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95]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48

양해천 2018. 1. 18. 15:41

[홍익인간 95]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48

2011년 10월 07일 (금) 23:32:39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조선(朝鮮) 제3대 가륵(嘉勒) 천왕(天王)의 역사 - 가림토(加臨土) 

[일본 이세신궁의 원시한글 -가림토 아류] 

1. 해독 및 해석 

일본(日本) 이세신궁(伊勢神宮)에 한글과 같은 글로 된 문헌이 있다. 가림토의 후신(後身)으로서 가림토의 아류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 글자를 신대문자(神代文字. 서기전 660년이전)라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는 이 글자를 원시한글이라고 일단 부르면서 그 내용을 풀이하고자 한다. 

이세신궁 원시한글 - 가림토 계열 문자

원시한글을 세로로 읽어 한글로 적어보면, "우미가유거하고시나두무오호가하라노우어구사우미가하이사요후하마두디도리하마요하유가수이시두다후"가 된다. 원시한글의 우측에 첨기된 일본 가다가나도 거의 같은 발음이긴 하나, 다만 일본발음으로 읽으면 그 원어를 알기 어렵게 되어 해석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 문장을 알기 쉽게 풀어보면, "바다가 유거(攸居)하고 시냇물도 무오호가(無惡好歌)하라. 노우어구(怒于御丘)는 바다가 하심이로다. 두지공이신 요하유님이 편안히 쉬시도다."로 적을 수 있다. 이를 다시 풀이하면, "바다가 머물고 시냇물도 거리낌 없이 노래하누나. 파도는 신궁의 언덕에 부딪치는도다. 두지공(豆只公)이신 요하유님께서 편안히 쉬고 계시노라."가 될 것이다. 

위 원시한글의 문장의 말투는 조선시대 말투로 보인다. "우미가 유거하고 시나두 무오호가 하라 노우어구사 우미가 하이사 요후 하마 두디도리 하마 요하유가 수이 시두다후"속에 현재 쓰는 우리말과 옛말, 한자성구로 보이는 말이 있고,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 감탄사와 같거나 비슷한 글자가 있다. 일본말로 보이는 글자로는 "우미"와 감탄사 "요후", "후"가 있다. 그 외는 모두 우리말로 보아도 무방한 글자이다. 그래서 위 문장은 조선시대에 쓴 것이라 보인다. 다만, 그 내용은 이세신궁이 세워지던 그 때의 역사적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문장이 된다. 

여기서 요하유라는 자는 바로 일본의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이다. 

위 해석의 정확성을 뒷받침해주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글을 소개한다. 

"수인천황(垂仁天皇) 25년(서기전 5년) 3월에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왜희명(倭姬命)에게 맡겼다. 왜희명(倭姬命)은 대신(大神)을 모실 자리를 찾아 다니다가 근강국(近江國)으로 가서 미농국(美濃國)을 돌아 이세국(伊勢國)에 이르렀다. 그때 천조대신이 왜희명에게 이르기를, 「이 신풍(神風)의 이세국(伊勢國)은 늘 물결이 무겁게 부딪히면서 돌아오는 나라이다. (倭(야마토)에)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이다. 이 나라에 머물고 싶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신(大神)의 가르침을 따라 이세국(伊勢國)에 사당(祠堂)을 세우기로 하여 제궁(齊宮)을 오십령천(五十鈴川) 위에 세웠다. 이를 기궁(磯宮)이라 이른다. 천조대신이 처음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곳이다." 

