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338] 고려-요금원 남북국시대 역사 개관 2
2012년 06월 02일 (토) 06:54:32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2. 고려-요금원 남북국시대 요-금-원 역사 개관
가. 거란(요)
(1) 건국
서기907년에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위구르제국이 와해되자 고구려의 서안평 자리이던 임황(臨潢)을 거점으로 거란족을 독립시켜 일으키고 8대부족을 통합하고서 당나라가 멸망한 후 서기916년에 대요(大遼)라 하였다.
거란족(契丹族)의 요(遼)나라 왕족은 고구려의 고씨(高氏) 출신이다. 즉 요나라 왕족인 야율씨는 곧 고씨의 후예인 것이다. 이에 거란은 고려에게 거란이 고구려의 정통 계승국임을 주장한 바 있다.
(2) 수도
거란의 수도는 상경 임황부이며, 그 외에 동경 요양부, 중경 대정부, 서경 대동부, 남경 석진부를 두어 모두 5경이다.
상경 임황부는 고구려의 서안평 자리이고, 서경 대동부는 지금의 대동이며, 동경 요양부는 지금의 요하 유역에 있는 요양이 된다. 5경제도는 대진국(발해)의 제도이며 단군조선 시대의 번한(番韓) 5경(오덕지)에서 유래한 것이 된다.
(3) 과정
요나라는 서기994년에 고려를 굴복시키고 배후를 안정시키고서 서기1004년에 남진을 하여 송나라를 압박하여 형제국 관계를 맺고서 송나라로 하여금 매년 비단 20만필과 은 10만냥을 조공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요나라는 몽골로부터 만주와 화북의 일부를 차지하고 고려까지 영향력에 포함시킨 대세력을 가진 나라로서 이후 키타이란 말이 중국의 호칭으로 서방세계에 전해지기도 하였다. 키타이는 한자 契丹을 읽은 말인데, 우리의 음독인 계단, 글단, 설단 중 합쳐진 알맹이의 뜻을 가지는 계단에 가장 가까운 말이 되며, 단단한 쇠라는 의미를 지닌다.
서기1114년에 송화강의 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완안부의 추장 아골타(아쿠타:아버지)가 요나라에 반기를 들었으며, 다음해인 서기1115년에 대금(大金)을 건국하자 요나라가 대군을 보내어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요나라는 금나라와 송나라의 협공으로 본거지를 금나라에 빼앗겼고, 송나라에는 대승하였으나 이에 송나라가 금나라에 조공을 하는 조건으로 원조를 요청함으로써 결국 금나라가 요나라의 연경(燕京)까지 함락하였다.
거란의 천조제(天祚帝)는 내몽골로 도망가 재기를 꾀하다가 서기1125년에 금나라에 체포되어 완전히 망하였다.
(4) 역년
거란의 요나라는 서기907년부터 서기1125년까지 9대 219년의 역사를 가진다.
나. 여진(금)
(1) 건국
서기1114년에 송화강의 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완안부의 추장 아골타(阿骨打:아쿠타:아버지)가 요나라에 반기를 들어 다음해인 서기1115년에 대금(大金)을 건국하였다.
아골타는 신라 종성인 김씨(金氏) 출신으로서 이에 국호를 금(金)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금(金)이라 한 것이 된다.
(2) 수도
여진족의 금나라도 5경을 두었다.
송화강 동쪽에 상경을 두고, 거란의 동경 요양부, 중경 대정부, 서경 대동부, 남경 석진부를 각 동경, 북경, 서경, 연경이라 하였던 것이 된다.
서기1215년에 몽골에게 수도 연경을 공격당하여 수도를 변량(汴粱)으로 옮겼다.
(3) 과정
금나라는 송나라와 협공으로 거란의 본거지를 빼앗은 후, 송나라의 요청으로 조공을 받는 대신 송나라를 원조하여 결국 연경(燕京)까지 점령하게 되었다.
