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9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49

양해천 2018. 1. 18. 15:41

[홍익인간 9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49

2011년 10월 11일 (화) 09:04:11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조선(朝鮮) 제3대 가륵(嘉勒) 천왕(天王)의 역사 - 

[배달나라 시대의 역사서 배달유기(倍達留記)] 

서기전2180년 신축년(辛丑年)에 신지(神誌) 고글(高契)에게 명하여 배달유기(倍達留記)를 편수(編修)하게 하였다. 

신지(神誌)는 문자(文字) 및 명령(命令) 관련 담당 벼슬(官職)이다. 후대에 문서(文書)를 담당하던 한림원(翰林院) 또는 조선시대의 도승지(都承旨)승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고글(高契)은 고씨(高氏)인 글(契)이라는 사람이다. 글(契)은 문자(文字)를 가리키는 말로서, 사람 이름일 경우에는 “설(偰)“이라고도 읽힌다. 특히 순(舜) 임금 시절에는 교육담당인 사도(司徒)에 봉해졌던 인물로서 ”契“이라고 기록되기도 한다. 

배달유기는 역사책을 말하며, 단군조선 초기에 엮어진 것이므로 그 이전의 배달나라 시대의 역사를 중심으로 엮은 것이 된다. 

[흉노족의 조상 색정(索靖)] 

서기전2177년 갑진년(甲辰年)에 열양(列陽) 욕살(褥薩) 색정(索靖)에게 명하여 약수(弱水)로 옮기게 하고 종신자치(終身朿置)하였다가, 뒤에 이를 용서하고 그 땅에 봉하니 흉노(匈奴)의 조상이 되었다. 

열양(列陽)은 열수(列水)의 남쪽이라 해석되는데, 열수는 조수(潮水), 습수(濕水), 산수(汕水) 등의 지류를 가진 강으로서, 지금의 영정하 동쪽이자 난하의 서쪽에 위치한 고하(沽河) 또는 백하(白河)가 된다. 백하(白河)의 지류에 습여수(濕餘水), 조하(潮河) 등이 있다. 

욕살(褥薩)은 지방장관이다. 지방의 왕(王)이 되는 제후(諸侯)가 아니면서 지방의 일정지역을 다스리는, 중앙에서 임명받는 최고의 관직이 된다. 지금의 군수(郡守) 이상 도지사(道知事)에 버금간다 할 것이다. 

색정(索靖)은 사람 이름이다. 

약수(弱水)는 흉노족의 발상지가 되는 황하북류 지역에 있는 강으로서, 태원(太原) 서북쪽에 위치한 지금의 오르도스 지역이 된다. 

흉노도(匈奴刀)라 불리는 첨수도(尖首刀)인 도전(刀錢)에 소금을 가리키는 鹵(로)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이 있는 바, 이는 흉노지역에 소금밭이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황하북류 지역에 있는 약수(弱水)의 땅에 소금밭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열양 욕살 색정은 죄를 지어 약수지역에 종신으로 갇히는 형벌을 받았던 것이 된다. 자치(朿置)는 가시가 달린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거주지를 제한한 형벌(刑罰)이 된다. 

색정이 훗날에 사면(赦免)을 받아 약수지역에 봉해져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 하는 바, 색정이 종신 금고형(終身 禁錮刑)에 처해진 곳이 약수지역이며, 훗날 이곳에 제후격으로 봉해져 흉노족의 시조가 된 것이다. 

흉노족은 색정(索靖)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어 씨족(氏族)을 이루고, 단군조선 말기가 되는 서기전6세기경에는 큰 부족(部族)을 이루어 세력을 확장하여 동서지역으로 세력을 펼친 것이 되고, 서기전3세기경에는 동서지역으로 팽창하였던 것이 된다. 

동방에서의 흉노족은 서기전120년경에 흉노왕 김일제(金日磾)가 한무제(漢武帝)에게 항복하여 산동지역에 투후(秺후)로 봉해졌으며, 그 후손들이 한(漢) 나라의 정세가 날로 어지러워져가고 결국 서기8년경 신(新) 나라를 세운 왕망(王莽)과 관련되었던 차에, 난을 피하여 한반도의 남방지역으로 이동하여 와서 변한(弁韓)을 이어 서기42년에 김수로왕(金首露王)의 금관가야(金官伽倻)를 비롯하여 6가야(伽倻)를 세웠던 것이다. 

흉노(匈奴)라는 말은 글자대로는 비칭(卑稱)이 되고 훈뉵이라고도 기록되는데, 이는 원래 훈(hun) 또는 훈나, 훈노의 소리를 나타낸 이두식으로 표기로서, 일설에서는 영어로 인간이라는 휴먼(human)의 어원이 되는 훈먼(hun man)의 훈(hun)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흉노의 노(奴)나 훈나의 나(那)는, 북방계 말이 되는 고구려의 용어로서 오방(五方)의 부(部)을 나타내던 절로, 관나(灌那), 연나(椽那), 계루 등의 로, 나(那), 루와 같은 말로 보이는 바, 흉노, 휸뉵, 훈, 훈나라는 말은 하늬(西)라는 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서쪽의 땅, 서방지역(西方地域)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서쪽에서 부는 바람인 서풍(西風)을 나타내는 우리의 옛말이 하늬바람이다. 

단군조선 시대에 흉노(匈奴)의 북쪽에는 선비(鮮卑, 鮮白)가 있었으며, 선비의 북쪽에는 지금의 몽골인 몽고리(蒙古里)가 있었고, 선비의 동쪽에는 구려(句麗)가 있었으며, 구려의 남쪽에는 태항산(太行山) 동쪽으로 고죽국(孤竹國)이, 태항산 서쪽으로 흉노의 동쪽에는 서기전1122년경에 은(殷) 나라 망명자 기자(箕子)에 의하여 세워진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기후국(箕侯國)이 있었던 것이 된다. 

은의 제후국인 기자국(箕子國)은 은허(殷墟)가 되는 안양(安陽)의 남쪽으로서 황하 남쪽에 위치하였던 것이 된다. 여기서 기자(箕子)는 기(箕)라는 땅에 봉해진 지작(子爵)이라는 뜻이며, 기후(箕侯)는 기씨(箕氏)라는 제후(諸侯) 중의 후작(侯爵)이라는 말이며, 자작보다 한단계 위가 된다. 다만,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제후(諸侯)들을 통칭하여 그냥 후(侯)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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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27년 이상 족보와 한중일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이세신궁 원시한글 축문 국내 최초 역사적 해독 및 해석 
*소위 우왕비(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문 국내 최초 역사적 해석 
*명도전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 해독 검증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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