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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07]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3

양해천 2018. 1. 22. 09:39

[홍익인간 207]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3

2012년 01월 25일 (수) 11:04:33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단군조선(檀君朝鮮)과 당요(唐堯) 1- 

일부 기록에서는 단군왕검이 요임금과 병립(竝立)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단군왕검 시대의 역사를 일부만 본 것이 된다. 

단군왕검은 서기전2357년부터 배달나라의 제후국 즉 천자국(天子國)이던 단웅국(檀熊國:웅씨국)의 비왕(裨王)으로 섭정하였으며, 같은 해에 요(堯)임금은 배달나라 제후국 즉 천자국(天子國)이던 유웅국(有熊國:웅씨국)의 천자이자 이복형(異腹兄)이던 제지(帝摯)를 쳐서 멸하고 천자자리를 뺏었다. 

그런데, 요임금은 서기전2357년에 천자가 되어서는 분수(汾水) 근처의 평양(平陽)에 도읍하여 당(唐)을 세우고, 오행망설(五行妄說)을 주창하여 독단(獨壇)을 차려 제왕(帝王)이라 참칭하며, 마음대로 구주를 설치하고 이웃나라를 함부로 침략하는 전쟁을 일삼았다. 서기전2334년에 당요(唐堯)가 단군왕검 성제(聖帝)께서 순방정치를 하던 중에 단웅국(檀熊國)을 기습침략하여 왕성을 점령하니, 이때 단웅국 천자인 홍제(洪帝)께서 붕하시어, 단군왕검은 무리 800을 이끌고 동북의 아사달로 급히 이동하여 나라를 재정비하였던 것이다. 

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단군왕검께서 구족(九族,九夷)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어 개국하여 조선(朝鮮)이라 하니, 요(堯)의 당(唐)나라와 병립(竝立)한 것이 된다. 그런데 10년이 되는 해인 서기전2324년에 당요가 단군조선의 사자(使者) 유호씨(有戶氏)가 이끄는 토벌대(討伐隊)에 굴복하니 단군조선의 제후인 공식적 천자(天子)가 되었는 바, 이에 단군조선과 당나라는 병립이 아닌 상국(上國)인 천제국(天帝國)과 지방 천하 제후국인 천자국(天子국)으로 질서가 잡혀졌던 것이 된다. 

1. 요(堯)의 출현 

요(堯)는 서기전2401년생으로서 황제헌원의 나라가 되는 (유)웅국의 천자(天子)이던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서기전2436년~서기전2366년)의 아들이고, 이름을 방훈(放勳)이라고 하며, 성은 이기(伊祁)이다. 

요(堯)는 황제헌원의 후손이 되므로 원래 희(姬)성이 되지만, 스스로 성(姓)을 바꾸어 이기(伊祁)라 한 것이다. 요임금을 풍이(風夷)의 후손이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이기(伊祁)는 태호복희씨의 후손인 모계성(母系姓)을 가리키는 것이 될 것이다. 

요는 서기전2382년경 20세경에 제곡고신씨에 의하여 도(陶)에 봉해져 도요(陶堯)라고 불리는 것이며, 서기전2357년에 군사를 일으켜 제지(帝摯)를 쳐서 멸하여 당(唐)을 세우니 당요(唐堯)라 하는 것이고, 통칭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라고 불리는 것이 된다. 

2. 도요(陶堯)가 천자(天子) 제지(帝摯)를 치다 

요(堯)는 서기전2357년에 당(唐)을 세우기 이전에는 도(陶)에 봉해졌던 것이며, 서기전2357년에 이복형(異腹兄)이던 제지(帝摯)를 쳐서 멸하고 그 천자 자리를 뺏었다. 

제지(帝摯)는 서기전2366년에 제곡고신씨의 아들로서 대를 이어 천자가 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요(堯)가 불만 또는 권력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된다. 결국 천자에 있기를 9년 되는 해인 서기전2357년에 요의 침공을 받고 천자자리를 내 준 것이다. 

제지가 수도로 삼은 곳은 서기전2436년에 천자가 되었던 제곡고신씨가 수도로 삼았던 박(亳)이라는 땅으로서 지금은 은허(殷墟)라고도 불리는 안양(安陽) 지역이 된다. 요가 수도로 삼은 곳은 박의 서쪽이 되는 분수(汾水) 지역의 평양(平陽)이라는 곳이다. 

3. 당요(唐堯)의 반역행위 

요(堯)는 제지(帝摯)를 멸망시키고 당(唐)나라를 세워 제왕(帝王)을 참칭하고 구주(九州)를 마음대로 설치하고 전쟁을 일삼는 등 배달나라의 법질서를 어지럽혀 홍익인간 실천윤리에 어긋나는 반역행위를 저질렀다. 