이후 금나라는 송나라가 약속을 어기므로 서기1126년에 남하하여 송나라의 수도인 변경(개봉)을 점령한 후에 송나라의 상황 휘종과 흠종 황제, 종실, 관료, 기술자 등 3,000여명을 포로로 잡아 북방으로 압송함으로써 송나라는 망하였다. 이에 흠종의 아우 강왕이 강남으로 도피하여 남송을 시작하였다.
제4대 해릉왕(海陵王:서기1148~1161)은 수도를 상경 회령부(會寧府)에서 연경(燕京:지금의 북경)으로 옮기고 금나라 종실 전원을 이주시켰으며, 서기1116년에 남송을 대거 침략하였으나 양자강 유역에서 대패하여 진중에서 죽고 세종이 즉위하여 서기1165년에 송나라와 제2차 화평조약을 맺었다.
서기1215년에 몽골에게 수도 연경을 공격당하여 수도를 변량으로 옮겼으며, 서기1234년에 징기즈칸의 손자인 오고타이칸에게 망하였다
(4) 역년
금나라는 서기1115년부터 몽고의 원나라에 망한 서기1234년까지 10대 120년의 역사를 가진다.
다. 몽고(원)
(1) 건국
서기1187년에 몽골의 테무친(鐵木眞)이 몽골족을 통일하고 징기즈칸이라 불리게 되었고, 서기1206년에 몽골계와 돌궐계를 통합하여 전 몽골부족에 의하여 쿠릴타이에서 칸에 추대되었다.
테무친은 “최고의 쇠(鐵)로 만든 인간”이라는 뜻이라 한다. 철목진을 우리말로 읽게 되면 단단한 쇠뭉치(쇠무치)라는 말이 된다.
(2) 수도
몽고의 첫수도는 카라코룸이며, 쿠빌라이칸이 수도를 연경(燕京:지금의 북경)으로 옮겨 대도(大都)로 삼았고, 서기1271년에 국호를 대원(大元)이라 하였다.
(3) 과정
서기1215년에 금나라의 수도인 연경을 공격하자 금나라는 수도를 변량으로 옮겼으며, 동방을 거의 제압한 원나라는 서방으로 진격하였는데 서요를 대신한 나이만왕국을 격파한 징기즈칸이 서기1219년에 스스로 대군을 거느리고 서방원정에 나섰다.
서기1225년에는 남으로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까지, 서쪽으로는 남러시아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하에 두게 되었다.
서기1227년에는 서하를 멸망시켰다.
서기1234년에 태종 오고타이칸이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원정군은 러시아에서 동유럽까지 장악하였다.
이에 몽골제국은 몽골 고지와 화북 지역은 황제의 직할령으로, 남러시아는 킵차크한국, 서아시아는 일한국, 서투르키스탄은 차카타이한국, 동투르키스탄은 오고타이한국으로 분할되어 다스려졌다.
이후 쿠빌라이는 티베트와 사천을 공격하여 운남의 대리국(大理國)을 멸망시키고, 서기1259년에 사천에 출정하였던 뭉케칸이 사망하자, 먼저 남송과 화의를 맺고 서기1260년에 스스로 칸에 올랐다.
쿠빌라이칸은 수도를 연경(燕京:지금의 북경)으로 옮겨 대도(大都)로 삼고, 서기1271년에 국호를 대원(大元)이라 하였다.
서기1276년에 쿠빌라이칸은 남송의 수도 임안을 공략하여 서기1279년에 남송의 잔여세력을 모두 진압하여 남송을 멸망시켰다.
원나라 말기에 농민반란이 일어나고 서기1351년에 백련교도(白蓮敎徒)의 홍건군(紅巾軍)이 거병하여 이에 반란군이 대규모화, 조직화 되어 원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 된다.
(4) 역년
서기1368년에 주원장의 명나라에 쫓기어 간 카라코룸의 북원(北元)이 망하니, 원(元)나라는 서기1206년부터 서기1368년까지 16대 163년의 역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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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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