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여유(餘裕)/비움과 채움

덤벙 주초(柱礎)

양해천 2024. 7. 8. 14:41

♡ 덤벙 주초(柱礎)


둥글넓적한 자연(自然) 그대로의 돌을 다듬지 않고 건물(建物)의
기둥 밑에 놓은 주춧돌을 덤벙 주초(株礎)라고 부른다

​어느날 오랫만에 내 얼굴을 본 할머니가 물으셨다
“얼굴이 왜 그렇게 어둡냐?”

​할머니는 한 쪽 눈을 실명(失明) 하셨고, 목소리를 통(通)해
사람을 분간(分揀)하실 정도로, 다른 쪽 시력(視力)도
안 좋은 상태(狀態)였다. ​

그런 할머니의 눈에 손자(孫子)의
힘든 얼굴이 비친 모양(模樣)이다.

​“너무 걱정마라. 때가 되면 다 잘 풀릴 거니께. . .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니라.”

​어떤 위로(慰勞)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程度)로 지치고 힘든 나였다.

하지만
덤벙덤벙 살라는 말은 꽤 인상적(印象的)으로 마음에 꽂혔다.​
물론 그게 어떤 삶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 . .

몇 년(年)이 흘렀다.
책(冊)을 읽다가 우연(偶然)히 ‘덤벙 주초(柱礎)’란 것을 알았다.

강원도(​江原道) 삼척(三陟)에
“죽서루(竹西樓)”라는 누각(樓閣) 이 있다.
특이(特異)한 것은 그 누각의 기둥이다.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한 것이다.

​길이가 다른 17개(個)의 기둥으로 만들어졌다.
숏다리도 있고 롱다리도 있다.

이렇게 초석(礎石)을 덤벙덤벙 놓았다 해서
‘덤벙 주초(柱礎)’라 불린다.

순간(​瞬間)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야 . . .”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代身)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 놓을 줄 아는 여유(餘裕)가 놀랍다.

​그래서
할머니의 말뜻을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겠다.

세상은 평탄(平坦)하지 않다.
반반하게 고르려고만 하지 마라 ‘덤벙 주초(柱礎)’처럼 그 때
그 때 네 기둥을 똑바로 세우면 그만이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가만있지 않고 흔들거립니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中心)을 잃지 않으려면 마음의
기둥을 잘 세워야 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
서둘지 말고
조급(早急)하지 말고,
욕심(慾心)부리지 말고,
남과 비교(比較)하지 말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