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국학(國學) 자료

부도지(符都誌) - 박제상

양해천 2018. 1. 29. 16:57

부도지-박제상.pdf


부도지 符都誌

부도지는 징심록 상교 제 1 지라고 하며, 우리 상고사를 기술한 사서 중 가장 오래 전

역사를 비교적 자세히 기술한 문헌으로 서기 1953 년(단기 4286 년) 박금선생의

인쇄본으로 세상에 알려진 책이다. 또한, 이 사서의 저자는 영해 박씨의 시조이며 신라

눌지왕 때 치술령 망부석의 주인공인 관설당 박제상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부도지의

내용을 율과 려, 음과 성, 음상과 향상, 5 음 7 조의 율려 등의 이치를 설명한 것으로

보아 박제상의 아들이며 방아타령의 대악으로 유명한 백결선생이 지어서, 사회적으로

이름있는 아버지 박제상의 이름으로 전한 것으로 보인다. 관설당 박제상은 천부경을

백결 박문량에게 전하였고, 박문량은 신선사 마애불상들이 있는 단석산 깊은 곳에서

이를 해독하여, 다시 아들 박마령간에 전하였으며, 박마령간은 이 천부의 이치를

김유신에게 가르쳐서 김춘추와 삼국을 통일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또한, 귀주대첩의 박서장군도 영해 박씨의 후손이며, 근세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자초 무학대사도 영해 박씨의 후손이며, 세종대왕을 도와서 아악을 정리한 박연도 영해

박씨의 후손으로, 근세조선 초기에 영해 박씨를 중하게 등용한 이면도 궁금하다.

천부경의 내용이 적힌 징심록은 세조 반정 때 숨어 지냈으며 훗날 금오신화의 저자인

매월당 김시습이 이를 풀이한 금척지를 영해 박씨 문중에 전하였다고 한다. 이 부도지가

박금선생에까지 전해진 것을 보면 그것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女神 마고' 21 세기에 환생 / 주간동아 2002 년 5 월 9 일

연극·무용극 이어 영화 개봉 등 ‘마고 붐’ … 학술계 논쟁도 열기 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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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년전 40 여명의 여성들이 지리산 노고단에 모여 ‘마고할머니’에게 예를 올리며

‘여신축제’를 벌일 때만 해도 ‘마고’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여신일 뿐이었다. 그 후 여신

마고는 2001 년 6 월 수원화성국제연극제의 주인공(한·미 합동공연 개막작 ‘마고’)으로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서울시무용단의 무용극 ‘산-그 영원한 생명의 터’에서는 아득한

신화의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다. 올해는 퍼포먼스 팬터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한 영화 ‘마고’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5 월 20 일 예정). 또 여성 록밴드

마고밴드, 연극집단 마고극장 등 마고의 이름을 앞세운 단체도 등장했다. 이제 마고

신화는 21 세기 문화·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부도지’ 속 창세신화에 등장

그러나 우리는 오래 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마고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천신의 딸

마고가 지리산에 내려와 8 명의 딸을 낳았다는 천왕봉과 반야봉에 얽힌 전설, 마고

할머니가 아흔아홉 마지기의 논을 만들어 하늘양식을 지었다는 석문(단양 8 경 중 하나),

마고할머니가 돌을 갈다가 남겼다는 양양 죽도의 절구바위, 역시 마고할머니가 치마에

돌을 가져와 성을 쌓고 나머지 돌을 버렸다는 거제도의 마고덜겅 등 이 땅 곳곳에서

마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995 년에는 동화작가 정근씨가 ‘마고할미’라는 그림동화를 발표했다. 제주 지역에서

설문대 할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고할미의 전설을 동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여기서 모든 신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세상을 창조하는 ‘우주거인’의 개념을 찾을 수

있다.

여신으로서 마고의 제 모습은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썼다는 ‘징심록’ 중 ‘부도지’편에

나타난다. 현재 ‘부도지’ 원문은 전해지지 않는다(상자기사 참조). ‘부도지’는 우리 민족

고유의 창세신화 혹은 개벽신화의 존재를 알려준 놀라운 기록이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건국신화) 외에 문헌상 남아 있는 창조신화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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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에 따르면 선천과 후천의 중간인 짐세 시대에 하늘에서 들려오는 8 呂音에서

마고성(麻姑城)과 마고가 태어났다. 마고는 혼자서 두 딸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다시

궁희와 소희가 4 명의 천인(황궁씨, 백소씨, 청궁씨, 흑소씨)을 낳고, 4 명의 천녀를 낳아

이들 4 쌍에서 각각 3 남 3 녀가 태어난다. 이들이 인간의 시조이며 몇 대를 거쳐 12 파가

각각 3000 명에 이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인구 증가로 마고성의 식량인 지유(地乳)가

부족해지자 백소씨 일족인 지소씨가 지유 대신 포도를 먹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도

권한다(‘오미의 변’이라고 함). 마고성 안에서 지유만 마실 때는 무한한 수명을 가졌던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된 후 천성을 잃고 수명이 줄어들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느낀 황궁씨가 마고 앞에 복본(復本·근본으로 돌아감)을 서약하고 사람들을 4 파로 나눠

성을 떠난다. 그중 황궁씨는 일행을 이끌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天山州로 가서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 된다. 황궁씨의 자손은 유인, 유호, 한인, 한웅, 단군으로 이어진다.

RMJ 씨가 제작한 영화는 마고신화를 태초의 어머니인 마고와 그의 분신인 12 정령 (물

불 비 바람 달 길 대지 구름 나무 파문 그림자 천무), 그리고 마고와 사랑을 나눠 만물을

빚어낸 태초의 남자 한웅의 이야기로 변형했다. 영화는 환경오염과 전쟁, 핵, 강간과

폭력, 마약 등으로 찌든 현실세계에 머물고 있는 한웅이 12 정령의 인도로 마고성에

대한 기억을 회복하고 이 세상 위에 낙원 마고성을 다시 세우려 한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이 영화의 기획자이자 시나리오를 쓴 장경기씨가 영화에서 마고를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으로 설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논쟁이 진행중이다. 장씨는 “마고는 음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무극의 상태로 남녀와 음양을 같은 비중으로 품고 있는

중성”이라면서 “‘부도지’에 근거한 창세신화에서 마고를 생물학적인 의미의 여인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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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미국에서 활동중인 종교여성학자 황혜숙씨가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다음 사이트에 개설한 종교여성 카페(cafe.daum.net/religionwomen)에서 ‘마고 영화

감시대’를 발족하고 영화 ‘마고’는 ‘부도지’의 마고 기록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우선

‘한단고기’에 의하면 기원전 3898 년 한국의 신시시대를 시작한 한웅을 기원전 3 만년

전의 마고와 동시대인으로 설정한 것부터가 오류이며, 세계의 창조주인 여신 마고를 한

남자의 배우자 혹은 성적 상대자로 전락시킨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영화

‘마고’는 마고신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폄훼했다.

영화 속 ‘중성’의 마고 … 논쟁 빌미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를 놓고 이처럼 설전이 오가는 것을 신화 연구자들은

흥미롭게 바라본다. 이 과정에서 황혜숙씨가 “마고는 중국의 서왕모와 같은 여신”이라는

새로운 가설도 내놓았다. 즉 서왕모가 우주의 어머니, 세계의 주재자, 창조자의 이미지로

중국인들로부터 숭배를 받은 점에서 마고와 일치하며 서왕모가 머물렀다는 서방

곤륜산은 마고성이 위치했다고 알려진 파미르 고원 부근이다. 이 주장에 대해 ‘금문의

비밀’을 쓴 상고사 연구자 김대성씨는 “사실 중국 신화는 중국 고유의 것이라기보다

변방 민족의 신화를 차용한 경우가 많다”면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동양학자 박현씨는

영화 마고를 둘러싼 논쟁을 떠나, 모처럼 일고 있는 마고 붐을 우리 신화 체계를

완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신화는 창세신화에서 자연신화, 문화신화, 역사신화, 영웅신화의 단계로 분화한다.

단군신화는 국조신화이며 역사신화일 뿐 그동안 우리에게 그 전 단계의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히 ‘부도지’에 담긴 마고 이야기는 우리 신화의 공백을 메꿔준다. 황궁씨의

마고성 출방으로 창세신화가 끝나고 자연신화가 시작된다. 다시 황궁씨의 자손 유호씨

대부터 역사신화, 영웅신화의 시대가 열린다. 신화의 주인공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박현씨는 ‘징심록’의 유실로 완전한 신의 계보를 작성할 수는 없으나 ‘부도지’에 등장하는

신들만이라도 정리된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 못지않은 위대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꿈’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신화는 하나의 대안으로 다가온다. ‘부도’(符都)라는 말 자체가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 또는 그 나라의 수도를 가리킨다. 새로운 세기에 부활한

마고신화는 곧 인류가 희망하는 ‘부도의 꿈’을 말해 주는 것이다.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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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학술적 가치는?

상고사 연구의 최고 자료로 손꼽혀‘한단고기’와 쌍벽을 이루는 상고사 연구의 최고

자료로 꼽히는 ‘부도지’. 그러나 ‘한단고기’의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듯이 ‘부도지’도

태생적 한계 때문에 주류학계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부도지’는 신라시대

박제상 선생이 보문전 태학사로 재직할 당시 열람했던 자료와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비서를 정리하여 저술한 책 ‘징심록’ 15 지 가운데 제 1 지에 해당된다(이에 대한 기록은

김시습의 ‘징심록 추기’에 나와 있음). ‘징심록’은 서기 419 년 이전에 쓰인 것으로 영해

박씨 종가에서 수백년 동안 필사본을 보관했으나, 광복 후 후손인 박금씨가 월남하면서

원문이 유실됐다. 국내에서 출판된 ‘부도지’(한문화 펴냄)는 1953 년 박금씨가 기억에

의존해 되살려 놓은 한문 기록을 김은수씨가 번역하고 주해를 단 것이다.

‘부도지’는 우리 민족이 파미르 고원 마고성에서 출발하여 궁희, 황궁, 유인, 한인, 한웅,

단군에 이르는 동안 천산, 적석산, 태백산과 청구를 거쳐 만주로 들어왔다고 전한다.

한국 고대 문화와 철학, 사상의 원형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의 전파 경로를

보여주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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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해설

목 차

I 조화(造化)의 시대

1 장 마고(麻故)의 시대 - 부도지 1 장, 2 장, 3 장, 4 장

제 1 부 도입에 앞서… / 제 2 부 신화에의 접근

2 장 부도(符都)의 시대 - 부도지 5 장, 6 장, 7 장, 8 장, 9 장, 10 장

제 3 부 부도(符都)의 시대 / 제 4 부 오미(五味)의 화(禍)가 말하는 의미는…

제 5 부 한국(桓國)시대

II 교화(敎化)의 시대

3 장 배달국 시대 - 부도지 11 장

제 6 부 : 환웅(桓雄)씨 시대

4 장 임검(壬儉)씨 시대(조선 시대) - 부도지 12 장, 13 장, 14 장, 15 장, 16 장

제 7 부 임검(壬儉)씨 시대

5 장 오행(五行)의 화(禍) - 부도지 17 장, 18 장, 19 장, 20 장, 21 장, 22 장, 23 장, 24 장

제 8 부 : ‘오행(五行)의 화(禍)’가 주는 의미 / 제 9 부 한사군의 허구

III 치화(治化)의 시대

6 장 잃어버린 부도의 법 - 부도지 25 장, 26 장

제 10 부 잃어버린 부도의 법

7 장 삼한에서 삼국으로 - 부도지 27 장

제 11 부 열국시대로

8 장 잃어버린 역사 - 부도지 27 장

제 12 부 한사군의 허구

9 장 어둠속으로 - 부도지 28 장, 29 장, 30 장, 31 장, 32 장, 33 장

제 13 부 어둠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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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조화(造化)의 시대

우리 전통사상에서는 인간에게 본래 신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동학에서는 이를

人乃天이라 하였다. 부도지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본성을 잃게 되었는지의 이유와 어떻게

다시 본성을 찾아 마고성(이상향)으로 복본을 할 수 있는지 나온다.

부도지를 크게 造化와 敎化, 治化의 세 시대로 구분 할 수 있다.

부도의 시작에서는 땅에서 나는 지유(地乳)를 먹으므로 먹기 위해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음식이 한가지뿐이므로 맛을 추구할 수도 없어 추구해야 할 욕망의 대상이

없었다.(3) 그래서 이때의 사람들은 본성만을 가지고 생활했으므로 신성을 가지고 천지

창조에 동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할 일이 없었으므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율려(律呂)만이 존재했고, 율려로 천지를 창조한 것으로 표현을 했다.

