단에서 처벌을 받는 사례가 많은 것은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그러나 이 처벌받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처벌받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한 편 여러사람이 처벌되는 문제를 내고도 이익을 혼자 차지하고 편안히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죄악이 누적되어, 법에서는 용서할지라도 하늘의 벌이나 신의 벌을 받게되고 그 다음 사람의 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증명할 뿐이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선한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하고 악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 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시기의 이르고 늦음은 있으나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재앙을 받는 것은 조물주의 대공식이다. 그저 양심에 비추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내려다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면 세상 사람들의 일시적 재앙이나 복을 받음에 상관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변화해 가는 세상사의 흐름에 같이 흐리지 말고 변함없는 공정한 마음으로 하늘의 원칙대로 대아를 위해 걸어나가, 자기가 자기 자신을 비판해 보았을 때 사람으로서의 할 일은 다 했다고 한다면 만점이다. 일마다 모두 잘못했다 하더라도 대공식으로 계산해보면 정확한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답으로 만족하지 말고 한 걸음 전진해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이나 또는 이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영원히 잊지 못할 선과를 심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현군자들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선을 권하심이며 또한 각 종교에서 복선화음론(착한 사람에게 복이 오고 악한 사람에게 재앙이 온다)을 제창함이라고 본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사람들이 일시적 현상을 보고 그것을 그 사람의 최종답안으로 잘못 아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서이고, 또다른 이유는 나 자신도 비판해서 쉬지 않는 노력과 성의로 처음의 뜻을 이루려는 자경의 심정에서이다.
우주의 대공전은 휴식함이 없고 우리의 심신도 이 공전을 따라서 구르고 구른다. 일음일양의 도는 변함이 없고, 우리는 그 가운데 생로병사의 궤도를 걷는다. 이 우주는 멸함이 없고 우리의 인류도 그와 같을 것이다.
일흔 살에 생각한 내 인생의 잘못
지난 일에서 기억이 새로운 것은 인생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좋은 기회를 만나고도 놓쳐 버린 일이다.
첫째, 아주 어렸을 때 무정 선생 밑에서 한문 공부를 시작했으나 그것을 계속하지 못한 일.
둘째, 여섯 살에 신식학교에 입학했으나 역시 길게 수업하지 못한 일.
셋째, 서울 정동 보통학교를 다니다가 통학 중지한 일.
넷째, 충북 영동에서 한학자 박창화선생의 지도를 일시적으로 받다가 중단한 일.
다섯째, 소학교 졸업후 다시 우등생으로 서울 고등보통학교에 선발생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일.
여섯째, 일본서 정신수련을하여 약간의 얻은 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 일.
일곱째, 충남 공주로 내려가기 전까지에 하릴없이 공백기를 가진 일과, 공주로 가서 우연히 상봉한 산주 박양래를 20년 가까이 상종하면서 그 절세의 무예를 눈으로만 보고 학습하지 않은 일. 이것은 내 자신보다도 후배들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다.
여덟째, 그러던 중에 내가 유불선 삼교와 제반 학설을 두루 공부했으나 깊이 정진하지 못한 일. 수십 년간 정신수련 행각을 하면서도 깊은 정열을 내지 못한 것이 내가 대성하지 못한 주된 원인이다.
아홉째, 만주와 몽고와 중국 등지에서 정신계의 여러 스승들을 만나고도 그들 밑에서 몇 년씩 수행하지 못한 일. 약간의 견문으로 눈만 높아지고 자만심만 커져서 늙은이가 되도록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낸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열째, 후배 양성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겨우 형식만 지도한 일은 내 책임이다. 내가 지도한 분 중에서 약간의 효과를 본 분으로는, 정상삼화까지 발현한 분이 설초 한 분이요, 그 다음 권오훈군을 비록 삼화까지는 못갔으나 간간히 드러나는 바가 초급자 이상의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그 다음이 송사이다. 이 사람은 비록 정신적 경지의 폭은 좁으나 그 혜안만은 초계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 다음이 구영직군인데, 구군은 비록 수련기간은 짧으나 그 정신적 발효는 매우 뛰어났다. 이는 전생의 흔적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이 주형식군이다. 이 사람도 단기적 수련으로 어느 경지까지 올랐었다. 역시 전생의 흔적이 있는 듯하나, 6·25때 희생되어서 유감이다. 그밖에도 여러 수련생이 있으나 계속성이 없으니 말할 수 없다. 모두 내가 전력 지도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며, 수련생들도 전심전력했다면 그 이상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가 아주 늙기 전에, 비록 바탕이 없으나 이 방면에 버리지 못할 우리 동지들을 규합해서 후배 육성에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2. 백두산족에게 고함
백두산족에게 고함
1. 백두산족은 누구인가?
백두산은 일찍이 온 겨레의 첫 조상이 되시는 단군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어 교화의 터를 잡으신 성스러운 산으로서 지나온 역사 동안 우리 민족의 삶의 주된 무대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겨레의 마음속에서 잊혀져가고 말았다.
백두산에 대한 망각은 바로 우리 민족 주체의 유무에 따라 부침해왔다. 우리 배달민족이 대륙 한복판에서 당당한 삶을 누려가고 있을 때 백두산은 강성한 겨레의 성산으로서 받들어졌으며 통일된 국민의식의 상징으로서 자리했으나, 국력이 쇠하여 반도 이남에서 주된 삶을 이끌어가던 시대에는 이름마저 남이 부르는 장백산으로 둔갑하는 지경으로, 지도상에 백두산이 어디에 백두산이 어디에 표시되든 무관한 우리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삼천리 반도 내에서, 그것도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려버린 지 반세기가 되어 가는 지금 우리들에게 백두산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러한 물음이 내포한 분단된 삶의 허탈감이 있기에 백두산은 더욱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찢기워진 삶의 봉합을 위해,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위해 백두산은 오늘도 남과 북의, 만주의, 시베리아의, 중앙아시아의, 미국의, 일본의, 세계의 모든 단군의 자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백두산의 회복은 잃어버린 우리 민족주체의 회복이요, 민족사와 문화의 회복이며 통일된 민족국가로의 회복이기도 하다.
백두산족이라고 이름하였을 때 이것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여 이룩되어진 고대 문화권의 창시자이자 담당자였던 우리 겨레, 즉 단군의 자손으로서 일관된 역사와 문화를 계승해가며 살아가는 우리 한민족을 나타낸다 하겠다.
우리 백두산 겨레가 나아가는 길은 단순히 고대의 찬란했던 문화를 되새기자는 복고적 감상에서 발단하는 것이 아니며,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첨단과학 기술문명시대의 온갖 문제와 모순들을 안으로 풀어 나가며, 아울러 민족의 대립과 분열을 화합과 통일로서 해결해 나가는 겨레의 활로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백두산은 우리 모두가 나아갈 정신적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영산으로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2. 황백전환기와 정신문명의 도래
황백전환기라 함은 바로 백산대운이 열릴 시기를 말한다. 백인들이 주축이 되어온 서구문명의 선구적 역할은 이제 한 세대 안에 끝나고, 황인종-특히 한국, 인도,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적 문명권이 열리고 있다. 이것은 얼핏 지극히 인종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힌 편견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20세기 과학물질문명의 핵심은 사실 백인을
다수인종으로 하는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 주도한 것이었고 앞으로 21세기 과학기술문명의 핵은 거의 피부가 누런 사람들 속에서 창출되어질 것임을 암시한 것에 불과하다.
확실한 것은 전환의 시대는 오고 있으며 그 조짐은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천문에, 역학에, 추수에, 원상에 드러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이 황백전환기가 바로 정신문명이 도래하는 백산대운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백산대운이라 함은 곧 백두산족의 큰 운명을 이르는 말로서 삼천 년만에 찾아온 역사적 순환인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새 문명의 전환은 세계적인 대성현이 출현하시되, 그 성인의 도력으로가 아니라, 인간적인 기술개발이라든지, 살상 파괴적 병기를 억제할 수 있는 평화적 무기의 발명 등, 새로운 물질문명의 건설로서 나아가 진정한 평화세계를 이룩함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정신문명의 발조에 관한 옛 성인들의 표현을 들자면, 우리의 성조 단군께서 4286년에 보통 사람으로 오신다는 것과, 대순이 4243년에 보통 사람으로 오신다는 것과, 석가모니불이 삼천 년 후에 용화세계가 된다는 것과, 문왕의 선후천 변괘론이 있고, 예수의 이천 년 후 부활론이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이시기에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대립이 없어지고 조화되어 지상천국이니, 극락세계이니, 장춘세계이니, 태평건곤이니의 창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평화세계 건설은, 우리 백두산족이 먼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 이념을 기반으로 삼는 대동책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갈 때 가능하다.
이러한 이상은 결코 허황한 몽상가의 허튼 소리가 아니라, 지나간 인류역사의 어두운 질곡에 대한 물극필반의 원리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3. 단학수련의 시대적 요청
단학의 기원은 백두산족의 성조이신 단군의 가르침에서 비롯한 바, 인간생명의 근원인 숨을 조절하여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더 나아가 본래 지니고 있던 정신의 밝음을 다시금 밝게 되찾음을 제일 목표로 삼아 그 명명함을 바탕으로 자기 주위의 세상을 이롭게 함에 힘쓰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하고 있다.
단학은 큰 길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걸을 수 있어서, 적은 것을 원하는 이에겐 적은 만큼, 큰 것을 얻기 위해 힘쓰는 이에게는 그만큼 큰 것을 제공한다. 실로 고대로부터 우리 겨레의 면면한 숨결이 고동치고 있는 고유한 정신수양 체계로서, 삼국시대의 화랑도 사상이나 국선, 조의선인제도 등은 같은 맥락이다.
또한 이 체계 안에는 지, 덕, 체의 세 가지 면을 아울러 닦을 수 있는 조상 전래의 지력개발법, 체력양성법, 덕성함양법 등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어서 누구나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능력에 맞게 선택하여 정성껏 행하기만 한다면 고유한 민족문화의 탁월한 하나의 계승자로서 사회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단학의 본질이 결코 현실 도피적이거나 은둔 지향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내온 역사를 보면 주체적인 민족고유사상이 외래문화 도입에 따른 사대주의의 만연으로 탄압을 받은 적이 매우 많아서 그때마다 역사의 주류로 나서지 못하고 그 밑으로 숨어 지내며 명맥만을 간신히 유지함에 바빴던 것으로 안다. 이제 역사적인 민족의 통일대업이 금세기 안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우리 백두산족의 민족 자주정신의 완벽한 회복을 위해서, 또한 홍익인간 이념의 현세적 실현을 이룩할 정신문명의 도래를 위해서,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민족정신의 단결을 튼튼히 해줄 단학 수련의 문호를 활짝 열면서 우리 모두 통일이라는 대동의 배를 저어 나갈 것을 천지신명에게 고하는 바이다.
대황조 봉안에 대한 사견
대황조는 우리 겨레의 가장 높은 첫 조상이 되는 분으로서 '큰 할배'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오족은 누구나 다같이 대황조를 숭배하는 것이 당연하다. 고대에는 집집마다 단군을 모시고, 시월 상달 초사흘이 개천절인 관계로, 어느 집을 막론하고 터주(이 땅의 주인이라는 의미)에 고사지내지 않는 집이 없었다. 이 풍속이 오천 년에 가까운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것을 보면 그 당시를 추측할 수 있다. 중간에 나라에서 별별 방식으로 다 방해하였지만 우리 민족의 조상을 위하는 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삼국통일시대부터 조선 말엽까지는 국가나 지배층에서 대황조를 모시는 경우는 없었고 오직 민간에서만 숭배하는 유풍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은 신라 말엽부터 당나라를 모방하려는 바람이 불어서 자기 나라의 전래하는 역사가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군님이 우리의 대황조이시며, 또 우리나라 최초의 임금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단군시대의 연대가 중국 요순시대와 같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역사적 결함이다. 우리가 본 바로는 현재 단군기원보다 304년을 더한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올바른 단군기원이라고 확언해 둔다. 지금으로부터 사천 오백팔십구년 전에 이 동방에서 대황조께서 탄생하셔서 우리 인류를 처음으로 만물의 영장답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고, 처음으로 국가를 이루어 임금이 되셔서 가르침을 받은 무리 중에서 무수한 인물들을 책봉하시고 사방으로 파견하셔서 각 민족을 가르치도록 하셨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말하는 복희, 신농, 황제로 대칭된 우리 단군 역대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요가 처음으로 한족을 통치한 제왕이라고 확언해 둔다. 공자가 춘추시대에 나셨으나 당시 여러가지 전설을 모두 말살하실 수 없기에 오로지 중국 역대의 왕들의 치국평천하 하던 일을 말씀하시거나 기록하실 때 "중국의 문화는 요순시대에 시작되었다." 라고 하신 것을 볼지라도 오제가 모두 중국의 천하를 다스린 제왕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된다. 주역에는 복희씨가 처음으로 팔괘를 그린 일을 말씀하시고, "북동쪽의 도가 밝으므로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라고 하시며, 또한 "임금은 동쪽에서 나온다" 라고 명시하셨다.
주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것이 과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원리는 뚜렷한 역사적 사실과 부합된 것이다. 공자도 우리 배달족이므로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바다 건너 동쪽으로 가고 싶다" 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임금의 치수사업에 주신의 공력을 잊을 수 없다" 라고 하였는데 그 주신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은 우리들을 '신' 이니 '진' 이니 한다. 그 후에 이름이 변하여 숙신이니 여진이니 선비니 하는 것은 모두 소리를 따서 지어낸 것이요, 모두 우리 민족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한족에게 우리가 패해서 밀려나기는 주무왕시대부터이다. 그래서 한족은 광대한 토지를 차지하여서 점점 더 늘어나고 우리 족속은 여러갈래로 나뉘어져서 극히 쇠약해졌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자주적으로 지냈으나, 삼국통일이 있은 후부터 우리 역사는 점점 없어지기 시작하여 벌써 천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니 우리 대황조의 역사를 다시 볼 도리가 없게 되었다. 현재 이야기되고 있는 단군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 현상을 증명할 어떠한 근거도 문자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중국에 가서 보면 단군의 역사가 종종 단편적인 글이나 야사에 나타나 있고, 도관이나 선서에서는 더 많이 볼 수 있다. 기자의 홍범이라는 것이 단군님에게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근본 취지인 듯하고, 요순의 전수심법 역시 우리 대황조의 전수심법인가 한다.
천여 년 중단된 역사의 고고학적인 증거를 나는 지금 구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생긴 가장 큰 폐단은 우리의 대황조 숭배심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절과 관이 병행하나 우리나라에서는 관이라는 이름이 없다. 우리나라의 절에서 숭배하는 현상을 보면 부처와 제석전과 산신각과 칠성각과 독성각을 함께 숭배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는 중국의 사원에서 제석천을 동일하게 숭배하는 일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는 우리나라에 한한 일이다. 이 제석전이 바로 단군전이라고 본다. 시골에서도 시월 상달에 터주의 제석단지에 고사지내는 일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불전을 숭배할 장소가 없어 제석전에다 같이 모셨던 것인데, 불교는 융성하고 단군의 전래 역사는 국책상으로 소멸되던 때라 불전이 주인이 되고 주인이던 제석전이 나그네의 위치로 밀려나간 것이다.
신라 말기까지도 화랑도의 국선과 같은 풍속이 남아 있었으나 고려와 조선조에 와서는 단군 숭배사상이 아주 없어져서 국가에서는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동몽선습과 동국통감에 겨우 "신인이 태백산(백두산) 박달나무 아래 내려오사" 라고 씌어 있을 정도요, 상세한 표현은 없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조선시대 말엽에 와서 비로소 대종교의 나철선생이 총책임자가 되어 천여년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을 밝히는 성스러운 일을 시작했으나 역시 미진한 것은 수년 후 나라가 망하고 일제가 이를 허용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뜻 있는 분들은 만주로 가서 민족운동을 하였고, 대종교도 쉼없는 노력을 하였다. 을유 8.15해방에 선배 여러분이 입국한 후로 민족적 대선전을 하여 국가에서 계몽정신을 가져야 함이 당연한데 소위 주권자라는 사람들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민족의 근원이신 대황조를 숭배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숭배하는 대상을 국민 전체가 숭배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이 어떻게 대황조를 숭배함으로써 민족정신을 단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인가? 그러나 민간인으로 자기의 주된 목적이야 무엇이건 간에 항상 대황조를 모시고 민족통일사상을 고취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크게 감사한 일이다. 대황조께서 나라를 처음 여신 시조라고 하는 것으로도 누구나 모셔야 할 것이며, 그뿐 아니라 우리 인류사에 비할 바가 없는 대성이시고 우리 배달족에게 오족을 통한 조상이시니 누구라도 모시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비록 먼 조상일지라도 모두에게 다 같은 조상이니 누구 숭배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비록 다 같은 자손이나 이 대황조를 모시었거든 욕되지 않게 하기를 빌 뿐이다. 그리고 장래에는 국가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대황조를 숭배하는 마음없이 모두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치 주권자들이란 근본이 없는 나무와 같다고 확언해 둔다. 입으로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린다는 말과 대황조 이념 운운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하는 일을 보면 대황조 앞에 죄인 아닌 사람이 별로 없다. 앞으로 대황조의 홍익인간 이념이 여실히 드러나기를 빌며 이만 줄인다.
단기 4285(서기1952)년 9월 28일
만세 대장부의 출현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이 세계현상으로 보아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인류가 거의 동일한 문제에 의문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의, 식, 주에 관한 문제는 전인류의 공통된 문제이니 이는 제외하고, 그밖에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와의 자웅을 겨루는 결정이 언제 나는지에 관한 것이고, 또한 이 양자간의 충돌이 전 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양자간의 충돌이 없이, 무슨 좋은 제안으로 전쟁없는 평화세계가 창조되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약소국가와 민족들의 공통된 염원이다. 전세계가 좌, 우, 중간의 3파로 갈려 있고 그밖에도 좌나 우, 중간도 아닌 순회색파도 있다. 국가들의 원수나 지배급 인물들이 이 3파로 나뉘어 있을지라도 인류전체는 그들의 지도자들의 의사와는 거의 백팔십도 반대로 전쟁없는 평화를 제일 공통된 희망으로 여긴다. 하지만 전인류의 의사를 무시한 소수 지도인물들의 장난으로 세계는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다. 어느 나라든 극소수 수뇌들에게 희생이 되어 순진한 양노릇하는 백성이 불쌍하다. 그 극소수의 인물들은 전국민을 제물로 놓고 자신들 마음데로 요리하고 최저보수로 의식주를 해결토록 착취하며 자신들은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 세계인류의 공통된 목자로서 모든 사람이 희망하고 있는 이상을 실현시킬 만한 역량이 있는 인물이 나온다면 전인류가 쌍수로 환영할 것이요, 이 사람이야말로 우주사에 최대영광을 차지할 인물이 될 것이거늘 이 좋은 시대에 어느 곳에서 그 위대한 사업이 세워질 것인지 궁금하다. 역학으로 보면 간도광명이라 하여 우주사가 전개된 이후 인류의 문명이 이 간방에서 시작하였고 다시 광명이 간방에서 온다고 하였다. 이것이 중명(거듭 빛남)이라는 것이다. 백두산족에게서 세계인류의 평화를 건설할 인물이 나오리라는 옛 성인들의 예시인데 누가 이 운에 맞는 인물인가, 하루라도 속히 출현하라, 전세계인류는 고대한 지 오래다.
"때로다, 때에 이르렀도다. 다시 오지 않을 때로다. 만세의 대장부로서 오만년이나 갈 때로다" 한 최수운도 이것을 말한 것임에 다름아니다. 수운의 세대보다는 현재가 누가 보든지 바로 그 때임에 틀림이 없다.
이 때를 버리고서 과연 어느 때를 기다릴 것인가. 주저말고 속히 오라. 이때를 잃지 않을 장부로다.
양쪽 불이 싹을 움직여서
누런 학 울음소리 가운데 싹은 트고,
현무가 물 속에서 잘 길러져서
푸른 호랑이 한 번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들 크게 놀라거든
금닭이 한 번 우는 소리에
붉은 바람이 불어오고
지난 정묘년부터 시기가 도래하여
문밖에 복숭아와 오얏이 만발하는구나.
이것이 오만 년 무극대도의
서른 여섯 성스러운 무리임이 분명하다
북쪽으로 만 리 얼음바다에 이르고,
서쪽으로 금사람이 곤륜산을
대함은 한국과 중국이 한집안으로서
천하를 호령하며 황백을 바꿈이라.
이와 같이 다시 이와 같이하여
홍익인간이념을 펼치는 것이
바로 요임금이 세상에 나오시는 것이요, 큰 성인 순임금이 다시 출현하심이라.
단기4285(서기1925)년 9월28일
제천을 하고 돌아오며
해마다 정월 초이틀이 우리 동리 산제일이다. 1년간의 동네사람의 안정과 태평을 위하여 이 날만은 동민 전체가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해마다의 행사이다. 누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각자를 위해서 산촌에서 산제를 지내는 것이다. 비록 합심하지 못하는 동네사람들이나 삶의 목표는 동일한 관계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같은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된다.
일 년에 두 차례인 산제 제삿날만이라도 정신이 일치된다는 것은 그것을 미루어서 다른 일에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좋은 증거이기도 하다. 온 동네가 산제 준비로 정성을 다하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나는 매년 이 날에 가족을 데리고 제천을 해왔다. 산에 제사 드리나 하늘에 제사 드리나 모두 동일한 의미이다. 다만 목표가 조금 다르다는 것뿐이다. 동네사람의 산에 제사지냄은 각자 일신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이며 이것으로 한 동네 전체의 무사태평을 도모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도 역시 의미만은 같다고 생각된다. 심축(마음으로 비는 것)으로 우주의 과거, 미래, 현재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현들과 선각자들에게 우주만상이 순리대로 잘 길러져서 태평 무사할 것을 묵묵히 도와주십사고 가장 먼저 빌고, 그 다음 대황조님의 홍익인간 이념이 하루라도 빨리 실현되시기를, 그 다음은 현 배달민족의 근본적인 단합으로 우주가 다시 광명해지는 씨앗이 속히 싹으로 움터 나오게 하시기를, 그 다음은 이 세상이 함께 살고 있는 백산운화의 일꾼들의 규합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빌고, 이것을 위하여 이 몸의 건강도 같이 빌고 돌아왔다.
근본적으로 보면, 산에 치성을 드리는 동네사람들의 의사나 하늘에 제사지내는 나의 뜻이나 모두 같은 안정과 평화를 마음으로 빌어마지 않는 것이다. 한 자 이상 쌓인 눈을 헤쳐가며, 좌우상하로 온갖 하늘의 성현과 선각자들이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심경으로 제천을 끝마치고 십 리 얼음길을 돌아오다 동네사람들의 산제사 불빛을 바라보고, 홀로 앉아 묵묵히 생각하여 이 기록을 어지러이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잠재의식인 천량(하늘로부터 받은 양심)을 그대로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심축한대로 소원성취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
우리가 유년시대부터 노년시대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거울삼아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상을 예측해 보면 어떤 일정한 동일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상을 추측해보아도 역시 동일궤도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으며 한 사람도 그 공식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출발하여 면으로 ,군으로, 도로 확대해 가면서 약 60여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사람들이 살아 나가는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통계학적으로 조사하여 동일궤도상의 공식에 적용시켜 본 결과, 이상하리만치 그 공식이 불변의 철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나라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시도해 보아도 모든 통계가 그 공식에 일치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만이 공식이 적용되고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내 한 몸의 일생에서 시작하여, 이것을 미루어서 사방으로 폭을 넓혀보고 점차적으로 우리 나라 전체에까지 확대하여 조사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서 과거의 역사를 회상해 보면, 역사적 흥망성쇠라는 것도 한 개인이 흥망성쇠 하는 공식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앞으로 올 일을 예지 하는 것인데, 나는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즉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현재와 과거를 확실히 아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행적만 잘 안다면 미래에 올 일이야 불을 보듯 환한 일이다.
조물주가 이 공식을 내놓지 않았다면 개인이나 한 국가나 흥망성쇠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 이 불변의 철칙을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고 쇠함을 면치 못할 것이요, 그 공식을 알고 즐겨 지키는 자는 흥하고 성함이 자연히 오는 것이다.
이것이 대자연의 법칙이요, 공식이다. 하늘이 무엇이며 조물주가 어디 있느냐며 이 대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는 자도 간혹 있지만, 공식과 법칙을 위반하는 이런 자들의 행위가 결국 멸망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역사는 밝혀주고 있다.
여기서 이 공식을 지키는 자의 행위를 선이라 하고 그 공식을 위반하는 자의 행위를 악이라 해보자. 그리하여 누구나 그 생각과 행위에 선한 요소가 많으면 그 결과 복이 찾아올 것이요, 악한 요소가 많으면 재앙이 오는 것이 대자연의 법칙이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자가 잘되고 선한 자는 고생만 한다고 말하나, 이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시간에 느리고 빠른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공식이 예외로 작용한 경우는 역사상 없었다.
현세계의 물질문명이 비록 첨단을 걷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모든 흐름이 점차 악화일로로 치달아 자멸의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나라도 남북통일이 언제야 이루어질 것인가, 혹시 파국이 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도 아주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쉽사리 낙관하지 못하고 있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북한이 아무리 남침준비를 하고 있다 하여도 남한에 사는 국민이 그 고난을 두 번 당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생각이다. 또한 한국도 6.25 당시와 같은 무방비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아무리 전쟁을 잘한다고 해도 승산 없는 전쟁을 일으킬 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민생의 안정이다. 즉 사회의 특권층에게 집중되어 있는 부를 분산시켜 극심한 빈부의 차를 과감하게 시정해야 한다. 이렇게만 되면 나라의 힘이 커져서 전쟁의 가능성은 없어지며,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가장 최상책의 전략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어떠한가?
그것과는 정반대로 국내 특권층이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자기네 사욕을 채울까하고 있으며, 또한 그 특권층들에게 아부하며 나라와 민족을 어찌되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패한 인간들이 이 세상으로 활보하고 다니는 형편이다.
그리하여 국민들도 '사람이 살아가는 정당한 도리' 따위는 염두에도 둘 새 없이 서로 이익을 쫓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스스로 멸망을 부르는 길을 서슴없이 택하고 있다.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이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지나 장차 날이 밝아오려는 때에 온갖 귀신들이 난무하는 현상이요, 장차 온갖 어두운 것들이 모두 사리지는 물극필반(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의 현상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현상이 비록 눈앞에서는 비참하나 머지않아 밝은 태양이 떠오를 전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미리 어둠 속의 한 가닥 밝은 빛을 길러 꿈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이 선각자들의 책임이다.
날이 모두 밝은 뒤에는 누구나 광명을 아는 것이니, 이 물극필반이라는 경지에서 자아를 잃지 말고, 탁류에 헤메이지 말며, 미래의 일꾼이 될 씨앗들을 썩지 않게 싹틔울 역할을 각자 스스로 맡아야 한다. 이것이 나의 한 가닥 희망이다.
물질문명의 극이 머지않아 정신문명과 교체할 단계에 왔다는 것을 나는 다시금 강조한다. 이 새로운 정신문명의 건설자, 곧 미래 5천년 조화세계의 주역은 바로 우리 백두산족임을 모두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옛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힘이 같으면 지혜를 헤아리고
지혜가 같으면 덕을 헤아린다.
일하는 이가 많고 쓰는 이가 적으면
그 쓰임이 넉넉할 것이요,
쓰는 이가 많고 일하는 이가 적으면
그 쓰임이 궁핍해질 것이니
만인과 더불어 같이 기꺼워하는 사람이 흥하리라.
이것이 가장 쉽고도 또 어려운 일이다. 행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다만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하면서 한편으로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도리를 핵심으로 하고 나아가야 동녘에 떠오르는 맑게 개인 아침해가 모든 사악함을 몰아내고 온누리를 비추는 상쾌함이 있을 것이다.
대운맞이 운동을 전개하자
옛사람의 시구절에 '몇 달이나 눈에 덮여 있던 마른 나무가 한 번 동풍이 불면 가지마다 꽃을 피운다' 라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인간으로 별별 어려움을 다 당하고 있더라도 시가만 도래하면 자연 매사에 순조로이 성공한다는 해석인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시기가 오더라도 본인의 상당한 준비와 노력 없이, 그저 순풍에 돛단듯이 나아가는 일은 없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비록 사서(춘하추동)에 봄이 오더라도 씨앗을 심지 않은 곳에 자연히 수확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대자연의 청산녹수에 번식되는 동식물을 예외로 하고 인생살이라는 것은 뿌린 자가 거두는 것이 바른 법칙이다. 그러니 앞으로 아무리 길운이 도래한다 해도 그 길운을 맞이하자면 그만한 노력을 축적해야 비로소 그 길운에 참여할 수 있고, 그 노력의 대가에 비례하여 보수도 얻는다고 본다. 아무 준비도 없이 그저 길운을 받고자 하는 것은 농사짓지 않고 추수하려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 백두산족의 대운이 머지않아 도래한다해도 이 대운을 맞고자 준비와 노력을 구비한 사람이 제일 먼저 그 운의 소식을 받을 것이요, 준비와 노력이 없는 사람은 제일 뒤에 참례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일한 백두산족이라도 우리가 어느 족속보다도 먼저 대운맞이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천도나 인도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은 옛 성인들이 전해주시고, 후세 사람들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현세 사회상을 보면 별별 각색이라 얼른 판단이 서지 않는다. 윤리도덕과는 아무 상관없이, 선악을 가리지 않고 자기 목표만 바라고 전력을 다해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적당히 윤리도덕에 관심이 조금 있는 사람들도 몸조심해가며 이 사회에서 출세해 보려고 애쓰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전부라고는 못하겠으나 거의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통론적으로 윤리는 도외시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천도와 인도는 예외이다. 지난 해 날이 몹시 추웠던 때는 그 다음 해 여름이 더 덥고, 풍우상설이 다 그 예를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사회에 있어서도 비록 그 빼고 더하는 운산이 시기의 빠르고 느림의 차이는 있으나 예외는 없다. 한 나라나 한 개인이나 모두 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삼천년 퇴운의 시기가 만기되고 길운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전 국가 전 국민의 이를 받아들일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 그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왕 오는 길운을(우리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요, 아시아 전체에 올 운이다) 국가 국민 전체가 노력해서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먼저 알려진 책임이며 도리이다. 그 운이 온다고만 말하고 아무 준비를 못하고 있으면 국민의 소득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요, 그 책임은 선지자로서 대중을 각성시키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다 할 것이다. 알지 못하여 말못한 사람은 신에게 용서를 받아도, 알면서 행하지 않은 사람은 신의 질책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삼천년만의 대운이 눈앞에 왔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시아 민족들이여, 백두산족들이여! 깨어서 운맞을 준비를 하시오!'
바다가 깊으나 바닥이 있고
바다가 깊으나 그 바닥이 있고, 산이 높으나 그 꼭대기가 있음이 자연의 이치라 하나 이 천지자연의 과대함은 얼핏 어디에 비하여 말하기 어렵다. 또한 이 우주의 아득한 과거와 무궁한 장래도 그리 쉽게 이야기할 바가 아니다. 이 우주의 상하로 위가 생기고 좌우로 경이 나와서 이 날과 씨가 과거 현재 미래를 이루어가고 있다.
우리도 이 이루어짐 가운데의 한 물건이다. 세월의 풍상 속에서 늘 시비를 가리며 살아가는 한 물건이다. 세월의 풍상 속에서 늘 시비를 가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깊은 밤 고요히 앉아서 묵묵히 생각해 볼 때면 그저 감개가 무량할 뿐이다. 이 우주 속의 내 존재야말로 드넓은 바다 속에 떠있는 좁쌀 한 알이라는 옛말이 절실하게 공감된다. 그렇다고 비바람 부는 대로 세월을 허송할 수는 없다. 이왕 이 몸이 무궁한 우주를 장식하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옛 성인의 말씀에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또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면 누구나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초목과 더불어 썩어 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어찌 초목이나 짐승과 동일한 행동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초목이나 짐승보다 우월한가? 이 만물 중에서 영장이 되는 것은 오직 오륜(다섯 가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도리)이 있는 것이라고 동양의 문화는 가르치고 있다.
이 오륜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초목금수와 조금도 다름이 없으니 사람으로는 누구나 이 오륜을 지켜서 진정한 사람의 도리를 해야 하는 것이요, 성현군자들은, 초목금수의 구별이 없는 인간들이 하루라도 빨리 그 구별을 알도록 모범을 보이고 가르쳐서 인간이 만물 중의 가장 영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이 이를 위하여 동서남북을 막론하고 성현을 배출하시어 군자와 스승을 만들어 인간을 지도하시는 것이다.
현세계는 어떠한가 하면, 과학문명이 그 극에 달하여 물질을 이용하여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길은 끝없이 발달되고 있으나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정신도덕의 질서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귀하다. 이러한 현상은 내가 보기에는 우주가 물질문명에 취하여 정신도덕을 망각하고 암흑 속에서 방황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길고 긴 깊은 밤이 새벽별이 하늘 끝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깊은 밤이 점차 밝아오려 할 때 뭇 별은 빛이 없고 한점 계명성도 희미하니 하늘은 더욱 캄캄하다. 이때가 바로 지금의 물질문명 만능시대인 것 같다.
어찌하여 오래지 않아 동방에 하나의 붉은 해가 이 우주를 다시금 밝혀 줄 것을 꿈속에라도 생각지 못하는가? 이 초목금수의 시대 중에서, 닭 울음소리에 새벽 어둠이 걷히고, 해가 떠오르기 전의 어둠 속에서 새벽을 알리는 큰 종이 울리면, 동쪽 창가에서 붉은 해를 맞이하는 역할이 오만 년 대동책의 발단이 될 것이다. 또한 초목금수의 지경에 있는 세계 인류를 모두 광명천지로 인도하는 책임을 완수하면 이는 족히 우주사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정신도덕으로 물질문명을 계승하여 우주일가주의로 평화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이요, 우리 대황조님이 백산운화라고 미리 말씀해 두신 내용이다. 이 백산운화(백두산족의 운명적 변화)라는 것은 온 세계를 금수의 상태에서 발전시켜 크게 평화로운 세계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성인이 나시어 인류를 가르치셨으나 다가올 새로운 세계에는 한두 사람의 성인의 신기한 조화로가 아니라, 이 시대의 전환기적 사명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이 물질문명의 극치점을 파악하여, 세계를 호령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도임하여 각기 나라를 안정시키며 산업을 안정시켜 영원히 두려움 없이 살아갈 성스러운 세상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현 국제연합에서 세계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그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장래의 황십자가 나올 조짐으로 적십자, 백십자, 흑십자등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현세상이 말할수 없이 어지러운 상황이나 '바다가 깊으나 그 바닥이 있고, 산이 높으나 그 꼭대기가 있다' 라는 원리에 불과한 것이니 항상 일치일란의 끝없는 순환으로는 우주의 광명은 오지 못할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명이 우리 백두산족에게 있다는 것을 자중하며 사명완수를 위한 자격 양성을 목표로 백절불굴하고 나아갈 것이다.
내 평생의 목적
옛사람들 같으면 육십이란 나이면 공을 이루고 은퇴하여 일없이 한가로운 몸이 되어 깊은 산중의 선비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보통인데. 나는 아직도 공을 이룬다기보다 공을 이룰 만한 사업조차 착수하지 못하고 어느덧 머리가 희어졌으며, 일상의 생활고에 얽매여 춘하추동, 더위와 추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쉴새 없이 분주한 몸이 되었으니 옛사람들의 지내온 일에 비하여 부끄러움이 많다. 그래도 나의 마음만은 옛적의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기대를 가지고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알맹이 없는 공상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해 본 일도 있으나 아무리 생각을 반복해 보아도 내가 이념하고 있는 일이 내 마음속에서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청결하게 싹트고 있는 것은 이것이 꿈이건 사실이건 나로서는 평생 같이 해온 둘도 없는 친구인 까닭이다.
내가 이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것은 내력의 부족이요, 그 이상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옳지 못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하기 때문에 나의 실력양성을 못하는 것을 후회할지언정, 내가 육십 년 긴 세월을 두고 생각하던 것을 고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이야 무어라고 하든 나는 이 이념으로 살고 이 이념으로 죽을 따름이라고 스스로 굳게 맹서를 하는 것이다.
이념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이 이 치란(혼란과 평화의 두 세계)의 끝없는 순환으로 진행되어온 세계를 늘 평화로운 상춘세계 또는 태평건곤(크게 평화로운 세계)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요, 또 우리 동야에서 먼저 이를 모범으로 보여 세계가 한가족 같이, 온 우주가 모두 평화롭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요, 옛날처럼 평화와 혼란 시기의 순환으로가 아니라 늘 평화로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의 실현을 위한 씨앗을 우리 백두산족이 뿌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약자가 평화를 구하는 것은 강자에 대한 애걸이요, 실현될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계에 군림할 정신문화를 물질문명과 부합시켜서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대발명을 해 놓고, 이 발명품을 전쟁이나 정복을 위해 악용하지 말고 세계평화의 호소에 사용할 것을 나는 백 번 천 번 부탁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불가능한 것인가를 의심할 사람도 있으나, 이것만은 절대 확실성을 가진 것이요, 내가 비록 어리석으나 우리 민족이 이러한 기본 준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하는 관계로 내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바를 변함없이 꾸준히 밀고 나아가는 것이다.
내 이념이 내 한몸에 대해서는 아무 이득이 없는 것 같으나 대아가 이루어질 때에는 소아쯤이야 자연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므로 나는 60년간 가족을 돌보지 않고 일정한 직업도 없이 지내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 능력을 과대평가 함은 아니다. 이런 이념을 가지고 변함없이 성패를 가리지 않고 죽기까지 나아가는 것이 내 평생의 목적일 뿐이요, 다른 일이 아무리 좋다 해도 도중에 길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나아감을 맹서하는 것이다.
우리의 종교는 무엇으로 정할까
우주에 충만한 무형의 도를 우주의 만물이 걷고 있다. 여기서 형이 있는 도 같으면,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다가 길이 갈리는 곳에서 물어 보고 가든지 아니면 지도를 가지고 가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형이상으로 걷는 길은 그 형에 없는 관계로 동서남북의 방향이 없고, 높고 낮음, 깊고 얕음의 지형이 없으며 크고 작음, 넓고 좁음의 구별이나 육해공로의 표시가 없으므로 맹목적으로 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수많은 각각의 종파들이 가르침의 문을 열고 "내가 가르치는 것이 가장 옳다"고 아전인수를 하니 누가 그들의 올바름과 그름을 알 것이며 비록 올바르다 하여도 우리가 걷는 방향과 같은 방향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길의 종류는 천지개벽에서 다음 개벽까지 몇 차례를 지나도 변하지 않을 길이 있고 가다가 몇 번이고 변할 길이 있다.
대륙간에 통하는 길이 있고, 육대주 오대양의 공로가 있고, 국가간에 통하는 깃이 있으며, 한 나라에는 그 나라의 국도가 있는 것이다. 도, 군, 면, 리에 각기 모두 통로가 있으니 어느 길이 길 아니며, 어느 길로 가든지 못 갈 길이 있으리요만 내가 말하는 것은 태양의 적도와 달의 황도와 같은 불변의 길을 말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가는데 제일 공통된 길, 우리의 국도요, 외국인이 걷더라도 여전히 세계의 대통로가 되어서 가다가 빗나가는 일이 절대로 없는 그런 길을 말하는 것이다. 천 년 만 년 가더라도 통할 수 있는 길, 옛 길이라고 없어지지 않을 길을 택하자는 것이다.
오천 년 전의 상고시대에 우주 역사이래 처음으로 동방의 임금이 되신 단군 성조께서 백두산에 내려오셔서 혼원천지(하늘과 땅의 질서가 아직 서있지 않은 혼돈 상태)의 민족의 첫 임금이 되시고 "위로는 하늘을 받들고, 아래로는 땅을 내디디며, 그 가운데 사람이 존재한다." 삼일신고의 가르침을 베푸셨으니 이것은 천부경의 '일시무 무종일(하나는 없음에서 비롯했고 없음은 하나에서 그친다)이요, 일이삼 삼이일(하나이며 셋이고 셋이며 하나이다)'의 원리로서 그 본은 태양의 앙명이라고 하셨다. 혼원시대란 곧 캄캄한 밤중이라는 말이다.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때는 인간의 숙면기와 같다가 자축인시가 되어서 태양이 밝으니 상천, 하지, 중인이라, 무에서 하나가 생기고, 하나가 또 하나가 되고, 또 하나가 되어서 삼재(천, 지, 인)로 나뉘어지니 이것은 태양의 앙명에서 근본이 생긴 것이다.
단군 성조의 이러한 가르치심이 중국에 가서 유교가 되어 "가운데에서 사망으로 흩어져 만물을 이루고, 끝에서 다시 모여 하나의 이치가 이루어진다." 라고 유정유일(오로지 하나로 사무침)로 가르치는 법이 되니 역시 천부경의 '일시일종'을 그대로 가르치심이요, 이 가르치심이 남방으로 나가서 불교가 되니 이 천부경의 '무종일'이라는 것을 그대로 가르치심이요, 허무적별이 모두 그 무자를 일컬음이다. 또 그 가르치심이 곤륜산으로 가서 선교의 명이 되니 이 명은 또한 천부경의 본 태양의 앙명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일기화삼청(하나의 기운이 세 가지 맑음으로 변화함)하고, 삼청화일기(세가지 기운이 하나의 기운으로 변화함)' 되는 원리이다. 이른바 유불선이 삼교로 나뉘었으나 그 이면에는 삼청화일기하고 일기화삼청하는 동일한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서 그 길을 가르치는 법이 다를 뿐이지 가서 보면 두 곳이 아니요, 한 곳이라는 말이다.
그 외에 많은 길들이 있으나 모두 아전인수하는 가르침이요, 대동소이한 점이 많을 것이다. 다 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가장 걷기 쉬운 길, 오천 년이나 우리 조상들이 걸어오신 길, 알고도 걷고 모르고도 걷는 이 길을 유라고도 하고, 선이라고도 하며 불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는 이 가르치심의 근본은 바로 삼일신고였다. 이 가르치심을 억지로 이름 붙여 수도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름이 생기면 장단이 생기니, 그저 우리는 도라고만 해두자. 이 가르치심을 가지고 말씀하신 이가 성조 단군이니 단군은 우리의 대황조요, 우리의 종교상 교조는 아니시다.
우리의 교조로는 일기화삼청 하고 삼청화일기하는 혼원일기(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태초의 한 기운)를 숭배하고, 이 교를 받드신 대황조는 여전히 대황조로 우리가 같이 숭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세상에서는 대황조를 대종교의 교조로 모시나 우리는 대황조를 당시의 사람으로서 하늘의 가르침을 받드신 분이요, 우리 민족종교의 교조라면 당연한 태극, 무극, 유극의 원리인 혼원일기라고 본다. 우리의 교리는 삼일신고를 주로 하되 우리가 보고 알게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 교는 우리만이 걷는 노정이 아니요, 우주에서 움직이는 군생만물들이 모두 걷는 대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그 가르치심은 과거만도 아니요, 현재만도 아니요, 미래만도 아닌 과거무량수겁 전에서 시작한 것이요, 미래무량 수겁에도 그 끝이 없을 대도라는 것을 거듭 이야기해 둔다.
이 교리는 문자화하지 않는 것이 종리이나, 부득이 세상 사람을 상대할 교리가 멀지 않은 장래에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민족종교는 이 가르침으로 정하고 종교의 믿음은 당연히 자유인 것이다. 비록 믿음의 자유가 있어서 이 길 저 길로 가더라도 평탄한 길과 험난한 길이 있는 것이고, 누구나 장래에는 모두 평이한 길로 올 것이니 이 길 저 길의 차이를 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걷는 길이나 황폐하지 않도록 옛사람의 큰 도를 다시 우리의 손으로 수도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과거에 태어났다면 이런 대도의 갱생을 보지도 못하였을 것인데 다행히 오천년 개벽 대운에 났고, 우리가 남쪽이나 서쪽이나 북쪽에 나지 않고 바로 이 동방, 그것도 대황조를 받듦이 있는 데서 나고, 시기적으로도 우리 마음대로 이 길을 걷더라도 왜 그 길로 가느냐고 책할 사람 없는 이 때, 이 때에 난 것만이 우리의 다행한 일이요, 우리가 이 다행한 자리에 났거든 누구든지 이 길을 다시 닦아서 우주화시키는 것이 우리가 이 땅, 이 때에 난 값이 있는 것이다.
비록 이 때에 났더라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있다가 가면 무슨 다행한 일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가 여기서 맹세코 단결하여 이 길을 닦아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길이 가장 큰길이라 우주에서 상대가 없는 큰길이니 이 길을 걸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걸어온 길이 대도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 길은 육해공을 물론하고 우주의 역사가 있는 이래로 그 크고 넓음을 측량할 수 없는 길이다. 이 길을 걸어보면 내가 목적하는 곳을 못 갈 리 없는, 성공 못할 리 없는 평탄한 길이요, 다른 길과 같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찾기 힘든 길이 아니요, 한 길로 가서 묻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대도가 아니고 무엇이리요.
3. 구도자의 자세
도(道)
도라는 것은 곧 길을 말함이다. 하늘에는 하늘의 도가 있고, 땅에는 땅의 도가 있으며, 사람에게는 사람의 도가 있어서 서로 변할 수 없는 것이 도요, 그 도가 비록 천도나 지도나 인도의 분별은 있을지언정 시작과 끝의 이치가 동일하고 그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동일한 것이다.
만약 이 원칙에서 터럭만큼이라도 변함이 있다면 이는 도의 원리를 위반한 것이요, 그 위반한 것을 도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천, 지, 인이 다같이 이 도의 원리대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요, 어느 한가지라도 자유로 변함이 없다. 천도나 지도를 본받아서 인도가 된 것이니, 천도나 지도는 대자연을 그대로 걸어오는 것이다. 항상 변함이 없이 오되, 인도는 대자연을 그대로 걷는 것이 아니라 그 대자연을 본받는 관계로, 질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천도나 지도와 동일하게 걸어갈 자질이 충분하나, 행하는 것이 천도를 따르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가는 것도 가리지 못할 일이다. 천도와 지도는 우주의 대자연으로 옛날과 지금이 마찬가지이나 인도만은 과거와 현재의 차이도 있고 동서의 차이도 있어서 서로 같지 않다. 현재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무슨 길인가, 천도나 지도와 동일한 원칙인가 아닌가를 대조해 보고, 그 원칙에서 위반된 일이라면 이것은 인도의 정상적 이치에서 벗어난 것이므로, 그 왜곡됨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천도는 밝음으로 음양을 나누고, 춘하추동으로 사시를 정하고, 남극과 북극으로 천축을 정했다.
지도는 밤과 낮으로 음양을 나누고, 수화목금토로 오행을 정하고, 남극과 북극으로 지축을 정했다.
인도는 남과 여로 음양을 나누고, 효제충신으로 오륜을 정하고 생사로 인축을 정했다.
양은 고요한즉 온전해지고, 움직인즉 곧아지며, 음은 고요한 즉 열리고 움직인즉 닫힌다.
음양의 움직임과 정지됨으로 만물이 비로소 생기니, 물과 불의 기운이 서로 부딪치어 씨가 나오고, 씨는 이루어져서 둥글어진다.
흙을 얻어 길러서 사물이 비로소 생기니, 만물의 씨의 밖을 싸고 있는 것이 흙이요, 한을 싸고 있는 것은 금이다.
안을 싸고 있는 것이 둘로 나뉘어져 음과 양이 되고, 안의 윤기 있는 것이 물이요, 씨는 나무요, 두 개의 씨가 서로 합한 것이 불이다.
이 씨가 다시 흙을 얻어 불과 물이 서로 서로 부딪치어 따뜻한 기운이 생긴 후에 비로소 씨눈이 자라서 겉을 싸고 있는 껍질을 터치며 싹이 생겨 나오는 것이니 세상 사람은 항상 봄에 만물이 생겨남을 이야기하지만, 그 생김이란 이미 씨가 처음 날 때 있었던 것이고, 봄에 비로소 싹이 나오는 것이지 그것이 생명의 시초는 아닌 것이다.
인간 생명의 시초도 역시 그러하니, 어머니 탯속의 열 달이 바로 그런 이치여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 생명의 시초가 있음은 아닌 것이다.
그러하므로 오행의 순서도 수→목→화→토→금이 옳고 사계절 역시 동→춘→하→추가 옳으며 방위도 북→동→남→서가 옳다.
이것이 천도나 지도의 순서요, 인도도 역시 이 순서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이 도를 말한 것이 동양철학의 역이라는 것이다.
하도는 상천하지에 해와 달이 동서로 운행하여 밤과 낮이 되고 이 밤낮이 쌓여 춘하추동의 사서가 이루어짐을 말하고, 해와 달의 밝음을 제일 먼저 받아서 움직인 곳이 동북방이며 백성을 가르친 곳이 동북이라 '제출호진(성인은 진방에서 나온다)' 이라고 하였다.
동남은 그 혜택을 받아서 려하였다고 하고, 서남은 또한 그 풍속의 가르침이 제우손(손방에서 가지런해짐)이라 하였다.
그리고 서북은 지형적으로 배와 같으나 마지막에 광명 하리라고 하였다. 이것이 하도가 우주의 역사를 천도나 지도로 보아서 미리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다음 낙서는 후천적으로 보니 북방이 물의 근원이요, 남방이 불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았고, 서북방을 보니 천축인 북극이 있고, 서북을 중심으로 중요한 별들이 모두 있다고 말하였다. 서남으로 보니 광대하기 한이 없는 대지가 있어서 이 대지가 중후하나 명려하고 웅휘하여 서남의 중후혼탁과는 아주 관이하다 하였다.
동남을 보니 끝없는 큰 바다에 해와 달의 호흡을 따라 움직이는 기체가 항상 쉼없는 바람이 된다는 말씀이요, 동방을 보니 어둔 밤에 사방이 모두 고요하다가 햇빛이 처음 비추이매 만물이 모두 움직이고, 이 양의 기운이 쌓여 있는 음의 기운과 서로 부딪치어 천둥과 우뢰가 되어 만물의 웅크리고 있는 상태를 깨뜨리어 정기로 변화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서방을 보니 대지 중의 저장된 물이 출구가 없어서 대양이 되어 정양하는 청정한 물의 본성을 갖게 한다는 말씀이요, 그 다음은 아무리 보아도 중앙은 토가 아니면 안 되겠는데 이 토는 양토를 말함이고 그 양토가 지구를 지배할 중심이더라는 말씀을 옛 성인께서 해놓으신 것이다. 낙서 역시 천도와 지도를 보시고 인도도 이러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도 천도지후를 본받아서 머리가 하늘이 되고, 배가 땅이 되고, 얼굴의 이목구비발로 하늘의 오행을 본받고, 또 얼굴 위의 일곱 구멍으로 북두칠성을 대응하고, 뱃속의 오장육부로 땅의 오행을 본받았다. 이것은 사람이 천도나 지도에 응해서 생겼으며 그리하여 사람의 몸 또한 작은 천지라는 것이다.
사람이 천지의 기를 받아서 이 세상에 나고, 생로병사함은 천지 자연의 이치이나, 살아 행하는 일이 이 천도나 지도에서 볼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이는 천지이기의 온전한 기운을 받지 못하고 그 편벽된 기운만을 받은 것으로 자처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초목금수나 생로병사는 다 같고 생양수장도 같으며, 식물은 식물대로 번식욕이 있고, 동물은 동물대로 번식욕이 있는 것이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동물도 약육강식하고 인간에게도 약육강식의 원리가 횡행한다. 무엇으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것인가. 식물이나 동물은 천지의 대자연 속에서 되어 가는 대로 가다가 모두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불변의 원리이나, 인생은 천도나 지도를 본받아서 될 수 있으면 그 장점을 본받고 단점을 버리며 음양이기가 동화되어, 앞서 간 성인을 계승하여 뒷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므로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고로 인간이 초목금수와 다름을 가르치고, 옛사람의 걷던 길이 황폐해지면 고치며 또한 좋은 길터가 있으면 천도나 지도를 본받아서 다시 개척하는 것이 인간된 의무요, 책임이라 하겠다.
우주의 인류로 태어난 이상 이 우주를 상대하고 이 우주의 총기관이 되는 길을 개척하며, 수리해서 이 길을 걷고자 하는 뒷사람의 편리를 도모함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대도를 걷게 되는 것이요, 그 뒷사람도 그 대도로 오게 되는 것이다. 이 옛사람의 길이 황폐하여 길이 어딘지 모르게 된 것은 비록 우주의 자연이라 할지라도 이 길이 황폐해진 것을 알면서 수축이나 개척을 등한시한 사람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 인도는 해와 달의 황도나 적도와 같이 변할 수 없는 큰길인데 우주가 생긴 후에 그 길을 걸어온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 길이 황폐해졌다는 것이다.
옛사람의 길을 가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이 길을 가자니 산길도 있고 물길도 있으며 평탄한 길, 험한 길이 다 있다" 고만 했으나 다시 돌아서서 이 길이 황폐해졌으니 내가 다시 개척하고 수리해서 후세 사람들이 천존지비하고 해와 달이 밝은 줄 알 듯이 알기 쉽게 표시도 해놓고, 노정기도 분명히 해놓고, 이 길을 걸어 보면 그 다음이 어떠하다는 것도 상세히 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우주인들이 아무리 험한 길을 걸었더라도 자기 자신만 알고 갔을 뿐, 이 길이 험하니 뒷사람이 걷기 힘들겠노라고 다시 개척하며 쉽게 걷도록 해주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이같이 힘든 길을 걸어 보고 '내가 걸어 보니 이렇다'고 말씀해 놓으신 것이 성경현전이다. 그러나 이 길을 가기 극히 곤란하니 다시 이렇게 개척하여 속히 가도록 하라고 하신 말씀은 못 보았다. 고금을 통하고 동서를 막론하여 성인들이 이 길 걷기에다 곤란을 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옛 성인의 말씀에 "이번 대운에는 이 길을 잘 개척해서 그 후에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오기 쉽게 하리라"는 예언과 묵시가 있다.
우리가 마침 이 때에 났으니 누가 이 옛사람의 길을 새로 개척할 것인가 알고자 하며, 이 길을 크게 개척할 사람이 우리 백두산족이라는것도 역시 천도나 지도에 응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요, 백두산족을 귀하게 여겨 그런 것은 아니다. 지역도 우리 지역이요, 인종도 우리 인종이요, 시기도 때마침 이 때에 우리가 태어나 이 길의 개척함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혹 만에 하나라도 이 개척하는 일판에 부역군이라도 될 것인가. 이 붓을 들고서 한편으로는 다행히 여기며 또한편으로는 불행히 여기는 것이다. 다행이라 함은 지역적, 인종적, 시기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요, 불행이라 함은 아무리 유리한 조건이 있더라도 내 자신의 소양이 없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몇 세기 전이나 후에 태어났더라도 이런 정신적 고통은 없을 것이요, 또 인종이 다른 민족이었다면 우리가 이것을 고대할 필요도 없고, 지역이 아주 타지역이라면 혹 우주에 이런 일꾼이 오려니 할 정도이지 무슨 바람이 있을 것인가.
지역이나 종족이나 시기가 모두 갖추어졌으나, 사람이 소양이 없어서 이 길 개척의 일꾼은 고사하고 누가 일꾼이 될지조차 묘연하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리요.
어떻든 우리가 보기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공자의 대동이라는 도나 석가모니불의 용화라는 도나 순의 중화라는 도나 예수의 부활이라는 도가 모두 같은 의미의 도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바로 이 길이다. 이 길이 경으로 위로 아무데로 가든지 공통된 길이라는 것이다. 이 길을 개척해서 우주에 공헌하여 오늘 이후로 우주 인류의 걸을 길을 편리하게 하여 준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이 도라는 제목을 쓰다가 말이 길어지는 것을 걷잡지 못하였다.
차후로 천도나 지도의 자연성과 인도의 부자연함을 시간만 있다면 내 소견대로 상세하게 기록해볼까 한다. 이 다음 나올 길을 개척할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는 다음 일이 시작한 후에 알 것이요, 이 길이 머지않아 개척되리라는 것을 내가 미리 확언해 둔다.
내가 항상 말하는 백산운화라는 것은 이 길의 개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길을 개척할 인물들이 벌써 삼육성중의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 출세하였다는 조짐을 본 지 오래라는 말이다.
장마비가 끝난 뒤에 계곡물이 푸르러지듯이, 현재의 양대 탁류가 서로 부딪치어 한바탕의 폭우가 그친 후에 동쪽 하늘에 한점 붉은 해가 비치는 때가 바로 이 길이 광명하게 개척될 때라는 것이다.
옛사람의 길이나 현세인의 길이나 별다른 것이 없으나 옛 길은 동서남북에서 각자가 걷던 길이요, 장래 나올 길은 온 우주의 통로라는 것을 또한 확언해 둔다, "때로다, 때로다, 다시 오지 않을 때로다" 라고 외친 최수운도 이것을 의미하였던 것이라 본다. 다가올 오만 년 끝없는 대도가 우리 지역에서 발단된다는 것이다.
