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여유(餘裕)/비움과 채움

숙맥

양해천 2024. 7. 8. 14:40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숙맥이라 한다. 

*
숙(菽)은 콩이고, 

맥(麥)은 보리다. 

*
크기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확연히 
다른 곡물인데, 

*
눈으로 
직접 보고도 

분별해 내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
이처럼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쑥맥!'이라고 
욕하기도 한다. 

*
菽麥
(숙맥)은

'콩과 보리'라는 의미를 지닌 
고사성어로, 

숙맥불변(菽麥不辨)의 
준말이다. 

*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
종종 

'쑥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래도 

첫 발음에 
강세가 들어가서 

그런 탓일게다.

*
숙맥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콩과 보리뿐이겠는가?

*
상식과 비정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욕과 평상어를 
구별하지 못하고,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구별하지 
못하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
해를 보고 
달이라 하고,

달을 보고 
해라고 하면,

낮과 밤이 
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
진시황제가 
죽고 

2세 
호해(胡)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의 곁에는 

환관인 조고가 
있었다. 

*
간신 조고는 

진시황제의 
가장 우둔한 아들인 

호해를 
황제의 자리에 올려놓고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했다.

*
조고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조정 신하들의 마음을 
시험하기로 한다. 

*
그는 

신하들을 
모두 모아놓고 

사슴(鹿)을 
호해에게 바치며 

말(馬)이라고 
했다. 

*
호해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

라고 하자, 

*
조고는 

신하들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
신하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침묵파였다.

*
분명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잘못 말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침묵을 선택한 
[기회주의파] 부류였다. 

*
또 한 부류는 
[사슴파]였다.

분명 
말이 아니었기에 

목숨을 걸고 
사슴이라고 

정직하게 대답한 
충신파 신하들이었다.

*
마지막 한 부류는 
[숙맥파]였다. 

분명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슴이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
사슴과 말도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이 되기를 
선택한 

간신파 
똘마니들이었다.

*
그리하여 

숙맥들만 
살아남고 

모든 신하는 
죽임을 당했다.

*
바야흐로 

숙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
그러나 
숙맥의 시대는 

채 몇 년도 
가지 못했다. 

*
썩은 권력은 

오래 갈 수가 
없는 것이다.

*
더는 
숙맥으로 살지 않겠다는 
국민들이 봉기해 

결국 
진나라는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된다.

*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에서 전하는 

"지록위마“
(指鹿爲馬) 

에서 나오는 
고사이다.

*
이성이 침묵하고, 
거짓이 참이 되고, 

변명이 사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숙맥의 시대라 한다.

*
이런 시대를 

"숙맥의 난(亂)“
이라고 정의한다.

*
숙맥의 난맥상은 

그 어떤 혼란의 시대보다 
폐해가 크다.

충신이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
상식은 
몰락하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도술(道術)이 
성행한다.

*
이런 도술을 
부리며 

세상 사람들을 흘리는 
도사들이 

숙맥의 시대에는 
주류가 된다.

*
혹세무민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그들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 

능력으로 
인정된다. 

*
부패의 시대가 
만연한 것이다.

숙맥파 교주들은 

분별력을 잃은 
숙맥들을 이끌고 

허무맹랑
(虛無孟浪)한 말로 

사람들을 
부추겨

자신들의 잇속만 
챙겨간다. 

*
이미 좀비가 된 
숙맥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교주들의 구호에 맞춰
절규하고 

거품을 물고 
욕을 해 댄다.

*
이념이 
사람을 잡아먹고, 

관념이 
현실을 가린 

숙맥의 난이 
펼쳐지는 것이다. 

*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늘 

숙맥의 난(亂)으로 
들끓었다.

*
서양에는 
르네상스가 

동양에는 
성리학이 

이성(理性)을 
기치로

숙맥의 난을 
평정하려 했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혀 
좌절됐다.

*
진실이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너무 과분한 

이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숙맥의 시대
現世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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