제 1 장: 마고(麻故)의 시대

第一章

마고성(麻姑城)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성(城)이다.(4)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하였다. 성중(成中)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管)을 쌓아 놓고, 음(音)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黃穹)씨요, 둘째는 백소(白巢)씨요,

셋째는 청궁(靑穹)씨요, 넷째는 흑소(黑巢)씨였다.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穹姬)씨요,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巢姬)씨였다.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麻姑)의 딸이었다. 마고는

짐세(朕世)에서 태어나 喜怒의 감정이 없으므로, 先天을 남자로 하고, 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의 정을 받아,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두 天人과 두 天女를 낳았다. 합하여 네 천인과 네 천녀였다.

麻姑城은 地上最高大城이니 奉守天符하야 繼承先天이라, 成中四方에 有四位天人이

堤管調音하니 長曰 黃穹氏오 次曰 白巢氏오 三曰 靑穹氏오 四曰 黑巢氏也라.

兩穹氏之母曰穹姬오 兩巢氏之母曰巢姬니 二姬는 皆麻姑之女也라. 麻姑ㅣ生於朕世하야

無喜怒之情하니 先天爲男하고 後天爲女하야 無配而生二姬하고 二姬ㅣ赤受其精하야

無配而生二天人二天女하니 合四天人四天女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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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章

선천(先天)의 시대에 마고대성(麻姑大城)은, 실달성(實達城)의 위에, 허달성(虛達城)과

나란히 있었다.(1)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 여(呂)의 음(音)만이 하늘에서 들려 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도, 또한 이 음(音)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朕世)다.

짐세 이전에, 율려(律呂)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星辰)이 출현하였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 할 때, 마고가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아, 두 딸로 하여금, 五音七調와

음절(音節)을 맡아보게 하였다. 성중(城中)에 지유(地乳)가 처음으로 나오니, 궁희와

소희가, 또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아,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기르고, 네

천녀에게는 여(呂)를, 네 천인에게는 율(律)을 맡아보게 하였다.

先天之時에 大成이 在於實達之上하야 與虛達之城으로 ?列하니 火日暖照하고

無有具象하야 唯有八呂之音이 自天聞來하니 實達與虛達이 皆出於此音之中하고

大城與麻姑ㅣ赤生於斯하니 是爲朕世라. 朕世以前則律呂幾復하야 星辰巳現이러라.

朕世幾終에 麻姑ㅣ生二姬하야 使執五音七調之節하다. 城中에 地乳始出하니

二姬又生四天人四天女하야 以資其養하고 四天女로 執呂하고 四天人으로 執律이러라.

第三章

후천(後天)의 운(運)이 열렸다. 율려(律呂)가 다시 부활하여, 곧 음상(音象)을 이루니,

성(聲)과 음(音)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實達大城)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의(2)

지역에 떨어드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수운(水雲)의 위로 덮고, 실달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려, 물 가운데에 땅이 생겼다. 육해(陸海)가 병렬(?列)하고, 산천(山川)이 넓게

뻗었다. 이에 천수의 지역이 변하여, 육지가 되고, 또 여러 차례 변하여, 수역(水域)과

지계(地界)가 다 함께 상하가 바뀌며 돌므로, 비로서 역수(曆數)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5]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빛이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고,

초목(草木)과 금수(禽獸)을 살찌게 길러내니, 모든 땅에 일이 많아 졌다. 이에 네 천인이

만물(萬物)의 본음(本音)을 나눠서 관장(管掌)하니, 토(土)를 맡은 자는 [6]황(黃)이 되고,

수(水)를 맡은 자는 [7]청(靑)이 되어, 각각 궁(穹)을 만들어, 직책을 수호 하였으며,

기(氣)를 맡은 자는 [8]백(白)이 되고, 화(火)를 맡은 자는 [9]흑(黑)이 되어, 각각 소(巢)를

만들어, 직책을 지키니, 이것으로 인하여 성(姓氏)이 되었다. 이로부터 [10]기(氣)와

화(火)가 서로 밀어, 하늘에는 찬 기운이 없고, 수(水)와 토(土)가 감응(感應)하여, 땅에는

어긋남이 없었으니, 이는 음상(音象)이 위에 있어, 언제나 비춰주고, 향상(響象)이 아래에

있어, 듣기를 고르게 해 주는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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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天運開에 律呂再復하야 乃成響象하니 聲與音錯이라. 麻姑ㅣ引實達大城하야

大城之氣ㅣ上昇하야 布幕於 水雲之上하고 實達之?ㅣ平開하야 闢地於凝水之中하니

陸海?列하고 山川이 廣圻이라. 於是에 水域이 變成地界而雙重하야 替動上下而斡旋하니

曆數始焉이라.

以故로 氣火水土ㅣ相得混和하야 光分書夜四時하고 潤生草木禽하니 全地多事라.於是에

四天人이 分管萬物之本音하니 管土者爲黃하고 管水者爲靑하야 各作穹而守職하고

管氣者爲白하고 管火者爲黑하야 各作巢而守職하니 因稱其氏라. 自此로 氣火共推하야

天無音冷하고 水土感應하야 지무흉戾하니 此는 音象이 在上하야 常時反照하고 響象이

在下하야 均布聽聞姑也라.

第四章

이 때에, 본음(本音)을 관섭(管攝)하는 자가 비록 여덟 사람이었으나, 향상을

수증(修證)하는 자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여 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못하였다. 마고(麻姑)가 곧,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出産)을 하게 하니, 이에 [11]네 천인이 네 천녀와 결혼하여, 각각

[12]삼남(三男) 삼녀(三女)를 낳았다. 이가 지계(地界)에 처음 나타난 인간의 조상(人祖)

였다. 그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여, 몇 대(代)를 지내는 사이에, 족속(族屬)이 불어나,

각각 3000 명의 사람이 되었다. 이로부터 [13]12 사람의 시조는 각각 성문(城門)을 지키고,

그 나머지 자손은 향상(響象)을 나눠서 관리하고, 수증(修證)하니, 비로서 역수(曆數)가

조절되었다. 성중(城中)의 모든 사람은, 품성(稟性)이 순정(純精)하여, 능히 조화(造化)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血氣)가 맑았다.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고, 걷고 할 수 있으므로, 내왕(來往)이

자재(自在)하였다. 임무를 마치자, 금(金)은 변하여 먼지가 되었으나, 그 성체(性體)를

보전하여, 혼식(魂識)이 일어남을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도 능히 말을 하고, 백체(魄體)가

때에 따라 움직여, 형상을 감추고도 능히 행동하여, 땅 기운(地氣) 중에 퍼져 살면서, 그

수명(壽命)이 한이 없었다.

是時에 管攝本音者ㅣ雖有八人이나 未有修證響象者故로 萬物이 閃生閃滅하야

不得調節이라. 麻姑ㅣ乃命四天人四天女하야 ?脇生産하니 於是에 四天人이

交娶四天女하야 各生三男三女하니 是爲地界初生之人祖也라. 其男女ㅣ又復交娶하야

數代之間에 族屬이 各增三天人이라. 自此로 十二人祖는 各守城門하고 其餘子孫은

分管響象而修證하니 曆數始得調節이라. 城中諸人이 稟性純精하야 能知造化하고

飮?地乳하야 血氣淸明이라. 耳有烏金하야 具聞天音하고 行能跳步하야 來往自在라.

任務己終則遷化金塵而保己性體하야 隨發魂識而潛能言하고 時動魂體而潛能行하야

在住於地氣之中하야 其壽無量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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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도지에서는 마고성이 실달성(물질계)위에 허달성(정신계)와 나란이 있다 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마고성에서 나온 뒤 마고성을 허달성 위로 올려 놓았다 하였으니 이는

물질계에서 접근을 할 방법이 없고 오로지 수련을 통해서 정신계를 통해서만이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2] 마고성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성경에서의 에덴동산과 유사한 점을 발견을 할 수 있다.

우리민족은 천산 태백산을 거쳐 삼신산인 백두산에 정착을 하게 되는데 이 산들의

공통점은 모두 산 정상에 물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단군(임검씨)에 이르러 마고성을

세상에 복원을 하였다는데 백두산 정상의 물이나 주위에 흐르는 4 개의 강이 에덴동산의

주위 풍경과 일치를 한다. (산정상에 물이 있고 주위에 4 개의 강이 흐르는 것은

석가모니의 출생지 이야기에도 나오는데 세상에 이런 장소는 백두산이 유일하다 하겠다.)

[3]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을 받는 인도의 성자 ‘사티아 사이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이다, 마찬가지로 당신들도 신이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내가 그것을 알고 있는데

여러분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적을 보이는 것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불과 하다.

신과 인과과의 다른점은 욕망의 유무에 있다.

인간은 세속의 욕망을 버릴 때 마음속에 있는

신성을 발견 할 것이다.”

[4] 지상에서 가장 높다는 말은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말이고 이는 하늘의 뜻에 가장

충실하게 이행하는, 즉 본성으로서 살아가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5]불교나 고대 그리스 철학을 살펴보면 사원소성이 나와 부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6] 황궁씨(黃穹氏)를 말함

[7] 흑소씨(黑巢氏)를 말함

[8] 청궁씨(靑穹氏)를 말함

[9]백소씨(白巢氏)를 말함

[10] 부도지 13 장에 보면 마고성을 지을 터전을 설명하기를, ‘2 와 6 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 와 8 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 와 1 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 과 3 과 5 와 7 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모여,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11] 사방(동 서 남 북)과 사계(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말함

[12] 24 절기와 6 개의 절기가 모여 1 개의 계절이 이뤄지는 것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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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도입에 앞서…

부도지에서의 1,2,3,4 장을 창조의 시대로 분류를 해 보았다. ‘한단고기’에서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서 또한 창조신화가 나온다. 나반과 아만의 이야기와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이야기도 나온다. 같은 창조신화를 이야기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이 두 책이 만들어진 배경을 보며 차이를 이해하자.

부도지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성인 마고성에 있는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씨(支巢氏)에 의하여 오미(五味)의 화(禍)가 일어나 결국 황궁씨는 무리를 이끌고

마고성을 나오게 되었다. 이때 황궁씨는 다시 마고성으로 복본하기 위하여 부도의 법을

세우니 이것이 부도지의 근원이 되는 사상이다. 이후 한국과 배달국과 조선으로

이어지던 부도의 법은 진한을 통하여 박혁거세에게 이어지니 부도의 법을 신라가 이어

받았다. 그렇기에 신라의 법이 고려로 이어지나 묘청의 난 이후 세력을 잃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잊혀지게 된 것이다.

한단고기란 진한의 제후국이었던 변한을 통하여 부여 고구려 발해를 거쳐 만들어진

역사를 조선시대에 정리를 한 것이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보는 객관화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부도의 법을 찾을 수가 없어 이 책에서는 부도지를 중심으로 다른 것을

합쳐가며 이야기를 풀어 가겠다.

제 2 부 신화에의 접근

오랜 세월 동안 신화의 형식으로 전해진 이야기 속에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대의 경전에서 몇년몇월에 입에서 불을 품는

용이 하늘에 나타났다는 기록을 보았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선택 앞에 서게

된다.

1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 (어린아이나 이런 방식으로 이해 한다.)

2 철저하게 허구라고 생각한다. (아주 쉬운 방법이나 과학적인 방법이라고도 할 수 없다.)

3 신화나 종교로 덮인 베일 속에서 기록의 재료가 된 사실을 찾는다. 예를 들면

혜성이나 유성, 또는 그 이 사물의 출현을 찾아내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학자와

연구자가 선택해야 하는 길이다.) <잃어버린 고대문명>중에서-고르보프스키

신화를 접근 하는 방법은 역사자료와는 달리 단순히 활자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비밀을 탐구를 해 나가야 한다. 자칫 그 껍데기에 연연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바뀐 내용을 그대로 받아 들여 전혀 다른 엉뚱한 형상을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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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의 시대흐름을 보면 마고성에서 나와 황궁씨 유인씨 한인씨 한웅씨 임검씨 부루씨

읍루씨가 각기 천년씩 7 천년을 다스리는 것으로 나온다. 황궁씨가 처음 부도의 법을

밝혀 읍루씨까지 7 천년의 기간 동안 전해지고 그 법을 잃게 된다. 그런데 한사람이

어떻게 천년을 살 수가 있을까? 위에 제시한 방법으로 생각한다면

첫째, 진짜 천년을 살았다.(이러면 정말 신화가 되어 버린다.)

