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130]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83
![]() | 2011년 11월 09일 (수) 09:10:30 | 천산(天山) ![]() | ![]() |
-조선(朝鮮) 제13대 흘달(屹達) 천왕(天王)의 역사 -
[천지화랑(天指花郞)-국자랑(國子郞)]
서기전1763년 무술년(戊戌年)에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었다. 미혼(未婚)의 자제(子弟)로 하여금 읽고, 활쏘는 것을 익히게 하며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부르게 하였다. 국자랑들은 돌아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를 꽂았으므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불렀다.
소도(蘇塗)는 국선(國仙)이 하늘에 제(祭)를 올리는 제천단(祭天壇)이 있는 신성지역(神聖地域)이다. 국선(國仙)은 나라에서 뽑은 선인(仙人) 즉 종(倧)으로서 국자랑(國子郞)의 스승(師) 즉 국자사부(國子師傅)가 된다. 솟대로 소도(蘇塗)임을 표시하였는데, 솟대의 “소“ 또는 ”솟“이 곧 소도(蘇塗)와 같은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 된다. 즉 소도(蘇塗)는 ”소“ 또는 ”솟“과 같은 소리를 한자(漢字)로 나타낸 말이며, 솟대의 대는 긴 막대기를 가리키는 바, 결국 솟대는 ”소도(蘇塗)의 대”로서 소도임을 표시한 긴 나무막대가 된다.
솟대의 “소“는 소(巢)와 직결된다. 즉 소(巢)라는 글자가 원래 나무 꼭대기에 있는 새집처럼 만든 망루(望樓)라는 뜻을 가지는 바, 신성지역을 지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실재 역사상 소(巢)는 서기전 7197년 이전의 파미르고원에 있었던 마고성(麻姑城) 시대에 수찰(守察)을 하던 망루였는데, 고탑(高塔) 모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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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 | ||
한편, 궁(穹)은 소(巢)와는 다른 형태의 제천단(祭天壇)으로서 계단식으로 넓게 쌓아올려 꼭대기에 제단(祭壇)을 만든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후대에는 소(巢)가 탑으로 변형되어 기도하는 장소가 되고, 궁(穹)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천단의 역할을 한 것이 된다. 지리산 노고단이나 마이산의 돌탑 등은 궁(穹)과 소(巢)가 어우러진 모양이 된다.
천지화(天指花)는 하늘을 가리키는 꽃이라는 말로서, 밝은 하늘 꽃인 한화(桓花)이자 하루하루 끝없이 피고지는 무궁화(無窮花)를 가리키는데, 제단(祭壇)의 꽃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도 무궁화를 샤론의 장미라고 하여 제단의 꽃임을 나타내고 있다. 국자랑들이 머리에 천지화 즉 무궁화를 꽂고 다녀 천지화랑이라 한 것이다. 국자랑(國子郞)은 나라에서 뽑은 미혼의 자제들이며, 주로 황실(皇室)이나 삼사오가(三師五加)를 비롯한 지도층의 자제들이 될 것이다.
한편, 지방 고을에서 선출된 선랑(仙郞) 중 제천(祭天)을 담당하고 계율(戒律)을 맡은 책임자를 전(佺)이라고 하며, 나라 전체에서 선출 즉 나라의 부르을 받으면 종(倧)이 되어 국자랑(천지화랑, 國仙花郞)들의 스승이 되는데 통상 선인(仙人)이라 부르는 것이다.
고구려시대에는 선인도랑(仙人徒郞) 중 제천의식과 계율을 담당한 자를 참전(參佺)이라 하고, 무예를 관장한 자를 조의(皁衣 : 검은 옷)라 불렀는데, 조의는 오늘날 흑띠(黑帶)를 매는 자로서 무예사범(武術師範)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오성취루(五星聚婁)와 황학(黃鶴)]
서기전1733년 무진년(戊辰年)에 오성(五星)이 누성(婁星)에 모여들고 누런 학(鶴)이 날아와 뜰의 소나무에 깃들었다.
오성(五星)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오행성(五行星)을 가리키는데, 누성(婁星)에 모여들었다라는 것은 이들 오행성이 누성 부근에 모여들었다는 것이 된다. 누성(婁星)은 28수(宿) 중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별이 된다. 오성취루 현상은 천문현상인데, 이러한 현상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되어 과학적으로 계산하게 된다면 연대기적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한편, 오성취루를 단순히 오행성(五行星)이 함께 모이는 현상이라 풀이하기도 한다.
황학(黃鶴)이 궁궐 뜰에 있는 소나무에 날아와 살았다는 것은 비유적인 기록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실기록이 된다.
[유위자(有爲子) 선인(仙人)이 돌아가시다]
서기전1727년 갑술년(甲戌年) 9월에 유위자(有爲子) 선인(仙人)이 돌아가셨다. 흘달 천왕께서 이를 슬퍼하며 통곡하고 국장(國葬)으로 장사를 치렀다.
유위자 선인은 자부선인의 학문을 계승한 분으로 서기전1950년경 이전에 출생하여 서기전1727년에 돌아가시니 최소한 230세 이상 사신 것이 된다. 단군왕검 천제께서는 130세를 사셨고, 부루 천왕께서는 약158세를 사셨으며, 단군왕검을 보필한 유호씨(有戶氏)는 120세를 산 순임금의 아버지로서 단군왕검보다 약100세가 많아 서기전2470년경 출생하였으며 서기전2195년경에 돌아가시니 약270세 이상을 산 것이 된다. 유호씨와 유위자 선인은 특별한 도인(道人)임에 틀림없는 것이 된다. 한편, 서기23년생인 김수로왕은 서기199년에 돌아가시어 177세를 살았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흘달 천왕 붕어와 사면]
서기전1722년 기묘년(己卯年)에 흘달 천왕께서 붕하시니 백성들 모두 먹지 않았으며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 명을 내려 죄수들을 석방하고 생명체를 죽이는 것을 금하고 놓아주도록 하였고, 해를 넘겨 장사를 지냈다. 우가(牛加) 고불(古弗)이 즉위하였다.
흘달 천왕이 성스런 임금이었다는 것이 나타나는데, 부모가 돌아가신 듯 백성들이 모두 먹지도 않고 슬퍼하였다는 것이며, 이에 죄수들을 사면하고 살생(殺生)을 금하여 방생(放生)토록 하였던 것이고, 이듬해에 장사를 치렀다는 것이다.
이어 즉위한 고불 천왕은 우가(牛加)였다라고 하므로 아마도 태자(太子)가 아닌 제왕(帝王)의 재목(材木)으로서 차자(次子)나 삼자(三子) 등 다른 아들이 될 것이다. 다만, 태자가 우가(牛加)의 직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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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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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이세신궁(伊勢神宮) 원시한글 축문 국내 최초 해독 및 역사적 해석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 국내 최초 역사적 해석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 해독 검증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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