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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333] 대진국(大震國) 연대기 4

양해천 2018. 1. 23. 13:07

[홍익인간 333] 대진국(大震國) 연대기 4

2012년 05월 29일 (화) 22:02:5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1. 제11대 성종(聖宗) 선황제(宣皇帝:서기820년~서기830년) 

서기820년에 대인수(大仁秀)가 즉위하여 연호를 건흥(建興)이라 하였다. 

<신라 평정> 

서기820년경 선황제(宣皇帝)가 남쪽으로 신라를 평정하여 이물(泥勿), 철원(鐵圓), 사불(沙弗), 암연(岩淵) 등의 7주를 두었다. 

여기서 이물(泥勿)은 곧 이하(泥河)로서 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있었던 북이하(北泥河)로 지금의 연곡천이 될 것이며, 철원은 지금의 철원(鐵原) 지역이 될 것이고, 암연(岩淵)은 지금의 옹진인 해주(海州)를 가리킨다. 즉 서기820년경의 신라와의 국경은 서해안 쪽의 옹진에 있는 해주(海州)의 이남으로 하여 동쪽으로 철원의 남쪽 지역을 거쳐 동해안의 강원도 강릉 부근에 이르는 지역이 된다. 

서기720년경의 국경선과 유사한데, 아마도 서기820년 이전에 신라가 북상하였던 것이고, 서기820년경에 대진국이 다시 신라를 정벌한 것이 된다. 

<북쪽 지역 평정> 

또, 서기820년경 북으로는 염해(鹽海), 나산(羅珊), 갈사(曷思), 조나(藻那), 석혁(錫赫), 남북우루(南北虞婁)를 공략하여 부(部)를 두었다. 우루(虞婁)는 북대개마(北大蓋馬)의 남북(南北)에 있었다. 

염해(鹽海)는 소금이 나는 강을 가리키는 것이 되고, 북개마(北蓋馬) 또는 서개마(西蓋馬)는 지금의 대흥안령산맥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우루(虞婁)가 지금의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의 서편이나 북쪽에 있었던 것으로, 당시 대진국의 북쪽은 대흥안령산맥 이북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지명 정리> 

장백(長白) 동쪽을 안변(安邊)이라 하고, 압록강 남쪽을 안원(安遠)이라 하고, 모란(牧丹)의 동쪽을 철리(鐵利)라 하였다. 흑수(黑水) 강변을 회원(懷遠), 난하(灤河) 동쪽을 장령(長嶺), 장령의 동쪽을 동평(東平)이라 하였다. 

장백(長白)은 지금의 백두산 지역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백두산 동북쪽에 안변(옌벤)이라는 지명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된다. 

여기서 특히, 난하 동쪽을 장령이라 한 기록에서 서기820년경 당시 대진국의 서쪽 강역은 최소한 난하 서쪽에 이르는 것이 되며, 대진국의 서경 압록부가 서안평으로서 난하 최상류이자 소요수의 동쪽에 있으면서 거란의 중심지로 거란의 상경(上京)이었던 임황(臨潢)인 것을 고려하면, 아마도 송막(松漠) 12성과 요서(遼西) 6성이 자리한 난하(灤河)와 고하(沽河) 사이 지역을 서쪽으로 지난 지금의 영정하 부근을 국경으로 삼은 것이 될 것이다. 이로써 대진국의 전성기 시대의 강역은 어쩌면 고구려의 전성기 때의 강역보다 더 넓었던 것이 된다. 

이때 땅의 넓이가 9,000리였다. 영토는 크게 열리고 문치(文治)는 널리 가득 퍼졌다. 위로는 나라의 수도로부터 주현(州縣)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식있고 구서오계(九誓五戒)를 아침저녁으로 읽고 익혔다. 