둘째, 사람이 천년을 살 수 없으므로 허구다.

셋째, 이것은 인간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왕조나 혈통 그 의 다른 것을

이야기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의 부도지 1 장에서 보면 마고(麻姑)가 선천(先天)을 남자(男子,陽)로 후천(後天)을

여자(女子,陰)로 하여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았다. 이 둘이 다시 선천의 정기(陽)의

기운을 받아 황궁씨(黃穹氏)와 청궁씨(靑穹氏),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를 낳았다.

이들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와 음절(音節)을 맡게 하고, 다시 네 천인(四天人)과 네

천녀(四天女)를 낳아 율과 여를 맡아보게 하였다. 마고가 四天人과 四天女에게 명하여

이들이 합하여 각기 3 남 3 녀를 낳으니 모두 12 쌍 24 명이 되었다. 한국의 본체가 되는

9 황 64 민이 다 이들의 후손이 된다. 이상이 符都誌의 1,2,3,4 장을 총괄한 족보이다.

동양철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易學에 보이는 수를 살펴보자. 태초에 無極이 있으니

무극에서 太極이 나오고 태극에서 四象, 八卦, 六十四卦로 나눠지면서 黃極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極에 이르면 다시 무극으로 환원을 하고….다시 시간에 비유를 하니

우주는 밤과 낮으로 나누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로 나누고 각 계절이 3 으로

나눠져서 12 달이 되고 각 달에서 음과 양으로 나누면 24 절기가 되고….

부도지에서 音이 우주 삼라만상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을 했는데 그 의도는 무엇인지, 왜

음을 통해 해석했을까?. 음이란 파장이다. 율과 여에서 율이란 상승파장 즉 오행에서는

상생의 힘을 말하는 것이고 여라는 것은 하강파장 즉 오행에서는 상극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의 양적인 부분에서는 이들이 팽창과 수축을 통하여 生老病死를

겪으면서 변화를 하나 이들의 내면 즉 음적인 부분에서는 五慾七情에 영향을 받아

사물의 변화를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땅에서 나는 지유를 먹으면서,

실달성과 허달성의 가운데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중간에 서서 육체를 가진 인간의

형상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고 창조에 동참을 하니 이는 기독교의 에덴동산이요,

그리스신화의 황금의 시대였다. 이렇게 만상을 갖춰 놓으니 비로서 역수가 시작되고

인류가 시작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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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부도(不渡)의 시대

第五章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을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작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마시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차례나 되었다. 곧 돌아와 소(巢)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러졌다. 귀에는 희미한 소리가 울렸다. 오미(五味)를 맛보니, 바로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였다.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 독력(毒力)의 피해 때문이었다. 곧

소(巢)의 난간에서 내려와 걸으면서 노래하기를.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한다. 이 어찌 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로다.’라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소씨의 말을 의심하였다. 지소씨가 참으로 좋다고 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포도를 많이 먹었다,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에

제족이 포도를 많이 먹었다.

白巢氏之族 支巢氏ㅣ與者人으로 往飮乳泉할새 人多泉少어늘 讓於諸人하고

自不得飮而如是者五次라. 乃歸而登巢하야 遂發飢惑而眩倒하니 耳嗚迷聲하야

呑嘗五味하니 卽巢欄之蔓籬萄實이라. 起而偸躍하니 此被其毒力故也라.

乃降巢闊步而歌曰浩蕩兮天地여 我氣兮凌駕로다. 是何道兮요 萄實之力이로다.

衆皆疑之하니 支巢氏曰眞佳라하거늘 諸人이 奇而食之하니果若其言이라.於是에

諸族之食萄實者多러라.

第六章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수찰(守察)을 금지하니 이는 또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 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에 덮여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32]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33]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혈육이 탁(濁)하게 되고, 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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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白巢氏之諸人이 聞而大驚하야 乃禁止守祭하니 此又破不禁自禁之自在律者也라. 此時에

食實之習과 禁祭之法이 始하니 麻姑閉門撤冪이러라. 已矣오 食實成慣者ㅣ皆生齒하야

唾如蛇毒하니 此는 强呑他生故也오 設禁守祭者ㅣ皆眼明하야 視似치目하니 此는 私

公律故也라. 以故로 諸人之血肉이 化하고 心氣ㅣ酷變하야 遂失凡天之性이라. 耳之烏金이

化作兎沙하야 終爲天聲하고 足重地固하야 步不能跳하며 胎精不純하야 多生獸相이라.

命期早熟하야 其終이 不能遷化而 하니 此는 生命之數ㅣ 惑 縮故也라.

第七章

이에 사람(人世)들이 원망하고 타박하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

(眷屬)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 또 포도의 열매를 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가니, 황궁(黃穹)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하게 여겨 告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의 迷惑함이 심대(甚大)하여

性相이 變異한 고로 어찌할 수 없이 城中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오. 그러나 스스로

修證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 남김이 없으면, 자연히 復本할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시오’하였다. 이 때에 氣와 土가 서로 마주치어, 時節을 만드는 光線이,

한쪽에만 생기므로, 차고 어두웠으며, 水와 火가 조화를 잃으므로, 핏기있는 모든 것들이

시기하는 마음을 품으니, 이는, 빛을 거둬들여서 비추어 주지 아니하고, 성문이 닫혀

있어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於時에 人世ㅣ怨咎하니 支巢氏ㅣ大恥顔赤하야 率眷出城하야 遠出而隱이라.

且氣慣食萄實者와 設禁守祭者ㅣ亦皆出城하야 去各地하니 黃弓氏ㅣ哀憫彼等之情狀하야

乃告別曰 諸人之惑量이 甚大하야 性相變異故로 不得同居於城中이라. 然이나

自勉修證하야 淸濟惑量而無餘則自然復本하리니 勉之勉之하라. 是時에 氣土相値하야

時節之光이 偏生冷暗하고 水火失調하야 血氣之類ㅣ皆懷猜忌하니 此는 冪光이 卷撤하야

不爲反照하고 城門이 閉隔하야 不得聽聞故也라.

第八章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전날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復本을 하려고 하니, 이는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곧 젖샘을 얻고자

하여, 성곽의 밑을 파헤치니, 성터(城址)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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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混濁)이

지극하여, 淸淨을 보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여, 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 제족(諸族)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꺼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도(理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혹량(惑量)이 불어 났기 때문이다. 淸淨은 이미 없어지고, 大城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가.]하였다. 이 때에 [35]天人들이 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하고자하므로, 황궁씨가 곧 天符를 信標로 나누어 주고,

[36]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분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靑穹)씨는 권속(眷屬)을 이끌고 동쪽 사이의 문을 나가 雲海洲로 가고,

백소(白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사이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黑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사이의 문을 나가 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37]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已矣오. 出城諸人中悔悟前非者ㅣ還到城外하야 直求復本하니 此未知有復本之時所故也라.

乃欲得乳泉하야 掘鑿城廓하니 城址破損하야 泉源이 流出四方이라. 然이나 卽化固土하야

不能飮철이라. 以故로 城內에 遂乳渴하니 諸人이 動搖하야 爭取草果하니 混濁至極하야

難保淸淨이라. 黃穹氏ㅣ爲諸人之長故로 乃束身白茅하고 謝於麻故之前하야

自負五味之責하여 立誓復本之約이러라. 退而告諸族曰五味之禍ㅣ反潮逆來하니

此出城諸人이 不知理道하고 徒增惑量故也라. 淸淨已破하고 大城將危하니 此將奈何오.

是時에 諸天人이 意決分居하야 欲保大城於完全하니 黃穹氏ㅣ乃分給天符爲信하고

敎授採葛爲量하야 命分居四方이라. 於時에 靑穹氏ㅣ率眷出東間之門하야 去雲海洲하고

白巢氏ㅣ率眷出西間之門하야 去月息洲하고 黑巢氏ㅣ率眷出南間之門하야 去星生洲하고

黃穹氏ㅣ率眷出北間之門하야 去天山洲하니 天山洲는 大寒大險之地라. 此는 黃穹氏ㅣ自進

難하야 忍苦復本之 盟誓러라.

第九章

分居諸族이 각 洲에 이르니, 어느덧 [39]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40]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天水를 부어 城內를

청소하고, 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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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넘쳐 [42]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地界의 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의 현상이

있었다.

分居諸族이 繞倒各洲하니 於焉千年이라. 昔世出城諸人之裔ㅣ難居各地하야 其勢甚盛이라.

然이나 殆忘根本하고 性化猛獰하야 見新來分居之族則作群追跡而害之러라. 諸族이

已定住하니 海阻山隔하야 來往이 殆絶이라. 於時에 麻故與二姬로 修補大城하고

注入天水하야 淸掃城內하고 移大城於虛達之上이러라. 是時에 淸掃之水ㅣ大漲於東西하야

大破雲海之地하고 多滅月息之人이라. 自此로 世界之重이 變化하야 曆數生差하니

始有朔?之象이라.

第十章

황궁씨가 [43]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長子 有因씨에게 명하여, 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44]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45] 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天地本音의 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46]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47]계불을

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48]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 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49]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 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黃穹氏ㅣ到天山洲하야 誓解惑復本之約하고 告衆勸勉修證之業이라. 乃命長子有因氏하야

使明人世之事하고 使次子三子로 巡行諸洲러라. 黃穹氏乃入天山而化石하야 長嗚調音하야

以圖人世惑量之除盡無餘하고 期必大城恢復之誓約成就러라. 於是에

有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니 此卽天地本音之象而使知其眞一根本者也라.

有因氏ㅣ哀憫諸人之寒冷夜暗하야 鑽燧發火하야 照明溫軀하고 又敎火食하니 諸人이

大悅이라. 有因氏千年에 傳天符於子桓因氏하고 乃入山하야 專修契불不出이라.

桓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야 大明人世證理之事하니 於是에 日光均照하고 氣侯順常하야

血氣之類ㅣ庶得安堵하고 人相之怪ㅣ稍得本能하니 此는 三世修證三千年에 其功力이

庶幾資於不 者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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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앤드류 콜린스의 <금지된 신의 문명>에서 고대문명의 시작으로 알려진 문명에서,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문명을 가진 뱀을 닮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뱀이란 성경을

비롯하여 고대문명의 흔적을 이야기 할 때 반듯이 나오는 테마이다.

[33] <금지된 신의 문명>에서 뱀과 함께 항상 나오는 새의 형상을 한 인간이 나온다.

[35] 마고성에는 청궁(靑穹)씨, 황궁(黃穹)씨, 백소(白巢)씨, 흑소(黑巢)씨와 소희(巢姬)와

궁희(穹姬)가 낳은 4 쌍의 남녀 해서 총 12 명의 천인이 있다.

[36] 부도지 18 장에서 보면 유호씨까 칡을 먹고 오미를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지유 대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칡을 설정한 것 같음.

[37] 한단고기에 의하면 800 명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 왔다 함. 일부에서는 3 천의

무리라고도 하나 이는 한웅씨의 무리와 착오가 있는 것으로 추정 800 이 맞을 것이다.

[39] 약 11000~12000 년 정도 전으로 추정. 초고대문명(아틀란티스나 뮤, 레무리아등)의

흔적도 이 무렵 없어진 것으로 보아 어떤 부분 유사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40] 뮤는 원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같이 발전을 한 곳인데 아틀란티스는 뮤로부터

물질문명만 받아들여 뮤우와 자주 전쟁을 하였다. 시대적 배경이 그때 무렵이니 뭔가

연관이 없을까 추정한다. 또한 슈메르나 주변 국가의 기록 또는 에록의서에서 보면

네피림이야기와 같이 천상에서 쫒겨온 천사가 인간과 결혼 높은 문명의 힘으로 惡을

행하다 천상의 신과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이 생김새는 뱀과 같았다고 하고 성경의

창세기에서는 이들을 뱀으로 묘사를 한다.

[42] 약 1 만년전의 홍수를 말하는 것으로 노아의 방주도 이때 무렵이다.

[43] 시베리아(사백력, 斯白力) 하늘 밑 바이칼 호수의 동쪽으로 흐르는 흑룡강(黑龍江,

龍江, 天河, 天海)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 됨

[44] 음(音)이 조화로울 수 있도록 잡아주는 기준 음을 말하는 것으로 후손들의 길을

밝혀 스스로 모범이 되어 부도의 법을 확립 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45]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부인을 말하는 것 같으며 이를 북과 칼과 거울을 이야기 하는

것인데 符印이란 종이가 없던 시절 사용하던 대나무로 만든 책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문서를 상징한다고 본다. 즉 천부삼인이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세 경전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문맥상으로 세가지 악기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46] 이는 한단고기에 나오는 7 대 환인의 환인과 다른 말을 가르키는 것으로 추정 된다.