교
하늘에는 천도가 있고 땅에는 지도가 있고 사람에게는 인도가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나 그 안다는 것이 정도문제이다. 하늘의 도는 무엇이요, 땅의 도는 무엇이요, 사람의 도는 무엇이라고 확실히 의심 없는 답이 나올 만큼 알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가르침이 없어서는 그 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도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가르침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도가 있어도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는 그 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가르침이라는 것은 도를 행하는 사람의 노정기이며, 지나침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가르침으로 당연히 갈 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두산이 여기서 이천리요, 방향은 북방이요, 가자면 산도 오르고 물도 건너야 하고, 평평한 길도 있고 험한 길도 있다는 것과 출발점에서 좌우는 이러이러한 지역이요, 길을 얼마가면 산이 있고 또는 이런 물이 있으니 그 물을 건너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자초지종까지 지극히 세밀하게 해놓아도 시기의 계절이 다르고 가는 사람의 힘이 다르고, 중도에서 만난 사람의 말이 이 지도와 동일하다는 법도 없으며 또는 비록 동일지점에서 같이 가는 사람이라도 백두산까지 가는 길에 별별 일이 많을 것이요, 또 각기 출발점이 동일 하라는 법도 없어서 비록 백두산이 동일한 목적지라도 출발지가 동서남북이 같지 않고 거리의 멀고 가까움과 가는 길의 역량이 모두 다를 것이니 그 가르치는 노정기를 사람마다 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이것이 가르침의 중요점이다. 그런 고로 가르침이라는 것은 출발하고자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요, 목적될 대상물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만약 백두산이 목적물이라면 먼저 백두산이라는 것이 천도, 지도, 인도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고, 그 위치는 무슨 부문이요, 그 산의 중요점은 무엇무엇이요, 그 산이 다른 산에 비하여 이러이러한 특징이 있고, 춘하추동에는 대체로 이러한 변화가 있고, 경치는 어떠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감상이 있게 하는 곳인데, 천도에 비하면 어떻고, 지도나 인도에 비하면 어떠하며, 동서남북에 각각 이러이러한 곳이 있다라고 목적지인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길 안내를 하는 것이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목적지라는 것이 우주의 공통된 목적지인지, 어떤 국가나 민족, 또는 소수 집단에 공통되는 목적지인지를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주의 경이나 위에 길이 아님이 없고, 적도도 길이요, 황도도 길이다. 그러나 이런 길은 공통점이 보인다. 적도에서 양극을 간다면 어느 곳이나 90도를 지나야 갈 것이요, 적도에서 동서로 일주를 하려면 동서로 360도를 지냐야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경도나 위도에서도 이것이 공통되는 것이니 이런 것은 모두 천지인도를 걷는 깃이라 비록 목적은 좀 다르다 하더라도 공명정대한 법칙인 공통된 길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공통점을 가지고 이 길로 가라고 가르친다면 그 가르침으로 우주의 공통된 길을 걸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제일 먼저 목적지가 양극이냐 적도냐 하는 우주 공통점을 택해서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을 가르치는 곳이 어디인가를 고찰해야 한다. 우주의 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이 우주공통로를 먼저 걸어보고 가장 쉽게 후세인이 가도록 가르치신 것을 교라는 것이다. 목적지가 두곳이 아니요, 똑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가르치심이 각기 다른가? 그것은 성인들의 출발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성인이 아닌 사람이 가르친 곳은 자기 한 사람의 목적지거나 극소수의 공통된 목적지라는 것을 확언해 둔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주 공통의 목적지를 어디에서 출발하든지 모두 동일하게 갈 수 있도록 지극히 간단하게 가르친 가르침이 나올 것이라는 것도 아주 확언해 둔다.
요즘도 유사한 가르침이 많으나 옛 성인들의 가르치심과 목적지가 다르다면 이것은 물론 우주공통로가 아님을 고찰할 수 있다.
옛 성인이라면 공자, 석가, 노자, 예수,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같은 성인들이다. 그 가르치신 방법은 조금씩 다른 점이 있으나, 각기 관점의 차이요, 목적지는 동일한 천도며 지도며 인도라는 것이다. 동양철학으로도 공자의 솔성이나 석가의 견성이나 또한 노자의 명성이나 모두 목적은 성이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진만성이 모두 이 '성' 한가지로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나 소위 유사한 가르침이라는 것은, 외면으로는 그럴 듯하나 내면에 있어서는 목적지까지 갈 수 없는 가르침이라는 것도 분명히 말해 둔다.
우주의 공통된 목적을 가도록 가르침을 정이라 할 것이요, 우주의 어떤 국한된 목적을 가도록 가르침을 사라고 확실히 평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천도나 지도나 인도를 모두 걸어갈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 정이요, 천지인도에 맞지 않는 가르침이 사인 것이다.
이 가르침은 공통된 것이요, 이것을 받아서 걸어가는 것은 사람마다 상이하다. 목적을 정하고 나아가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나아가야 할 것이요, 나아가자면 첫째조건이 건전한 신체로 맑은 정신을 함양해서 쉼없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그 가르치는 목적지가 그리 멀거나 가기 힘든 곳은 아니라고 옛성인들이 말씀하시며 뒷사람의 걸어옴을 장려하신 것이다.
우주를 통한 가르침이라는 것은 정도를 걷도록 하는 가르침이니 별다른 것은 아니다. 이것을 별다른 것으로 알고 걸어가서는 그 목적지에 도달함이 곤란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내가 이 교라는 제목 아래 횡설수설한 것은, 과거의 유학자들이나 불교 승려들이 아집에 사로잡혀 자기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여 타종교나 학문을 배격한 사례가 바로 진정한 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느 교문에서나 초학을 가르침과 숙덕들을 가르침이 다르리라고 본다. 가장 폐단이 됨은 아전인수로 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나, 성공하기 전에는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 그러면 시비곡직이 없다고 보는가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각자 성인의 가르치심을 받았거든 그 극치점까지 가기 전에는 절대로 자기수양에 노력할 일이지 자기가 목적한 공부는 성공의 길이 묘연함에도 불구하고 선이 어떻네, 불이 어떻네, 혹은 유가 어떻네, 소양학문이 어떻네 하고 쟁론만을 일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자신이 아직 부족함을 알고 남과는 쟁론을 말며, 자신이 하는 공부에 성공을 한 후에 비로소 자신이 목적한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목적한 곳과 상이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최종 목적지까지 가서 그 사람들과 동일한 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면 도리어 상봉하기 전에 서로 다툰 것이 무색하지 않겠는가. 나도 배우는 사람이요, 상대방도 배우는 이라면 다 아직 목적지에 못간 사람이니, 중간 가르침으로 어찌 목적지의 경계를 다툴 것인가. 중간 다툼은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다고 본다. 정확한 시비곡직은 자기의 목적을 완성한 후에 자연 판단될 것이라 보는 관계로 중간 다툼에는 무시무비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으로서는 무엇보다도 정진해서 목적달성을 하는 것 이상 큰 승리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말해 둔다.
학
무에서 유에 이르는 것을 배움이라 하니, 또한 얕지 못함에서 앎에 이르는 것도 배움이라 한다. 무에서 유에 이르는 것도,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가르침으로 인하여 배운 후에야 유에 이르는 것이며, 모름에서 앎에 이르는 것도 또한 홀로는 안 되는 것이다.
반드시 가르침으로 인하여 배움을 얻은 후에야 유에 이르고, 앎에 이르는 것이요, 배우지 못한 즉, 무와 모름의 상태에서 늘 벗어나지 못하니, 이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배워서 유와 앎에 이르고, 지극한 착함에 머문다면 타고난 기질이 변화하여 성인도 될 수 있고 현인도 될 수 있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되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였으니, 배움에는 소학과 중학과 대학의 구분이 있어서 아주 어린아이는 부모의 가르침으로 배우고, 여덟살 이후에는 스승의 가르침으로서 조금 배우고, 소학의 과목을 다 배운 후에는 스승이 다시 중급 단계의 학과를 가르쳐 이것을 다 배운 후에 다시 대학의 학과로 나아가니 이는 배움의 순서요, 또한 가르침의 차례이기도하다.
가르치는 사람은 스승이요, 배우는 이는 선비다. 스승의 가르침은 대학의 과정에서 그치고, 배움의 과목은 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다함에서 그치는 것이나 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다함은 스승이 능히 가르칠 수 있는 바가 못되니 자기 스승의 가르친 바를 받들어 홀로 정진하며 연구함을 쉬지 않아야 비로소 그 배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연한 일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배움을 넓게 하고 부족함을 채워서 허령지각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이는 배우는 사람의 마음으로서 마음을 전하는 묘한 비결이요, 문자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경지이다.
배움이 유아시절에 부모님의 언어동작을 가르침으로부터 시작하여 궁리진성(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다함)에서 마치니, 그러므로 배움에는 두 가지가 있어서 하나는 가르침을 받아 배울 수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가르침으로써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가르쳐서 배움은 일용사물에 쓰이는 배움이요, 가르쳐서 배울 수 없는 것은 궁리진성의 배움이다. 일용사물의 학문은 사람 모두가 가르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으되, 궁리진성의 학문은 사람에 따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배울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심전심이요, 언어문자로는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예법과 음악과 활쏘기와 말타기와 글과 수학의 여섯 학문은 모든 사람이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되 하나에 온 힘을 기울이고 가운데를 놓치지 않는 배움이란 사람에 따라 가르칠 수도 있으나 모든 사람의 가르칠 수 있는 바는 아니며, 또한 모든 이가 배울 수 있음도 아니다.
현대의 물질문명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으되 정신 철학은 사람마다 모두 배우고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니, 현대 철학을 가르치거나 배움이 비록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성인의 문하에서 마음의 법을 전하고 받음에 있어서랴.
옛부터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뜻을 세움이 높지 않은즉, 그 배움이 모두 보통 사람의 일에 미치고마니 마땅히 뜻을 세움은 높이 멀리하라 하시었다.
사람에게는 재질의 맑음과 탁함의 구분이 있고 배움에는 정성과 게으름의 구별이 있으니 마땅히 가장 안락하고 자신에게 적당한 곳에 뜻을 세우고 열성으로서 쉬지 않고 배워나가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배우는 사람의 성공은 반드시 다음 세 가지가 합해진 후에야 뜻과 같이 될 것이니.
첫째는 어진 스승의 가르침이요, 둘째는 착한 친구의 권고요, 셋째는 자신의 정성이니, 위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없다면 완성을 기대하기 어려움이 밝은 거울을 봄과 같으리라. 비록 하나가 결여되었다. 하더라도, 남보다 수백 배의 노력을 해야만이 가까스로 완성할 수 있을 정도이다.
행
행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정확한 해석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이 아주 어릴 때에는 자기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반드시 어른의 손을 잡고 다니니 이런 행을 행이라고 할 수 없고, 좀 자라서 아이가 되어도 발힘이 부족해서 겨우 동네 왕래나 하고 집안에서 돌아다니니 이 행도 아직 행함에 가까운 것 같지 않고 소년시대 부터는 행하는 것은 마음대로 되나 이 행은 다리 힘이 좀 낫다는 말이지 가는 데가 어디인지 알 수 없고, 청년시대부터는 동서남북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으나, 이것은 그 다리 힘이 행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지 자기가 마음 있는곳을 반드시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이 되면 점점 다리 힘이 부족해져서 다닐 만한 곳도 겁이나서 못 다니는 것이 예사요, 또한 아주 극노인이 되면 출입을 폐하고 자기집 아랫목이나 지키는 것이 우리가 보통 행이라는 것인데 이 행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 이를테면 걷는 행이 있는가 하면 말타고 행하는 사람, 자동차 타고 행하는 사람들의 구별과 단신으로 행하는 사람, 동행하는 사람과 짐을 지고 행하는 사람, 열을 지어 대오로 행하는 사람, 시간을 맟추어 행하는 사람, 매일 일정한 곳만 행하는 사람, 왔다갔다 행하는 사람,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행하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으로, 이것이 모두 행이라 하는 모양이 있어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각기 어떤 목표를 두고 자기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필 인간만 이러할 것인가. 우주에 충만한 형체 있는 생물은 모두 이런 여러 종류의 상태로 행하는 것이 보통의 이치이다. 이렇게 행하면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며, 이 전진이 어디까지 가면 중지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행이 모여서 인간을 생로병사를 계속하고 우주는 원회운세가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육신으로서의 행함이나, 이외에 정신적으로 행하는 것도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알 수 없다. 또한 어느 행을 정확한 행이라 하겠는가. 각자가 모두 자기의 행함을 옳다고 할 것이다.
옛 성인의 말씀에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곧 배우고 물어라' 라고 하시었다.
여기에서의 행은 행실을 말씀하신 것인데 육체의 행이나 정신의 행이나 이름만 다를 뿐 다같은 행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생로병사는 똑같고 감정도 거의 비슷하며 삶에 대한 애착이나 죽음의 공포도 일반인데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함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람의 행위에 윤리도덕이 있는 까닭이요, 이 윤리도덕이라는 것이 동물에게라고 아주 없는 법은 아니나, 동물들은 한 곳으로 치우친 성질을 가지고 혹 어느 일면에 해당하는 사례는 있으나 완전히 구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정신적 행위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자신 있는 행위를 못한 때는 항상 금수의 동물성이 작동했기 때문인데, 이 동물성이 다른 동물과 같다면 인간으로서 무슨 우월감을 가질 자격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것이 옛 성인이 말씀하신 행실의 의미이다. 그 행위는 육신의 전진을 목표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금수보다 우월하다는 양지, 양능을 그대로 발휘해서 무엇보다 먼저 윤리도덕을 목표로 하는 행위를 하라는 말씀이다.
현대 과학문명이라는 것은 이용후생의 지혜로운 기교에서는 옛날보다 열 배는 우월하나 윤리도덕 방면에는 대중의 사회적 안녕과 질서유지 정도 외에는 그리 치중하지 않아서 유물론 등의 동물환원사조가 전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것도 행은 행이나 목표가 인간을 동물로 환원시킬 정도로 행하는 것이다.
이 행 저 행을 구별해 말하기 불편해서 각자가 정신력을 수양하면 그 행이 어떠한 부문에 속하는지 잘 알 것이라 하여 '행행행리각 이요, 거거거중지'라고 내가 말한 바 있다.
동으로 가든지 서로 가든지, 남으로 가든지 북으로 가든지, 속히 가든지 더디 가든지, 걸어가든지 타고 가든지, 각자의 마음과 주위의 환경대로 행하되, 다만 인간이거든 인간답게 다른 동물이 목표하는 대로 하지 말고 윤리도덕에 치중하여 완전한 인간으로 성공하는 것이 올바른 행인 것이다.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다리 힘부터 양성해야 하는 것이니, 만약 다리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신 행하는 힘을 양성해서 행할 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요, 쉬지 않고 노력을 다하면 옛사람이 말씀하신, "개구리 걸음도 쌓이면 천 리를 가는 것이요, 시냇물도 모여서 강과 바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될 것이다.
행하고 또 행하여 그칠 줄을 모르고 행하면 누구나 자기 역량대로는 행해지는 것이요, 이 행이 쌓인 것이 인간으로서 성공이요, 이 성공한 사람을 표현해서 성현군자니 영웅호걸이니 하는 것이다.
이 행함이란 길이 아니면 안 되고 이 길을 알자면 배움이 아니면 안 되고 이 배움이 있자면 가르침이 아니면 안 되고, 여러 조건이 구비되어 성공하자면 성실함이 없이는 안 되고 이 성실함이 있다면 공경이 없어서는 안 되며, 이 경이 있다면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성, 경, 신 세 조건이 있음에도 성공 못 하는 법은 없으며. 행하지 못할 것도 없는 것이다.
제일 먼저 도가 있어야 하고, 이 도를 행하고자 하는 학인이 있어야 하고, 이 학인이 있으면 가르쳐야 되고, 가르침을 받은 후에는 행해야 되는데, 이 행함이 있자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 믿음이 공경으로 변해야 되고, 이 공경이 성실로 되어서 쉬지 않으면 마침내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보통 이치요, 불변의 철칙이다. 이 궤도를 벗어나서 행해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말해 두며 이 행 저 행 해서 별 행이 많은 것 같으나 결국 성공의 길을 행하자면 이 성, 경, 신을 구비하고 쉼없는 행함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작
천지의 순환이 자연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구르고 있는 것은 다 아는 바다. 이 천리의 궤도라면 하늘로 덮이고 땅위에 실려 있는 만물이 모두 벗어나지 못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처음과 끝을 맺는 것이니 이 자연을 어기지 말아야 옳을 것인즉 이것을 순리라 한다. 옛사람의 시조에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저절로 나온 몸이 늙기조차 절로절로"라고 대자연 속에서 그 자연을 본 바와 같이 자연에서 나온 몸이 늙는 것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리라는 뜻이다. 누가 이 대자연을 어기고 부자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 대자연이라는 것도 그 궤도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인류가 이 자연의 궤도에 오르자면 사람으로 사람된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이 도리를 하는 것이 역시 자연의 궤도를 걷는 것이요, 순리이다. 해와 달의 차고 기울음이 있으며 동에서 서로 행하는 것도 자연이며 빛의 어둡고 밝음이 있는 것과 낮과 밤이 있는 것도 자연이요, 별과 구름이 모두 그 자연의 도를 벗어나는 것이 없고 바람과 비, 서리와 눈이다. 그 궤도대로 되는 것도 역시 자연이다. 지도도 천도와 같이 생양수장(나고 자라서 거두고 감추어진다)이 궤도에서 자연적으로 된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성질이며 불은 위로 치솟는 것이 자연스런 성질이요, 나무는 구부러지는 것이 자연성이요, 쇠붙이는 단단한 것이 자연성이요, 흙은 곡식을 심는 것이 자연성이다. 동물은 생로병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사람도 이 천지의 자연 속에서 나서 다른 동물과 같이 생로병사로 지낸다면 다른 동물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오행이 모두 갖춰져 있고 만물 속에 스스로 행동하며 소천지라 하는 것이니, 자연 속에서 부자연함이 없이 천지의 궤도 그대로 걷는 것이 사람된 도리라 할 것이다.
그러니 만물이 생동하는 대자연의 궤도를 천지와 같이 가자면 무엇으로 되는 것인가. 태어난 그대로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으면 금수와 다를 바 없으니, 이 금수를 면하기 위해서는 천지의 궤도와 대자연을 본받아서 성인이 하신 말씀을 배우고 몸소 체험해서 "위로는 하늘의 형상을 살피고, 아래로는 땅의 이치에 통달하며 가운데로는 사람의 일을 살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당연히 할 도리를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사람된 의무이며 책임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쉬지 않고 노력하면 바로 군자가 된다고 하였다. 또, "짓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하였으니 사람이 사람된 도리를 성인이 가르치신 대로 배워서 그 수를 면할 도리를 한 가지씩 작해서 "오늘 한 가지 일을 짓고, 내일 한 가지 일을 지어서 끊임없이 지어 나가면 마침내 군자를 이룬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군자란 금수와 거리가 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군자란 천지자연의 궤도를 본받으려고 역작하는 사람의 명칭이요, 이 작이 역작을 하지 않더라도 순작이 되면 현인이요,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지음이 되면 역시 이 작이 대자연과 합치해서 그 궤도대로 행할 수 있는 성인이요, 또한 사람 중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경지까지 가게 되는 것이 이 작이라는 글자의 힘이라는 것이요 이것을 저버리면 성공을 못 본다는 말이다. 성공을 못 본다는 말은 곧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다는 평가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되자면 사람된 도리를 알아야 하겠고, 이 도를 알자면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을 받자면 배워야 하고, 배우자면 행해야 하고, 행하려면 작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음으로써 비로소 금수와 거리가 생겨서 천지 자연 그대로 걷게 되면 이것이 진인이요, 성인이요, 현인이요, 또 군자도 되고 대인도 되고, 영웅호걸도 되는 것이며, 충효경렬이나 문장명필, 재자가인이 다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천지의 대자연에 접근하자면 이 몸, 이 마음에서 잠시도 이 작이라는 글자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도, 교, 학, 행, 작의 순서를 잊어서도 안 된다.
믿음, 공경, 정성
어떠한 일이든지 우리가 시작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이요, 믿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그러니 첫 번째 조건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무슨 일이고 착수하여 될 리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일이다. 믿음이라면 그 일을 충분히 알고 의심이 없어야 믿을 수 있을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믿거든 공경하라는 것이다. 경이라는 것은 무슨 일이나 그 일을 하지면 당연히 실행해야 할 일을 실행함으로서 공경이 생기는 것이다. 소홀함이 없이 하라는 것이다. 공경함에서 인내도 생기고 지구력도 생기고 추진력도 생기는 것이요, 목적에 도달하기까지는 이 경만으로는 좀 부족해서 정성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정성이라 함은 그 극치점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찻물을 끓이는데 냉수로는 찻물이 안되니 끓는 물이라야 된다는 것을 알고 찻물을 끓일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 신이요, 차를 끓일 물을 달이는데 실수없이 다른 일을 안보고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것이 경이요, 말하자면 냉수를 깨끗이 길어 와서 깨끗한 차주전자에다 담아서 화로에다 올려놓고 부채질을 주의해가며 하고 있는 것이 경에 속하고 이 냉수가 비등점에 가고 찻잎을 넣게될 때, 성심성의로 하지 않으면 목적에 가까우면서도 성공하기 곤란한 것이다. 이 정성이 아니고는 성공에 도달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믿음으로 시작하여 공손히 일을 해 나가서 정성을 다해야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더구나 정신공부 같은 것은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데 믿음의 극치점이 경이 되고 경의 극치점이 성이 되며 성의 극치는 성공이 되는 것이다. 공부하는데 스승을 구하되 그 스승의 자격을 알고 믿으며, 믿게 되므로 그 스승을 공경하고, 그 공경이 극도에 가서 정성을 다하면 스승의 가르침도 이루어지고 자기 공부도 성공할 것이다. 세상에서 신, 경, 성의 하나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확신하는 점도 발견 못하고 의심을 가진 채 이루고 못 이루고의 여부도 가리지 못한 채 착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신, 경, 성이 없이 일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고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물론 예외적인 일이다. 믿음, 공경, 정성을 말하며 일의 이루고 못 이룸이 사전에 확정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붓을 든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신, 경, 성이 없이는 절대로 성공이 없다는 것을 확언해 두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이 확보되면 성공 못하는 법이 없고, 은이 아무리 없는 사람이라도 이 세 조건이 확보되면 틀림없는 행운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인은 조명이라고 운명론을 반대하는 이유이다. 누구든 무슨 일을 하든지 확신을 가지고 경의를 다하여 성심껏 하면 성공한다는 확정론을 말해둔다. 그렇다고 자기 역량이나 주위사정을 따지지 않고 아무 일이나 착수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역량에 합당한 것을 택해서 목적을 삼고 나아가되 이상의 세 조건을 확보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역량과 성품의 단점을 돌아보지 않고 추진한다면 절대로 성공이 없다는 것도 덧붙여 말해 둔다.
수행자의 책읽기
6월 초하루부터 엿새까지 우연히 독서를 하게 된 것이, 일기로 시종여일하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씀을 독파하느라고 다른 정신없어서 붓을 들지 못하였다. 그간 일주일에 가까운 시일을 중용, 대학을 읽는 것을 시작으로, 그 다음은 불경을 좀 보고 또 그 다음 선가서를 보았다. 또 그 다음은 요즘의 유사종교의 책들을 보았다. 무슨 책을 보든지 다 착해야 하고 착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요, 그 편법은 비록 다를망정 목적은 동일한 것 같다. 성인의 말씀은 알기 쉽게 설명되어졌고 그 다음 되는 현군자의 말씀은 세상사람을 상대로 자세하게 설명하느라고 말을 중복하다보니 도리어 상세한 것이 병이 되어 잘 알 수가 없다. 성인의 말씀이 주목적을 바로 말씀하신 데 비하여 현군자의 말씀은 아무래도 지엽적인 상세함 때문에 주된 서술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얼른 보면 성인의 말씀은 너무 쉬워서 도리어 그밖에 무엇이 있나하고 심오한 것을 찾다가 본의를 상실하게 되고, 어느 것이 설명인지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서 역시 본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니 성현군자의 말씀은 본뜻이 분명히 있어도 알 갈아 없고, 보통사람들이 한 말씀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현의 경전 속에 나오는 어느 구절 같으나 아무리 보아도 그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말하자면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구경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슨 책자를 보든지 먼저 작자가 누구인가부터 알아보고 독서를 해야 그 책의 원저자의 본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6일간에 백여 권의 책을 독파하고 보니 성경현전은 어느 때든지 성경현전이요, 보통사람들의 저술은 좀 우수하다 해도 오십보백보였다. 그러나 성경현전이나 보통사람들이 저술한 것이나 거의다 선행을 하라고 한 것이요, 악행을 하라 한 것은 없는 것이, 큰 나라에서 국빈을 접대하는 음식이나 가난한 집에서 간신히 끼니를 잇는 음식이나 음식의 본 목적은 동일하지만 정갈함과 더러움, 후하고 박함이 다를 뿐인 것과 같다.
그리고 같은 음식이라고 굶주린 자는 맛있게 먹고 목마른 자는 달게 마시는 것이요, 비록 거친 음식으로라도 배불리 먹은 사람은 아무리 팔진미가 있더라도 다시 먹을 생각을 않는 것과 동일하여 아무리 성경현전에 좋은 말씀이 많더라도 선입견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현전을 다시 더 볼 생각을 안하고 혹 독서한대야 선입견된 생각의 참고건으로 볼 정도이지 성경현전의 본의를 탐구코저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선입견을 검토해 보고 개과천선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동서고금의 성현은 비록 시대와 거주지에 상이점은 있으나 그 주목적은 거의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음식으로 구할 수 있고 무식함은 독서로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음식으로 기갈을 면하고 독서로 무식을 면하였다고 충분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행실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실은 성경현전에서 본 바 도덕을 자기 자신이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요, 누가 억지로 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 길을 가자면 첫 번째 필수조건이 무식해서는 안되는 것이요, 이 무식을 면하자면 독서를 안 할 수 없다는 것을 재강조하는 것이다. 독서를 한다고 음풍영월하는 글귀나 지어서는 소득이 없는 것이다. 또 독서를 많이 한 사람들 중에 선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라 하여, 옛사람의 악행을 많이 보고 이 악행을 그대로 이용하는 사람도 아주 없다고는 못한다. 이와 같이 그 독서에서 오해하여 악행을 하고도 수백 년의 종사를 보전하더라는 식으로 자기 합리적 견해에 빠져서 악행을 알며 하는 자도 있고, 독서로 무식을 면하여 지능이 생겨서 행하는 일이 자기의 품성을 수양하는 도덕이 없는 고로 모르는 사이에 선행보다 악행이 많은 사람도 있고, 아주 지능만 양성해서 갖은 악질적 행동을 택해가며 하는 사람도 많다. '선하면 복이 오고 악하면 화가 온다' 라서 보다도 이런 인간을 자연적으로 신의 벌보다도 인류의 심판을 먼저 받는다는 것이 우리가 보는 실례이다. 이는 독서 중에 분명히 나오는 동서고금의 예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없다. 그러니 독서로 지식도 늘리려니와 첫째하는 조건으로 도덕의 진리를 연구해서 비록 성현군자는 못 되더라도 죽기 전까지 그 길을 가보면 알게 모르게 그 길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본다. 옛사람이나 현대인들이 자기도 무던하거니 하는 데서 각자의 의견을 기록해 본 것이 다섯 수레의 책만큼 많게 되고, 이 많은 의견이 도리어 '물고기의 눈을 진주로 오인하는' 과오를 범하게 하는 원인이다.
스승의 도리는 제일먼저 그런 혼동이 안 될 정도의 분별력부터 가르치는 것을 중대 책임으로 본다. 이 스승의 도가 없는 사람이라도 자각해서 이 혼란을 분별할 정도까지 전력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분별을 못하고 독서를 하다가 도리어 성경현전보다 많은 기괴한 책자로 인해서 사람들이 우리의 본연의 천성인 선이라는 것을 도외시하고 지능으로 범죄하여 인생의 죄과를 키운 일이 얼마든지 있다. 또 이 죄를 범하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태연자약한 사람이 많다.
이것이 뜻밖의 사실은 아니다. 그것은 죄를 범한 사람의 책임이라기 보다도 이것을 분변 못하게 한 국가교육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국가에서는 문교부 장관을 특선하고 교과서부터 개정해서 국민의 기본교육부터 아주 완전하게 하여 학과를 졸업하면 선이 무엇인지를 분변할 기본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정신수양법에 대한 사견
동서양 각국에서 고대부터 정신수양법이 있어 왔고, 타국에서는 각자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니 재론할 필요가 없으며, 그 방식의 차이도 말하지 않기로 한다. 물론 동서양 각국에서 이 정신수양법이 시행된 연대로 각자의 차가 있고 또한 그 효능도 천차만별이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천년 유구한 세월을 두고 우리 선조들이 계계승승해서 성쇠를 거듭하며 전해오던 우리 민족의 고유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 본토는 도리어 신라 삼국통일 이후에는 불교사상의 보급으로 고유한 우리 수양법을 망각하게 되어, 이때부터 우리 민족은 약화되고 말았다. 여기서 사대사상이 전성해서 우리의 정신문화는 흔적도 찾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국우족하는 선현들이 당시 국가의 시책이야 무엇이라 하든지 개의치 않고 정신수양법을 이심전심으로 계승하여 쇠퇴일로로 천여 년을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 심법이 전해온 것만도 우리 민족에게 다행한 일이라고 보아야 옳다. 이것은 오로지 삼국통일 이후 국책으로 억압해서 발전을 못하게 하는 와중에서도 전현들이 희생적 정신으로 이 법을 전해 주신 까닭이다.
즉, 고려 오백 년의 국교인 불교 전성시대를 지내고 이조 오백년의 유교 전성시대를 지내고도,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곳에서 수십 년씩 공을 쌓아 당시 국가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을 습득해가며 후인에게 전해 주신 그 공헌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하다고 본다.
조선조 말엽에 와서는 불교도 망하고 유교도 아주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겨우 명맥만 전해오던 이 정신수양법도 연명할 여지가 없는데, 더구나 국치를 당하고서는 일제의 압정 하에 감히 수양조차 못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강압 속에서도 각파의 수양사들이 명맥을 보존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삼남에서는 지리산파와 대소태백산파와 속리산파와 계룡산파와 변산파가 있었고 경기에서는 송악산과 삼각산과 설악산에 약간의 산 일이 있었고 강원도에서는 금강산파와 오대산파의 소수가 있었으며 황해도 구월산파와 평안도 묘향산파가 상당수가 있었고 함경도에서는 백두산파가 좌우양파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가 소년시대에 아마 각파세력이 정립했던 것 같다.
내가 4,50세 될 때까지는 기성 잔존파들이 생존한 분들이 거의 백을 헤아렸는데, 을유광복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만주, 몽고와 중국에 왕래하던 분들의 소식이 묘연하고 6.25 사변이 경과한 후로는 남은 별 몇 개가 명멸할 뿐, 그후 계승해서 수련하는 인사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관에서 취체가 심한 관계도 있으나, 청년세대들이 정신수양 방면에는 현실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현대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학부를 나오고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에 다시 연구할 시간의 여우가 있어야 자신이 전공하는 과목이나 혹 정신철학 과목이라도 택해 볼 것인데, 우리 나라 실정으로 보아서 학부나 대학원을 나오기가 무섭게 직업을 구하게 되고, 그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인사는 실직군으로 낙오감이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 무엇을 전공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 대체로 경제력이 부족해서 여유 적적하게 이것이고 저것이고 연구할 수 없는 관계이다.
이 정신수양법도 이파로, 삼파로 분열되어 있으니 끝에 가서는 다시 하나로 합해지는 이치로 성공하는 것은 일반이나, 그 수양법의 종류와 효능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정신을 통일해서 비상력을 낼 수 있다는 점만은 거의 동일하다. 대체로 구분해서 피동법과 자동법의 2종류가 있고 그밖에 피동반자동반으로 수양하는 법이 있다. 그래서 세 종류라 한다. 그 세종류의 효능은 동일하지 않다. 피동법의 수양이라는 것은 둔갑법의 총칭으로써 그중 저열한 십칠둔이니, 이보니, 오귀법이니 하는 등등까지 모두 피동법에 속하고 축지니, 차력이니도 계급의 차는 있으나 여기에 속한다.
자동법이라는 것은 자기정신을 수련해서 비상력을 얻는 법이다. 유가전현들의 일조활연관통이라는 것이나, 불가의 선법이나 선가의 수단법이나 모두 별 차이 없는 과정이다.
피동반자동반이라는 것은 초정산이니, 순적산이니, 사시산이니, 승문산이니, 기문둔갑법이니, 신척산이니, 시해법이니 하는 등등과 신검, 신탄, 신궁 등이 모두 이 법에 속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만 정신수양법 중 자동법에 국한하고, 그 자동법 중에서도 불가선법이나, 유가의 회광반조법이 아니라, 순수한 호흡법으로 정신을 일치시키고, 기혈을 조화시키며, 신체를 건강하게 함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자연적 효능을 가져오고, 이에 따른 기억력의 증진은 물론, 사고력이 초비상적이 되게 하는 백두산족 전래의 정신수련법이다. 이 수련을 올바로 행하면 보통 사람의 열 배 이상 되는 정신력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정신수련을 습득해 본 사람으로는 누구나 이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비록 연습의 단계가 있어서 각 개인의 실력차가 있을 수 있으나, 믿을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가장 쉽고 가장 간편한 법이다. 물론 동일한 정신수양법이라도 각 개인의 경험이 달라서 저술한 바에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정신수양법에 대한 나의 사견을 쓰는 것이요, 이것이 정론이요, 타인의 이론은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선배들에게 직접 듣고, 직접 보고, 스스로 실제수련을 해보고, 또한 내가 내 아랫사람들을 훈련시켜 보고 난 후의 경험을 쓰는 것이다.
내가 청장년 시대나 오십대에서라도 이 수양법에 대하여 발언하고자 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선배들이 얼마든지 있었고 비록 후배라도 뛰어난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대무지전이라 소무야 불간참 했던 것이요, 내 생각에야 감히 이심전심의 경지를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나, 어언 선배들은 서산에 지는 해의 느낌이 있고 잔성이 무기라, 내가 불초함으로 모르는 것은 아니나, 함구불언할 수 없어서 죄됨을 알면서 선배들에게 들은 그대로 난초해 보는 것이니 후일 제군자들은 오늘날의 내 심정을 통찰하시고 외람함을 용서하시면 족하다. 이 정신수양법이 널리 퍼짐으로 인하여 황백전환기가 하루라도 속히 올 것이요, 세계 평화의 배태가 여기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며 이 붓을 그친다.
천지인 불가분론 서
건상(하늘의 형상)의 해와 달이 낮과 밤을 나누고, 북극과 남극으로 천추(하늘의 기둥)가 되며, 28수(별)가 경성이 되고, 오행성(금, 목, 수, 화, 토성)과 여러 별들이 위성이 되어 천체를 구성하였다. 태양계의 별들이 비록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으나 동일한 궤도에서 쉬지 않고 움직임을 계속하는 것이니, 이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끝없는 세월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를 하늘이라 한다.
천체도 순양명으로만은 오래 지탱 할 수 없고, 태음과 태양의 음양으로 배합되어야 비로소 천리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천체의 자연은 순양인 태양의 양명(밝음)이 있을 뿐이다. 다만 각 별들이 자전하여 반양반음으로 음양이 조화되어서 지구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지구가 동서로 낮과 밤을 나누어 경이 되고 남북극으로 지축을 짓고 위가 되어 적도의 왕래로 춘하추동 사서가 되고, 수화목금토 오행으로 이 지구의 구성체가 되어 서로 상생 상극 변화로 불멸영생 하는 것은 바로 천체를 본받은 것이다.
하늘과 땅의 원리 그대로 인체가 구성되었다. 머리는 하늘을 본받아서 이목구비로 천오행이 되고, 배는 땅을 본받아서 오장육부로 지오행이 되고, 이환궁(머리 한가운데 부분)은 북극이 되며, 항문은 남극이 되고 남북극으로 인축은 척추가 되고, 사지로서 사유열수가 되고 산악행룡을 본받았다.
또한 남자의 외신(생식기)은 건(하늘)을 본받고 여자의 자궁은 곤(땅)을 본받아서 음양이 배합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동일정이 천지의 본을 받지 않음이 없다. 그리하여 하늘에는 365도가 있고, 또 성수(별들)가 365개인 것이다. 땅에도 각 성수의 응하는 지역이 있고 사람에게는 365개의 혈이 있는 것이다.
땅위에 성신의 응하는 곳이 명당대지라는 음택(묘자리)일 것이니 사람이 학문을 연구하려면 상관천문(위로는 천문을 본다)하고 하달지리(밑으로는 땅의 이치에 통달함)하며 중찰인사(가운데로는 사람의 일을 살핌)해야 하는 것이다.
근래에 천문을 본다는 사람들이 지리와 인사를 알지 못하며, 인사에도 침혈을 안다는 사람들이 지리나 천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모두 그 이치를 알지 못하고 공연히 근시안적으로 보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인체의 365혈을 말하자면 지리의 365혈과 천문의 365도의 이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필 천지인의 혈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과 멈춤이 모두 천지인에 합치되는 것이니, 그 원리를 연구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으로 한 가지라도 깨달음이 있다면 미루어서 무슨 일이든지 알 수가 있다.
사람은 본연의 천성인 명을 욕심으로 어둡게 만들고 심하면 아주 칠흑같이 깜깜하게 되어서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천성인 밝음을 후천적으로 밝히게 되면 천지인이 같은 이치로 영원히 불멸할 수도 있고 하는 일마다 밝아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학지도는 명명(선천적으로 밝음을 후천적으로 다시 밝힘)에 있다'는 것으로서 사람의 욕심으로 가리워진 밝은 본성을 후에 본심으로 밝히면 이 사람은 성인도 되고 현인도 되며 군자도 되고 천인도 된다는 것이다. 비추이지 않는 물건이 없는 태양의 양명을 본받으면 사람도 그 행실이 극에 달할 수 있다고 본다. 천지가 곧 사람이요, 사람이 곧 천지라고 본다. 땅도 하늘을 본받고, 사람도 하늘을 본받았으니, 천지인은 상호불가분의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체는 곧 천체이며 지체이다.
덧붙이는 글
우연히 캄캄한 길을 걸음 나아가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가던 중에 산길, 물길을 많이 지났다. 무심한 가운데 길을 따라 걸어본 것이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는 등산로 였다.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몇 번인지 쉬어가며 오른 것이 앞도 없고 뒤도 없고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한 걸음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한다. 결가부좌하여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중에 동쪽하늘에서 아침해가 비쳐 오니 천지가 광명할 뿐, 내 마음속은 여전히 고요하다. 고요하면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이 있으면 다시 고요하니라. 움직이고, 다시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며, 움직이는 가운데 고요함이 있으리라.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리라.
길이 움직이고 고요할 줄 알지 못하며 길이 고요하고 움직일 줄 알지 못하리라. 고요함인지 움직임인지 가릴 길이 없으리라. 고요할 대로 고요하고 움직일 대로 움직이리라. 아무렇게나 기울어지지 않고 허공에 나아가 다시 돌아오고 다시 나아가 다시 돌아오리라. 그러나 나아가고자 함도 아니요, 그치고자 함도 아니요, 또는 안 나아가고자 함도 아니요, 안 그치고자 함도 아니니라.
이것이 나라는 것임을 알라는 것이다.
방법은 다르다고 해도 모든 종교, 사상의 목표는 같다. 한민족은 그 자체가 본래 하늘을 공경하는 종교적 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것이 이곳에서 꽃피게 되어 있다. 동방에서 나온 것은 다시 동방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서양사상도 언젠가는 우리 홍익인간 정신에 수용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21세기는 종교라는 간판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갈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했을 때에 단군 정신은 그 7할 정도가 말살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을 성업이라 표현했는데 신라가 통일했다는 땅이 얼마나 되는가. 한반도의 반밖에 안된다. 백제와 고구려가 가졌던 땅이 얼마나 넓었는가. 신라는 산동성 안쪽, 발해, 만주를 모두 당나라에 비친 것이다. 그것이 소위 삼국통일이란 것이다.
발해가 복구한 그 옛 땅은 어디로 갔는가. 제주도, 충청도, 전라도가 백제란 말인가.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만을 고구려로 알고 있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삼국통일 때부터 우리 배달민족의 정신은 말살되어 버렸다.
단군이 백두산 이남인 조선의 할아버지만은 아니다. 중국의 양자강 이북과 산동반도, 만주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단군을 섬기고 있다. 우리의 어천절인 3월 15일을 중국에서는 '쌍시리절' 이라고 하여 역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또 우리 나라에서는 고대부터 중국에 가서 임금된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모두가 동이족으로, 이것은 역사 기록이 증명해 주고 있다.
중국인들도 곤륜산보다 장백산(백두산)을 더 높은 성산으로 인정하고 있고, 그곳에 선비족이 산다고 부러워했다. 오래 전에는 백두산이 제일 높은 성산이었다는 말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이란, 한마디로 동서남북의 사람들이 사람노릇을 해가며 평화롭게 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순과 대립, 상쟁과 상극의 세계사를 씻어버리고 평화를 위한 상생, 화합의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자는 말이다. 이것은 선민이 아니라 천민인 우리 겨레의 역사적 소명이다.
이렇게 말하면 국수주의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문화는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천하게 여기면서, 남의 것이라면 까닭 없이 좋다고 맹신 맹종하는 얼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역사에 가리워진 우리 고대문화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난 일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또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도 많다.
우리 나라 역사를 보자. 상고사는 잘 알 수 없으니 접어두고, 중고역사에서 을지문덕이 수나라 병사 백만을 청천강에서 대파하였다. 당시 수라면 중국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강국이요, 또 우문술이라면 상당한 장수다. 반면에 우리 나라는 삼국시대요, 병력이 태부족이었는데 수나라 군대를 청천강까지 유인하여 전멸시켰다.
야사에 전하기를 수나라 병사들이 청천강 북쪽 기슭에 와서 도하작전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 강물의 깊이를 알지 못해서 주저하였다. 그때 강변에서 승려 세 사람이 강을 건너는데, 물이 무릎까지밖에 차지 않았다. 승려들이 강을 다 건너가는 것을 본 수나라 장수가 곧 대군에게 도강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대군이 강의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뜻밖에 수심이 깊고 또 고구려군이 반격하는 바람에 수나라 군사가 거의 전멸되었다.
그 승려들은 사람이 아니고 청천강 남쪽 기슭의 어느 사찰에 봉안한 미륵불 세 분이었다고 한다. 비록 알 수 없는 일이나 수나라 군대가 청천강을 건너다가 패망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가 여기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을지문덕이 무슨 병력과 병법으로 수나라의 그 엄청난 대군을 전멸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또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와 개인적으로 대결을 하여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병대병의 전술이었을 것이다. 그 전술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일시적으로 수나라 병사가 실수하여 패했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추측해 보더라도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 재반격을 하였을 것인데,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주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수나라 군사로 하여금 뒤돌아볼 엄두를 못 내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그 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전쟁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깊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전래되던 우리의 병법은 무엇인가? 무기는 무엇이 있었는가? 을지문덕은 무슨 공부를 하던 사람인가? 이러한 것들을 각 방면으로 조사해야한다. 역사를 볼 적에 주마간산 식으로 보아서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다.
연개소문이 당나라 병사를 대파할 때에도 보면, 당태종 이세민이 중국을 평정하고 그 여세를 몰아 우리나라를 범하였다. 당시 중국의 천하영재를 모두 모아 가지고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 무슨 고유의 전통적인 무예나 병법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연개소문의 지략과 용맹은 당나라에서 감히 상대를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중국에서는 열 여덟 종류의 무기를 사용하였는데,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무슨 무기를 사용하였는가? 또 중국에서는 병력 배치 방법으로 팔문법이 유행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무슨 병력 배치법을 썼는가?
이 모든 의문을 풀어 줄 자료가 한 건도 역사에 전하는 것이 없다. 그저 연개소문이 용맹하였다는 것뿐이다. 이래서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 역사가들이여, 고고학을 좀더 연구하고 나서 역사를 쓰라는 것이다. 당시 민간풍속은 무엇이었으며, 국가 정치는 어떠했는가 하는 것도 현재 우리가 보는 역사책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도가 있었는데, 그것이 있었다는 기록만 엿보일 뿐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상세한 것은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다. 화랑도에 나오는 국선이라는 것도, 어떤 수련을 해야 국선이 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삼국사는 완전히 피상적인 것만 남았을 뿐이다. 당시 우리의 예술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하였던 것은 사실인데, 역시 그 예술의 흔적은 있으나 그 예술이 전래되지는 못하였다.
그 신라 말기의 견훤이나 궁예 역시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장수였는데, 그들이 무슨 병법을 지니고 있었는지 상세히 알 길이 없다.
그 다음 고려사에 보면 초기에 서희 같은 명장이 있었고, 중기에 강감찬 같은 명장이 있어서 종종 그 전하는 이야기들은 있으나, 역사로 보아서는 조금도 알 수가 없다. 또 도자기 예술도 당시에는 보통으로 알았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 뛰어난 공예술을 다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소중화라고 자처한 유학자들이 자기 나라에 전래하는 인심이나 풍속을 기록한 일이 없으니,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일이다.
조선 개국 초기에는 문무를 모두 겸비하였던 듯하다. 태조 대왕의 용맹스러운 모습이나, 이지란의 용맹한 자태가 서로 우열을 다투고, 또 세종 대왕의 문화정치는 역사적으로 뛰어났다. 당시 김종서 같은 재상은 문무를 겸하였고 세조 대왕도 역시 문무의 재인이었다.
그렇다면 개국 초기에는 선비들이 문과 무를 모두 공부한 것이 사실이다. 그 다음에도 선조 대왕 당시에 지혜로운 인물이 속출하였는데, 이들의 맥을 살펴보면 순수한 주자학파가 있는 반면에, 이와는 달리 우리 나라의 전래하는 성리학을 전공한 이도 있다. 이 방면의 학자들을 주자학파에서는 소강철학파라고 지칭하였으나, 사실은 우리 나라 유교는 주자학파뿐이오, 소강절파는 전래된 일이 없다. 그들은 우리 나라에 고래부터 전해오는 학문을 연구한 분들이었던 것이다. 또 주자학파는 교리에 치중한 교파가 대부분인 것 같고, 본체를 공부하는 심파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우리 고유의 철학을 연구한 이들은 주자학파의 탄압이 무서워서 발표를 안 했던 것이다. 그래서 화담 서경덕, 북창 정렴, 남명 조식, 구봉 송익필, 율곡 이이, 고청 서기, 미수 허목 등과 같은 인물이나 박엽, 허생, 진묵, 서산, 사명당 같은 이들은 모두 그 이름이 별로 나지 못했다. 또 숨어 있던 선비 중에도 무수한 위인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율곡선생 한 분만이 국가적으로 대접을 받았을 뿐 다른 이들은 입에도 오르지 못한다. 이 모두가 주자학파의 횡포 때문이었다.
이렇게 회고해 보면 조선문화가 선조 대왕 시대까지는 그래도 전래되었으나, 그후에는 흔적조차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인조대왕 이후 인물이 나오지 못했으며, 효종 대왕때에 약간의 숨은 선비들이 있었으나 감히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후 2백년간은 역사에 기록할 만한 자료가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역사들은 무엇을 참고하여 붓을 드는가, 그것이 나는 궁금하다.
우리 나라의 인물전기부터 왜곡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그런가 하면, 전기라는 것은 마땅히 주인공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공부했는가를 첫출발부터 잘잘못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당연하다. 말하자면 임진왜란에 충무공이 세기적인 위인으로 성공한 이유가 자초지종 상세히 기록되어야 다음에 제2의 충무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가치라는 것인데, 우리 나라의 전기에는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테면 거두절미의 문학일 뿐이다. 충무공이 수련시기에 무슨 수양을 해서 어느 정도의 단계에 갔는가, 관직의 길로 나아가서 수양한 실력을 어떻게 활용했으며, 그리하여 어떤 전략으로 명량, 노량 대해전과 같은 신화적인 전과를 올렸는가가 상세히 기록되어야 한다. 후대 사람들은 말하기를 충무공은 거북선으로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이 거북선을 만들게 된 원인과 그 방식이 기록되어야 할 것이데 의외로 거북선에 대한 평면 외관도는 있으나 입체 설명도와 해설이 없고, 충무공 자신의 거북선 제작 동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나라 인물 전기의 부족한 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율곡과 충무공의 관계에 얽힌 야담이 많은데, 이 야담을 구체화해서 후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끔 명료하게 기록하지 않고 다만 상투적으로 그 인물에 대한 칭찬이나 늘어놓아서 외양만 번지르르하게 써놓은 것뿐이다. 충무공뿐만 아니다. 조선 오백년의 인물전기에 실린 사람들 모두 단점이라고는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인물전만 가지고는 후대가 그 진실을 알 길이 없다.
내가 지금 이렇게 중언부언하는 것은 현재의 역사책에는 우리 나라의 전래되어 온 고래문화가 한 건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한심해서다.
우리의 대황조께서는 '태초에 한 기운이 세갈래로 맑은 형태로 형상화되고, 그 세갈래의 형태가 다시 한 기운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였다. 또 '장차 삼교가 통합되어 한 집안이 될 것이며, 간방의 도가 다시 빛나서 시작과 끝을 이루리라'고 하셨다. 여기서의 간방은 바로 우리 나라를 가리킨다. 이를 공자도 묵시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석가모니 부처는 미륵불의 도래를 말하였는데, 미륵불의 용화세계라는 것도 우리 나라를 의미한다. 여러 방면으로 각양각색의 설들을 종합해 볼진대, 어느 모로 보든지 성인이 '시작과 끝을 완성할 도'를 다할 곳은 바로 우리 간방이다. 여기서는 내가 이러 정도로 말하지만, 실제로 중국이나 인도나 구미의 성현들이 모두 우리 나라에서 장차 구세주가 나온다고 말한 일이 있다. 이런 점은 종교가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구미 각국에서는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일에 열심이다. 물리학을 비록산 자연과학자들과 예술가들도 동양의 정신을 찾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젊은이와 지식인들은 동양의 고대철학이라면 덮어놓고 미신이라고 돌려버린다. 이 무슨 역설인가? 서양의 선진국에서는 동양철학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동양에서는 고대철학을 미신이라고 반대하니,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숭배하는 구미의 선진 철학자들이 미신 숭배자란 말인가?
우리는 먼저 역사의 이면에 가리워진 우리의 고대 전통 철학을 공부해야한다. 우리의 전통 철학이 미신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과학이라는 미신, 합리성이라는 미신에 젖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대 철학을 연구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흩어진 고서들에서 찾아 읽는 방법이 있고 또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학문을 배우는 방법이 있으며, 실질적으로 그러한 철학을 체득한 이들에게서 배우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사가들이 피상적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우리의 사상과 철학을 다시 부활시키는 일이다.
전통의학론
전통의학을 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먼저 인체의 구조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은 구조의 각부분을 분해해서 이치에 맞게 논하고 나서 각 부분을 다시 합체하여 총론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인체의 구성도 천체나 지체와 동일한 배합체가 되어 있는 것이라 인체의 각 부분을 천체나 지체에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원리론에 충분한 해석이 된다면 이 원리를 벗어난 것이 병이 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알 것이요, 이 원리를 잘 알면 그 고장난 곳을 원상 회복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장이 원체의 성능을 변하게 할 정도로 중대하다면 이것은 원상복귀를 못하고 현상유지만 가능할 것이요, 이 현상유지도 어려울 때에는 당연히 그 체의 종지부를 고하는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사람 가운데 전통의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원리론에 치중하지 않고 병리학이나 해부학, 임상진단학, 또는 치료학 등을 위주로 하는 중대 착오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체구성원리를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해석할 수 있다면 병리학은 별로 큰 어려움이 없이 상징적으로 판단될 것이요, 해부학이나 임상진단학이나 치료학이 모두 이 인체구성원리에서 미루어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부분적 해설을 위주로 하지 말고 원리론을 충분하게 알도록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바이다. 병리학을 배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인체구성원리를 충분히 알고 있다면, 이 원리에 반대되는 것이 병이 되는 것이라고 알아지는 것이니, 각 부분에 대한 학론이 모두 이러하다는 것이다.
전통의학으로 보아도 황제소문, 장부총론, 맥경, 상한론, 운기론, 풍한서습론 등이 있으나 의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상의 제론에 정통한 사람이 전국을 통해서 몇 사람 되지 않고 각자 한 가지 기술, 한 가지 능력으로 개업한 사람이 대다수라고 본다. 비록 일기일능일 망정 전공한 사람이 역시 드물다고 본다.
현재 쇠퇴하는 전통의학을 갱생시킬 책임을 가지고 전공해서 서양의학 수준을 돌파할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는 의학자와 학생이 얼마나 되는가가 가장 의문이다. 동서의학이 모두 발전될 소지가 충분히 있고 연구하면 서로 배워야 할 것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동서의 의학서적이야 얼마든지 있으나 의학의 원리는 동양에 전래하는 것이 장점이 있고, 부분적인 설명에는 서양의 교수방식이 장점이 있다고 본다. 내가 이 전통의학론을 기록하는 데에는, 동서가 합쳐져야 한다는 신조로, 서양의학은 상식적으로 본 정도요, 전공한 것이 아니라서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는 없으나, 동양의학만은 전공은 하지 않았으나 상식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관계로 이 붓을 들어 본 것이다. 인체란 한 점의 정혈에서부터 시작되어 음양오행의 변화로 피와 근육, 뼈대, 가죽, 털과 기름기, 기름, 수, 골, 막(꺼풀), 정, 기, 신, 의 구별이 있으나 대체로 나누면 혈, 육, 근, 골, 피, 모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에서 정기와 골과 기름기는 피의 맑고 탁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요, 이 맑고 탁함은 사람 몸의 온도에 변화가 생겨서 피의 작용이 지방막으로도, 뇌수로도 변해지는 것이다. 몸의 한열이 적당히 맞으면 몸에 병이 없고 이 한이나 열이 어느 곳으로 지나치면 곧 병이 되는 것이다. 열이 지나치면 정신이 혼탁해지고 피가 마르고 더워지며 피의 흐름이 빨라져서 병이 되고, 그 반대로 한이 지나치면 정신이 위축되어 응결된 혈구가 습으로 변화하여 피의 운행이 느려지는 것이라 역시 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열이 과한 사람은 차게 해야 병이 안되고 원상복귀를 할 수 있으며, 한이 지나친 사람은 따뜻하게 해야 병이 안 되고 원상 복귀하여 건강을 보존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비결이며 피는 뜨거우면 탁해지고 차가우면 응결되어서 모든 운행에 고장이 나는 까닭에 일신이 무병하자면 피를 맑게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 다음은 음식물을 위에서 소화해서 영양가치 있는 것을 많이 취하고 신체의 운동을 적당히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는 건강해질 것이나,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소비하는 것이 많으면 그 건강도 시간문제라 다시 쇠약해진다. 그러므로 그다지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무리한 지출이 없이 적당한 소비만 하면 맑은 피가 축적되어 강한 방어선을 치게 되어 병이 감히 침공할 여지가 없어서 장수하게 될 것이요, 이와 반대라면 쇠약과 요절로 병의 완전한 승리가 될 것이다. 그러니 병을 보고 병의 이치를 조용히 생각해 보면 하나씩 하나씩 원상복귀의 길로 돌아가면 그 병이 치료되는 것이다. 그 치료방식에서 제일 우선되는 것은, 병의 증상이 발견되기 전에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건강에 조금 이상이 발견되거든 즉시로 그 병을 퇴치해서 병의 세력이 커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넷째로 병이 중태로 되었을 때에는 할 수 없이 약을 사용해서 급한 증상을 구해놓고 그 다음 원상복귀로 가는 것이다. 치료법은 주로 피를 맑게 하고, 소화가 잘되게 하고, 한열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요, 청혈제는 청단(가래를 없앰)도 되는 것이며, 여러 가지 병을 가져오는 백 가지 기생충도 제거 해야한다. 이것이 치료의 주요 비결이다. 그리고 증세에 따른 투약은 임시적으로 할지언정 주된 치료법을 증세에 대해서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대체로 대중투약을 하는 고로 일시적 치료는 될지언정 완치가 못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위는 맑고 아래는 탁함이 본성이라 상부의 맑은 곳을 정혈로 맑게 하고 하부의 탁한 곳을 따뜻한 기운으로 습한 것을 말리면 몸이 항상 건강체로 되어 생명을 길게, 병없이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치병의 대요요, 풍한서습 등의 증세로 병이 발생한 때에는 그 병이 생긴 원인을 연구해서 현재의 증세보다 병이 침범한 근원을 주로 하고 현증상을 종으로 하여 장차 병세가 진전될 곳을 미리 보충하여 다스리면 별로 실수없이 치료되는 것이다. 대체로 병의 원리보다 인체구성의 원리를 보고 그 다음에 병의 원리를 알라서 치료방식은 발병의 원인보다 평소 인체에 이상이 생기는 원인부터 치료하고 그 다음, 병리에 해당하는 곳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라는 것이다. 현재 발병 증세가 위급할 때에는 부득이 현재의 증상을 그대로 먼저 치료하는 것이 한 방편이요, 그것을 정법으로 알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치병의 요가 6,7할은 정신으로 좌우하고 3,4할은 약품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침구도 약품치료와 동일한 효과를 보나, 어느 부분에 국한된 것이요, 여러 가지 병에 모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뒷날로 미룬다. 약품치료는 아무리 병리학에 숙련된 사람이라도 약품이 정제된 것이 아니면 처방으로만 병을 치료 할 구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전통 의약계의 약품채집에 대하여 볼 때 아주 부주의가 심하고 현상유지도 극히 곤란한 형편이라 이를 갱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종 약품 가운데 채취방식과 저장방식을 법대로한 약품이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인지 의심이 되고 또한 제약 방식도 처방에 의존하는 정도요, 법제를 제대로 하는 것이 드물다. 그러므로 의학과 약학이 함께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전통의학계의 중대한 결점이라고 생각된다. 해당 의약계에서 한 나라 전체를 통일해서 약품채집이나 제약에 정밀을 주로 하고 권위 있는 검사원이 판정을 한 후에 사용하도록 해야 정당한 의학기술자라도 안심하고 약을 사용하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현상태로는 비록 권위 있는 의학자라도 약품이 명칭만 같고 효력의 차이가 천차만별로 다르니 안심하고 약을 사용할 수 없고 또한 의학자라고 반드시 약품감정을 잘 할 도리가 없는 것이요, 한약재 판매상이라는 곳도 채집방식이 가장 정밀하다고는 못하겠다. 산지에서 약품을 가져오면 매입하여 수집할 정도요, 그 채취방식의 합법성 여부를 운위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것이 전통의학계가 퇴보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이것을 전국적으로 정제품과 감정 합격품이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고 그 다음 현 건재상들이나 약종상들에게 약품감정을 쉽게 하도록 교습시켜서 누구나 정제품이나 합격품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전통의학계의 갱생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또 우리 나라에서 전통의학계를 통해서 유명한 법이 간혹 있는데, 이것을 한 사람의 비장으로 하지 말고 우리 의학계의 발전을 위해서 제공하여 서양의학계와 맞서서 세계진출을 하면 우리의 전통의학도 상당한 세계적 부문을 가질 것이라고 본다. 내가 아는 바에도 나병, 폐병, 간질, 성병 같은 서양의학계에서 불치병으로 보는 것을 우리 나라에서는 산간 벽지에서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별 문제없이 완치시키는 일이 종종 있다.
