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부도지(符都誌)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13절 세종대왕이 영해 가문을 가까이 두다

양해천 2018. 1. 26. 14:33

[원문] 

第十三節 

本朝世宗大王登位 甚慇懃於寧海 周恤公家一門 
본조세종대왕등위 심은근어녕해 주휼공가일문 
又建赫居世王陵廟 乃命公之宗次二家 移居於京師泮宮之隣 
우건혁거세왕릉묘 내명공지종차이가 이거어경사반궁지린 
命長老入侍便殿恩顧甚重 
명장로입시편전은고심중 
徵次家裔昌齡公父子而登用 
징차가예창령공부자이등용 
時余在隣受業于宗嗣之門 
시여재린수업우종사지문 

[해설] 

제13절 

본조(本朝, 조선조), 세종대왕이 왕이 되어서는 
은근히 영해(寧海)를 생각하여 공(公)의 문중(門中)을 두루 구제하였다. 

또 
혁거세왕(赫居世王) 능묘를 세우고, 
곧 공(公)의 종가(宗家)와 차가(次家) 두 집에 명하여 
서울 성균관 옆으로 옮겨 살게 하고, 
장로로 편전에 들어 왕에게 알현하도록 명하여 
은혜로 보살펴 주기를 심중(甚重)하게 하였다. 

차가(次家)의 후예(後裔) 창령공(昌齡公)1) 부자를 불러 등용(登用)하였다. 
때에 나는 이웃에 있어 종가(宗家)의 후손의 가문에서 수업하였다. 


[세부해설] 

1) 창령공 : 1377~1449. 
벼슬이 평양서윤(平壤庶尹) 이었다. 

* 세종 : 조선왕조 제4대 왕(재위 1418~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