[47] 안창범의 <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을 보면 불교가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된 것으로 말하는 내용이 있음. 거기에 나오는 내용 중 7 세 한인 중 석제임한인

(釋提壬桓因)이 있으나 불교의 33 천 중 주신중에선 석제한인(釋提桓因)있다고 함.

[48] 슈메르나 바벨로니아 에록의서에서는 이때 나타나는 문명족에 대해 뱀의 형상을

닮아 있다고 표현을 하였다.

[49] 혹자는 한인의 한국 3301 년을 말한다 하여 이를 오천년으로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으나 여기에 이렇게 분명하게 삼천년으로 명시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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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부 : 부도(符都)의 시대

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고 이들이 세상의 창조주로 조화를 담당한다. 그러나 이들이

4 명의 천인을 낳고, 다시 8 명의 천인을 낳는 것으로 하여 총 12 명의 천인을 낳는다.

앞에서 ‘天人들이 분거(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보전하고자

하므로…’라는 대목이 나온다 환국이 총 12 개의 연방국가 이고 이들은 12 명이다. [54]

또한 환국의 역사를 보면 삼성기에서 63,182 년 또는 3,301 년이라 했는데 부도지

10 장에 보면 황궁씨, 유인씨, 환인씨가 각기 1,000 년을 다스렸다 했으니 합이

3,000 년이니 환국의 역사 3,301 년과 유사하다. 뒤에 보면 임검씨 때는 시대적 배경이

중국의 요순 때이니 이는 단군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럼 환웅씨는 자연히 배달국의

환웅이 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황궁씨다, 유인씨다 하는 것은 특정한

인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몇몇 학자들에 의하면 환인이란 특정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환이란 밝다는

뜻이고 인이란 님이란 존칭에 해당하는 이두식 표현이라 한다. 이렇게 놓고 봤을 때

마고성시대는 환국의 역사 63,182 년 중 3,301 년을 뺀 나머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판단이 된다. 몇몇 상고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50,000 년에서 60,000 년 전에 이미 초

고대문명이 있었을 것이라는 학설을 내 놓기도 하니 그것이 이 마고성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또 신의 지문이라는 책에서 보면 약 1 만년 전에 지구에 큰 변혁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9 장에서 보면 마고가 마고성을 청소하면서 큰 변혁이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때가 환국으로 보면 시기적으로 일치 하는 것으로 보인다.

[54]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또는 필라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또는 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또는 시위국, 통고사국이라 함),

수밀이국 합하여 12 개의 연방국가 이다.

제 4 부 : 오미(五味)의 화(禍)가 말하는 의미는..

왜 많고 많은 것 중에서 하필이면 포도를 먹었을까? 성경의 사과(선악과)와 차이점은

뭘까? 왜 마고성에서 나와야 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 했을까? 땅에서 솟아나는

지유를 먹었다 함은 힘들여 먹을 것을 탐할 필요도 없었고 먹기 위해서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의식주 문제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노동이 없었고 욕망이 없었다. 이를

그리스신화에서는 황금의 시대로 말하였고 성경에서는 에덴동산, 우리 신화에서는

마고성 시대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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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를 먹었다 함은 우선 맛을 알게 되었고 식욕에 대한 욕망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식욕과 성욕을 같은 개념으로 본다. 결국 식욕과 성욕을 중심으로 성취욕,

명예욕, 인정에 대한 욕구 등 각종 욕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포도에 달린 이 수많은

알갱이가 하나에서 엮어가는 수많은 욕망을 상징화 시킨 것이다. 결국 이 욕망에 의해

관념(선악과)이 생겨나고 이 관념으로 인해 여러 가지 피해의식이 생겨나고 결국 본성이

가려져 신성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마고성시대는 욕망이 없는 본성만이 있는 시대였기에 법이 필요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백소씨족에 의해 오미의 난이 일어나고, 마고성을 나왔으나 결국 법이 없던 관계로

욕망의 세계에서 살다가 일부 인원이 속은 놔두고 껍질만 가지고 마고성(깨닮음)시대로

환원하려 했다가 결국 전체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에 황궁씨는 어쩔 수없이 욕망의

시대로 나왔으나 언젠가는 다시 본성을 찾아 마고성을 復本하려는 사명을 띄게 된다.

그래서 백소씨의 예를 상기하여 법을 세우고 이 법으로써 백성을 이끌게 되는 것이다.

이 법과 하나가 되어 생활한 시대가 고열가단군시대까지다. 삼일신고를 통해 지감 조식

금촉하여 본성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제 5 부 : 한국(桓國)시대

桓國은 시베리아(사백력, 斯白力) 하늘 밑 바이칼 호수 동쪽으로 흐르는 흑룡강 (黑龍江,

龍江, 天河, 天海)을 중심으로 남북이 5 만리요, 동서가 2 만리의 거대한 제국이다. 桓國의

한이란 밝다는 말이다. 한국은 7 대 한인(桓因)이 3,301 년 동안 나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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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교화(敎化)의 시대

교화의 시대란 마고성에서 나온 이후 시대를 말한다. 오미의 화 이후 많은 혼란기가

있다. 이때 황궁씨는 준비가 되지 않았던 백소씨의 일족 일부와 지소씨의 일족이 세상에

나왔다가 적응치 못하고 그 법을 잃어 버리는 모습을 보고 법을 보존키 위해서는 다시

말해 마고로의 복본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흩어지지 않게 묶어 줄 수있는 법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때 처음 천부삼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바로 본성을 가리는 욕망을 제어

해야 다시 마고성(본성)으로의 복본이 가능함을 알기에 천부삼인의 가르침을 내려 바른

길로 인도하고 스스로의 모범을 보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가르침을 쫗아 다시 마고

복본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때를 교화의 시대라 한다.

교화의 시대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桓國 천손족의 시대, 배달국, 조선. 처음 마고성에서 나온 이들을 지손족(당시의 원시

부락)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신령스럽고 밝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천인이라 불렀고

한님(桓因), 즉 하느님이라 불렀으며 한님이 사는 나라라 해서 한국이라 했다.

배달국은 천손족과 지손족이 결합한 최초의 국가이다. 한(桓)이란 하늘을 말하는 것이고

웅(雄)이란 땅을 말하는 것이니 桓雄이란 천손족과 지손족을 아우르는 말일 것이다. 이때

최초로 하늘(천손족)을 열어 땅(지손족)을 받아 들였다하여 개천(開天)이라 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최초로 지손족 중에 왕이 출현을 하니 이가 무리들 중에 왕이라는 뜻에서

임검(壬儉)이라 하였고 이가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지손족이 하늘로부터 나라를 물려

받아 세웠다 하여 하늘이 주신 땅이라 하여 ‘쥬신’이라 불렀고 ‘쥬신’의 이두식 표기가

조선(朝鮮)이다.

중국 요와 순의 오행의 화로 인해 조선이 문화 침투를 당하여 42 대 단군 이후로는 지방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니 결국 47 대 단군 고열가단군께서 부도의 법을 닫고 폐관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 이후가 治化의 시대이니, 그 전 약 7 천년에 이르는 기간을 교화의 시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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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배달국시대

第十一章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태여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수계제불 (修계除불) 하였다. 天熊의 도를 수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래한 바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人世가 衣食의 일(業)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

조(條)를 제정하여, 환부(鰥夫)로 하여금 조절하게 하였다. 1 조는, 사람의 행적(行蹟)은,

때때로 깨끗하게 하여, 모르는 사이에 生鬼가 되지 않게 하고 번거롭게 막혀, 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통명무여일장(通明無餘一障)하게 하라. 2 조는, 사람의

취적(聚積)은, 죽은 뒤에 공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고, 함부로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보흡무여일감(普洽無餘一憾)하게

하라. 3 조는, 고집이 세고 사혹(邪惑)한 자는 광야(曠野)에 귀향을 보내, 때때로 그

사옥함을 씻게 하여, 사기(邪氣)로 하여금, 무여어세상(無餘於世上)하게 하라. 4 조는, 죄를

크게 범한 자는 섬도(暹島)에 유배시켜 죽은 뒤에 그 시체를 태워서, 罪集으로 하여금,

무여어지상(無餘於地上)하게 하라. 또 宮室을 짓고, 배와 車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居住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에 환웅씨가 바다에 배를 띄워 始承하여

[64]四海를 순방하니,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修信하고, 제족의 소식을 소통하여 근본을

잊지 않을 것을 호소하고, 궁실을 짓고, 배와 차를 만들고, 火食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었다. 환웅씨가 돌아와 八音二文을 수학하고, 曆法을 정하고 醫藥術을 수업하며,

天文과 地理를 저술하니, 弘益人世였다. 이는, 세대는 멀어지고, 법은 해이하여져서, 모든

사람들이 몰래 사단(詐端)을 모색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日用하는 사물 사이에서,

근본의 도를 보전하여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비로소 학문을 하는

풍조가 일어나니, 人性이 혼매(昏昧)하여, 배우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桓因氏之子桓雄氏ㅣ生而有大志하야 繼承天符三印하고 修계除불하고 立天雄之道하야

使人知其所由러라. 於焉人世ㅣ偏重於衣食之業하니 桓雄氏ㅣ制無餘律法四條하야 使鰥夫로

調節하니 一曰人之行蹟은 時時淸濟하야 勿使暗結生鬼하며 煩濟化魔하야 使人世로

通明無餘一障하라. 二曰人之聚積은 死後堤功하야 勿使陳垢生鬼하며 濫費化魔하야

使人世로 普洽無餘一憾하라. 三曰頑 邪惑者는 謫居於曠野하야 時時被其行하야 使邪氣로

無餘於世上하라. 四曰大犯罪過者는 流居於暹島하야 死後焚其尸하야 使罪集으로

無餘於地上하라. 又作宮室舟車하야 敎人居旅러라. 於是에 桓雄氏ㅣ始乘舟浮海할새

照證天符修信하고 疏通諸族之消息하며 訴言根本之不忘하고 敎宮室舟車火食之法이너라.

桓雄氏ㅣ歸而修八音二文하고 定曆修醫藥하며 述天文地理하니 弘益人世라. 此는

世遠法弛하야 諸人之暗취摸 이 增詐端故로 欲保根本之道於日 用事物之間而使昭然也라.

自是로 始興修學之風하니 人性昏昧하야 不學則不知故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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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환웅에서 환이란 하늘을 뜻하는 말이고 웅이란 고어로 땅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는

천손족과 지손족이 합하기 시작했음을 말하며 이때를 하늘을 열어 지손족을 받아들였다

하여 開天이라 한다. 단군신화에서 환웅할아버지와 웅녀와의 결합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58] 이집트의 대피라미드가 약 1 만년 전에 내린 큰 비(돌에 깊은 자국을 남길 정도이니

엄청난 비로 추정이 된다)로 돌이 침식된 흔적이 있다 하니 만약 오미(五味)의 화(禍)로

인해 쫓겨난 지소(支巢)씨의 일부 세력이 여기에 흔적을 남기고 그 뒤 큰 변혁이 왔다고

가정하면 시기적으로 일치를 한다.

<신의 지문> -참고로 대피라미드는 이집트의 그 어느 피라미드보다 정교하고,

거대하면서, 전혀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 졌고 시대적인 차가 크므로 이집트인이

만들었다기보다 다른 문명이 만들고 이집트인은 그것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부장품이나 미이라가 있었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무덤이 아님 다른 용도로 쓰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안에 거대한 배가 (장시간동안 바다를 건너 먼

곳까지 여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다른 먼 곳으로부터

이주를 해온 것으로 보이며 주변에 큰 인공연못과 길이 어우러져 있고 옆에 비슷한

규모의 피라미드가 있어 사이에 바람이 지나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고 주변은 당시

초원이었을 것으로 가정한다면 마고성에서 세상을 구성하는 4 가지 원소 기(氣,바람),

나무, 흙(돌), 물이 다 있는 것이니 마고성에서의 여건을 조성을 해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성립하게 된다. 이집트에 보면 아주 옛적부터 주술인들 사이에 내려오는 신비의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수는 천부경의 원리로 만들어져 동양철학에도 자주 나오는 수이다.

[59] 한단고기의 삼성기편에 보면 이때 동녀동남 800 명이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왔다고 되어 있다.