이 완치방식이 합법적이라면 세계진출을 통한 우리의 국가적 이익은 지대할 것이다. 또 강장제 같은 것도 세계 어느 나라 것보다 우리 나라의 몇몇 집안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약품들은 아주 특수한 효력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도 좀더 연구해서 정제품으로 세계에 내놓는다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의학계에서는 개인주의를 속히 버리고 통일정신으로 합동연구를 해서 최고의 정제품을 만들어 국외진출로 세계의학계를 정복하고 전통의약계의 개선탑을 세우라는 것이다.
옛날 의학이나, 옛사람의 약품들이 현세계의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서양의 의약보다 열 배, 백배의 효능이 있는 일이 종종 있음은 사실이 증명한다. 현대라고 이런 인물과 약품이 아주 없으라는 법도 없는 것이요, 다만 각자의 비전이니 가전이니 하며 발현을 시키지 않은 것이 전통의학계를 위해서 크게 불행한 일이나, 이 부문에 이런 것을 발현시킬 만한 기구가 없는 것도 역시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허락한다면 전통의학연구소를 발족시켰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보기에 전통의학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나 어느 부문은 현세계 의학계에 파문을 던질 것이 많고 또한 약학에도 서양약품보다 아주 우수한 제품이 많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들이 다만 통일되지 못하고 합법적으로 계통을 세우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정제하고 연구를 더 가한다면 우리의 현재 약품으로도 국외 진출에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전통의약은 병이 오기전에 먼저 약을 복용해두면 일평생 건강체를 가질 수 있다는 우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불행히 병이 발생할 경우, 의약이 없는 곳에서 일반적으로 치료하기 쉽도록 고대국가에서도 쉬운 글로 저술한 책자를 전국민에게 보급하였는데 현대 20세기의 보건부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직 초창기인 만큼 설비가 부족해서 국가적으로 의료보급은 못할지언정 전문적으로 연구도 못시키는 것은 보건부 책임자들이 아주 무책임한 것이라고 보는 도리밖에 없다 하겠다.
전통의학론을 얘기하다가 현 의료정책에까지 미친 것은 탈선이나, 말이 여기까지 안 갈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이 다음 시간이 있으면 실제적 예를 들어서 의학이나 약학에 무엇무엇이 중요한 조건인가를 상세히 서술하는 책을 다시 쓰기로 하겠다.
단기 4288(서기 1955)년 1월 10일
우리나라 고유의 체술
우리 나라에 옛부터 전해오는 무술의 비밀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문자화되어 전하는 것은 보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흩어진 가운데 야담으로 전해지고 설화로서 그 지방에 전해질뿐이다. 이것은 당시의 정치가 그것을 전하도록 허용을 안 한 것이 주된 원인이요, 또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치던 방식이 공개되지 않고 한 사람의 높은 수제자가 무예의 전부를 습득 못하고 한 기술이나 하나의 재능을 기르는데 불과하여, 무술의 가장 비밀스런 핵심부분을 실제로 시범을 보일 만큼 닦지 못하고, 입으로만 전해 주고 마음속으로 전해 받는 식이었다. 그러나 다른 공부라면 모르되 무술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체득하지 못하면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나라 무술의 전모를 엿볼 수 없는 주원인이 된다. 그리고 후세 사람으로도 이 전모를 연구하려고 하기보다는 한 가지의 기술이나 재능이라도 습득함을 스스로 만족해하게 한 원인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을 염려해서 각 사람의 각 기술을 종합해서 근본적 체술을 연구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우리 나라 무술을 중국계통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것은 절대적인 오해다. 혹 큰 차이는 없다고 할지 모르나, 그 비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내가 말하던 바이다. 먼저 수차에 걸쳐 얘기한 바와 같이 삼한 이전의 무술은 말할 수 없으니, 약간의 유적과 오래된 전설이 남았을 뿐인 관계요, 삼국시대를 말하면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해 올 당시에, 수양제의 부하로는 중국전래무술에 최대강자들로 상장(지휘관급 장수)이 천명이요, 무사가 수십만 명이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수륙양로로 공격했으나 을지문덕의 한 번 공격에 그만 완전한 패배를 당하였다.
이것은 물론 지형에 익숙치 않은 수나라 병사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지형의 이점을 살린 작전에 말려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현대 군의 참모진들이 항상 말하는 바이요, 우리 나라 장수들과 병사들의 무예가 수나라 병사들보다 우수해서였다는 것을 연구하는 참모진들이 없는 것은 유감천만의 일이다.
그 다음 당태종 이세민의 침략 때에도 당시 중국천하 아홉 주를 통일하던 용맹한 장수와 지략이 뛰어난 장수들을 천명이나 인솔하고, 수없이 위험한 전투에 투입되었던 완전 무장한 갑사가 수십만 명이나 되었으나 고구려의 영웅 개소문에게 한 사람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는 치욕을 당하여, 지금까지도 중국에서는 개소문과 당태종의 이야기들이 연극으로 상연되어 그 당시 참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에 반해서 우리 나라에서는 개소문을 일개 용맹한 장부로 오히려 역적이라고 규정지어 학자들 사이에는 입에 올리기도 창피하게 여긴다.
그러니 당시에 그의 병법이나, 무술훈련방법들을 연구할 사람이 있었겠는가. 가장 한심한 일이다. 중국에서 본 연개소문 연극이 당시 사실과 부합되는지 아닌지는 내가 확실히 얘기할 수 없으나 중국인들이 전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보다 축소는 되었을 지언정 과장되지는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개소문이 당태종의 침략군을 맞으며 은인자중하고 있다가 한 번 반격하매, 개소문과 상대를 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상장 천명이 개소문 한 사람을 대하는 꼴이 바로 호랑이가 양떼 속을 휘젓고 다니는 격에 비유하였고, 개소문과 비록 승부에 차이는 있으나, 절대 절명의 상황에 처한 당태종을 구한 사람은 중국인 무장이 아니라 우리 나라 장수인 설인귀 였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우리 나라 고대 무예의 독특한 점이 중국의 무예와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요, 우리들의 조상으로부터 전해오는 무술의 비장함이 매우 우수했다는 것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통일 이후로 사대주의가 크게 번져서 우리의 역사를 전적으로 소멸시키며 위정자들이 당나라 풍속을 모방하기에 여념이 없어서 전래하던 미풍양속은 자취를 감추고, 혹 그 문화의 숨겨진 진수를 알고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이단적인 술사로 규정하였으므로 천여 년을 경과한 지금, 어찌 당시 무술의 전모를 알 수가 있을까. 단지 이곳 저곳에서 야담이나 설화로 전해지는 비밀스런 얘기들을 종합해서 갱생시키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나는 몸소 목격한 비전하던 우리 나라 무술을 본 그대로 잊지 않고 기록하고자 한다. 내가 중국 협의소설이나 각종 무술관계 책들에 나오는 무사들의 무술을 보았으나, 우리가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본 무예 같은 것은 중국소설이나 야사에서는 못 보았다. 중국에서 무사협의들은 주로 18반무예를 습득해서 상대자와 승부를 다투고, 간혹 독특한 습득 무예를 연구한 무사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검술에 있어서도 비검법은 각국에서 듣지 못하던 것이다. 중국의 봉신연의 소설에서만 비검법이 있었으니, 우리 나라에서 비밀리 전해오는 것을 내가 목격은 했으나, 그 진수를 알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럽다. 그저 약간의 방식을 귀로 들었을 뿐이다. 그 다음은 비신검법이라는 것으로 습득자의 높고 낮은 습득정도에 따라 몸이 날아가는 거리의 장단은 다르지만 내가 목격한 그 사람은 한 번 쌍검을 휘두르면 천리왕복이 호흡지간이었다. 그 주변에 있는 가까운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 분은 아주 고단자라고 했다.
그 다음은 분신검법으로, 일당천, 일당만이 자유자재한 법이다. 이것은 비록 야사가 전하지 못하나 중국에서 조자룡의 장판교 전투가 혹 이 종류가 아닌가 한다. 그래도 내가 본 분신검법만은 못한 것 같다.
팔선검이나 오행검이 모두 중국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무예 중에서 대략 검법 한 분야만으로도 중국 전래검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대 일본 검법이나 서양의 펜싱정도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또 역량가감법이 있는데, 이것만은 중국에서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현세계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이다.
이것을 현대인들은 차력이라고 한다. 어디에서 힘을 빌리리요, 모두 스스로 연습하여 성공한 것이다. 그 역량이 불가사의한 만큼 증가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실행하고 있는 사람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 다음이 체술이다. 중국의 용권, 일본의 유도, 서양의 권투나 레슬링 등이 현세계에 공통된 체술이다. 우리 나라에 전래하는 체술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탁견법이 있고, 또 체술이 있었다. 탁견법은 지금도 전해오지만 체술법은 전해오지 않는다. 그 전래하는 체술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유도나 권투, 권법, 레슬링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확대법, 원근법, 격타법, 경중법의 진수가 있었다. 이것이 우리 체술의 독특성이다. 물론 여기도 단계의 차가 있다. 그러나 고단자라면 타국의 체술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예전부터 공개하고자 하나 아직 공개할 만큼 습득한 신인이 없었던 것이 주원인이 되어서 시기를 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역량가감법은 내가 소년 시절이었을 때 실제로 경험이 있었다. 비록 저급이나 그 경로를 상세히 알 수 있고, 보법도 속보법, 비보법, 육지비등법 등의 구별이 있다.
이것은 내가 체험한 바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전공적으로 이것저것을 약술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성공 못한 사람의 숨은 노력
무슨 일이든지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그 노력은 일반이요, 결코 성공자라고 더 노력했고 실패자라고 덜 노력했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성공자의 공은 예찬하나 실패자의 노고를 애석하게 여겨 주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내가 작은 일이나마 본 바를 들어서 예를 삼고자 한다.
내가 18세때에 이곳 상신에서 공주읍 시장에를 가는데 동리에 사는 서씨 영감이 나와서 무슨 단지 두 개를 사더니 나와 동행중인 김씨에게 그 짐을 맡길까 하더니, 김씨는 사람이 신중치 못해 실수하여 단지를 깰지 모른다하여 동행중에 제일 신중해 보이는 임씨라는 청년에게 그 단지들을 맡기는 것이다. 임군은 공주읍에서 상신리까지 40리길을 아주 조심해서 한 걸음도 쉬지 않고 왔는데, 바로 서영감댁 문앞 조금 못 미쳐 와서 그만 단지를 묶었던 노끈이 끊어져 단지가 다 깨어지고 말았다. 서영감이 임군에게 조심 부족으로 실수했다고 큰 책망을 했다. 나는 임군이 40여리 길을 얼마나 고심하고 왔는지를 잘안다. 그러나 임군은 일언반구 못하고 그 책망을 감수하였다. 서씨와 같이 있던 노인들도 임군을 책하였다. 그래서 내가 임군의 딱한 처지를 아는 터이라 그 노인들에게 반항적으로 언사를 벌인적이 있었다. 세상일에는 임군의 실패같은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임군이, 노심초사는 우리들의 십 배, 백 배를 하고도 도리어 일시적 실수로 큰 질책을 당하니 세상일이 거의 다 그렇다는 말이요, 더구나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특히 주의해야 임군과 같은 그러한 억울한 실수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가진 것이 18세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느낌이다.
옛사람의 경우를 보더라도 실패자의 노력과 노심이 절대로 성공자에게 지지 않았다는 것을 유의하고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운명론이 나오나 목적지인 곳까지 조심하면 일에 소홀했다는 후회가 없을 것이며, 또한 실패할 리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못한 사람들의 노력과 노심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운이 좋아서 별 노력도 안하고 순풍에 돛단 듯 성공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성공여부로 그 인격을 평가하지 말고 그 노력한 바 업적으로 그 인격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다.
과거의 역사가들이 삼국에서 촉을 정통으로 인정해준 것도 이 관계일 것이다. 성공이나 실패를 막론하고, 그 업적에 정당하고 부정당한 것을 심사해서 대의에 입각한 필법, 정평을 하라는 것이다. 현재도 이와 유사한 일이 얼마든지 있으니 성공을 못한 사람들의 업적도 소멸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내가 이 붓을 드는 것은 이 후에 내가 기록하고자 하는 우리 선령들이, 완전한 성공을 못하고 일생을 노심초사하다가 운좋은 사람들은 눈앞에서 영화를 얻고, 운없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게 압박을 당해서 영혼조차 안식할 곳이 없음을 잘알고 있는 까닭이다.
효봉선사와 사리
얼마 전에 우리나라 불교계의 중진인 대종정 이효봉 선사가 79세를 일기로 서천으로 갔다고 한다. 그는 안광낙지할 때 주위 고승들의 송경속에 '아무 것도 할말이 없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자듯이 갔다.
그런데 선사의 화장 후에 사리가 34개 나왔다고 한다. 신문에서는 광채가 영롱한 이 사리들을 과학으로 무엇이라고 증명할 것인지, 증명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과학이 사리를 증명할 정도까지 못 갔다고 해야 옳다고 보도했다.
사람들은 이 사리라는 것을 불교에서만 있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 같다. 사리라는 것은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오랜 기간 전심전력으로 한 가지에 집념을 한다면 그 정신의 결정체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 크기의 대소는 각자의 정신력 여하에 있고 수량의 많고 적음은 시일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는 시작된지 얼마 안되는 것은 작고, 이것이 오래된 것은 점점 커진다고도 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사리의 크고 작음과 많고 적음으로 그 본인의 자격의 높고 낮음을 평할 수는 없다. 사리 자체의 광화로서 결정이 잘 되었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리가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도승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불가의 말로 진사리니, 가사리니 하는 구분도 있다. 그 밖에 문장가나 명필, 시인들 중에도 사리가 있고, 정반대로 도적이나 색마인자 들로 음사리라는 것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유가에서도 근년에 청렴재상으로 유명했던 해사 김성근 옹은 입에서 생사리가 세 개나 나온 일이 있다. 화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지 승려가 아닌 사람들도 사리가 나온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근래의 고승 백학명 선사는 사리가 105개나 나왔다. 그러나 자타가 공인하는 고승 수월 선사는 입적한 후 혜광으로 방광은 했으나 사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수월사를 고승이 아니라고는 못할 것이다. 혜월선사도 28개의 사리가 나왔으나, 생전의 도력이 여러모로 만우선사보다는 못하였다. 그러나 만우 역시 입적후 방광은 하였으나, 사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사리의 출현여부로 도의 높고 낮음을 평할 수 없다는 증거가 된다고 본다. 불교도가 아닌 타종교인이나 비종교인도 일심으로 한 가지를 목표로 수련한 사람은 정상삼화(정수리에 떠오르는 세 가닥의 정신적 불)의 발현이 필연적이므로, 현주(사리의 도교적 표현)가 있으리라고 본다.
이 사리라는 것은 자기의 결정체이므로, 자신의 형상이 그 사리 속에 새겨져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오대산 적멸보궁 사리탑에서 방광을 하는 것을 본 일이 두 번 있었고, 계룡산 천진탑에서 방광함을 세 번 보았다.
또한 구한말 순수 유학자였던 면우 곽종석 선생의 새벽 정좌에 삼화방광이 그의 머리 뒤로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내가 소년시대에 모시고 자다가 깨어나 본일이 있었고, 그 다음에도 두 번을 더 보았다. 그 다음 나는 정신수련차 중국 각 지방과 일본에서 선배 여러 분을 모시고 있으면서 삼화방광하는 분들을 여러 번 보았고, 대광명(머리 뒷부분만이 아니라 전신을 감싸고 있는 빛)을 발휘하시는 분들도 몇 분 보았다. 이 방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사리의 결정이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정신집중의 수련으로 누구나 거의 동일한 궤도를 밟는 것이요, 절대로 무슨 기적같은 현상이 아니다. 정상의 삼화가 빛을 드리워서 수광, 원광이 되는 법인데, 예수교에서도 이 원광을 그대로 표현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교인들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면 충분히 설명을 못한다. 이것은 뒷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요, 당시의 선지자들이 몰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불교인은 아니지만, 효봉선사의 집념이 순수하고 장구하게 변함이 없이 지속되어 그 결정이 사실로 확증되는 것을 보며, 그가 생전에 무슨 사리를 위하여 공부한 것은 아니었으나 자연적으로 전신사리로 그 육체는 갔어도 영생하였다고 본다.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및 기타 종교나 비종교인들도 모두 이러한 성스러운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지극히 높은 목적이다.
두 체험
나는 갑자년(1924)에 전남 영암군 시종면 와우리 김봉두 옹에게 가있었다. 두 번에 걸쳐 체험한 일을 불가사의라고 하지 않고 경험한 그대로 기록해 본다. 당시는 김옹의 종형이 서거한지 약 1년쯤 되었을 때다. 하루는 김옹이 나에게 지난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죽은 종형이 꿈속에 나타나 말하기를 어느 곳으로 영전하게 되는데 호적이 처리가 되지 않아 그곳에 부임을 못하니 속히 호적을 정리해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김옹의 큰아들은 당시 호적계에 있었다. 아침을 먹은 후에 김옹의 큰아들인 기성 군이 인사차로 왔을 때 김옹이 이 말을 했다. 그랬더니 기성 군이 하는 말이 봄날의 꿈을 어찌 크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그 당숙의 서거 당시에 사망신고가 되어 있고 제적도 되었다고 하였다.
김옹도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김옹이 말하기를 지난밤 꿈에 종형이 또 나타나 자꾸 독촉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침식사 후 다시 기성 군에게 말하니 일소에 붙여 버리고 말았다.
김옹은 크게 화가나 면사무소로 가서 면장에게 직접 호적을 보자고 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면장은 전 면장과 십여 년 동안 면직원으로 같이 있던 사람이었다. 여러 사람이 호적을 보니 사망계가 되어 있고 제적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호적 사유란에는 김옹의 종형이 호적에서 누락되어 추가 신고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전 면장과 전 직원이던 사람이 말하기를, 임자년 호적정리 때에 김옹의 종형이 옥야리에 거주하다가 수년 후에 타향으로 떠난 후 7,8년만에 다시 고향으로 왔으니 호적에서 누락되었을 리가 없다고 옥야리 호적을 열람하는 것이었다. 옥야리 호적을 열람해 보니, 호적대장에는 종형이 여전히 생존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놀랐으며 곧 호적정리에 착수하여 완전 귀결을 보았다. 김옹은 종형 묘 앞에서 살아있는 인간세계의 사무처리가 이같이 불완전함에 대해 탓한 후에 정리된 등본을 태웠다. 그날 밤에 김옹 뿐만 아니라 동네의 노인들은 꿈에 돌아간 김옹의 종형이 행차를 정비하고 무슨 임관하는 것을 보았고 김옹에게 와서 감사를 드리는 것도 보았다고 하였다. 서거한 김옹의 종형이라는 인물이 비록 농촌사람이기는 하지만 영특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사후에도 그 영혼이 깨어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은 김옹과 그의 친지 여러 사람이 남해당 정자 아래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도선장에서 한 사람이 오더니 면내의 김모라는 이를 찾았다. '이 사람아, 김모는 죽은 지 벌써 몇 해가 되었네' 라고 여럿이 대답하자 '네, 김모가 죽은 것은 잘 압니다 제가 저승에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그 집에 전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지요' 라고 했다. 김옹과 여러 사람은 모두 놀라 다시 상세한 내용을 물어 보았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중병을 앓던 수개월만에 영혼이 몸을 벗어나서 죽은 줄 알고 수습을 해놓았는데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서 며칠간 치료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자기의 죽은 혼이 간 곳은 삼향 해안 매립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거기에서 잡역부로 일을 했는데(당시 삼향 해안 매립장이라는 곳은 아직 허가도 나있지 않은 상태였고., 수년 후에야 허가가 나서 공사가 시작되었던 곳이다) 현장감독이 인부 호명을 하다가 그 사람을 보고 같은 이름이지만 당신은 아니라고 하며 이름을 지우면서 부탁의 말을 하였다. '자네가 내 집에 가서, 내가 영전할 차례인데 신원조회(신분조사)에서 부채가 정리되지 않아 갈 곳을 못 가고 있으니, 영암읍 김의관에게 빚을 얻어서 어떤 세명에게 빚을 주었던 것을 속히 정리해서 나의 영전이 늦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여러 사람이 동행하여 김씨 집에 가서 그 말을 전하고, 곧 빚을 주었던 세 사람을 불러내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비록 다른 곳에 있다 하여도 감히 사실을 속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호령하였다. 현장에서 세 명에게 주었던 빚을 모두 걷어, 김의관(낭산 김준연씨의 부친임)에세 가서 그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죽은 김씨는 아무 부채가 없다고 부인하였다. 김옹이 여러 가지로 변론을 해도 내내 시인을 안하더니 끝내 하는 말이, '그 사람(죽은 이)이 생전에 나하고 수십 차례 거래를 하면서도 한 번도 신용을 잃지 않았고, 또 정직한 사람이었는데, 죽은 후에 그 부친이 외아들을 잃음을 슬퍼하고, 또 나와의 금전관계를 알지 못하고 있기에 주위에 발설하고 싶지 않아 장부에서 정리를 한 것인데 이제 와서 부채를 받으면 내 마음의 계산에 다시 빚을 지는 것이다' 라고 하며 장부를 보여 주었다. 죽은 김씨의 부친과 김옹은 김의관에게 돈을 받으라고 하고, 김의관은 못 받겠다고 하다가 결국 김의관이 돈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김의관은 죽은 그 사람을 위해 부처님 앞에 불공을 올렸다. 이 모두 기상천외한 일이요, 현세의 인심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할 일을 영혼의 세계에서는 몇 년 전에 먼저 해보는 것같다. 영암의 삼향수면 매립도 이 일이 있은 후 7-8년만에 실제로 완성되었다. 그 다음에도 그런 예는 많이 있었다. 음이니 양이니 해서 양의 세계에서는 음의 세계의 존재부터 부인하나 사실은 동일한 세계다. 형체 따라 그림자가 따르듯 하는 이치인 것이다. 대인들은 수천 수만 년의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고 있으나, 아래사람들은 자기 수양범위로 그 빛이 나는 거리까지 겨우 볼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예를 들기 위한 것이다. 생사를 꿰뚫어보는 지혜로운 눈이 있는 사람이 현세에는 몇 사람이나 되는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흑막탄 실험
날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권위 있는 모신문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영국의 런던이 순간 암흑세계가 되었다고 한다. 그날이 만우절이 아닌 이상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을 보도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생각해보자. 천문기상의 변화로 그렇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인공적 조작으로 그렇게 된 것일까? 의심이 없지 않다. 영국의 런던은 짙은 안개로 유명한 곳이라서 4계절을 가리지 않고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암흑세계가 일종의 극도로 심한 농무현상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런던의 수백만 인구가 농무와 암흑을 분별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상식적으로 판단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기상의 변화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확실히 증명하기는 곤란하지만 십중팔구는 사람의 행위일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두가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이 암흑세계를 연구하는 한 영국인이 어느 정도 성공을 하여 런던에서 1차 시험을 한 것이 아니면, 연구중에 시험관이 폭발하여 암흑세계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외국인 발명가가 연구에 성공하여 미국이나 소련보다 출입이 안전한 세계 대도시인 런던에서 1차적으로 시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러 번 이야기하였던 미래에 출현할 신병기 가운데 흑막탄이 있다고 한 일이 있었다. 내가 본 흑막탄은 원근과 지속을 자유자재로 하는 성능을 가진 것인데, 그 위력이 원자탄으로는 절대 미치지 못할 정도이다. 원자탄은 무죄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이 결점이고, 이 흑막탄은 생명에 관계없이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무기이다. 이 무기를 가지고 있는 한, 상대국의 어떠한 병기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 무기의 원재료나 설계도 및 책들을 나는 정신수련 당시에 충분히 납득될 만큼 본 일이 있고, 다른나라 사람들도 이것을 연구증에 있으나 좀 약하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 연구는 순수 백인종이 아닌 유색인종과 일만리족의 합동연구가 아닌가 하며, 지역은 스페인 어느 산중의 호수가 있는 곳으로 안다. 그 호수 변에 별장이 있어서 호수 가운데 장치한 발전기로 연구실이 오르내리고, 이 연구실은 지하공작실과도 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연구인들은 일만리족 여러 명과 유색인들인데 전부 열두 명 정도로 비밀단체에 소속되어 있음을 나는 확실히 보았다. 그들이 연구한 것 중에 흑막탄과 유사한 것이 있으나, 내가 본 흑막탄의 성능에는 못 미친다. 또한 6,7종 신병기와 그 외에 십여 종의 새로운 기계를 발명한 것을 정신수련중 투시현상으로 확실하게 본 일이 있는데, 영국의 런던에서 발생한 암흑세계라는 것이 내 육감으로는 이 연구원들의 발명실험이라고 확언한다.
원자탄이나 수소탄은 모두 파괴와 살생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이 흑막탄은 다른 곳에는 쓸 데 가 없고 세계의 장래 평화를 위해서 한 번쯤 사용하므로써 극도의 포악한 세력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무기라고 생각된다. 이 무기가 그림자를 비추어 준 것만으로도 나는 조물주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장래에 평화가 올 조짐이라고 보아도 큰 오해는 아닐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런던이 암흑세계가 되었던 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든지, 나는 이것을 평화의 새로운 싹이라고 확언하는 바이다.
단기 4288(서기 1955)년 1월초
연정원에 대하여
연정원우 수련기
원상수련과 7,8급 정도에서 11,12급 정도로 나아가는 도중의 경험과 소견을 적어 볼까 한다. 1925년 초여름, 소성에서 20여명이 제 1차 수련을 시작해서 이용련 군이 초계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지낸 경력을 보면 10급에서 11급 정도로 판명되고 그 밖의 두세 사람이 8,9급쯤 된 것 같다. 또 다른 두 사람은 7,8급 정도이고, 그 외에 10여명은 무급이었다. 나는 그 당시 뒤늦게 참여하여 13일 동안을 수련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견이 각기 다르다. 이용련 군이 품고 있는 웅대한 포부란 오로지 금과왕이 되어 일세를 진동코자 하는 사람이라 소견이 여기에 그칠 것이고, 그밖에 여러 사람의 소원 역시 자신의 사업성공을 바라는 정도이기 때문에 그 소견이 여기에 머물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두 사람은 바라는 것이 영구여서 점에 대한 소견이 많았다. 오로지 한 사람만이 선입견이 없이 단순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이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해 보겠다.
그가 6,7급에서 가서 현상(원상 수련 중에 나타나는 투시현상)이 되는 때인데, 그에게 있어서 오늘 내일의 기상변화를 알게 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고, 사람의 오고 감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수련장소가 인천이었던 까닭에 당시의 미두시세를 한 달 앞은 힘들어도 하루 앞 정도는 귀신같이 알아맞추었던 그는, 어느 집안의 과거 길흉화복이나 다가올 미래의 길하고 흉한 일들을 명확히 알아내고, 또한 먼저 돌아가신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을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생생히 만나 보았던 것이다. 또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이 무슨 물건을 지니고 있는지를 한 번 보고 금방 알았고, 무덤 위에서 수련을 할 때에는 그 무덤의 주인인 백골의 새전 얼굴을 알아맞추기도 하였다.
항상 그렇지는 못하지만 수련 중에 나타난 현상으로 위와 같았다. 이상이 1925년 당시 제1차 순수정신수련 결과라고 본 것이다. 나는 비록 13일 동안 수련에 임했다고는 하지만 그전에 이미 호흡법으로 정좌하여 소득이 있는 관계로 좀 빨리 향상되었던 것이다. 즉, 위아래로는 태초에서부터 대황조께서 우리민족 최초의 임금으로 등극하실 때까지의 과거와 좌우로는 동서양의 위대한 성현들과 도인들의 고행을 참관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대현계(정신수련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정신세계 가운데 하나이다)에서 연구 발명중인 기계와 새로이 그려진 세계지도의 도면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실인가 거짓인가, 또 내가 본 것이 남김없이 본 것인가 어느 한 부분만 본 것인가 하는 등의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기로 하겠다. 그 외에도 각종 신병기의 출현을 예고해서 원자탄, 전차대, 원자포, 비29 폭격기 등을 말하였고 나머지 일곱 종류의 신무기는 아직 출현되지 않았다. 이것이 1925년 초여름에 참여한 원상수련 소견의 일부이다.
그 이후 1930년에는 갑사 간성장에서 설초, 송사와 함께 3개월을 수련하였다. 설초는 초계가 약하였고, 송사는 준초계였다. 당시는 송사가 설초보다 우수하였다.
그후 신미년에도 다시 수련하였으나 별 성과를 못 보았다. 그후 여러 차례에 걸쳐 설초는 2계 약이 되고 송사는 더 나아가지 못하였으며 신진으로는 권오훈이 초계 약이 되었고 구영직군이 8급, 주형식군이 10급 정도가 되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쉬지 않고 더욱 노력을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송사도 단순하게 수련이 된다면 시골에서 입을 막고 지내다가 간간이 본 대로만 말한다 해도 특별한 사람 대우는 받을 것이고, 설초는 다시 수련만 된다면 충분히 입지전 속의 한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정신연구 중 소견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크게 어긋나는 점은 없어서 현로(아득하고 신비한 정신세계의 통로를 말한다)를 출입하며 능히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삶을 꿰뚫어 보는 사람도 있고 간신히 겨우겨우 그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삼생이 좀 나은 사람은 곧 보여지고, 좀 부족한 사람은 그 근처만 보이다가 2계 끝이나 3계초에 가서야 확실히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송사도 전생이 어디라는 정도일 뿐 확실히 증거를 못 들고 설초 또한 전생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정도이지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다는 것까지는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송사는 매일 쓰는 물건이 잘 보이고 설초는 산천의 영험한 신이 잘 보이며 과거와 현재의 현로 출입이 더 나은 것 같다. 권오훈은 대상(큰 현상을 말한다)이 낫게 보였다. 구영직군은 자신의 전공인 기계공학 부문에서 현상이 잘 되었다. 이명식이나 이용환은 현상을 주로 하지 않고 조식 호흡을 주로 하였다. 호흡으로 수련하면 별 재미는 없으나 초계이상에서 2계까지만 가면 원상법으로 현상되는 것보다 우수하다는 것이다. 수련을 통한 결과를 과대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고 정신연구의 본래 방식이나 법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신계를 드나드는 것을 수련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할만큼 되려면 호흡을 일 분 이상 고르게 쉬어야 충분한 것이다. 여기에다 관심과 관물을 마음대로 할 때에야 비로소 연정원 정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단기 4287(서기 1954)년 9월 1일
연정원의 중흥
연정원을 중흥하자면 먼저 연정원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연정원을 중흥하여 유리한 조건은 무엇인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연정원이라는 것은 우리가 수십년 전부터 정신연구를 목표로 절에서 참선도 해보고 산 속에서 석굴이나 토굴을 만들어 혼자 몸으로나 혹은 3,4인 혹은 10여인이 정신수련을 해본 일도 있고 또는 해변이나 교목 위에서 고력수행도 해보고 눈 위에서 내한 수련도 해보고 여름에 물 속에서 수수련도 해보던 차에 우리 동지들 십여 명이 계룡산에서 집단으로 내한수행으로부터 고력행을 계속하던 장소를 연정원이라 이름을 붙였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연정원이라는 이름 아래에 우리들이 정신연구를 목표로 동지들이 모였던 것이며 원우중에서는 상당한 단계에까지 갔던 사람들도 있었다.
원우의 자격은 누구나 연정원의 목표를 따르는 동호자로서 정신수련에 참가할 수 있으면 되었고, 비록 정신수련은 같이 하였더라도 목표하는 바가 다르면 원우 동지로 취급하지 아니하였다.
우리의 연정원 목표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항상 말하는 우리의 대황조(우리민족의 가장 윗조상이 되시는 국조단군)가 동양문화와 종교의 근원이 되고 대황조의 교화가 유교, 불교, 도교의 분파를 이루었다는 우리 고대문화와 역사를 다시 회생시켜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고대문화와 역사를 우리의 손으로 다시 일으켜 보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한낱 나의 몽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주 소년시대부터 이런 암시를 받은 일이 있었고 그후 정신연구를 중국, 일본 각지와 우리나라 명산대천의 고적이 있을만한 곳은 모두 다녀보며 문헌은 문헌대로, 고적을 고적대로 또 내가 연구하는 수리학에서도 이론적 증거를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보며 확실하게 도달한 결론인 것이다.
연정원에서 수양하는 방식은 바로 대황조께서 가르치신 방식대로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유구한 세월을 두고 우리 조상들이 계승해서 성쇠를 거듭하여 전해오던 법이요, 이 법이 우리 조상으로부터 중국으로 전해지고 곤륜산을 넘어서 소아시아지역으로 가고 천산을 넘어 인도로 들어간 것이다. 중국으로 가서 유교와 도교가 되고 인도로 가서 불교가 되고 소아시아로 가서 회교가 되고 또 예수교가 되었다. 즉 연정원의 수련 방식이 유교, 불교, 도교의 3교와 예수교, 회교 등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방식이요, 현대서양에서 정신과학을 연구한 것이나 다 같은 것이다. 다만 그 민족의 관습이나 풍속이 다른 관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주장한 연정원의 정신연구방식을 근대 일본에서 유행되는 방식과 비교해 보고, 중국과 인도의 방식과도 비교하였으나 그중 완전무결한 것은 우리의 고대수련법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는 연정원 방식이었다. 이 법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종교가 무엇이든, 전공분야가 무엇이든 무관하며 또한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고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경제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전천후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이 좋은 방식이 다른 나라 민족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우리 대황조의 가르침으로 우리민족이 수천 년을 거듭해 오던 것인데 중간에 침체되고 있는 것을 우리의 손으로 다시 우리 민족, 우리국토에서 중흥하고자 함이 당연한 일이니 비록 마음대로 일이 진전이 안 된다 하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효과를 거두어 볼 것이요, 추진하는데 노력이 든다하여 홀로 자신만 보전할 의사는 없다. 이것이 내 한 몸을 민족에 바치고 이 민족과 영고를 같이 하고자 한다는 일념으로 소년시절부터 미미하나마 이 방면으로 헌신해온 까닭이다.
내가 이 연정원을 중흥하는데 내 한 몸이 희생이 되거나, 일신의 별다른 성공이 없는 것을 별문제로 하고 이 연정원이 중흥되어 원우동지 중에서 완전수련을 거친 성공자들만 나온다면 나는 이것으로 족한 것이다.
나는 세상 부귀영화보다는 이 연정원의 중흥으로 후진 원우들에게서만은 성공이 있기를 제일 축원한다. 우리 나라의 국력이 세계정상의 수준을 못 가는 것은 과학문명이 부족한 원인인데, 현대 물질문명의 수준을 따라간다면 적어도 일세기 이내에는 절대 불가능하나 정신문명으로 전력하여 따라가자면 비록 장시간이라 하여도 20-30년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거국적으로 이 정신문명을 중흥시킨다면 30-40년 이내에 세계의 정상급 과학자는 모두 우리 민족에게서 나올 것임이 불 보듯 환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는 유심론자가 아니며, 심물합치론을 주장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마음과 물질이 서로 나눠질 수 없다는 관계를 주장하며 따라서 정신연구는 유심론에 그친 정신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심론과 유물론의 잘못됨을 타파하고 이원합치론을 연구하라는 것이다. 즉 정신문명으로 물질문명을 정복하게 되어 약육강식 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고, 크고 작은 것이 가운데에서 화합되고, 강자와 약자가 서로 보완하여 정신문명인 도덕을 갖춘 물질문명으로 세계평화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우리 연정원 중흥의 첫째가는 목표요, 또한 대황조님의 홍익인간, 이화세계 이념인 것이다. 우리 연정원 동지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완수할 때 자연히 연정원의 중흥은 성취되고 이 나라의 정신계 또한 중흥될 것이다.
연정원 갱생의 첫째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연정원을 갱생하자면 무엇이 첫째 필요조건인가를 먼저 써보았으나 마음대로 안 되어서 다시 한 번 이 붓을 드는 것이다. 연정원 갱생에는 필요조건이 여러 가지 있다. 물론 경제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고, 장소도 필요하나 그것들은 두 번째 조건이요, 첫째 조건은 연정원을 경영할 나 자신이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쉼없는 노력으로 스스로 수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옛부터 수도하는 사람이 순탄한 상황에서 성공한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체로 역경 속에서 백절불굴하고 나아간 사람이 성공하게 되는 수가 많았다. 어느 때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으나 정좌 중, 현상에서 '거거거중지(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요, 행행행리각(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다)이라'는 시구절을 본 일이 있다. 이 시구절도 물론 쉬지 말고 노력하라는 뜻이다. 중단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의 요즈음 경과를 보면 아주 중단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비록 역경이라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매일 밤중이나 새벽에 홀로 앉아 공부할 시간은 있을 것인데, 내가 이것조차 중단하고 있는 것은 밝은 거울에 먼지가 앉게 하는 격이다. 어려운 상황이건 순탄한 상황이건 변함없이 나아가서 나의 할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배우는 사람의 도리요, 이렇게 안 하면 안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런 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게으름이 생겨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바가 아니요, 자기 스스로 불러들이는 불행이다. 그러나 이렇듯 스스로 짓는 잘못은 자기가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주의할 일이다. 내가 첫째조건의 완비되지 못함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쉼없는 노력으로 나아간다면 그후 두 번째 조건도 자연히 해결이 날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구하지 말고 마땅히 나에게서 구하라는 것이다 일 년만 쉬지 않으면 여기서 자연히 조건이 조성될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전에 자기의 심령을 밝히라는 것이다. 자기 심령이 밝은 후에야 타인을 접함에 실수가 없을 것이요, 모든 일이 자연적으로 순조로울 것이다. 최단기로 일 년만이 자기불휴의 정신을 갖고 나가면 적어도 옛사람이 밟았던 길을 다시 닦음은 될 것이요, 풍정파식(바람이 잦아들고 파도가 멈춤)이라도 될 것이다. 시용만능은 못 되더라도 음양선까지는 다시 확보할 것이니 이 선만 확보하더라도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쓸 만한 정도는 되고, 쓸 만한 정도면 연정원 갱생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른 백 가지 사업보다 이것이 내 자신에게나 연정원 갱생을 위해서나 제일 중요한 조건이다.
이 첫째 조건을 버리고 밖으로 구함은 나의 실수라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다시 첫발을 내디디며 그 쉼없는 정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내가 스스로를 경계하며 자력갱생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정원은 언제 갱생하나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귀중히 여겨지는 것은, 일상생활 속의 일시적 영예보다는 정신연구를 목표로 하고 나아가서는 과게에 비밀로 숨겨가며 전해오던 방식을 대개혁하여 일개인에 머물지 않고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에게 옛사람의 말씀과 같이 아주 쉽게 해설하여 전문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라 하겠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문자로 저술하여 문헌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어느 정도까지 체험을 해서 그 경과를 늘 상세히 기록하여 그 실제 체험담으로서 누구에게나 신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정원 동지들이 어느정도 습득은 해보았으나 구체적으로 오랜 기간을 전공한 사람이 없었고 다만 각자의 미약한 소득이 있어서 스스로나 기뻐할 정도이지 남과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 원우들은 어느 시기라도 재수련을 하고자 하는 정도이다. 몇 사람 승단자도 역시 고단자들과 절차탁마하는 기회가 없어서 크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원우들간에 통일된 이념이 부족해서 각개인의 형편에 따라 수련할 뿐이라 속히 재생의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6.25사변으로 인하여 아직 경제기반이 제대로 확림되지 못하고 아래까지 온 국민이 임시방편으로 대강 사는 생활이 유행되는 이때라 역시 동지들도 안정되는 시기를 고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로서는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연정하는 사람이 어느 시대에나 없을까마는 혼자 독선적으로 나가는 사람으로는 이런 취지를 발기할 리 없고, 또 일상생활에 안정을 얻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선입감이 생활안정을 꾀하는 데로 들어가서 정신연구같은 힘든 수행을 시작할 리가 없다.
현대 물질문명의 수준에 있어서 우리와 백인문화권과는 세기의 차가 있고 세계의 문명주도권이 백인종에게 있는 이때에 우리가 단연 분기하여 정신연구로 백인의 물질문명을 제압하도록 노력하고, 물질문명의 수준에서 나타나는 세기의 차를 우리는 정신적으로 백인보다 앞서게 하여 이 물질문명 수준을 돌파할 수 있는 확증을 만인 앞에 증명해 보일 수 있다면, 선천적으로 현명한 우리 민족이 이런 확증을 보고같이 따라나서지 않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영재를 구해서 이 확증을 세상사람들의 눈앞에 보일 수 있을 만큼 책임수련을 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연정원 동지들의 책임이고 이 문제가 성공하면 제2, 제3으로 나가는 점진적 성공을 볼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럴려면 누구보다 먼저 승단자 중에서 몇 명을 전문적으로 연구시켜서 좀더 승단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3,4단까지만 수련시키면 연정원의 갱생은 별문제 없다고 보며, 3,4단 정도이면 세상사람들 앞에서 확증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초보자들을 처음부터 양성하느니보다는 기존의 유단자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제일 요건이라고 본다. 이 수련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극복하고 나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보는 까닭에 원우들은 힘과 뜻을 모아서 이 일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연정원에서 정신을 연구하기 전에 기본준비로 체력단련을 하지 않으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렵다. 그러므로 청년 원우들에게 체련을 시키면 충분히 현 세계의 각종 기록을 돌파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청년들에게 체육훈련을 시키고 그 이후에 정신연구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체육운동경기 등에서 보통 훈련하는 사람보다 우월한 성과를 얻게 된 후에 신심이 나서 정신연구로 입분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쉽게 승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체육으로부터 정신연구로 전향하는 것이어서 이런 식으로 정신연구를 전문적으로 한다면 곧 1,2년 내에 승단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유단자는 지도자만 있으면 노력으로 재승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승단자 중에서도 부류가 다른데, 원리를 연구하는 인사라면 중단급에만 가면 타심통 즉 관심법이 되어서 외교, 군사, 행정분야에 응용할 수 있게 되고 과학적으로도 이화학 전공자들에게 수십, 수백 배의 효력을 가져다주며, 또한 정신통일이 되어 기억력이 자연 증진하는 까닭에 어떠한 학과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도 모두 효과적이리라 본다.
이 정신학의 고단자라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적 관계나, 대인관계에 있어서 중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과거에 강태공, 귀곡자, 장량, 엄자능, 제갈량, 도연명, 소강절 같은 중국인물이나 연개소문, 을지문덕, 강감찬, 서화담, 정북창, 송구봉, 이율곡, 조남명, 이토정, 박엽, 허미수등 우리 동방 정신계의 고금 중진들, 이밖에 유명무명한 무수한 고단, 중단자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현 세계에서 인도에 고단자가 있고 중국에 고단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숨어 있는 군자로 고단자아 인도나 중국에 지지 않을 만큼 있는 것은 건상(일원성신이 돌아가는 이치를 말하는 천기)이 증명하는 것이도, 또 실제로 사실도 간간히 발견할 수 있다. 정신계에서 우리민족이 타민족에세 절대 손색이 없다는 것을 정신연구의 승단자는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는 고단자들은 완전한 도에 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정진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과 공존공영을 목표로 하는 연정 원우들 속에서 하루 빨리 중단 이상이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백두산일파와 지리산일파가 전래하고 있지만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모두 백두산을 조종으로 하고 있다. 현재 우리 민족 중에는 스스로를 유명무명의 성인, 철인, 혹은 영웅호걸이라고 자처하며 정신연구를 표방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정통정신파는 없고 바른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접어든 사람들로 보인다. 그런데도 각파에서는 모두들 자신이 바로 성인이라하니 우리로서는 믿을 수가 없다. 대성인이라는 공자도 자신이 성인임을 부인하였는데 이 세상에는 웬 성인이 그렇게도 많은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물고기 눈알을 진주로 혼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좌도방, 우도방파들도 모두 이름을 숨기고 몸을 드러내는 인물이 없다. 그러나 나는 비록 도인이나 정신과학에 정통한 고단자는 아니지만 미미하나마 이 연구의 정법을 전수받아서 실행한 경험이 있는 까닭에 이를 두고 모른척하고 갈 수 없어서 선배들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내가 연정원을 발족한 것이다. 나는 이 정신연구로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을 바라고 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거족적 영예를 연정원우들이 되살려서 온겨레와 더불어 번영하는 방책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바램이 있을 뿐이다. 원우 중에서 누가 먼저 성공하든 나중에 성공하든 우리 민족이 번영하는 관점에서 그저 성공자가 속출하기만 바라고 내 개인의 성공여부는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또 동지들 중에서 중단이상에 도달한 사람만 나오면 나는 모든 책임을 맡기고 평범하게 연정원우의 한사람으로 남은 생애를 보내고자 한다.
연정원은 어떤 장소가 제일 적당한가
연정원 위치문제는 이러하다. 가장 적당한 곳은 산악지대의 공기가 좋은 곳에 폭포나 계곡이 있어서 경치도 좋은 곳이 적합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산이 높고 시계가 광활한 곳이 수련에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명승지는 관광객의 왕래가 잦으므로 수련상 불편한 점이 많다. 바깥사람의 왕래가 제일 금물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무인도나 비록 유인도라도 산악을 낀 외지고 고요한 곳이면 무관한데, 도서지방은 공기가 산악지대만 못하다. 그 다음 산사도 무방하나 외부인이 왕래하는 것이 좀 불편하다. 그 다음 부득이하면 도시 밖의 별장지대에 외딴 집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무방하다. 교외의 별장이라면 도리어 농촌보다 인적이 희소한 것이다. 이 장소를 택하는 것은 초보적 수련으로부터 일기, 이기의 단계까지 필요한 조건이다. 그 이상이면 행주좌와에 모든 수련할 수 있으며 장소의 구별이 별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연정원이라면 정신을 연구하는 장소이니 부득불 한적한 곳이 아니면 안 된다. 이상의 네 장소 중에서 한 곳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요, 될 수 있으면 인가와 거리가 먼 곳이 적합하다. 될 수 있으면 광활한 곳이 좋으나 부득이한 때는 아무 곳이라도 무방하다.
수련할 때는 총시간의 삼분의 이를 노천에서 하는 것이 성적이 좋으며, 실내에서는 총시간의 삼분의 일이 지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학인의 거처는 원우사이라도 일인일방제라야 편리하다. 그리고 강당이 한 곳 있어야 원두(연정원의 우두머리)가 때때로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일정한 기간 내에는 외부사람의 출입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소요물자를 준비해야 한다.
제일 먼저 준비할 것은 식량과 부식물이며 둘째로는 의류와 세탁용품, 셋째로 침구이며, 넷째로는 구급약품이다. 연료준비는 없어도 무방하나, 아주 없을 수 없으니 좀 준비해도 좋다. 취사나 세탁이나 난방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 수련원생들은 관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족관계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때는 절대 면회를 말아야 한다. 또한 수련생이 아닌 사무원으로서 재정과 물자공급, 외부연락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여러 명 있어야 한다. 일기의 수련기간은 최소한 2년은 잡아야 하고 될 수 있으면 5년을 정기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5개년 정기라 해도 그 한정된 기간 안에서 각자의 성력여하로 각자의 정신적 수준이 준원우에서 원우대우로 승진하고 또 정원우로 승진하며, 나아가 특별원우로 승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단계를 경과하면 초단으로 유단자가 되어 2단, 3단, 4단으로 올라가는 것이며 연정원두는 2,3 단부터 그 자격이 있다. 4단 자격의 원두라면 당당한 정신계의 권위자인 것이다. 5개년 정기안에 성력만 있으면 3,4단 원두는 될 것이다. 이 원두자격이 있는 인사면 과학계로 나가서도 중진역할은 물론 감당할 것이다. 그뿐 아니다. 3,4단이라면 정신계의 중간급 위치요, 고대에도 이 정도가 제일 많은 것이다. 여기서 비상한 힘을 내어 특별한 정진이 있어야 5단, 6단이 될 수 있는데 이 단계는 고단자로서 옛날에도 매우 드물었던 위치이다. 5개년 정기 안에서 이 자리에 간다면 가히 천재적이라 할 것이다. 3,4단 급으로서 제2기인 정기 5년을 재발족한다면 여기서 고단자 양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3,4단 급에서 제2기에 참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본다.
제2기 수양이 충분해지면 5,6단까지는 갈 수 있고, 7단 승진자가 있다면 연정원으로서는 큰 행운일 것이다. 초단, 2단까지는 국내적일 것이나, 3단부터는 세계적으로 정신계의 일인이 되는 것이다.
5,6단이면 세기의 정신수련인이 되는 것이다. 백년 안에 한 사람 나올 만한 정신계의 권위자가 된다는 것이다. 7단 이상은 천년동안에도 몇 사람 못 되는 것이니 만약 연정원에서 이 최고단자가 배출된다면 우리 민족의 중대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옛부터 성현군자니, 철인이니 하는 선배들의 계단을 보면 군자 가운데에는 초단이 될까말까한 자격이 많고 현인 중에는 2,3단 정도가 가장 많다. 아성이니, 대현이니, 철인이니 하는 분들이 5,6단계에서 왕래하는 것 같다. 7단이라면 물론 완전한 성자들이다. 불교의 견성이라는 것이 연정원 초단이라는 명칭이다. 내가 여기서 옛사람들의 단급을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신인으로 알던 고인들을 최고단이 아니라면 세상사람이 믿을 리 없고 그렇다고 저급을 고급이라고 빈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면, 조선조 중엽의 이토정 선생이나 유경암 같은 이들을 세상에서 이인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본 그 실력은 겸암이 도계 정삼단이요, 토정이 도계 약삼단의 계제이다. 동시대의 유명한 도인 한 분도 강삼단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최고단자요, 우리 나라 4천년을 통해 최고단자가 있었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에 유단자가 수십 명이나 배출되었던 것이다. 그 최고단자는 7단을 훨씬 초월한 완연한 성인의 단계였으나, 당시에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몰랐으니 스스로 '오늘날 도를 행하기가 어려우니, 이름이나 뒷사람이 알도록 하자'라는 정도로 자족하고 만 것이다. 그후로는 이분 만한 정신적 계제의 인물이 전무후무한 것 같다. 현재 백산운화가 무르익어서 삼육성중(서른 여섯 사람의 성스러운 무리)이 보통사람으로 이미 세상에 출현하였으니 물론 고단자가 나올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내가 이 정신연구법을 가지고 있는 까닭은 다만 뒷사람에게 앞서간 사람의 법을 전할 책임이 있는 관계로 이 삼육성중이 혹 우리 연정원에서 수련을 하고 고단자로 세상에 나올 것이 아닌가 하는 몽상 같은 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정원을 시작하고 원우동지들을 규합해보는 것이요, 무의미하게 내 한 몸을 희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삼육성중이 우리 나라에 출생한 지는 벌써 년수가 많이 경과하였다. 노부가 어찌 허황한 말로 세상사람들의 이목을 현란하게 하리요, 일세기를 지나기 전에 노부의 오늘 하는 말이 빈발이 아님을 알 것이다.
단기 4284(서기 1951)년 10월 14일
정신연구에 가장 중요한 비결은 무엇인가?
정신연구에서 제일 중요한 비결이라고 하며 무슨 무슨 법으로 전해지는 것이 많다. 그러나 그 비결을 쓴 사람들의 의견이 각기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거나 하는데 대한 비결은,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목이 마른 사람은 마셔야 된다는 것이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올바른 요결의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도 않다고 본다. 배가 고픈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그 배가 부르다는 것을 몰라서 안 먹는 것이 아니고, 목이 마른 사람 또한 마실 것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을 몰라서 안 마시는 것이 아니다. 비록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지만 먹을 수가 없고 마실 수가 없는 까닭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배가 고프니, 목이 마르니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경우도 거의 다 이런 것이다. 병이 있는 사람은 약을 먹어야 하고 몸이 피로한 사람은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그 요결 또한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모두,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모두 각기 나름대로는 올바른 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행함에 있어서 백 가지 천 가지의 요결이 마음대로 실행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면 그 요결이 정해가 아닌가 하면, 요결은 정해지만 실행은 어렵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요결이 비록 정해였지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자세한 지침이 없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본격적으로 '정신연구에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까닭에서이다. 정신연구의 중요한 비결을 쓴 앞서간 현자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백 수천에 달하고 그 저술 또한 수천 수만 권에 이르니 각기 경험대로 최선을 다해 기록한 것이다. 그 어느 것이나 올바른 풀이가 아닌 것은 없지만 정신을 연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중 성공한 사람은 깊은 바닷물 속에서 진주를 캐는 것보다 더 찾기 힘들다. 이런 현상이 단지 그 요결 부족함 때문인가, 처음 배웠던 사람들이 성의가 없었던 까닭인가 하는 것은 오늘날 수련에 정진하고 있는 후학들의 의문사항이 되고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우선, 유교의 중용사상이나 주역사상이 있어서 이 요결에 성공하는 사람이 성현군자가 되고 이 요결을 솔성이라 한다. 또 불교의 대장경이 있어서 그 요결에 성공하신 이가 부처, 보살, 조사, 나한이 되어 그 요결을 견성이라 한다. 그리고 도교의 도장경, 참동결이 있어서 그 요결에 성공하신 이가 신선, 진인, 천사가 되고 그 요결을 명성이라 한다. 서양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나 자신 역시 정신수련에 고락을 같이했던 사람이었고 또 후학들을 위해서 내가 경험한 바를 간단히 적고자 한다.
1. 스승의 도움 - 정신수련계의 중진을 택해서 정신학에 대한 강의를 많이 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은연중에 신념이 생겨서 스승의 지시대로 정신수련을 해 볼 수 있게 된다.
2. 자습 - 천가지 만가지 쓰디쓴 고초를 무릅쓰고 그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기백으로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공부 도중에 포기하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된다.
3. 벗의 도움 - 스스로 수련하다 보면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 스승에게 문의하기가 곤란할 때에 같이 수련을 하면서 어려움을 함께 하는 선배의 경험담을 들으면, 막막하고 포기하고 싶던 마음속에 다시 새로운 희망이 생겨서 오히려 신념이 강해지고 경의가 나타나게 된다. 이 마음은 성심, 성의가 되어 비로소 성공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위의 사항으로 자세한 요결을 대신한다.
연정원 호흡요강 서문
여러 차례에 걸쳐 정신연구에 대한 말을 기록해 왔지만 본법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못했다. 본래 법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건 천 사람, 만 사람이건 어느 사람이나 공통되는 것이어야 되고, 또한 과거, 현재, 미래 중 그 어느 시대에도 불변하는 것이어야 된다. 따라서 정신연구에 대한 법도 옛사람이 말한 바가 많아서 그 법의 주된 요지와 각 부분의 세세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많은 서적들을 동원하여 참고한다 해도 수효에 있어서나 내용의 길이에 있어서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므로 나처럼 뛰어나지 못한 사람이 법에 대하여 설명을 더한다면 해나 달 아래의 반딧불과 같고 천둥, 벼락 속의 벌레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다만 옛사람의 법을 좇아 행할 뿐, 말이나 글로서 무엇을 남기고자 하지 않고, 수십 년을 정신계에 뜻을 두고 그침이 없이 아주 놓아버리지 않고 있는 중이다.
옛 철인들이 기록한 책자가 각기 나름대로의 진리를 담고 있지만 후인들이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간직해 온 것이기 때문에 문자로만 보아서는 실행하기에 어려움이 크다. 그러므로 세상사람이 이 방면에 입문한 경우는 적지 않지만 성공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 옛 철인들의 미묘한 표현과 뜻은 글월 속에 말이 있고 말 가운데 뼈가 있어서 여러 가지 비유와 증거를 들어가며 후인들의 이해를 도왔지만 후인들의 문자에 대한 학식이 앞서간 철인들만 못하고, 그 분들이 문자로 기록한 것 역시 그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곧 글로서 글을 전하는 것이 마음으로 마음을 전함과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 예를 들면, 고대 중국에서 요, 순, 우 임금이 서로 전한 마음의 법이 '정일' 두 글자에 그쳤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 중 정자나 일자를 문자로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인데도 '정일'을 그대로 실행한 사람이 중국 오천년 역사상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는가? 이것은 지극히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 호흡법 역시 정일을 글자로는 알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이런 까닭에 나는, 정신연구 방식을 알기 쉬운 글로 표현해 달라는 연정원 동지들의 청을 성인이 전해준 마음의 법이 정일 두 글자의 문헌밖에 없는데 어떻게 더 문자화하느냐고 대답하고, 다만 이미 앞서간 철인들의 책들을 많이 보고 스스로 얻어보라고 권하면서 번번이 사절했다. 그러나 책으로 남아 있는 유명무명의 철인들의 교훈도 자칫하면 수박 겉핥기와 같은 감이 있어서 아무리 진리에 충실하고 정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후인들이 보기에는 역시 실행에 옮길 마음이 생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성인들이 말씀하시기를 솔성, 명성, 견성에도 서로 다른 점이 있다고 하여 후학들은 그 갈래가 유교, 불교, 도교로 확실히 나뉘어져서 도달하는 곳이 각기 다른 것으로 믿고 있는데, 실제로 동서양의 수많은 철인과 성인들이 각자의 의견에 따라 많은 종파를 형성해 왔다. 그러므로 글로써 후인에게 전하면 또 이런 폐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수 십년동안 문자화를 안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자를 보면, 대황조님의 천부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늘도 하나, 땅도 하나, 사람도 하나라는 일자가 합해서 셋이 되고 셋이 나뉘어서 다시 일자가 되는, 곧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라는 것과,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께서 서로 전해주신 심법인 '오로지 하나에 정통하여 진실로 그 가운데를 붙잡으라'는 문자 외에는 모두 군더더기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문자가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많은 성현들이 문자화하신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송고하기를 바라는 본심에서 나온 것이다. 때문에 옛 성현들은 후인들이 알 수 있도록 글을 쉽게 쓰시려고 적절한 비유와 여러 가지 예를 삽입하셨지만 이것을 후인들이 일목요연하게 깨닫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도 동지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름대로 아주 쉽게 나의 경험을 적어 보지만 이 또한 맹인이 코끼리를 두고 의논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되어 죄스러움을 깨닫고 이 글을 적는 것이다. 후일 여러 군자들이 널리 용서하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용호비결에 대해서는 전에 간략히 서술한 바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하였다. 용호비결은 호흡법에서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다른 책에 기록된 무수한 말도 모두 용호비결의 내용에 못 미치는 까닭에 호흡법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용호비결을 집중적으로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호흡이 법대로 되거든 대학의 내용을 순서대로 공부해 나가면 누구나 노력만큼의 성과를 볼 것이 틀림없고, 또 다른 힘에 피동적으로 의존하는 주문이나 신술 같은 것으로 허송세월할 염려도 없다.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기질의 청탁도 호흡법으로 변화할 수 있는데 이것은 경험으로 입증할 수 있으며 용호비결의 난해한 부분 또한 일목요연하게 구어체로 기록하여 제공할 것을 미리 약속한다.
