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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103]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56

양해천 2018. 1. 19. 09:08

[홍익인간 103]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56

2011년 10월 16일 (일) 23:04:26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조선(朝鮮) 제4대 오사구(烏斯丘) 천왕(天王)의 역사 - 

[모란봉(牧丹峰)의 마한(馬韓) 이궁(離宮)] 

서기전2109년 겨울 10월에 마한(馬韓) 근우지(近于支)가 모란봉(牧丹峰)의 중턱에 이궁(離宮)을 세워 천왕이 순수하다 머무르는 장소로 삼았다. 

매년 3월에 천왕이 마한에게 명하여, 열병과 사냥을 하고, 3월 16일에는 기린굴(麒麟窟)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며, 조의(皁衣)를 하사하고, 관례(冠禮)를 행하며, 가무백희(歌舞百戱)하고 파(罷)하였다. 

모란봉은 마한 땅이 되는 한반도의 평양 부근에 있는 산이다. 이곳의 중간 기슭에 마한의 이궁(離宮)을 설치하여 단군조선의 천왕이 각 지역을 순수하다 머무는 별궁의 하나로 삼은 것이다. 

이궁(離宮)은 본궁(本宮) 외에 피난(避難), 순행(巡行) 등을 위하여 특별한 의도로 설치한 궁(宮)이다. 당시 마한의 본궁(本宮)은 지금의 평양이 되는 백아강(白牙岡)에 있었으며, 천왕이 순수하다 머무는 곳으로서 이궁(離宮)을 모란봉의 중턱에 세운 것이다. 그리하여 모란봉 이궁은 마한(馬韓)의 이궁(離宮)이기도 하며 진한(眞韓)의 이궁(離宮)의 역할도 한 것이 된다. 

단군조선 전체의 영역을 고려하면, 초기의 수도는 송화강의 아사달에 있어 이 이사달궁(阿斯達宮)이 본궁(本宮)이 되고,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의 수도가 있는 궁(宮)이 별궁(別宮)으로서 이궁(離宮)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대로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이궁(離宮)으로서, 서기전2324년경에 세운 장당경(藏唐京), 서기전2049년에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 제천행사 때 불렸던 신경(新京), 서기전1984년에 상춘(常春)의 구월산 남쪽 기슭에 세운 신궁(新宮), 서기전1345년에 영고탑(寧古塔)을 개축하면서 세운 이궁(離宮), 서기전425년에 세운 해성(海城) 평양(平壤)의 이궁(離宮)을 들 수 있다. 

단군조선 시대에 음력 3월은 음력 10월과 더불어 특별한 달이다. 음력 3월 15일은 단군왕검(檀君王儉) 천제(天帝)께서 승천(昇天)하신 어천절(御天節)이 되는 날이며, 3월 16일은 대영절(大迎節)이라고도 하는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의 날이다. 

삼신영고제는 “삼신 맞이굿 제사”라는 말을 나타낸다. 영고(迎鼓)라는 글자가 “맞이굿”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즉 대영절(大迎節)은 시월 국중대회(國中大會)처럼 삼신(三神)께 지내는 천제(天祭)를 올리며 제전(祭典)를 벌이는 날인 것이다. 

매년 음력 3월에 마한(馬韓)이 단군조선 천왕(天王)의 명령을 받아 준비하여 열병의식과 사냥의식을 치렀던 것이며, 음력 3월 16일에는 마한(馬韓)이 자체적으로 기린굴(麒麟窟)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이에 천왕은 조의(皁衣)를 하사하고 관례(冠禮)를 행하게 하였으며, 가무백희(歌舞百戱)한 후에 파(罷)하게 하였던 것이다. 

단군조선 천왕은 음력 3월 16일에 진한 땅에서 친히 삼신께 제를 올렸던 것이 되고, 마한과 번한이 자체적으로 삼신영고제를 지낸 것이 되며, 이에 천왕은 마한과 번한에게 조의(皁衣) 등의 선물을 각 하사(下賜)하여 제천행사(祭天行事)를 치르게 한 것이 된다. 

가무백희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백가지 유희(遊戱)를 즐기는 것이다. 즉 가무백희는 제천행사 뒤에 벌어지는 축제로서 종합예술 행사가 된다. 

[양가(羊加) 구을(丘乙)이 천왕으로 즉위하다] 

서기전2100년 신유년(辛酉年) 6월에 오사구 천왕이 붕하시니 양가(羊加) 구을(丘乙)이 즉위하였다. 

태자가 아닌 구을(丘乙)이라는 이름을 고려하면, 구갑(丘甲)이라는 형(兄)이 태자로 있었던 것이 되는데, 양가(羊加)의 직을 수행하던 구을이 화백회의(和白會議)로 또는 태자(太子)가 자리를 양보하거나 사망함으로써 즉위한 것이 될 것이다. 

양가(羊加)는 한국(桓國) 후기부터 전해온 오가(五加)의 하나로서 선악(善惡)을 담당하던 관직이며, 지금의 교육부와 법무부에 해당한다. 특히 순임금 시절에 있었다는 사도(司徒)가 양가에 해당하는 직책을 수행한 관직이 되며, 선악(善惡)을 구분하였다는 외뿔양(一角羊)이라 불리는 해치(獬豸)는 법(法)의 원래 글자(法+廌)를 구성하던 치(廌)이고, 후대에 해태(海駘)로 변하여 물로써 불을 진압하는 신령스런 동물로 섬겨지게 되었다. 

외뿔양인 해치(獬豸)가 선악(善惡)을 구분하는 방법으로서 죄인(罪人)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해치로 하여금 가려내게 하였는데, 이때 해치는 외뿔로써 죄인을 가리켜 찾아내었던 것이라 한다. 죄와 벌을 담당하였던 조선시대의 사헌부(司憲府) 등은 관복(官服)이나 관(冠) 등에 이 해치의 문양을 넣었다고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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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와 한중일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이세신궁 원시한글 축문 국내 최초 해독 및 역사적 해석 
*소위 우왕비(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문 국내 최초 역사적 해석 
*명도전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 해독 검증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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