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08]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4
![]() | 2012년 01월 26일 (목) 10:04:46 | 천산(天山) ![]() | ![]() |
-단군조선(檀君朝鮮)과 당요(唐堯) 2-
4. 단군왕검이 무리를 이끌고 동북으로 이동하다 : 아리랑의 역사
당요(唐堯)가 일으킨 전란(戰亂)으로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는 측근의 무리 800을 이끌고 단웅국(檀熊國)의 수도이던 공상(空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000리 이상 떨어진 송화강(松花江)의 아사달(阿斯達)로 향하였다. 이때 수 많은 강과 수 많은 고개를 넘었는데, 그동안 덕치(德治)를 베풀던 단군왕검께서 요(堯)를 피하여 동북으로 이주한다는 소문을 들은 수 많은 백성들이 뒤를 따랐던 것이 된다.
그러나, 많고 많은 큰 강과 큰 고개를 넘으면서 뒤 따르던 백성들이 모두 갈 수는 없었다. 이에 큰 고개를 넘다 힘이 들어 뒤에 처진 어떤 백성이 단군왕검을 그리며 노래를 불렀던 것이 되는데, 이 노래가 곧 작자미상의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되는 것이고, 단군조선이 사실상 망한 서기전238년경 이후로 전란(戰亂)이나 변란(變亂)이 있을 때마다 북중국 지역에서 동쪽으로 이주하던 백성들에 의하여 한반도와 만주로 전파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게 된 것으로 된다.
아리랑이라는 말의 아리는 크다(大)라는 의미를 가지고, 랑은 고개라는 말인 령(嶺)이 모음변화를 거치면서 생긴 발음이 된다. 즉 아리랑은 아리령(阿里嶺)으로서 말 그대로 큰 고개 또는 높은 고개를 뜻하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지방마다 특유의 수 많은 아리랑이 있지만 반드시 고개라는 단어나 고개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가 들어있는 것이 된다. 실제로 지금의 영정하 동쪽으로 난하 서쪽 사이에 장령(長岺:長嶺)이라는 산고개가 있기도 하다.
5. 단군조선 개국과 당요(唐堯) 토벌
단군왕검은, 한편으로는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의 후계국인 단웅국(檀熊國)의 정통성을 이으면서, 배달나라의 한웅 천왕(天王)의 아들인 천군(天君)으로서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전수받아 천왕의 대를 이음으로써 배달나라의 정통성(正統性)을 동시에 이은 것이 되는데, 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배달나라 구족(九族)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었으며, 아사달(阿斯達)을 수도로 정하여 조선(朝鮮)을 개국하였던 것이다.
단군왕검은 조선(朝鮮)의 제1대 천왕으로 즉위하였으며, 태자부루(太子扶婁)를 진한(眞韓)으로 봉하여 섭정(攝政)하게 함으로써 천제(天帝)로 받들어 졌던 것이 되는데, 태자부루는 천제자(天帝子)로서 천왕격(天王格)의 섭정(攝政) 비왕(裨王)인 것이다.
단군왕검 천제(天帝)는 10년간 나라의 힘을 축적하였다. 드디어 서기전2324년에 배달나라 말기에 전란(戰亂)의 주범이었던 요(堯)를 토벌하기로 하여 유호씨(有戶氏)를 사자(使者)로 삼아 처리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유호씨는 환부(鰥夫), 권사(權士) 등 100여인과 수천의 군사를 이끌고서 당요(唐堯)를 치러 출병하였다.
6. 요의 굴복과 장당경
유호씨가 황하 물가에 이르렀을 때, 당요(唐堯)는 정세(情勢)를 알아차리고 무조건 항복하였다. 당요(唐堯)는 유호씨를 하빈(河濱)에서 영접하여 거처를 마련해 드렸으며, 이리하여 전쟁없이 당요(唐堯)는 천국(天國)의 제후인 정식 천자(天子)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이에 유호씨는 당요의 소행을 감시감독하면서, 개사원(蓋斯原)에 장당경(藏唐京)을 설치하여 정기적으로 단군왕검 천제께 예(禮)를 올리도록 조치하였다. 장당경이란 당요를 장치(藏置)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장당경은 서기전425년 이후 단군조선의 말기에는 수도가 되었으며, 전기와 후기에는 이궁(離宮)의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7. 요임금의 태평시대가 아닌 단군왕검의 태평시대
서기전2324년부터 단군조선의 권선징악(勸善懲惡) 정책으로 요(堯)임금이 굴복함으로써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두고 고대중국의 역사기록에서는 요임금의 태평시대라 하는 바, 요임금이 자발적으로 만든 평화시대가 아니라 단군조선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책으로 인한 태평시대인 것이다.
즉, 소위 요순(堯舜) 태평시대는 중원천하(中原天下)의 태평시대로서 과장된 것에 불과하며, 그 배경에는 천자(天子)인 요순(堯舜)의 상제(上帝)가 되는, 상국(上國)의 임금인 단군왕검 천제(天帝)께서 계셨던 것이며, 단군왕검 천제(天帝)에 의하여 홍익인간 세상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8. 요의 선양과 허유(許由)-소부(巢夫)의 일화
요임금의 태평시대가 요임금 스스로 행한 진정한 왕도정치(王道政治)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허유와 소부의 일화에서 나타난다.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요임금이 태평시대에 허유에게 임금자리를 선양하고자 권하였다 하고, 이에 대하여 허유가 요임금의 말씀이 황송하여 공손하게 사양한 것으로, 또 소부는 허유의 말을 듣고 상류로 소를 몰고 가서 물을 먹인 것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역사적 사실의 윤색이자 왜곡날조에 불과하다.