설초 동지의 재수련을 권함
설초 동지는 연정원 동지들 가운데 수련 경력이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이다. 수련 초기에는 송사 동지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송사는 주위사정으로 휴식상태가 되고, 설초는 가정생활이 송사보다 훨씬 빈곤하였지만 나와 밤낮없이 만나는 까닭에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하면서고 어느덧 연정계에서 유단자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다만 그는 비록 휴식은 하지 않지만 장기간 정진을 못해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결점이었다.
연정원에서 장래가 촉망되던 권오훈군과 주형식군은 둘 다 6.25사변으로 불귀의 객이 되고 현재로는 연정원우 중 거물, 준거물, 고참, 준고참 동지들을 제외하고 직계 원우로는 설초 한 사람이 가장 성의있게 불변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설초의 정신연구에의 전념을 허락하지 않아서 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물론 이것이 중지나 휴식보다는 나으나 이 정도로 나가서는 도저히 교사의 자격이 있는 원우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그 자신도 이것 저것에 의심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내가 여러 번에 걸쳐 다시 수련하기를 충고했던 것이다. 설초동지도 이에 응해서 이 준비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을 내가 육감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면 뜻밖에 그것을 소비해야 할 어려움이 반드시 생기고 또 가족들도 돈이 좀 모이면 생활의 부족함을 인내하려는 노력이 은연중에 적어져서 안일해지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초도 옛날 같으면 다시 수련할 경제력이 충분하지만 요즘 상태로는 역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도 재수련을 못하고 근년도 또한 세월만 보내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방관하면서 묵묵히 있을 수가 없어서 종종 만나는 대로 설초 동지의 재수련을 권하는 것이다.
내가 설초를 평한다면, 설초는 재수련이 없다면 진보가 없어서 연정원 장래의 중진이 될 수 없고 다만 정신연구에 취미를 가진 저급 유단자에 그치게 되어 후진을 가르치는 데 큰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만사를 제치고라도 재수련을 해서 완전한 성공을 하면 연정원의 중진이 될 터이니 이는 개인의 성공이라기보다도 정신계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까닭에 내가 누누히 설초에게 권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초가 3,4계의 승단만 된다면 연정원에서 원로 대우를 받게 될 것이고 또 세상에도 많은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설초 본인의 경제적 문제도 있고 또 주의 사정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간단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기 바란다. 시작하거든 2년 정도를 꾸준히 인내하여 고력수행에 성공하기를 빌면서 이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연정원우 중에서 개인의 자격으로 보아서는 설초의 오른편에 있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순수 정신연구력으로만은 설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만약 설초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선입감이 있던지 해서 정신연구에 순수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연유로 설초를 택해서 재수련을 권하는 것이다. 이것은 설초 개인을 위하는 것은 물론이요, 연정원 동지들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 우리 민족을 위하는 것이다. 나 개인의 이해득실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다.
단기 4287(서기 1954년) 7월 20일
구영직군을 추억하며
내가 군을 처음 대한 것은 을해년(1935년) 가을이었다. 유성 박은배 씨의 소개로 한강현군을 상봉하고 그 다음 도림리 금은광산으로 가서 한군의 소개로 구영직군을 상봉한 것이 내 기억에 새롭다. 잠시 대면한 것이라 별 감상도 없었고 또한 의미 있는 일도 없었다. 그저 구군이 장래 유망한 청년이라는 정도의 첫인상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에 그가 시굴하던 광산은 성적이 불량한 곳이요, 또 아무런 희망도 없는 백지 정도에 불과한 곳인데 오해하고 괜한 헛수고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솔직히 성적불량이라고 중지하기를 권고하고 곧 귀가한 것이 후일의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그후에 내가 대전으로 가있으며 한군과 구군의 일체 행동을 주시해보니 모두 각기 장점이 있는 청년들이라 이해관계를 접어두고 다만 그 청년들의 장래를 위해서 각자의 장점대로 가르쳐 보았다. 그래서 한강현 군의 타고난 영웅호걸의 자질에는 그 사람에 맞게 협의고담이나, 체술, 또는 위인전기를 강술해 주었던 것이요, 구군은 영호한 편도 아니요, 사무보는데 유능한 인물도 아니고 다만 정의감이 강하고 인내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아주 뛰어난 것이 장점이기에 항상 그 정의감이 더 길러지도록 고대로부터의 정의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열람하도록 해서 그 본심이 물러나지 않도록 하였다.
그후 계룡산에 입산해서 정신수련을 해오던 차에 내가 친상을 당해서 수련을 임시 중지하고 하산한 것이 구군의 수련에 지장을 주게 되었다. 그 다음 내가 다시 입산해서 일정기간을 경과했으나 구군은 경제관계로 공부를 계속 못하고 하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구군은 군산으로 가서 철공소 직공으로 7,8년이라는 장세월을 지내며, 비록 유리한 곳이 있어도 변함없이 한 곳에서 머물며, 별별 고초를 다 겪으면서도 집안을 돌보는데 여념이 없이 지내었다. 그런 중에도 철공에 대한 특기가 있어, 철공의 연구에 십 년, 이십년 된 숙련공보다도 실력이 우수하였다.
내가 몇차례가서 구군을 보았을 당시는 대동아 전쟁이라고 해서 남양 일부와 싱가포르를 일본이 점령한 때였다. 내가 세계지도에 호주에서 인도까지, 붉은 색연필로 선을 긋고, '전쟁은 여기서 중지되어 반격이 있을 것이며 일본은 본토만 남는다'고 기록한 일이 있었다. 당시 구군은 남양파견 징집에 응하고자 하였으나 내 말을 듣고는 곧 중지하고 상황이 호주선과 인도선까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일본군은 뉴기니아선과 버마 선에서 중지를 당하고 일본해군이 대 손실을 보았다. 구군은 계룡산 상신리로 나를 찾아와서 여기서 반격전이 시작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답하기를 '그렇다' 하니, 구군은 '금번에 일본이 본토만 남는다면 우리 나라는 어찌 되는가?' 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자력으로 일본군을 격퇴 못하고 또 남의 힘에 의존하게 되니 문제가 매우 많으리라'고 답하였다. 여기서 구군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것이었다. 사내 대장부가 난세에 나서 제나라의 위태로움을 눈앞에 두고, 또 안정을 회복할 기회를 보고도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하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 못하다고 하며 비분강개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민족운동도 각자의 역량대로 하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무력으로 실제행동을 하는 것도 당연히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요, 또 실제적으로는 못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지하에서 선전, 계몽, 유도로 민족정기를 살리며 각 직장에서 적국에 동화하려는 사람들을 바르게 방향전환을 시키는 것이 일선에서 실제행동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때도 많은 것이다. 각자의 역량대로 민족을 위해서 할 일이지 절대로 일의 후박을 가리지 말라'고 권해서 군산 직장으로 보냈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서 미군의 유황도 점령이 있었다. 이때에도 구군이 와서 '전쟁은 결정적으로 미국의 승리인데 조선본토 상륙작전은 언제쯤 되겠는가?' 라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를 '미군의 상대가 조선이 아닌 이상 절대로 미국의 조선본토 상륙작전은 없을 것이요, 다만 미, 소 세력이 조선에서 쟁탈이 있지 않을까 한다'고 하였다. 그후 8.15광복을 당하였다. 그러자 한강현 군의 숙질이 권오훈군과 광복군 예비대를 조직하고 광복군 협찬회를 조직하였는데 그때 구군과는 상의가 없었고, 그후 또 각자 분산될 때도 의견이 합치되지 않았었다. 구군은 본래 시국에 대한 비분강개적 마음을 품고 있었고, 또한 정의감에 입각한 인물인데, 광복후의 자유행동에 마음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후에도 한군의 감옥생활이며, 권오훈 군의 독선적인 행도, 임지수 군의 피신 등이 모두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하여 구군은 자기 고향으로 표연히 돌아가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군의 동생이 경찰의 고문 하에 출감하자마자 곧 세상을 떠난 일이 있은 후에 상신리로 내방하여 경과사를 고하고 통곡한 일이 있었다. 신체가 많이 상한 것 같았다. 그후 얼마만에 군이 결혼을 했다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와서 경과를 알았다. 한군과 상봉하면 구군과 한 번 같이 올 것을 권고했으나 항상 여의치 못하였다. 6.25사변 이후 수차 서신으로 군의 안부를 물었으나 늘 소식이 없어서 생사를 알 길이 없는데 십중팔구는 이미 고인이 된 듯하다. 한강현 군도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니 살아오기 전에는 불행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 마음속의 한 부분에는 항상 구군의 추억이 남아있고, 다시 이 정도의 청년을 상봉하기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구군에게 비록 한강현 군처럼 영웅적이고 호방한 성격을 없으나 그의 정의감과 친구간의 신의는 옛사람에 지지 않을 만큼 모범적이었다. 만약 생존해서 공학을 연구하였다면 발명의 천재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언해둔다. 구군을 추억하자니 우리들이 우도에 부족했었음을 부끄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구군이여, 용서하라.
(후기-구영직 군으로부터 1955년에 생존해 있다는 장문의 편지가 왔다. 그후 구군은 공학연구에 힘을 기울여가며, 정신수련에 전력투구한 결과 획기적인 발명 세 가지에 성공하였다. 그중 한가지를 특허 내어 당시 자유당 정권의 이기붕씨에게 후원(공장설립자금 등)을 받았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회사설립 축하 술자리에서 술을 들다 앉은 자리에서 술잔을 쥔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발명내용은 우리 나라의 질 나쁜 무연탄을 가지고 원자력 이상의 에너지를 얻어내는 방법이었다고 하며, 나머지 두 개의 발명내용은 무엇인지 전하지 않는다.)
단기 4287(서기1954)년 6월 19일
박동지를 방문하고
박동지는 정신수련관계로 몇 번에 걸쳐 입산해서 상당기간을 보낸 사람이다 원상법으로는 정관을 해보았고 호흡법에는 아직 초보자이다. 그러나 원상 수련을 하기 전에 예수교에서 수련을 해보았고 또 신약전서에서 예수의 묵시도 보고 예수의 기적도 들었다. 그래서 동서양의 수련방식이 비슷한 점이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있어서 자신 있게 시작해 보았지만, 본래 수련이라는 것이 어려움이 많은 것이어서 칠전팔기로 정진해야 하는 것인데, 이 인내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신념의 정도가 문제이다. 즉 열이라고 믿은 것이 열까지 가도 그 결실이 나타나지 않아 공허하고, 열 다섯, 열 여섯 혹은 열 일곱에서 그 열매가 나타난다고 했을 때 더욱 인내하고 노력하여 열 다섯까지 나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고 그나마 열까지 가던 신념이 열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 다음에는 불신이 생겨서 실패하는 것이 세상사람의 보통의 경우이다.
박동지도 열이라는 신념은 있고 열 다섯까지의 인내는 좀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 열이라는 신념이 애석해서 열 다섯까지 연장시키고자 미미하나마 노력해 보는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연정원우로는 약하고 일반 사회인의 입장으로는 강한 사람이다.
세상을 떠난 동지들을 추억한다.
6.25사변을 전후해서 세상을 떠난 동지들을 추억해 보자. 언제나 내 정신에서 떠나지 않는 몇 분이 있다. 한강현, 권오훈, 주형식, 차종환, 문수암 등 다섯 명의 청장년 동지들로서 그분들이 어깨에 지워진 중대한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난 것을 나는 어느 한때에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한강현 동지는 '아직 주인을 못 만난 천리마' 라고 평할 수가 있겠다. 문인이라기보다는 영웅호걸로서의 자질이 뛰어나서 그 삶을 대아에 공헌하고 고대의 의협심이 강한 무사와 같은 기품이 많은 사람이다. 다만 그의 결점이라면 포용력이 넓지 못하고 일을 도모할 때에 장기적인 계획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변화에 일찍 적응하여 대중을 잘 거느리며, 청년동지들을 양성하여 심복을 만드는 자질이 있다. 또 무슨 일이든지 패기만만하게 의욕적으로 추진하여 단번에 결정하는 성질이 있어서 간혹 실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민첩하고 활달하여서 대중에 대한 지도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를 일본의 두산만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독일의 히틀러의 정신을 사모하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의리가 있지 않으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일도양단의 자세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한 동지는 또 대단히 사교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좌파든 우파든, 구시대 사람이든 신시대 사람이든, 정치, 경제, 법률, 군사 등 그 어느 계통의 인물이든지 모두 안면이 있었으며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일본, 만주는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서울이든, 지방이든 일시적인 교제에는 잘 성공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사생활은 조금도 돌보지 않고 대중생활에서는 그 어떠한 희생이 있다 해도 책임을 지는 신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승만 박사, 백범 선생, 우사 김규식 선생, 몽양, 인촌, 안재홍, 유석, 장택상, 이묘묵, 정일형, 조소앙 등 많은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이런 사교성을 바탕으로 한 나라의 정보망을 손에 넣고 있으면서 형무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유명무명의 지사들이며, 우익, 좌익의 간부들을 누구나 가리지 않고 그 가족들의 생활까지도 뒷바라지해 주었다. 그리고 미소공동위원회 당시 좌, 우익이 자주 충돌되어 사회적으로 혼란할 때에는 좌익의 많은 대중을 우익의 소수로도 과감히 습격한 일이 많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정치적 지위에 대한 욕심이 있기 마련인데,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한 동지를 요직에 임명하려고 했을 때 그는 한마디로 사양하고 여전히 청년운동에 전념하였다.
한 동지에게 장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평해보면 참으로 얻기 어려운 천리마라고 생각된다. 6.25직전에 그에게는 서울과 지방을 망라해서 부하 청년이 수만 명을 헤아렸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6.25 당시 남하하지 않고 있다가 공산주의자의 손에 걸려서 서울에서 희생되었으리라고 본다. 생각해보면 이 삶은 마치 혜성과 같은 존재로 왔다간 듯하다. 그리고 현재 동지 중에서 이 사람을 잃은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 모른다. 현재로는 남아있는 동지 중에서 이 사람이 했던 역할을 담당할 인물을 구할 수가 없는 까닭에 더욱더 한 동지를 추억하는 것이다.
권오훈은 '낚시밥을 물고 있는 어린 용' 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사람됨이 전아하고 신중한 성격이며,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분이다. 여러 가지로 보아서 영도권을 장악해보려는 정치적 야심이 항상 없어지지 않는 인물인데 사실은 여러 가지를 갖추었으나 다만 그 자질이 완성되지 못한 감이 있고 용은 용이나 어린 용이라 아직 여의주를 얻지 못해서 남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마음만 있지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또 낚시밥을 물고 있다라는 것은 귄군이 자신의 부족한 자질을 양성하는데 치중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명리에 급히 나아가려하는 소아성이 드러나서 천년수도로 용은 되었으나 아직 용의 재능은 부족해서 실력행사는 못하고 용이 되기 전의 옛 태도가 간간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사람이 자질은 갖추었으나 대아와 소아를 혼동하는 것이 결점이고, 전민족적 큰 사업을 주체함에 있어서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데 권군은 자신을 항상 주인역으로 하고 다른 사람을 보조역으로 간주하는 것이 결점이다. 그 자질이나 실행력만은 그 어떤 성공한 사람에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한데, 다만 덜 자라서 옛날의 잘못된 점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이 사람을 장족의 진보로 이끌지 못하는 이유이다. 대한민국 초대 민의원으로 나와서 군사 위원장급까지 갈 정도로 장래가 유망하다고 보던 사람이 뜻밖에도 6.25전시 하에 일개 흑인 병사의 흉탄에 아침이슬이 되었으니 동지적 입장에서 무어라고 말할 수 없다. 권군도 장차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물었던 낚시를 토해내고 그 어린 상태에서 점차 자라난 후 넓은 바다의 신룡이 되어서 여의주로 장난하며 변화무쌍하기를 기대하던 그 어린 용이 낚시를 문 채 승천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천리마를 잃고 또 어린 용마저 잃은 늙은이의 마음, 그 쓰라린 슬픔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먼저 간 동지들을 추억하는 것은 이 늙은이 한 사람을 위함이 아니고 모름지기 우리 백두산족의 중흥의 기회가 점점 늦어지는 까닭에 내 추억이 새로운 것이다.
주형식군은 내가 '길들여지지 않은 독수리' 이라고 평했던 동지이다. 그저 평범한 새가 아니라, 독수리로서 맹장의 자질은 갖추었지만 다만 길들여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가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장래 천년교목에서 정기를 기르는 신령스런 독수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던 것이다. 주군도 내가 귄하는 바를 그대로 실행하며 늘 행동을 먼저하고 말을 뒤로 하는 자세로 쉬지 않고 노력을 기울여 이대로 가면 오래지 않아서 그 미숙함을 벗어나서 완전한 독수리로 비상할 것이고, 쉬지 않고 더욱 정진하면 신룡의 자질이 모두 갖취질것이라고 군이나 내가 서로 장래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6.25 사면에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이것은 군 한사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동지 전체의 불행이다. 주형식군은 연정원 동지를 모으는데에 협력할 것을 확실히 약속하고 기회를 기다리던 중에 뜻하지 않게 변을 당하여 동지들을 실망케 한 것이다.
주군은 계획이 주도면밀하고 과감한 결단성이 있으나 실행력과 인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말없이 묵묵히 실행에 옮기는 것이 그의 미덕이었다. 항상 나의 마음속에서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새로운 사람으로 이 자리를 보충할 사람이 없는 까닭에 이 추억이 더욱 깊은 것이다.
차종환 동지는 내가 평하기를 '동물원 속에서 기르는 학' 이라고 하였다. 학은 학이나 산마루 위의 높은 소나무에 깃들인 학이 아니라, 동물원 속의 우리 안에서 소요자재하는 학이라는 말이다. 보통새가 아니요 틀림없는 학이다. 그러나 대자연 속에 깃들어 사는 학의 고결하고 우아한 맛이 적고 동물원 관리인의 손과 관객의 손에 길들여져서 학의 형태는 그대로 있으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성이 많이 상실된 학이다. 차군은 거침없이 잘하는 웅변과 명석한 두뇌를 갖춘 지혜로운 사람이고 평론이나 비판도 공정하게 하는 분이다. 그래서 청년동지들이 군을 대하면 그 말하는 재주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차군은 평소 자중자애하는 성격으로 자신의 과오를 알면 곧 고치려 노력하며, 자신에 대한 남의 비판도 폭넓게 수용하는 덕량이 있었다.
다만 내가 그를 동물원 안의 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군이 주위사정이 불행하고 사정과 또 순조롭지 못한 지위에서 태어나서 유년, 소년시대에 보고 들은 것이 그의 제2의 천성이 되어 원래 천성인 고아하고 한적한 맛을 그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얽매여서 세속을 초월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는 재물을 보면 곧 애착하는 버릇이 좀 있어서 동지간에도 이기적인 욕심을 간혹 드러내는 때가 있었다. 내가 군의 정신함양이 부족한 것은 경전을 덜 본 까닭이라고 풍자한 일이 있었는데 그후에 3년 동안이나 중용과 대학을 전공한 것을 알았다. 이것이 그가 잘못을 알면 즉시 고치는 하나의 실례라 할 수 있다. 또한 나는 그가 동물원 안의 학의 성질을 지녔다고 풍자한 일이 있었다. 너무 사람에 길들여져서 고고한 자태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후 군이 도시에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십여 년 전에 내가 혈맹단 관계로 감옥생활을 할 때에 역시 몇 개월 같이 고초를 겪은 일이 있는데 그후로 서로 만나 보지 못한 채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후진은 아주 없고 홀로 왔다 홀로 가버렸다. 그 사람됨이 어느 곳에 가든지 주도권을 가질 만한 인물이었고 선전책임쯤은 어느 정당이라도 실수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 소리 없이, 표나지 않게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인생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어찌 감회가 깊지 않겠는가? 이분이 연정원 거물급으로 추대되었던 분이다. 가는 사람은 있되 오는 사람이 그 자리에 차지 못하니 동지를 위해서 추억만이 새롭다.
문수암 동지는 '산을 돌아다니는 큰 호랑이' 라고 말하였던 분이다. 그의 거대한 체구와 위엄 있어 보이는 얼굴은 산중의 큰 호랑이임을 누구나 시인할 수 있게 한다. 수호지의 노지심은 연상하면 그의 힘쓰는 것이나 하는 일이 거의 비슷하지만 문군은 그 중에 문학에 조예가 깊고 불교계에서 선학 대선법계와 교학의 대강사 지위를 구비하고 유학에서는 황매천 선생의 문하 제자로 문학을 갖추어 닦아서, 풍류남아로 영가무도에 능하고 불문이든 속가든 어떤 곳을 가던지 그의 인품을 돋보이게 하였다. 군은 동지애와 민족애로서 그의 일생을 보내었다.
일제하에서도 별별 항일지하운동을 다하면서 대의를 표방하고, 재물을 멀리하는 등 사회의 중진역할을 하다가 불문에 들어간 뒤로도 본 뜻은 변함없이 꾸준히 노력을 하며 동지규합에 온 힘을 기울였었다. 나와 갑자년에 처음 만난 후로 계속 동지적 입장에서 서로 통하고 지내다가 을유광복 전에 만주로 가서 있다가 귀국한 후, 부산에서 우연히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나이로 보아 육십 전이어서 앞으로 일하기 좋을 때에 동지들의 바램을 저버리고 훌쩍 간 것은 비록 뜬구름 같은 자취일망정 남은 사람으로 섭섭함을 금하기 어렵다. 군의 체력은 수천근을 들어올리는 장사였고 선승의 조예도 있으며 돌팔매질에는 장청보다 우월했다. 화상으로는 노지심과 비슷하지만 도미를 겸했고, 하는 일은 의협심이 많은 고대의 무사처럼 기품이 많았다. 내게는 둘도 없는 친우로 비록 9년이 위였으나 형제와 같이 지내던 사람이 벌써 다른 세상 사람이 되어 내게는 군과 같이 나누었던 도를 나눌 사람이 없으니 내 추억이 더욱 새롭기만 하다. 내가 현재라고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들과 같이 일인일기로 서로 책임지고 나설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간 후에야 그 사람의 참된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 가치를 알고는 더욱 사모하는 마음이 나는 것도 인정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 다섯 분 동지의 추억을 쓰다보니 내 자신이 더욱 고독한 존재로 느껴진다. 앞으로 할 일에는 천 인, 만 인이 부족한데 거물급과 고참동지와 중견동지 중에서 먼저 그 자리를 버리고 돌아가니 신참 동지들의 책임이 더 무겁고, 간 사람을 대신할 만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은 이 늙은이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니 고인들을 더욱 잊을 수 없다.
단기 4288(서기 1955)년 2월 21일
연정법 강요의 맺음말
우리나라에는 상고시대부터 기를 연마하여 도를 이룬 분이 대단히 많은데, 이것은 단지 역사적으로 확증을 못 얻었을 뿐 야담이나 전설로는 빠지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아예 흔적조차 볼 수가 없으니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깊이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국에서는 용호산 장도릉 후손을 대대로 종일품의 예우를 하여 천사의 신성한 직위를 준다. 이것은 후인들로 하여금 배움의 길로 나아가도록 권장하는 뜻에서이다. 공자의 자손 역시 대대로 정이품의 예우를 해서 선비들의 성인을 경의 하는 마음을 높였다. 그 밖에도 충효경렬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들은 모두 조정에서 존숭하여 후인이 추앙하게 만드는 것이 전형적인 중국의 법도가 되었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당연히 숭배해야 할 민족의 첫 조상이신 대황조는 형식적으로라도 위하는 사람이 없고 또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현들은 그 지역의 황폐한 사당에 향불을 계속 치우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동방 18현이라고 지칭하는 선현들은 문묘에 배향하였으나 사람들이 문묘향화를 유지할 도리가 없고, 국가에서 최하의 박대를 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올바른 조상을 모신 자손이라면 옛날 같으면 사림들이 대우나 하겠지만 오늘날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고 오천 년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거성들에게도 나라에서는 조금도 예우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그저 현실주의로, 간 사람은 간 것이고 지금 사람이나 잘하라는 식이다. 아무리 현실이라해도 근원이 없는 현실이 어디 있을까마는 현재로 보아서는 위에서 아래까지 근원을 묻지 않는 세태이다.
내가 어떤 사람의 유럽여행기를 보았는데,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실각한 영웅이지만 그가 일상 생활하던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기념하더라고 하였다. 이것은 나폴레옹을 숭배한다기보다는 제2, 제3의 새로운 나폴레옹이 양성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서양에서도 고대인물들은 적극적으로 숭배해서 이 이념으로 새로운 인물 양성 또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중세시대부터 자성을 잊어버리고 조금이라도 자주성을 갖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그는 조종의 중신이나 세력 있는 선비들에게 탈선자 취급을 받았다. 좀 심하면 화가 그 몸에 미치는 것이 예사여서 비록 출신배경이 좋은 가정이라 할지라도 선비가 주자학 이외의 것을 연구한다 하면 '학문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도적' 이라고 낙인이 찍혀 역적의 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는 일이 무수하였다. 그들을 대접이라도 하면 지금까지의 학문세계에서 제외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옛 성현 가운데서도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수심법을 습득하는 일이 있더라도 비밀로 감추고 겉으로는 주자학으로 행세해야 문묘배향도 하고 사림에게 배반도 안 당하는 것이었다.
조선조 중엽의 김종직 선생은 6예에도 그 법을 얻고 정신연구에도 수양이 있는 분이지만 순수 주자학이 아니라 하여 문묘배향을 못하였고, 그 후 서화담, 정북창,. 송구봉, 조남명, 유겸암, 허미수 등 여러 선생들도 도를 닦아 도달하신 경지야 배향되는 분보다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순수 주자학이 아니다 하여 이토정, 서고청 선생들과 같이 유일(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상당한 학문적 소양과 인격의 소유자이나, 현실 사회의 핵심에서는 벗어나 있던 국외자를 가리킨다.)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 현실주의적 사대파의 그릇된 점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현들 중에서 혹 대황조이념을 본받아서 홍익인간, 곧 세상에 널리 이로운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선생이 있었더라도 이런 발언만 하면 주자학파에게 이단으로 몰릴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학파는 껍데기만 있었고 순수한 정신연구학파는 행세를 못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결국 폐단이 되어 현대사조가 들어오자 옛 학파는 모두 같은 대우를 받게 되어 우리의 전래하는 심법파들도 아예 출현을 못하게 된 것이다. 조선 말엽부터 일제시대에 걸쳐 유교선비들의 기세가 좀 약해지자 심법파들이 각자 서로 으뜸이라 하며 별별 기괴망칙한 개인 주장을 하고 나왔다. 그러나 이것들은 것의 사이비적 논리가 대부분이며, 정전하려는 순수파들이 아니고, 이를 이용해서 세력을 양성하려는 도적무리들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나는 고대 정신문화를 그대로 살리고 항 걸음 나아가 이 문화가 우리 나라의 국력수준 향상에 큰 힘이 되어서 애국 애족적으로 공동발전이 되었으면 하는 미미한 바램이 있어서 누누히 정신연구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이 연정이 완성됨으로써 정신학계는 물론이요, 형이하학인 과학적 물질문명에도 진보를 할 수 있음을 확언해 두는 것이다. 또한 이것으로 삼육의 하나인 지육이 크게 발전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체육도 자연적으로 보통수준을 돌파할 것이며 덕육은 지육이 진전되면서 자연함양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끝맺으며
나의 오해된 모습
1. 세상에서는 나를 '도인' 이라고 하나, 나는 결코 도인이 아니다. 정신수련면에서 나름대로 감동한 바 있어 나를 도인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내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문제다.
나는 도인이 아니다.
나는 완성을 이룬, 완전한 경지에 오른 도인이 못된다.
다만 세속에서 때를 묻히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늙은 '학인'에 불과하다.
2. 또 누구는 나를 '시인' 으로 대접하지만, 나는 다만 젊었을 때부터 복잡한 머리를 식힐 겸 음풍농월하며 옛 시성들을 흉내내 왔을 뿐 스스로 시인이라고 여긴 적이 없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한시 몇 백편이지만 돌이켜 읽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모두가 괜한 글장난이었을 뿐이다.
3. 또 내가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소설 속의 실제인물' 이라는 것이다. 나는 몇 년전에 '단' 이라는 소설에 '우학도인' 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바가 있는데, 그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나를 '장풍, 축지를 마음대로 하는 굉장한 도사', '엄청난 정신력을 발휘하는 초인' 등으로 생각하고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 소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일부 과장되고 창작된 부분도 있는 것이므로, 소설 주인공의 모습이 그대로 '참나'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또 그전부터 내가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 조상들의 고유한 체력향상법이나 도력의 우수성을 피력했더니, 그들은 아예 나를 '비현실적인 몽상가'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초월한 '몽상가' 대접을 받을 만큼 상상력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다. 또 없는 일을 지어서 말할 정도로 말주변이 능란한 위인도 못된다.
4. 나는 과연 세상이 알고 있는 대로 '술객'인가? 나는 다만 젊어서부터 고대 문화 연구에 관심이 많아서 천문, 지리, 수리 등에 취미를 가졌을 뿐, 그것이 취미의 정도를 넘어 전문적인 '술객'의 위치에 이르지는 못했다.
또 나는 세상의 이치와 음양의 조화를 아는 전문적인 술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바른 눈을 가지고 일이 되어 나가는 꼴을 잘 살핀다면 누구나 진정한 인생의 '술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5. 또 한때 나는 '정권욕이 많은 사람' 으로 취급받았다. 그것은 내가 사십대에 백범 김구 선생의 한독당에 투신하였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은 남보다 영리한 사람들이 잡는 것이다. 나는 이무리 보아도 남보다 어리석기만 하다.
6. 또 나는 흔히 '종교인' 으로 취급되는데, 나는 원래가 간판을 단 어떤 형태의 단체나 조직을 싫어한다. 따라서 종교를 가진 인물이 될 수 없다. 다만 내 좁은 소견으로 생각할 때, 유불선이나 외래종교들은 근본적으로 우리민족에 맞지 않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을 전하는 대종교에 뜻을 두고 있을 따름이다. 이 대종교는 우리 민족의 뿌리사상이지 흔히 말하는 '종교단체'가 아니다.
7. 또 나는 '의학을 다루는 사람' 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그것은 내가 우리민족에게 전해져 오는 독특한 의학체계의 장점과 우수성을 알고, 그것을 계속 연구해 왔기 때문이다.
8. 또 나를 '호색한' 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것은 내가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남녀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양각색의 대우를 받는 나이다. 남이야 무어라 하든지, 악평을 하든 호평을 하든, 내가 관계할 바 아니다. 다만 내가 뜻을 둔 일이라면 남이야 무어라 하든지 자신을 가지고 나아갈 따름이요, 또 내 뜻을 이루고 못 이룸이 내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내 전심전력을 다해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내 바라는 바는, 오로지 이 나라 이 민족이 재기하여 우리 대황조의 홍익인간 이념을 실현해서 먼저 백두산을 중심으로 오족이 통일되는 일이다. 그 다음에 한국과 중국과 인도가 합심하여 동양 여러 민족이 세세만년의 평화정책을 수립함으로써 서양세계도 역시 이 이념으로 세계일가의 평화를 달성하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변함없이 희구하는 바요, 또 옛 성인께서 말씀하신 대동책이라고 확신한다.
비록 몸은 점점 쇠약해져서 버티어 나갈 자신이 부족해지나, 내 마음은 털끝하나 변함없이 이 희망을 가지고 살며, 이 희망을 가지고 죽을 것이다. 이 이념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비록 시기가 아직 안 왔다고 할지언정 실현이 못 될 리는 절대로 없으며, 또 그 발단이 틀림없이 우리민족,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질 것이요, 또 시기도 이미 도래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뜨기 전에 이 발단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확언해 두는 바이다. 또 앞으로 황백이 전환할 시기도 멀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해 둔다.
우리 민족에게 이 이념을 실현시킬 능력과 자격과 토대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것도 나는 자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누가 과연 그러한 위대한 일을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백두산족이라면 누구나 이 일에 책임이 있고, 또 능력도 자격도 있다고 나는 답하리라.
그리고 이 일이 완전히 실현되려면 한두 사람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우리 민족의 반수 이상의 각오와 실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성공을 바탕으로 동양세계가 완전히 합심할 수 있고, 우리 황인종이 완전히 단합되어 이념을 실현함으로써 백인종도 감화를 받아 세계일가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이념을 벌써부터 말하였다. 그러나 같은 이념을 가진 인물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지를 모으는 데에서 비로소 이념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이 이념을 실현하는 데에 이 민족의 한사람으로 자격도 있고 능력도 있고 책임도 있다.
그래서 이 붓을 든 것이다.
번역 해설 : 봉우 권태훈
펴낸이 : 송순현
이 책을 엮으며
여기에 실린 글은 모두 봉우 권태훈 옹의 수필, 일기문 등에서 가려뽑은 것이다. 봉우 선생님께서 틈틈이 써 두신 글들이 두꺼운 노트로 수십 권에 달하나, 해방 전의 글들은 일제하의 고등계 요시찰 인물로서 수십 차 예비검속 및 투옥으로 집을 수색당할 때 모두 압수당하였고, 해방 뒤에 쓰신 글들만이 열 댓 권 정도의 분량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도 주로 50년대부터 80년대 최근까지의 글들로 엮어졌으며, 엮는 과정에서 어느 부분은 실리고, 어느 부분은 다음으로 발표를 미루게 되었다. 실린 내용은, 이 분이 평생을 통해 추구해 온 백두산족의 뿌리사상에 대한 고찰, 그 뿌리를 튼튼히 하고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하여 지향해 나갈 겨레의 앞날에 대한 좌표들, 백산대운과 황백전환기를 맞이하는 한민족을 미래상. 또한 개개인의 영성개발을 위한 근본적인 정신수련 문제의 제기와 자아에 대한 진지한 성찰들로 이루어져 있다.
봉우 권태훈 옹은 단기 4233년(서기1900년) 1월 20일, 서울 재동에서 출생했다. 4세부터 서당교육을 받았으며, 8세에 유교의 경전을 모두 마쳤다. 그 이전인 6세에 어머니로부터 민족 고유의 호흡수련법인 조식법을 배웠다. 10세 때 서울 비원 근처에 있던 "단군교 포교소" 를 지나다가, 숙명적으로 항일적 심경을 갖고 있던 그는 민족 고유의 것에 대한 갈증 때문에 단군교라는 말에 사로잡혀 그곳에서 대종교를 부흥시킨 민족종교 지도자 나철 선생을 만났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그는 당대의 많은 정신적인 스승들, 민족주의자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민족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자각, 또 한편으로는 자기 성찰을 통한 내면 탐구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한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 정신의 깊이와 당당한 자세로 일본 정신계를 놀라게 했던 그는 민족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멀리 바이칼호까지 오랜 탐사를 했으며, 일곱 차례에 걸쳐 백두산을 등정했다.
단기 4258년(서시 1925년) 개천절을 맞아 그는 계룡산 북쪽 기슭에 "연정원" 이란 이름의 정신수련원을 창설하여 동지들과 함께 정신수행과 순수한 민족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그가 세상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것은 단기 4317년(서기 1984년)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소설 "단"(김정빈 지음)에 우학도인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부터이다.
1년만에 30만부이상이 팔린 초베스트셀러의 기록을 수립한 이 책에서 그는 억눌렸던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우고, 새로운 미래상을 예시하여 이 땅의 모든 사상과 학문분야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올해 (단기 4322년)에 90세를 맞이한 그는 아직도 대종교 총전교의 직책을 맡아 민족 고유의 단군사상을 후학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한국단학회 연정원"을 이끌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기존의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야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독특한 체험을 겪게 된다. 그 목소리는 현대를 사는 모든 이에게 때로는 아주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껄끄러움으로, 때로는 느닷없는 자부심과 경이로움으로 다가오지만, 결국 우리겨레의 고유한 정신적 자산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희망을 지니게 한다.
또한 민족문화 연구의 지평을 그 뿌리에서부터 넓혀 주므로 진정한 '조선의 얼'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지도 자명해 지는 것이다.
너무도 민족주의적임을 주장하면서 근본적인 대자연의 도를 깨닫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참된 나를 다시 찾아서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데 헌신하자는 이 야인의-얼핏보면 너무도 모순된-외침에 적잖이 당혹해하는 이도 많으리라. 하지만 가장 민족주의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이 분에게는 너무도 잘 적용된다. 즉, 겨레없는 깨달음도, 겨레없는 세계평화도 이 지상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성스러울 정도로 지극한 민족에 대한 사랑은 절대로 편협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다. 그것은 결국 근본적인 '참나'의 발견과 구원으로 이어지며, 나아가 온 민족들의 집합체인 세계의 거룩한 평화공존에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민족애를 사상시키는 이 분의 사상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무의미함을 밝혀둔다.
내가 이 책을 엮게 된 동기도 전적으로 이에 대한 감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생을 일관되게, 민족에 대한 사랑을 뜨겁게 간직하며, 민족고유의 정신을 투철히 깨닫고 실력을 배양하며, 당면한 민족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외진 길을 참으로 고집스럽게도 이 날까지 걸어오심을 보았을 때, 그 지극한 순수함에 나는 감동하였다.
또한 우리의 민족주의의 기원은 어디에서부터 설정함이 마땅한가 하는 것도 깊이 고찰하게 되었다. 봉우 선생님에게 있어서 민족의 뿌리에 대한 깨달음은 전 우주사의 근원적인 깨달음과 직결되어 있다. 그것은 곧 태초의 만물 생성의 비밀이며 또한 소우주인 '나'란 존재의 비밀이기도 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세속적인 현실문제를 멀리하며 사람의 공동체에서 벗어난 존재이고, 정치인이나 기타 현실 참여적인 사람들은 세속적 존재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즐겨하지만 봉우 선생님은 여기서도 멀리 벗어나 있다.
나는 봉우 선생님의 남겨진 모든 글들을 읽으며, 이 땅위의 모든 이들과 더불어 공감을 형성할 많은 부분들이 있다고 느꼈으며 나만이 그 값진 체험을 향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엮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신력 함양과 깨달음에 대한 본격적인 서술, 옛부터 전해 내려온 각종 정신연구의 분야들-주역, 천문, 지리, 산법, 병법-에 관한 논술, 그리고 고대 체력단련법으로서의 '속보법요지' 및 '체술요강'에 관한 내용은 이 책에 실리지 못했다. 추후에 세상에 발표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그 글들은 이 분야에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차 있어서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바가 못되었다. 그래서 우선 몇 가지만을 골라 스승의 허락을 받은 후에 원고 정리를 한 것이 바로 이 책이 되었다. 책의 어느 부분이라도 잘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얄팍한 지식과 어두운 머리 때문이다.
스승의 원문 서술에 쓰인 많은 용어들이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말들이 있고. 문체 역시 요즘 사람 눈에는 익숙지 않은 글들이 많았으므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약간의 단어 수정이 불가피했음을 밝혀 둔다.
끝으로, 스승의 글이 담고 있는 현재적 가치와 그 의의를 공감하고 이 책 발간에 적극 힘써 준 정신세계사 편집주간 류시화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본문의 서문과 맺음말 및 제1부 '나에게서 구하라' 등은 그의 정리로 이루어 졌다.
정신세계사 송순현 사장님과 편집부 여러분의 노력에 깊은 고마움을 표하면 아울러 서울과 계룡산의 연정원 동지들과 함께 스승님의 어록이 출간된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단기 4322년 1월
엮은이 정재승
내 살아온 생을 돌이켜 보니
내 나이 여든 아홉이던 무진년(1988)은 그 마지막 날을 대황조님의 영정 앞에서 고요히 보내고, 그 자리에서 닭울음소리를 들으며 기사년(1989) 첫 날을 맞게 되었다. 내 살아온 구십 여 년 동안 늘 같은 인생으로 별다른 일이 없었다. 벌써 내 나이 아흔이 되었다. 참으로 순식간의 일이다. 홀로 고요히 앉아 지나온 생을 돌이켜보니 변함이 없이 여전하다. 변하고 싶어도 변할 것이 없고, 변하지 않으려 해도 역시 잘 변하는 것이 인생이런가? 그래서 내가 청년시절에 '깊이 생각해 보니 인생이라는 것이 한 조각 뜬구름 같은 것이요, 괜히 혼자서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라고 쓴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 시절의 생각이요, 오히려 구십의 나이를 눈앞에 둔 지금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한 세상을 그냥 왔다 가라고 이 우주가 인간에게 생로병사를 내린 것이 아니요, 자유자재한 능력을 허락한 것이 아니다. 이 우주가 어떤 사람을 그 시대, 그 민족, 그 나라에 태어나게 하여 잘 기르시는 것에는 깊은 뜻이 있다. 그저 뜬구름처럼 왔다가 가라고 이 숨막힐 정도로 엄청난 인생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득 돌이켜보니 이 우주가 개벽한 이후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빚만 지고 살다간 목숨이 이 우주에 얼마나 많은가? 그것을 생각할 때 내 머리에는 무어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이 몰려든다.
나야말로 지난 여든 아홉 해라는 긴 세월을 살았으나,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외상 살이 인간임에 틀림없다. 나 역시 우주가 나에게 생명을 내린 깊은 뜻을 살피지 못한 채 빚진 인생을 살아왔다.
옛사람 말씀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였다. 이 역시 나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그간 지나온 마흔 아홉해 동안의 자신의 잘못을 알았다.' 라는 옛사람의 말을 생각하고 나 역시 '나이 아흔이 되어서야 지난 여든 아홉 해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앞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그런 대로 두 눈빛이 흙으로 가리워지기 전까지 정진을 다하여 이 우주에 진 빚을 만에 하나라도 갚아볼까 하고 이 책을 내놓은 것이다.
단기 4322년 1월 봉우 권태훈
차례
이 책을 엮으며
내 살아온 생을 돌이켜 보니
1. 나에게서 구하라
2. 백두산족에게 고함
3. 구도자의 자세
4. 연정원에 대하여
이 책을 끝맺으며
1. 나에게서 구하라
나에게서 구하라
옛부터 지금까지 정신을 수련하느니, 무슨 비법을 배우느니 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 비법이 스승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무에서 유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것은 제자에게 어디서 어디까지 가야하며, 또 이런 산을 넘어 저런 물을 건너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해 주는 것에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도중에 거쳐가야 하는 멀고 험난한 길을 자세히 지도해 주는 것이 스승이요, 잘 가고 못가는 것은 스승의 책임이 아니다. 항상 내 자신이 잘 가야 하는 것이니, 비록 스승의 도움은 바랄 지언정 목적지까지 잘 가고 못 가는 것은 자신에게서 구해야 한다.
나에게서 구하라.
하늘을 놀라게하고 땅을 진동시킬 비법도 모두 나 자신의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러한 마음 하나가 그 이루고 못 이룸을 좌우하는 것이다. 물론 스승이 가르쳐 주는 길이 옳지 않다면 이는 그 스승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공부의 이루고 못 이룸은 자기의 정성된 노력 여하에 있으며 나 자신밖에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만고불변의 법칙이요, 진리다.
세상의 일반학문은 스승이나 친구의 도움만 가지고도 아주 어리석지만 않으면 상식선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수련에는 비록 신선과 부처가 지도하더라도 본인인 내가 성의가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나를 구하라.
내 안에서 나를 구하면 신선도 될 수 있고, 부처도 될 수 있는 법이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수운 선생의 말씀에 '인내천'이라는 내용이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사람의 마음이 곧 천심이요, 사람의 움직임이 곧 하늘의 뜻이다.
이것을 알라.
천지인,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한 몸이니 하늘을 알고자 할진대 가장 가까운 곳인 나에게서부터 연구해 나가면 하늘도 알 수 있고 땅도 알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근본 원리다.
사람의 사람됨과 천지의 천지 됨이 동일한 원리에서 이루어지며, 만물의 나고 자라고 거두고 돌아가고 하는 일도 바로 그 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높은 것이 하늘이요, 낮은 것이 땅이며, 높고 낮은 것을 동시에 갖춘 것이 바로 사람이다.
여기서 갖추었다 함은 하늘과 땅의 중간자적 존재인 사람으로서 자신의 지혜를 키워 나가면 하늘도, 땅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하여 산천하지, 즉 위로는 하늘에 통하고 밑으로 땅에 이어지려면 내 안에서 진정한 나를 구해야 한다. 내 밖에서 나를 구한다면 그것은 나 아닌 다른 것은 구한 것이다.
현대의 고도화된 물질 문명 사회에서 과학만능을 자랑하지만, 눈 있는 자가 본다면 벼룩이 장판 위에서 뜀뛰기를 하며 자기의 용맹스러움을 자랑하나, 사람이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우리의 정신수련도 역시 그 한계가 없다. 누구나 자기의 간 것만큼 갔을 뿐,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았다.
누구나 자기의 간 것만큼 갔고 그 이상은 억천겁을 갈수록 더 닦아야 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우주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시간적으로는 돌을 맞부딪칠 때 반짝 일어나는 불꽃처럼 짧고, 공간으로 보면 가이없는 바닷물 위에 떠있는 좁쌀 알만큼 미미한 존재라고 하였다.
이런 가운데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비바람 부는 대로 세월을 허송할 수 없으니, 전광석화 중에서라도 만년불변의 자세를 지니고 나를 내 안에서 구하면 이것이 바로 '순리에 따라 살며 일체를 받아들이면서 쉼없이 정진하는' 배우는 사람의 길이 될 것이다. 천 가지, 만 가지 말과 글이 모두 다 먼저 행함보다 못할 것이다.
나에게서 구하라.
나밖에 내가 없다.
나를 내 안에서 구해 얻음이 있어야 비로소 나 아닌 다른 남도 미루어 알 수 있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고 나 아닌 남을 안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죄인이 되고 남에게도 죄인이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나는 모르되 나 아닌 남을 잘 말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늘이 못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그대로 사람의 상태에만 머물러 있다. 내가 내 마음의 일부마저도 거느리지 못하면서 감히 남을 거느리려고 생각한다는 것, 그것을 죄라 하지 않고 무엇을 죄라 하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덕이나 공은 세우지 못할지라도 죄인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서 구하라.
나에게서 나를 구하라.
나의 한계
세상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나는 어떠하다느니, 나는 무슨 일을 하겠다느니, 나의 장래일을 위하여 내 과거일은 이랬어야 하느니, 나와 남을 비교하느니 하는데 대체, '나' 라는 것의 한계를 잘 알 수 없다.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세상에 나온 후부터 나라고 이름붙여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기까지 일생을 통해 더불어 사는 이 육체를 바로 '나'라고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나' 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만약 세상에 나온 이 육체를 나라고 한다면, 이 육체가 나오기 전에는 나라는 것이 없었을 것이요, 또 이 몸이 죽어지면 나라는 것이 자연 소멸될 것인가? 세상의 해석은 이 방면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야 알 수 없고 또한 죽어지면 그 이후의 세계도 알 수 없는 것이니 '나' 라는 것은 한계가 아마 이 정도인가?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렇다.
이 육체가 생기기 전에는 나라는 것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 육신이 온 후에 내가 생겼다고 한다면, 또 그래서 이 육신을 '나' 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육신이 죽었더라도 그 육신이 나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호흡이 정지되고 이 몸에 열이 식어서 시체가 되면 그때까지 나를 대표하던 이름으로 그 시체를 부르지 않고 다만 누구의 시체라고 하는 일개 송장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나에게 가장 가깝던 사람도 모두 나를 피한다.
따라서 이 육체가 나를 대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불변하는 '나'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육체가 내가 아니라면 무엇이 나란 말인가?
어떤 이는 정신이 곧 나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 육체는 무엇인가? 또는 정신과 육체를 합한 것이 곧 나라고 하나, 그렇게 되면 정신이 육체를 떠나는 찰라에 나라는 것도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속에서 볼 때 이 정신, 이 육체를 다 떠나서도 나라는 존재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자주 체험하게 된다. 즉, 내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후에도 여전히 나를 대표한 이름이, 아무개라는 명칭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름이 곧 나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또는 내가 출생하기 전의 몸도 나요, 현재의 몸도 나요, 미래의 몸도 불변하는 나라고 하니 무엇이 진정한 나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각자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하나 어느 '나'가 진정한 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이러한 주제는 애초부터 아주 한계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것 같다.
먼저 '나' 라는 것을 잘 찾아야 이 한계를 알 수 있다.
저마다의 주장이 다르니 지금 말을 하고 있는 나도 이 한계가 의심이 나서 매듭을 짖지 못하는 것인지, 또는 나 자신의 결론이 있으나 말을 안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그대에게 맡긴다.
그저 나의 한계를 알 수 없다는 의문을 남겨두고 뒷날의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는 것이다.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내가 있다 없다 함도 모두 나요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나'라
없고 또 없고, 비고 또 비어도 나 아님이 아니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 또한 나로 말미암으니
세상 사람들이여, 삶과 죽음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빈 산 밝은 달에 '참나'를 깨달으라
공자의 제자 자로가 죽음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생을 모르는데 어찌 사를 알리요?' 라고 반문하였다. 공자가 삶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질문을 한 자로가 삶을 모르면서 죽음에 대하여 알려고하니 이를 지적한 것이다.
말하자면 비교할 근거가 되는 생을 알지도 못하면서 죽음을 무엇하러 묻는가 하신 것이다. 나의 생부터 깨달으면 자연히 죽음은 알 일이라는 뜻이다.
자로가 생을 모르면서 사를 묻다가 반문을 당하긴 했지만, 자로 역시 '나의 한계'에 의문을 가졌던 듯 하다.
역시 공자의 제자인 안자는 온종일 어리석은 사람처럼 앉아있기만 하였으나, 공자는 그를 두고 '힘써 배우는 사람 또한 이와 같다'고 하였다. 더불어 안자는 '가장 높은 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순임금은 누구이며, 나는 또 누구인가' 라고 하였다.
공자와 안자는 생을 깨닫지만 한 것이 아니라 천년 만년 이전까지 나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나를 해석하였다. '나'라는 것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 유아독존하라는 말씀이다.
이 정도로써 그대의 후일 공부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나만 깨달으면 나의 한계도 알 수 있고, 내 주변의 물질의 이치도 알 수 있다.
나를 안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자기가 자기를 아는 일이다.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고 남이나 남의 일을 안다면 이보다 더 곤란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자기의 과거 현재의 경력이나 실력이나 또는 업적으로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가 잘알고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의 학력도 알 수 있고, 자기의 업적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자기의 성품이나 일을 꾀하는 힘이 얼마만큼 되느냐 하는 것도 자기 이외에 누가 알 것인가? 그러니 냉정히 자기를 살펴서 자기의 힘에 맞는 일을 하면 일에 실패가 없을 것이다.
먼저 내가 나를 알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으로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스스로를 평가해 보아야한다.
내가 나를 바르게 평가할 때 비로소 남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만사에 무리가 없다고 했다. 즉 무슨 일이든지 조화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 일을 보면 남을 알기를 잘하는 사람도 자기를 알지 못해서 일에 실패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모든 일이 순리에 따르지 못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자기가 자기를 알더라도 왜곡된 평가를 내려서는 안된다. 용서없이 바른 평가를 내려야 한다.
무슨 일을 할 때나 남을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나를 아는 것 역시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부분적으로는 자기를 아는 것이 쉬울지 모르나 전체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본질을 알기는 어렵다.
세상에는 먼저 자기 자신을 평가해 보고 나서 일을 시작하기보다 맹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이 맹목적인 무리가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어떤일을 하기전에 먼저 내가 나를 알 수 있는 길을 찾으라. 맹목적으로 세상의 여러 길을 활보하지 말고, 나는 누구 인가에 대한 해답을 먼저 찾으라. 그 외에 다른 길이 있지 않다.
대자연의 삶
인간으로 탄생한 것을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가장 무의미한 우연의 산물인 듯 여겨지고, 탄생 후의 주위 환경과 교육여하에 따라 그 삶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졌기 때문에 흔히들 인생을 부생, 뜬구름처럼 떠도는 삶이라고 말한다. 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가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반해 가난과 병으로 일생을 보내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 인간살이를 고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인간으로 탄생한 것이 맹목적인 우연에 있는 것은 아니며, 삶 자체가 부생이나 고해인 것은 더욱이 아니다. 단지 이 우주 대자연의 크나큰 수레바퀴 속에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따라 돌고 도는 가운데, 각자가 무의미한 우연에 의해서 이 지상에 나오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뿐이다.
세상에 나와서 남과, 또 사물과 맺어지는 인연이라는 것은 모두가 각자의 판단과 결정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아무 관계도 없는 우연으로 그 인연이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삶은 반드시 그 뜻이 있는 것이지 뜬구름 같은 부생이 아니다. 또한 무수한 세월을 두고 전전하던 잘못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어 나온 것이니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수도 있는 이 자리가 어찌 고해라고만 단정할 것이겠는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천지의 대자연은 변함이 없으나, 인간의 행위는 여러모로 그 대자연을 위반하고 대자연에 역행하는 방향으로만 달려간다.
하늘은 어느 때고 그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인간에게 부여하지만, 인간들이 스스로 끊임없는 윤회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시작한 이래, 이것을 자각하신 성자들이 세상사람들에게 그 윤회의 고통을 스스로 택하지 말고, 그 사슬에서 벗어나(해탈하여) 극락을 얻으라고 수없이 일깨워 왔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젼히 술취한 듯, 꿈꾸는 듯 그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이 이 현상을 보다못하여 현실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이 삶을 부생이라하고, 극락을 만들 수 있는 낙토를 고해라고 오해하였다. 또 마음 속과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수 있는 이곳을 지옥이라고 생각하여 죽어서 갈 천당을 희구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것은 비단 현 인류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태초 이래 인류가 시작된 뒤부터 계속되어온 문제다. 그리하여 이처럼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잘못을 되풀이하여 윤회하는 삶이 마치 정상적인 대자연의 삶인양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으라.
피와 살과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이 몸안에 불멸의 대생명력이 무한히 내포되어 있다.
이것을 자각하라.
이 몸이 가장 뜻깊은 몸이요, 이삶이 가장 즐거운 삶이요, 지금의 이 세계가 바로 극락세계이다. 이 세계 외에 또다른 극락세계가 있지않다. 이 삶보다 더 의미있는 삶이 있지 않다.
인생은 고통이라고 부르짖는 인류로 태어나서 이 현실세계를 극락으로 생각하고, 지상 극락건설을 크게 외치면서 자기 자신과 남을 자각시키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윤회라는 피동적 삶의 형태를 극복하는 사람의 자세다.
또다른 삶과 또다른 세상을 꿈꾸지 말라. 그대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천국을 느끼고, 진리를 찾으라.
이것이 바로 옛 현자들의 깨우침이며, 대자연계에서 쉬지 않고 흘러 나오는 소식이다.
내가 나를 안즉 능히 남을 알고
윈래 밝은 것을 다시 밝히니 도가 이루어진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모든일을 알고
주변을 돌보면 덕이 세워진다.
이것이 바로 생의 최고의 목표라,
뜻을 세움이 낮으면 그 배움이 보통의 수준을 넘지 못하니
반드시 이러한 최고의 것으로 뜻을 세워서
비상한 힘을 내어 쉬지 않고 나아가라.
그리하면 미록 타고난 재주와 성질이 크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능히 지혜로운 자의 대열에 서게 될 것이나
모든 배우는 이들은 마땅히 힘쓰고 힘쓸지어다.
내가 나를 생각해 보면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만사에 거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서 반드시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강태공이 병서에서, 힘이 같으면 지혜로써 판가름이 나고 지혜가 같으면 덕으로써 판가름이 난다고 말한 뜻이다.
비록 내가 남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도 그 역량의 차이가 있을 때는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능하나 남을 물리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 그 차이가 자신을 지킬수도 없을 만큼 크다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때를 기다리는 일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만 가지 조건이 모두 불리한 줄 알고 내 자신이 남을 물리치려는 의사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불의를 품고 공격해 온 다면 비록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지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덕이다. 남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서 만사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남을 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남을 알기전에 우선 자신을 알지 못해서 실패가 많은 것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이다. 그래서 옛사람의 말대로 지나침과 부족함이 다 중용을 벗어나는 일일지니,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맞지 않는 일이요, 그렇다고 과대평가하는 것도 역시 옳지 못한 일이다.
한 치도 빗나감이 없이 정확히 나의 위치를 알아야 비로소 그 분수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내 자신을 생각해 보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붓을 들고 이 글을 쓰면서도 나를 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내가 지난 90년간 걸어온 현실의 위치가 과연 무엇이며, 또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상과 실력이 어느 정도의 범위를 갖고 있는 것인지 조금도 덧보태거나 빼지 않고 평가해보자는 것이다.
스스로 내가 나를 평가할 때 흔히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나, 나는 지금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살펴보고, 그리고 옛사람들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나 되는지, 또 나아가 때를 만났을 때 내가 어느 정도까지 될 것인가를 스스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학자라면 으레껏 갖고 있어야 하는 뛰어난 문장력과 여러 재능에는 아주 문외한인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선비될 자질은 없다. 다만 역학을 좀 연구하고 각 철학사상을 흘낏 좀 들여다본 일이 있어서 약간의 지식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학문의 탐구에 있어서도 여러 고매한 성현들의 해박한 문장보다는, 종일토록 어리석은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있던 공자의 제자 안자를 사모한 나머지 문자를 가지고 논하는 일을 피하고 다만 그 근본을 밝히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따라서 쟁쟁한 학자의 대열에는 감히 끼어들 엄두를 못내지만 가끔 진지한 토론석상에 참여하여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줄은 안다. 정통 교리에 밝지도 못하면서 가끔 경전의 근본 뜻을 나름대로 피력해보거나 통속적인 학설은 대충 말할 수 있으나, 그것도 말뿐이지 전문가가 못된다. 다만 유불도의 사상서를 비롯한 온갖 학문서적을 좀 취미 가져서 읽어 보았기 때문에 비록 충분하진 못하나 아주 문외한은 아니라는 평을 들을 따름이다.
종교관에 있어서도 나 자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어느 종교든 신앙을 피하고 있지만, 그 스스로의 믿음이라는 것이 약하기 때문에 따히 확고한 철학을 지녔다고도 할 수 없다.
