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57]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2

양해천 2018. 1. 23. 13:26

[홍익인간 357]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2

2012년 06월 21일 (목) 07:44:50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5. 제5대 문종(文宗:서기1450년~서기1452년) 

문종은 병이 들어 즉위한지 2년 3개월만에 붕하고, 세자가 12세로 즉위하였다. 

서기1451년에 고려사를 완성하였다. 

6. 제6대 단종(端宗:서기1453년~서기1456년) 

문종의 세자가 12세로 즉위하였다. 

<계유정란> 
서기1453년 단종 1년 계유년 10월에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무사들을 데리고 우의정 김종서의 집으로 쳐들어가 김종서 부자를 죽였다. 이어 왕의 부름을 받고 궁궐로 들어오던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영의정 황보인, 이양, 민신 등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였다. 이리하여 수양대군이 병권과 정권을 모두 잡았다. 

서기1455년에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즉위하였다. 

7. 제7대 세조(世祖:서기1456년~서기1468년)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즉위하였다. 

<사육신과 김문기> 
서기1456년 6월에 명나라 사신을 위한 잔치가 열린 창덕궁에서 성삼문, 박팽년, 김문기, 유응부, 이개 , 하위지, 유성원, 김질, 윤영손 등이 세조를 처단하기로 하였다. 별운검 유응부가 궁에 들어오지 못하여 계획이 연기되었는데, 신숙주를 윤영손이 죽이려 하자 성삼문과 박팽년이 말렸다. 김질이 장인인 우찬성 정창손에게 단종복위계획을 고발하니, 정창손은 한명회에게 달려가 고하고, 한명회는 세조에게 고하였다. 이에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는 고문으로 죽거나 처형당하였고, 김시습은 이들의 시체를 거두어 노량진 언덕에 묻어 주었다. 후대에는 이들 사육신에 김문기가 추가되었다. 

서기1457년에 6월경에 정인지, 정창손, 신숙주가 세조에게 단종을 유배시키라 하였고 결국 세조는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시켰고, 단종은 유배된지 4개월만인 10월에 죽임을 당하였다. 

궁에 잠실을 설치하여 왕비와 세자빈도 직접 누에를 치게 하였다. 

양성지에게 팔도지리지, 농잠서, 축목서 등을 발간하게 하였다. 

정인지, 신숙주 드에게 국조보감을 편찬케 하였다. 

물가조절기관인 상평창을 설치하였다.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6조가 직접 왕에게 보고토록 하였다. 

중앙군을 5위로 편성하였다. 

호패법을 정비하고 대대적인 호적조사를 실시하였다. 

서기1460년에 야인(여진)들이 강원도까지 쳐들어왔으나 신숙주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물리쳤다. 

경상, 전라, 충청 도민의 북방이주가 실시되었다. 

서기1466년에 직전법을 실시히였다. 

<이시애 난> 
서기1467년에 함길도에서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켜 함길도 절도사 강효문을 죽였다. 이에 세조는 종친인 귀성군 준을 토벌군 도총사로, 강순과 남이를 대장군으로 임명하였다. 27세의 남이가 길주에서 반란군을 완전히 소탕하였다. 이에 남이는 병조판서에 임명되었다. 남이의 어머니는 태종의 넷째 딸인 정선공주이다. 

서기1468년 9월에 세조가 붕하였다. 

8. 제8대 예종(睿宗:서기1468년~서기1469년) 

세조의 둘째 아들인 세자가 19세로 즉위하였다. 

남이의 출세를 시기하고 있던 유자광이 남이를 반란을 꽈한다고 모함하니, 예종은 남이를 옥에 가두었다. 남이는 고문에 영의정 강순과 역모하였다 거짓 자백하니, 남이, 강순, 남이의 부하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일부 왕족도 귀양을 갔다. 

서기1469년에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예종이 재위 1년 2개월만에 붕하니, 정희대비(세조부인)가 도원대군의 둘째 아들인 13세의 잘산군을 즉위시켰다. 

9. 제9대 성종(成宗:서기1469년~서기1494년) 

잘산군이 13세로 즉위하였다. 정희대비가 성종을 도왔다. 

서기1493년에 국조오례의, 상국사절요, 동문선,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악학궤범 등을 완성하였다. 

경국대전을 두 번에 걸쳐 수정하여 반포하였다. 

후궁들이 왕비 윤씨를 미워하는 인수대비(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와 가깝게 지내면서 시기와 질투를 일삼아 결국 왕비 윤씨를 폐비시켰다. 이후 폐비는 후궁들의 모의로 성종으로부터 사약을 받아 죽었다. 

훈구파와 사림파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훈구파의 유자광이 사림파의 시조격인 김종직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많았다. 훈구파인 이극돈은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에게 원한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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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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