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133]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86

양해천 2018. 1. 19. 09:44

[홍익인간 133]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86

2011년 11월 15일 (화) 08:57:33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조선(朝鮮) 제15대 대음(代音, 후흘달後屹達) 천왕(天王)의 역사 - 

제13대 천왕인 흘달(屹達)을 대음달(代音達)이라고도 하며, 제15대 대음(代音)을 후흘달(後屹達)이라고도 한다. 즉 제13대와 제15대 천왕이 흘달(屹達)로서 대음달(代音達)이 되는데, 흘달의 흘(屹)은 “클(大)”을 나타낸 글자가 되고, 대음(代音)은 대음(大音)으로서 “큼(大)”을 나타낸 글자가 되는 것이다. 

[은(殷)나라 소갑(小甲)이 화친을 구하다] 

서기전1661년 경진년(庚辰年)에 은(殷)나라 왕 소갑(小甲)이 사신을 보내와 화친(和親)을 구하였다. 

은나라 왕 소갑(小甲)은 서기전1666년부터 서기전1650년까지 17년을 재위한 제7대 왕이다. 서기전1661년에 소갑이 화친을 청하였다는 것에서 이 이전에 소갑이 군사를 움직여 단군조선의 영역을 침범하다 패퇴당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기전1766년에 건국된 은(殷)나라는 단군조선의 군사적 원조로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되어 단군조선의 천자국(天子國)으로서 출발하였으나, 이후 하(夏)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진정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펼치지 못하고,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는 주변국과의 전쟁을 일삼게 되었다. 



실제로 은나라 시조 탕도 왕이 된 후 곧바로 주변의 세력인 이족(夷族)을 정벌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생존을 넘어서서 영토확장을 꾀하는 전쟁을 수시로 벌였던 것이 된다. 

즉, 은나라도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에 속한 천자국이 아닌 멀리 떨어진 지방 즉 천하(天下)의 천자국으로서 주변의 단군조선 제후국들과 생존과 정벌을 위한 전쟁을 벌인 것이며, 심지어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의 서쪽 변경을 침범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 것이 된다.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은나라의 침범행위는 서기전1291년경에 은나라 무정(武丁)이 귀방(鬼方)을 정벌하고 색도(索度)와 영지(永支)를 침공한 것을 들 수 있다. 무정은 서기전1325년부터 서기전1267년까지 59년 동안 재위한 은나라의 제22대 왕이다. 

귀방(鬼方)은 서남방(西南方)이 되는데, 이는 단군조선에서 볼 때의 서남방이며 은나라로 볼 때는 북방(北方)이 되고, 영지(永支)는 단군조선 번한 지역에 있던 요중(遼中) 12성(城)의 하나로서 지금의 천진(天津) 서북쪽이자 옛날의 유수(濡水)가 되는 지금의 탁수(涿水) 상류지역에 위치하였다. 

한편,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도 귀방(鬼方)이라는 것이 보이는데, 이는 신방(神方)이 되는 북방(北方)을 낮춘 것이 되는데, 보통은 서남방이 되는 것이다. 

색도는 영지 부근이며, 곧 귀방은 색도와 영지의 서방으로서 은나라의 북방이 되고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서남방이 되어 지금의 태원(太原) 북쪽으로서 태항산(太行山) 서쪽 지역이 되는 것이다. 서기전1122년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서자 은나라 왕족 기자가 패잔병 5,000명을 이끌고 정착한 곳이 지금의 태원 북쪽이 되는 서화(西華)라고 불린 땅으로서 고죽국(孤竹國)의 서쪽이자 단군조선의 귀방(鬼方)에 속한 지역이 되는 것이다. 

[80분의 1 세율의 조세법] 

서기전1661년에 80분의 1의 세제(稅制)로 고쳤다. 

단군조선의 세법은 백성들을 위한 세율로 시행하였다. 즉 정전법(井田法)에 따라 9분의 1 즉 약11%의 세율로 세금을 내다가 약 300년이 흐른 서기전1993년에 20분의 1 즉 5% 세율의 세법을 시행하였으며, 다시 300년이 흐른 서기전1661년에 이르러 80분의 1 즉 1.25%의 세율의 세법을 시행한 것이 된다. 

현재 부가가치세가 10분의 1 세율이 적용되고 있으며 소득세가 약10%에서 35%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80분의 1 세율은 백성들의 생활을 위주로 한 파격적인 세법이 된다. 

[홍수(洪水)와 구휼(救恤)] 

서기전1660년 신사년(辛巳年)에 홍수가 크게 일어나 민가(民家)에 피해가 많았다. 천왕께서 매우 불쌍히 여기고 구휼하여 곡식을 창해사수(蒼海蛇水)의 땅으로 옮기어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이 당시 이미 고구려의 진대법(賑貸法) 이상의 무상(無償)으로 한 구휼법(救恤法)이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서기전6200년경 이전에 정립된 것이 되는 한배달조선의 3대경전의 하나인 참전계경(參佺戒經)에는 천재지변(天災地變)은 무극(無極)의 원리에 따라 순환(循環)함을 가르치고 있는 바, 이러한 재해를 대비하고 구휼하는 제도를 이미 정립해 둔 것이 된다. 

한배달조선 관할영역



창해사수(蒼海蛇水)의 땅이 어디인지는 불명이나, 창해(蒼海)는 산동지역의 동쪽이나 북쪽 바다가 되어 지금의 발해만이 되며 사수(蛇水)는 강이름으로서 산동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대홍수는 산동지역의 서남방 쪽에서 발생한 것이 되고 곡식을 산동지역의 북쪽 발해만 가까이에 있는 사수(蛇水) 지역으로 옮긴 것이 된다. 

[양운국(養雲國)과 수밀이국(須密爾國)의 조공(朝貢)] 

서기전1660년 겨울 10월에 양운국(養雲國)과 수밀이국(須密爾國)의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양운국과 수밀이국은 서기전3897년 이전에 있었던 한국(桓國)의 12분국(分國)에 속하는 나라로서 배달나라 시대를 거쳐 단군조선 시대까지 존속한 것이 된다. 

양운국은 지금의 바이칼호 서쪽지역에 위치한 나라가 되고, 수밀이국은 송화강 북쪽과 지금의 아무르강이 되는 흑룡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나라로서, 각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북쪽이 되는 시베리아 지역에 있던 나라이다. 수밀이국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숙신국의 북쪽에 위치하며, 양운국은 지금의 몽골의 북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수밀이국과 양운국 사이에 비리국(卑離國)이 위치하는데 지금의 러시아 브리야트 공화국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이 된다. 

서기전7197년에 시작된 한국(桓國)의 분국이 되는 12한국(桓國)은 대부분 황하북쪽에 위치하였으며, 한국(桓國)의 중심지는 단군왕검이 수도를 정한 송화강 아사달을 중앙으로 둔 백두산과 흑룡강 사이 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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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이세신궁(伊勢神宮) 원시한글 축문 국내 최초 해독 및 역사적 해석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 국내 최초 역사적 해석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 검증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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