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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331] 대진국(大震國) 연대기 2

양해천 2018. 1. 23. 13:05

[홍익인간 331] 대진국(大震國) 연대기 2

2012년 05월 29일 (화) 06:40:0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3. 제3대 광종(光宗) 무황제(武皇帝:서기719년~서기737년) 

서기719년 태자 대무예(大武藝)가 즉위하여 개원(改元)하여 연호를 인안(仁安)이라 하였다. 

서쪽으로 거란(契丹)과 경계를 정하니 오주목(烏珠牧)의 동쪽 10리에서 황수(潢水)를 굽어보는 곳이다. 

여기서 황수(潢水)는 임황(臨潢) 부근을 흐르는 강이며, 임황이라는 말이 곧 황수에 임(臨)해 있다는 뜻이 된다. 임황은 곧 서안평(西安平)이며 원래부터 요동(遼東) 땅이 되는데, 소요수(小遼水)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요동인 것이다. 소요수는 소위 소수맥(小水貊)이 사는 곳의 강이며, 단군조선 시대의 구려 땅에 있고,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흘러 요대(遼隊) 또는 요수(遼隧)라는 지역에서 대요수(大遼水:영정하)에 합류하는 강이다. 큰 강줄기인 대요수(大遼水)와 대요수에 합류하는 작은 강줄기인 소요수(小遼水)가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던 원래의 요수(遼水)이다. 

서기719년에 개마(蓋馬), 구다(句茶), 흑수(黑水)의 여러 나라가 모두 신하가 될 것을 청하며 조공(朝貢)하였다. 여기 개마는 서개마(西蓋馬) 또는 북개마(北蓋馬)가 되는 지금의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 중 북쪽에 위치하였던 개마국을 가리킨다. 구다는 개마의 남쪽에 있으면서 12한국(桓國)의 하나인 대흥안령산맥 부근의 구다천국(句茶川國)을 가리키며, 흑수는 지금의 흑룡강(黑龍江)으로서 아무르강이 된다. 

또, 대장 장문휴(張文休)를 보내 자사 위준(韋俊)을 죽이고, 등주(登州)와 동래(東萊)를 취하여 성읍(城邑)으로 삼았다. 당나라 왕 융기(隆基)가 노하여 병사를 보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등주와 동래는 지금의 산동지역에 있었던 것인데, 대진국의 대장 장문휴가 산동지역을 정벌하여 등주와 동래를 차지하엿던 것이다. 이때 당나라 왕이라는 융기(隆基)는 당나라 제6대왕 현종(玄宗)이다. 

서기720년 수비장수 연충린(淵忠麟)이 말갈병과 함께 요서(遼西)의 대산(帶山) 남쪽에서 크게 당나라 군사를 격파하였다. 연충린은 연개소문의 혈족이 된다, 요서의 대산은 곧 난하 서쪽에 있는 대산으로서 대수(帶水)가 나오는 곳이 될 것인데, 서기204년에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을 나누어 남부지역에 설치한 대방군(帶方郡) 지역이 될 것이다. 

당나라는 비밀리에 신라와 약속하여 동남(東南)의 여러 군(郡)과 읍(邑)을 급습하여 천정군(泉井郡)에 이르렀다. 이에 무황제는 조서를 내려 보병과 기병 2만을 보내어 이를 격파하게 하였다. 이때 큰 눈이 내려 신라와 당의 군사는 동사자가 아주 많았다. 이에 추격하여 하서(河西)의 이하(泥河)에 이르러 국계를 정하니 지금의 강릉(江陵)의 북이하(北泥河)이다. 해주(海州) 암연현(岩淵縣)은 동쪽으로 신라와 접했는데 암연은 지금의 옹진(瓮津)이다. 

즉, 이때 대진국의 동남쪽이 되는 한반도 중부지역의 동쪽에서 당나라의 원조를 받은 신라와 전쟁을 하였던 것이며, 아마도 겨울이었던 것이 된다. 당시 대진국의 남쪽 국경이 지금의 강원도 강릉까지 이른 것이 된다. 또, 서쪽은 해주 암연현으로서 지금의 옹진을 가리키며 이로써 대진국과 신라의 국경은 서쪽의 옹진에서 동쪽의 강릉을 긋는 선이 된다. 이리하여 서기720년경 위 대진국과 신라의 국경은 한반도의 서쪽 해주(海州)에서 철원(鐵原)을 거쳐 강원도 동쪽의 강릉(江陵)에 이르는 지역이 된다. 