또 법률 지식을 약간 주워들은 관계로 남의 시시비비를 잘 가리다가 구설수에 오르곤 하는 것이 바로 나다.
쓸데없이 의협심을 갖고 있어서, 비록 세상 처세하는 데에는 내 분수나 지키고 있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강자보다는 약자편을 드는 일이 많아서 세상 사람들은 나를 두고 '일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고 좋지 않게 평한다.
또 비록 분수를 지킨다고는 하지만 욕심이 많아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백일몽을 꾸는 것이 바로 나다.
뿐만 아니라 세상일의 흐름을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여 간간이 호언장담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군사학에는 남이야 무엇이라든지 나대로는 예나 지금이나 군사를 전부 통솔할 자신은 없어도 아무 지방이고 한쪽의 임무만은 맡을 자신이 있다. 내가 나대로 수십년을 두고 여러 곳에서 일어난 전쟁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예측해 보면 별로 빗나가는 일이 없었다. 이것만은 비록 전문가는 아니나, 내가 예나 지금이나 때를 만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스스로 자신한다. 그것도 그냥 자신이 있을 뿐이다.
경제쪽에는 정말 문외한이요, 외교에도 자신이 없고, 그 밖의 다른 부분에는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 쓸모가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사람을 모아 어떤 일을 도모하는 능력이 없다. 또 포용력이 많지 않아서 남의 상관이 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누구의 아래에 머물러서 윗사람을 섬기고 더 아랫사람을 교육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무 실권 없는 구경꾼으로는 적절할지 모르나, 위급한 상황에 처한 군대 외에는 실권 있는 일이면 모두 자신 없다. 다만 부정부패한 일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기강을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는 데에 좀 엄정하게 하는 성격일 따름이다.
옛날에 살았다고 해도 나라에 아무일이 없을 때에는 별필요가 없는 인물이요, 괜히 위태로운 말을 하다가 권력가진 자에게 미움만 받기 십상이였을 것이다. 나라가 위급할 때라면 약간의 공을 세울 소질이 좀 있지 않을까 생각들 뿐이다.
또 현세상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쓸모가 없다. 과학적으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정신적으로 미천한 실력이 있으나 아직 말로 표현할 시기가 못되고 더구나 민족정신을 일깨울 실력도 어느 모로 보든지 부족하다.
마음만은 있으나 일을 해보면 현실적인 계산이 따르지 못해서 '뜻은 있으나 일을 이루지는 못한다' 라는 말이 나에게 어울린다.
이렇듯 내가 스스로 아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때, 지금의 나는 현실 속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최상은 내가 바라지 않고, 그 다음은 내가 적당하지 않고, 그 다음의 실질적인 업무분야에는 내가 자신이 없고, 이 이상 그 이하가 모두 부적격이다.
경제적으로도 아주 문외한이요, 정신적으로도 그저 주변에서 맴도는 일개 학인에 불과하다. 단계를 밟는 자리가 아닌,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면 일시적으로 필요한 인물일 모르나, 그 밖에는 아무 용도가 없는 인물이다.
따라서 나는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중간도 아닌 그러한 위치에 처해있다.
세상사람들은 다 제각기 자신의 위치가 있으나 나는 어리석어서 그러한 위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
세상사람들은 다 약간의 힘과 지혜와 덕을 자랑하나, 나는 어리석어서 자랑할 만한 힘과 지혜와 덕이 없다.
누구나 한정된 인생을 살면서
인생은 한정된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누구나 한정된 인생을 산다.
그 인생의 한계를 모르고 무궤도하게 살아나가면 그 산다는 것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된다. 다같은 인생으로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그 한정된 인생을 가장 뜻있게 소비한 사람이 최상의 지혜로운 인물이요, 가장 무의미하게 소비한 사람이 최하의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최상과 최하의 중간에도 천차만별이 있다. 한 번의 인생을 살았다는 다 같은 자격으로 최종점에 가서 보면 그 인생의 질이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왔다가 간다는 점만 같을 뿐, 그 인생의 답안과 공식이 천차만별이다.
그대는 어떤 답안과 공식을 가지고 이 한정된 인생을 살아가는가?
그 담안과 공식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요, 좀더 자세히 나누면 세가지다. 두 가지란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이며, 선해질 수도 있고 악해질 수도 있는 중간도 있어서 세 가지로도 나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한정된 인생으로 흔적도 없이 냄새도 없이 왔다가 간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같다. 이것이 바로 무에서 유가 나고, 유에서 1이 나고 1에서 2와 3이 나와서 천지만물이 모두 동일궤도를 걷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며, 이점에서는 만물이 모두 같은 상황이다.
이왕 왔다가 갈 바에야 선이니 악이니 할 것 없이 흘러가는 대로, 되어가는 대로 살다가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이들도 그 숫자가 대단히 많다, 현 세계의 사조인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또는 그 중간노선을 걷는 나라나 모두 동일한 물질문명의 혜택을 입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이 현실주의, 실용주의가 극에 달한 나머지, 사람들은 살아서 어떤일을 하든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아무 주저없이 마음내키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 전 인류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그 원인이 물질 문명에 있다. 물질문명의 단점이 현재의 우리의 삶에서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고대문명이라고 하면 동양의 정신문명을 일컫는다. 정신문명에서는 물질보다 정신에 치중해서 비록 한정된 인생일지라도 우주 대자연의 순리와 흐름에 충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비록 육체는 한정이 있으나. 정신만은 우주와 한 흐름이 되어서 개벽 이전부터 다음에 오는 개벽 뒤까지라도 영원히 우주와 함께 한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 바로 정신문명의 핵심이다. 비록 끝없이 변화하는 육체 속에 있을지라도 정신의 영원성을 망각하지 않으며, 육체를 위해 정신을 희생하는 불명예를 범할 수 없다는 것이 정신문명의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물질문명은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에 치우쳐서 우주원리를 무시하고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생애를 살아간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것이 인간의 고귀한 삶을 파괴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정신문명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뿌리내린다면, 원리로 보아서 그 가치가 얼마되지 않는 국한된 육체를 위해서 인생을 희생시키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현 세계는 유물론이 극치에 달해서 유심론이 아주 땅에 떨어졌으며,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무슨 고대 소설이나 듣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우주에는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물극필반의 이치가 있어서 오래지 않아 다시 정신문명으로 되돌아가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만 홀린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한정된 육체의 소중함만 알아서 무한한 정신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흐름에서 서둘러 깨어나야 한다.
사물의 이름에 대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이름이 없고, 존재하는 것에는 반드시 이름이 있다.'
이 말은 불변의 원리이다.
그러나 우주만물이 모두 그 존재의 형태에 합당한 바른 이름을 갖고 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세상의 일만가지 사물이 모두 이름을 갖고는 있지만 과연 그 이름이 그 존재에 합당한가가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우리가 우주만물을 그 각각의 형태에 맟추어 이름을 정할 때에 그 기준이 무엇인가? 크고 작음, 길고 짧음, 무겁고 가벼움 따위의 여러 가지 외형적인 기준이 있을 수도 있고, 색깔과 고리의 기준이 있는가 하면, 동식물과 광물, 생존기간의 장단, 또는 그 성질과 구성성분도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땅위에 인간이 갖고 있는 그러한 기준들이 모두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기준을 가지고 그 기준에 따라서 이름을 정한다고 해도, 그 이름은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며, 어느 것이 가장 합당한 이름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 기준이 일치할 수 있을지라도 기준 전체가 동일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이 그 형태에 적합하지 않으면 형태의 올바른 모습을 알기 어렵고, 또 이름에 형태가 걸맞지 않으면 그 이름은 바른 이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 정도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우주에서 형태에 합당한 올바른 이름, 또 이름에 합당한 올바른 형태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이것이 나는 의심스럽다.
유교에서 '격물치지' 라고 하여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진정한 앎에 도달한다' 라고 말하는 것도, 어떤 사물의 이름을 정할 때 그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올바른 기준을 세울 만한 밝은 지혜의 소유자가 되어야 바른 형태, 바른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세상에 '격물치지' 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스스로 '격물치지' 할 수 없을 때는 옛성인이 이름 붙인 것을 맹종하는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것을 생각해 보자. 옛 성인이 이름 붙인 그 형태가 불변하는 것인지 변하는 것인지, 우리는 스스로 '격물치지'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 도리가 없다. 개중에는 변하는 것도 있고, 불변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낮과 밤이라는 형태를 예로 들어보자, 낮이라는 형태는 해가 떠서 지기 전까지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요, 밤이라는 형태는 그 정반대일 것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통하는 기준이다.
길다, 짧다라는 형태 역시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것보다 긴 형태, 그것보다 짧은 형태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가볍고 무거움, 약하고 강함, 멀고 가까움 등도 어떤 특정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정한 것이다. 이렇게 이름 붙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두루 통할 수 있는 것이며, 이 밖에도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 친구사이 등도 불변의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품의 선하고 악함이나, 지혜롭고 어리석음 따위는 비록 그 극단은 누구나 알기 쉽지만,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지혜로울 수도 어리석을 수도 있는 중간의 경우는 명석한 통찰력이 아니면 딱히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렵다. 다시 말해 중간 위치에 있는 인간은, 아무리 선하다고 명명된 인간일지라도 악하다고 명명된 인간보다 더 악한 경우가 있을 것이며, 악하다고 명명된 인간일지라도 선하다고 명명된 인간보다 더 선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바르게 합당한 이름을 정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굳이 도덕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법률로 따져서 판결에 승리한 사건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하다고는 볼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에 붙여진 이름이 꼭 올바르다고 누가 증명할 것인가?
우주만상이 모두 안 그런 것이 없다. '격물치지' 하는 안목으로 보면 온갖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각기 이름을 갖고 있다. 그 이름은 그것을 정한 사람의 기준에 의해 붙여진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시공간에 지배를 받은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 기준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내 나이 구십을 살고 보니 세상의 모든 이름이 그 대상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 경우가 드문 듯하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니, 그 이름을 통해서 형태를 바로 알기도 어렵다. 하나 세상사람들은 본질을 바로 알려고 노력하기보다, 옛사람들이 정해놓은 이름을 가지고 그것이 그 사물의 본질인 양 생각하기에 바쁘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존재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갖고 있는 이름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 이름의 편견을 바르게 보아야 한다. 이름을 바로잡으면 형태 또한 바로 알게 된다. 이름과 사물의 본질을 서로 부합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사물의 본질과 사물의 이름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있으나, 무엇보다 먼저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그 꿰뚫음에 따라서 바른 이름을 정하고 나서 일에 착수하라.
나의 잘못을 용서하지 말라.
인생을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와 실수를 범하는 일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의 잘못은 잘 지적하고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용서하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
언제나 자신의 행위를 제3자가 되어 비판하라. 옳은가, 그른가 깊이 생각해보고 일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른 줄 알면서도 남이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자신의 죄를 더 크게 하는 일이다.
옛사람의 말씀에 '자신을 나무라면 밝아지고, 자신을 용서하면 어두워진다' 라고 하였다. 남을 나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나무라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면 점점 사람의 행실이 올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금방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안다. 다만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이 강해서 늘 그릇된 행위를 범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으나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이를 잊지 말라.
어떤 경우에서나 나의 잘못을 용서하지 말라.
옛어른은 하루에 세 번 반성하라 하였으나,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크게 반성할 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용서하려는 생각이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서 구하라'는 의미다. 물론 스승이나 벗의 도움을 받지 말고 혼자서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체는 '나 자신'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범하는 잘못은 보통으로 생각하고, 남의 잘못은 특별하게 생각하면서 지적하고 나무란다. 이러한 사람은 진리를 구할 때에도 '나'에게서 구하지 않고 남에게서 구한다.
나의 잘못을 용서하지 말라.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을 때에는 먼저 자신의 잘못에 비추어 보라.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스스로 용서하는 부류 속에 나 또한 포함되어 있는 지라, 나 스스로를 책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이 가을비에 생각한다.
여름의 무더위가 길어 농사에 손해가 적지 않았는데, 그 이후엔 가뭄이 계속되어 파종한 채소가 잘 나지 않는다고 걱정들을 하였다. 그러더니 팔월이 지나선 하루도 비가 안 오는 날이 없었다. 더불어 바람까지 세어 곳곳에 피해가 적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도 늦더위를 피해 밤이면 냇가의 반석 위에서 노숙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비가 오면서 날씨가 추어지자 따뜻한 방을 찾기에 바쁘다.
우리를 괴롭히던 늦더위도 하룻밤의 비바람으로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청량한 기운이 더욱 가까이 찾아든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말하던 '청량한 기운이 들판에 찾아드니 등불을 가까이하여 책을 벗하라'가 아니고 무엇일까?
오늘은 가을비가 창문을 적신다.
창밖의 나무들도 가을비에 마냥 젖는다.
어제오늘 계속되는 가을비와 가을바람에 온 세상을 덮었던 더위의 위엄이 어느 곳으로인지 알지도 못하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것이 하늘이며, 이것이 선이며, 이것이 또 인생이다.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순서를 잃지 않고 오는 것인데, 사람들은 봄이면 그 봄이 영원히 계속될 줄로 생각하고, 여름이면 역시 내내 여름이 될 줄 안다. 춘하추동 어느 것이든 다 그 극에 달하면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무엇이 다르리요.
가을비의 청량함에 더위가 흔적 없이 사라짐을 보면서 세상사도 오래지 않아 늦더위가 이러한 청량함으로 변하리라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예순 다섯에 쓴 시
넓디넓은 하늘과 땅 사이에는
문도 없고 담장도 없으니
오고감에 형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중에
옛부터 성인, 진인, 신인, 철인들이 횡설수설하며 경전을 지었구나
넓은 바닷물 위에 좁쌀알같은 인생 백년을
하늘과 땅에 부끄럼없이 산다는 것 또한 어려우니
세월은 번개처럼 순식간이나
삶의 자취는 길이 남아 있구나
일생을 크게 평하면 공을 쌓음과 죄를 지음일진대
그것은 오로지 선과 악의 두 글자로 나뉘어진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태어난 자에게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한 가지 이치가 있으니
마음을 집중하여 바르고 크게 나아가면 늘 만족을 얻을 것이요
사사로운 욕심으로 잘못을 들어가면 늘 만족을 얻지 못하리라
있음과 없음의 우주 역사 속에서
저마다 나름대로 생의 문장을 수놓는다
가소롭구나, 풀잎에 달린 이슬같은 인생이여
어느덧 예순 다섯의 나이를 맞이하니
앞으로 길면 삼십 년, 짧으면 이십 년밖에 남아 있지 않구나
결국 눈빛이 땅에 떨어짐을 어찌 면할 수 있으랴
물이 흘러가고 구름이 걷히니
본래면목이 드러나는데
애써 무엇을 이루려 함이 무슨 이로움이 있으랴
여기 맑은 향 한 대 사루고 차 한 잔을 마신 후
고요히 앉아 밝은 가운데 바라보니
푸른 산 흰 구름은 절로 한가롭고
밤낮을 흐르는 물만 공연히 분주하구나
이제 늙은이가 되어 마음을 평온히 하고
기운을 풀고 앉았으니
하늘과 땅이 태평하여 큰 바다와 같도다.
단기 4298년(서기 1965)년 5월
불행도 내게 있고 다행도 내게 있다
행복이나 불행을 초월하여 일을 한 사람에게는 품삯이 나오고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삯이 나오지 않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다. 원리를 벗어나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비상사태가 있을 수도 있으나 이것은 예외로 하고, 우리는 일을 하여 품삯을 받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하며 일을 안하여 품삯을 못 받는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다' 라고 한다. 그렇다면 불행도 내게 있는 것이고 다행도 내게 있는 것이 아닌가. 청소년 시절에 학업에 전념한 사람이 장년, 노년 시대에는 자연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되고, 반대로 청년기에 유랑하던 사람은 장년, 노년 시대에 낙오되어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또 학식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 근검 절약하여 저축한 사람이 늙어서 경제적으로 풍요한 위치를 가지게 되는 것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말하자면 실적이 있는 사람은 지위와 행복을 얻게 되고, 실적이 없는 사람은 불행만을 받을 뿐이다. 실적이 크면 클수록 답안도 크고 작으면 작을수록 답안도 작은 법이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내게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불가항력으로 이 예를 벗어난 것을 원리로 알아서는 안된다.
신은 공정하기 때문에 일을 한 사람에게는 삯을 주시고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삯을 안 주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이 원리를 생각해보고 각자에게 가장 알맞는 직장을 택하여 역량대로 일을 하면 신이 거짓함이 없고 또 한시도 지체함이 없이 곧 심판을 내리시고 보수를 주시리라는 것이다. 비록 불행한 입장에 있을지라도 누구를 원망하지 말아야하며 또 누구에게 기대어서도 안된다. 스스로의 힘을 양성하여 심판은 신에게서 받아야한다.
행과 불행은 자신의 실적대로 되는 것이다.
자기를 비판하면 밝아지고 용서하면 어두워진다
누구든지 남의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나 자신의 잘잘못을 공정하게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일이 지난 뒤에는 혹 자기비판을 해서 이 일은 잘못되고 저 일은 잘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무슨 일을 해 나가면서 하는 일의 장래 시비를 미리 예측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다.
자기가 자기의 일을 하며 남이 일하는 것을 비판하듯 공정한 양심적 비판을 가해 보는 사람이 몇 사람인지 각자가 생각하라는 것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취급하면 타인이건 자기이건 옳은 것은 옳은 것이요,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용서 없이 확실한 평가를 내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못하고 남을 비판하기는 가장 분명하게 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데는 아주 우물쭈물한 채 어둡기만 한 것이 세상 사람에게 보통 있는 경우이다.
이것이 자신을 비판하면 밝아지고 자신을 용서하면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는 아무래도 용서해가며 추진하는 관계로 일해 나가는 데 오산이 많고 실수가 많아서 성공을 못하는 것이다.
그릇된 생각만 없다면 누구든지 개과천선하고 성공의 길을 밟기 용이하리라고 본다.
뜻을 세움이 높지 않으면
인생 백년을 온갖 걱정과 생각들 속에서 세상 풍파를 겪으며 살아가다 죽으면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성현군자, 영웅호걸, 문장 명필 등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는 사람도 많고, 반면에 나쁜 냄새를 후세에 남기는 사람들 또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세계 인류 가운데 죽은 후에 그 이름이 그 나라 역사책이나 인간의 야사, 또는 세계역사 위에 영구히 전해지는 인물은 어느 나라든지 십만 명에 한명 정도가 될까말까한 것이다. 해와 달과 함께 빛나고, 하늘과 땅과 같이 오래가는 이름을 전하는 사람은 동서고금에 우주의 역사가 있은 이후 몇 사람이 안 되지 않는가. 조용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이 그리 바쁠 필요가 있어서 항상 온갖 풍파를 무릅쓰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걱정과 근심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서글픈 나머지 웃음만 나오게 된다.
각자가 자기의 생전에 최고 기록을 돌파해 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죽기 전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비록 목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죄될 것은 없다고 본다. 그러니 항상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깊이 생각해가며 무슨 일이나 탈선함 없이 꾸준히 해 나간다면, 큰 성공까지는 장담하기 어려우나 일생을 죄없이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가 과오가 없을 것인가? 다만 그것을 고쳐 착하게 하는 것이다' 라는 옛말도 있으니 일생을 통해서 하나하나의 언동에 과오가 없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답안에서 남보다 과오가 적은 사람이라는 평을 들으라는 것이다.
쉬지 않고 노력을 하라고 하면서 어찌 여유있게 충분히 생각하여 일에 착수하라는 것인지 혼동이 될지 모르나, 너무 바빠서 생각을 덜하고 선악의 구별도 못한 채 일을 벌이기 쉽기 때문에 일을 당하거든 너무 분망해 하지 말고 항상 여유있는 마음으로 정신을 거둬들여서 충분한 생각을 해야된다는 것이다. 선악의 가림도 없이 백가지 일을 바쁘게 하는 것보다 한 가지 일이라도 충분히 생각해서 선하고 성곡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비록 초목과 더불어 썩어 갈지언정 그래도 마음만은, 마음뿐 아니라 하는 일까지도 우주사의 누구라 하는 이름있는 사람들이 하던 일을 해보는 것이 일생을 보내는 재미요 취미라는 말이다. 뜻을 세움이 높지 않으면 그 배움이 모두 낮은 데로 돌아간다는 옛 성인의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자기 실력을 아주 생각하지 않고 망령되어 자신을 높여서 허영심만 가지고 실력이 없는 공염불같은 목표만 정해서는 안 될 것이요, 자신이 감내할 만한 일을 택해서 목적을 삼아 평생 해 나가면 살아서 성공이 가능하다고 본다. 나도 백발이 성성한 노경이나 소년시절에 뜻을 세운 것을 조금도 변함없이 추구하고 있는 중이요, 다만 내 추진력이 약하여 시작한 지점에서 오늘까지 나온 지점의 거리가 얼마 되지 못한 것이 최대 결점이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아주 탈선하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여기면서 내 눈빛이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 얼마나 진보될 것인가를 기대해 본다.
소아와 대아의 한계
세상사람들은 걸핏하면 소아니 대아니 하는 말들을 잘한다. 그러나 나는 이 한계를 잘 알 수가 없다. 소아나 대아나 공통된 점이 많은 것 같고 그 차이점이 얼른 눈에 안 띄는 것이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소아요, 어디까지가 대아인가 하는 의문이 없지 않다. 사람으로 테어나서 소아도 될 수 있고, 대아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닭이 울면 일어나서 늘 선을 행하는 자는 순임금의 무리이고, 닭이 울면 일어나서 항상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는 도척의 무리다' 라고 소아와 대아를 구분했는데 이는 자기 양심에 비추어 판단할 일이요, 밖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는 알 수 없다. 무심으로 악을 행하면 비록 악행이라도 벌하지 않고, 무심으로 선을 행하면 비록 선행이나 상을 주지 않는다고 평한 곳도 있는데 이것은 자기 내면의 양심상의 비판이요, 현실적으로는 밖으로 드러나게 선을 행해야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행위를 드러내야 악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 가운데 소아가 있고 악한 사람 가운데도 대아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선인이나 악인이라는 것은 세상사람들의 안목에 의한 일시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주공의 유언과 왕망의 근신을 세상 사람이 현세에서 관측하면 그 한계를 잘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대성인과 대악인의 엄청난 차이로도 일시적으로는 그가 소아인지 대아인지를 구분하기 곤란하거든 하물며 세인들이 소아니 대아니 평하는 것을 가지고 어디까지 진실에 부합되는지를 알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자기 자신도 목적을 확립한 사람이 아니면 주위환경으로 인해 혹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으니 그 소아성과 대아성을 어느 여가에 평할 것인가.
예를 들어 만리 길을 두 사람이 같이 가는데 한 사람은 소아를 위해서 목적지에 가고, 다른 한 사람은 같은 목적지를 가되 대아를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만 리 동행 중에야 그 동행인의 목적이 다른 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목적지에 가서도 두 사람의 실행한 일이 완전히 성공한 뒤에야 갑은 대아를 위해서 간 사람이고 을은 소아를 위해서 간 사람인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목적지까지 갔더라도 성공을 못하면 누가 그의 실행했던 일이 소아를 위한 것인지 대아를 위한 것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길을 가는 도중에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아무런 흔적도 없을 것이니 이런 구분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옛사람들은 평생의 큰 계획을 가슴속에 품고도 밖으로는 성공을 못하게 될 경우에 대비하여, 문장명필이나, 형정지학이니, 의약복서니, 은둔이니 하며 목적지에 가기 전에라도 부수적으로 이런 것으로라도 자기를 대표할 유업을 남기려고 고심하였던 것 같다. 군자라고 대아만 되라는 것도 아니요, 호걸이라고 소아만 되라는 것도 아니다. 자기의 습성이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같은 이 세상 백년을 지낼진대 소아도 될 수 있고, 대아도 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으므로 될 수 있으면 대아를 목표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대아와 소아의 한계가 아주 분명해서 보통사람은 절대로 대아라는 선을 넘지 못한다 해도 무슨 짓을 해서든지 넘어 보고자 할 것인데, 그 한계가 아주 모호하므로 마음만 먹으면 바로 먹고 실행만 올바르게 한다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왜 소아에서 방황하며 대아를 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소아와 대아의 한계는 일을 행하기 전에는 타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점으로 보면 대아인 소아도 있고 소아인 대아도 있다. 여기서 구분이 곤란하다는 말이다. 말로는 쉽게 구분을 하나 그 한계는 알기가 곤란해서 소아도 될 수 있고 대아도 될 수 있는 관계로, 될 수 있으면 그 한계를 초월하여 대아로 가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화를 받는다
어떠한 일이든지 일한 사람이 상이나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일하지 않은 사람이 남의 상이나 벌을 받는다면 이것은 공평치 못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상에서는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법률도 이 불공평함을 범하곤 한다. 어떠한 특수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이 조직화된 불법행동에 이용되기도 한다.
현 사회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증거 문제로 아무 죄없는 말단에서 처벌을 받는 사례가 많은 것은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그러나 이 처벌받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처벌받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한 편 여러사람이 처벌되는 문제를 내고도 이익을 혼자 차지하고 편안히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죄악이 누적되어, 법에서는 용서할지라도 하늘의 벌이나 신의 벌을 받게되고 그 다음 사람의 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증명할 뿐이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선한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하고 악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 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시기의 이르고 늦음은 있으나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재앙을 받는 것은 조물주의 대공식이다. 그저 양심에 비추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내려다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면 세상 사람들의 일시적 재앙이나 복을 받음에 상관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변화해 가는 세상사의 흐름에 같이 흐리지 말고 변함없는 공정한 마음으로 하늘의 원칙대로 대아를 위해 걸어나가, 자기가 자기 자신을 비판해 보았을 때 사람으로서의 할 일은 다 했다고 한다면 만점이다. 일마다 모두 잘못했다 하더라도 대공식으로 계산해보면 정확한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답으로 만족하지 말고 한 걸음 전진해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이나 또는 이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영원히 잊지 못할 선과를 심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현군자들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선을 권하심이며 또한 각 종교에서 복선화음론(착한 사람에게 복이 오고 악한 사람에게 재앙이 온다)을 제창함이라고 본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사람들이 일시적 현상을 보고 그것을 그 사람의 최종답안으로 잘못 아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서이고, 또다른 이유는 나 자신도 비판해서 쉬지 않는 노력과 성의로 처음의 뜻을 이루려는 자경의 심정에서이다.
우주의 대공전은 휴식함이 없고 우리의 심신도 이 공전을 따라서 구르고 구른다. 일음일양의 도는 변함이 없고, 우리는 그 가운데 생로병사의 궤도를 걷는다. 이 우주는 멸함이 없고 우리의 인류도 그와 같을 것이다.
일흔 살에 생각한 내 인생의 잘못
지난 일에서 기억이 새로운 것은 인생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좋은 기회를 만나고도 놓쳐 버린 일이다.
첫째, 아주 어렸을 때 무정 선생 밑에서 한문 공부를 시작했으나 그것을 계속하지 못한 일.
둘째, 여섯 살에 신식학교에 입학했으나 역시 길게 수업하지 못한 일.
셋째, 서울 정동 보통학교를 다니다가 통학 중지한 일.
넷째, 충북 영동에서 한학자 박창화선생의 지도를 일시적으로 받다가 중단한 일.
다섯째, 소학교 졸업후 다시 우등생으로 서울 고등보통학교에 선발생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일.
여섯째, 일본서 정신수련을하여 약간의 얻은 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 일.
일곱째, 충남 공주로 내려가기 전까지에 하릴없이 공백기를 가진 일과, 공주로 가서 우연히 상봉한 산주 박양래를 20년 가까이 상종하면서 그 절세의 무예를 눈으로만 보고 학습하지 않은 일. 이것은 내 자신보다도 후배들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다.
여덟째, 그러던 중에 내가 유불선 삼교와 제반 학설을 두루 공부했으나 깊이 정진하지 못한 일. 수십 년간 정신수련 행각을 하면서도 깊은 정열을 내지 못한 것이 내가 대성하지 못한 주된 원인이다.
아홉째, 만주와 몽고와 중국 등지에서 정신계의 여러 스승들을 만나고도 그들 밑에서 몇 년씩 수행하지 못한 일. 약간의 견문으로 눈만 높아지고 자만심만 커져서 늙은이가 되도록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낸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열째, 후배 양성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겨우 형식만 지도한 일은 내 책임이다. 내가 지도한 분 중에서 약간의 효과를 본 분으로는, 정상삼화까지 발현한 분이 설초 한 분이요, 그 다음 권오훈군을 비록 삼화까지는 못갔으나 간간히 드러나는 바가 초급자 이상의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그 다음이 송사이다. 이 사람은 비록 정신적 경지의 폭은 좁으나 그 혜안만은 초계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 다음이 구영직군인데, 구군은 비록 수련기간은 짧으나 그 정신적 발효는 매우 뛰어났다. 이는 전생의 흔적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이 주형식군이다. 이 사람도 단기적 수련으로 어느 경지까지 올랐었다. 역시 전생의 흔적이 있는 듯하나, 6·25때 희생되어서 유감이다. 그밖에도 여러 수련생이 있으나 계속성이 없으니 말할 수 없다. 모두 내가 전력 지도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며, 수련생들도 전심전력했다면 그 이상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가 아주 늙기 전에, 비록 바탕이 없으나 이 방면에 버리지 못할 우리 동지들을 규합해서 후배 육성에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2. 백두산족에게 고함
백두산족에게 고함
1. 백두산족은 누구인가?
백두산은 일찍이 온 겨레의 첫 조상이 되시는 단군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어 교화의 터를 잡으신 성스러운 산으로서 지나온 역사 동안 우리 민족의 삶의 주된 무대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겨레의 마음속에서 잊혀져가고 말았다.
백두산에 대한 망각은 바로 우리 민족 주체의 유무에 따라 부침해왔다. 우리 배달민족이 대륙 한복판에서 당당한 삶을 누려가고 있을 때 백두산은 강성한 겨레의 성산으로서 받들어졌으며 통일된 국민의식의 상징으로서 자리했으나, 국력이 쇠하여 반도 이남에서 주된 삶을 이끌어가던 시대에는 이름마저 남이 부르는 장백산으로 둔갑하는 지경으로, 지도상에 백두산이 어디에 백두산이 어디에 표시되든 무관한 우리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삼천리 반도 내에서, 그것도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려버린 지 반세기가 되어 가는 지금 우리들에게 백두산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러한 물음이 내포한 분단된 삶의 허탈감이 있기에 백두산은 더욱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찢기워진 삶의 봉합을 위해,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위해 백두산은 오늘도 남과 북의, 만주의, 시베리아의, 중앙아시아의, 미국의, 일본의, 세계의 모든 단군의 자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백두산의 회복은 잃어버린 우리 민족주체의 회복이요, 민족사와 문화의 회복이며 통일된 민족국가로의 회복이기도 하다.
백두산족이라고 이름하였을 때 이것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여 이룩되어진 고대 문화권의 창시자이자 담당자였던 우리 겨레, 즉 단군의 자손으로서 일관된 역사와 문화를 계승해가며 살아가는 우리 한민족을 나타낸다 하겠다.
우리 백두산 겨레가 나아가는 길은 단순히 고대의 찬란했던 문화를 되새기자는 복고적 감상에서 발단하는 것이 아니며,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첨단과학 기술문명시대의 온갖 문제와 모순들을 안으로 풀어 나가며, 아울러 민족의 대립과 분열을 화합과 통일로서 해결해 나가는 겨레의 활로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백두산은 우리 모두가 나아갈 정신적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영산으로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2. 황백전환기와 정신문명의 도래
황백전환기라 함은 바로 백산대운이 열릴 시기를 말한다. 백인들이 주축이 되어온 서구문명의 선구적 역할은 이제 한 세대 안에 끝나고, 황인종-특히 한국, 인도,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적 문명권이 열리고 있다. 이것은 얼핏 지극히 인종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힌 편견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20세기 과학물질문명의 핵심은 사실 백인을
다수인종으로 하는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 주도한 것이었고 앞으로 21세기 과학기술문명의 핵은 거의 피부가 누런 사람들 속에서 창출되어질 것임을 암시한 것에 불과하다.
확실한 것은 전환의 시대는 오고 있으며 그 조짐은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천문에, 역학에, 추수에, 원상에 드러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이 황백전환기가 바로 정신문명이 도래하는 백산대운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백산대운이라 함은 곧 백두산족의 큰 운명을 이르는 말로서 삼천 년만에 찾아온 역사적 순환인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새 문명의 전환은 세계적인 대성현이 출현하시되, 그 성인의 도력으로가 아니라, 인간적인 기술개발이라든지, 살상 파괴적 병기를 억제할 수 있는 평화적 무기의 발명 등, 새로운 물질문명의 건설로서 나아가 진정한 평화세계를 이룩함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정신문명의 발조에 관한 옛 성인들의 표현을 들자면, 우리의 성조 단군께서 4286년에 보통 사람으로 오신다는 것과, 대순이 4243년에 보통 사람으로 오신다는 것과, 석가모니불이 삼천 년 후에 용화세계가 된다는 것과, 문왕의 선후천 변괘론이 있고, 예수의 이천 년 후 부활론이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이시기에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대립이 없어지고 조화되어 지상천국이니, 극락세계이니, 장춘세계이니, 태평건곤이니의 창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평화세계 건설은, 우리 백두산족이 먼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 이념을 기반으로 삼는 대동책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갈 때 가능하다.
이러한 이상은 결코 허황한 몽상가의 허튼 소리가 아니라, 지나간 인류역사의 어두운 질곡에 대한 물극필반의 원리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3. 단학수련의 시대적 요청
단학의 기원은 백두산족의 성조이신 단군의 가르침에서 비롯한 바, 인간생명의 근원인 숨을 조절하여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더 나아가 본래 지니고 있던 정신의 밝음을 다시금 밝게 되찾음을 제일 목표로 삼아 그 명명함을 바탕으로 자기 주위의 세상을 이롭게 함에 힘쓰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하고 있다.
단학은 큰 길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걸을 수 있어서, 적은 것을 원하는 이에겐 적은 만큼, 큰 것을 얻기 위해 힘쓰는 이에게는 그만큼 큰 것을 제공한다. 실로 고대로부터 우리 겨레의 면면한 숨결이 고동치고 있는 고유한 정신수양 체계로서, 삼국시대의 화랑도 사상이나 국선, 조의선인제도 등은 같은 맥락이다.
또한 이 체계 안에는 지, 덕, 체의 세 가지 면을 아울러 닦을 수 있는 조상 전래의 지력개발법, 체력양성법, 덕성함양법 등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어서 누구나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능력에 맞게 선택하여 정성껏 행하기만 한다면 고유한 민족문화의 탁월한 하나의 계승자로서 사회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단학의 본질이 결코 현실 도피적이거나 은둔 지향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내온 역사를 보면 주체적인 민족고유사상이 외래문화 도입에 따른 사대주의의 만연으로 탄압을 받은 적이 매우 많아서 그때마다 역사의 주류로 나서지 못하고 그 밑으로 숨어 지내며 명맥만을 간신히 유지함에 바빴던 것으로 안다. 이제 역사적인 민족의 통일대업이 금세기 안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우리 백두산족의 민족 자주정신의 완벽한 회복을 위해서, 또한 홍익인간 이념의 현세적 실현을 이룩할 정신문명의 도래를 위해서,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민족정신의 단결을 튼튼히 해줄 단학 수련의 문호를 활짝 열면서 우리 모두 통일이라는 대동의 배를 저어 나갈 것을 천지신명에게 고하는 바이다.
대황조 봉안에 대한 사견
대황조는 우리 겨레의 가장 높은 첫 조상이 되는 분으로서 '큰 할배'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오족은 누구나 다같이 대황조를 숭배하는 것이 당연하다. 고대에는 집집마다 단군을 모시고, 시월 상달 초사흘이 개천절인 관계로, 어느 집을 막론하고 터주(이 땅의 주인이라는 의미)에 고사지내지 않는 집이 없었다. 이 풍속이 오천 년에 가까운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것을 보면 그 당시를 추측할 수 있다. 중간에 나라에서 별별 방식으로 다 방해하였지만 우리 민족의 조상을 위하는 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삼국통일시대부터 조선 말엽까지는 국가나 지배층에서 대황조를 모시는 경우는 없었고 오직 민간에서만 숭배하는 유풍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은 신라 말엽부터 당나라를 모방하려는 바람이 불어서 자기 나라의 전래하는 역사가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군님이 우리의 대황조이시며, 또 우리나라 최초의 임금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단군시대의 연대가 중국 요순시대와 같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역사적 결함이다. 우리가 본 바로는 현재 단군기원보다 304년을 더한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올바른 단군기원이라고 확언해 둔다. 지금으로부터 사천 오백팔십구년 전에 이 동방에서 대황조께서 탄생하셔서 우리 인류를 처음으로 만물의 영장답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고, 처음으로 국가를 이루어 임금이 되셔서 가르침을 받은 무리 중에서 무수한 인물들을 책봉하시고 사방으로 파견하셔서 각 민족을 가르치도록 하셨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말하는 복희, 신농, 황제로 대칭된 우리 단군 역대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요가 처음으로 한족을 통치한 제왕이라고 확언해 둔다. 공자가 춘추시대에 나셨으나 당시 여러가지 전설을 모두 말살하실 수 없기에 오로지 중국 역대의 왕들의 치국평천하 하던 일을 말씀하시거나 기록하실 때 "중국의 문화는 요순시대에 시작되었다." 라고 하신 것을 볼지라도 오제가 모두 중국의 천하를 다스린 제왕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된다. 주역에는 복희씨가 처음으로 팔괘를 그린 일을 말씀하시고, "북동쪽의 도가 밝으므로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라고 하시며, 또한 "임금은 동쪽에서 나온다" 라고 명시하셨다.
주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것이 과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원리는 뚜렷한 역사적 사실과 부합된 것이다. 공자도 우리 배달족이므로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바다 건너 동쪽으로 가고 싶다" 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임금의 치수사업에 주신의 공력을 잊을 수 없다" 라고 하였는데 그 주신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은 우리들을 '신' 이니 '진' 이니 한다. 그 후에 이름이 변하여 숙신이니 여진이니 선비니 하는 것은 모두 소리를 따서 지어낸 것이요, 모두 우리 민족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한족에게 우리가 패해서 밀려나기는 주무왕시대부터이다. 그래서 한족은 광대한 토지를 차지하여서 점점 더 늘어나고 우리 족속은 여러갈래로 나뉘어져서 극히 쇠약해졌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자주적으로 지냈으나, 삼국통일이 있은 후부터 우리 역사는 점점 없어지기 시작하여 벌써 천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니 우리 대황조의 역사를 다시 볼 도리가 없게 되었다. 현재 이야기되고 있는 단군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 현상을 증명할 어떠한 근거도 문자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중국에 가서 보면 단군의 역사가 종종 단편적인 글이나 야사에 나타나 있고, 도관이나 선서에서는 더 많이 볼 수 있다. 기자의 홍범이라는 것이 단군님에게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근본 취지인 듯하고, 요순의 전수심법 역시 우리 대황조의 전수심법인가 한다.
천여 년 중단된 역사의 고고학적인 증거를 나는 지금 구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생긴 가장 큰 폐단은 우리의 대황조 숭배심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절과 관이 병행하나 우리나라에서는 관이라는 이름이 없다. 우리나라의 절에서 숭배하는 현상을 보면 부처와 제석전과 산신각과 칠성각과 독성각을 함께 숭배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는 중국의 사원에서 제석천을 동일하게 숭배하는 일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는 우리나라에 한한 일이다. 이 제석전이 바로 단군전이라고 본다. 시골에서도 시월 상달에 터주의 제석단지에 고사지내는 일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불전을 숭배할 장소가 없어 제석전에다 같이 모셨던 것인데, 불교는 융성하고 단군의 전래 역사는 국책상으로 소멸되던 때라 불전이 주인이 되고 주인이던 제석전이 나그네의 위치로 밀려나간 것이다.
신라 말기까지도 화랑도의 국선과 같은 풍속이 남아 있었으나 고려와 조선조에 와서는 단군 숭배사상이 아주 없어져서 국가에서는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동몽선습과 동국통감에 겨우 "신인이 태백산(백두산) 박달나무 아래 내려오사" 라고 씌어 있을 정도요, 상세한 표현은 없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조선시대 말엽에 와서 비로소 대종교의 나철선생이 총책임자가 되어 천여년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을 밝히는 성스러운 일을 시작했으나 역시 미진한 것은 수년 후 나라가 망하고 일제가 이를 허용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뜻 있는 분들은 만주로 가서 민족운동을 하였고, 대종교도 쉼없는 노력을 하였다. 을유 8.15해방에 선배 여러분이 입국한 후로 민족적 대선전을 하여 국가에서 계몽정신을 가져야 함이 당연한데 소위 주권자라는 사람들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민족의 근원이신 대황조를 숭배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숭배하는 대상을 국민 전체가 숭배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이 어떻게 대황조를 숭배함으로써 민족정신을 단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인가? 그러나 민간인으로 자기의 주된 목적이야 무엇이건 간에 항상 대황조를 모시고 민족통일사상을 고취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크게 감사한 일이다. 대황조께서 나라를 처음 여신 시조라고 하는 것으로도 누구나 모셔야 할 것이며, 그뿐 아니라 우리 인류사에 비할 바가 없는 대성이시고 우리 배달족에게 오족을 통한 조상이시니 누구라도 모시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비록 먼 조상일지라도 모두에게 다 같은 조상이니 누구 숭배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비록 다 같은 자손이나 이 대황조를 모시었거든 욕되지 않게 하기를 빌 뿐이다. 그리고 장래에는 국가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대황조를 숭배하는 마음없이 모두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치 주권자들이란 근본이 없는 나무와 같다고 확언해 둔다. 입으로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린다는 말과 대황조 이념 운운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하는 일을 보면 대황조 앞에 죄인 아닌 사람이 별로 없다. 앞으로 대황조의 홍익인간 이념이 여실히 드러나기를 빌며 이만 줄인다.
단기 4285(서기1952)년 9월 28일
만세 대장부의 출현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이 세계현상으로 보아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인류가 거의 동일한 문제에 의문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의, 식, 주에 관한 문제는 전인류의 공통된 문제이니 이는 제외하고, 그밖에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와의 자웅을 겨루는 결정이 언제 나는지에 관한 것이고, 또한 이 양자간의 충돌이 전 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양자간의 충돌이 없이, 무슨 좋은 제안으로 전쟁없는 평화세계가 창조되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약소국가와 민족들의 공통된 염원이다. 전세계가 좌, 우, 중간의 3파로 갈려 있고 그밖에도 좌나 우, 중간도 아닌 순회색파도 있다. 국가들의 원수나 지배급 인물들이 이 3파로 나뉘어 있을지라도 인류전체는 그들의 지도자들의 의사와는 거의 백팔십도 반대로 전쟁없는 평화를 제일 공통된 희망으로 여긴다. 하지만 전인류의 의사를 무시한 소수 지도인물들의 장난으로 세계는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다. 어느 나라든 극소수 수뇌들에게 희생이 되어 순진한 양노릇하는 백성이 불쌍하다. 그 극소수의 인물들은 전국민을 제물로 놓고 자신들 마음데로 요리하고 최저보수로 의식주를 해결토록 착취하며 자신들은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 세계인류의 공통된 목자로서 모든 사람이 희망하고 있는 이상을 실현시킬 만한 역량이 있는 인물이 나온다면 전인류가 쌍수로 환영할 것이요, 이 사람이야말로 우주사에 최대영광을 차지할 인물이 될 것이거늘 이 좋은 시대에 어느 곳에서 그 위대한 사업이 세워질 것인지 궁금하다. 역학으로 보면 간도광명이라 하여 우주사가 전개된 이후 인류의 문명이 이 간방에서 시작하였고 다시 광명이 간방에서 온다고 하였다. 이것이 중명(거듭 빛남)이라는 것이다. 백두산족에게서 세계인류의 평화를 건설할 인물이 나오리라는 옛 성인들의 예시인데 누가 이 운에 맞는 인물인가, 하루라도 속히 출현하라, 전세계인류는 고대한 지 오래다.
"때로다, 때에 이르렀도다. 다시 오지 않을 때로다. 만세의 대장부로서 오만년이나 갈 때로다" 한 최수운도 이것을 말한 것임에 다름아니다. 수운의 세대보다는 현재가 누가 보든지 바로 그 때임에 틀림이 없다.
이 때를 버리고서 과연 어느 때를 기다릴 것인가. 주저말고 속히 오라. 이때를 잃지 않을 장부로다.
양쪽 불이 싹을 움직여서
누런 학 울음소리 가운데 싹은 트고,
현무가 물 속에서 잘 길러져서
푸른 호랑이 한 번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들 크게 놀라거든
금닭이 한 번 우는 소리에
붉은 바람이 불어오고
지난 정묘년부터 시기가 도래하여
문밖에 복숭아와 오얏이 만발하는구나.
이것이 오만 년 무극대도의
서른 여섯 성스러운 무리임이 분명하다
북쪽으로 만 리 얼음바다에 이르고,
서쪽으로 금사람이 곤륜산을
대함은 한국과 중국이 한집안으로서
천하를 호령하며 황백을 바꿈이라.
이와 같이 다시 이와 같이하여
홍익인간이념을 펼치는 것이
바로 요임금이 세상에 나오시는 것이요, 큰 성인 순임금이 다시 출현하심이라.
단기4285(서기1925)년 9월28일
제천을 하고 돌아오며
해마다 정월 초이틀이 우리 동리 산제일이다. 1년간의 동네사람의 안정과 태평을 위하여 이 날만은 동민 전체가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해마다의 행사이다. 누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각자를 위해서 산촌에서 산제를 지내는 것이다. 비록 합심하지 못하는 동네사람들이나 삶의 목표는 동일한 관계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같은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된다.
일 년에 두 차례인 산제 제삿날만이라도 정신이 일치된다는 것은 그것을 미루어서 다른 일에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좋은 증거이기도 하다. 온 동네가 산제 준비로 정성을 다하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나는 매년 이 날에 가족을 데리고 제천을 해왔다. 산에 제사 드리나 하늘에 제사 드리나 모두 동일한 의미이다. 다만 목표가 조금 다르다는 것뿐이다. 동네사람의 산에 제사지냄은 각자 일신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이며 이것으로 한 동네 전체의 무사태평을 도모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도 역시 의미만은 같다고 생각된다. 심축(마음으로 비는 것)으로 우주의 과거, 미래, 현재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현들과 선각자들에게 우주만상이 순리대로 잘 길러져서 태평 무사할 것을 묵묵히 도와주십사고 가장 먼저 빌고, 그 다음 대황조님의 홍익인간 이념이 하루라도 빨리 실현되시기를, 그 다음은 현 배달민족의 근본적인 단합으로 우주가 다시 광명해지는 씨앗이 속히 싹으로 움터 나오게 하시기를, 그 다음은 이 세상이 함께 살고 있는 백산운화의 일꾼들의 규합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빌고, 이것을 위하여 이 몸의 건강도 같이 빌고 돌아왔다.
근본적으로 보면, 산에 치성을 드리는 동네사람들의 의사나 하늘에 제사지내는 나의 뜻이나 모두 같은 안정과 평화를 마음으로 빌어마지 않는 것이다. 한 자 이상 쌓인 눈을 헤쳐가며, 좌우상하로 온갖 하늘의 성현과 선각자들이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심경으로 제천을 끝마치고 십 리 얼음길을 돌아오다 동네사람들의 산제사 불빛을 바라보고, 홀로 앉아 묵묵히 생각하여 이 기록을 어지러이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잠재의식인 천량(하늘로부터 받은 양심)을 그대로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심축한대로 소원성취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
우리가 유년시대부터 노년시대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거울삼아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상을 예측해 보면 어떤 일정한 동일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상을 추측해보아도 역시 동일궤도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으며 한 사람도 그 공식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출발하여 면으로 ,군으로, 도로 확대해 가면서 약 60여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사람들이 살아 나가는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통계학적으로 조사하여 동일궤도상의 공식에 적용시켜 본 결과, 이상하리만치 그 공식이 불변의 철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나라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시도해 보아도 모든 통계가 그 공식에 일치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만이 공식이 적용되고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내 한 몸의 일생에서 시작하여, 이것을 미루어서 사방으로 폭을 넓혀보고 점차적으로 우리 나라 전체에까지 확대하여 조사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서 과거의 역사를 회상해 보면, 역사적 흥망성쇠라는 것도 한 개인이 흥망성쇠 하는 공식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앞으로 올 일을 예지 하는 것인데, 나는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즉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현재와 과거를 확실히 아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행적만 잘 안다면 미래에 올 일이야 불을 보듯 환한 일이다.
조물주가 이 공식을 내놓지 않았다면 개인이나 한 국가나 흥망성쇠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 이 불변의 철칙을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고 쇠함을 면치 못할 것이요, 그 공식을 알고 즐겨 지키는 자는 흥하고 성함이 자연히 오는 것이다.
이것이 대자연의 법칙이요, 공식이다. 하늘이 무엇이며 조물주가 어디 있느냐며 이 대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는 자도 간혹 있지만, 공식과 법칙을 위반하는 이런 자들의 행위가 결국 멸망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역사는 밝혀주고 있다.
여기서 이 공식을 지키는 자의 행위를 선이라 하고 그 공식을 위반하는 자의 행위를 악이라 해보자. 그리하여 누구나 그 생각과 행위에 선한 요소가 많으면 그 결과 복이 찾아올 것이요, 악한 요소가 많으면 재앙이 오는 것이 대자연의 법칙이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자가 잘되고 선한 자는 고생만 한다고 말하나, 이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시간에 느리고 빠른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공식이 예외로 작용한 경우는 역사상 없었다.
현세계의 물질문명이 비록 첨단을 걷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모든 흐름이 점차 악화일로로 치달아 자멸의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나라도 남북통일이 언제야 이루어질 것인가, 혹시 파국이 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도 아주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쉽사리 낙관하지 못하고 있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북한이 아무리 남침준비를 하고 있다 하여도 남한에 사는 국민이 그 고난을 두 번 당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생각이다. 또한 한국도 6.25 당시와 같은 무방비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아무리 전쟁을 잘한다고 해도 승산 없는 전쟁을 일으킬 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민생의 안정이다. 즉 사회의 특권층에게 집중되어 있는 부를 분산시켜 극심한 빈부의 차를 과감하게 시정해야 한다. 이렇게만 되면 나라의 힘이 커져서 전쟁의 가능성은 없어지며,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가장 최상책의 전략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어떠한가?
그것과는 정반대로 국내 특권층이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자기네 사욕을 채울까하고 있으며, 또한 그 특권층들에게 아부하며 나라와 민족을 어찌되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패한 인간들이 이 세상으로 활보하고 다니는 형편이다.
그리하여 국민들도 '사람이 살아가는 정당한 도리' 따위는 염두에도 둘 새 없이 서로 이익을 쫓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스스로 멸망을 부르는 길을 서슴없이 택하고 있다.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이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지나 장차 날이 밝아오려는 때에 온갖 귀신들이 난무하는 현상이요, 장차 온갖 어두운 것들이 모두 사리지는 물극필반(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의 현상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현상이 비록 눈앞에서는 비참하나 머지않아 밝은 태양이 떠오를 전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미리 어둠 속의 한 가닥 밝은 빛을 길러 꿈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이 선각자들의 책임이다.
날이 모두 밝은 뒤에는 누구나 광명을 아는 것이니, 이 물극필반이라는 경지에서 자아를 잃지 말고, 탁류에 헤메이지 말며, 미래의 일꾼이 될 씨앗들을 썩지 않게 싹틔울 역할을 각자 스스로 맡아야 한다. 이것이 나의 한 가닥 희망이다.
물질문명의 극이 머지않아 정신문명과 교체할 단계에 왔다는 것을 나는 다시금 강조한다. 이 새로운 정신문명의 건설자, 곧 미래 5천년 조화세계의 주역은 바로 우리 백두산족임을 모두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옛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힘이 같으면 지혜를 헤아리고
지혜가 같으면 덕을 헤아린다.
일하는 이가 많고 쓰는 이가 적으면
그 쓰임이 넉넉할 것이요,
쓰는 이가 많고 일하는 이가 적으면
그 쓰임이 궁핍해질 것이니
만인과 더불어 같이 기꺼워하는 사람이 흥하리라.
이것이 가장 쉽고도 또 어려운 일이다. 행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다만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하면서 한편으로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도리를 핵심으로 하고 나아가야 동녘에 떠오르는 맑게 개인 아침해가 모든 사악함을 몰아내고 온누리를 비추는 상쾌함이 있을 것이다.
대운맞이 운동을 전개하자
옛사람의 시구절에 '몇 달이나 눈에 덮여 있던 마른 나무가 한 번 동풍이 불면 가지마다 꽃을 피운다' 라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인간으로 별별 어려움을 다 당하고 있더라도 시가만 도래하면 자연 매사에 순조로이 성공한다는 해석인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시기가 오더라도 본인의 상당한 준비와 노력 없이, 그저 순풍에 돛단듯이 나아가는 일은 없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비록 사서(춘하추동)에 봄이 오더라도 씨앗을 심지 않은 곳에 자연히 수확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대자연의 청산녹수에 번식되는 동식물을 예외로 하고 인생살이라는 것은 뿌린 자가 거두는 것이 바른 법칙이다. 그러니 앞으로 아무리 길운이 도래한다 해도 그 길운을 맞이하자면 그만한 노력을 축적해야 비로소 그 길운에 참여할 수 있고, 그 노력의 대가에 비례하여 보수도 얻는다고 본다. 아무 준비도 없이 그저 길운을 받고자 하는 것은 농사짓지 않고 추수하려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 백두산족의 대운이 머지않아 도래한다해도 이 대운을 맞고자 준비와 노력을 구비한 사람이 제일 먼저 그 운의 소식을 받을 것이요, 준비와 노력이 없는 사람은 제일 뒤에 참례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일한 백두산족이라도 우리가 어느 족속보다도 먼저 대운맞이 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천도나 인도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은 옛 성인들이 전해주시고, 후세 사람들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현세 사회상을 보면 별별 각색이라 얼른 판단이 서지 않는다. 윤리도덕과는 아무 상관없이, 선악을 가리지 않고 자기 목표만 바라고 전력을 다해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적당히 윤리도덕에 관심이 조금 있는 사람들도 몸조심해가며 이 사회에서 출세해 보려고 애쓰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전부라고는 못하겠으나 거의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통론적으로 윤리는 도외시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천도와 인도는 예외이다. 지난 해 날이 몹시 추웠던 때는 그 다음 해 여름이 더 덥고, 풍우상설이 다 그 예를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사회에 있어서도 비록 그 빼고 더하는 운산이 시기의 빠르고 느림의 차이는 있으나 예외는 없다. 한 나라나 한 개인이나 모두 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삼천년 퇴운의 시기가 만기되고 길운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전 국가 전 국민의 이를 받아들일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 그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왕 오는 길운을(우리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요, 아시아 전체에 올 운이다) 국가 국민 전체가 노력해서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먼저 알려진 책임이며 도리이다. 그 운이 온다고만 말하고 아무 준비를 못하고 있으면 국민의 소득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요, 그 책임은 선지자로서 대중을 각성시키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다 할 것이다. 알지 못하여 말못한 사람은 신에게 용서를 받아도, 알면서 행하지 않은 사람은 신의 질책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삼천년만의 대운이 눈앞에 왔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시아 민족들이여, 백두산족들이여! 깨어서 운맞을 준비를 하시오!'
바다가 깊으나 바닥이 있고
바다가 깊으나 그 바닥이 있고, 산이 높으나 그 꼭대기가 있음이 자연의 이치라 하나 이 천지자연의 과대함은 얼핏 어디에 비하여 말하기 어렵다. 또한 이 우주의 아득한 과거와 무궁한 장래도 그리 쉽게 이야기할 바가 아니다. 이 우주의 상하로 위가 생기고 좌우로 경이 나와서 이 날과 씨가 과거 현재 미래를 이루어가고 있다.
우리도 이 이루어짐 가운데의 한 물건이다. 세월의 풍상 속에서 늘 시비를 가리며 살아가는 한 물건이다. 세월의 풍상 속에서 늘 시비를 가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깊은 밤 고요히 앉아서 묵묵히 생각해 볼 때면 그저 감개가 무량할 뿐이다. 이 우주 속의 내 존재야말로 드넓은 바다 속에 떠있는 좁쌀 한 알이라는 옛말이 절실하게 공감된다. 그렇다고 비바람 부는 대로 세월을 허송할 수는 없다. 이왕 이 몸이 무궁한 우주를 장식하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옛 성인의 말씀에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또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면 누구나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초목과 더불어 썩어 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어찌 초목이나 짐승과 동일한 행동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초목이나 짐승보다 우월한가? 이 만물 중에서 영장이 되는 것은 오직 오륜(다섯 가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도리)이 있는 것이라고 동양의 문화는 가르치고 있다.
이 오륜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초목금수와 조금도 다름이 없으니 사람으로는 누구나 이 오륜을 지켜서 진정한 사람의 도리를 해야 하는 것이요, 성현군자들은, 초목금수의 구별이 없는 인간들이 하루라도 빨리 그 구별을 알도록 모범을 보이고 가르쳐서 인간이 만물 중의 가장 영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이 이를 위하여 동서남북을 막론하고 성현을 배출하시어 군자와 스승을 만들어 인간을 지도하시는 것이다.
현세계는 어떠한가 하면, 과학문명이 그 극에 달하여 물질을 이용하여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길은 끝없이 발달되고 있으나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정신도덕의 질서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귀하다. 이러한 현상은 내가 보기에는 우주가 물질문명에 취하여 정신도덕을 망각하고 암흑 속에서 방황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길고 긴 깊은 밤이 새벽별이 하늘 끝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깊은 밤이 점차 밝아오려 할 때 뭇 별은 빛이 없고 한점 계명성도 희미하니 하늘은 더욱 캄캄하다. 이때가 바로 지금의 물질문명 만능시대인 것 같다.