1) 제왕참칭(帝王僭稱) - 독단(獨壇)을 차리다 

요(堯)는 천자로 봉해지거나 선양받지 않고 천자 자리를 찬탈하였다. 즉 제지(帝摯)를 공격하여 멸하고서 그 천자 자리를 뺏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요는 스스로 제왕(帝王)이라 참칭(僭稱)한 것이다. 참칭이란 허락없이 함부로 칭한다는 의미이다. 

독단(獨壇)이란 독립한 제단(祭壇)이라는 뜻으로서, 독단을 차린다는 것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을 스스로 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즉 요는 당(唐)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하늘에 제를 올리는 의식을 치른 것이다. 이는 허락없이 함부로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이 되어 대역(大逆)의 죄에 해당한다. 

여기서, 요임금은 제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는 단군(壇君)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배달나라 임금이라는 단군(檀君)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단군(檀君)은 배달나라의 한웅천왕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한웅천왕의 아들로서 천군(天君)이므로 당연히 배달나라의 작은 임금이 되는 단군(檀君)으로서 단군(壇君)이기도 하지만, 천자 자리를 빼앗은 천자(天子)에 불과한 요(堯)는 절대 단군(檀君)이 아닌 것이며, 단지 제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는 단군(壇君)이라고는 불릴 수 있을 뿐이다. 

2) 오행망설(五行妄說) 

역사상 요(堯)임금은 오행(五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스스로 오중(五中)의 왕이라 칭하였다.. 

도요(陶堯)는 배달나라 시대 서보(西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웠는데, 수(數)에 밝지 못하였다. 즉, 서기전2382년경에 배달나라 서보(西堡)의 간(干)은 소호국(少皓國)의 천자(天子)이던 백제(白帝)가 되는데, 아마도 오행(五行)의 원리와 수리(數理)에 대하여 수학하였던 것이 된다. 

도요(陶堯)는 수리(數理)에 밝지 못하여, 9수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여 오해하고서, 오행(五行)의 법을 임의로 만들어 제왕(帝王)의 도(道)를 주창(主唱)한 것이 된다. 즉 오행망설(五行妄說)을 만들었던 것이 되는데, 이에 대하여 허유(許由)와 소부(巢夫) 등이 요(堯)를 크게 꾸짖고 거절하였던 것이다. 

요가 주창한 오행망설(五行妄說)의 요점은, 스스로 5중(五中)에 사는 제(帝)라 함부로 주창한 것이 된다. 즉, 동서남북중에서 중(中)의 수가 5(五)이며 황극(皇極)이 되지만, 중앙의 5(五)가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며, 5는 교차이기도 하고 또 5와 7의 고리(環)에 이르면 중앙이 5가 아니라 7이며, 천지인의 수로 배정하면 4가 중앙의 숫자가 되기도 하는 바, 요가 주창한 오행의 법은 원리에 맞지 아니한 것이 되어 스스로 정한 것에 불과한 망설(妄說)이 되는 것이다. 

중앙의 자리를 황극(皇極)이라 하는데, 상국(上國) 또는 천국(天國)에서는 천제(天帝), 천황(天皇)의 자리이며, 지방의 천하 제후국에서는 천후(天侯), 천자(天子)의 자리로서 진정한 왕도(王道)를 행하여야 하는 자리이므로, 스스로 제왕(帝王)을 칭한다고 하여 황극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천제(天帝)나 천황(天皇)으로부터 봉함을 받거나 진정 천자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요(堯)는 당(唐)을 세우자 마자 마음대로 구주(九州)를 설치하고 스스로 제왕(帝王)을 칭하였으나 함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땅을 빼앗는 악행을 저질렀는 바, 진정한 왕도(王道)를 행하는 천자(天子)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 되고, 서기전2324년에 천제국(天帝國)인 단군조선(檀君朝鮮)에 굴복한 후 공식적으로 하늘나라(天國), 상국(上國)의 제후인 천자(天子)로 인정받은 것이 된다. 

3) 역제반란(曆制反亂) - 배달나라 역법 폐기 및 음력(陰曆) 전용 

요(堯)는 서기전2357년에 당(唐)을 세우고서 배달나라의 역법을 폐하고, 명협(蓂莢)이라는 미물(微物)에 의지하여 음력(陰曆)을 전용하였다. 

당시 배달나라의 역법은 태양태음력(太陽太陰曆)이 되는데, 1일(日) 12시(時), 1주(週) 7일(日), 1기(期) 4요(曜) 28일(日), 1사(祀) 13기(期) 52요복(曜服) 365일(日)에, 4년마다 1일을 더하여 366일이 되는 역법이다. 

요(堯)가 택한 음력은, 이미 배달나라 역법에 내포되어 있으나, 특히 명협(蓂莢)이라는 풀(草)을 내세워 백성들을 미혹하게 유도하였던 것이며, 작은 달은 29일 큰 달은 30일로 하는 태음력(太陰曆)을 가리킨다. 

