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121]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74
-조선(朝鮮) 제11대 도해(道奚) 천왕(天王)의 역사 -
[번한(番韓) 탕지산(湯池山)에 삼신단(三神壇)을 쌓다]
서기전1891년 경인년에 번한(番韓) 계전(季佺)이 도해(道奚) 천왕의 명을 받아 탕지산(湯池山)에 삼신단(三神壇)을 설치하고 관리들의 집을 이사하게 하였는데, 탕지(湯池)는 옛 안덕향(舊安德鄕)이다.
이때 탕지산에 삼신단을 설치하고 번한의 수도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탕지(湯池)를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 하고 있으니, 탕지를 수도로 삼은 이후에 삼은 안덕향은 번한(番韓)의 오덕지(五德地)인 오경(五京) 중에서 중경(中京)에 해당하는 개평(開平)이 된다. 개평은 지금의 고하(沽河)와 난하(灤河) 사이에 위치하는 당산(唐山) 부근에 있다.
번한(番韓)의 수도는 서기전2333년 단군조선 개국 당시에는 난하 동쪽에 위치한 험독(險瀆)에 두어 동경(東京)에 해당하며, 서기전2311년 순(舜)이 요(堯)임금에게 등용된 뒤 3년차가 되는 때에는 산동반도의 남쪽에 있던 낭야성(琅耶城)을 개축하여 가한성(可汗城)이라 하여 남경(南京)으로 남은 것이 된다.
또, 서기전2049년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신지(神誌) 발리(發理)가 서효사(誓效詞)를 지은 때에는 번한의 수도가 안덕향(安德鄕)인 개평(開平)으로 중경이 되며, 탕지는 구안덕향이므로 서기전2049년 이전에 수도로 삼았던 적이 있는 곳으로서 북경(北京)에 해당하는 것이 되고, 다시 서기전1891년에 탕지를 수도로 삼은 것이거나 삼신(三神) 제천단(祭天壇)을 둔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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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번한 수도인 오덕지의 하나가 되는 서경(西京)으로는 고구려 요서10성 중의 하나인 한성(韓城)이 되는 한성(汗城)이 거의 틀림없다. 서기전323년에 연(燕)나라가 왕을 칭할 때 번한의 읍차(邑借)이던 기후(箕詡)가 스스로 번조선왕이라 칭하며 보을(普乙) 천왕에게 윤허를 구할 때, 처음에는 번한성(番汗城)에 머물며 연(燕)나라에 대비하였다 하는데, 이 번한성(番汗城)이 한성(汗城)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만약 당시 번조선의 수도였던 험독(險瀆)에 머물며 연(燕)나라에 대비하였다면 굳이 번한성(番汗城)이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번한의 오경(五京)은 서기전2333년, 2311년을 거쳐 2049년 이전에 약 300년 사이에 정립(定立)된 것으로 되며, 단군조선 초기에 이미 서보(西堡)로서의 기능을 번한(番韓)이 다 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번한의 수도는 저울추(秤錘)처럼 서쪽 즉 요순(堯舜), 하은주(夏殷周)의 군사적 정세에 따라 동서남북중의 오경(五京)을 오가며 조절(調節)한 것이 된다.
번한의 수도가 되는 오덕지(五德地)의 산에 삼신단(三神壇)을 축조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린 것이 된다. 오덕지 외에 번한 관경에 속하는 산동 서쪽의 태산(泰山)에도 제천단이 있었는데, 아마도 단군왕검이 염제신농국의 후계국인 단웅국(檀雄國)의 비왕으로서 섭정을 할 때인 서기전2357년부터 서기전2333년까지 사이에 몸소 천제(天祭)를 올렸던 것이 되고, 서기전2267년 태자부루(太子扶婁)가 도산회의(塗山會議)를 주관할 때 번한(番韓) 낭야(琅耶)로 하여금 하늘에 제를 올리게 한 이후, 노(魯)나라 땅에 속하게 된 뒤에는 주(周)나라 천자(天子)가 봉선(封禪)을 행하는 등 진한(秦漢)을 거치면서 태산을 제천행사지로 숭앙한 것이 된다.