[60] 마고가 마고성을 허달성 위로 올려 놓았음으로 복본을 위해서는 정신수련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후세에게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제시 법을 이어나가게 함.

[61] [흠정만주원고]에서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朝鮮의 나라인 숙신의

나라(肅愼國)가 남녘으론 한밝산(太白山)을 포함하고, 북녘으론 黑龍江에 닿아 있고, 또

그 안에 길림성 영고탑(寧古塔)이 있다. 숙신의 나라가 서녘으론 구막한국(寇莫汗國)에

닿았는데, 이나라에서 양운국(養雲國)까지는 말을 타고 100 일을 가야 하며, 이 나라에서

비리국(卑離國)까지는 말을 타고 50 일을 가야 한다. 숙신 나라의 서북녘에 있는

비리국까지는 200 일을 가야 다 지날 수가 있다.

[62] 안파견(安巴堅)한인, 혁서(赫胥)한인, 고시리(古是利)한인, 주우양(朱于襄)환인,

석제임(釋堤壬)한임, 구을리(邱乙利)한인, 지위리(智爲利)한인

[63] 혹자는 단군이 개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64] 마야나 잉카등의 고대 문명을 살펴보면 6 천년 전에 사람이 와 자신에게 문명을

전파 했다는 대목이 있고 이때와 한웅께서 사해 일족을 다니시던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를 함 <신의 지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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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부 : 환웅씨 시대

부도지에서는 환웅씨에 관해서는 거의 나온 것이 없다. 그래서 한단고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여기에 적어 보겠다.

한인의 서자 환웅이 있어 무리 3,000 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내려와 神市를 열었다 한다.

배달국은 9 개의 나라로 이뤄져 있고 18 대 환웅이 1565 년간 재위하였다. 한단고기에서

‘삼성기’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뒤에 桓雄氏가 계승하여 일어났다. 天神의 뜻을

받들어 白山과 黑水 사이에 내려 왔다. 子井과 女井을 天坪에 마련하고 靑邱에 井地를

정했다. 天符印을 지니고 다섯 지 일을 주관하였으며, 세상에 머무르며 인간을 교화하고

크게 이롭게 하였다. 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배달(倍達)이라 하였다. (…)’

[66] 지위리(智爲利)한인

[67] 여기서 서자란 첩의 자식이 아닌 여러 자식 중 하나를 말하는 것 일 것이다.

어떤 이는 서자촌의 자식이다, 다른 이는 서자를 출현 시키므로 장자 우선이 아닌

기회균등을 말하는 것이라 하나 좀 현실성이 없을 것 같다.

[68] 이때를 개천(開天)이라 하였고 우리가 매년 지내는 개천절 행사는 이를 기념하는

것이지 절대 조선의 건국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69] [예기(禮記)]의 왕제편에 따르면 , 동이의 9 겨레(九韓) 또는 9 이겨레(九夷族)는,

견이(?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가 이다.

[70] 거발한, 거불리, 우야고, 모사라, 태우의, 다이발, 거련, 안부련, 양운, 갈고, 거야발,

주무신, 사와라, 자오의, 치액특, 축다리, 혁다세, 거불단

[71] 부도지에서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 한것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세가지 경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72] 곡식, 생명, 형벌, 병, 선악을 말하는 것으로

우가(牛加)는 농업을, 마가(馬加)는 목숨을, 저가(猪加)는 병, 구가(拘加)가 형벌,

양가(羊加)가 선악을 담당했다.

[73] 부도의 법을 말하는 것으로 한단고기 내용중 교화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74] 밝은 땅이라는 뜻의 고어로 배달이란 이두식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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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임검(壬儉)씨 시대(조선시대)

第十二章

환웅씨가 [75]壬儉씨를 낳았다. 때에 사해의 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迷惑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天雄의

道를 닦아, 계불의 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갈고, 심고, 누에치고, 칡 먹고,

그릇굽는 법을 가르치고, 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나, 사해를 널리 돌아다니며, 제족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백년 사이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를 照證하여 修信하고,

해혹복본(解惑復本) 할 것을 맹서하며, 符都 건설할 것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협화(協和)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講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후일 會講의 실마리가 되니, 인사가 번거롭고 바빠, 강하지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桓雄氏生壬儉氏하니 時에 四海諸族이 不講天符之理하고 自沒於迷惑之中하야 人世因苦라.

壬儉氏懷憂於天下하고 修天雄之道하며 行계불之儀하야 繼受天符三印이라. 敎耕稼蠶葛陶

之法하고 布交易稼 錄之制러라. 壬儉氏ㅣ啖根吸露하고 身生毛 하야 遍踏四海하야

歷訪諸族하니 百年之間에 無所不往이라. 照證天符修信하고 盟解惑復本之誓하며

定符都建設之約하니 此는 地遠信絶하야 諸族之言語風俗이 漸變相異故로

俗講天符地理於會同協和之

而使明之也라. 是爲後日會講之緖하니 人事煩忙하야 不講則忘失故也라.

[75] 인간들 중의 왕이란 말이며 한인 한웅 때 까지는 마고성에서 나온 천손족 중에서

왕이 나왔으나 이때 처음으로 인간들 중 왕이 나왔으니 이때야 비로서 천손족과

지손족의 완전한 결합이 이뤄졌다. 기록에서 보면 [단군 한배검께서는 조선 전체를

3 한(三韓, 三王)이 나눠 다스리고, 한배검 자신은 辰王인 辰韓으로써 馬韓과 변한(卞韓)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때 곰겨레(熊族)의 자손인 熊伯多란 사람을 馬韓으로 삼고 蚩尤의

후손 가운데 지혜와 슬기와 용기와 힘이 뛰어난 치두남(蚩頭男)을 卞韓으로 삼았다]라

하여 이들이 완전하게 융화가 되었음을 말한다.

第十三章

壬儉씨가 돌아와 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磁方이었다. 이는 2 와 6 이

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 와 8 이 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 와 1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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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 과

3 과 5 와 7 의 자삭(磁朔)의 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天符壇을 짓고 사방에 보단을 설치 하였다. 堡壇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량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 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三海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津과 浦사이에 다시

6 부를 설치 하였다. 6 부에는 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웅려(雄麗)하고

광명하여 사해를 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生脈이었다.

壬儉氏ㅣ歸而擇符都建設之하니 卽東北之磁方也라. 此는 二六交感懷核之域이오

四八相生潔果之地라. 明山麗水ㅣ連선萬里하고 海陸通涉이 派達十方하니 卽九一終始不

之其也라. 三根靈草와 五葉瑞實과 七色寶玉이 托根於金剛之臟하야 遍滿於全域하니

此一三五七磁朔之精이 會方成物而順吉者也라.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하고

設保壇於四方이라. 保壇之間에 各通三 道溝하니 其間이 千里也오 道溝左右에

各設守關하니 此取法於麻故之本城이라. 劃都坊於下部之休하고 圖涵澤於三海之周하니

四律四浦ㅣ連隔千里하야 環列於東西라. 律浦之間에 又設六部하니 此爲諸族之率居也라.

符都 成하니 雄麗光明하여 足爲四海之總和요 諸族之生脈

第十四章

이에 황궁씨 후예 6 만이 이주하여 지키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 8 만을 만들어서, 信符를

새겨, 天池 물에 흘려 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들어, 박달나무숲에 신시를 크게 열고, 수계정심하여, 天象을

살핀 후, 마고의 系譜를 닦아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해 그 語文을 정리

하였다. 또 北辰과 七耀의 위치를 정하여 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전(奠)을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天雄의 樂을 연주하였다. 제족이 방장산(方丈山) 방호의 굴

(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고 그것을 方丈海印이라 하여 七難을

없애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매 10 년마다 반듯이 신시를 여니, 이에 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인세가 太和하였다. 인하여 바닷가에 성황(城隍)을 지어 천부에게

전을 올리고, 제족으로 하여금 머물러, 집을 지어 살게 하니, 그 뒤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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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五章

또 예와 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海市를 열어, 매년

10 월에 朝祭를 행하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바쳤다. 산악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쳐 송축하기를 [[76]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 조제에 공진하니, / 오미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창생의 재앙을 그치게 하네]하였다.

이를 가리켜 朝鮮祭라 하였다. 이 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물고기와 肉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이 거개 저린 어물과 조와 가죽류이기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 하고, 공에 보답하게 하였다. [77]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니, 이는 물체가 대신 오미의 잘못을

보상하여, 재앙을 멎게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즉 육친고충의 고백이었다. 언제나 歲祭

때에는 物貨가 폭주 하므로 사 진과 사 포에 해시를 크게 열고, 몸을 깨끗이하여, 地理를

거울 삼아,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값과 분량을 정하며, 物性의 근본을 분별하여

이용하는 법을 밝혔다. 또 부도 팔택의 모양을 본떠서 뭇을 파고, 曲水 사이에서

보새(報塞)를 지내고, 會燕하여 濟物하는 儀式을 행하였다. 제족이 봉래산 원교봉

(圓嶠峯)에서 오서(五瑞)의 열매를 얻으니, 잣나무 열매였다. 봉래 海松이라 하여,

은혜롭게 五幸을 얻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가 산업이 일어나 교역이 왕성하게

되므로, 천하가 유족하였다.

[76] 고기(魚)와 양(羊) 합하면 선(鮮)이란 글자가 된다. 우리나라를 말하는 朝鮮 글에서

보면 朝란 해(日)와 달(月)의 밝음이 합하여 완성이 되는 것을 형상화 시킨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朝란 광명, 하늘(天)을 뜻하고 鮮이란 위에서 보듯이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합하면 천제(天祭)를 뜻하여 조선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자격이 있는 것을 뜻한다.

[77] 마야나 잉카등의 고대문명에서는 이가 변질되어 인신공양의 제사가 된 것으로 추정.

第十六章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대개

인삼이 그 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 歲를 1 기로

휴먼하고, 13 기를 1 삭(朔)으로 축정(蓄精)하고, 4 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영효(靈?)가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은 진실로 불암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천혜(天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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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부 : 임검(壬儉)씨 시대

임검씨란 그 시대적 배경이 요순임금의 시대 이므로 한배검 단군을 말하는 것 같다.

앞서 환국과 배달국에서의 임금은 천손족인 마고성의 후예였으나 한배검 단군께서는

웅족(熊族, 지손족)중 가장 세력이 강한 단국(檀國)의 후손으로 천손족에서 지손족으로

이어지는 첫 임금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라의 이름도 하늘(天, 천손족)이 주신국가라

하여 ‘朝鮮’이라 하였다. 또한 한배검께서는 조선의 전체의 행정구역을 3 한(三韓,

三王)으로 나눠, 자신은 辰韓인 진임금(辰王)으로써 馬韓과 변한(卞韓)을 거느리고 있었다.

임검씨는 먼저 흩어져 있는 마고성의 여러 민족을 찾아 다니며 부도를 다시 건설 할

것을 약속하고 6 만의 백성을 먼저 삼신산으로 이주시켜 자리를 지키게 하고, 텟목

8 만을 만들어 이주를 하여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 여셨다. 이는 흩어진 마고성의 여러

민족을 모아 천부의 이치를 가르쳐 분명히 알게 하여 부도의 법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 임검씨는 마고성을 모방하여 신시를 꾸미고 사방에 흩어진 민족들을

초청하였다.

[78] 조선의 정식 명칭은 ‘쥬신’으로 조선(朝鮮)이란 쥬신의 이두식 표기이다.

[79] 마한(馬韓, 마임금)의 첫임금으로는 곰겨레(熊族)의 자손인 熊伯多를 임명하였다.

[80] 변한(卞韓)의 첫임금으로는 치우(蚩尤)의 후손 가운데 지혜와 슬기와 용기와 힘이

뛰어난 치두남(蚩頭男)을 으로 삼았다

[81] 지금의 백두산을 말한다. 백두산의 명칭으로는

개마대산(蓋馬大山), 개마산(蓋馬山), 구월산(九月山), 궁골산, 금미산(今彌山),

단단대령(單單大嶺), 도태산(徒太山), 도태백(徒太白), 도산(塗山=발산), 방골산,

백아강(白牙岡), 백역산(白亦山), 백운산(白雲山), 백주(白州), 부산(釜山), 불함산(不咸山),

신산(神山), 비백산(鼻白山), 삼신산(三神山), 삼성산(三聖山), 삼위산(三危山), 설산(雪山),

아사달산(阿斯達山), 두산(頭山), 대박산(大朴山), 단산(丹山=붉산=발산),

목단봉(牧丹峰=한밝재), 박달산(朴達山), 백계산(白階山), 백산(白山), 백악산(白岳山),

백악(白岳), 백달(白達), 증산(甑山), 천산(天山), 천백산(天白山), 천조산(天祖山),

천신산(天神山), 천성산(天聖山), 천등산(天登山), 태박산(太博山), 태백(太伯),

태백산(太伯山), 태황산(太皇山), 풍산(風山), 장백산(長白山), 조백산(祖白山), 조산(祖山),

함박산(咸朴山), 환산(桓山, 丸山)

[82] 우리나라는 12 지지중 인(寅, 陽木)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의 풍습에 神木이라 하여

마을마다 가장 큰 나무를 정해 신성시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에 연유를 한 것 같다.

