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여유(餘裕)/비움과 채움

전거후공(前倨後恭)

양해천 2024. 3. 4. 21:41

■ 전거후공(前倨後恭)

이전에는 거만하게 우쭐거리다가(前倨) 나중에는 공손하다(後恭)는 이 말은 상대의 입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백팔십도 바뀌는 것을 말한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蘇秦(소진)은 張儀(장의)와 함께 말 잘 하는 사람의 대명사였다. 소진은 당시의 강국 秦(진)에 맞서려면 작은 나라가 연합해야 한다는 合縱策(합종책)을 주장하여 楚燕齊韓魏趙(초연제한위조)의 6국에서 재상이 되었다. 이런 소진도 출세하기 전에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처음 실패한 뒤 집에 돌아왔을 때 식구들은 냉대하기만 했고 형수는 밥상을 차려주는 것을 거부했다.

분발한 소진은 집에 틀어박힌 채 책과 씨름하여 독심술을 통달했다. 이후 육국의 왕을 찾아 세 치 혀로 유세한 결과 모두에게 뜻이 받아져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됐다. 한 나라를 방문하는 길에 고향을 지나게 됐는데 일행이 임금에 비길 만큼 성대했다. 집에 들어오자 식구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소진이 웃으면서 형수에게 ‘전에는 그렇게 야박하더니 어찌 이렇게 공손한가요 (何前倨而後恭也/
하전거이후공야)?’라고 말했다. 형수는 넙죽 엎드리며 사과했다.

지위가 높아지고 재물이 많아졌기 때문이라 대답한 데서 位高金多(위고금다)란 성어도 나왔다. ‘史記(사기)’ 蘇秦(소진)열전에 실려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돈과 지위가 보잘 것 없으면 같은 식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는데 사회서의 인간관계는 훨씬 더하다. 권세가 많은 세력가의 집이나 부자가 된 집에 줄을 대기 위해 門前成市(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사람이 별 볼 일없이 되면 문밖에 참새 그물을 칠 정도로 인적이 끊기는 門前雀羅(문전작라) 상태가 된다.

자주 찾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사람의 처지가 어떠하든 대하는 태도는 다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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