[유위자(有爲子) 선인(仙人)이 웅씨군(熊氏君)에게 설파한 도(道)]
유위자(有爲子) 선인은, 배달나라 시대인 서기전2700년경의 도학자(道學者)였던, 자부선생(紫府先生)의 학문을 이은 분이다. 단군조선의 마한(馬韓) 땅이 되는 한반도의 묘향산에 은거하던 때에 웅씨군을 방문하자 웅씨군이 도(道)에 관한 가르침을 요청하였고, 이에 유위자 선인은 웅씨군에게 도(道)를 설파(說破)하였다. 아마도 유위자 선인이 단군조선 도해(道奚) 천왕 시절의 국자랑 사부가 되기 이전의 젊은 시절이 될 것이다.
웅씨군(熊氏君)은 웅씨(熊氏)인 작은 임금(君)을 뜻하는데, 서기전2333년경 단군왕검 천왕께서 마한에 웅백다(熊伯多)를 봉한 이후 마한의 임금은 서기전1286년까지 웅씨가 이은 것이 된다. 유위자 선인은 서기전1891년경에 국자랑 사부(師傅)로 계셨으니 늦어도 서기전1950년경 출생이며 서기전1727년에 돌아가시어 최소한 약 220세이상 사신 것이 된다.
서기전1891년경 유위자 선인이 도를 말씀드린 마한의 웅씨군은 아화(阿火, 서기전1938년~서기전1864년)이다. 유위자 선인은 도(道)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道)의 큰 원천은 삼신(三神)에게서 나왔으니, 도는 이미 상대도 없고 명칭도 없고, 상대가 있으면 도가 아니며, 명칭이 있으면 또한 도가 아닙니다. 도는 무상(無常)의 도이며 때에 따르니 이에 도가 귀한 바입니다. 칭하되 무상(無常)의 칭이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니 이에 칭이 실재(實在)하는 바이며, 그 밖이 크지 않고 안이 작지 않으니, 도는 이에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하늘에는 틀(機)이 있으니 내 마음의 틀에서 보고, 땅에는 모습이 있으니 내 몸의 모습에서 보며, 사물에는 다스림이 있으니 내 기(氣)의 다스림에서 봄이니, 이에 하나를 잡아서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아서 하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신(一神)이 내리는 바 이는 사물의 이치이며 이에 천일(天一)이 물을 낳는 도리입니다. 성통광명(性通光明)은 삶의 이치이며 이에 지이(地二)가 불을 낳는 도리입니다. 재세이화(在世理化)는 마음의 이치이며 이에 인삼(人三)이 나무를 낳는 도리입니다.
대개 대시(大始)에 삼신(三神)이 삼계(三界)를 만들어 물로써 하늘을 본 따고 불로써 땅을 본 따고 나무로써 사람을 본 땄으니, 무릇 나무라는 것은 땅에 뿌리를 두고 하늘로 나오는 것은 또한 처음 사람이 땅에 서서 나와 능히 하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時有爲子 隱於妙香山 其學出於紫府先生也 過見熊氏君 君請爲我陳道乎 對曰 道之大原出乎三神也 道旣無對無稱 有對非道 有稱亦非道也 道無常道 而隨時 乃道之所貴也 稱無常稱 而安民乃稱之所實也 其無外之大 無內之小 道乃無所不含也 天之有機 見於吾心之機 地之有象 見於吾身之象 物之有宰 見於吾氣之宰也 乃執一而含三 會三而歸一也 一神所降者 是物理也 乃天一生水之道也 性通光明者 是生理也 乃地二生火之道也 在世理化者 是心理也 乃人三生木之道也 盖 大始三神造三界 水以象天 火以象地 木以象人 夫 木者柢地而 出乎天 亦始人立地而出 能代天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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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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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이세신궁(伊勢神宮) 원시한글 축문 국내 최초 해독 및 역사적 해석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 국내 최초 역사적 해석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 해독 검증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