박달나무란 밝은 땅에서 나는 나무라는 뜻으로 당시 우리민족을 신성시하는 나무가

아니었나 추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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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치화(治化)의 시대

치화 시대의 계기가 된 것은 [오행의 화]이나 이때 계기가 만들어 진 것이지 치화의

시대는 아니다. 본격적인 치화 시대는 47 대 고열가단제의 폐관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오행의 화에 대해 나오는데 부도지 내용 중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 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다. 오행의 화란 하늘에 대한 인간의 반란으로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결국 그것이 조선의 막을 내리며 부도의 법이 끊어 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제 5 장 : 오행(五行)의 화(禍)

第十七章

이 때에 도요(陶堯)가 天山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출성(出城)한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웠다.

그러나 원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 수 5 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중 5(中五) 이외의 8 은, 1 이 즉 8 이라고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有因)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壬儉)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비어 있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三方)으로 흩어졌다. 요가 곧

9 주(九州)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 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세 두번째의 큰 변이었다.

第十八章

이에 임검씨가 그것을 심히 걱정하여, 有因氏의 후손 유호씨(有戶氏)의 부자로 하여금

환부(鰥夫)와 권사(權士)등 100 여인을 인솔하고 가서 그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을 하고, 공순하게 대접하여 하빈(河濱)에서 살게 하였다.

유호씨가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그 거처를

옮겼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에 칡을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 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보다 나이를 100 여살이나 더 먹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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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할아버지의 業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使者가 되어, 완미(頑迷)한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때에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 가운데 딴 뜻이 있어, 일을

맡기고, 도와 주며, 두 딸로 유혹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행하는 환부가 되어, 마침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第十九章

이 때 유호씨가 수시로 경계를 하였으나, 순은 예, 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의 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五行의 화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은 하늘을 가리어, 數事가 많이 어그러져, 人世가 곤고(困苦)하여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범하는 자는 비록 지친(至親)이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하고 곧

차자(次子) 有象에게 명하여 勸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 싸워서, 마침내 唐都를 혁파(革罷)하였다. 요는 유폐(幽閉) 중에서 죽고, 순은

창오(蒼梧)의 들에 도망하여, 도당(徒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禹가 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버렸다. 순의 두 妻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가 곧 正命으로 立功한다고 말하고, 상의 군사를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 때에 우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夏王이라 하였다.

第二十章

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壇을 설치하였다.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符都際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폭돌(暴突)한 것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에 유호씨가 서벙에 살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여, 소부와 허유가 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 제족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邑을 이루었다. 유호가 곧 權士를 보내, 우에게 유시

(諭示)하기를, [요는 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독단(獨壇)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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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혼자서 처리 하였다. 세상은 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天理는 거꾸로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天權을 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日月을 개폐(開閉)하여, 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數諦)요,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다만 사기와 허망의 나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證理요,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本務를 수행하게

하고, 그 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하고 생소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가 평등하며, 諸族이 自行하는 것이다.

오직 그 오미(五味)의 죄책을 보속(報贖)하는 것과, 大成之業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 희생의 주관아래 있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은

예로부터 人世之事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黃窮)씨와 有因씨의 예가 바로 이것이다.

第二十一章

또 그 소위 五行이라는 것은, 天數의 이치에 이러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方位의 중앙

5 는 교차(交叉)의 뜻이요, 變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 로부터 9 까지

이므로, 5 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9 가 윤회하여, 律과 呂가 서로 조화를

이룬 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基數를 이르는 것이요, 그 5, 7 이 크게 번지는

고리(大衍之環)에 이르면, 그 자리가 5 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4, 7 이 있는 것이다. 그

순역(順逆) 生滅의 윤멱(輪冪)은 4 요, 5 가 아니니, 즉 原數의 9 는 불변수이기 때문이다.

또 윤멱이 한 번 끝나는 구간은 2X4=8 사이의 7 이요, 5 가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

(配性之物)은 金木水火土의 다섯 중 金과 土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하고자 한다면, 氣風草石 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없는 것이요, 엄별해서 들자면, 금,목,수,화 혹은 토,목,수,화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物性을 어떤 이유로 數性에 짝지우는가, 數性之物은 그 원수가

9 요, 5 가 아니다. 그러므로 5 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괘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인세를

證理하는 일을 誣惑하여, 곧 天禍를 만드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第二十二章

또 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의 微物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는 또 무슨 속셈인가. 천지의 만물이 다 수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 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物事에, 각각 그 역(曆)이

있으니, 역이라는 것은 歷史다.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즉 거북과 명협의 역이요,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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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 아니니, 그것이, 人世와 不合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여들였다.

역(曆)이라는 것은, 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면, 天理와 人事가 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에

어긋나 화가 되니, 이는 복은 理가 存立하는데 있고, 이는 正證에 존립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세 禍福의 발단이니, 감히 삼가 하지

않을것인가. 五味의 禍가, 한 사람의 미혹에서 나와서, 만대의 산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의 화가, 장차 天世의 진리에 미치고자 하니, 두렵기만 하구나.

[83] 화(火)는 열기, 빛, 팽창하는 힘, 상승하는 힘, 발산하거나 흩어지는 힘등을 말하는

것이고, 수(水)는 냉기, 어둠, 수축하는 힘, 하강하는 힘, 뭉치는 힘 등을 상징 할 것이고,

토(土)는 재료요 형상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기(氣)란 생명력, 에너지 등을 상징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중국의 신화에 여와가 흙으로 인간을 빗는 것이 나오는데 이는 흙과

물을 이용하여 형상을 이루고 열과 기로 생명을 만들어 넣은 것으로 해석이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 중 만물을 이루는 4 대 원소로 공기, 물, 불, 흙을 들었는데 당시에는

공기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것으로 볼 때 공기란 기(氣)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렇다고 보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일치하는 것이 되어 고대 철학의 근간이 이것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가능하리라 생각이 된다.

[84] 현재까지 발견된 고인돌은 세계에 15 만개가 있다고 한다. 그 중 10 만개가

우리나라 안에 있는데 그 속에서 발견되는 부장품을 보면 누구나 다 만들었고 계층별

차이가 거의 없어 우리 고대 사회가 평등사회였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을 할 수 있다고

한다.

[85] 1 년을 13 달 나눠 사용을 하는데 그 달력의 정밀도가 매우 높아 천 년이 지나도 몇

초 틀리지 않아 현대의 달력보다 그 정확도가 훨씬 더 높다.

[86] 서양에는 권력자가 역(曆)을 정리를 하여 율리시스력이나 그래고리력이라 하며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데 마야와 같이 천체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욕이 들어가 많이 변조가 되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12 진법을 사용을 하여

12 개의 달로 나눴으나 1 월(30), 2 월(31), 3 월(30), 4 월(31), 5 월(30), 6 월(31), 7 월(30),

8 월(30), 9 월(31), 10 월(30), 11 월(31), 12 월(30)로 나누면 365 일이 되나 율리시스가

자신의 생일(2 월 28 일)에 맞춰 2 월을 28 일로 만들고 1 월(31), 2 월(28), 3 월(31), 4 월(30),

5 월(31), 6 월(30), 7 월(31), 8 월(31), 9 월(30), 10 월(31), 11 월(30), 12 월(31)로 만들었다.

第二十三章

天道가 돌고 돌아, 終始가 있고, 종시가 또 돌아, 4 단씩 겹쳐 나가, 다시 종시가 있다.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의 종시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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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시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 回를 사(祀)라 하니, 사에는 13 기(期)가 있고,

1 기에는 28 일이 있으며, 다시 4 요(曜)로 나뉜다. 1 요에는 7 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한다. 그러므로, 1 사이에 52 요복이 있으니, 즉 364 일이다. 이는

1,4,7 성수(性數)요, 매 사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니, 단과 1 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 일이 되고, 3 사의 반(半)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니, 판은 사의

2 분절이다. 이는 2,5,8 법수(法數)요, 달이 긴 것이 1 일과 같기 때문에, 제 4 의 사는

366 일이 된다. 10 사의 반(半)에 대회(大晦)에 구가 있으니, 구는 시(時)의 근원이다.

300 구가 1 묘(?)가 되니, 묘는 구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 묘를

지내서 각(刻), 분(分), 시(時)가 1 일이 되니, 이는 3,6,9 의 체수(體數)다. 이와 같이,

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의 이 세가지 잘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 이(理)가 불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이(理)가,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87] 一始無始一에서 시작하여 一終無終一로 끝나는 것에서 보듯 시작과 끝은 하나로

서로가 맞물려 순환하는 원리를 표현하였다.

[88] 종시(終始)로 표현, 시작과 끝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 하루 하루가 끝까지 가서 다시

[89] 1 년(年)을 말함

[90] 오늘날의 1 주일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曜日이란 것은 여기서 유래를 한 것이다.

[91] 요(曜)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하니 요복(曜服)이라 함은 각 요일의 시작에서

끝까지 그러니까 7 일을 뜻하는 것이다.

[92] 오늘날의 윤년을 말한다

第二十四章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 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고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모산(茅山)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중(夏衆)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만이었다. 이는 거의가 우와 함께

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邑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 천이었다. 그러나, 夏軍이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번도 전적을 거양하지 못하였다. 계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夏衆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邑이 자연히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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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단기고사에 보면 43 세 단군 때 융안(隆安)의 사냥꾼 우화충(于和沖)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를 모아 서북 36 군을 함락 시키며 난을 일으키고, 46 세 단군 때에

한개(韓介)가 수유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침입하였고, 47 세 단군 때는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키는등 삼한(조선)의 말기에는 크고 작은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 나게 된다.

[94] 우화충(于和沖)의 반란을 진압하고 단군이 되어 나라의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고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으로 바꿔 불렀다. 삼조선이란 신조선(辰韓),

불조선(卞韓), 번조선(馬韓)을 말한다.

제 8 부 : ‘오행(五行)의 화(禍)’가 주는 의미

부도의 법에서는 氣火水土라는 4 대 원소로 만물이 구성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이

4 가지의 구성 요소가 오행 木火土金水의 5 가지 구성 요소와 차이는 무엇일까?

符都誌에서는 이 구절에서 상당히 많은 자리를 할당을 하여 설명을 하였다. 물론

상당부분은 내용에 대한 설명이긴 하지만 그만큼 중요하게 다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도지에 나오는 4 대 원소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충하며 완성으로 나가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아이와 어른, 밤과 낮과 같이 서로 상반되는 개념끼리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만물을 이루는 개념이다. 이는 높고 낮음, 잘나고 못남, 귀함과

천함이 없이 모든 것에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그것이 서로 어울러져 조화를 이룰 때

완성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개념이다.

실제 고대 우리나라의 국가는 완전평등을 실현한 공산주의 국가로 높고 낮음이나 귀천의

개념이 없는 완전한 평등 사회라 한다. 이는 우리의 음식문화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외국의 경우 재료 본래의 맛을 살리거나 주된 맛 뒤에 첨가하여 맛이나 향을 첨가하거나

보조해 주는 형식인데 반하여. 우리의 음식은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만드는 이른바 비빔밥으로 대표가 되는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행의 원리에서는 토가 중앙에서 다른 네 원소의 균형을 제어하는 형상으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통제하며, 희생을 받거나 희생을 하는 관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지도층의 절대 권력을 형상화 시킨 것으로 계급사회, 투쟁을 정당화 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水는 火를 이기며, 土에게는 지며, 木을 생(목을 위해 희생)하고,

金의 희생을 바탕으로 생성이 된다. 목은 土를 이기며, 金에게는 지며, 火를 생(화를 위해

희생)하고, 水의 희생을 바탕으로 생성이 된다. 또한 土는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니 중국의 皇帝나 지배층을 형상화 하여 만들어진 개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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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것이 하늘에서 나온 산물이며 만물이 서로의 부족한 면을 서로 메워주며

이들의 조화에 의해 세상이 만들어 진다는 이론이 서로 생하는 힘에 의해 생성이 되고

극하는 힘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어 폭주하는 것을 막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이론으로 바뀌었다.

