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最高)보다 최선(最善)이다 ]
지미 카터(James Earl Carter Jr.; 1924~ , 39代) 대통령이
젊었을 때의 일이었다.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복무하던 그는
원자력잠수함 승조원 모집에 지원했다.
함대 책임자인 하이만 리코버(Hyman Godalia Rickover; 1900~1986) 제독이 직접 응시자들을 면접했다.
제독이 카터 대위에게 물었다.
“해군사관학교에 다닐 때
귀관의 성적은 어떠했는가?”
미군 장교가 되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나온 카터는
“예!
820명 중에서 59등을 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다음 질문이 날아들었다.
“귀관은 그때 최선을 다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제독님.
늘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제독은 물끄러미 카터를 쳐다보더니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그는 전율을 느꼈다.
카터는 공부도 잘했고
군 복무에서 좋은 평점을 받았기에
이 정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제독의 마지막 질문은
카터에게 평생의 교훈이 되었다.
그는 어떤 난관에 직면하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물었다.
훗날 그는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라는
제독의 질문을
자신의 자서전 제목으로 정했다.
사람들은
최고가 되기를 바라지만
최고보다
최선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최고(最高)와 최선(最善)은 다르다.
최고는
타인을 향하지만,
최선은
언제나 자신이 기준이다.
최고는
타인을 이겨야 얻을 수 있다.
최고는
최선과는 달리 한 명에게만 월계관을 씌워주고,
대다수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든다.
남을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즐비한 것은
삶의 목표를 최고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가
결과를 중시한다면
최선은
과정을 중히 여긴다.
최선은
내가 얼마나 고난을 이겨냈고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했는지가 관건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고,
최선을 다해도 꼴찌를 할 수도 있다.
소설가 박완서(朴婉緖, 1931 ~ 2011)의 글 중에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이 있다.
화창한 어느 날,
박완서 작가가 탄 버스가 꼼짝을 하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로 교통이 통제된 까닭이다.
작가는
구경을 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선두권 주자들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지나갔다.
이들이 오래 전에 지나간 뒤에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꼴지 주자들을 보면서
작가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작가는
그때의 묘한 감정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그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좀 전에
그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도
자기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옜다 모르겠다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내가 그걸 보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어떡하든
그가 그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끼지 말아야지.
(그렇게) 느끼기만 하면
그는 당장 주저앉게 돼 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최선을 다한 삶은
아름답다.
충분히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인생에서
누구나 최고가 될 순 없지만,
누구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
최고보다
최선이다.
( 옮겨 받은 글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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