어찌하여 오래지 않아 동방에 하나의 붉은 해가 이 우주를 다시금 밝혀 줄 것을 꿈속에라도 생각지 못하는가? 이 초목금수의 시대 중에서, 닭 울음소리에 새벽 어둠이 걷히고, 해가 떠오르기 전의 어둠 속에서 새벽을 알리는 큰 종이 울리면, 동쪽 창가에서 붉은 해를 맞이하는 역할이 오만 년 대동책의 발단이 될 것이다. 또한 초목금수의 지경에 있는 세계 인류를 모두 광명천지로 인도하는 책임을 완수하면 이는 족히 우주사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정신도덕으로 물질문명을 계승하여 우주일가주의로 평화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이요, 우리 대황조님이 백산운화라고 미리 말씀해 두신 내용이다. 이 백산운화(백두산족의 운명적 변화)라는 것은 온 세계를 금수의 상태에서 발전시켜 크게 평화로운 세계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성인이 나시어 인류를 가르치셨으나 다가올 새로운 세계에는 한두 사람의 성인의 신기한 조화로가 아니라, 이 시대의 전환기적 사명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이 물질문명의 극치점을 파악하여, 세계를 호령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도임하여 각기 나라를 안정시키며 산업을 안정시켜 영원히 두려움 없이 살아갈 성스러운 세상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현 국제연합에서 세계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그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장래의 황십자가 나올 조짐으로 적십자, 백십자, 흑십자등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현세상이 말할수 없이 어지러운 상황이나 '바다가 깊으나 그 바닥이 있고, 산이 높으나 그 꼭대기가 있다' 라는 원리에 불과한 것이니 항상 일치일란의 끝없는 순환으로는 우주의 광명은 오지 못할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명이 우리 백두산족에게 있다는 것을 자중하며 사명완수를 위한 자격 양성을 목표로 백절불굴하고 나아갈 것이다.
내 평생의 목적
옛사람들 같으면 육십이란 나이면 공을 이루고 은퇴하여 일없이 한가로운 몸이 되어 깊은 산중의 선비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보통인데. 나는 아직도 공을 이룬다기보다 공을 이룰 만한 사업조차 착수하지 못하고 어느덧 머리가 희어졌으며, 일상의 생활고에 얽매여 춘하추동, 더위와 추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쉴새 없이 분주한 몸이 되었으니 옛사람들의 지내온 일에 비하여 부끄러움이 많다. 그래도 나의 마음만은 옛적의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기대를 가지고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알맹이 없는 공상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해 본 일도 있으나 아무리 생각을 반복해 보아도 내가 이념하고 있는 일이 내 마음속에서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청결하게 싹트고 있는 것은 이것이 꿈이건 사실이건 나로서는 평생 같이 해온 둘도 없는 친구인 까닭이다.
내가 이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것은 내력의 부족이요, 그 이상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옳지 못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하기 때문에 나의 실력양성을 못하는 것을 후회할지언정, 내가 육십 년 긴 세월을 두고 생각하던 것을 고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이야 무어라고 하든 나는 이 이념으로 살고 이 이념으로 죽을 따름이라고 스스로 굳게 맹서를 하는 것이다.
이념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이 이 치란(혼란과 평화의 두 세계)의 끝없는 순환으로 진행되어온 세계를 늘 평화로운 상춘세계 또는 태평건곤(크게 평화로운 세계)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요, 또 우리 동야에서 먼저 이를 모범으로 보여 세계가 한가족 같이, 온 우주가 모두 평화롭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요, 옛날처럼 평화와 혼란 시기의 순환으로가 아니라 늘 평화로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의 실현을 위한 씨앗을 우리 백두산족이 뿌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약자가 평화를 구하는 것은 강자에 대한 애걸이요, 실현될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계에 군림할 정신문화를 물질문명과 부합시켜서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대발명을 해 놓고, 이 발명품을 전쟁이나 정복을 위해 악용하지 말고 세계평화의 호소에 사용할 것을 나는 백 번 천 번 부탁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불가능한 것인가를 의심할 사람도 있으나, 이것만은 절대 확실성을 가진 것이요, 내가 비록 어리석으나 우리 민족이 이러한 기본 준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하는 관계로 내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바를 변함없이 꾸준히 밀고 나아가는 것이다.
내 이념이 내 한몸에 대해서는 아무 이득이 없는 것 같으나 대아가 이루어질 때에는 소아쯤이야 자연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므로 나는 60년간 가족을 돌보지 않고 일정한 직업도 없이 지내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 능력을 과대평가 함은 아니다. 이런 이념을 가지고 변함없이 성패를 가리지 않고 죽기까지 나아가는 것이 내 평생의 목적일 뿐이요, 다른 일이 아무리 좋다 해도 도중에 길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나아감을 맹서하는 것이다.
우리의 종교는 무엇으로 정할까
우주에 충만한 무형의 도를 우주의 만물이 걷고 있다. 여기서 형이 있는 도 같으면,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다가 길이 갈리는 곳에서 물어 보고 가든지 아니면 지도를 가지고 가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형이상으로 걷는 길은 그 형에 없는 관계로 동서남북의 방향이 없고, 높고 낮음, 깊고 얕음의 지형이 없으며 크고 작음, 넓고 좁음의 구별이나 육해공로의 표시가 없으므로 맹목적으로 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수많은 각각의 종파들이 가르침의 문을 열고 "내가 가르치는 것이 가장 옳다"고 아전인수를 하니 누가 그들의 올바름과 그름을 알 것이며 비록 올바르다 하여도 우리가 걷는 방향과 같은 방향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길의 종류는 천지개벽에서 다음 개벽까지 몇 차례를 지나도 변하지 않을 길이 있고 가다가 몇 번이고 변할 길이 있다.
대륙간에 통하는 길이 있고, 육대주 오대양의 공로가 있고, 국가간에 통하는 깃이 있으며, 한 나라에는 그 나라의 국도가 있는 것이다. 도, 군, 면, 리에 각기 모두 통로가 있으니 어느 길이 길 아니며, 어느 길로 가든지 못 갈 길이 있으리요만 내가 말하는 것은 태양의 적도와 달의 황도와 같은 불변의 길을 말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가는데 제일 공통된 길, 우리의 국도요, 외국인이 걷더라도 여전히 세계의 대통로가 되어서 가다가 빗나가는 일이 절대로 없는 그런 길을 말하는 것이다. 천 년 만 년 가더라도 통할 수 있는 길, 옛 길이라고 없어지지 않을 길을 택하자는 것이다.
오천 년 전의 상고시대에 우주 역사이래 처음으로 동방의 임금이 되신 단군 성조께서 백두산에 내려오셔서 혼원천지(하늘과 땅의 질서가 아직 서있지 않은 혼돈 상태)의 민족의 첫 임금이 되시고 "위로는 하늘을 받들고, 아래로는 땅을 내디디며, 그 가운데 사람이 존재한다." 삼일신고의 가르침을 베푸셨으니 이것은 천부경의 '일시무 무종일(하나는 없음에서 비롯했고 없음은 하나에서 그친다)이요, 일이삼 삼이일(하나이며 셋이고 셋이며 하나이다)'의 원리로서 그 본은 태양의 앙명이라고 하셨다. 혼원시대란 곧 캄캄한 밤중이라는 말이다.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때는 인간의 숙면기와 같다가 자축인시가 되어서 태양이 밝으니 상천, 하지, 중인이라, 무에서 하나가 생기고, 하나가 또 하나가 되고, 또 하나가 되어서 삼재(천, 지, 인)로 나뉘어지니 이것은 태양의 앙명에서 근본이 생긴 것이다.
단군 성조의 이러한 가르치심이 중국에 가서 유교가 되어 "가운데에서 사망으로 흩어져 만물을 이루고, 끝에서 다시 모여 하나의 이치가 이루어진다." 라고 유정유일(오로지 하나로 사무침)로 가르치는 법이 되니 역시 천부경의 '일시일종'을 그대로 가르치심이요, 이 가르치심이 남방으로 나가서 불교가 되니 이 천부경의 '무종일'이라는 것을 그대로 가르치심이요, 허무적별이 모두 그 무자를 일컬음이다. 또 그 가르치심이 곤륜산으로 가서 선교의 명이 되니 이 명은 또한 천부경의 본 태양의 앙명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일기화삼청(하나의 기운이 세 가지 맑음으로 변화함)하고, 삼청화일기(세가지 기운이 하나의 기운으로 변화함)' 되는 원리이다. 이른바 유불선이 삼교로 나뉘었으나 그 이면에는 삼청화일기하고 일기화삼청하는 동일한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서 그 길을 가르치는 법이 다를 뿐이지 가서 보면 두 곳이 아니요, 한 곳이라는 말이다.
그 외에 많은 길들이 있으나 모두 아전인수하는 가르침이요, 대동소이한 점이 많을 것이다. 다 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가장 걷기 쉬운 길, 오천 년이나 우리 조상들이 걸어오신 길, 알고도 걷고 모르고도 걷는 이 길을 유라고도 하고, 선이라고도 하며 불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는 이 가르치심의 근본은 바로 삼일신고였다. 이 가르치심을 억지로 이름 붙여 수도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름이 생기면 장단이 생기니, 그저 우리는 도라고만 해두자. 이 가르치심을 가지고 말씀하신 이가 성조 단군이니 단군은 우리의 대황조요, 우리의 종교상 교조는 아니시다.
우리의 교조로는 일기화삼청 하고 삼청화일기하는 혼원일기(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태초의 한 기운)를 숭배하고, 이 교를 받드신 대황조는 여전히 대황조로 우리가 같이 숭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세상에서는 대황조를 대종교의 교조로 모시나 우리는 대황조를 당시의 사람으로서 하늘의 가르침을 받드신 분이요, 우리 민족종교의 교조라면 당연한 태극, 무극, 유극의 원리인 혼원일기라고 본다. 우리의 교리는 삼일신고를 주로 하되 우리가 보고 알게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 교는 우리만이 걷는 노정이 아니요, 우주에서 움직이는 군생만물들이 모두 걷는 대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그 가르치심은 과거만도 아니요, 현재만도 아니요, 미래만도 아닌 과거무량수겁 전에서 시작한 것이요, 미래무량 수겁에도 그 끝이 없을 대도라는 것을 거듭 이야기해 둔다.
이 교리는 문자화하지 않는 것이 종리이나, 부득이 세상 사람을 상대할 교리가 멀지 않은 장래에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민족종교는 이 가르침으로 정하고 종교의 믿음은 당연히 자유인 것이다. 비록 믿음의 자유가 있어서 이 길 저 길로 가더라도 평탄한 길과 험난한 길이 있는 것이고, 누구나 장래에는 모두 평이한 길로 올 것이니 이 길 저 길의 차이를 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걷는 길이나 황폐하지 않도록 옛사람의 큰 도를 다시 우리의 손으로 수도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과거에 태어났다면 이런 대도의 갱생을 보지도 못하였을 것인데 다행히 오천년 개벽 대운에 났고, 우리가 남쪽이나 서쪽이나 북쪽에 나지 않고 바로 이 동방, 그것도 대황조를 받듦이 있는 데서 나고, 시기적으로도 우리 마음대로 이 길을 걷더라도 왜 그 길로 가느냐고 책할 사람 없는 이 때, 이 때에 난 것만이 우리의 다행한 일이요, 우리가 이 다행한 자리에 났거든 누구든지 이 길을 다시 닦아서 우주화시키는 것이 우리가 이 땅, 이 때에 난 값이 있는 것이다.
비록 이 때에 났더라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있다가 가면 무슨 다행한 일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가 여기서 맹세코 단결하여 이 길을 닦아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길이 가장 큰길이라 우주에서 상대가 없는 큰길이니 이 길을 걸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걸어온 길이 대도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 길은 육해공을 물론하고 우주의 역사가 있는 이래로 그 크고 넓음을 측량할 수 없는 길이다. 이 길을 걸어보면 내가 목적하는 곳을 못 갈 리 없는, 성공 못할 리 없는 평탄한 길이요, 다른 길과 같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찾기 힘든 길이 아니요, 한 길로 가서 묻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대도가 아니고 무엇이리요.
3. 구도자의 자세
도(道)
도라는 것은 곧 길을 말함이다. 하늘에는 하늘의 도가 있고, 땅에는 땅의 도가 있으며, 사람에게는 사람의 도가 있어서 서로 변할 수 없는 것이 도요, 그 도가 비록 천도나 지도나 인도의 분별은 있을지언정 시작과 끝의 이치가 동일하고 그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동일한 것이다.
만약 이 원칙에서 터럭만큼이라도 변함이 있다면 이는 도의 원리를 위반한 것이요, 그 위반한 것을 도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천, 지, 인이 다같이 이 도의 원리대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요, 어느 한가지라도 자유로 변함이 없다. 천도나 지도를 본받아서 인도가 된 것이니, 천도나 지도는 대자연을 그대로 걸어오는 것이다. 항상 변함이 없이 오되, 인도는 대자연을 그대로 걷는 것이 아니라 그 대자연을 본받는 관계로, 질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천도나 지도와 동일하게 걸어갈 자질이 충분하나, 행하는 것이 천도를 따르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가는 것도 가리지 못할 일이다. 천도와 지도는 우주의 대자연으로 옛날과 지금이 마찬가지이나 인도만은 과거와 현재의 차이도 있고 동서의 차이도 있어서 서로 같지 않다. 현재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무슨 길인가, 천도나 지도와 동일한 원칙인가 아닌가를 대조해 보고, 그 원칙에서 위반된 일이라면 이것은 인도의 정상적 이치에서 벗어난 것이므로, 그 왜곡됨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천도는 밝음으로 음양을 나누고, 춘하추동으로 사시를 정하고, 남극과 북극으로 천축을 정했다.
지도는 밤과 낮으로 음양을 나누고, 수화목금토로 오행을 정하고, 남극과 북극으로 지축을 정했다.
인도는 남과 여로 음양을 나누고, 효제충신으로 오륜을 정하고 생사로 인축을 정했다.
양은 고요한즉 온전해지고, 움직인즉 곧아지며, 음은 고요한 즉 열리고 움직인즉 닫힌다.
음양의 움직임과 정지됨으로 만물이 비로소 생기니, 물과 불의 기운이 서로 부딪치어 씨가 나오고, 씨는 이루어져서 둥글어진다.
흙을 얻어 길러서 사물이 비로소 생기니, 만물의 씨의 밖을 싸고 있는 것이 흙이요, 한을 싸고 있는 것은 금이다.
안을 싸고 있는 것이 둘로 나뉘어져 음과 양이 되고, 안의 윤기 있는 것이 물이요, 씨는 나무요, 두 개의 씨가 서로 합한 것이 불이다.
이 씨가 다시 흙을 얻어 불과 물이 서로 서로 부딪치어 따뜻한 기운이 생긴 후에 비로소 씨눈이 자라서 겉을 싸고 있는 껍질을 터치며 싹이 생겨 나오는 것이니 세상 사람은 항상 봄에 만물이 생겨남을 이야기하지만, 그 생김이란 이미 씨가 처음 날 때 있었던 것이고, 봄에 비로소 싹이 나오는 것이지 그것이 생명의 시초는 아닌 것이다.
인간 생명의 시초도 역시 그러하니, 어머니 탯속의 열 달이 바로 그런 이치여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 생명의 시초가 있음은 아닌 것이다.
그러하므로 오행의 순서도 수→목→화→토→금이 옳고 사계절 역시 동→춘→하→추가 옳으며 방위도 북→동→남→서가 옳다.
이것이 천도나 지도의 순서요, 인도도 역시 이 순서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이 도를 말한 것이 동양철학의 역이라는 것이다.
하도는 상천하지에 해와 달이 동서로 운행하여 밤과 낮이 되고 이 밤낮이 쌓여 춘하추동의 사서가 이루어짐을 말하고, 해와 달의 밝음을 제일 먼저 받아서 움직인 곳이 동북방이며 백성을 가르친 곳이 동북이라 '제출호진(성인은 진방에서 나온다)' 이라고 하였다.
동남은 그 혜택을 받아서 려하였다고 하고, 서남은 또한 그 풍속의 가르침이 제우손(손방에서 가지런해짐)이라 하였다.
그리고 서북은 지형적으로 배와 같으나 마지막에 광명 하리라고 하였다. 이것이 하도가 우주의 역사를 천도나 지도로 보아서 미리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다음 낙서는 후천적으로 보니 북방이 물의 근원이요, 남방이 불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았고, 서북방을 보니 천축인 북극이 있고, 서북을 중심으로 중요한 별들이 모두 있다고 말하였다. 서남으로 보니 광대하기 한이 없는 대지가 있어서 이 대지가 중후하나 명려하고 웅휘하여 서남의 중후혼탁과는 아주 관이하다 하였다.
동남을 보니 끝없는 큰 바다에 해와 달의 호흡을 따라 움직이는 기체가 항상 쉼없는 바람이 된다는 말씀이요, 동방을 보니 어둔 밤에 사방이 모두 고요하다가 햇빛이 처음 비추이매 만물이 모두 움직이고, 이 양의 기운이 쌓여 있는 음의 기운과 서로 부딪치어 천둥과 우뢰가 되어 만물의 웅크리고 있는 상태를 깨뜨리어 정기로 변화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서방을 보니 대지 중의 저장된 물이 출구가 없어서 대양이 되어 정양하는 청정한 물의 본성을 갖게 한다는 말씀이요, 그 다음은 아무리 보아도 중앙은 토가 아니면 안 되겠는데 이 토는 양토를 말함이고 그 양토가 지구를 지배할 중심이더라는 말씀을 옛 성인께서 해놓으신 것이다. 낙서 역시 천도와 지도를 보시고 인도도 이러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도 천도지후를 본받아서 머리가 하늘이 되고, 배가 땅이 되고, 얼굴의 이목구비발로 하늘의 오행을 본받고, 또 얼굴 위의 일곱 구멍으로 북두칠성을 대응하고, 뱃속의 오장육부로 땅의 오행을 본받았다. 이것은 사람이 천도나 지도에 응해서 생겼으며 그리하여 사람의 몸 또한 작은 천지라는 것이다.
사람이 천지의 기를 받아서 이 세상에 나고, 생로병사함은 천지 자연의 이치이나, 살아 행하는 일이 이 천도나 지도에서 볼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이는 천지이기의 온전한 기운을 받지 못하고 그 편벽된 기운만을 받은 것으로 자처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초목금수나 생로병사는 다 같고 생양수장도 같으며, 식물은 식물대로 번식욕이 있고, 동물은 동물대로 번식욕이 있는 것이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동물도 약육강식하고 인간에게도 약육강식의 원리가 횡행한다. 무엇으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것인가. 식물이나 동물은 천지의 대자연 속에서 되어 가는 대로 가다가 모두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불변의 원리이나, 인생은 천도나 지도를 본받아서 될 수 있으면 그 장점을 본받고 단점을 버리며 음양이기가 동화되어, 앞서 간 성인을 계승하여 뒷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므로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고로 인간이 초목금수와 다름을 가르치고, 옛사람의 걷던 길이 황폐해지면 고치며 또한 좋은 길터가 있으면 천도나 지도를 본받아서 다시 개척하는 것이 인간된 의무요, 책임이라 하겠다.
우주의 인류로 태어난 이상 이 우주를 상대하고 이 우주의 총기관이 되는 길을 개척하며, 수리해서 이 길을 걷고자 하는 뒷사람의 편리를 도모함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대도를 걷게 되는 것이요, 그 뒷사람도 그 대도로 오게 되는 것이다. 이 옛사람의 길이 황폐하여 길이 어딘지 모르게 된 것은 비록 우주의 자연이라 할지라도 이 길이 황폐해진 것을 알면서 수축이나 개척을 등한시한 사람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 인도는 해와 달의 황도나 적도와 같이 변할 수 없는 큰길인데 우주가 생긴 후에 그 길을 걸어온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 길이 황폐해졌다는 것이다.
옛사람의 길을 가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이 길을 가자니 산길도 있고 물길도 있으며 평탄한 길, 험한 길이 다 있다" 고만 했으나 다시 돌아서서 이 길이 황폐해졌으니 내가 다시 개척하고 수리해서 후세 사람들이 천존지비하고 해와 달이 밝은 줄 알 듯이 알기 쉽게 표시도 해놓고, 노정기도 분명히 해놓고, 이 길을 걸어 보면 그 다음이 어떠하다는 것도 상세히 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우주인들이 아무리 험한 길을 걸었더라도 자기 자신만 알고 갔을 뿐, 이 길이 험하니 뒷사람이 걷기 힘들겠노라고 다시 개척하며 쉽게 걷도록 해주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이같이 힘든 길을 걸어 보고 '내가 걸어 보니 이렇다'고 말씀해 놓으신 것이 성경현전이다. 그러나 이 길을 가기 극히 곤란하니 다시 이렇게 개척하여 속히 가도록 하라고 하신 말씀은 못 보았다. 고금을 통하고 동서를 막론하여 성인들이 이 길 걷기에다 곤란을 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옛 성인의 말씀에 "이번 대운에는 이 길을 잘 개척해서 그 후에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오기 쉽게 하리라"는 예언과 묵시가 있다.
우리가 마침 이 때에 났으니 누가 이 옛사람의 길을 새로 개척할 것인가 알고자 하며, 이 길을 크게 개척할 사람이 우리 백두산족이라는것도 역시 천도나 지도에 응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요, 백두산족을 귀하게 여겨 그런 것은 아니다. 지역도 우리 지역이요, 인종도 우리 인종이요, 시기도 때마침 이 때에 우리가 태어나 이 길의 개척함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혹 만에 하나라도 이 개척하는 일판에 부역군이라도 될 것인가. 이 붓을 들고서 한편으로는 다행히 여기며 또한편으로는 불행히 여기는 것이다. 다행이라 함은 지역적, 인종적, 시기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요, 불행이라 함은 아무리 유리한 조건이 있더라도 내 자신의 소양이 없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몇 세기 전이나 후에 태어났더라도 이런 정신적 고통은 없을 것이요, 또 인종이 다른 민족이었다면 우리가 이것을 고대할 필요도 없고, 지역이 아주 타지역이라면 혹 우주에 이런 일꾼이 오려니 할 정도이지 무슨 바람이 있을 것인가.
지역이나 종족이나 시기가 모두 갖추어졌으나, 사람이 소양이 없어서 이 길 개척의 일꾼은 고사하고 누가 일꾼이 될지조차 묘연하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리요.
어떻든 우리가 보기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공자의 대동이라는 도나 석가모니불의 용화라는 도나 순의 중화라는 도나 예수의 부활이라는 도가 모두 같은 의미의 도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바로 이 길이다. 이 길이 경으로 위로 아무데로 가든지 공통된 길이라는 것이다. 이 길을 개척해서 우주에 공헌하여 오늘 이후로 우주 인류의 걸을 길을 편리하게 하여 준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이 도라는 제목을 쓰다가 말이 길어지는 것을 걷잡지 못하였다.
차후로 천도나 지도의 자연성과 인도의 부자연함을 시간만 있다면 내 소견대로 상세하게 기록해볼까 한다. 이 다음 나올 길을 개척할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는 다음 일이 시작한 후에 알 것이요, 이 길이 머지않아 개척되리라는 것을 내가 미리 확언해 둔다.
내가 항상 말하는 백산운화라는 것은 이 길의 개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길을 개척할 인물들이 벌써 삼육성중의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 출세하였다는 조짐을 본 지 오래라는 말이다.
장마비가 끝난 뒤에 계곡물이 푸르러지듯이, 현재의 양대 탁류가 서로 부딪치어 한바탕의 폭우가 그친 후에 동쪽 하늘에 한점 붉은 해가 비치는 때가 바로 이 길이 광명하게 개척될 때라는 것이다.
옛사람의 길이나 현세인의 길이나 별다른 것이 없으나 옛 길은 동서남북에서 각자가 걷던 길이요, 장래 나올 길은 온 우주의 통로라는 것을 또한 확언해 둔다, "때로다, 때로다, 다시 오지 않을 때로다" 라고 외친 최수운도 이것을 의미하였던 것이라 본다. 다가올 오만 년 끝없는 대도가 우리 지역에서 발단된다는 것이다.
교
하늘에는 천도가 있고 땅에는 지도가 있고 사람에게는 인도가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나 그 안다는 것이 정도문제이다. 하늘의 도는 무엇이요, 땅의 도는 무엇이요, 사람의 도는 무엇이라고 확실히 의심 없는 답이 나올 만큼 알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가르침이 없어서는 그 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도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가르침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도가 있어도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는 그 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가르침이라는 것은 도를 행하는 사람의 노정기이며, 지나침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가르침으로 당연히 갈 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두산이 여기서 이천리요, 방향은 북방이요, 가자면 산도 오르고 물도 건너야 하고, 평평한 길도 있고 험한 길도 있다는 것과 출발점에서 좌우는 이러이러한 지역이요, 길을 얼마가면 산이 있고 또는 이런 물이 있으니 그 물을 건너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자초지종까지 지극히 세밀하게 해놓아도 시기의 계절이 다르고 가는 사람의 힘이 다르고, 중도에서 만난 사람의 말이 이 지도와 동일하다는 법도 없으며 또는 비록 동일지점에서 같이 가는 사람이라도 백두산까지 가는 길에 별별 일이 많을 것이요, 또 각기 출발점이 동일 하라는 법도 없어서 비록 백두산이 동일한 목적지라도 출발지가 동서남북이 같지 않고 거리의 멀고 가까움과 가는 길의 역량이 모두 다를 것이니 그 가르치는 노정기를 사람마다 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이것이 가르침의 중요점이다. 그런 고로 가르침이라는 것은 출발하고자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요, 목적될 대상물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만약 백두산이 목적물이라면 먼저 백두산이라는 것이 천도, 지도, 인도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고, 그 위치는 무슨 부문이요, 그 산의 중요점은 무엇무엇이요, 그 산이 다른 산에 비하여 이러이러한 특징이 있고, 춘하추동에는 대체로 이러한 변화가 있고, 경치는 어떠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감상이 있게 하는 곳인데, 천도에 비하면 어떻고, 지도나 인도에 비하면 어떠하며, 동서남북에 각각 이러이러한 곳이 있다라고 목적지인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길 안내를 하는 것이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목적지라는 것이 우주의 공통된 목적지인지, 어떤 국가나 민족, 또는 소수 집단에 공통되는 목적지인지를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주의 경이나 위에 길이 아님이 없고, 적도도 길이요, 황도도 길이다. 그러나 이런 길은 공통점이 보인다. 적도에서 양극을 간다면 어느 곳이나 90도를 지나야 갈 것이요, 적도에서 동서로 일주를 하려면 동서로 360도를 지냐야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경도나 위도에서도 이것이 공통되는 것이니 이런 것은 모두 천지인도를 걷는 깃이라 비록 목적은 좀 다르다 하더라도 공명정대한 법칙인 공통된 길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공통점을 가지고 이 길로 가라고 가르친다면 그 가르침으로 우주의 공통된 길을 걸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제일 먼저 목적지가 양극이냐 적도냐 하는 우주 공통점을 택해서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을 가르치는 곳이 어디인가를 고찰해야 한다. 우주의 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이 우주공통로를 먼저 걸어보고 가장 쉽게 후세인이 가도록 가르치신 것을 교라는 것이다. 목적지가 두곳이 아니요, 똑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가르치심이 각기 다른가? 그것은 성인들의 출발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성인이 아닌 사람이 가르친 곳은 자기 한 사람의 목적지거나 극소수의 공통된 목적지라는 것을 확언해 둔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주 공통의 목적지를 어디에서 출발하든지 모두 동일하게 갈 수 있도록 지극히 간단하게 가르친 가르침이 나올 것이라는 것도 아주 확언해 둔다.
요즘도 유사한 가르침이 많으나 옛 성인들의 가르치심과 목적지가 다르다면 이것은 물론 우주공통로가 아님을 고찰할 수 있다.
옛 성인이라면 공자, 석가, 노자, 예수,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같은 성인들이다. 그 가르치신 방법은 조금씩 다른 점이 있으나, 각기 관점의 차이요, 목적지는 동일한 천도며 지도며 인도라는 것이다. 동양철학으로도 공자의 솔성이나 석가의 견성이나 또한 노자의 명성이나 모두 목적은 성이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진만성이 모두 이 '성' 한가지로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나 소위 유사한 가르침이라는 것은, 외면으로는 그럴 듯하나 내면에 있어서는 목적지까지 갈 수 없는 가르침이라는 것도 분명히 말해 둔다.
우주의 공통된 목적을 가도록 가르침을 정이라 할 것이요, 우주의 어떤 국한된 목적을 가도록 가르침을 사라고 확실히 평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천도나 지도나 인도를 모두 걸어갈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 정이요, 천지인도에 맞지 않는 가르침이 사인 것이다.
이 가르침은 공통된 것이요, 이것을 받아서 걸어가는 것은 사람마다 상이하다. 목적을 정하고 나아가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나아가야 할 것이요, 나아가자면 첫째조건이 건전한 신체로 맑은 정신을 함양해서 쉼없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그 가르치는 목적지가 그리 멀거나 가기 힘든 곳은 아니라고 옛성인들이 말씀하시며 뒷사람의 걸어옴을 장려하신 것이다.
우주를 통한 가르침이라는 것은 정도를 걷도록 하는 가르침이니 별다른 것은 아니다. 이것을 별다른 것으로 알고 걸어가서는 그 목적지에 도달함이 곤란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내가 이 교라는 제목 아래 횡설수설한 것은, 과거의 유학자들이나 불교 승려들이 아집에 사로잡혀 자기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여 타종교나 학문을 배격한 사례가 바로 진정한 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느 교문에서나 초학을 가르침과 숙덕들을 가르침이 다르리라고 본다. 가장 폐단이 됨은 아전인수로 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나, 성공하기 전에는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 그러면 시비곡직이 없다고 보는가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각자 성인의 가르치심을 받았거든 그 극치점까지 가기 전에는 절대로 자기수양에 노력할 일이지 자기가 목적한 공부는 성공의 길이 묘연함에도 불구하고 선이 어떻네, 불이 어떻네, 혹은 유가 어떻네, 소양학문이 어떻네 하고 쟁론만을 일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자신이 아직 부족함을 알고 남과는 쟁론을 말며, 자신이 하는 공부에 성공을 한 후에 비로소 자신이 목적한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목적한 곳과 상이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최종 목적지까지 가서 그 사람들과 동일한 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면 도리어 상봉하기 전에 서로 다툰 것이 무색하지 않겠는가. 나도 배우는 사람이요, 상대방도 배우는 이라면 다 아직 목적지에 못간 사람이니, 중간 가르침으로 어찌 목적지의 경계를 다툴 것인가. 중간 다툼은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다고 본다. 정확한 시비곡직은 자기의 목적을 완성한 후에 자연 판단될 것이라 보는 관계로 중간 다툼에는 무시무비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으로서는 무엇보다도 정진해서 목적달성을 하는 것 이상 큰 승리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말해 둔다.
학
무에서 유에 이르는 것을 배움이라 하니, 또한 얕지 못함에서 앎에 이르는 것도 배움이라 한다. 무에서 유에 이르는 것도,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가르침으로 인하여 배운 후에야 유에 이르는 것이며, 모름에서 앎에 이르는 것도 또한 홀로는 안 되는 것이다.
반드시 가르침으로 인하여 배움을 얻은 후에야 유에 이르고, 앎에 이르는 것이요, 배우지 못한 즉, 무와 모름의 상태에서 늘 벗어나지 못하니, 이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배워서 유와 앎에 이르고, 지극한 착함에 머문다면 타고난 기질이 변화하여 성인도 될 수 있고 현인도 될 수 있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되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였으니, 배움에는 소학과 중학과 대학의 구분이 있어서 아주 어린아이는 부모의 가르침으로 배우고, 여덟살 이후에는 스승의 가르침으로서 조금 배우고, 소학의 과목을 다 배운 후에는 스승이 다시 중급 단계의 학과를 가르쳐 이것을 다 배운 후에 다시 대학의 학과로 나아가니 이는 배움의 순서요, 또한 가르침의 차례이기도하다.
가르치는 사람은 스승이요, 배우는 이는 선비다. 스승의 가르침은 대학의 과정에서 그치고, 배움의 과목은 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다함에서 그치는 것이나 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다함은 스승이 능히 가르칠 수 있는 바가 못되니 자기 스승의 가르친 바를 받들어 홀로 정진하며 연구함을 쉬지 않아야 비로소 그 배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연한 일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배움을 넓게 하고 부족함을 채워서 허령지각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이는 배우는 사람의 마음으로서 마음을 전하는 묘한 비결이요, 문자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경지이다.
배움이 유아시절에 부모님의 언어동작을 가르침으로부터 시작하여 궁리진성(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다함)에서 마치니, 그러므로 배움에는 두 가지가 있어서 하나는 가르침을 받아 배울 수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가르침으로써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가르쳐서 배움은 일용사물에 쓰이는 배움이요, 가르쳐서 배울 수 없는 것은 궁리진성의 배움이다. 일용사물의 학문은 사람 모두가 가르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으되, 궁리진성의 학문은 사람에 따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배울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심전심이요, 언어문자로는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예법과 음악과 활쏘기와 말타기와 글과 수학의 여섯 학문은 모든 사람이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으되 하나에 온 힘을 기울이고 가운데를 놓치지 않는 배움이란 사람에 따라 가르칠 수도 있으나 모든 사람의 가르칠 수 있는 바는 아니며, 또한 모든 이가 배울 수 있음도 아니다.
현대의 물질문명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으되 정신 철학은 사람마다 모두 배우고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니, 현대 철학을 가르치거나 배움이 비록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성인의 문하에서 마음의 법을 전하고 받음에 있어서랴.
옛부터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뜻을 세움이 높지 않은즉, 그 배움이 모두 보통 사람의 일에 미치고마니 마땅히 뜻을 세움은 높이 멀리하라 하시었다.
사람에게는 재질의 맑음과 탁함의 구분이 있고 배움에는 정성과 게으름의 구별이 있으니 마땅히 가장 안락하고 자신에게 적당한 곳에 뜻을 세우고 열성으로서 쉬지 않고 배워나가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배우는 사람의 성공은 반드시 다음 세 가지가 합해진 후에야 뜻과 같이 될 것이니.
첫째는 어진 스승의 가르침이요, 둘째는 착한 친구의 권고요, 셋째는 자신의 정성이니, 위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없다면 완성을 기대하기 어려움이 밝은 거울을 봄과 같으리라. 비록 하나가 결여되었다. 하더라도, 남보다 수백 배의 노력을 해야만이 가까스로 완성할 수 있을 정도이다.
행
행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정확한 해석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이 아주 어릴 때에는 자기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반드시 어른의 손을 잡고 다니니 이런 행을 행이라고 할 수 없고, 좀 자라서 아이가 되어도 발힘이 부족해서 겨우 동네 왕래나 하고 집안에서 돌아다니니 이 행도 아직 행함에 가까운 것 같지 않고 소년시대 부터는 행하는 것은 마음대로 되나 이 행은 다리 힘이 좀 낫다는 말이지 가는 데가 어디인지 알 수 없고, 청년시대부터는 동서남북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으나, 이것은 그 다리 힘이 행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지 자기가 마음 있는곳을 반드시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이 되면 점점 다리 힘이 부족해져서 다닐 만한 곳도 겁이나서 못 다니는 것이 예사요, 또한 아주 극노인이 되면 출입을 폐하고 자기집 아랫목이나 지키는 것이 우리가 보통 행이라는 것인데 이 행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 이를테면 걷는 행이 있는가 하면 말타고 행하는 사람, 자동차 타고 행하는 사람들의 구별과 단신으로 행하는 사람, 동행하는 사람과 짐을 지고 행하는 사람, 열을 지어 대오로 행하는 사람, 시간을 맟추어 행하는 사람, 매일 일정한 곳만 행하는 사람, 왔다갔다 행하는 사람,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행하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으로, 이것이 모두 행이라 하는 모양이 있어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각기 어떤 목표를 두고 자기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필 인간만 이러할 것인가. 우주에 충만한 형체 있는 생물은 모두 이런 여러 종류의 상태로 행하는 것이 보통의 이치이다. 이렇게 행하면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며, 이 전진이 어디까지 가면 중지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행이 모여서 인간을 생로병사를 계속하고 우주는 원회운세가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육신으로서의 행함이나, 이외에 정신적으로 행하는 것도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알 수 없다. 또한 어느 행을 정확한 행이라 하겠는가. 각자가 모두 자기의 행함을 옳다고 할 것이다.
옛 성인의 말씀에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곧 배우고 물어라' 라고 하시었다.
여기에서의 행은 행실을 말씀하신 것인데 육체의 행이나 정신의 행이나 이름만 다를 뿐 다같은 행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생로병사는 똑같고 감정도 거의 비슷하며 삶에 대한 애착이나 죽음의 공포도 일반인데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함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람의 행위에 윤리도덕이 있는 까닭이요, 이 윤리도덕이라는 것이 동물에게라고 아주 없는 법은 아니나, 동물들은 한 곳으로 치우친 성질을 가지고 혹 어느 일면에 해당하는 사례는 있으나 완전히 구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정신적 행위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자신 있는 행위를 못한 때는 항상 금수의 동물성이 작동했기 때문인데, 이 동물성이 다른 동물과 같다면 인간으로서 무슨 우월감을 가질 자격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것이 옛 성인이 말씀하신 행실의 의미이다. 그 행위는 육신의 전진을 목표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금수보다 우월하다는 양지, 양능을 그대로 발휘해서 무엇보다 먼저 윤리도덕을 목표로 하는 행위를 하라는 말씀이다.
현대 과학문명이라는 것은 이용후생의 지혜로운 기교에서는 옛날보다 열 배는 우월하나 윤리도덕 방면에는 대중의 사회적 안녕과 질서유지 정도 외에는 그리 치중하지 않아서 유물론 등의 동물환원사조가 전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것도 행은 행이나 목표가 인간을 동물로 환원시킬 정도로 행하는 것이다.
이 행 저 행을 구별해 말하기 불편해서 각자가 정신력을 수양하면 그 행이 어떠한 부문에 속하는지 잘 알 것이라 하여 '행행행리각 이요, 거거거중지'라고 내가 말한 바 있다.
동으로 가든지 서로 가든지, 남으로 가든지 북으로 가든지, 속히 가든지 더디 가든지, 걸어가든지 타고 가든지, 각자의 마음과 주위의 환경대로 행하되, 다만 인간이거든 인간답게 다른 동물이 목표하는 대로 하지 말고 윤리도덕에 치중하여 완전한 인간으로 성공하는 것이 올바른 행인 것이다.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다리 힘부터 양성해야 하는 것이니, 만약 다리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신 행하는 힘을 양성해서 행할 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요, 쉬지 않고 노력을 다하면 옛사람이 말씀하신, "개구리 걸음도 쌓이면 천 리를 가는 것이요, 시냇물도 모여서 강과 바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될 것이다.
행하고 또 행하여 그칠 줄을 모르고 행하면 누구나 자기 역량대로는 행해지는 것이요, 이 행이 쌓인 것이 인간으로서 성공이요, 이 성공한 사람을 표현해서 성현군자니 영웅호걸이니 하는 것이다.
이 행함이란 길이 아니면 안 되고 이 길을 알자면 배움이 아니면 안 되고 이 배움이 있자면 가르침이 아니면 안 되고, 여러 조건이 구비되어 성공하자면 성실함이 없이는 안 되고 이 성실함이 있다면 공경이 없어서는 안 되며, 이 경이 있다면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성, 경, 신 세 조건이 있음에도 성공 못 하는 법은 없으며. 행하지 못할 것도 없는 것이다.
제일 먼저 도가 있어야 하고, 이 도를 행하고자 하는 학인이 있어야 하고, 이 학인이 있으면 가르쳐야 되고, 가르침을 받은 후에는 행해야 되는데, 이 행함이 있자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 믿음이 공경으로 변해야 되고, 이 공경이 성실로 되어서 쉬지 않으면 마침내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보통 이치요, 불변의 철칙이다. 이 궤도를 벗어나서 행해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말해 두며 이 행 저 행 해서 별 행이 많은 것 같으나 결국 성공의 길을 행하자면 이 성, 경, 신을 구비하고 쉼없는 행함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작
천지의 순환이 자연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구르고 있는 것은 다 아는 바다. 이 천리의 궤도라면 하늘로 덮이고 땅위에 실려 있는 만물이 모두 벗어나지 못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처음과 끝을 맺는 것이니 이 자연을 어기지 말아야 옳을 것인즉 이것을 순리라 한다. 옛사람의 시조에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저절로 나온 몸이 늙기조차 절로절로"라고 대자연 속에서 그 자연을 본 바와 같이 자연에서 나온 몸이 늙는 것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리라는 뜻이다. 누가 이 대자연을 어기고 부자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 대자연이라는 것도 그 궤도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인류가 이 자연의 궤도에 오르자면 사람으로 사람된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이 도리를 하는 것이 역시 자연의 궤도를 걷는 것이요, 순리이다. 해와 달의 차고 기울음이 있으며 동에서 서로 행하는 것도 자연이며 빛의 어둡고 밝음이 있는 것과 낮과 밤이 있는 것도 자연이요, 별과 구름이 모두 그 자연의 도를 벗어나는 것이 없고 바람과 비, 서리와 눈이다. 그 궤도대로 되는 것도 역시 자연이다. 지도도 천도와 같이 생양수장(나고 자라서 거두고 감추어진다)이 궤도에서 자연적으로 된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성질이며 불은 위로 치솟는 것이 자연스런 성질이요, 나무는 구부러지는 것이 자연성이요, 쇠붙이는 단단한 것이 자연성이요, 흙은 곡식을 심는 것이 자연성이다. 동물은 생로병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사람도 이 천지의 자연 속에서 나서 다른 동물과 같이 생로병사로 지낸다면 다른 동물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오행이 모두 갖춰져 있고 만물 속에 스스로 행동하며 소천지라 하는 것이니, 자연 속에서 부자연함이 없이 천지의 궤도 그대로 걷는 것이 사람된 도리라 할 것이다.
그러니 만물이 생동하는 대자연의 궤도를 천지와 같이 가자면 무엇으로 되는 것인가. 태어난 그대로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으면 금수와 다를 바 없으니, 이 금수를 면하기 위해서는 천지의 궤도와 대자연을 본받아서 성인이 하신 말씀을 배우고 몸소 체험해서 "위로는 하늘의 형상을 살피고, 아래로는 땅의 이치에 통달하며 가운데로는 사람의 일을 살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당연히 할 도리를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사람된 의무이며 책임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쉬지 않고 노력하면 바로 군자가 된다고 하였다. 또, "짓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하였으니 사람이 사람된 도리를 성인이 가르치신 대로 배워서 그 수를 면할 도리를 한 가지씩 작해서 "오늘 한 가지 일을 짓고, 내일 한 가지 일을 지어서 끊임없이 지어 나가면 마침내 군자를 이룬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군자란 금수와 거리가 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군자란 천지자연의 궤도를 본받으려고 역작하는 사람의 명칭이요, 이 작이 역작을 하지 않더라도 순작이 되면 현인이요,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지음이 되면 역시 이 작이 대자연과 합치해서 그 궤도대로 행할 수 있는 성인이요, 또한 사람 중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경지까지 가게 되는 것이 이 작이라는 글자의 힘이라는 것이요 이것을 저버리면 성공을 못 본다는 말이다. 성공을 못 본다는 말은 곧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다는 평가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되자면 사람된 도리를 알아야 하겠고, 이 도를 알자면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을 받자면 배워야 하고, 배우자면 행해야 하고, 행하려면 작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음으로써 비로소 금수와 거리가 생겨서 천지 자연 그대로 걷게 되면 이것이 진인이요, 성인이요, 현인이요, 또 군자도 되고 대인도 되고, 영웅호걸도 되는 것이며, 충효경렬이나 문장명필, 재자가인이 다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천지의 대자연에 접근하자면 이 몸, 이 마음에서 잠시도 이 작이라는 글자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도, 교, 학, 행, 작의 순서를 잊어서도 안 된다.
믿음, 공경, 정성
어떠한 일이든지 우리가 시작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이요, 믿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그러니 첫 번째 조건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무슨 일이고 착수하여 될 리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일이다. 믿음이라면 그 일을 충분히 알고 의심이 없어야 믿을 수 있을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믿거든 공경하라는 것이다. 경이라는 것은 무슨 일이나 그 일을 하지면 당연히 실행해야 할 일을 실행함으로서 공경이 생기는 것이다. 소홀함이 없이 하라는 것이다. 공경함에서 인내도 생기고 지구력도 생기고 추진력도 생기는 것이요, 목적에 도달하기까지는 이 경만으로는 좀 부족해서 정성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정성이라 함은 그 극치점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찻물을 끓이는데 냉수로는 찻물이 안되니 끓는 물이라야 된다는 것을 알고 찻물을 끓일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 신이요, 차를 끓일 물을 달이는데 실수없이 다른 일을 안보고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것이 경이요, 말하자면 냉수를 깨끗이 길어 와서 깨끗한 차주전자에다 담아서 화로에다 올려놓고 부채질을 주의해가며 하고 있는 것이 경에 속하고 이 냉수가 비등점에 가고 찻잎을 넣게될 때, 성심성의로 하지 않으면 목적에 가까우면서도 성공하기 곤란한 것이다. 이 정성이 아니고는 성공에 도달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믿음으로 시작하여 공손히 일을 해 나가서 정성을 다해야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더구나 정신공부 같은 것은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데 믿음의 극치점이 경이 되고 경의 극치점이 성이 되며 성의 극치는 성공이 되는 것이다. 공부하는데 스승을 구하되 그 스승의 자격을 알고 믿으며, 믿게 되므로 그 스승을 공경하고, 그 공경이 극도에 가서 정성을 다하면 스승의 가르침도 이루어지고 자기 공부도 성공할 것이다. 세상에서 신, 경, 성의 하나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확신하는 점도 발견 못하고 의심을 가진 채 이루고 못 이루고의 여부도 가리지 못한 채 착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신, 경, 성이 없이 일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고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물론 예외적인 일이다. 믿음, 공경, 정성을 말하며 일의 이루고 못 이룸이 사전에 확정된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붓을 든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신, 경, 성이 없이는 절대로 성공이 없다는 것을 확언해 두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이 확보되면 성공 못하는 법이 없고, 은이 아무리 없는 사람이라도 이 세 조건이 확보되면 틀림없는 행운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인은 조명이라고 운명론을 반대하는 이유이다. 누구든 무슨 일을 하든지 확신을 가지고 경의를 다하여 성심껏 하면 성공한다는 확정론을 말해둔다. 그렇다고 자기 역량이나 주위사정을 따지지 않고 아무 일이나 착수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역량에 합당한 것을 택해서 목적을 삼고 나아가되 이상의 세 조건을 확보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역량과 성품의 단점을 돌아보지 않고 추진한다면 절대로 성공이 없다는 것도 덧붙여 말해 둔다.
수행자의 책읽기
6월 초하루부터 엿새까지 우연히 독서를 하게 된 것이, 일기로 시종여일하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씀을 독파하느라고 다른 정신없어서 붓을 들지 못하였다. 그간 일주일에 가까운 시일을 중용, 대학을 읽는 것을 시작으로, 그 다음은 불경을 좀 보고 또 그 다음 선가서를 보았다. 또 그 다음은 요즘의 유사종교의 책들을 보았다. 무슨 책을 보든지 다 착해야 하고 착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요, 그 편법은 비록 다를망정 목적은 동일한 것 같다. 성인의 말씀은 알기 쉽게 설명되어졌고 그 다음 되는 현군자의 말씀은 세상사람을 상대로 자세하게 설명하느라고 말을 중복하다보니 도리어 상세한 것이 병이 되어 잘 알 수가 없다. 성인의 말씀이 주목적을 바로 말씀하신 데 비하여 현군자의 말씀은 아무래도 지엽적인 상세함 때문에 주된 서술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얼른 보면 성인의 말씀은 너무 쉬워서 도리어 그밖에 무엇이 있나하고 심오한 것을 찾다가 본의를 상실하게 되고, 어느 것이 설명인지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서 역시 본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니 성현군자의 말씀은 본뜻이 분명히 있어도 알 갈아 없고, 보통사람들이 한 말씀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현의 경전 속에 나오는 어느 구절 같으나 아무리 보아도 그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말하자면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구경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슨 책자를 보든지 먼저 작자가 누구인가부터 알아보고 독서를 해야 그 책의 원저자의 본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6일간에 백여 권의 책을 독파하고 보니 성경현전은 어느 때든지 성경현전이요, 보통사람들의 저술은 좀 우수하다 해도 오십보백보였다. 그러나 성경현전이나 보통사람들이 저술한 것이나 거의다 선행을 하라고 한 것이요, 악행을 하라 한 것은 없는 것이, 큰 나라에서 국빈을 접대하는 음식이나 가난한 집에서 간신히 끼니를 잇는 음식이나 음식의 본 목적은 동일하지만 정갈함과 더러움, 후하고 박함이 다를 뿐인 것과 같다.
그리고 같은 음식이라고 굶주린 자는 맛있게 먹고 목마른 자는 달게 마시는 것이요, 비록 거친 음식으로라도 배불리 먹은 사람은 아무리 팔진미가 있더라도 다시 먹을 생각을 않는 것과 동일하여 아무리 성경현전에 좋은 말씀이 많더라도 선입견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현전을 다시 더 볼 생각을 안하고 혹 독서한대야 선입견된 생각의 참고건으로 볼 정도이지 성경현전의 본의를 탐구코저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선입견을 검토해 보고 개과천선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동서고금의 성현은 비록 시대와 거주지에 상이점은 있으나 그 주목적은 거의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음식으로 구할 수 있고 무식함은 독서로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음식으로 기갈을 면하고 독서로 무식을 면하였다고 충분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행실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실은 성경현전에서 본 바 도덕을 자기 자신이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요, 누가 억지로 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 길을 가자면 첫 번째 필수조건이 무식해서는 안되는 것이요, 이 무식을 면하자면 독서를 안 할 수 없다는 것을 재강조하는 것이다. 독서를 한다고 음풍영월하는 글귀나 지어서는 소득이 없는 것이다. 또 독서를 많이 한 사람들 중에 선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라 하여, 옛사람의 악행을 많이 보고 이 악행을 그대로 이용하는 사람도 아주 없다고는 못한다. 이와 같이 그 독서에서 오해하여 악행을 하고도 수백 년의 종사를 보전하더라는 식으로 자기 합리적 견해에 빠져서 악행을 알며 하는 자도 있고, 독서로 무식을 면하여 지능이 생겨서 행하는 일이 자기의 품성을 수양하는 도덕이 없는 고로 모르는 사이에 선행보다 악행이 많은 사람도 있고, 아주 지능만 양성해서 갖은 악질적 행동을 택해가며 하는 사람도 많다. '선하면 복이 오고 악하면 화가 온다' 라서 보다도 이런 인간을 자연적으로 신의 벌보다도 인류의 심판을 먼저 받는다는 것이 우리가 보는 실례이다. 이는 독서 중에 분명히 나오는 동서고금의 예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없다. 그러니 독서로 지식도 늘리려니와 첫째하는 조건으로 도덕의 진리를 연구해서 비록 성현군자는 못 되더라도 죽기 전까지 그 길을 가보면 알게 모르게 그 길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본다. 옛사람이나 현대인들이 자기도 무던하거니 하는 데서 각자의 의견을 기록해 본 것이 다섯 수레의 책만큼 많게 되고, 이 많은 의견이 도리어 '물고기의 눈을 진주로 오인하는' 과오를 범하게 하는 원인이다.
스승의 도리는 제일먼저 그런 혼동이 안 될 정도의 분별력부터 가르치는 것을 중대 책임으로 본다. 이 스승의 도가 없는 사람이라도 자각해서 이 혼란을 분별할 정도까지 전력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분별을 못하고 독서를 하다가 도리어 성경현전보다 많은 기괴한 책자로 인해서 사람들이 우리의 본연의 천성인 선이라는 것을 도외시하고 지능으로 범죄하여 인생의 죄과를 키운 일이 얼마든지 있다. 또 이 죄를 범하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태연자약한 사람이 많다.
이것이 뜻밖의 사실은 아니다. 그것은 죄를 범한 사람의 책임이라기 보다도 이것을 분변 못하게 한 국가교육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국가에서는 문교부 장관을 특선하고 교과서부터 개정해서 국민의 기본교육부터 아주 완전하게 하여 학과를 졸업하면 선이 무엇인지를 분변할 기본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정신수양법에 대한 사견
동서양 각국에서 고대부터 정신수양법이 있어 왔고, 타국에서는 각자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니 재론할 필요가 없으며, 그 방식의 차이도 말하지 않기로 한다. 물론 동서양 각국에서 이 정신수양법이 시행된 연대로 각자의 차가 있고 또한 그 효능도 천차만별이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천년 유구한 세월을 두고 우리 선조들이 계계승승해서 성쇠를 거듭하며 전해오던 우리 민족의 고유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 본토는 도리어 신라 삼국통일 이후에는 불교사상의 보급으로 고유한 우리 수양법을 망각하게 되어, 이때부터 우리 민족은 약화되고 말았다. 여기서 사대사상이 전성해서 우리의 정신문화는 흔적도 찾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국우족하는 선현들이 당시 국가의 시책이야 무엇이라 하든지 개의치 않고 정신수양법을 이심전심으로 계승하여 쇠퇴일로로 천여 년을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 심법이 전해온 것만도 우리 민족에게 다행한 일이라고 보아야 옳다. 이것은 오로지 삼국통일 이후 국책으로 억압해서 발전을 못하게 하는 와중에서도 전현들이 희생적 정신으로 이 법을 전해 주신 까닭이다.
즉, 고려 오백 년의 국교인 불교 전성시대를 지내고 이조 오백년의 유교 전성시대를 지내고도,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곳에서 수십 년씩 공을 쌓아 당시 국가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을 습득해가며 후인에게 전해 주신 그 공헌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하다고 본다.
조선조 말엽에 와서는 불교도 망하고 유교도 아주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겨우 명맥만 전해오던 이 정신수양법도 연명할 여지가 없는데, 더구나 국치를 당하고서는 일제의 압정 하에 감히 수양조차 못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강압 속에서도 각파의 수양사들이 명맥을 보존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삼남에서는 지리산파와 대소태백산파와 속리산파와 계룡산파와 변산파가 있었고 경기에서는 송악산과 삼각산과 설악산에 약간의 산 일이 있었고 강원도에서는 금강산파와 오대산파의 소수가 있었으며 황해도 구월산파와 평안도 묘향산파가 상당수가 있었고 함경도에서는 백두산파가 좌우양파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가 소년시대에 아마 각파세력이 정립했던 것 같다.
내가 4,50세 될 때까지는 기성 잔존파들이 생존한 분들이 거의 백을 헤아렸는데, 을유광복 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만주, 몽고와 중국에 왕래하던 분들의 소식이 묘연하고 6.25 사변이 경과한 후로는 남은 별 몇 개가 명멸할 뿐, 그후 계승해서 수련하는 인사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관에서 취체가 심한 관계도 있으나, 청년세대들이 정신수양 방면에는 현실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현대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학부를 나오고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에 다시 연구할 시간의 여우가 있어야 자신이 전공하는 과목이나 혹 정신철학 과목이라도 택해 볼 것인데, 우리 나라 실정으로 보아서 학부나 대학원을 나오기가 무섭게 직업을 구하게 되고, 그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인사는 실직군으로 낙오감이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 무엇을 전공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이다. 대체로 경제력이 부족해서 여유 적적하게 이것이고 저것이고 연구할 수 없는 관계이다.
이 정신수양법도 이파로, 삼파로 분열되어 있으니 끝에 가서는 다시 하나로 합해지는 이치로 성공하는 것은 일반이나, 그 수양법의 종류와 효능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정신을 통일해서 비상력을 낼 수 있다는 점만은 거의 동일하다. 대체로 구분해서 피동법과 자동법의 2종류가 있고 그밖에 피동반자동반으로 수양하는 법이 있다. 그래서 세 종류라 한다. 그 세종류의 효능은 동일하지 않다. 피동법의 수양이라는 것은 둔갑법의 총칭으로써 그중 저열한 십칠둔이니, 이보니, 오귀법이니 하는 등등까지 모두 피동법에 속하고 축지니, 차력이니도 계급의 차는 있으나 여기에 속한다.
자동법이라는 것은 자기정신을 수련해서 비상력을 얻는 법이다. 유가전현들의 일조활연관통이라는 것이나, 불가의 선법이나 선가의 수단법이나 모두 별 차이 없는 과정이다.
피동반자동반이라는 것은 초정산이니, 순적산이니, 사시산이니, 승문산이니, 기문둔갑법이니, 신척산이니, 시해법이니 하는 등등과 신검, 신탄, 신궁 등이 모두 이 법에 속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만 정신수양법 중 자동법에 국한하고, 그 자동법 중에서도 불가선법이나, 유가의 회광반조법이 아니라, 순수한 호흡법으로 정신을 일치시키고, 기혈을 조화시키며, 신체를 건강하게 함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자연적 효능을 가져오고, 이에 따른 기억력의 증진은 물론, 사고력이 초비상적이 되게 하는 백두산족 전래의 정신수련법이다. 이 수련을 올바로 행하면 보통 사람의 열 배 이상 되는 정신력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정신수련을 습득해 본 사람으로는 누구나 이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비록 연습의 단계가 있어서 각 개인의 실력차가 있을 수 있으나, 믿을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가장 쉽고 가장 간편한 법이다. 물론 동일한 정신수양법이라도 각 개인의 경험이 달라서 저술한 바에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정신수양법에 대한 나의 사견을 쓰는 것이요, 이것이 정론이요, 타인의 이론은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선배들에게 직접 듣고, 직접 보고, 스스로 실제수련을 해보고, 또한 내가 내 아랫사람들을 훈련시켜 보고 난 후의 경험을 쓰는 것이다.
내가 청장년 시대나 오십대에서라도 이 수양법에 대하여 발언하고자 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선배들이 얼마든지 있었고 비록 후배라도 뛰어난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대무지전이라 소무야 불간참 했던 것이요, 내 생각에야 감히 이심전심의 경지를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나, 어언 선배들은 서산에 지는 해의 느낌이 있고 잔성이 무기라, 내가 불초함으로 모르는 것은 아니나, 함구불언할 수 없어서 죄됨을 알면서 선배들에게 들은 그대로 난초해 보는 것이니 후일 제군자들은 오늘날의 내 심정을 통찰하시고 외람함을 용서하시면 족하다. 이 정신수양법이 널리 퍼짐으로 인하여 황백전환기가 하루라도 속히 올 것이요, 세계 평화의 배태가 여기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며 이 붓을 그친다.
