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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355] 조선(朝鮮)-대청(大淸) 남북국시대 역사 개관

양해천 2018. 1. 23. 13:24

[홍익인간 355] 조선(朝鮮)-대청(大淸) 남북국시대 역사 개관

2012년 06월 19일 (화) 07:41:4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고려 말기의 신흥 사대부 세력에 의하여 서기1392년에 건국된 조선(朝鮮)은, 서기1616년에 금(金)나라 시조인 김아골타의 후예가 되는 김누루하치가 세운 후금(後金) 즉 청(淸)나라와 우리 역사상 제3차 남북국 시대를 이룬다. 

청나라는 만주족의 나라이다. 만주족은 그 선대가 여진족이며, 여진족은 곧 고구려와 대진국의 후예가 된다. 금나라의 왕족은 신라 출신의 김씨이다. 그리하여 청나라의 왕족도 또한 김씨이다. 

청나라가 만주에서 시작되어 중원의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의 왕조가 되었으나 엄연히 단군조선의 후예로서 혈연적으로 조선의 북국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1. 조선(朝鮮) 역사 개관 

가. 건국 

서기1392년 7월에 정도전, 남은, 조준, 배극렴 등 이성계 일파는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58세의 이성계를 즉위시켰으며, 이에 조선이 건국되었다. 

나. 수도 

조선의 수도는 서기1396년에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줄곧 한양(漢陽)인 지금의 서울이었다. 

다. 과정 

서기1419년에 왜구가 충남 서천과 황해도 해주로 쳐들어 오니, 상왕이던 태종이 이종무를 총치휘관으로 삼아 왜구를 정벌하게 하였다. 

서기1437년에 김종서가 4군을 설치하고 윤관이 6진을 설치하여 국경을 정립하였다. 

서기14443년에 훈민정음을 신제(新制)하고, 3년후인 서기1446년에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은 처음으로 만든 창제가 아니라 새로이 만든 신제(新制)이며, 이것은 옛날에 이미 소리글자가 있었음을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데서 증명되고 있는 바, 그 옛 소리글자가 곧 단군조선의 정음(正音)인 가림토(加臨土) 글자인 것이다. 

서기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한산도대첩과, 서기1593년 행주대첩을 이끌었고, 서기1597년의 명량해전에서 승리하여 왜란을 끝냈다. 

인조 때 후금배척 정책으로 서기1627년 정묘호란을 겪고, 청나라의 군신관계 요구를 거절하여 서기1636년 병자호란을 겪었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하여 45일간 항전하였으나 결국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다. 

서기1712년에 청나라와 함께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 이로써 백두산에서 서쪽으로는 압록강을 국경으로 하고,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국경으로 하여 동간도가 조선 땅으로 인정되었다.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며 북쪽의 송화강으로 이어지는 강이다. 

서기1861년에 김종호가 대동여지전도를 제작하였다. 이 지도에는 대마도와 울릉도 및 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명확히 표시되어 있다. 

서기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서기1905년에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요하였다. 

서기1909년에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이해에 일제는 안동(단동)과 봉천(심양) 사이의 철도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가 청의 영토라고 인정하는 간도협약을 청나라와 권한없이 체결하였다. 

서기1910년에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하였다. 

라. 역년 

서기1392년에 건국된 조선은, 서기1910년 경술년 8월에 일제가 한일 합병 조약으로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강제 합병하여 국권을 빼앗음으로써 망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은 27대 519년의 역사를 가진다. 


2. 대청(大淸) 역사 개관 

가. 건국 

청나라는 서기1616년에 누루하치가 후금(後金)을 세운 데서 시작된다. 후금은 금나라의 계승국이라는 의미이며, 김씨의 나라임을 나타내고 있다. 서기1636년 제2대 태종 황태극(皇太極:홍타이지) 때 국호를 대청(大淸)이라 하였다. 

누루하치는 황금의 색이 누르다는 누르와 후손이라는 뜻을 가진 하치로 이루어지 말이 되는데, 김의 아기, 후손이라는 김알지와 일맥상통하는 말이 된다. 즉 누루하치의 성씨는 김씨인 것이다. 

청나라 왕족의 성씨를 애신각라(愛新覺羅)라 적는데, 이 애신각라의 애신은 금(金)을 가리키고, 각라는 청나라 왕족의 연고지인 지명으로서 “각라 김씨”의 의미가 되어 결국 김씨(金氏), 김족(金族)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나. 수도 

서기1616년에 태조 누르하치가 흥경(興京)을 수도로 하여 후금을 건국하였고, 서기1619년에 수도를 요양(遼陽)으로 옮겼으며, 이어 심양(瀋陽)으로 옮겼고, 제3대 세조 순치제 때 다시 북경(北京)으로 옮겼다. 

다. 과정 

서기1644년에 명나라는 이자성의 난으로 망하였다. 

서기1650년에 제3대 세조 순치제가 친정을 하면서 명나라의 관제를 답습하고 한인관려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권력강화의 일환이었다. 

제4대 성종 강희제(成宗:康熙帝:서기1661~1722)가 친정을 하면서 한인을 포섭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명사(明史) 편찬사업을 펴 한인 학자들을 참여시켰다. 

강희제로부터 제5대 옹정제를 거쳐 제6대 건륭제까지 3대 130년간은 중국지배가 안정된 기반을 가지게 되어 태평성대라 불리며 이때 대외적인 영토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건륭제 때 최대의 판도가 되었는데, 오늘날의 중국 전체와 러시아령 연해주 및 몽고인민공화국을 포함하였다. 

청나라는 한인에 대하여 변발(辮髮)을 강요하고 화이(華夷)사상을 엄금하였으며, 소수민족인 만주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주족과 한족의 분리거주, 만한간의 혼인금지, 만주어 사용, 팔기에 대한 토지급여, 만주지역에 대한 봉쇄 등의 정책을 폈다. 

한편으로는 회유책을 병행하여 명나라의 교육제도와 과거제를 답습하고, 정치제도도 일정부분 청나라 특유의 것을 제외하고는 명나라의 것을 거의 답습하엿다., 

이후 청나라는 태평성대를 지나 민란이 빈번하게 일어낫으며, 이어 영국을 필두로 아시아에 나타난 서양세력과 전쟁이나 불평등한 조약을 맺게 되었고, 태평천국의 난으로 혼란에 빠졌다가 양무운동으로 자강을 이루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청일전쟁 이후 열강의 침략에 대응하여 제도개혁을 목표로한 변법운동이 일어났으나 수구파의 정변으로 실패하고, 러일전쟁 이후에는 입헌운동을 추진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반기독교운동에서 나아가 의화단의 반외세운동으로 발전하였으나 서양8개국이 수도 북경을 점령하면서 굴욕적인 조약을 맺은 후 반외세풍조는 사라지고 개혁정치가 전개 되었다. 

의화단 사건 이후 청나라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수립하자는 혁명운동이 확산되었고, 서기1911년 신해년 10월에 무창에서 봉기하자 입헌파가 혁명에 가담하였는데, 서기1912년 2월 12일에 원세개가 손문이 임시대총통으로 있던 혁명군과 타협하여 선통제(宣統帝)를 퇴위시키고 총통이 되어 중화민국이 수립되었다. 

라. 역년 

청나라는 서기1616년부터 한족이 멸만흥한의 기치를 내세운 서기1911년 신해혁명으로 인하여 서기1912년에 중화민국이 성립하여 망하기까지 12대 296년의 역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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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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