한편, 이세신궁의 원시한글 왼쪽에 쓰여진 흘림체 문자로 된 글의 오른쪽에 가다가나로 첨기된 것을 보면, 야마토호꼬아마쯔미시로 토요꾸무게리히메미고또(ヤマトホコアマツミシロ トヨクムケリヒメミコト)라고 쓰여져 있는 바,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倭穗子天祇城 豊組氣理姬命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서 왜희명(倭...姬命)을 찾아 볼 수 있어, 이세신궁의 원시한글을 쓴 사람은 왜희명으로서 일단 이세신궁을 지을 때 쓴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이세신궁의 원시한글은 서기전 5년경 왜희명이 천조대신의 신궁을 이세국의 오십령천 위에 세우고서 쓴 글이 아닌가 추정을 해보는데, 문장의 어투로 보아서는 근세 조선시대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한글이전에 글이 있었다라는 기록은 세종실록외에도 나타나고 있는 바, 현금에 나타난 한단고기 단군세기편에 서기전 2181년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이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어 가림토(加臨土)라 하였다 하고, 또, 김시습이 지었다는 징심록추기에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자를 신라시대 박제상이 지었다는 징심록(澄心錄)에서 취했다고 적고 있기도 하다. 

신라 박제상이 지었다는 책은 부도지 등 15권이 있는데, 이에 음신지(音信誌)라는 책이 있는 바, 이 음신(音信)이라는 것은 소리(말)와 전달을 의미하는데 말을 멀리 또는 후대로 전달하려면 그 수단이 필요하므로, 문자가 있었음을 가늠케 한다. 

2. 단군조선 역사의 흔적 

위 이세신궁의 한글 문헌은 우리역사에 아주 중요한 단서를 던져주고 있다. 즉, 단군조선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두디도리"이다. 두디도리는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이라는 의미이다. 

역사적으로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173년경 두지주 예읍의 추장이던 소시모리(牛首)가 반란을 일으켰고 여수기(余守己)가 진압하였다. 여수기는 예국(濊國)에 봉해진 단군조선의 제후이며, 동서남북중 동쪽을 책임진 천하의 왕이었다. 단군왕검은 동서남북중에서 중앙에는 천부단(天符壇)인 제천단(祭天壇)을 쌓은 백두산(태백산)이 있고, 동쪽을 지키는 동보(東堡)인 예(濊), 서쪽을 지키는 서보(西堡)인 번한(番韓), 남쪽을 지키는 남보(南堡)인 마한(馬韓), 북쪽을 지키는 북보(北堡)인 진한(眞韓)을 두었다. 이는 곧 동서남북중의 천부단 4보 제도인데 바로 서기전7197년 이전의 파미르 고원 마고성 시대에 있었던 제도로서 단군왕검은 마고(麻姑)의 법을 그대로 본땄던 것이다. 

일본의 국조신(國祖神)이라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은 여신(女神)으로서 대일령(大日靈, 요하유)존이라고도 불린다. 그 선조는 바로 단군조선의 두지주 예읍의 추장이던 소시모리가 되며, 대대로 그 추장을 소시모리(=소ㅅ 머리) 또는 우두머리, 우수(牛首) 등으로 불린 것이 되고 두지도리라 기록된 것이 된다. 도리는 공(公)으로 나타낼 수 있는 말로서 일정 지역의 장(長)을 의미한다. 

비록 위 원시한글 문서는 세종대왕이 신제(新制)한 훈민정음의 글자를 후대에 조작하였다느니 하는 문제가 있으나, 글 내용에 담긴 역사는 바로 단군조선의 역사를 적은 것이 된다. 

이미 서기전2181년 당시 단군조선에서 가림토38자라는 정음(바른소리)이 정립된 것으로 보면, 단군조선 영역에 속하던 일본 땅에 한글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고 쓰여진 것은 사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현재 일본에서 보유하고 있는 많은 유물상에 새겨진 한글모양의 글자를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라고 확정하기 위하여는, 각 유물의 제작연대를 밝히는 것이 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위 한글모양의 글자가 서기전660년 이전부터 있어온 소위 신대문자가 맞다라면 100% 단군조선의 유산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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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27년 이상 족보와 한중일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이세신궁 원시한글 축문 국내 최초 역사적 해독 및 해석 
*소위 우왕비(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문 국내 최초 역사적 해석 
*명도전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 해독 검증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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