결국 이로 인해 지배자(상극하는 힘)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권력에 대한 욕망에 의해

투쟁이 일어나니 오미의 화에 의해 생긴 관념에 오행의 화로 인한 투쟁의 힘이 보태져

세상을 더욱 혼란하게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제 9 부 : 부도의 역(曆)

부도의 역은 마야나 잉카의 역과 유사하다. 마야나 잉카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태양력을

사용을 한다. 우리민족도 역시 광명을 숭상하여 국가 이름도 밝음을 상징하는 환국이나

배달국이니 그들과 같은 태양력을 사용을 한다고 가정을 하고 이를 보는 것이 유사 할

것 같다. 서양 역시 태양력을 사용한다고 하나 자연의 주기에는 관계가 없이 1 년이라는

단위에 날자를 끼어 맞춰 실지 자연의 주기와는 맞지 않는다.

우리의 역은 천부경의 원리에 따라 시작과 끝이 하나(시작과 끝의 주기로 여기서는

1 년을 뜻한다.)이니 이것이 한번 돌아가는 것을 소력(小曆)이라 하고 소력의 1 회를

사(祀)라 한다. 1 사에는 13 기(期)가 있고, 1 기는 4 요(曜)가 있고, 1 요에는 7 일이 있어,

1 사는 52 요복(13 기 X4 요)이 있으니 합이 364 일이다. 여기서 1 사(년)의 시작에 단이

있으니 시작에 1 을 합하여 365 일이 된다. 또한 여기서 4 번째 사에 다시 1 을 보태니

366 일이 된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1 년은 13 달이 있고 1 달에는 4 주가 있고 1 주일은 7 일(그러니까

1 달은 28 일)이고 1 월달은 하루가 더 있어 29 일이 있다. 그래서 1 년은 365 일이 되고

4 년에 한번 윤년이 오면 366 일이 된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1 년이 13 개월이 너무나 과학적인 방식이므로 2000 년부터는 이

방식을 취하자 하며 주장을 하는 것으로 봤을 때 우리 조상님들은 너무나 과학적인

달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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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 잃어버린부도의법

第二十五章

이로부터, 천산(天山) 남쪽 태원(太原)의 지역이, 뒤숭숭하고 떠들썩하며, 주인이 없는

것과 같아서, 소위 왕이란 자는 눈이 멀고, 소위 장님은 백성이 되어, 암흑이 중첩하였다.

강자는 위에 있고, 약자는 아래에 있어, 왕과 제후를 나라에 봉하고, 生民을 제압하는

풍폐(風幣)가 만연하여 고질이 되고 마침내 서로 침탈하기에 이르니, 헛되게 生靈을

죽이고, 한가지도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하은(夏殷)이, 다 그

법으로 망하고서도, 끝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는 스스로 부도에서 떨어져 나가,

진리의 도를 들을 수 없게 된 까닭이었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성생(月息星生)의 땅에 들어가니, 즉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의 후예가,

오히려 소(巢)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고탑(高塔)과 층대(層臺)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天符)의 본음(本音)을 잊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여, 도를

와전하여, 이도(異道)가 되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싸우고 정벌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마고(麻姑)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 되어, 허망하게도, 형적이 아주 없어지니,

유호씨가 두루 제족의 지역을 돌고, 마고와 천부의 이(理)를 설(說) 하였으나,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전고자(典古者)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리(本理)를 술회하여, 그것을 전하였다.

第二十六章

임검씨가 유호씨의 행상(行狀)을 듣고, 그 길을 장하게 여겨, 유호씨의 족(族)에게

교부(敎部)에 취업하게 하여 살도록 하였다. 이때에, 임검씨가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을 하고, 마침내 입산(入山)하여,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도를 전수(專修)하였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천지가 하나의 이치가 되는 것을

증명하여, 인생이 일족(一族)이 되어, 크게 부조(父祖)의 도를 일으키고, 널리

<천웅(天雄)의 법을 행하여, 인세 증리(證理)의 일에 전념하였다. 일찍이

<운해족(雲海族)과 긴밀하게 연락하여,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더니,

이도(異道)가 점차 성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를 아들

읍루씨(?婁氏)에게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가 날 때부터, 대비(大悲)의 원(願)이 있어,

천부삼인을 이어받고, 하족(夏族)이 도탄에 빠진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진리가

사단(詐端)의 지역에 떨어진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에 천부를

봉쇄하고, 곧 입산하여, 복본의 대원(大願)을 전수(專修)하며, 백년 동안 나오지 아니하니,

유중(遺衆)이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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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검씨가 후천(後天)의 말세의 초에 태어나, 사해의 장래를 미리 살피고, 부도 건설을

시범하니, 천년 사이에 그 공업이 크게 이루어졌다. 이에 이르러 천부의 전해짐이 끊어져,

마고 분거(分居) 이래로, 황궁(黃穹), 유인(有因), 환인(桓因), 환웅(桓雄), 임검(壬儉),

부루(夫婁), 읍루(?婁)의 7 세에 천부가 전해진 것이 7 천년이었다.

제 10 부 : 잃어버린 부도의 법

우리민족의 영토가 너무나 거대했다. 그 영토를 어떻게 관리를 했을까? 조선시대 인구

조사를 한 것을 보면 1 억 8 천만의 인구가 있다 했다. 이것으로 봤을 때 당시의 영토는

지금의 유라시아 대륙의 상당부분을 차지를 했을 것이다. 당시 환국은 3301 년, 배달국은

1565 년, 조선은 2096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잉카제국의 국가 형태를 보면 답을 알 수가 있다. 잉카제국도 우리와 같은

우리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였다. 그들은 강력한 종교의 힘으로 국민을 묶어 일을 하지

않음은 죄악이였기에 특별한 통제 수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환인, 환웅, 단군을 한얼님이란 말로 자주 불렀다. 이것은 큰 얼을

가진 님이란 뜻이니 이들이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다는 말이다. 부도의

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기에, 천손족의 문화로써 정신적으로 모두가 한 울타리안에

있었기에 국가가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고성의 시대는 본성만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신성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오미의 화로 욕망이 생기고 관념이 생겨 본성에 막이 생겨

신성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마고성에서 나오게 되었고 12 명의 天人에 의해

민족은 여럿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황궁씨(黃穹氏)에 의해 그 법이 잘 지켜져

주변의 다른 나라의 정신 지도국으로 그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오행의 화가

있고 이에 의해 지나족은 혼란한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이들은 안정된 조선으로

흘러 들어 오게 되고 이들에 의해 이민족의 저급한 문화에 의해 문화 침투를 당하게

되어 우리가 오히려 오행의 화를 입게 된다.

이 오행의 화에 의해 지배욕이 생기게 되고, 투쟁심이 생겨 민족을 이루고 있는 정신적

고리가 끊어지며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 부도의 법을 잃어 버리고 국가가

분열하게 된다. 고열가단군 때에는 더 이상 통제를 하기 어려운 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까지 가서 결국 법을 안고 폐관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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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 삼한에서 삼국으로

小 符 都 誌

第二十七章

은(殷)의 망명자 기자(箕子)가, 패군과 난민을 이끌고, 부도의 서쪽에 도망하여 왔다.

명예를 위하여 당우의 법을 행하고, 五行三正을 써서, 홍범 무함(洪範巫咸)을 시행하였다.

천웅의 도와는 절대로 서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은의 軍民이 무력으로 부도의

유중(遺衆)을 억압하므로, 유중이 마침내 明地의 壇을 봉해버리고, 동해의 물가로 피하여

살았다. 즉 옛날의 사례벌(斯禮筏)의 空地였다. 사해벌은 긴 기(長旗)니, 광야(曠野)에

유배된 사람이, 아침에 내걸고, 저녁에 거둬들여, 먼 곳에서 살면서 지키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곧 六村을 설치하고, 입접의 제족과

분담하여, 함께 지키되, 각각 한(韓)이라 하고, 보위(保衛)하였다. 한은 보위의 뜻이다.

북의 馬韓과, 남의 변한(卞韓)과, 동의 辰韓의 삼한이 부족의 자치를 행하고, 先世의 도를

굳게 지켜, 이후 천년 사이에 기자의 법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보위 방비하는 일에

전념하여, 거의 여력이 없었다. 이 때 하토(夏土)의 쟁탈의 바람이 점차 격심하여, 동요와

혼란이 삼한에 파급되므로, 육촌의 사람들이 서로 모의하고, 서쪽의 화가 점차 임박하여,

보수(保守)하기가 장차 위태로우니, 어쩔 수 없이 통합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마침내 경계를 정하고, 요새(要塞)를 세워, 혁거세를 추대하여, 통어(統御)하는 일을

위임하였다. 남은 百濟요, 북은 高句麗였다. 고구려가 곧 북보(北堡)의 땅을 회복하여,

서침(西侵)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그 지역을 완전하게 보위하였다.

제 11 부 : 열국시대로

앞에서 얘기를 한 것처럼 오행의 화에 의해 혼란한 중국의 여러 국가(夏, 殷)의 유민이

삼한으로 흘러 들어옴으로써 삼한의 백성들이 꺼꾸로 문화 침투를 당하여 부도의 법이

끊어지고 의식의 고리에 틈이 생겨 국가의 통제력의 한계를 맞게 된다. 특히 44 세 단군

때부터는 삼한은 통치는 받으나 군사권은 각각 나눠 가졌으며, 47 세 고열가단군의 폐관

이후는 실질적인 법통을 잃어 삼한이 여럿으로 분열이 되니 그 여러 제후국 중 가장

강한 나라에서 단군이 나왔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법통을 가진 진한의 후예가 이러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권력

쟁탈전에 회의를 느껴 이 들의 세력이 닿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가서 나라를 세우니

이가 신라가 되었다. 그리고 삼한의 여러 나라 중 고구려와 백제가 있어 다른 여러

나라를 병합 하여 커지니 후세 사람들이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렇게 생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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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 잃어버린 역사

제 12 부 : 한사군의 허구

70 년대 중반 재야 사학자 임승국은 한사군의 명칭이 사마천의 ‘사기(史記)’ 115 권

조선열전(朝鮮列傳)은 물론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지극히

단순한 이사실 하나를 발견하는데 2000 년이 걸렸다면 과연 믿겨질 만한 일인가? 한말

친일어용 사학 단체인 청구학회의 공동 대표였으며 해방 후 반세기 동안 남한 사학계의

태두였던 이병도는 사기(6 권)에 한사군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했으나

임승국에 의하면 사기 그 어느 곳에도 그러한 기록이 없다. 일연스님조차 三國遺事에서

김부식의 三國史記가 한사군을 논한 것을 보고 군의 수도 명칭도 틀리다 하였으나 어찌

2000 년 동안 한번의 의문도 없이 이를 받아드렸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한무제가 보낸 수군제독 양복은 열수를 거슬려 올라가다 조선 수군의 습격을 받아

패전하여 배는 가라앉아 버렸고 상륙하여 도망다니는 치욕을 치렀다. 또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한무제에 의하여 사형이라는 극형을 당하고, 사체는 찢겨 사대문에 걸리는

기시(棄市)에 처해 졌던 것이다. 육군 사령관 순체(筍?)도 같은 기시를 당했다. 이 전쟁의

주역이였던 양군의 사령관이 모두 기시에 처해 졌다는 것은 이들이 승전의 주역이

아니라 패전의 주역 이였다는 말일 것이다. 만약 이들이 승전고를 울렸다면 이들은

승전의 영웅이지 결코 이렇게 죄를 물어 처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패전한

나라가 한사군을 설치를 할 수 있었겠는가? 실지 위만조선으로 알려진 우거 정권이

구테타로 무너진 뒤 그곳에 설치된 사군은 한나라사람이 다스리는 사군이 아니라

조선사람 참최음협이라는 네 사람이 다스리는 평주홰청추저날양이라는 4 군이였다.

사기에서는 조선이 평정되어 4 군이 되었다고 하며 평주홰청추저날양이라는 4 군을 소개

했고, 이 사군의 행정 통치 책임자들을 조선족인 최음참협이라는 네 사람이라 했다. 또

그 4 군의 위치를 발해 연안에서 산동반도까지라 했다.

그러면 우리 역사의 기록에서 흔적을 보면 낙랑국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나온다.