이로부터 신라는 해마다 입공하였고 임진강(臨津江) 이북의 모든 성이 모조리 대진국에 속하였다. 

서기721년에 당나라가 신라의 병사와 연합하여 침입하였으나 결국 아무 공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났다. 

서기726년에 당나라는 흑수말갈을 포섭하여 흑수부를 두어 관리를 파견하여 다스렸다. 이에 무황제께서 크게 노하여 흑수부를 정벌하려 하자 국경수비를 맡았던 아우 대문예가 반대하다 노여움을 사 당나라로 도망하였다. 이에 무황제는 등주(산동지역)를 정벌하였다. 

서기734년 구다, 개마, 흑수의 여러 나라들이 항복해 오니, 이들을 성읍으로 삼았다. 즉, 이때는 서기719년에 구다, 개마, 흑수가 조공을 바친 것을 넘어서서 정벌하여 항복을 받았던 것으로 대진국의 영역 내로 포함시킨 것이 된다. 

서기735년 송막(松漠) 12성과 요서(遼西)(登州) 6성을 축조하고, 마침내 5경 60주 1군 38현을 소유하니, 원폭 9,000리의 영토를 가진 성대한 나라가 되었다. 이때 당나라, 신라, 왜가 나란히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니 천하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칭송했다. 이에 발해 사람 셋이면 호랑이 한 마리를 당한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이때 임금과 백성들은 화락하고 역사를 논하며 의(義)를 즐겼다. 오곡은 풍성하고 사해는 안락하였다. 대진육덕가(大震六德歌)가 있어 이러한 대진국을 찬미하였다. 

여기서, 송막(松漠)은 소나무가 우거진 사막 같은 곳으로서 패수인 난하의 중류지역 동쪽에 있는 소나무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될 것이며, 요서(遼西)는 난하의 서쪽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요서지역에는 고구려 시대인 서기55년에 제3대 태조무열제가 요서(遼西) 10성을 축조하였고,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301년에는 당요(唐遼)의 변란(變亂)을 대비하여 요중(遼中) 12성을 마련하였다고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대진육덕가(大震六德歌)는 대진국의 기본 윤리강령(倫理綱領)인 충인의지예신(忠仁義智禮信)을 찬양하는 노래가 될 것이다. 당시 대진국의 중앙 행정기구로 3성 6부를 두었는데, 3성은 중대성, 선조성, 정당성이며, 6부는 충인의지예신의 6부(部)로서 정당성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6부가 관장하는 업무가 곧 대진육덕가의 주제가 되는 충인의지예신과 관련된 것이 된다. 

서기736년 3월에 안민현(安民縣)에 감로(甘露)가 내렸다. 예관(禮官)은 계장(啓狀)을 올려 하의(賀儀)할 것을 청하여 무황제께서 이에 따랐다. 

서기736년 3월 16일에 삼신일체(三神一體) 상제(上帝)께 서압록하(西鴨綠河)의 강변에서 제(祭)를 올렸다. 서압록하는 고리(藁離)의 옛 나라 땅이다. 여기서 고리는 곧 단군조선의 구려(句麗)를 가리킨다. 

여기서 삼신일체 상제는 곧 삼신상제(三神上帝)로서 삼신(三神)이자 상제(上帝)이며, 한국(桓國), 배달(倍達, 檀國), 조선(朝鮮)의 시조이신 한인(桓因), 한웅(桓雄), 단군왕검(檀君王儉)을 비롯한 역대 성제(聖帝)들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삼신은 곧 천신(天神), 지신(地神), 조상신(祖上神)인 인신(人神)을 가리키며 통칭 천신(天神)으로서 자연신(自然神)이 되며, 상제(上帝)는 하늘나라의 임금으로서 곧 천신(天神)인 바, 인격신(人格神)이 된다. 

서기737년, 인안(仁安) 19년에 임금께서 붕하시니 묘호를 광종(光宗)이라 하고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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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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