여기서 9,000리는 지름이 9,000리라는 것이 될 것인데, 백두산에서 서쪽으로 영정하 부근까지 약3,000리가 되는 바, 지금의 북경 지역에서 북동쪽으로 9,000리가 되어 지금의 연해주 북동쪽 끝까지 해당하는 것이 된다. 또 남북으로는 임진강 부근에서 북쪽으로 대흥안령산맥을 지나 흑룡강까지가 된다. 이리하여 대진국의 강역은 곧 영정하 동쪽으로 단군조선의 진한(眞韓)과 번한(番韓)과 북부 마한(馬韓) 땅을 포함하는 원폭 9,000리의 거대한 영역이 되는 것이다. 

구서(九誓)는 배달나라 시대부터 내려온 삼륜구서(三倫九誓) 또는 삼륜구덕(三倫九德)이라는 말의 구서(九誓), 구덕(九德)으로서 백성된 자가 지켜야 할 윤리도덕이 되고, 오계(五戒)는 단군조선 시대의 오상(五常)의 도(道)인 단군조선 삼한오계(三韓五戒)이며, 고구려의 다물오계(多勿五戒)이고 신라의 화랑(花郞) 세속오계(世俗五戒)이기도 하다. 

구서(九誓)는 아홉가지 맹서로서 효(孝), 우애(友), 신(信), 충(忠), 겸손(遜), 명지(明知), 용맹(勇), 청렴(廉), 의(義)가 된다. 오계는 다섯가지 계율로서 오상(五常)의 도(道)인 효충신용인(孝忠信勇仁)인데, 여기서 인(仁)은 살생유택(殺生有擇)의 덕목에 해당한다. 구서는 일반 백성된 자의 윤리강령이며, 오계는 참전계(參佺戒)로써 도(道)를 닦는 국자랑(國子郞)이 지켜야 할 계율(戒律)이 된다. 

춘추(春秋)에 공적을 생각하여 뭇사람들이 의논하여 인재를 추천하며 공물을 바쳤다. 사람들은 이미 힘을 길렀고 집집마다 모조리 나라에 쓰임을 기다리니, 이로부터 국세는 부강하여 나라의 안팍이 모두 편안하게 즐거웠으니, 절로 도둑질이나 모사의 폐단이 없어졌다. 이에 당(唐), 왜(倭), 신라(新羅), 거란(契丹) 등이 모두 두려워하며 복종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천하만방이 모두 이로써 성인(聖人)이 다스림을 일으키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흠송하였다. 이때 신라의 강역은 지름 1,000리에 해당하였는데, 대진국이 원폭 9,000리의 나라이므로 대진국의 크기에 비하면 1/20에 불과한 것이 된다. 

12. 제12대 장종(莊宗) 화황제(和皇帝:서기830년~서기858년) 

서기830년 대이진(大彛震)이 즉위하여 연호를 함화(咸和)라 하였다. 

서기836년에 이납(李納)이 죽고 아들 이사고(李師古)가 대를 이었으며, 사고가 죽자 상을 발하지 않고 은밀히 사람을 보내 사도(師道)를 맞아 모셨다. 

서기858년, 함화(咸和) 29년에 임금께서 붕하시니 묘호를 장종(莊宗)이라 하고 시호를 화황제(和皇帝)라 하였다. 

13. 제13대 순종(順宗) 안황제(安皇帝:서기858년~서기870년) 

서기858년에 대건황(大虔晃)이 즉위하여 연호를 대정(大定)이라 하였다. 

서기901년, 대정(大定) 44년에 임금께서 붕하시니 묘호를 순종(順宗)이라 하고 시호를 안황제(安皇帝)라 하였다. 

14. 제14대 명종(明宗) 경황제(景皇帝:서기870년~서기901년) 

서기870년 대현석(大鉉錫)이 즉위하여 연호를 천복(天福)이라 하였다. 

서기901년, 천복(天福)32년에 임금께서 붕하시니 묘호를 명종(明宗)이라 하고 시호를 경황제(景皇帝)라 하였다. 

