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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111]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64

양해천 2018. 1. 19. 09:18

[홍익인간 111]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64

2011년 10월 20일 (목) 18:15:59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조선(朝鮮) 제7대 한율(翰栗) 천왕(天王)의 역사 - 

[마한(馬韓)에 막연(莫延)을 봉(封)하다] 

서기전1994년 이전에 마한(馬韓) 궁호(弓戶)가 죽었으나 후사가 없어 선대에 마한(馬韓)이었던 두라문(杜羅門)의 아우가 되는 두라시(杜羅時)의 증손 막연(莫延)이 제7대 한율(翰栗) 천왕의 명(命)을 받아 마한(馬韓)을 계승하였다. 

마한 궁호(弓戶)는 제8대 마한이며, 제4대 마한 두라문(杜羅門)의 아우가 두라시(杜羅時)이고, 두라시의 증손이 막연(莫延)이다. 마한 두라문은 서기전2179년부터 서기전2176년까지 다스렸으며 단군조선 제3대 가륵 천왕 시대 사람이 된다. 

마한 궁호가 후사가 없었으므로 막연이 단군조선 제7대 한율 천왕의 명을 받아 마한(馬韓) 땅의 마한(馬韓)이 된 것이다. 

마한(馬韓)은 사람으로서 비왕(裨王)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며, 마한 땅 즉 마한(馬韓)이라는 나라(國), 관경(管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이나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의 삼한(三韓)에는 국(國)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은 원칙이 아니다. 즉 국(國)이라는 글자가 경계가 있는 나라를 가리키므로 경계가 없는 나라에게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한인천제의 한(桓)이나 한웅천왕의 단(檀)이나 단군의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는 경계가 없는 대제국(大帝國)이므로 국(國)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한단조선(桓檀朝鮮)의 일반 제후국에 해당하는 소국(小國)들에게 국(國)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경계가 있으므로 이치에 맞게 된다. 마한과 번한은 소국을 넘어서는 대국(大國)으로서 경계가 없다고 보아 국(國)이라는 글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다. 

후대에 단군조선의 마한(馬韓) 땅이 되던 한반도에 생긴 진한(辰韓), 마한(馬韓), 변한(弁韓)도 각각 수십개의 소국(小國)들로 이루어진 나라로서 국(國)을 붙이지 않는 것이 맞으나, 일반칭인 국명(國名)으로서 국(國)자를 붙이는 것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리하여 단군조선 시대에는 소국(小國)이 되는 제후국(諸侯國)이나 성읍(城邑)의 나라가 국(國)이라 불리는 것이다. 즉 봉건제후국(封建諸侯國)이 국(國)이며 중앙조정(中央朝廷)은 천조(天朝)로서 천국(天國) 또는 상국(上國)이라 받드는 것이고, 일반적인 국(國)으로 부르지 않는 것이 된다. 

한편, 제후국이 대국(大國)으로서 다시 제후를 봉한 경우가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나라로서 단군조선의 천왕격(天王格)의 나라인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이 있으며, 천자국(天子國)인 고대중국의 당우하은주(唐虞夏殷周)가 있다. 

한단조선(桓檀朝宣) 천하도(天下圖)



단군조선 천왕이 봉한 군후국(君侯國)으로는 단군조선 초기에 봉해진 천왕격의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의 삼한(三韓)과, 천군국(天君國)인 청구(靑邱), 남국(藍國), 구려(句麗), 진번(眞番), 부여(扶餘), 몽고리(蒙古里), 고죽(孤竹) 등이 있으며, 그리고 후에 봉해진 낙랑홀(樂浪忽), 엄독홀(淹瀆忽), 남선비(南鮮卑) 등이 있고, 일반 제후국으로는 숙신(肅愼), 예(濊), 개마(蓋馬), 옥저(沃沮), 졸본(卒本), 비류(沸流)와 그후에 봉해진 청아(菁莪), 서옥저(西沃沮), 맥성(貊城) 등이 있다.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은 지금까지는 기록상 밝혀진 바는 없으나 단군조선 본국과는 별도로 제후국(諸侯國)을 봉한 것으로 보이는데, 마한 땅이 되는 한반도 내에 평양(平壤)에 있던 마한 본국 외에 제후국들이 수십개, 수백개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이 된다. 또 마한의 관경에 속하던 지금의 일본(日本) 땅인 구주(九州, 큐슈) 등지에도 제후국들이 산재하였던 것이 된다. 

번한(番韓)은 단군조선의 서쪽이자 남쪽을 보좌한 나라가 되는데, 번한 자체에서 별도로 봉한 제후국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서기전1766년에 번한이 고죽국(孤竹國)의 왕인 묵태(墨胎)를 은(殷)나라 시조 탕(湯)에게 보내어 즉위(卽位)를 축하하였다는 기록이 있음을 볼 때, 고죽국은 번한의 관경에 속하였던 군국(君國)이 되는 것이다. 

위치상으로 번한(番韓) 관경에 속한 나라로는 산동지역에 위치한 청구(靑邱), 남국(藍國), 엄(淹), 서(徐), 회(淮) 등이 있으며 발해만 서쪽에 위치한 고죽국(孤竹國), 기후국(箕侯國)이 있다. 

마한과 번한의 관경 외에 있던 단군조선의 군후국은 모두 단군조선 본국 즉 진한(眞韓)에서 봉한 것이 된다. 즉, 구려, 진번, 부여, 숙신, 옥저, 개마, 예, 졸본, 비류, 서옥저 등 마한 땅의 압록강 이북과 번한의 북쪽에 위치한 군후국들이 진한(眞韓) 또는 진조선(眞朝鮮)의 군후국(君侯國)이 되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번한관경에 속하였던 영지(令支)는 요중(遼中) 12성(城)의 하나로서 위치상으로는 고죽국의 수도가 되는 고죽성(孤竹城)의 서북쪽에 위치하였던 것이 되는데, 고대중국의 기록으로는 영지국(令支國) 등으로 국(國)이라 적고 있는 바, 성(城)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독립적인 나라(國) 즉 제후국(諸侯國)으로 본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의 성(城) 단위에 지나지 않는 영지(永支)는 중국의 제나라나 연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에게 버금하는 독립적인 나라가 되는 것이다. 

서기전650년경 제(齊)나라와 연(燕)나라의 팽창으로 고죽국(孤竹國)과 은(殷)나라의 망명자 기자(箕子) 서여(胥餘)의 나라가 되는 기후국(箕侯國)이 망하여, 이곳의 주축세력들이 동쪽으로 이동하거나 남하하였던 것이 되는데, 특히 기자(箕子)의 후손으로서 번한(番韓) 땅으로 들어간 수유족(須臾族, 기자 서여족)의 무리인 기후(箕詡)가 서기전323년에 번한(番韓)을 차지하여 번조선왕(番朝鮮王)이 되기도 하였고, 일부는 남하하여 전국시대에 조(趙)나라와 연(燕)나라 사이에서 선우 중산국(鮮于 中山國)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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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와 한중일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이세신궁 원시한글 축문 국내 최초 해독 및 역사적 해석 
*소위 우왕비(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문 국내 최초 역사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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