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7만년 한 민족사

4. 요동성 인골과 볍씨 그리고 흑피옥의 충격

양해천 2018. 1. 23. 15:31

4. 요동성 인골과 볍씨 그리고 흑피옥의 충격 
* 유네스코, 문명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발표 
존 카터 코벨(John Carter Covell?1910-1996)과 존 엘렌 코벨(John Alan Covell. 1916 - 1990) 카터 코벨은 미국 태생의 동양미술 사학자로 서양인으로는 맨 처음 일본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 주립 대와 하와이 주립 대에서 동양미술사를 가르쳤던 인물이다. 코벨은 1978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일고대사, 한국미술, 불교, 도자기 등에 대한 1400여 편의 칼럼을 썼고, 한국이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 한국문화의 뿌리 등 5권의 한국문화 관련 책을 냈다. 이 책을 근거로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할 수 있는 증거는 요동성 근방 만주 지역에서 대량의 곡식 탄과 인골이 함께 발견됨으로 시작되었다. DNA검사결과 볍씨는 자연 산이 아닌 교배종이란 것이 판명됨으로서 농사 기술이 첨단 과학을 이룩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군량미로 생각되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한 전쟁이 있었던 듯 하다는 것과 탄소 년대 측정 결과 1만 7천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의 DNA 검사 결과 평균 수명 1000세에 달한다고 한다. 이 결과는 성경의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의 수명과 환인 조선 7대 3301년 재위 기간 400-500년 기록을 고려할 때 1대가 평균 400-500년 재위했으므로 그 수명이 1천 세 정도로 추정되어 일치한다. 고조선의 역사를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것이다. 
* 1만 4천년전 "흑피옥"고조선 지역에서 발굴 
흑피옥의 최초 발견자는 광주 출신의 유물 수집가 김희용씨(사진 좌측 인물)인데 이 분은 평생 수억의 전 재산을 털어 중국과 만주 등지에서 흑피옥 조각상을 수집하는데 평생을 바친 분이다. 수백점의 이 흑피옥이 아시아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줄 중요한 자료라는 점을 중국 당국이 알고 김씨에게 귀화를 종용했다가 나중에는 국가영웅 칭호를 부여하면서 소장품을 중국에 요구했으나 거절했다. 그는 지난 2008년 1월9일 전남 과학 대 정건재 교수(좌측 인물)에게 탄소 연대 측정을 의뢰했고 흑피옥(黑皮玉)의 연대가 1만4000여 년 전이라는 추정 결론이 나왔다. 이어서 서울 항공대의 우실하 교수도 이 내용에 대해 같은 결론은 내었고 우교수는 홍산문화 옥기와 똑같은 흑피옥의 연대가 홍산문화와 같은 시대로 확인된다면, 흑피옥 문화가 홍산문화로까지 계속 이어졌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발견으로 종래의 4대 문명(BC 3.000-5000)도 중국의 고대 문명도 모두 고조선 문명보다 1만년 이후임이 확인되고 지금 내이멍구(내몽고) 자치구의 고비사막이 마지막 빙하기 이후 초원이었으며 그곳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살아남아 이집트나 크로마뇽인, 또는 중국인, 중앙아시아인들 보다 훨씬 이전인 석기 시대에 문명을 이루었음을 말해준다. 이 흑피옥 유물을 고조선의 기록과 연관시켜 본다면 박제상이 쓴 부도지의 마고 조선 시대로 보이며 흑백황인종과 인디언이 갈라지고 지유를 먹으며 오미의 난이 일어난 시기로 보인다. 흑피옥 유물에 남여 혼성상이 많은 것은 가족관계를 중시한 사회로 가정을 통한 종족유지와 식량 확보 및 외부침략으로부터의 안전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것 같고 왕의 이름 중 여성이 있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다음에 열거하는 부도지의 기록으로 미루어 이 남녀 혼성시기가 아닌가 한다. 


자료출처 : http://armymission.org/huk.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