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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14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1

[홍익인간 148]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12011년 11월 28일 (월) 10:05:37데일리전북 abc0500@paran.com-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 [금팔조(禁八條) - 팔조금법(八條禁法)] 서기전1282년 기해년(己亥年)에 진조선(眞朝鮮)이 천왕의 칙서(勅書)를 전하여 가로되, “그대들 삼한(三韓)은 천신(天神)을 위로 받들고 무리들을 직접 교화하여 번성하게 하라”하였다. 이로부터 백성들에게 예의, 누에치기, 베짜기, 활쏘기, 글 등을 가르쳤으며, 백성들을 위하여 금팔조(禁八條)를 만들었다. 이 금팔조(禁八條)가 단군조선 전역(全域)에 시행된 것인지, 아니면 천왕의 칙서를 받고서 번한(番韓) 서우여(徐于餘)가 번조선(番朝鮮)의 관경 내에서 시행한 것..

[홍익인간 147]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0

[홍익인간 147]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02011년 11월 25일 (금) 09:03:35천산(天山) sppopsj@yahoo.co.kr-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 [고등왕묘(高登王廟)를 장당경(藏唐京)에 세우다] 서기전1285년 병신년(丙申年) 가을 9월에 천왕께서 친히 장당경(藏唐京)으로 행차하여 사당(묘, 廟)을 세우고 고등왕(高登王)을 제사지냈다. 장당경(藏唐京)은 단군조선 초기부터 개사원(蓋斯原)에 위치한 이궁(離宮, 別宮)으로 존재하였던 것이 되는데, 서기전2324년경 단군조선이 유웅국(有熊國)을 이은 당요(唐堯)를 굴복시키고 안치(安置)하면서, 정기적으로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에 조공을 하는 등의 제후(諸侯)인 천자(天子)로서의 예(禮)를 갖추도록 ..

[홍익인간 14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9

[홍익인간 14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92011년 11월 24일 (목) 11:16:49천산(天山) sppopsj@yahoo.co.kr-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 [색불루 천왕의 제천문(祭天文) - 백두산서고문(白頭山誓告文)] 서기전1285년 병신년(丙申年) 3월 16일 이른 아침에 마한(馬韓) 여원흥(黎元興)이 백두산(白頭山) 제천단(祭天壇)에 올라 천제(天祭)를 올렸다. 마한 여원흥이 색불루 천왕을 대신하여 하늘에 고(告)한 백두산서고문(白頭山誓告文)은 아래와 같다. “짐 소자 단군 색불루는 손을 모아 머리를 숙여 절하옵니다. 스스로 천제자(天帝子)로서 나를 닦아 백성에 미치고, 반드시 스스로 하늘에 제(祭)를 올림으로써 황상(皇上)을 공경하겠사오며, 삼신(..

[홍익인간 145]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8

[홍익인간 145]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82011년 11월 23일 (수) 19:40:44천산(天山) sppopsj@yahoo.co.kr-조선(朝鮮)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 [수도 녹산(鹿山) 개축] 서기전1285년 병신년(丙申年) 1월에 색불루 천왕이 명하여 녹산(鹿山)을 수축(修築)하게 하고, 마침내 녹산(鹿山)에서 즉위하였다. 녹산(鹿山)은 상춘(常春, 지금의 長春)에 있으며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있는 산이다. 수축(修築)이라 함은 개축(改築)과 같은 의미로서 기존의 건물을 보수(補修)한 것이 되어 이미 녹산에는 궁궐이 있었던 것이 된다. 즉, 후기 단군조선의 수도는 백악산아사달인데, 녹산(鹿山)에 있는 기존의 궁궐을 수축하였다는 것이 되는 바, 상춘에 백악산..

[홍익인간 144]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7

[홍익인간 144]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72011년 11월 23일 (수) 08:38:38천산(天山) sppopsj@yahoo.co.kr-조선(朝鮮) 제21대 소태(蘇台) 천왕(天王)의 역사 - [우현왕(右賢王) 색불루(索弗婁)의 천왕 즉위와 소태 천왕의 선양(禪讓)] 서기전1286년에 우현왕(右賢王) 색불루(索弗婁)가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부여(夫餘)의 신궁(新宮)에서 천왕으로 즉위하고서 사람을 보내 오므로, 소태 천왕은 선양(禪讓)하지 아니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전하고, 은퇴하여 아사달(阿斯達)에서 평민(平民)으로 살면서 생을 마쳤다. 색불루 천왕이 백악산(白岳山)에 도읍을 골라 세우니 여러 욕살들이 불가하다고 고집을 피우니, 여원흥(黎元興)과 개천령(蓋天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