달의 삭망(朔望) 주기는 약 29.53일이 되는데, 작은달 6개월은 29일로, 큰달 6개월은 30일로 하여 12달은 354일이 되어, 태양력의 1년 365일 또는 366일과는 11일 또는 12일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리하여 달의 삭망 주기만을 가지고는 4계절의 변화와 일치하지 아니하므로 윤달(潤月)을 주기적으로 넣어 계절을 맞추는 것이 된다. 윤달은 19년에 7회를 넣어 태양력의 주기와 일치시키게 된다. 

요가 배달나라 역법을 폐하고 스스로 명협의 풀에 의지하여 창안하였다는 음력을 사용하였으나, 기본적으로는 배달나라의 28수와 1년 366일을 원칙으로 한 태양태음력을 사용한 것이 되며, 단지 스스로 제왕을 참칭(僭稱)하면서 음력 역법을 제정한 것이 되는 것이다. 역법제정권(曆法制定權)은 하늘을 대신하는 제왕(帝王)의 권한으로서 배달나라 시대에는 배달나라 천황(天皇)의 권한임에도, 요(堯)가 함부로 제왕을 참칭하면서 역법을 마음대로 제작한 것이 된다. 

요(堯)가 태양력을 배척하고 태음력(太陰曆)을 사용하였다는 실제적인 예가 역사적 신화로 기록되고 있기도 한데, 예(羿)라는 자가 10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리다 9개를 맞추니 까마귀 9마리로 변하였으며, 다 떨어뜨리면 세상이 암흑이 될까하여 남겨두었다라는 것에서, 10은 하늘을 상징하는 숫자이며, 9는 인간세상을 상징하고, 태양을 떨어뜨렸다는 것은 역법으로 볼 때는 태양력을 배척하고 음력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 되며, 까마귀는 태양의 원천으로서의 태양신(太陽神)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세발까마귀)와 연관되는 것이다. 다만, 삼족오는 그냥 검은 새인 까마귀가 아니라 소위 불사조(不死鳥)인 검은 봉황(鳳凰)이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요임금이 태양태음력을 배척하고 태음력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라고 보이며, 이후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역법은 대동소이하게 되는데, 이는 서기전2267년에 단군조선의 태자부루께서 요순(堯舜)의 대홍수를 다스리기 위하여 도산회의(塗山會議)를 주관하러 가던 중, 순(舜)임금으로부터 치수에 관한 경과보고를 받으면서 이때 시월(時月)을 협의하여 맞추었던 것으로 연유한 것이 된다. 여기에 대한 하나의 증거로는 순임금 시대에 있었다 선기옥형(璇璣玉衡)이 바로 단군조선이 순임금에게 전수(傳授)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4) 구주(九州) 설치 

요(堯)는 서기전2357년에 군사를 일으켜 제지(帝摯)를 쳐서 멸망시키고 당(唐)나라를 세운 후, 계속하여 전쟁을 일삼아 이웃나라를 점령하고서 마음대로 땅을 나누어 구주(九州)를 설치하였다. 

구주는 기주(冀州), 연주(兗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예주(豫州), 형주(荊州), 옹주(雍州), 양주(梁州)이다. 

중앙에 해당하는 예주를 기준으로 하면, 기주는 태원(太原)을 포함하는 북쪽, 연주는 북동쪽, 청주는 태산을 중심으로 동쪽, 서주는 남동쪽, 양주(楊州)는 남쪽, 예주는 중앙, 형주는 남서쪽, 옹주는 북서쪽, 양주(梁州)는 서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그리하여 대체적으로 서안(西安)~태원(太原)~태산(泰山)~형주(荊州)를 중심으로 하여 큰 원을 그리는 모양이 된다. 그 외의 지역은 당(唐)을 제외한 배달나라 구족(九族)의 고유(固有) 지역이 된다. 

서기전2284년에 순이 천자(天子) 요(堯)를 유폐시키고 천자 자리를 선양받아 천자가 되어, 요의 9주 중에서 기주(冀州)를 분리하여 병주(幷州)와 유주(幽州)를 설치하고, 연주(兗州)를 분리하여 영주(營州)를 설치함으로써 추가로 3주를 설치하여 모두 12주(州)를 두었다. 

5) 단웅국(檀熊國) 기습침략 

요(堯)는 서기전2357년에 당을 세워 제왕을 참칭 한 후,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점령하고서 함부로 9주를 설치하게 되었는데, 서기전2349년, 서기전2335년, 서기전2334년의 3차례에 걸쳐 단웅국(檀熊國)을 침공하였다. 

서기전2334년에는 단웅국의 비왕으로 섭정하시던 단군왕검 성제(聖帝)께서 측근을 이끌고 왕성(王城)을 나가 순방(巡訪)을 하던 차에, 당요(唐堯)가 군사를 이끌고 기습침략(奇襲侵略)을 하였는데, 이때 단웅국의 왕성을 점령하여 버렸고, 당시 왕(천자)이던 홍제(洪帝:서기전2399년~서기전2334년)께서 붕하시니, 이에 단군왕검께서는 이 비보를 들으시고 급히 서둘러 측근의 무리800을 이끌고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하였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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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 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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