천지인 불가분론 서
건상(하늘의 형상)의 해와 달이 낮과 밤을 나누고, 북극과 남극으로 천추(하늘의 기둥)가 되며, 28수(별)가 경성이 되고, 오행성(금, 목, 수, 화, 토성)과 여러 별들이 위성이 되어 천체를 구성하였다. 태양계의 별들이 비록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으나 동일한 궤도에서 쉬지 않고 움직임을 계속하는 것이니, 이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끝없는 세월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를 하늘이라 한다.
천체도 순양명으로만은 오래 지탱 할 수 없고, 태음과 태양의 음양으로 배합되어야 비로소 천리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천체의 자연은 순양인 태양의 양명(밝음)이 있을 뿐이다. 다만 각 별들이 자전하여 반양반음으로 음양이 조화되어서 지구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지구가 동서로 낮과 밤을 나누어 경이 되고 남북극으로 지축을 짓고 위가 되어 적도의 왕래로 춘하추동 사서가 되고, 수화목금토 오행으로 이 지구의 구성체가 되어 서로 상생 상극 변화로 불멸영생 하는 것은 바로 천체를 본받은 것이다.
하늘과 땅의 원리 그대로 인체가 구성되었다. 머리는 하늘을 본받아서 이목구비로 천오행이 되고, 배는 땅을 본받아서 오장육부로 지오행이 되고, 이환궁(머리 한가운데 부분)은 북극이 되며, 항문은 남극이 되고 남북극으로 인축은 척추가 되고, 사지로서 사유열수가 되고 산악행룡을 본받았다.
또한 남자의 외신(생식기)은 건(하늘)을 본받고 여자의 자궁은 곤(땅)을 본받아서 음양이 배합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동일정이 천지의 본을 받지 않음이 없다. 그리하여 하늘에는 365도가 있고, 또 성수(별들)가 365개인 것이다. 땅에도 각 성수의 응하는 지역이 있고 사람에게는 365개의 혈이 있는 것이다.
땅위에 성신의 응하는 곳이 명당대지라는 음택(묘자리)일 것이니 사람이 학문을 연구하려면 상관천문(위로는 천문을 본다)하고 하달지리(밑으로는 땅의 이치에 통달함)하며 중찰인사(가운데로는 사람의 일을 살핌)해야 하는 것이다.
근래에 천문을 본다는 사람들이 지리와 인사를 알지 못하며, 인사에도 침혈을 안다는 사람들이 지리나 천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모두 그 이치를 알지 못하고 공연히 근시안적으로 보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인체의 365혈을 말하자면 지리의 365혈과 천문의 365도의 이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필 천지인의 혈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과 멈춤이 모두 천지인에 합치되는 것이니, 그 원리를 연구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으로 한 가지라도 깨달음이 있다면 미루어서 무슨 일이든지 알 수가 있다.
사람은 본연의 천성인 명을 욕심으로 어둡게 만들고 심하면 아주 칠흑같이 깜깜하게 되어서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천성인 밝음을 후천적으로 밝히게 되면 천지인이 같은 이치로 영원히 불멸할 수도 있고 하는 일마다 밝아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학지도는 명명(선천적으로 밝음을 후천적으로 다시 밝힘)에 있다'는 것으로서 사람의 욕심으로 가리워진 밝은 본성을 후에 본심으로 밝히면 이 사람은 성인도 되고 현인도 되며 군자도 되고 천인도 된다는 것이다. 비추이지 않는 물건이 없는 태양의 양명을 본받으면 사람도 그 행실이 극에 달할 수 있다고 본다. 천지가 곧 사람이요, 사람이 곧 천지라고 본다. 땅도 하늘을 본받고, 사람도 하늘을 본받았으니, 천지인은 상호불가분의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체는 곧 천체이며 지체이다.
덧붙이는 글
우연히 캄캄한 길을 걸음 나아가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가던 중에 산길, 물길을 많이 지났다. 무심한 가운데 길을 따라 걸어본 것이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는 등산로 였다.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몇 번인지 쉬어가며 오른 것이 앞도 없고 뒤도 없고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한 걸음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한다. 결가부좌하여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중에 동쪽하늘에서 아침해가 비쳐 오니 천지가 광명할 뿐, 내 마음속은 여전히 고요하다. 고요하면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이 있으면 다시 고요하니라. 움직이고, 다시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며, 움직이는 가운데 고요함이 있으리라.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리라.
길이 움직이고 고요할 줄 알지 못하며 길이 고요하고 움직일 줄 알지 못하리라. 고요함인지 움직임인지 가릴 길이 없으리라. 고요할 대로 고요하고 움직일 대로 움직이리라. 아무렇게나 기울어지지 않고 허공에 나아가 다시 돌아오고 다시 나아가 다시 돌아오리라. 그러나 나아가고자 함도 아니요, 그치고자 함도 아니요, 또는 안 나아가고자 함도 아니요, 안 그치고자 함도 아니니라.
이것이 나라는 것임을 알라는 것이다.
방법은 다르다고 해도 모든 종교, 사상의 목표는 같다. 한민족은 그 자체가 본래 하늘을 공경하는 종교적 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것이 이곳에서 꽃피게 되어 있다. 동방에서 나온 것은 다시 동방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서양사상도 언젠가는 우리 홍익인간 정신에 수용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21세기는 종교라는 간판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갈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했을 때에 단군 정신은 그 7할 정도가 말살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을 성업이라 표현했는데 신라가 통일했다는 땅이 얼마나 되는가. 한반도의 반밖에 안된다. 백제와 고구려가 가졌던 땅이 얼마나 넓었는가. 신라는 산동성 안쪽, 발해, 만주를 모두 당나라에 비친 것이다. 그것이 소위 삼국통일이란 것이다.
발해가 복구한 그 옛 땅은 어디로 갔는가. 제주도, 충청도, 전라도가 백제란 말인가.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만을 고구려로 알고 있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삼국통일 때부터 우리 배달민족의 정신은 말살되어 버렸다.
단군이 백두산 이남인 조선의 할아버지만은 아니다. 중국의 양자강 이북과 산동반도, 만주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단군을 섬기고 있다. 우리의 어천절인 3월 15일을 중국에서는 '쌍시리절' 이라고 하여 역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또 우리 나라에서는 고대부터 중국에 가서 임금된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모두가 동이족으로, 이것은 역사 기록이 증명해 주고 있다.
중국인들도 곤륜산보다 장백산(백두산)을 더 높은 성산으로 인정하고 있고, 그곳에 선비족이 산다고 부러워했다. 오래 전에는 백두산이 제일 높은 성산이었다는 말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이란, 한마디로 동서남북의 사람들이 사람노릇을 해가며 평화롭게 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순과 대립, 상쟁과 상극의 세계사를 씻어버리고 평화를 위한 상생, 화합의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자는 말이다. 이것은 선민이 아니라 천민인 우리 겨레의 역사적 소명이다.
이렇게 말하면 국수주의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문화는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천하게 여기면서, 남의 것이라면 까닭 없이 좋다고 맹신 맹종하는 얼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역사에 가리워진 우리 고대문화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난 일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또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도 많다.
우리 나라 역사를 보자. 상고사는 잘 알 수 없으니 접어두고, 중고역사에서 을지문덕이 수나라 병사 백만을 청천강에서 대파하였다. 당시 수라면 중국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강국이요, 또 우문술이라면 상당한 장수다. 반면에 우리 나라는 삼국시대요, 병력이 태부족이었는데 수나라 군대를 청천강까지 유인하여 전멸시켰다.
야사에 전하기를 수나라 병사들이 청천강 북쪽 기슭에 와서 도하작전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 강물의 깊이를 알지 못해서 주저하였다. 그때 강변에서 승려 세 사람이 강을 건너는데, 물이 무릎까지밖에 차지 않았다. 승려들이 강을 다 건너가는 것을 본 수나라 장수가 곧 대군에게 도강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대군이 강의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뜻밖에 수심이 깊고 또 고구려군이 반격하는 바람에 수나라 군사가 거의 전멸되었다.
그 승려들은 사람이 아니고 청천강 남쪽 기슭의 어느 사찰에 봉안한 미륵불 세 분이었다고 한다. 비록 알 수 없는 일이나 수나라 군대가 청천강을 건너다가 패망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가 여기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을지문덕이 무슨 병력과 병법으로 수나라의 그 엄청난 대군을 전멸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또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와 개인적으로 대결을 하여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병대병의 전술이었을 것이다. 그 전술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일시적으로 수나라 병사가 실수하여 패했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추측해 보더라도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 재반격을 하였을 것인데,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주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수나라 군사로 하여금 뒤돌아볼 엄두를 못 내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그 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전쟁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깊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전래되던 우리의 병법은 무엇인가? 무기는 무엇이 있었는가? 을지문덕은 무슨 공부를 하던 사람인가? 이러한 것들을 각 방면으로 조사해야한다. 역사를 볼 적에 주마간산 식으로 보아서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다.
연개소문이 당나라 병사를 대파할 때에도 보면, 당태종 이세민이 중국을 평정하고 그 여세를 몰아 우리나라를 범하였다. 당시 중국의 천하영재를 모두 모아 가지고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 무슨 고유의 전통적인 무예나 병법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연개소문의 지략과 용맹은 당나라에서 감히 상대를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중국에서는 열 여덟 종류의 무기를 사용하였는데,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무슨 무기를 사용하였는가? 또 중국에서는 병력 배치 방법으로 팔문법이 유행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무슨 병력 배치법을 썼는가?
이 모든 의문을 풀어 줄 자료가 한 건도 역사에 전하는 것이 없다. 그저 연개소문이 용맹하였다는 것뿐이다. 이래서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 역사가들이여, 고고학을 좀더 연구하고 나서 역사를 쓰라는 것이다. 당시 민간풍속은 무엇이었으며, 국가 정치는 어떠했는가 하는 것도 현재 우리가 보는 역사책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도가 있었는데, 그것이 있었다는 기록만 엿보일 뿐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상세한 것은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다. 화랑도에 나오는 국선이라는 것도, 어떤 수련을 해야 국선이 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삼국사는 완전히 피상적인 것만 남았을 뿐이다. 당시 우리의 예술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하였던 것은 사실인데, 역시 그 예술의 흔적은 있으나 그 예술이 전래되지는 못하였다.
그 신라 말기의 견훤이나 궁예 역시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장수였는데, 그들이 무슨 병법을 지니고 있었는지 상세히 알 길이 없다.
그 다음 고려사에 보면 초기에 서희 같은 명장이 있었고, 중기에 강감찬 같은 명장이 있어서 종종 그 전하는 이야기들은 있으나, 역사로 보아서는 조금도 알 수가 없다. 또 도자기 예술도 당시에는 보통으로 알았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 뛰어난 공예술을 다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소중화라고 자처한 유학자들이 자기 나라에 전래하는 인심이나 풍속을 기록한 일이 없으니,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일이다.
조선 개국 초기에는 문무를 모두 겸비하였던 듯하다. 태조 대왕의 용맹스러운 모습이나, 이지란의 용맹한 자태가 서로 우열을 다투고, 또 세종 대왕의 문화정치는 역사적으로 뛰어났다. 당시 김종서 같은 재상은 문무를 겸하였고 세조 대왕도 역시 문무의 재인이었다.
그렇다면 개국 초기에는 선비들이 문과 무를 모두 공부한 것이 사실이다. 그 다음에도 선조 대왕 당시에 지혜로운 인물이 속출하였는데, 이들의 맥을 살펴보면 순수한 주자학파가 있는 반면에, 이와는 달리 우리 나라의 전래하는 성리학을 전공한 이도 있다. 이 방면의 학자들을 주자학파에서는 소강철학파라고 지칭하였으나, 사실은 우리 나라 유교는 주자학파뿐이오, 소강절파는 전래된 일이 없다. 그들은 우리 나라에 고래부터 전해오는 학문을 연구한 분들이었던 것이다. 또 주자학파는 교리에 치중한 교파가 대부분인 것 같고, 본체를 공부하는 심파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우리 고유의 철학을 연구한 이들은 주자학파의 탄압이 무서워서 발표를 안 했던 것이다. 그래서 화담 서경덕, 북창 정렴, 남명 조식, 구봉 송익필, 율곡 이이, 고청 서기, 미수 허목 등과 같은 인물이나 박엽, 허생, 진묵, 서산, 사명당 같은 이들은 모두 그 이름이 별로 나지 못했다. 또 숨어 있던 선비 중에도 무수한 위인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율곡선생 한 분만이 국가적으로 대접을 받았을 뿐 다른 이들은 입에도 오르지 못한다. 이 모두가 주자학파의 횡포 때문이었다.
이렇게 회고해 보면 조선문화가 선조 대왕 시대까지는 그래도 전래되었으나, 그후에는 흔적조차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인조대왕 이후 인물이 나오지 못했으며, 효종 대왕때에 약간의 숨은 선비들이 있었으나 감히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후 2백년간은 역사에 기록할 만한 자료가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역사들은 무엇을 참고하여 붓을 드는가, 그것이 나는 궁금하다.
우리 나라의 인물전기부터 왜곡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그런가 하면, 전기라는 것은 마땅히 주인공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공부했는가를 첫출발부터 잘잘못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당연하다. 말하자면 임진왜란에 충무공이 세기적인 위인으로 성공한 이유가 자초지종 상세히 기록되어야 다음에 제2의 충무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가치라는 것인데, 우리 나라의 전기에는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테면 거두절미의 문학일 뿐이다. 충무공이 수련시기에 무슨 수양을 해서 어느 정도의 단계에 갔는가, 관직의 길로 나아가서 수양한 실력을 어떻게 활용했으며, 그리하여 어떤 전략으로 명량, 노량 대해전과 같은 신화적인 전과를 올렸는가가 상세히 기록되어야 한다. 후대 사람들은 말하기를 충무공은 거북선으로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이 거북선을 만들게 된 원인과 그 방식이 기록되어야 할 것이데 의외로 거북선에 대한 평면 외관도는 있으나 입체 설명도와 해설이 없고, 충무공 자신의 거북선 제작 동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나라 인물 전기의 부족한 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율곡과 충무공의 관계에 얽힌 야담이 많은데, 이 야담을 구체화해서 후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끔 명료하게 기록하지 않고 다만 상투적으로 그 인물에 대한 칭찬이나 늘어놓아서 외양만 번지르르하게 써놓은 것뿐이다. 충무공뿐만 아니다. 조선 오백년의 인물전기에 실린 사람들 모두 단점이라고는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인물전만 가지고는 후대가 그 진실을 알 길이 없다.
내가 지금 이렇게 중언부언하는 것은 현재의 역사책에는 우리 나라의 전래되어 온 고래문화가 한 건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한심해서다.
우리의 대황조께서는 '태초에 한 기운이 세갈래로 맑은 형태로 형상화되고, 그 세갈래의 형태가 다시 한 기운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였다. 또 '장차 삼교가 통합되어 한 집안이 될 것이며, 간방의 도가 다시 빛나서 시작과 끝을 이루리라'고 하셨다. 여기서의 간방은 바로 우리 나라를 가리킨다. 이를 공자도 묵시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석가모니 부처는 미륵불의 도래를 말하였는데, 미륵불의 용화세계라는 것도 우리 나라를 의미한다. 여러 방면으로 각양각색의 설들을 종합해 볼진대, 어느 모로 보든지 성인이 '시작과 끝을 완성할 도'를 다할 곳은 바로 우리 간방이다. 여기서는 내가 이러 정도로 말하지만, 실제로 중국이나 인도나 구미의 성현들이 모두 우리 나라에서 장차 구세주가 나온다고 말한 일이 있다. 이런 점은 종교가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구미 각국에서는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일에 열심이다. 물리학을 비록산 자연과학자들과 예술가들도 동양의 정신을 찾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젊은이와 지식인들은 동양의 고대철학이라면 덮어놓고 미신이라고 돌려버린다. 이 무슨 역설인가? 서양의 선진국에서는 동양철학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동양에서는 고대철학을 미신이라고 반대하니,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숭배하는 구미의 선진 철학자들이 미신 숭배자란 말인가?
우리는 먼저 역사의 이면에 가리워진 우리의 고대 전통 철학을 공부해야한다. 우리의 전통 철학이 미신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과학이라는 미신, 합리성이라는 미신에 젖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대 철학을 연구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흩어진 고서들에서 찾아 읽는 방법이 있고 또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학문을 배우는 방법이 있으며, 실질적으로 그러한 철학을 체득한 이들에게서 배우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사가들이 피상적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우리의 사상과 철학을 다시 부활시키는 일이다.
전통의학론
전통의학을 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먼저 인체의 구조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은 구조의 각부분을 분해해서 이치에 맞게 논하고 나서 각 부분을 다시 합체하여 총론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인체의 구성도 천체나 지체와 동일한 배합체가 되어 있는 것이라 인체의 각 부분을 천체나 지체에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원리론에 충분한 해석이 된다면 이 원리를 벗어난 것이 병이 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알 것이요, 이 원리를 잘 알면 그 고장난 곳을 원상 회복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장이 원체의 성능을 변하게 할 정도로 중대하다면 이것은 원상복귀를 못하고 현상유지만 가능할 것이요, 이 현상유지도 어려울 때에는 당연히 그 체의 종지부를 고하는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사람 가운데 전통의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원리론에 치중하지 않고 병리학이나 해부학, 임상진단학, 또는 치료학 등을 위주로 하는 중대 착오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체구성원리를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해석할 수 있다면 병리학은 별로 큰 어려움이 없이 상징적으로 판단될 것이요, 해부학이나 임상진단학이나 치료학이 모두 이 인체구성원리에서 미루어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부분적 해설을 위주로 하지 말고 원리론을 충분하게 알도록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바이다. 병리학을 배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인체구성원리를 충분히 알고 있다면, 이 원리에 반대되는 것이 병이 되는 것이라고 알아지는 것이니, 각 부분에 대한 학론이 모두 이러하다는 것이다.
전통의학으로 보아도 황제소문, 장부총론, 맥경, 상한론, 운기론, 풍한서습론 등이 있으나 의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상의 제론에 정통한 사람이 전국을 통해서 몇 사람 되지 않고 각자 한 가지 기술, 한 가지 능력으로 개업한 사람이 대다수라고 본다. 비록 일기일능일 망정 전공한 사람이 역시 드물다고 본다.
현재 쇠퇴하는 전통의학을 갱생시킬 책임을 가지고 전공해서 서양의학 수준을 돌파할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는 의학자와 학생이 얼마나 되는가가 가장 의문이다. 동서의학이 모두 발전될 소지가 충분히 있고 연구하면 서로 배워야 할 것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동서의 의학서적이야 얼마든지 있으나 의학의 원리는 동양에 전래하는 것이 장점이 있고, 부분적인 설명에는 서양의 교수방식이 장점이 있다고 본다. 내가 이 전통의학론을 기록하는 데에는, 동서가 합쳐져야 한다는 신조로, 서양의학은 상식적으로 본 정도요, 전공한 것이 아니라서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는 없으나, 동양의학만은 전공은 하지 않았으나 상식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관계로 이 붓을 들어 본 것이다. 인체란 한 점의 정혈에서부터 시작되어 음양오행의 변화로 피와 근육, 뼈대, 가죽, 털과 기름기, 기름, 수, 골, 막(꺼풀), 정, 기, 신, 의 구별이 있으나 대체로 나누면 혈, 육, 근, 골, 피, 모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에서 정기와 골과 기름기는 피의 맑고 탁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요, 이 맑고 탁함은 사람 몸의 온도에 변화가 생겨서 피의 작용이 지방막으로도, 뇌수로도 변해지는 것이다. 몸의 한열이 적당히 맞으면 몸에 병이 없고 이 한이나 열이 어느 곳으로 지나치면 곧 병이 되는 것이다. 열이 지나치면 정신이 혼탁해지고 피가 마르고 더워지며 피의 흐름이 빨라져서 병이 되고, 그 반대로 한이 지나치면 정신이 위축되어 응결된 혈구가 습으로 변화하여 피의 운행이 느려지는 것이라 역시 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열이 과한 사람은 차게 해야 병이 안되고 원상복귀를 할 수 있으며, 한이 지나친 사람은 따뜻하게 해야 병이 안 되고 원상 복귀하여 건강을 보존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비결이며 피는 뜨거우면 탁해지고 차가우면 응결되어서 모든 운행에 고장이 나는 까닭에 일신이 무병하자면 피를 맑게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 다음은 음식물을 위에서 소화해서 영양가치 있는 것을 많이 취하고 신체의 운동을 적당히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는 건강해질 것이나,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소비하는 것이 많으면 그 건강도 시간문제라 다시 쇠약해진다. 그러므로 그다지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무리한 지출이 없이 적당한 소비만 하면 맑은 피가 축적되어 강한 방어선을 치게 되어 병이 감히 침공할 여지가 없어서 장수하게 될 것이요, 이와 반대라면 쇠약과 요절로 병의 완전한 승리가 될 것이다. 그러니 병을 보고 병의 이치를 조용히 생각해 보면 하나씩 하나씩 원상복귀의 길로 돌아가면 그 병이 치료되는 것이다. 그 치료방식에서 제일 우선되는 것은, 병의 증상이 발견되기 전에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건강에 조금 이상이 발견되거든 즉시로 그 병을 퇴치해서 병의 세력이 커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넷째로 병이 중태로 되었을 때에는 할 수 없이 약을 사용해서 급한 증상을 구해놓고 그 다음 원상복귀로 가는 것이다. 치료법은 주로 피를 맑게 하고, 소화가 잘되게 하고, 한열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요, 청혈제는 청단(가래를 없앰)도 되는 것이며, 여러 가지 병을 가져오는 백 가지 기생충도 제거 해야한다. 이것이 치료의 주요 비결이다. 그리고 증세에 따른 투약은 임시적으로 할지언정 주된 치료법을 증세에 대해서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대체로 대중투약을 하는 고로 일시적 치료는 될지언정 완치가 못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위는 맑고 아래는 탁함이 본성이라 상부의 맑은 곳을 정혈로 맑게 하고 하부의 탁한 곳을 따뜻한 기운으로 습한 것을 말리면 몸이 항상 건강체로 되어 생명을 길게, 병없이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치병의 대요요, 풍한서습 등의 증세로 병이 발생한 때에는 그 병이 생긴 원인을 연구해서 현재의 증세보다 병이 침범한 근원을 주로 하고 현증상을 종으로 하여 장차 병세가 진전될 곳을 미리 보충하여 다스리면 별로 실수없이 치료되는 것이다. 대체로 병의 원리보다 인체구성의 원리를 보고 그 다음에 병의 원리를 알라서 치료방식은 발병의 원인보다 평소 인체에 이상이 생기는 원인부터 치료하고 그 다음, 병리에 해당하는 곳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라는 것이다. 현재 발병 증세가 위급할 때에는 부득이 현재의 증상을 그대로 먼저 치료하는 것이 한 방편이요, 그것을 정법으로 알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치병의 요가 6,7할은 정신으로 좌우하고 3,4할은 약품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침구도 약품치료와 동일한 효과를 보나, 어느 부분에 국한된 것이요, 여러 가지 병에 모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뒷날로 미룬다. 약품치료는 아무리 병리학에 숙련된 사람이라도 약품이 정제된 것이 아니면 처방으로만 병을 치료 할 구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전통 의약계의 약품채집에 대하여 볼 때 아주 부주의가 심하고 현상유지도 극히 곤란한 형편이라 이를 갱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종 약품 가운데 채취방식과 저장방식을 법대로한 약품이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인지 의심이 되고 또한 제약 방식도 처방에 의존하는 정도요, 법제를 제대로 하는 것이 드물다. 그러므로 의학과 약학이 함께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전통의학계의 중대한 결점이라고 생각된다. 해당 의약계에서 한 나라 전체를 통일해서 약품채집이나 제약에 정밀을 주로 하고 권위 있는 검사원이 판정을 한 후에 사용하도록 해야 정당한 의학기술자라도 안심하고 약을 사용하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현상태로는 비록 권위 있는 의학자라도 약품이 명칭만 같고 효력의 차이가 천차만별로 다르니 안심하고 약을 사용할 수 없고 또한 의학자라고 반드시 약품감정을 잘 할 도리가 없는 것이요, 한약재 판매상이라는 곳도 채집방식이 가장 정밀하다고는 못하겠다. 산지에서 약품을 가져오면 매입하여 수집할 정도요, 그 채취방식의 합법성 여부를 운위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것이 전통의학계가 퇴보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이것을 전국적으로 정제품과 감정 합격품이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고 그 다음 현 건재상들이나 약종상들에게 약품감정을 쉽게 하도록 교습시켜서 누구나 정제품이나 합격품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전통의학계의 갱생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또 우리 나라에서 전통의학계를 통해서 유명한 법이 간혹 있는데, 이것을 한 사람의 비장으로 하지 말고 우리 의학계의 발전을 위해서 제공하여 서양의학계와 맞서서 세계진출을 하면 우리의 전통의학도 상당한 세계적 부문을 가질 것이라고 본다. 내가 아는 바에도 나병, 폐병, 간질, 성병 같은 서양의학계에서 불치병으로 보는 것을 우리 나라에서는 산간 벽지에서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별 문제없이 완치시키는 일이 종종 있다.
이 완치방식이 합법적이라면 세계진출을 통한 우리의 국가적 이익은 지대할 것이다. 또 강장제 같은 것도 세계 어느 나라 것보다 우리 나라의 몇몇 집안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약품들은 아주 특수한 효력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도 좀더 연구해서 정제품으로 세계에 내놓는다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의학계에서는 개인주의를 속히 버리고 통일정신으로 합동연구를 해서 최고의 정제품을 만들어 국외진출로 세계의학계를 정복하고 전통의약계의 개선탑을 세우라는 것이다.
옛날 의학이나, 옛사람의 약품들이 현세계의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서양의 의약보다 열 배, 백배의 효능이 있는 일이 종종 있음은 사실이 증명한다. 현대라고 이런 인물과 약품이 아주 없으라는 법도 없는 것이요, 다만 각자의 비전이니 가전이니 하며 발현을 시키지 않은 것이 전통의학계를 위해서 크게 불행한 일이나, 이 부문에 이런 것을 발현시킬 만한 기구가 없는 것도 역시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허락한다면 전통의학연구소를 발족시켰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보기에 전통의학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나 어느 부문은 현세계 의학계에 파문을 던질 것이 많고 또한 약학에도 서양약품보다 아주 우수한 제품이 많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들이 다만 통일되지 못하고 합법적으로 계통을 세우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정제하고 연구를 더 가한다면 우리의 현재 약품으로도 국외 진출에 충분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전통의약은 병이 오기전에 먼저 약을 복용해두면 일평생 건강체를 가질 수 있다는 우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불행히 병이 발생할 경우, 의약이 없는 곳에서 일반적으로 치료하기 쉽도록 고대국가에서도 쉬운 글로 저술한 책자를 전국민에게 보급하였는데 현대 20세기의 보건부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직 초창기인 만큼 설비가 부족해서 국가적으로 의료보급은 못할지언정 전문적으로 연구도 못시키는 것은 보건부 책임자들이 아주 무책임한 것이라고 보는 도리밖에 없다 하겠다.
전통의학론을 얘기하다가 현 의료정책에까지 미친 것은 탈선이나, 말이 여기까지 안 갈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이 다음 시간이 있으면 실제적 예를 들어서 의학이나 약학에 무엇무엇이 중요한 조건인가를 상세히 서술하는 책을 다시 쓰기로 하겠다.
단기 4288(서기 1955)년 1월 10일
우리나라 고유의 체술
우리 나라에 옛부터 전해오는 무술의 비밀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문자화되어 전하는 것은 보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흩어진 가운데 야담으로 전해지고 설화로서 그 지방에 전해질뿐이다. 이것은 당시의 정치가 그것을 전하도록 허용을 안 한 것이 주된 원인이요, 또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치던 방식이 공개되지 않고 한 사람의 높은 수제자가 무예의 전부를 습득 못하고 한 기술이나 하나의 재능을 기르는데 불과하여, 무술의 가장 비밀스런 핵심부분을 실제로 시범을 보일 만큼 닦지 못하고, 입으로만 전해 주고 마음속으로 전해 받는 식이었다. 그러나 다른 공부라면 모르되 무술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체득하지 못하면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나라 무술의 전모를 엿볼 수 없는 주원인이 된다. 그리고 후세 사람으로도 이 전모를 연구하려고 하기보다는 한 가지의 기술이나 재능이라도 습득함을 스스로 만족해하게 한 원인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을 염려해서 각 사람의 각 기술을 종합해서 근본적 체술을 연구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우리 나라 무술을 중국계통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것은 절대적인 오해다. 혹 큰 차이는 없다고 할지 모르나, 그 비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내가 말하던 바이다. 먼저 수차에 걸쳐 얘기한 바와 같이 삼한 이전의 무술은 말할 수 없으니, 약간의 유적과 오래된 전설이 남았을 뿐인 관계요, 삼국시대를 말하면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해 올 당시에, 수양제의 부하로는 중국전래무술에 최대강자들로 상장(지휘관급 장수)이 천명이요, 무사가 수십만 명이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수륙양로로 공격했으나 을지문덕의 한 번 공격에 그만 완전한 패배를 당하였다.
이것은 물론 지형에 익숙치 않은 수나라 병사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지형의 이점을 살린 작전에 말려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현대 군의 참모진들이 항상 말하는 바이요, 우리 나라 장수들과 병사들의 무예가 수나라 병사들보다 우수해서였다는 것을 연구하는 참모진들이 없는 것은 유감천만의 일이다.
그 다음 당태종 이세민의 침략 때에도 당시 중국천하 아홉 주를 통일하던 용맹한 장수와 지략이 뛰어난 장수들을 천명이나 인솔하고, 수없이 위험한 전투에 투입되었던 완전 무장한 갑사가 수십만 명이나 되었으나 고구려의 영웅 개소문에게 한 사람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는 치욕을 당하여, 지금까지도 중국에서는 개소문과 당태종의 이야기들이 연극으로 상연되어 그 당시 참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에 반해서 우리 나라에서는 개소문을 일개 용맹한 장부로 오히려 역적이라고 규정지어 학자들 사이에는 입에 올리기도 창피하게 여긴다.
그러니 당시에 그의 병법이나, 무술훈련방법들을 연구할 사람이 있었겠는가. 가장 한심한 일이다. 중국에서 본 연개소문 연극이 당시 사실과 부합되는지 아닌지는 내가 확실히 얘기할 수 없으나 중국인들이 전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보다 축소는 되었을 지언정 과장되지는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개소문이 당태종의 침략군을 맞으며 은인자중하고 있다가 한 번 반격하매, 개소문과 상대를 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상장 천명이 개소문 한 사람을 대하는 꼴이 바로 호랑이가 양떼 속을 휘젓고 다니는 격에 비유하였고, 개소문과 비록 승부에 차이는 있으나, 절대 절명의 상황에 처한 당태종을 구한 사람은 중국인 무장이 아니라 우리 나라 장수인 설인귀 였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우리 나라 고대 무예의 독특한 점이 중국의 무예와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요, 우리들의 조상으로부터 전해오는 무술의 비장함이 매우 우수했다는 것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통일 이후로 사대주의가 크게 번져서 우리의 역사를 전적으로 소멸시키며 위정자들이 당나라 풍속을 모방하기에 여념이 없어서 전래하던 미풍양속은 자취를 감추고, 혹 그 문화의 숨겨진 진수를 알고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이단적인 술사로 규정하였으므로 천여 년을 경과한 지금, 어찌 당시 무술의 전모를 알 수가 있을까. 단지 이곳 저곳에서 야담이나 설화로 전해지는 비밀스런 얘기들을 종합해서 갱생시키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나는 몸소 목격한 비전하던 우리 나라 무술을 본 그대로 잊지 않고 기록하고자 한다. 내가 중국 협의소설이나 각종 무술관계 책들에 나오는 무사들의 무술을 보았으나, 우리가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본 무예 같은 것은 중국소설이나 야사에서는 못 보았다. 중국에서 무사협의들은 주로 18반무예를 습득해서 상대자와 승부를 다투고, 간혹 독특한 습득 무예를 연구한 무사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검술에 있어서도 비검법은 각국에서 듣지 못하던 것이다. 중국의 봉신연의 소설에서만 비검법이 있었으니, 우리 나라에서 비밀리 전해오는 것을 내가 목격은 했으나, 그 진수를 알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럽다. 그저 약간의 방식을 귀로 들었을 뿐이다. 그 다음은 비신검법이라는 것으로 습득자의 높고 낮은 습득정도에 따라 몸이 날아가는 거리의 장단은 다르지만 내가 목격한 그 사람은 한 번 쌍검을 휘두르면 천리왕복이 호흡지간이었다. 그 주변에 있는 가까운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 분은 아주 고단자라고 했다.
그 다음은 분신검법으로, 일당천, 일당만이 자유자재한 법이다. 이것은 비록 야사가 전하지 못하나 중국에서 조자룡의 장판교 전투가 혹 이 종류가 아닌가 한다. 그래도 내가 본 분신검법만은 못한 것 같다.
팔선검이나 오행검이 모두 중국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무예 중에서 대략 검법 한 분야만으로도 중국 전래검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대 일본 검법이나 서양의 펜싱정도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또 역량가감법이 있는데, 이것만은 중국에서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현세계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이다.
이것을 현대인들은 차력이라고 한다. 어디에서 힘을 빌리리요, 모두 스스로 연습하여 성공한 것이다. 그 역량이 불가사의한 만큼 증가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실행하고 있는 사람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 다음이 체술이다. 중국의 용권, 일본의 유도, 서양의 권투나 레슬링 등이 현세계에 공통된 체술이다. 우리 나라에 전래하는 체술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탁견법이 있고, 또 체술이 있었다. 탁견법은 지금도 전해오지만 체술법은 전해오지 않는다. 그 전래하는 체술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유도나 권투, 권법, 레슬링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확대법, 원근법, 격타법, 경중법의 진수가 있었다. 이것이 우리 체술의 독특성이다. 물론 여기도 단계의 차가 있다. 그러나 고단자라면 타국의 체술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예전부터 공개하고자 하나 아직 공개할 만큼 습득한 신인이 없었던 것이 주원인이 되어서 시기를 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역량가감법은 내가 소년 시절이었을 때 실제로 경험이 있었다. 비록 저급이나 그 경로를 상세히 알 수 있고, 보법도 속보법, 비보법, 육지비등법 등의 구별이 있다.
이것은 내가 체험한 바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전공적으로 이것저것을 약술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성공 못한 사람의 숨은 노력
무슨 일이든지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그 노력은 일반이요, 결코 성공자라고 더 노력했고 실패자라고 덜 노력했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성공자의 공은 예찬하나 실패자의 노고를 애석하게 여겨 주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내가 작은 일이나마 본 바를 들어서 예를 삼고자 한다.
내가 18세때에 이곳 상신에서 공주읍 시장에를 가는데 동리에 사는 서씨 영감이 나와서 무슨 단지 두 개를 사더니 나와 동행중인 김씨에게 그 짐을 맡길까 하더니, 김씨는 사람이 신중치 못해 실수하여 단지를 깰지 모른다하여 동행중에 제일 신중해 보이는 임씨라는 청년에게 그 단지들을 맡기는 것이다. 임군은 공주읍에서 상신리까지 40리길을 아주 조심해서 한 걸음도 쉬지 않고 왔는데, 바로 서영감댁 문앞 조금 못 미쳐 와서 그만 단지를 묶었던 노끈이 끊어져 단지가 다 깨어지고 말았다. 서영감이 임군에게 조심 부족으로 실수했다고 큰 책망을 했다. 나는 임군이 40여리 길을 얼마나 고심하고 왔는지를 잘안다. 그러나 임군은 일언반구 못하고 그 책망을 감수하였다. 서씨와 같이 있던 노인들도 임군을 책하였다. 그래서 내가 임군의 딱한 처지를 아는 터이라 그 노인들에게 반항적으로 언사를 벌인적이 있었다. 세상일에는 임군의 실패같은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임군이, 노심초사는 우리들의 십 배, 백 배를 하고도 도리어 일시적 실수로 큰 질책을 당하니 세상일이 거의 다 그렇다는 말이요, 더구나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특히 주의해야 임군과 같은 그러한 억울한 실수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가진 것이 18세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느낌이다.
옛사람의 경우를 보더라도 실패자의 노력과 노심이 절대로 성공자에게 지지 않았다는 것을 유의하고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운명론이 나오나 목적지인 곳까지 조심하면 일에 소홀했다는 후회가 없을 것이며, 또한 실패할 리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못한 사람들의 노력과 노심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운이 좋아서 별 노력도 안하고 순풍에 돛단 듯 성공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성공여부로 그 인격을 평가하지 말고 그 노력한 바 업적으로 그 인격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다.
과거의 역사가들이 삼국에서 촉을 정통으로 인정해준 것도 이 관계일 것이다. 성공이나 실패를 막론하고, 그 업적에 정당하고 부정당한 것을 심사해서 대의에 입각한 필법, 정평을 하라는 것이다. 현재도 이와 유사한 일이 얼마든지 있으니 성공을 못한 사람들의 업적도 소멸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내가 이 붓을 드는 것은 이 후에 내가 기록하고자 하는 우리 선령들이, 완전한 성공을 못하고 일생을 노심초사하다가 운좋은 사람들은 눈앞에서 영화를 얻고, 운없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게 압박을 당해서 영혼조차 안식할 곳이 없음을 잘알고 있는 까닭이다.
효봉선사와 사리
얼마 전에 우리나라 불교계의 중진인 대종정 이효봉 선사가 79세를 일기로 서천으로 갔다고 한다. 그는 안광낙지할 때 주위 고승들의 송경속에 '아무 것도 할말이 없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자듯이 갔다.
그런데 선사의 화장 후에 사리가 34개 나왔다고 한다. 신문에서는 광채가 영롱한 이 사리들을 과학으로 무엇이라고 증명할 것인지, 증명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과학이 사리를 증명할 정도까지 못 갔다고 해야 옳다고 보도했다.
사람들은 이 사리라는 것을 불교에서만 있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 같다. 사리라는 것은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오랜 기간 전심전력으로 한 가지에 집념을 한다면 그 정신의 결정체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 크기의 대소는 각자의 정신력 여하에 있고 수량의 많고 적음은 시일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는 시작된지 얼마 안되는 것은 작고, 이것이 오래된 것은 점점 커진다고도 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사리의 크고 작음과 많고 적음으로 그 본인의 자격의 높고 낮음을 평할 수는 없다. 사리 자체의 광화로서 결정이 잘 되었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리가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도승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불가의 말로 진사리니, 가사리니 하는 구분도 있다. 그 밖에 문장가나 명필, 시인들 중에도 사리가 있고, 정반대로 도적이나 색마인자 들로 음사리라는 것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유가에서도 근년에 청렴재상으로 유명했던 해사 김성근 옹은 입에서 생사리가 세 개나 나온 일이 있다. 화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지 승려가 아닌 사람들도 사리가 나온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근래의 고승 백학명 선사는 사리가 105개나 나왔다. 그러나 자타가 공인하는 고승 수월 선사는 입적한 후 혜광으로 방광은 했으나 사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수월사를 고승이 아니라고는 못할 것이다. 혜월선사도 28개의 사리가 나왔으나, 생전의 도력이 여러모로 만우선사보다는 못하였다. 그러나 만우 역시 입적후 방광은 하였으나, 사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사리의 출현여부로 도의 높고 낮음을 평할 수 없다는 증거가 된다고 본다. 불교도가 아닌 타종교인이나 비종교인도 일심으로 한 가지를 목표로 수련한 사람은 정상삼화(정수리에 떠오르는 세 가닥의 정신적 불)의 발현이 필연적이므로, 현주(사리의 도교적 표현)가 있으리라고 본다.
이 사리라는 것은 자기의 결정체이므로, 자신의 형상이 그 사리 속에 새겨져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오대산 적멸보궁 사리탑에서 방광을 하는 것을 본 일이 두 번 있었고, 계룡산 천진탑에서 방광함을 세 번 보았다.
또한 구한말 순수 유학자였던 면우 곽종석 선생의 새벽 정좌에 삼화방광이 그의 머리 뒤로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내가 소년시대에 모시고 자다가 깨어나 본일이 있었고, 그 다음에도 두 번을 더 보았다. 그 다음 나는 정신수련차 중국 각 지방과 일본에서 선배 여러 분을 모시고 있으면서 삼화방광하는 분들을 여러 번 보았고, 대광명(머리 뒷부분만이 아니라 전신을 감싸고 있는 빛)을 발휘하시는 분들도 몇 분 보았다. 이 방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사리의 결정이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정신집중의 수련으로 누구나 거의 동일한 궤도를 밟는 것이요, 절대로 무슨 기적같은 현상이 아니다. 정상의 삼화가 빛을 드리워서 수광, 원광이 되는 법인데, 예수교에서도 이 원광을 그대로 표현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교인들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면 충분히 설명을 못한다. 이것은 뒷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요, 당시의 선지자들이 몰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불교인은 아니지만, 효봉선사의 집념이 순수하고 장구하게 변함이 없이 지속되어 그 결정이 사실로 확증되는 것을 보며, 그가 생전에 무슨 사리를 위하여 공부한 것은 아니었으나 자연적으로 전신사리로 그 육체는 갔어도 영생하였다고 본다.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및 기타 종교나 비종교인들도 모두 이러한 성스러운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지극히 높은 목적이다.
두 체험
나는 갑자년(1924)에 전남 영암군 시종면 와우리 김봉두 옹에게 가있었다. 두 번에 걸쳐 체험한 일을 불가사의라고 하지 않고 경험한 그대로 기록해 본다. 당시는 김옹의 종형이 서거한지 약 1년쯤 되었을 때다. 하루는 김옹이 나에게 지난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죽은 종형이 꿈속에 나타나 말하기를 어느 곳으로 영전하게 되는데 호적이 처리가 되지 않아 그곳에 부임을 못하니 속히 호적을 정리해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김옹의 큰아들은 당시 호적계에 있었다. 아침을 먹은 후에 김옹의 큰아들인 기성 군이 인사차로 왔을 때 김옹이 이 말을 했다. 그랬더니 기성 군이 하는 말이 봄날의 꿈을 어찌 크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그 당숙의 서거 당시에 사망신고가 되어 있고 제적도 되었다고 하였다.
김옹도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김옹이 말하기를 지난밤 꿈에 종형이 또 나타나 자꾸 독촉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침식사 후 다시 기성 군에게 말하니 일소에 붙여 버리고 말았다.
김옹은 크게 화가나 면사무소로 가서 면장에게 직접 호적을 보자고 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면장은 전 면장과 십여 년 동안 면직원으로 같이 있던 사람이었다. 여러 사람이 호적을 보니 사망계가 되어 있고 제적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호적 사유란에는 김옹의 종형이 호적에서 누락되어 추가 신고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전 면장과 전 직원이던 사람이 말하기를, 임자년 호적정리 때에 김옹의 종형이 옥야리에 거주하다가 수년 후에 타향으로 떠난 후 7,8년만에 다시 고향으로 왔으니 호적에서 누락되었을 리가 없다고 옥야리 호적을 열람하는 것이었다. 옥야리 호적을 열람해 보니, 호적대장에는 종형이 여전히 생존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놀랐으며 곧 호적정리에 착수하여 완전 귀결을 보았다. 김옹은 종형 묘 앞에서 살아있는 인간세계의 사무처리가 이같이 불완전함에 대해 탓한 후에 정리된 등본을 태웠다. 그날 밤에 김옹 뿐만 아니라 동네의 노인들은 꿈에 돌아간 김옹의 종형이 행차를 정비하고 무슨 임관하는 것을 보았고 김옹에게 와서 감사를 드리는 것도 보았다고 하였다. 서거한 김옹의 종형이라는 인물이 비록 농촌사람이기는 하지만 영특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사후에도 그 영혼이 깨어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은 김옹과 그의 친지 여러 사람이 남해당 정자 아래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도선장에서 한 사람이 오더니 면내의 김모라는 이를 찾았다. '이 사람아, 김모는 죽은 지 벌써 몇 해가 되었네' 라고 여럿이 대답하자 '네, 김모가 죽은 것은 잘 압니다 제가 저승에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그 집에 전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지요' 라고 했다. 김옹과 여러 사람은 모두 놀라 다시 상세한 내용을 물어 보았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중병을 앓던 수개월만에 영혼이 몸을 벗어나서 죽은 줄 알고 수습을 해놓았는데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서 며칠간 치료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자기의 죽은 혼이 간 곳은 삼향 해안 매립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거기에서 잡역부로 일을 했는데(당시 삼향 해안 매립장이라는 곳은 아직 허가도 나있지 않은 상태였고., 수년 후에야 허가가 나서 공사가 시작되었던 곳이다) 현장감독이 인부 호명을 하다가 그 사람을 보고 같은 이름이지만 당신은 아니라고 하며 이름을 지우면서 부탁의 말을 하였다. '자네가 내 집에 가서, 내가 영전할 차례인데 신원조회(신분조사)에서 부채가 정리되지 않아 갈 곳을 못 가고 있으니, 영암읍 김의관에게 빚을 얻어서 어떤 세명에게 빚을 주었던 것을 속히 정리해서 나의 영전이 늦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여러 사람이 동행하여 김씨 집에 가서 그 말을 전하고, 곧 빚을 주었던 세 사람을 불러내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비록 다른 곳에 있다 하여도 감히 사실을 속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호령하였다. 현장에서 세 명에게 주었던 빚을 모두 걷어, 김의관(낭산 김준연씨의 부친임)에세 가서 그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죽은 김씨는 아무 부채가 없다고 부인하였다. 김옹이 여러 가지로 변론을 해도 내내 시인을 안하더니 끝내 하는 말이, '그 사람(죽은 이)이 생전에 나하고 수십 차례 거래를 하면서도 한 번도 신용을 잃지 않았고, 또 정직한 사람이었는데, 죽은 후에 그 부친이 외아들을 잃음을 슬퍼하고, 또 나와의 금전관계를 알지 못하고 있기에 주위에 발설하고 싶지 않아 장부에서 정리를 한 것인데 이제 와서 부채를 받으면 내 마음의 계산에 다시 빚을 지는 것이다' 라고 하며 장부를 보여 주었다. 죽은 김씨의 부친과 김옹은 김의관에게 돈을 받으라고 하고, 김의관은 못 받겠다고 하다가 결국 김의관이 돈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김의관은 죽은 그 사람을 위해 부처님 앞에 불공을 올렸다. 이 모두 기상천외한 일이요, 현세의 인심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할 일을 영혼의 세계에서는 몇 년 전에 먼저 해보는 것같다. 영암의 삼향수면 매립도 이 일이 있은 후 7-8년만에 실제로 완성되었다. 그 다음에도 그런 예는 많이 있었다. 음이니 양이니 해서 양의 세계에서는 음의 세계의 존재부터 부인하나 사실은 동일한 세계다. 형체 따라 그림자가 따르듯 하는 이치인 것이다. 대인들은 수천 수만 년의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고 있으나, 아래사람들은 자기 수양범위로 그 빛이 나는 거리까지 겨우 볼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예를 들기 위한 것이다. 생사를 꿰뚫어보는 지혜로운 눈이 있는 사람이 현세에는 몇 사람이나 되는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흑막탄 실험
날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권위 있는 모신문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영국의 런던이 순간 암흑세계가 되었다고 한다. 그날이 만우절이 아닌 이상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을 보도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생각해보자. 천문기상의 변화로 그렇게 된 것일까? 아니면 인공적 조작으로 그렇게 된 것일까? 의심이 없지 않다. 영국의 런던은 짙은 안개로 유명한 곳이라서 4계절을 가리지 않고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암흑세계가 일종의 극도로 심한 농무현상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런던의 수백만 인구가 농무와 암흑을 분별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상식적으로 판단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기상의 변화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확실히 증명하기는 곤란하지만 십중팔구는 사람의 행위일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두가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이 암흑세계를 연구하는 한 영국인이 어느 정도 성공을 하여 런던에서 1차 시험을 한 것이 아니면, 연구중에 시험관이 폭발하여 암흑세계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외국인 발명가가 연구에 성공하여 미국이나 소련보다 출입이 안전한 세계 대도시인 런던에서 1차적으로 시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러 번 이야기하였던 미래에 출현할 신병기 가운데 흑막탄이 있다고 한 일이 있었다. 내가 본 흑막탄은 원근과 지속을 자유자재로 하는 성능을 가진 것인데, 그 위력이 원자탄으로는 절대 미치지 못할 정도이다. 원자탄은 무죄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이 결점이고, 이 흑막탄은 생명에 관계없이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무기이다. 이 무기를 가지고 있는 한, 상대국의 어떠한 병기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 무기의 원재료나 설계도 및 책들을 나는 정신수련 당시에 충분히 납득될 만큼 본 일이 있고, 다른나라 사람들도 이것을 연구증에 있으나 좀 약하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 연구는 순수 백인종이 아닌 유색인종과 일만리족의 합동연구가 아닌가 하며, 지역은 스페인 어느 산중의 호수가 있는 곳으로 안다. 그 호수 변에 별장이 있어서 호수 가운데 장치한 발전기로 연구실이 오르내리고, 이 연구실은 지하공작실과도 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연구인들은 일만리족 여러 명과 유색인들인데 전부 열두 명 정도로 비밀단체에 소속되어 있음을 나는 확실히 보았다. 그들이 연구한 것 중에 흑막탄과 유사한 것이 있으나, 내가 본 흑막탄의 성능에는 못 미친다. 또한 6,7종 신병기와 그 외에 십여 종의 새로운 기계를 발명한 것을 정신수련중 투시현상으로 확실하게 본 일이 있는데, 영국의 런던에서 발생한 암흑세계라는 것이 내 육감으로는 이 연구원들의 발명실험이라고 확언한다.
원자탄이나 수소탄은 모두 파괴와 살생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이 흑막탄은 다른 곳에는 쓸 데 가 없고 세계의 장래 평화를 위해서 한 번쯤 사용하므로써 극도의 포악한 세력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무기라고 생각된다. 이 무기가 그림자를 비추어 준 것만으로도 나는 조물주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장래에 평화가 올 조짐이라고 보아도 큰 오해는 아닐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런던이 암흑세계가 되었던 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든지, 나는 이것을 평화의 새로운 싹이라고 확언하는 바이다.
단기 4288(서기 1955)년 1월초
연정원에 대하여
연정원우 수련기
원상수련과 7,8급 정도에서 11,12급 정도로 나아가는 도중의 경험과 소견을 적어 볼까 한다. 1925년 초여름, 소성에서 20여명이 제 1차 수련을 시작해서 이용련 군이 초계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지낸 경력을 보면 10급에서 11급 정도로 판명되고 그 밖의 두세 사람이 8,9급쯤 된 것 같다. 또 다른 두 사람은 7,8급 정도이고, 그 외에 10여명은 무급이었다. 나는 그 당시 뒤늦게 참여하여 13일 동안을 수련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견이 각기 다르다. 이용련 군이 품고 있는 웅대한 포부란 오로지 금과왕이 되어 일세를 진동코자 하는 사람이라 소견이 여기에 그칠 것이고, 그밖에 여러 사람의 소원 역시 자신의 사업성공을 바라는 정도이기 때문에 그 소견이 여기에 머물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두 사람은 바라는 것이 영구여서 점에 대한 소견이 많았다. 오로지 한 사람만이 선입견이 없이 단순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이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해 보겠다.
그가 6,7급에서 가서 현상(원상 수련 중에 나타나는 투시현상)이 되는 때인데, 그에게 있어서 오늘 내일의 기상변화를 알게 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고, 사람의 오고 감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수련장소가 인천이었던 까닭에 당시의 미두시세를 한 달 앞은 힘들어도 하루 앞 정도는 귀신같이 알아맞추었던 그는, 어느 집안의 과거 길흉화복이나 다가올 미래의 길하고 흉한 일들을 명확히 알아내고, 또한 먼저 돌아가신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을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생생히 만나 보았던 것이다. 또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이 무슨 물건을 지니고 있는지를 한 번 보고 금방 알았고, 무덤 위에서 수련을 할 때에는 그 무덤의 주인인 백골의 새전 얼굴을 알아맞추기도 하였다.
항상 그렇지는 못하지만 수련 중에 나타난 현상으로 위와 같았다. 이상이 1925년 당시 제1차 순수정신수련 결과라고 본 것이다. 나는 비록 13일 동안 수련에 임했다고는 하지만 그전에 이미 호흡법으로 정좌하여 소득이 있는 관계로 좀 빨리 향상되었던 것이다. 즉, 위아래로는 태초에서부터 대황조께서 우리민족 최초의 임금으로 등극하실 때까지의 과거와 좌우로는 동서양의 위대한 성현들과 도인들의 고행을 참관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대현계(정신수련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정신세계 가운데 하나이다)에서 연구 발명중인 기계와 새로이 그려진 세계지도의 도면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실인가 거짓인가, 또 내가 본 것이 남김없이 본 것인가 어느 한 부분만 본 것인가 하는 등의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기로 하겠다. 그 외에도 각종 신병기의 출현을 예고해서 원자탄, 전차대, 원자포, 비29 폭격기 등을 말하였고 나머지 일곱 종류의 신무기는 아직 출현되지 않았다. 이것이 1925년 초여름에 참여한 원상수련 소견의 일부이다.
그 이후 1930년에는 갑사 간성장에서 설초, 송사와 함께 3개월을 수련하였다. 설초는 초계가 약하였고, 송사는 준초계였다. 당시는 송사가 설초보다 우수하였다.
그후 신미년에도 다시 수련하였으나 별 성과를 못 보았다. 그후 여러 차례에 걸쳐 설초는 2계 약이 되고 송사는 더 나아가지 못하였으며 신진으로는 권오훈이 초계 약이 되었고 구영직군이 8급, 주형식군이 10급 정도가 되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쉬지 않고 더욱 노력을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송사도 단순하게 수련이 된다면 시골에서 입을 막고 지내다가 간간이 본 대로만 말한다 해도 특별한 사람 대우는 받을 것이고, 설초는 다시 수련만 된다면 충분히 입지전 속의 한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정신연구 중 소견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크게 어긋나는 점은 없어서 현로(아득하고 신비한 정신세계의 통로를 말한다)를 출입하며 능히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삶을 꿰뚫어 보는 사람도 있고 간신히 겨우겨우 그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삼생이 좀 나은 사람은 곧 보여지고, 좀 부족한 사람은 그 근처만 보이다가 2계 끝이나 3계초에 가서야 확실히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송사도 전생이 어디라는 정도일 뿐 확실히 증거를 못 들고 설초 또한 전생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정도이지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다는 것까지는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송사는 매일 쓰는 물건이 잘 보이고 설초는 산천의 영험한 신이 잘 보이며 과거와 현재의 현로 출입이 더 나은 것 같다. 권오훈은 대상(큰 현상을 말한다)이 낫게 보였다. 구영직군은 자신의 전공인 기계공학 부문에서 현상이 잘 되었다. 이명식이나 이용환은 현상을 주로 하지 않고 조식 호흡을 주로 하였다. 호흡으로 수련하면 별 재미는 없으나 초계이상에서 2계까지만 가면 원상법으로 현상되는 것보다 우수하다는 것이다. 수련을 통한 결과를 과대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고 정신연구의 본래 방식이나 법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신계를 드나드는 것을 수련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할만큼 되려면 호흡을 일 분 이상 고르게 쉬어야 충분한 것이다. 여기에다 관심과 관물을 마음대로 할 때에야 비로소 연정원 정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단기 4287(서기 1954)년 9월 1일
연정원의 중흥
연정원을 중흥하자면 먼저 연정원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연정원을 중흥하여 유리한 조건은 무엇인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연정원이라는 것은 우리가 수십년 전부터 정신연구를 목표로 절에서 참선도 해보고 산 속에서 석굴이나 토굴을 만들어 혼자 몸으로나 혹은 3,4인 혹은 10여인이 정신수련을 해본 일도 있고 또는 해변이나 교목 위에서 고력수행도 해보고 눈 위에서 내한 수련도 해보고 여름에 물 속에서 수수련도 해보던 차에 우리 동지들 십여 명이 계룡산에서 집단으로 내한수행으로부터 고력행을 계속하던 장소를 연정원이라 이름을 붙였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연정원이라는 이름 아래에 우리들이 정신연구를 목표로 동지들이 모였던 것이며 원우중에서는 상당한 단계에까지 갔던 사람들도 있었다.
원우의 자격은 누구나 연정원의 목표를 따르는 동호자로서 정신수련에 참가할 수 있으면 되었고, 비록 정신수련은 같이 하였더라도 목표하는 바가 다르면 원우 동지로 취급하지 아니하였다.
우리의 연정원 목표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항상 말하는 우리의 대황조(우리민족의 가장 윗조상이 되시는 국조단군)가 동양문화와 종교의 근원이 되고 대황조의 교화가 유교, 불교, 도교의 분파를 이루었다는 우리 고대문화와 역사를 다시 회생시켜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고대문화와 역사를 우리의 손으로 다시 일으켜 보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한낱 나의 몽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주 소년시대부터 이런 암시를 받은 일이 있었고 그후 정신연구를 중국, 일본 각지와 우리나라 명산대천의 고적이 있을만한 곳은 모두 다녀보며 문헌은 문헌대로, 고적을 고적대로 또 내가 연구하는 수리학에서도 이론적 증거를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보며 확실하게 도달한 결론인 것이다.
연정원에서 수양하는 방식은 바로 대황조께서 가르치신 방식대로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유구한 세월을 두고 우리 조상들이 계승해서 성쇠를 거듭하여 전해오던 법이요, 이 법이 우리 조상으로부터 중국으로 전해지고 곤륜산을 넘어서 소아시아지역으로 가고 천산을 넘어 인도로 들어간 것이다. 중국으로 가서 유교와 도교가 되고 인도로 가서 불교가 되고 소아시아로 가서 회교가 되고 또 예수교가 되었다. 즉 연정원의 수련 방식이 유교, 불교, 도교의 3교와 예수교, 회교 등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방식이요, 현대서양에서 정신과학을 연구한 것이나 다 같은 것이다. 다만 그 민족의 관습이나 풍속이 다른 관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주장한 연정원의 정신연구방식을 근대 일본에서 유행되는 방식과 비교해 보고, 중국과 인도의 방식과도 비교하였으나 그중 완전무결한 것은 우리의 고대수련법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는 연정원 방식이었다. 이 법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종교가 무엇이든, 전공분야가 무엇이든 무관하며 또한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고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경제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전천후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이 좋은 방식이 다른 나라 민족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우리 대황조의 가르침으로 우리민족이 수천 년을 거듭해 오던 것인데 중간에 침체되고 있는 것을 우리의 손으로 다시 우리 민족, 우리국토에서 중흥하고자 함이 당연한 일이니 비록 마음대로 일이 진전이 안 된다 하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효과를 거두어 볼 것이요, 추진하는데 노력이 든다하여 홀로 자신만 보전할 의사는 없다. 이것이 내 한 몸을 민족에 바치고 이 민족과 영고를 같이 하고자 한다는 일념으로 소년시절부터 미미하나마 이 방면으로 헌신해온 까닭이다.