많은 사학자들이 낙랑군과 낙랑국을 같은 존재로 봤으나 이들 둘은 서로 다른 존재이다.

삼국사기에서의 낙랑국에 대한 이야기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大武神王) 15 년(서기 32 년)때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낙랑왕 최리(崔理)가 낙랑군의 태수가 아니라 왕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낙랑이 멸망을 한 시기가 강단사학자의 말을 빌리면 미천왕

14 년(서기 313 년)에 고구려에 의해 멸망을 하였다 하니 대무신왕(大武神王) 15 년(서기

32 년)에 멸망을 한 낙랑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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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3 년조의 “3 월에 우두주(牛頭州)에

이르러 태백산에 望祭를 지냈다. 낙랑과 대방 兩國이 귀복하였다”는 기사 역시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으로 이야기가 되었고, <삼국사기> 남해차차웅 (南解次次雄)조에도 ‘낙랑은

신라와 이웃나라이다’라 했다. 이 낙랑국의 위치는 앞서 고구려본기에서는 고구려의

남쪽이라 했고 남해차차웅조에서는 신라와 이웃나라라 했으니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있는 작은 국가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여러 자료에서 보듯 낙랑군은 그

이름만이 보이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유령국가 이다.

[95] 낙랑(樂浪), 진번(眞番), 임둔(臨屯), 현도(玄 )

[96] 사마천은 조선과 한의 전쟁을 하던 B.C 108 년에 한무제에 의해 태사령(太史令)에

등용된다. 태사령이란 비록 그 지위는 낮으나 조정의 문서, 역사, 천문, 역법 등을

관장하는 부서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 수가 있는

위치였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니 이것이 史記 115 권 조선열전(朝鮮列傳)이다. 따라서

당시의 이 기록은 후세의 어느 기록보다 신뢰성이 있는 기록이라 하겠다. 만약 한나라가

조선을 이겨 한사군을 설치를 했으면, 이 중요한 기록이 사기에 빠졌을 이유가 없다.

[97] 번조선의 유민인 조선족 장수 최(最)가 우거를 죽이고, 우거가 죽자 다시 반항하던

성기(成己)를 죽였는데 이 일의 주역이 모두 조선족이다.

[98] 강단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국사에서는 조선의 강역을 한반도로 한정을 했는데

여기에서 보면 최소 발해 연안에서 산동반도까지 인 것을 알 수 있다.

제 9 장 : 어둠속으로

第二十八章

이보다 먼저, 六部의 촌장(村長)들이 藥을 캐는 날에 모여서, 선도산단묘(仙桃山壇廟)의

聖母가 알을 낳았다는 말을 듣고, 여러 사람이 가서 보았다. 동쪽의 우물을 보로 덮어

가리고, 껍질을 벗겨서, 남아를 얻었다. 몸에서는 빛이 나고, 귀가 부채만큼 컸다. 곧

박(朴)으로써 성을 삼고, 이름을 赫居世라 하였다. 박은 단의 어음이 박달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여 성을 삼았으며, 혁(赫)은 빛이니, 광명으로써 암흑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육촌의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니, 점차 자라면서, 神氣가 秀明하고,

大人의 도가 있었다. 13 살에 여러 사람이 추거(推擧)하여, 거서간(居西干)이 되니, 居는

거(据)요, 干은 防이요, 長이다. 즉 서방에 의거하여, 경계하는 방어장(防禦長)의 뜻이다.

서방은 즉 저들 서침하여 사도(詐道)를 행하는 자들이다.

[99] 신라를 세운 인물로 부도지(符都誌)를 만든 박제상의 직계 조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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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九章

혁거세씨는, 天性은 신과 같고, 지혜는 성인과도 같았다. 또 賢妃 알영(閼英)을 맞이하니,

그 때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二聖이라 하였다. 능히 여러 부족을 통솔하여, 先世의

도를 행하며, 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南太白山에 天符小都를 건설하였다. 중대(中臺)에

천부단을 축조하고, 동서남북의 사 대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계불의 儀式을 행하고,

大人으로 하여금, 金尺의 이치에 따라, 천지시원의 근본을 證理하여, 玉管의 음을 내서,

律呂化生法을 修證하였다. 해마다 10 월에 白衣祭를 행하였으니, 이는 황궁(黃穹)씨의

속신백모지의(束身白茅之義)를 따르는 것이었다. 달구(達丘)에 朝市를 배풀고, 율포

(栗浦)에 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항상 순행(巡行)하여, 농상(農桑)과

방적(紡績)을 권장하니, 들에는 노적(露積)이 쌓이고, 집에는 베(布)가 저장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착한 일을 크게 일으켜, 여러 사람과 함께 그 苦樂을 같이 하고, 밖으로

방패와 창을 쓰지 아니하며,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보존하였다. 한 마음으로 復古하고,

重建하는 일에 전념하니, 경내가 도가 있어, 옛날과 흡사하였다. 이 때에 변진(弁辰)

제족이 합동하여 협력하니, 비록 경계를 두고 방비하나, 나라를 칭하지 아니하고, 또

왕을 칭하지 아니하였다. 경내 다스리는 일은 先世의 법을 준수하여, 祭會에서 의결되지

아니하면, 일찍이 한가지의 일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영수계위법(領首繼位法)이,

역시 혈계(血系)를 한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영수를 삼았다.

[100] 금(金)이란 고귀한 성스러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척(尺)이란 자로서 사물을 재는

척도로 사용하는 도구로 바른 법도(法道)나 기준(基準)을 뜻하는 것이다. 해서 금척이란

고귀한, 또는 성스러운 법도 즉 부도의 법을 상징하는 것이다.

第三十章

남아 나이 20 살 된, 아름답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택하여 馬郞이라는 직을 주고, 명령을

받들어 원행(遠行)하게 하였다. 혹 성생월식의 옛 땅에 나아가며, 혹 운해천산의 여러

지역에 가니, 이 원행은 부도 修身의 遺制였다. 동해에 피하여 산 지 천여년사이에

祭市之會를 열지 못하여, 서로 내왕이 오래 끊어지고, 또 봉국쟁탈(封國爭奪)의 풍조가

사해에 만연하여, 제족이 각자 나라를 칭하고, 오랜 세월에 전란이 반복하니, 겨레(族)가

종횡으로 나뉘고, 말이 잡다하게 변하였다. 천부는 거의 망각하기에 이르고,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어도, 다 變形하여, 음이 다르니, 마랑들의 원행이 심히 어려워, 순절(殉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랑들이 만리 원행에서도 절조를 지켜, 능히 굳은 뜻을 가지고,

백난을 극복하여 사명을 완수하니, 그 거룩한 인격이 진실로 호매(豪邁)하였다. 장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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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하면, 반드시 직사(職事)에 임명하여, 天文과 地理와 역수(曆數)와 博物을 공부하게

하니, 이는 즉 선세에 사해를 통화하여, 人世를 하나의 법에 맞추는 유업이었다.

第三十一章

서례벌(西禮筏)을 創都한 후로, 어느덧 三世를 지나니, 백여년이 되었다. 세상의 풍조가

크게 변하여 보수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國王을 세워, 대권을 행사 하게하자는 여론이

대두하여, 이러니 저러니 시끄러웠다. 그 반대자들은 선세의 유법이 밝고 밝게 천부를

비추니, 지금 비록 시대가 어려우나, 보수하고 튼튼히 방비하여,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 어찌 사단(詐端)에 굴종하여 스스로 小子가 되어, 패리지중(悖理之中) 에서, 모독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이와 같이 된다면, 의롭게 목숨을 바쳐, 眞道를

뚜렷하게 나타내어, 후세에 남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 찬성하는 사람들은,

외세가 긴박하여 파동이 격심하니, 어떻게 방비를 하겠는가. 담장 안에서도 이반하여

시끄러움이 그치지 않는데, 어떻게 보수한단 말인가.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같이 경쟁하는 마당에 뛰어들어, 부강하게 된 후에, 유업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지금 사해 제족이 사도에 미쳐 날뛰어, 봉사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멸하여 버리면 누가 진도를 현창하며, 후세에 누가 있어, 이를 알 것인가. 만약 능히

방비하여, 보수한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고립되면, 새 백마리 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되어, 오히려 異道가 되고 세상에 존립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장차 또 그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 같은 것은 다 옳지 못하여, 오직 택할 바는, 나라를 세우고 왕을 높여,

대권(大權)을 집행하며, 군마를 호령하여, 파죽지세로 전진하고, 부도 전역을 회복하는

것뿐이다. 부도를 다시 세워, 그 근본을 명시하면, 제족이 비록 완강하더라도, 반드시

각성하여, 근본으로 돌아올 것이다.

第三十二章

이에, 마침내 衆論이 결정되었으므로 人望이 왕국 수립을 주장하는 석(昔)씨로 돌아 왔다.

석씨는 동보(東堡) 유배인의 후예로, 옛날부터, 해빈(海濱)에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체격이 장대하고 지략이 있었으므로, 남해씨(南海氏)가 딸을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대중의 여망에 따라, 자리를 이어 탈해왕(脫解王)이라 칭하니, 즉 保守의

질고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또 서라국(徐羅國)이라 칭하고, 비로소 방패와 창을

사용하여 境內를 평정하였다. 용병(用兵)을 과도하게 하여, 필경은 배척당하였다. 중론이

다시 박씨의 보수계로 돌아오니, 이에 박씨가 다시 계승하고, 왕국의 칭호를 폐지하였다.

4 세를 지나, 중론이 또 석씨에게 돌아갔으나, 단 정벌하는 일을 원하지 않으니, 이가

벌휴씨(伐休氏)였다. 석씨 4 세 사이에 정벌을 다시 시작하니, 중론이 김씨의 中和로

돌아왔다. 김씨는 원래 부도에서 동쪽으로 옮겨와 살던 비족으로, 온양덕후(溫讓德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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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지마씨(祗摩氏)가 손녀를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자리를 이으니,

이가 미추씨(味雛氏) 였다. 이 때를 당하여 서북의 환(患)이 계속해서 일어나되, 하나도

조치된 바가 없으므로, 중론이 다시 석씨에게로 복귀하였다. 이에 석씨가 다시 자리를

이어, 3 세 사이에 정사(征事)가 허다하여, 민물(民物)을 탕진하므로, 크게 시대의 배척을

받았다. 중론이 다시 김씨에게로 돌아가니, 이에 김씨가 다시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第三十三章

오직 우리, 근본을 지키는 족들이 동해에 피하여 살면서, 방비하고, 보수한 지 삼백여년

사이에, 중론의 번복이 이와 같으니, 가히 역외(域外) 풍운이 어떠함을 살필 수가 있을

것이다. 또 가히 천부의 진리가 사단의 세상에서도 의연하게 살아 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세 중론이 반드시 이 도가 무너지지 않는 것에 근거하여, 역대

영수가 오히려 중론의 소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과격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능히 조절하여, 보수를 크게 전하였으니, 마침내 오늘의 사람들로 하여금 가히

천부의 실재를 알게 하며, 또 장차 후인으로 하여금 때를 만나 그것을 행하게 하여, 능히

부도를 다시 건설하고, 사해를 통화하며, 인세가 복본하여, 진리를 명증(明證)하게 하면,

당시 석씨의 논이 과연 불행 중에서 행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편찬자: 백영해 ,박씨 대종회 >

제 13 부 : 어둠속으로

조선의 정통성을 이은 眞韓의 후예가 서라벌로 옮기면서 박혁거세를 거서간(居西干)으로

삼는다. 혁거세씨는 부도의 법에 맞춰 제시(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오행의 화가 그 주변에 미쳐 세상의 풍조가 크게

어지러워 지자 신라의 재계층 역시 따라 흔들려 여러가지로 의견이 분분하였다. 결국

박(朴),석(昔),김(金)씨로 번갈아 가면서 왕권이 바뀌어 본래의 뜻(부도의 법을 수호)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의 시달림에 지친 신라가 당과 연합을 하면서 많은 유학자나

심지어는 왕족 조차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오면서 부도의 법을 잊어 버리고 문화 침투를

당해 오행의 화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하면서

정통은 수호 하였으나 이미 이들은 오행의 화에 노출이 되어 있었기에 결론적으로

민족의 정기에 큰 손상을 가져 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영향을 받아 김부식과 같은

사대주의 학자는 그 뿌리를 잊어버리고 모화사상에 쌓여 우리의 역사를 왜곡을 시켜

후세 사람들이 제 역사를 알고자 해도 알 수가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출처: 마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