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56]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1

양해천 2018. 1. 23. 13:25

[홍익인간 356]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1

2012년 06월 20일 (수) 06:46:55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 제1대 태조(太祖:서기1392년~서기1398년) 

서기1392년 7월에 이성계(李成桂)가 고려 34대 공양왕(恭讓王)을 폐하고 58세로 즉위하였다. 

서기1394년에 수도를 한양(漢陽)으로 정하였다. 

서기1396년 9월에 종묘와 궁궐의 도성이 모두 완성되었다. 궁문으로 남문은 광화문, 북문은 신무문, 동문은 건춘문, 서문은 영추문이라 하였다. 성의 출입문으로 4대문은 남대문인 숭례문, 북쪽의 숙청문, 동대문인 흥인문, 서대문인 돈의문을 두었고, 4소문은 동북쪽의 혜화문, 서북쪽의 창의문, 동남쪽의 광희문, 서남쪽의 소의문을 두었다. 수도를 옮겼다. 

서기1398년 태조 7년에, 서기1251년 9월에 완성되어 강화 선원사(禪源寺)에 보관 중이던 고려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겼다. 

<제1차 왕자의 난> 
서기1398년 8월에 이방원은 안산군수 이숙번과 함께 들고 일어나,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때 정도전, 남은 등이 죽음을 당하고 세자 방석과 방번도 유배 도중에 이숙번에게 살해당했다. 

1398년 9월에 태조가 왕위를 둘째 아들 방과에게 물려주었다. 

2. 제2대 정종(定宗:서기1398년~서기1400년) 

태조의 둘째 아들 방과가 즉위하였다. 

태조는 함흥으로 떠났다. 

수도를 개성으로 옮겼다. 

<제2차 왕자의 난> 
서기1400년 1월에 방간과 방원이 싸우는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방간이 패하여 토산으로 귀양가고 박포 일당은 처형되었다. 

서기1400년 2월에 정종은 방원을 왕세제로 삼았다. 

서기1400년 11월에 정종은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3. 제3대 태종(太宗:서기1400년~서기1418년) 

서기1400년 11월에 방원이 즉위하였다. 

서기1401년에 태조가 궁궐로 돌아와 옥새를 싸들고 다시 함흥으로 떠났다. 

태종은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으나 태조는 이들을 모두 죽여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태종은 사병을 없앴다. 

서기1403년에 맏왕자 양녕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주자소를 설치하였다. 

서기1404년에 수도를 한성으로 옮겼다. 

서기1405년에 토지조사를 실시하여 숨겨진 토지 60만결을 찾아내니 국가수입이 두배로 늘어났다. 

서기1413년에 호패법을 실시하였다. 조선 8도의 지방행정 조직을 완성하였다. 

의정부의 기능을 강화시켰다. 

무학대사가 함흥으로 가서 태조를 설득하여 개성으로 모셔오니, 태종이 개성 밖까지 나가서 태조를 맞이했다. 이에 태조는 옥새를 태종에게 넘겨주었다. 

서기1418년에 태종은 양녕대군을 폐세자하고 셋째 왕자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둘째 왕자 효령대군은 스님이 되었다. 

서기1418년에 태종은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4. 제4대 세종(世宗:서기1418년~서기1450년) 

태종의 셋째아들 왕세자 충녕대군이 22세로 즉위하였다. 
<대마도 정벌> 
서기1419년에 왜구가 충남 서천과 황해도 해주로 쳐들어왔다. 이에 상왕이던 태종이 이종무를 총치휘관으로 삼아 왜구를 정벌하게 하였다. 이종무는 9명의 절제사와 군사 1만7천여명을 이끌고 대마도 정벌에 나서, 왜구의 배 129척을 빼앗고 100여척의 배와 2천여 채의 집을 불태웠다. 

서기1420년에 집현전을 확장하였다. 

서기1422년 2월에 태종의 유언을 받들어 귀양가 있던 황희를 불러들였다. 5월에 태종이 붕하였다. 

서기1429년에 정초가 녹사직설을 편찬하였다. 

서기1434년에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서기1437년에 윤관이 6진을 설치하였다. 

하급관리와 기술직 관리를 뽑는 취재제도를 실시하고, 흉년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는 의창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죽을 죄를 지은 죄인에게도 삼심제도를 실시하고, 노비에게 함부로 형벌을 주는 것을 금하였다. 

노비출신의 장영실을 관리로 등용하여 천문시계인 혼천의 등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들게 하였다. 

서기1441년에 측우기를 제작하였다. 

서기1443년에 훈민정음을 신제(新制)하였다. 

서기1445년에 세종의 명으로 세자가 나라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였다. 용비어천가를 편찬하였다. 

서기1446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서기1450년에 세종이 붕하고 세자가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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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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