내가 이 연정원을 중흥하는데 내 한 몸이 희생이 되거나, 일신의 별다른 성공이 없는 것을 별문제로 하고 이 연정원이 중흥되어 원우동지 중에서 완전수련을 거친 성공자들만 나온다면 나는 이것으로 족한 것이다.
나는 세상 부귀영화보다는 이 연정원의 중흥으로 후진 원우들에게서만은 성공이 있기를 제일 축원한다. 우리 나라의 국력이 세계정상의 수준을 못 가는 것은 과학문명이 부족한 원인인데, 현대 물질문명의 수준을 따라간다면 적어도 일세기 이내에는 절대 불가능하나 정신문명으로 전력하여 따라가자면 비록 장시간이라 하여도 20-30년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거국적으로 이 정신문명을 중흥시킨다면 30-40년 이내에 세계의 정상급 과학자는 모두 우리 민족에게서 나올 것임이 불 보듯 환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는 유심론자가 아니며, 심물합치론을 주장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마음과 물질이 서로 나눠질 수 없다는 관계를 주장하며 따라서 정신연구는 유심론에 그친 정신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심론과 유물론의 잘못됨을 타파하고 이원합치론을 연구하라는 것이다. 즉 정신문명으로 물질문명을 정복하게 되어 약육강식 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고, 크고 작은 것이 가운데에서 화합되고, 강자와 약자가 서로 보완하여 정신문명인 도덕을 갖춘 물질문명으로 세계평화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우리 연정원 중흥의 첫째가는 목표요, 또한 대황조님의 홍익인간, 이화세계 이념인 것이다. 우리 연정원 동지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완수할 때 자연히 연정원의 중흥은 성취되고 이 나라의 정신계 또한 중흥될 것이다.
연정원 갱생의 첫째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연정원을 갱생하자면 무엇이 첫째 필요조건인가를 먼저 써보았으나 마음대로 안 되어서 다시 한 번 이 붓을 드는 것이다. 연정원 갱생에는 필요조건이 여러 가지 있다. 물론 경제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고, 장소도 필요하나 그것들은 두 번째 조건이요, 첫째 조건은 연정원을 경영할 나 자신이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쉼없는 노력으로 스스로 수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옛부터 수도하는 사람이 순탄한 상황에서 성공한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체로 역경 속에서 백절불굴하고 나아간 사람이 성공하게 되는 수가 많았다. 어느 때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으나 정좌 중, 현상에서 '거거거중지(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요, 행행행리각(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다)이라'는 시구절을 본 일이 있다. 이 시구절도 물론 쉬지 말고 노력하라는 뜻이다. 중단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의 요즈음 경과를 보면 아주 중단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비록 역경이라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매일 밤중이나 새벽에 홀로 앉아 공부할 시간은 있을 것인데, 내가 이것조차 중단하고 있는 것은 밝은 거울에 먼지가 앉게 하는 격이다. 어려운 상황이건 순탄한 상황이건 변함없이 나아가서 나의 할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배우는 사람의 도리요, 이렇게 안 하면 안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런 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게으름이 생겨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바가 아니요, 자기 스스로 불러들이는 불행이다. 그러나 이렇듯 스스로 짓는 잘못은 자기가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주의할 일이다. 내가 첫째조건의 완비되지 못함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쉼없는 노력으로 나아간다면 그후 두 번째 조건도 자연히 해결이 날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구하지 말고 마땅히 나에게서 구하라는 것이다 일 년만 쉬지 않으면 여기서 자연히 조건이 조성될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전에 자기의 심령을 밝히라는 것이다. 자기 심령이 밝은 후에야 타인을 접함에 실수가 없을 것이요, 모든 일이 자연적으로 순조로울 것이다. 최단기로 일 년만이 자기불휴의 정신을 갖고 나가면 적어도 옛사람이 밟았던 길을 다시 닦음은 될 것이요, 풍정파식(바람이 잦아들고 파도가 멈춤)이라도 될 것이다. 시용만능은 못 되더라도 음양선까지는 다시 확보할 것이니 이 선만 확보하더라도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쓸 만한 정도는 되고, 쓸 만한 정도면 연정원 갱생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른 백 가지 사업보다 이것이 내 자신에게나 연정원 갱생을 위해서나 제일 중요한 조건이다.
이 첫째 조건을 버리고 밖으로 구함은 나의 실수라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다시 첫발을 내디디며 그 쉼없는 정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내가 스스로를 경계하며 자력갱생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정원은 언제 갱생하나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귀중히 여겨지는 것은, 일상생활 속의 일시적 영예보다는 정신연구를 목표로 하고 나아가서는 과게에 비밀로 숨겨가며 전해오던 방식을 대개혁하여 일개인에 머물지 않고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에게 옛사람의 말씀과 같이 아주 쉽게 해설하여 전문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라 하겠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문자로 저술하여 문헌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어느 정도까지 체험을 해서 그 경과를 늘 상세히 기록하여 그 실제 체험담으로서 누구에게나 신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정원 동지들이 어느정도 습득은 해보았으나 구체적으로 오랜 기간을 전공한 사람이 없었고 다만 각자의 미약한 소득이 있어서 스스로나 기뻐할 정도이지 남과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 원우들은 어느 시기라도 재수련을 하고자 하는 정도이다. 몇 사람 승단자도 역시 고단자들과 절차탁마하는 기회가 없어서 크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원우들간에 통일된 이념이 부족해서 각개인의 형편에 따라 수련할 뿐이라 속히 재생의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6.25사변으로 인하여 아직 경제기반이 제대로 확림되지 못하고 아래까지 온 국민이 임시방편으로 대강 사는 생활이 유행되는 이때라 역시 동지들도 안정되는 시기를 고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로서는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연정하는 사람이 어느 시대에나 없을까마는 혼자 독선적으로 나가는 사람으로는 이런 취지를 발기할 리 없고, 또 일상생활에 안정을 얻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선입감이 생활안정을 꾀하는 데로 들어가서 정신연구같은 힘든 수행을 시작할 리가 없다.
현대 물질문명의 수준에 있어서 우리와 백인문화권과는 세기의 차가 있고 세계의 문명주도권이 백인종에게 있는 이때에 우리가 단연 분기하여 정신연구로 백인의 물질문명을 제압하도록 노력하고, 물질문명의 수준에서 나타나는 세기의 차를 우리는 정신적으로 백인보다 앞서게 하여 이 물질문명 수준을 돌파할 수 있는 확증을 만인 앞에 증명해 보일 수 있다면, 선천적으로 현명한 우리 민족이 이런 확증을 보고같이 따라나서지 않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영재를 구해서 이 확증을 세상사람들의 눈앞에 보일 수 있을 만큼 책임수련을 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연정원 동지들의 책임이고 이 문제가 성공하면 제2, 제3으로 나가는 점진적 성공을 볼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럴려면 누구보다 먼저 승단자 중에서 몇 명을 전문적으로 연구시켜서 좀더 승단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3,4단까지만 수련시키면 연정원의 갱생은 별문제 없다고 보며, 3,4단 정도이면 세상사람들 앞에서 확증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초보자들을 처음부터 양성하느니보다는 기존의 유단자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제일 요건이라고 본다. 이 수련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극복하고 나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보는 까닭에 원우들은 힘과 뜻을 모아서 이 일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연정원에서 정신을 연구하기 전에 기본준비로 체력단련을 하지 않으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렵다. 그러므로 청년 원우들에게 체련을 시키면 충분히 현 세계의 각종 기록을 돌파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청년들에게 체육훈련을 시키고 그 이후에 정신연구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체육운동경기 등에서 보통 훈련하는 사람보다 우월한 성과를 얻게 된 후에 신심이 나서 정신연구로 입분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쉽게 승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체육으로부터 정신연구로 전향하는 것이어서 이런 식으로 정신연구를 전문적으로 한다면 곧 1,2년 내에 승단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유단자는 지도자만 있으면 노력으로 재승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승단자 중에서도 부류가 다른데, 원리를 연구하는 인사라면 중단급에만 가면 타심통 즉 관심법이 되어서 외교, 군사, 행정분야에 응용할 수 있게 되고 과학적으로도 이화학 전공자들에게 수십, 수백 배의 효력을 가져다주며, 또한 정신통일이 되어 기억력이 자연 증진하는 까닭에 어떠한 학과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도 모두 효과적이리라 본다.
이 정신학의 고단자라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적 관계나, 대인관계에 있어서 중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과거에 강태공, 귀곡자, 장량, 엄자능, 제갈량, 도연명, 소강절 같은 중국인물이나 연개소문, 을지문덕, 강감찬, 서화담, 정북창, 송구봉, 이율곡, 조남명, 이토정, 박엽, 허미수등 우리 동방 정신계의 고금 중진들, 이밖에 유명무명한 무수한 고단, 중단자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현 세계에서 인도에 고단자가 있고 중국에 고단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숨어 있는 군자로 고단자아 인도나 중국에 지지 않을 만큼 있는 것은 건상(일원성신이 돌아가는 이치를 말하는 천기)이 증명하는 것이도, 또 실제로 사실도 간간히 발견할 수 있다. 정신계에서 우리민족이 타민족에세 절대 손색이 없다는 것을 정신연구의 승단자는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는 고단자들은 완전한 도에 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정진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과 공존공영을 목표로 하는 연정 원우들 속에서 하루 빨리 중단 이상이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백두산일파와 지리산일파가 전래하고 있지만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모두 백두산을 조종으로 하고 있다. 현재 우리 민족 중에는 스스로를 유명무명의 성인, 철인, 혹은 영웅호걸이라고 자처하며 정신연구를 표방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정통정신파는 없고 바른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접어든 사람들로 보인다. 그런데도 각파에서는 모두들 자신이 바로 성인이라하니 우리로서는 믿을 수가 없다. 대성인이라는 공자도 자신이 성인임을 부인하였는데 이 세상에는 웬 성인이 그렇게도 많은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물고기 눈알을 진주로 혼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좌도방, 우도방파들도 모두 이름을 숨기고 몸을 드러내는 인물이 없다. 그러나 나는 비록 도인이나 정신과학에 정통한 고단자는 아니지만 미미하나마 이 연구의 정법을 전수받아서 실행한 경험이 있는 까닭에 이를 두고 모른척하고 갈 수 없어서 선배들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내가 연정원을 발족한 것이다. 나는 이 정신연구로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을 바라고 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거족적 영예를 연정원우들이 되살려서 온겨레와 더불어 번영하는 방책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바램이 있을 뿐이다. 원우 중에서 누가 먼저 성공하든 나중에 성공하든 우리 민족이 번영하는 관점에서 그저 성공자가 속출하기만 바라고 내 개인의 성공여부는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또 동지들 중에서 중단이상에 도달한 사람만 나오면 나는 모든 책임을 맡기고 평범하게 연정원우의 한사람으로 남은 생애를 보내고자 한다.
연정원은 어떤 장소가 제일 적당한가
연정원 위치문제는 이러하다. 가장 적당한 곳은 산악지대의 공기가 좋은 곳에 폭포나 계곡이 있어서 경치도 좋은 곳이 적합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산이 높고 시계가 광활한 곳이 수련에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명승지는 관광객의 왕래가 잦으므로 수련상 불편한 점이 많다. 바깥사람의 왕래가 제일 금물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무인도나 비록 유인도라도 산악을 낀 외지고 고요한 곳이면 무관한데, 도서지방은 공기가 산악지대만 못하다. 그 다음 산사도 무방하나 외부인이 왕래하는 것이 좀 불편하다. 그 다음 부득이하면 도시 밖의 별장지대에 외딴 집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무방하다. 교외의 별장이라면 도리어 농촌보다 인적이 희소한 것이다. 이 장소를 택하는 것은 초보적 수련으로부터 일기, 이기의 단계까지 필요한 조건이다. 그 이상이면 행주좌와에 모든 수련할 수 있으며 장소의 구별이 별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연정원이라면 정신을 연구하는 장소이니 부득불 한적한 곳이 아니면 안 된다. 이상의 네 장소 중에서 한 곳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요, 될 수 있으면 인가와 거리가 먼 곳이 적합하다. 될 수 있으면 광활한 곳이 좋으나 부득이한 때는 아무 곳이라도 무방하다.
수련할 때는 총시간의 삼분의 이를 노천에서 하는 것이 성적이 좋으며, 실내에서는 총시간의 삼분의 일이 지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학인의 거처는 원우사이라도 일인일방제라야 편리하다. 그리고 강당이 한 곳 있어야 원두(연정원의 우두머리)가 때때로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일정한 기간 내에는 외부사람의 출입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소요물자를 준비해야 한다.
제일 먼저 준비할 것은 식량과 부식물이며 둘째로는 의류와 세탁용품, 셋째로 침구이며, 넷째로는 구급약품이다. 연료준비는 없어도 무방하나, 아주 없을 수 없으니 좀 준비해도 좋다. 취사나 세탁이나 난방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 수련원생들은 관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족관계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때는 절대 면회를 말아야 한다. 또한 수련생이 아닌 사무원으로서 재정과 물자공급, 외부연락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여러 명 있어야 한다. 일기의 수련기간은 최소한 2년은 잡아야 하고 될 수 있으면 5년을 정기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5개년 정기라 해도 그 한정된 기간 안에서 각자의 성력여하로 각자의 정신적 수준이 준원우에서 원우대우로 승진하고 또 정원우로 승진하며, 나아가 특별원우로 승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단계를 경과하면 초단으로 유단자가 되어 2단, 3단, 4단으로 올라가는 것이며 연정원두는 2,3 단부터 그 자격이 있다. 4단 자격의 원두라면 당당한 정신계의 권위자인 것이다. 5개년 정기안에 성력만 있으면 3,4단 원두는 될 것이다. 이 원두자격이 있는 인사면 과학계로 나가서도 중진역할은 물론 감당할 것이다. 그뿐 아니다. 3,4단이라면 정신계의 중간급 위치요, 고대에도 이 정도가 제일 많은 것이다. 여기서 비상한 힘을 내어 특별한 정진이 있어야 5단, 6단이 될 수 있는데 이 단계는 고단자로서 옛날에도 매우 드물었던 위치이다. 5개년 정기 안에서 이 자리에 간다면 가히 천재적이라 할 것이다. 3,4단 급으로서 제2기인 정기 5년을 재발족한다면 여기서 고단자 양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3,4단 급에서 제2기에 참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본다.
제2기 수양이 충분해지면 5,6단까지는 갈 수 있고, 7단 승진자가 있다면 연정원으로서는 큰 행운일 것이다. 초단, 2단까지는 국내적일 것이나, 3단부터는 세계적으로 정신계의 일인이 되는 것이다.
5,6단이면 세기의 정신수련인이 되는 것이다. 백년 안에 한 사람 나올 만한 정신계의 권위자가 된다는 것이다. 7단 이상은 천년동안에도 몇 사람 못 되는 것이니 만약 연정원에서 이 최고단자가 배출된다면 우리 민족의 중대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옛부터 성현군자니, 철인이니 하는 선배들의 계단을 보면 군자 가운데에는 초단이 될까말까한 자격이 많고 현인 중에는 2,3단 정도가 가장 많다. 아성이니, 대현이니, 철인이니 하는 분들이 5,6단계에서 왕래하는 것 같다. 7단이라면 물론 완전한 성자들이다. 불교의 견성이라는 것이 연정원 초단이라는 명칭이다. 내가 여기서 옛사람들의 단급을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신인으로 알던 고인들을 최고단이 아니라면 세상사람이 믿을 리 없고 그렇다고 저급을 고급이라고 빈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면, 조선조 중엽의 이토정 선생이나 유경암 같은 이들을 세상에서 이인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본 그 실력은 겸암이 도계 정삼단이요, 토정이 도계 약삼단의 계제이다. 동시대의 유명한 도인 한 분도 강삼단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최고단자요, 우리 나라 4천년을 통해 최고단자가 있었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에 유단자가 수십 명이나 배출되었던 것이다. 그 최고단자는 7단을 훨씬 초월한 완연한 성인의 단계였으나, 당시에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몰랐으니 스스로 '오늘날 도를 행하기가 어려우니, 이름이나 뒷사람이 알도록 하자'라는 정도로 자족하고 만 것이다. 그후로는 이분 만한 정신적 계제의 인물이 전무후무한 것 같다. 현재 백산운화가 무르익어서 삼육성중(서른 여섯 사람의 성스러운 무리)이 보통사람으로 이미 세상에 출현하였으니 물론 고단자가 나올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내가 이 정신연구법을 가지고 있는 까닭은 다만 뒷사람에게 앞서간 사람의 법을 전할 책임이 있는 관계로 이 삼육성중이 혹 우리 연정원에서 수련을 하고 고단자로 세상에 나올 것이 아닌가 하는 몽상 같은 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정원을 시작하고 원우동지들을 규합해보는 것이요, 무의미하게 내 한 몸을 희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삼육성중이 우리 나라에 출생한 지는 벌써 년수가 많이 경과하였다. 노부가 어찌 허황한 말로 세상사람들의 이목을 현란하게 하리요, 일세기를 지나기 전에 노부의 오늘 하는 말이 빈발이 아님을 알 것이다.
단기 4284(서기 1951)년 10월 14일
정신연구에 가장 중요한 비결은 무엇인가?
정신연구에서 제일 중요한 비결이라고 하며 무슨 무슨 법으로 전해지는 것이 많다. 그러나 그 비결을 쓴 사람들의 의견이 각기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거나 하는데 대한 비결은,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목이 마른 사람은 마셔야 된다는 것이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올바른 요결의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도 않다고 본다. 배가 고픈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그 배가 부르다는 것을 몰라서 안 먹는 것이 아니고, 목이 마른 사람 또한 마실 것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을 몰라서 안 마시는 것이 아니다. 비록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지만 먹을 수가 없고 마실 수가 없는 까닭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배가 고프니, 목이 마르니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경우도 거의 다 이런 것이다. 병이 있는 사람은 약을 먹어야 하고 몸이 피로한 사람은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 그 요결 또한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모두,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모두 각기 나름대로는 올바른 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행함에 있어서 백 가지 천 가지의 요결이 마음대로 실행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면 그 요결이 정해가 아닌가 하면, 요결은 정해지만 실행은 어렵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요결이 비록 정해였지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자세한 지침이 없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본격적으로 '정신연구에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까닭에서이다. 정신연구의 중요한 비결을 쓴 앞서간 현자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백 수천에 달하고 그 저술 또한 수천 수만 권에 이르니 각기 경험대로 최선을 다해 기록한 것이다. 그 어느 것이나 올바른 풀이가 아닌 것은 없지만 정신을 연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중 성공한 사람은 깊은 바닷물 속에서 진주를 캐는 것보다 더 찾기 힘들다. 이런 현상이 단지 그 요결 부족함 때문인가, 처음 배웠던 사람들이 성의가 없었던 까닭인가 하는 것은 오늘날 수련에 정진하고 있는 후학들의 의문사항이 되고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우선, 유교의 중용사상이나 주역사상이 있어서 이 요결에 성공하는 사람이 성현군자가 되고 이 요결을 솔성이라 한다. 또 불교의 대장경이 있어서 그 요결에 성공하신 이가 부처, 보살, 조사, 나한이 되어 그 요결을 견성이라 한다. 그리고 도교의 도장경, 참동결이 있어서 그 요결에 성공하신 이가 신선, 진인, 천사가 되고 그 요결을 명성이라 한다. 서양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나 자신 역시 정신수련에 고락을 같이했던 사람이었고 또 후학들을 위해서 내가 경험한 바를 간단히 적고자 한다.
1. 스승의 도움 - 정신수련계의 중진을 택해서 정신학에 대한 강의를 많이 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은연중에 신념이 생겨서 스승의 지시대로 정신수련을 해 볼 수 있게 된다.
2. 자습 - 천가지 만가지 쓰디쓴 고초를 무릅쓰고 그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기백으로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공부 도중에 포기하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된다.
3. 벗의 도움 - 스스로 수련하다 보면 의문이 생기게 되는데, 스승에게 문의하기가 곤란할 때에 같이 수련을 하면서 어려움을 함께 하는 선배의 경험담을 들으면, 막막하고 포기하고 싶던 마음속에 다시 새로운 희망이 생겨서 오히려 신념이 강해지고 경의가 나타나게 된다. 이 마음은 성심, 성의가 되어 비로소 성공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위의 사항으로 자세한 요결을 대신한다.
연정원 호흡요강 서문
여러 차례에 걸쳐 정신연구에 대한 말을 기록해 왔지만 본법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못했다. 본래 법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건 천 사람, 만 사람이건 어느 사람이나 공통되는 것이어야 되고, 또한 과거, 현재, 미래 중 그 어느 시대에도 불변하는 것이어야 된다. 따라서 정신연구에 대한 법도 옛사람이 말한 바가 많아서 그 법의 주된 요지와 각 부분의 세세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많은 서적들을 동원하여 참고한다 해도 수효에 있어서나 내용의 길이에 있어서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므로 나처럼 뛰어나지 못한 사람이 법에 대하여 설명을 더한다면 해나 달 아래의 반딧불과 같고 천둥, 벼락 속의 벌레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다만 옛사람의 법을 좇아 행할 뿐, 말이나 글로서 무엇을 남기고자 하지 않고, 수십 년을 정신계에 뜻을 두고 그침이 없이 아주 놓아버리지 않고 있는 중이다.
옛 철인들이 기록한 책자가 각기 나름대로의 진리를 담고 있지만 후인들이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간직해 온 것이기 때문에 문자로만 보아서는 실행하기에 어려움이 크다. 그러므로 세상사람이 이 방면에 입문한 경우는 적지 않지만 성공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 옛 철인들의 미묘한 표현과 뜻은 글월 속에 말이 있고 말 가운데 뼈가 있어서 여러 가지 비유와 증거를 들어가며 후인들의 이해를 도왔지만 후인들의 문자에 대한 학식이 앞서간 철인들만 못하고, 그 분들이 문자로 기록한 것 역시 그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곧 글로서 글을 전하는 것이 마음으로 마음을 전함과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 예를 들면, 고대 중국에서 요, 순, 우 임금이 서로 전한 마음의 법이 '정일' 두 글자에 그쳤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 중 정자나 일자를 문자로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인데도 '정일'을 그대로 실행한 사람이 중국 오천년 역사상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는가? 이것은 지극히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 호흡법 역시 정일을 글자로는 알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이런 까닭에 나는, 정신연구 방식을 알기 쉬운 글로 표현해 달라는 연정원 동지들의 청을 성인이 전해준 마음의 법이 정일 두 글자의 문헌밖에 없는데 어떻게 더 문자화하느냐고 대답하고, 다만 이미 앞서간 철인들의 책들을 많이 보고 스스로 얻어보라고 권하면서 번번이 사절했다. 그러나 책으로 남아 있는 유명무명의 철인들의 교훈도 자칫하면 수박 겉핥기와 같은 감이 있어서 아무리 진리에 충실하고 정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후인들이 보기에는 역시 실행에 옮길 마음이 생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성인들이 말씀하시기를 솔성, 명성, 견성에도 서로 다른 점이 있다고 하여 후학들은 그 갈래가 유교, 불교, 도교로 확실히 나뉘어져서 도달하는 곳이 각기 다른 것으로 믿고 있는데, 실제로 동서양의 수많은 철인과 성인들이 각자의 의견에 따라 많은 종파를 형성해 왔다. 그러므로 글로써 후인에게 전하면 또 이런 폐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수 십년동안 문자화를 안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자를 보면, 대황조님의 천부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늘도 하나, 땅도 하나, 사람도 하나라는 일자가 합해서 셋이 되고 셋이 나뉘어서 다시 일자가 되는, 곧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라는 것과,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께서 서로 전해주신 심법인 '오로지 하나에 정통하여 진실로 그 가운데를 붙잡으라'는 문자 외에는 모두 군더더기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문자가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많은 성현들이 문자화하신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송고하기를 바라는 본심에서 나온 것이다. 때문에 옛 성현들은 후인들이 알 수 있도록 글을 쉽게 쓰시려고 적절한 비유와 여러 가지 예를 삽입하셨지만 이것을 후인들이 일목요연하게 깨닫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도 동지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름대로 아주 쉽게 나의 경험을 적어 보지만 이 또한 맹인이 코끼리를 두고 의논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되어 죄스러움을 깨닫고 이 글을 적는 것이다. 후일 여러 군자들이 널리 용서하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용호비결에 대해서는 전에 간략히 서술한 바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하였다. 용호비결은 호흡법에서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다른 책에 기록된 무수한 말도 모두 용호비결의 내용에 못 미치는 까닭에 호흡법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용호비결을 집중적으로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호흡이 법대로 되거든 대학의 내용을 순서대로 공부해 나가면 누구나 노력만큼의 성과를 볼 것이 틀림없고, 또 다른 힘에 피동적으로 의존하는 주문이나 신술 같은 것으로 허송세월할 염려도 없다.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기질의 청탁도 호흡법으로 변화할 수 있는데 이것은 경험으로 입증할 수 있으며 용호비결의 난해한 부분 또한 일목요연하게 구어체로 기록하여 제공할 것을 미리 약속한다.
설초 동지의 재수련을 권함
설초 동지는 연정원 동지들 가운데 수련 경력이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이다. 수련 초기에는 송사 동지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송사는 주위사정으로 휴식상태가 되고, 설초는 가정생활이 송사보다 훨씬 빈곤하였지만 나와 밤낮없이 만나는 까닭에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하면서고 어느덧 연정계에서 유단자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다만 그는 비록 휴식은 하지 않지만 장기간 정진을 못해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결점이었다.
연정원에서 장래가 촉망되던 권오훈군과 주형식군은 둘 다 6.25사변으로 불귀의 객이 되고 현재로는 연정원우 중 거물, 준거물, 고참, 준고참 동지들을 제외하고 직계 원우로는 설초 한 사람이 가장 성의있게 불변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설초의 정신연구에의 전념을 허락하지 않아서 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물론 이것이 중지나 휴식보다는 나으나 이 정도로 나가서는 도저히 교사의 자격이 있는 원우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그 자신도 이것 저것에 의심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내가 여러 번에 걸쳐 다시 수련하기를 충고했던 것이다. 설초동지도 이에 응해서 이 준비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을 내가 육감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면 뜻밖에 그것을 소비해야 할 어려움이 반드시 생기고 또 가족들도 돈이 좀 모이면 생활의 부족함을 인내하려는 노력이 은연중에 적어져서 안일해지곤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초도 옛날 같으면 다시 수련할 경제력이 충분하지만 요즘 상태로는 역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도 재수련을 못하고 근년도 또한 세월만 보내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방관하면서 묵묵히 있을 수가 없어서 종종 만나는 대로 설초 동지의 재수련을 권하는 것이다.
내가 설초를 평한다면, 설초는 재수련이 없다면 진보가 없어서 연정원 장래의 중진이 될 수 없고 다만 정신연구에 취미를 가진 저급 유단자에 그치게 되어 후진을 가르치는 데 큰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만사를 제치고라도 재수련을 해서 완전한 성공을 하면 연정원의 중진이 될 터이니 이는 개인의 성공이라기보다도 정신계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까닭에 내가 누누히 설초에게 권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초가 3,4계의 승단만 된다면 연정원에서 원로 대우를 받게 될 것이고 또 세상에도 많은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설초 본인의 경제적 문제도 있고 또 주의 사정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간단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기 바란다. 시작하거든 2년 정도를 꾸준히 인내하여 고력수행에 성공하기를 빌면서 이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연정원우 중에서 개인의 자격으로 보아서는 설초의 오른편에 있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순수 정신연구력으로만은 설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만약 설초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선입감이 있던지 해서 정신연구에 순수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연유로 설초를 택해서 재수련을 권하는 것이다. 이것은 설초 개인을 위하는 것은 물론이요, 연정원 동지들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 우리 민족을 위하는 것이다. 나 개인의 이해득실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다.
단기 4287(서기 1954년) 7월 20일
구영직군을 추억하며
내가 군을 처음 대한 것은 을해년(1935년) 가을이었다. 유성 박은배 씨의 소개로 한강현군을 상봉하고 그 다음 도림리 금은광산으로 가서 한군의 소개로 구영직군을 상봉한 것이 내 기억에 새롭다. 잠시 대면한 것이라 별 감상도 없었고 또한 의미 있는 일도 없었다. 그저 구군이 장래 유망한 청년이라는 정도의 첫인상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에 그가 시굴하던 광산은 성적이 불량한 곳이요, 또 아무런 희망도 없는 백지 정도에 불과한 곳인데 오해하고 괜한 헛수고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솔직히 성적불량이라고 중지하기를 권고하고 곧 귀가한 것이 후일의 인연이 되었던 것이다.
그후에 내가 대전으로 가있으며 한군과 구군의 일체 행동을 주시해보니 모두 각기 장점이 있는 청년들이라 이해관계를 접어두고 다만 그 청년들의 장래를 위해서 각자의 장점대로 가르쳐 보았다. 그래서 한강현 군의 타고난 영웅호걸의 자질에는 그 사람에 맞게 협의고담이나, 체술, 또는 위인전기를 강술해 주었던 것이요, 구군은 영호한 편도 아니요, 사무보는데 유능한 인물도 아니고 다만 정의감이 강하고 인내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아주 뛰어난 것이 장점이기에 항상 그 정의감이 더 길러지도록 고대로부터의 정의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열람하도록 해서 그 본심이 물러나지 않도록 하였다.
그후 계룡산에 입산해서 정신수련을 해오던 차에 내가 친상을 당해서 수련을 임시 중지하고 하산한 것이 구군의 수련에 지장을 주게 되었다. 그 다음 내가 다시 입산해서 일정기간을 경과했으나 구군은 경제관계로 공부를 계속 못하고 하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구군은 군산으로 가서 철공소 직공으로 7,8년이라는 장세월을 지내며, 비록 유리한 곳이 있어도 변함없이 한 곳에서 머물며, 별별 고초를 다 겪으면서도 집안을 돌보는데 여념이 없이 지내었다. 그런 중에도 철공에 대한 특기가 있어, 철공의 연구에 십 년, 이십년 된 숙련공보다도 실력이 우수하였다.
내가 몇차례가서 구군을 보았을 당시는 대동아 전쟁이라고 해서 남양 일부와 싱가포르를 일본이 점령한 때였다. 내가 세계지도에 호주에서 인도까지, 붉은 색연필로 선을 긋고, '전쟁은 여기서 중지되어 반격이 있을 것이며 일본은 본토만 남는다'고 기록한 일이 있었다. 당시 구군은 남양파견 징집에 응하고자 하였으나 내 말을 듣고는 곧 중지하고 상황이 호주선과 인도선까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일본군은 뉴기니아선과 버마 선에서 중지를 당하고 일본해군이 대 손실을 보았다. 구군은 계룡산 상신리로 나를 찾아와서 여기서 반격전이 시작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답하기를 '그렇다' 하니, 구군은 '금번에 일본이 본토만 남는다면 우리 나라는 어찌 되는가?' 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자력으로 일본군을 격퇴 못하고 또 남의 힘에 의존하게 되니 문제가 매우 많으리라'고 답하였다. 여기서 구군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것이었다. 사내 대장부가 난세에 나서 제나라의 위태로움을 눈앞에 두고, 또 안정을 회복할 기회를 보고도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하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 못하다고 하며 비분강개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민족운동도 각자의 역량대로 하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무력으로 실제행동을 하는 것도 당연히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요, 또 실제적으로는 못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지하에서 선전, 계몽, 유도로 민족정기를 살리며 각 직장에서 적국에 동화하려는 사람들을 바르게 방향전환을 시키는 것이 일선에서 실제행동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때도 많은 것이다. 각자의 역량대로 민족을 위해서 할 일이지 절대로 일의 후박을 가리지 말라'고 권해서 군산 직장으로 보냈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서 미군의 유황도 점령이 있었다. 이때에도 구군이 와서 '전쟁은 결정적으로 미국의 승리인데 조선본토 상륙작전은 언제쯤 되겠는가?' 라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를 '미군의 상대가 조선이 아닌 이상 절대로 미국의 조선본토 상륙작전은 없을 것이요, 다만 미, 소 세력이 조선에서 쟁탈이 있지 않을까 한다'고 하였다. 그후 8.15광복을 당하였다. 그러자 한강현 군의 숙질이 권오훈군과 광복군 예비대를 조직하고 광복군 협찬회를 조직하였는데 그때 구군과는 상의가 없었고, 그후 또 각자 분산될 때도 의견이 합치되지 않았었다. 구군은 본래 시국에 대한 비분강개적 마음을 품고 있었고, 또한 정의감에 입각한 인물인데, 광복후의 자유행동에 마음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후에도 한군의 감옥생활이며, 권오훈 군의 독선적인 행도, 임지수 군의 피신 등이 모두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하여 구군은 자기 고향으로 표연히 돌아가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군의 동생이 경찰의 고문 하에 출감하자마자 곧 세상을 떠난 일이 있은 후에 상신리로 내방하여 경과사를 고하고 통곡한 일이 있었다. 신체가 많이 상한 것 같았다. 그후 얼마만에 군이 결혼을 했다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와서 경과를 알았다. 한군과 상봉하면 구군과 한 번 같이 올 것을 권고했으나 항상 여의치 못하였다. 6.25사변 이후 수차 서신으로 군의 안부를 물었으나 늘 소식이 없어서 생사를 알 길이 없는데 십중팔구는 이미 고인이 된 듯하다. 한강현 군도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니 살아오기 전에는 불행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 마음속의 한 부분에는 항상 구군의 추억이 남아있고, 다시 이 정도의 청년을 상봉하기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구군에게 비록 한강현 군처럼 영웅적이고 호방한 성격을 없으나 그의 정의감과 친구간의 신의는 옛사람에 지지 않을 만큼 모범적이었다. 만약 생존해서 공학을 연구하였다면 발명의 천재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언해둔다. 구군을 추억하자니 우리들이 우도에 부족했었음을 부끄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구군이여, 용서하라.
(후기-구영직 군으로부터 1955년에 생존해 있다는 장문의 편지가 왔다. 그후 구군은 공학연구에 힘을 기울여가며, 정신수련에 전력투구한 결과 획기적인 발명 세 가지에 성공하였다. 그중 한가지를 특허 내어 당시 자유당 정권의 이기붕씨에게 후원(공장설립자금 등)을 받았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회사설립 축하 술자리에서 술을 들다 앉은 자리에서 술잔을 쥔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발명내용은 우리 나라의 질 나쁜 무연탄을 가지고 원자력 이상의 에너지를 얻어내는 방법이었다고 하며, 나머지 두 개의 발명내용은 무엇인지 전하지 않는다.)
단기 4287(서기1954)년 6월 19일
박동지를 방문하고
박동지는 정신수련관계로 몇 번에 걸쳐 입산해서 상당기간을 보낸 사람이다 원상법으로는 정관을 해보았고 호흡법에는 아직 초보자이다. 그러나 원상 수련을 하기 전에 예수교에서 수련을 해보았고 또 신약전서에서 예수의 묵시도 보고 예수의 기적도 들었다. 그래서 동서양의 수련방식이 비슷한 점이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있어서 자신 있게 시작해 보았지만, 본래 수련이라는 것이 어려움이 많은 것이어서 칠전팔기로 정진해야 하는 것인데, 이 인내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신념의 정도가 문제이다. 즉 열이라고 믿은 것이 열까지 가도 그 결실이 나타나지 않아 공허하고, 열 다섯, 열 여섯 혹은 열 일곱에서 그 열매가 나타난다고 했을 때 더욱 인내하고 노력하여 열 다섯까지 나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고 그나마 열까지 가던 신념이 열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 다음에는 불신이 생겨서 실패하는 것이 세상사람의 보통의 경우이다.
박동지도 열이라는 신념은 있고 열 다섯까지의 인내는 좀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 열이라는 신념이 애석해서 열 다섯까지 연장시키고자 미미하나마 노력해 보는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연정원우로는 약하고 일반 사회인의 입장으로는 강한 사람이다.
세상을 떠난 동지들을 추억한다.
6.25사변을 전후해서 세상을 떠난 동지들을 추억해 보자. 언제나 내 정신에서 떠나지 않는 몇 분이 있다. 한강현, 권오훈, 주형식, 차종환, 문수암 등 다섯 명의 청장년 동지들로서 그분들이 어깨에 지워진 중대한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난 것을 나는 어느 한때에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한강현 동지는 '아직 주인을 못 만난 천리마' 라고 평할 수가 있겠다. 문인이라기보다는 영웅호걸로서의 자질이 뛰어나서 그 삶을 대아에 공헌하고 고대의 의협심이 강한 무사와 같은 기품이 많은 사람이다. 다만 그의 결점이라면 포용력이 넓지 못하고 일을 도모할 때에 장기적인 계획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변화에 일찍 적응하여 대중을 잘 거느리며, 청년동지들을 양성하여 심복을 만드는 자질이 있다. 또 무슨 일이든지 패기만만하게 의욕적으로 추진하여 단번에 결정하는 성질이 있어서 간혹 실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민첩하고 활달하여서 대중에 대한 지도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를 일본의 두산만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독일의 히틀러의 정신을 사모하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의리가 있지 않으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일도양단의 자세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한 동지는 또 대단히 사교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좌파든 우파든, 구시대 사람이든 신시대 사람이든, 정치, 경제, 법률, 군사 등 그 어느 계통의 인물이든지 모두 안면이 있었으며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일본, 만주는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서울이든, 지방이든 일시적인 교제에는 잘 성공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사생활은 조금도 돌보지 않고 대중생활에서는 그 어떠한 희생이 있다 해도 책임을 지는 신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승만 박사, 백범 선생, 우사 김규식 선생, 몽양, 인촌, 안재홍, 유석, 장택상, 이묘묵, 정일형, 조소앙 등 많은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이런 사교성을 바탕으로 한 나라의 정보망을 손에 넣고 있으면서 형무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유명무명의 지사들이며, 우익, 좌익의 간부들을 누구나 가리지 않고 그 가족들의 생활까지도 뒷바라지해 주었다. 그리고 미소공동위원회 당시 좌, 우익이 자주 충돌되어 사회적으로 혼란할 때에는 좌익의 많은 대중을 우익의 소수로도 과감히 습격한 일이 많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정치적 지위에 대한 욕심이 있기 마련인데,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한 동지를 요직에 임명하려고 했을 때 그는 한마디로 사양하고 여전히 청년운동에 전념하였다.
한 동지에게 장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평해보면 참으로 얻기 어려운 천리마라고 생각된다. 6.25직전에 그에게는 서울과 지방을 망라해서 부하 청년이 수만 명을 헤아렸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6.25 당시 남하하지 않고 있다가 공산주의자의 손에 걸려서 서울에서 희생되었으리라고 본다. 생각해보면 이 삶은 마치 혜성과 같은 존재로 왔다간 듯하다. 그리고 현재 동지 중에서 이 사람을 잃은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 모른다. 현재로는 남아있는 동지 중에서 이 사람이 했던 역할을 담당할 인물을 구할 수가 없는 까닭에 더욱더 한 동지를 추억하는 것이다.
권오훈은 '낚시밥을 물고 있는 어린 용' 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사람됨이 전아하고 신중한 성격이며,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분이다. 여러 가지로 보아서 영도권을 장악해보려는 정치적 야심이 항상 없어지지 않는 인물인데 사실은 여러 가지를 갖추었으나 다만 그 자질이 완성되지 못한 감이 있고 용은 용이나 어린 용이라 아직 여의주를 얻지 못해서 남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마음만 있지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또 낚시밥을 물고 있다라는 것은 귄군이 자신의 부족한 자질을 양성하는데 치중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명리에 급히 나아가려하는 소아성이 드러나서 천년수도로 용은 되었으나 아직 용의 재능은 부족해서 실력행사는 못하고 용이 되기 전의 옛 태도가 간간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사람이 자질은 갖추었으나 대아와 소아를 혼동하는 것이 결점이고, 전민족적 큰 사업을 주체함에 있어서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데 권군은 자신을 항상 주인역으로 하고 다른 사람을 보조역으로 간주하는 것이 결점이다. 그 자질이나 실행력만은 그 어떤 성공한 사람에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한데, 다만 덜 자라서 옛날의 잘못된 점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이 사람을 장족의 진보로 이끌지 못하는 이유이다. 대한민국 초대 민의원으로 나와서 군사 위원장급까지 갈 정도로 장래가 유망하다고 보던 사람이 뜻밖에도 6.25전시 하에 일개 흑인 병사의 흉탄에 아침이슬이 되었으니 동지적 입장에서 무어라고 말할 수 없다. 권군도 장차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물었던 낚시를 토해내고 그 어린 상태에서 점차 자라난 후 넓은 바다의 신룡이 되어서 여의주로 장난하며 변화무쌍하기를 기대하던 그 어린 용이 낚시를 문 채 승천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천리마를 잃고 또 어린 용마저 잃은 늙은이의 마음, 그 쓰라린 슬픔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먼저 간 동지들을 추억하는 것은 이 늙은이 한 사람을 위함이 아니고 모름지기 우리 백두산족의 중흥의 기회가 점점 늦어지는 까닭에 내 추억이 새로운 것이다.
주형식군은 내가 '길들여지지 않은 독수리' 이라고 평했던 동지이다. 그저 평범한 새가 아니라, 독수리로서 맹장의 자질은 갖추었지만 다만 길들여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가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장래 천년교목에서 정기를 기르는 신령스런 독수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던 것이다. 주군도 내가 귄하는 바를 그대로 실행하며 늘 행동을 먼저하고 말을 뒤로 하는 자세로 쉬지 않고 노력을 기울여 이대로 가면 오래지 않아서 그 미숙함을 벗어나서 완전한 독수리로 비상할 것이고, 쉬지 않고 더욱 정진하면 신룡의 자질이 모두 갖취질것이라고 군이나 내가 서로 장래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6.25 사면에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이것은 군 한사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동지 전체의 불행이다. 주형식군은 연정원 동지를 모으는데에 협력할 것을 확실히 약속하고 기회를 기다리던 중에 뜻하지 않게 변을 당하여 동지들을 실망케 한 것이다.
주군은 계획이 주도면밀하고 과감한 결단성이 있으나 실행력과 인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말없이 묵묵히 실행에 옮기는 것이 그의 미덕이었다. 항상 나의 마음속에서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새로운 사람으로 이 자리를 보충할 사람이 없는 까닭에 이 추억이 더욱 깊은 것이다.
차종환 동지는 내가 평하기를 '동물원 속에서 기르는 학' 이라고 하였다. 학은 학이나 산마루 위의 높은 소나무에 깃들인 학이 아니라, 동물원 속의 우리 안에서 소요자재하는 학이라는 말이다. 보통새가 아니요 틀림없는 학이다. 그러나 대자연 속에 깃들어 사는 학의 고결하고 우아한 맛이 적고 동물원 관리인의 손과 관객의 손에 길들여져서 학의 형태는 그대로 있으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성이 많이 상실된 학이다. 차군은 거침없이 잘하는 웅변과 명석한 두뇌를 갖춘 지혜로운 사람이고 평론이나 비판도 공정하게 하는 분이다. 그래서 청년동지들이 군을 대하면 그 말하는 재주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차군은 평소 자중자애하는 성격으로 자신의 과오를 알면 곧 고치려 노력하며, 자신에 대한 남의 비판도 폭넓게 수용하는 덕량이 있었다.
다만 내가 그를 동물원 안의 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군이 주위사정이 불행하고 사정과 또 순조롭지 못한 지위에서 태어나서 유년, 소년시대에 보고 들은 것이 그의 제2의 천성이 되어 원래 천성인 고아하고 한적한 맛을 그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얽매여서 세속을 초월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는 재물을 보면 곧 애착하는 버릇이 좀 있어서 동지간에도 이기적인 욕심을 간혹 드러내는 때가 있었다. 내가 군의 정신함양이 부족한 것은 경전을 덜 본 까닭이라고 풍자한 일이 있었는데 그후에 3년 동안이나 중용과 대학을 전공한 것을 알았다. 이것이 그가 잘못을 알면 즉시 고치는 하나의 실례라 할 수 있다. 또한 나는 그가 동물원 안의 학의 성질을 지녔다고 풍자한 일이 있었다. 너무 사람에 길들여져서 고고한 자태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후 군이 도시에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십여 년 전에 내가 혈맹단 관계로 감옥생활을 할 때에 역시 몇 개월 같이 고초를 겪은 일이 있는데 그후로 서로 만나 보지 못한 채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후진은 아주 없고 홀로 왔다 홀로 가버렸다. 그 사람됨이 어느 곳에 가든지 주도권을 가질 만한 인물이었고 선전책임쯤은 어느 정당이라도 실수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 소리 없이, 표나지 않게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인생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어찌 감회가 깊지 않겠는가? 이분이 연정원 거물급으로 추대되었던 분이다. 가는 사람은 있되 오는 사람이 그 자리에 차지 못하니 동지를 위해서 추억만이 새롭다.
문수암 동지는 '산을 돌아다니는 큰 호랑이' 라고 말하였던 분이다. 그의 거대한 체구와 위엄 있어 보이는 얼굴은 산중의 큰 호랑이임을 누구나 시인할 수 있게 한다. 수호지의 노지심은 연상하면 그의 힘쓰는 것이나 하는 일이 거의 비슷하지만 문군은 그 중에 문학에 조예가 깊고 불교계에서 선학 대선법계와 교학의 대강사 지위를 구비하고 유학에서는 황매천 선생의 문하 제자로 문학을 갖추어 닦아서, 풍류남아로 영가무도에 능하고 불문이든 속가든 어떤 곳을 가던지 그의 인품을 돋보이게 하였다. 군은 동지애와 민족애로서 그의 일생을 보내었다.
일제하에서도 별별 항일지하운동을 다하면서 대의를 표방하고, 재물을 멀리하는 등 사회의 중진역할을 하다가 불문에 들어간 뒤로도 본 뜻은 변함없이 꾸준히 노력을 하며 동지규합에 온 힘을 기울였었다. 나와 갑자년에 처음 만난 후로 계속 동지적 입장에서 서로 통하고 지내다가 을유광복 전에 만주로 가서 있다가 귀국한 후, 부산에서 우연히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나이로 보아 육십 전이어서 앞으로 일하기 좋을 때에 동지들의 바램을 저버리고 훌쩍 간 것은 비록 뜬구름 같은 자취일망정 남은 사람으로 섭섭함을 금하기 어렵다. 군의 체력은 수천근을 들어올리는 장사였고 선승의 조예도 있으며 돌팔매질에는 장청보다 우월했다. 화상으로는 노지심과 비슷하지만 도미를 겸했고, 하는 일은 의협심이 많은 고대의 무사처럼 기품이 많았다. 내게는 둘도 없는 친우로 비록 9년이 위였으나 형제와 같이 지내던 사람이 벌써 다른 세상 사람이 되어 내게는 군과 같이 나누었던 도를 나눌 사람이 없으니 내 추억이 더욱 새롭기만 하다. 내가 현재라고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들과 같이 일인일기로 서로 책임지고 나설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간 후에야 그 사람의 참된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 가치를 알고는 더욱 사모하는 마음이 나는 것도 인정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 다섯 분 동지의 추억을 쓰다보니 내 자신이 더욱 고독한 존재로 느껴진다. 앞으로 할 일에는 천 인, 만 인이 부족한데 거물급과 고참동지와 중견동지 중에서 먼저 그 자리를 버리고 돌아가니 신참 동지들의 책임이 더 무겁고, 간 사람을 대신할 만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은 이 늙은이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니 고인들을 더욱 잊을 수 없다.
단기 4288(서기 1955)년 2월 21일
연정법 강요의 맺음말
우리나라에는 상고시대부터 기를 연마하여 도를 이룬 분이 대단히 많은데, 이것은 단지 역사적으로 확증을 못 얻었을 뿐 야담이나 전설로는 빠지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아예 흔적조차 볼 수가 없으니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깊이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국에서는 용호산 장도릉 후손을 대대로 종일품의 예우를 하여 천사의 신성한 직위를 준다. 이것은 후인들로 하여금 배움의 길로 나아가도록 권장하는 뜻에서이다. 공자의 자손 역시 대대로 정이품의 예우를 해서 선비들의 성인을 경의 하는 마음을 높였다. 그 밖에도 충효경렬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들은 모두 조정에서 존숭하여 후인이 추앙하게 만드는 것이 전형적인 중국의 법도가 되었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당연히 숭배해야 할 민족의 첫 조상이신 대황조는 형식적으로라도 위하는 사람이 없고 또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현들은 그 지역의 황폐한 사당에 향불을 계속 치우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동방 18현이라고 지칭하는 선현들은 문묘에 배향하였으나 사람들이 문묘향화를 유지할 도리가 없고, 국가에서 최하의 박대를 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올바른 조상을 모신 자손이라면 옛날 같으면 사림들이 대우나 하겠지만 오늘날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고 오천 년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거성들에게도 나라에서는 조금도 예우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그저 현실주의로, 간 사람은 간 것이고 지금 사람이나 잘하라는 식이다. 아무리 현실이라해도 근원이 없는 현실이 어디 있을까마는 현재로 보아서는 위에서 아래까지 근원을 묻지 않는 세태이다.
내가 어떤 사람의 유럽여행기를 보았는데,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실각한 영웅이지만 그가 일상 생활하던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기념하더라고 하였다. 이것은 나폴레옹을 숭배한다기보다는 제2, 제3의 새로운 나폴레옹이 양성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서양에서도 고대인물들은 적극적으로 숭배해서 이 이념으로 새로운 인물 양성 또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중세시대부터 자성을 잊어버리고 조금이라도 자주성을 갖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그는 조종의 중신이나 세력 있는 선비들에게 탈선자 취급을 받았다. 좀 심하면 화가 그 몸에 미치는 것이 예사여서 비록 출신배경이 좋은 가정이라 할지라도 선비가 주자학 이외의 것을 연구한다 하면 '학문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도적' 이라고 낙인이 찍혀 역적의 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는 일이 무수하였다. 그들을 대접이라도 하면 지금까지의 학문세계에서 제외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옛 성현 가운데서도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수심법을 습득하는 일이 있더라도 비밀로 감추고 겉으로는 주자학으로 행세해야 문묘배향도 하고 사림에게 배반도 안 당하는 것이었다.
조선조 중엽의 김종직 선생은 6예에도 그 법을 얻고 정신연구에도 수양이 있는 분이지만 순수 주자학이 아니라 하여 문묘배향을 못하였고, 그 후 서화담, 정북창,. 송구봉, 조남명, 유겸암, 허미수 등 여러 선생들도 도를 닦아 도달하신 경지야 배향되는 분보다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순수 주자학이 아니다 하여 이토정, 서고청 선생들과 같이 유일(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상당한 학문적 소양과 인격의 소유자이나, 현실 사회의 핵심에서는 벗어나 있던 국외자를 가리킨다.)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 현실주의적 사대파의 그릇된 점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현들 중에서 혹 대황조이념을 본받아서 홍익인간, 곧 세상에 널리 이로운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선생이 있었더라도 이런 발언만 하면 주자학파에게 이단으로 몰릴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학파는 껍데기만 있었고 순수한 정신연구학파는 행세를 못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결국 폐단이 되어 현대사조가 들어오자 옛 학파는 모두 같은 대우를 받게 되어 우리의 전래하는 심법파들도 아예 출현을 못하게 된 것이다. 조선 말엽부터 일제시대에 걸쳐 유교선비들의 기세가 좀 약해지자 심법파들이 각자 서로 으뜸이라 하며 별별 기괴망칙한 개인 주장을 하고 나왔다. 그러나 이것들은 것의 사이비적 논리가 대부분이며, 정전하려는 순수파들이 아니고, 이를 이용해서 세력을 양성하려는 도적무리들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나는 고대 정신문화를 그대로 살리고 항 걸음 나아가 이 문화가 우리 나라의 국력수준 향상에 큰 힘이 되어서 애국 애족적으로 공동발전이 되었으면 하는 미미한 바램이 있어서 누누히 정신연구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이 연정이 완성됨으로써 정신학계는 물론이요, 형이하학인 과학적 물질문명에도 진보를 할 수 있음을 확언해 두는 것이다. 또한 이것으로 삼육의 하나인 지육이 크게 발전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체육도 자연적으로 보통수준을 돌파할 것이며 덕육은 지육이 진전되면서 자연함양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끝맺으며
나의 오해된 모습
1. 세상에서는 나를 '도인' 이라고 하나, 나는 결코 도인이 아니다. 정신수련면에서 나름대로 감동한 바 있어 나를 도인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내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문제다.
나는 도인이 아니다.
나는 완성을 이룬, 완전한 경지에 오른 도인이 못된다.
다만 세속에서 때를 묻히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늙은 '학인'에 불과하다.
2. 또 누구는 나를 '시인' 으로 대접하지만, 나는 다만 젊었을 때부터 복잡한 머리를 식힐 겸 음풍농월하며 옛 시성들을 흉내내 왔을 뿐 스스로 시인이라고 여긴 적이 없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한시 몇 백편이지만 돌이켜 읽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모두가 괜한 글장난이었을 뿐이다.
3. 또 내가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소설 속의 실제인물' 이라는 것이다. 나는 몇 년전에 '단' 이라는 소설에 '우학도인' 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바가 있는데, 그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나를 '장풍, 축지를 마음대로 하는 굉장한 도사', '엄청난 정신력을 발휘하는 초인' 등으로 생각하고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 소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일부 과장되고 창작된 부분도 있는 것이므로, 소설 주인공의 모습이 그대로 '참나'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또 그전부터 내가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 조상들의 고유한 체력향상법이나 도력의 우수성을 피력했더니, 그들은 아예 나를 '비현실적인 몽상가'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초월한 '몽상가' 대접을 받을 만큼 상상력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다. 또 없는 일을 지어서 말할 정도로 말주변이 능란한 위인도 못된다.
4. 나는 과연 세상이 알고 있는 대로 '술객'인가? 나는 다만 젊어서부터 고대 문화 연구에 관심이 많아서 천문, 지리, 수리 등에 취미를 가졌을 뿐, 그것이 취미의 정도를 넘어 전문적인 '술객'의 위치에 이르지는 못했다.
또 나는 세상의 이치와 음양의 조화를 아는 전문적인 술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바른 눈을 가지고 일이 되어 나가는 꼴을 잘 살핀다면 누구나 진정한 인생의 '술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5. 또 한때 나는 '정권욕이 많은 사람' 으로 취급받았다. 그것은 내가 사십대에 백범 김구 선생의 한독당에 투신하였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은 남보다 영리한 사람들이 잡는 것이다. 나는 이무리 보아도 남보다 어리석기만 하다.
6. 또 나는 흔히 '종교인' 으로 취급되는데, 나는 원래가 간판을 단 어떤 형태의 단체나 조직을 싫어한다. 따라서 종교를 가진 인물이 될 수 없다. 다만 내 좁은 소견으로 생각할 때, 유불선이나 외래종교들은 근본적으로 우리민족에 맞지 않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을 전하는 대종교에 뜻을 두고 있을 따름이다. 이 대종교는 우리 민족의 뿌리사상이지 흔히 말하는 '종교단체'가 아니다.
7. 또 나는 '의학을 다루는 사람' 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그것은 내가 우리민족에게 전해져 오는 독특한 의학체계의 장점과 우수성을 알고, 그것을 계속 연구해 왔기 때문이다.
8. 또 나를 '호색한' 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것은 내가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남녀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양각색의 대우를 받는 나이다. 남이야 무어라 하든지, 악평을 하든 호평을 하든, 내가 관계할 바 아니다. 다만 내가 뜻을 둔 일이라면 남이야 무어라 하든지 자신을 가지고 나아갈 따름이요, 또 내 뜻을 이루고 못 이룸이 내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내 전심전력을 다해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내 바라는 바는, 오로지 이 나라 이 민족이 재기하여 우리 대황조의 홍익인간 이념을 실현해서 먼저 백두산을 중심으로 오족이 통일되는 일이다. 그 다음에 한국과 중국과 인도가 합심하여 동양 여러 민족이 세세만년의 평화정책을 수립함으로써 서양세계도 역시 이 이념으로 세계일가의 평화를 달성하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변함없이 희구하는 바요, 또 옛 성인께서 말씀하신 대동책이라고 확신한다.
비록 몸은 점점 쇠약해져서 버티어 나갈 자신이 부족해지나, 내 마음은 털끝하나 변함없이 이 희망을 가지고 살며, 이 희망을 가지고 죽을 것이다. 이 이념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비록 시기가 아직 안 왔다고 할지언정 실현이 못 될 리는 절대로 없으며, 또 그 발단이 틀림없이 우리민족,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질 것이요, 또 시기도 이미 도래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뜨기 전에 이 발단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확언해 두는 바이다. 또 앞으로 황백이 전환할 시기도 멀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해 둔다.
우리 민족에게 이 이념을 실현시킬 능력과 자격과 토대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것도 나는 자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누가 과연 그러한 위대한 일을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백두산족이라면 누구나 이 일에 책임이 있고, 또 능력도 자격도 있다고 나는 답하리라.
그리고 이 일이 완전히 실현되려면 한두 사람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우리 민족의 반수 이상의 각오와 실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성공을 바탕으로 동양세계가 완전히 합심할 수 있고, 우리 황인종이 완전히 단합되어 이념을 실현함으로써 백인종도 감화를 받아 세계일가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이념을 벌써부터 말하였다. 그러나 같은 이념을 가진 인물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지를 모으는 데에서 비로소 이념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이 이념을 실현하는 데에 이 민족의 한사람으로 자격도 있고 능력도 있고 책임도 있다.
그래서 이 붓을 든 것이다.
'얼(뿌리를 찾아서) > 국학(國學)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부(天符) 72396년 | 한기(桓紀) 9215년 | 개천(開天) 5915년 | 단기(檀紀) 4351년 | 서기 2018년 (0) | 2017.12.26 |
---|---|
천부경 바탕화면 (0) | 2017.12.26 |
무궁화 (0) | 2017.12.12 |
삼일신고 (0) | 2017.12.11 |
훈민정음 반대 최만리 상소문 (1) | 2017.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