즉, 실제로는 위와 같은 당요(唐堯)의 권유에 대하여, 허유는 요임금의 말이 황당무계(荒唐無稽)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말이 안되는 소리이므로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즉시 귀를 물에 씻었던 것인데, 이는 요임금이 왕도(王道)를 행할 임금의 자격이 없음을 반박한 것이 된다.
이때, 허유가 귀를 씻는 강 아래에서 소를 몰고 물을 먹이려 하던 소부(巢夫)가 허유에게 귀를 씻는 이유를 물으니, 이에 허유가 당요(唐堯)가 자신에게 하였던 말을 알려주자, 이때 소부는 허유가 씻었던 물이 더러워서 소에게 먹이지 않고 허유가 있던 곳보다 더 상류쪽으로 소를 몰고 가서 소에게 물을 먹였던 것이다. 이는 소부도 요임금의 망설을 명예훼손(名譽毁損)이며 무례(無禮)한 망발이었다고 무시한 것이 된다.
당요(唐堯)는 오행망설(五行妄說)을 늘어놓고 제왕(帝王)을 함부로 주창한 자로서, 허유(許由)와 소부(巢夫) 등 당시의 현자(賢者)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인물이다. 즉 전란(戰亂)의 주범으로서 왕도(王道)를 행할 자격이 없는 자가 함부로 남의 땅을 침략하여 땅을 그어 백성을 다스린답시고 천자(天子) 행세를 하니 꼴값하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 된다
9. 요임금이 순(舜)을 유혹하다
여하튼, 당요(唐堯)는 속마음은 어떠하였는지 모르지만 서기전2324년에 단군조선의 사자(使者)였던 유호씨(有戶氏)에게 굴복하여 진정 천자로 인정받았던 것이 되는데, 당요는 이를 기회(機會)로 삼아 순(舜)을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순(舜)은 20세였으며 단군조선의 사자였던 유호씨의 장자(長子)로서 환부(鰥夫)의 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환부는 배달나라 시대부터 내려온 율법(律法)을 조절하던 직책이다.
순의 아버지 유호씨는 순에게 수차례에 걸쳐 경고를 하였다. 즉, 당요(唐堯)의 소행을 감시감독하던 단군조선의 사자로서, 당요(唐堯)의 꿍꿍이 속을 알지 못하였고 겉으로 굴복한 요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순은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며, 결국 아버지의 경고를 듣지 않고 당요에게 협조하였던 것이 된다.
10. 요임금의 순 등용과 단군조선의 번한 요중 12성
서기전2324년 당시에는 순(舜)이 아버지 유호씨의 명(命)을 잘 따르던 효자였으며, 당요(唐堯)가 접근 한 뒤에도 겉으로 보기에는 순(舜)이 효자였다.
당요는 10년간 순에게 공을 들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당요(唐堯)는 결국 서기전2314년에 나이 30세이던 순(舜)을 등용하였다. 이때 순은 아버지 유호씨를 떠나 당요에게 가버렸던 것이다. 이에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순이 불효자로 적히는 것이다. 실제로는 아버지 유호씨의 명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불효자(不孝子)이며, 또한 단군조선의 신하(臣下)로서 천사(天使)인 유호씨의 명을 거역하였으므로 불충신(不忠臣)인 것이다.
이러한 요임금과 순의 동태를 경계하여 단군조선은 서기전2301년 경자년(庚子年)에 번한(番韓)의 요중(遼中)에 험독(險瀆), 영지(永支), 탕지(湯池), 통도(桶道), 거용(渠鄘),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의 12성(城)을 축조하였다.
11. 요임금이 순에게 섭정을 맡기다
당요(唐堯)는 순(舜)을 등용한지 20년만인 서기전2294년에 50세이던 순을 제2인자인 섭정(攝政)으로 맡겼다.
이때 천자 당요는 108세 되는 해이며, 단군왕검 천제께서는 77세 되는 해이다. 단군조선의 사자 유호씨는 약 177세였다.
당요에게 충성을 다함으로써 섭정이 된 순은 그동안 숨겨놓았던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틈을 보고 있었던 것이 된다.
12. 요순시대 9년 대홍수 발생
순(舜)이 섭정하던 7년째 되는 해인 서기전2288년에 황하(黃河) 이남으로 양자강(楊子江)을 중심으로 하여 대홍수가 발생하였다.
이에 섭정 순(舜)은 곤(鯤)이라는 자에게 치수(治水)를 맡겼다. 곤은 자기 나름대로 모든 방책을 찾아 치수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오행(五行)의 이치를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오행(五行)을 사용하여 치수를 시도하였는데, 치수는 고사하고 홍수가 더하여 화(禍)만 불렀다.
날이 갈수록 백성들은 물에 빠지고, 집을 잃고 입을 옷이 없어지고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전염병이 난무하여 목숨을 많이 잃게 되었다.
13. 순에게 유폐찬탈 당하다
당요(唐堯)가 천자 자리에 있기를 73년인 서기전2285년에 섭정이던 순(舜)이 요임금을 유폐(幽閉)시키고 강압적으로 위협하여 천자(天子) 자리를 빼앗았다.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요순(堯舜)의 선양(禪讓)이라 미화(美化)시켜 놓았지만, 실제로는 하극상(下剋上)의 찬탈(簒奪)인 것이다.
이로써, 순(舜)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한 것이 되지만, 아버지에게는 불효(不孝)를, 단군조선에는 불충(不忠)을 저지른 것이 되어,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하여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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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1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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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 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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