당시 대진국은 5경 15부 62주를 이루었다. 숙신 땅은 상경(上京) 용천부(龍泉府)라 하여 용(龍), 호(湖), 발(渤)의 3주를 관할하고, 그 남쪽은 중경(中京) 현덕부(賢德府)라 하여 노(盧), 현(顯), 철(鐵), 탕(湯), 영(榮), 흥(興)의 6주를 관할하며, 예(濊)의 땅은 동경(東京) 용원부(龍原府) 또는 책성부(柵城府)라 하여 경(慶), 염(鹽), 목(穆), 하(賀)의 4주를 관할하고, 옥저(沃沮)의 땅은 남경(南京) 남해부(南海府)라 하여 옥(沃), 청(晴), 초(椒)의 3주를 관할하며, 고구려의 땅은 서경(西京) 압록부(鴨淥府)라 하여 신(神), 환(桓), 풍(豊), 정(正)의 4주를 관할하였다. 

장령부(長領府)는 하(瑕)와 하(河)의 2주를 관할하고, 부여의 땅은 부여부(夫餘府)로 삼아 강한 군사를 배치하여 거란을 방비토록 하였으며 부(扶)와 선(仙)의 2주를 관할하며, 막힐부(鄚詰府)는 막(鄚)과 고(高)의 2주를 관할하고, 읍루 땅은 정리부(定理府)로 삼아 정(定)과 반(潘)의 2주를 관할하며, 안변부(安邊府)는 안(安)과 경(瓊)의 2주를 관할하고, 솔빈 땅은 솔빈부(率賓府)로 삼아 화(華), 익(益), 건(建)의 3주를 관할하고, 불열(拂涅)의 땅은 동평부(東平府)로 삼아 이(伊), 몽(蒙), 타(陀:沱), 흑(黑), 비(比)의 5주를 관할하였다. 

철리의 땅은 철리부(鐵利府)로 삼아 광(廣), 분(汾), 포(蒲), 해(海), 의(義), 귀(歸)의 6주를 관할하고, 월희(越喜)의 땅은 회원부(懷遠府)로 삼아 달(達), 월(越), 회(懷), 기(紀), 부(富), 미(美), 복(福), 사(邪), 지(芝)의 9주를 관할하며, 안원부(安遠府)는 영(寧), 미(郿), 모(慕), 상(常)의 4주를 관할하였다. 

15. 제15대 애제(哀帝:서기901년~서기926년) 

서기901년에 대인선(大諲譔)이 즉위하여 연호를 청태(淸泰)라 하였다. 

거란이 크게 일어나 위협하자 신라와 힘을 합쳐 거란을 물리치고자 하였으나, 신라가 거절하였다. 

서기924년에 대진국(발해)이 거란(요)의 요주자사(遼州刺史) 장수실(張秀實)을 죽이고 그 백성들을 약탈하였다. 

서기925년 겨울 12월에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가 군사를 일으켜 침공하였다. 

서기926년, 청태(淸泰) 26년 봄 정월에 거란(契丹)의 야율배(耶律倍)는 아우 요골(堯骨)과 선봉이 되어 대진국 군사 3만명을 격파하고, 밤에 홀한성(忽汗城:상경 용천부)을 포위하자, 임금께서 성 밖에 나가 항복함으로써 대진국의 역사가 마감되었다. 

이로써 대진국의 역사는 서기668년부터 서기926년까지 폐위된 원의(元義)까지 합하면 16대 259년이다. 

이후 대진국의 역사는 거란의 요(堯)와 고려(高麗)의 역사로 이어지고, 다시 여진의 금(金)나라 역사로 이어진다. 

대진국의 황제가 비록 서기926년에 거란에 항복하였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며 요나라에 항거하였는데, 애제 대인선도 요나라에 항거하다 제거되었던 것이며, 서기927년에 열만화가 정안국을 세워 서기985년까지 지속되었고, 서기1029년에 대조영의 7세손인 대연림이 흥요를 세웠다가 1년만에 망하고, 서기1115년 1월에 고영창이 대발해국을 세워 요동 50여주를 다스리는 등 서기1115년 여진의 금나라가 건국될 때까지 계속되었는 바, 이에 금나라가 여진과 발해는 본래 같은 집안이라고 하면서 진정시켜 금나라로 흡수되었던 것으로 된다. 

거란족의 요(遼)나라는 요수(遼水) 즉 소요수(小遼水)가 있는 서안평(西安平)을 중심으로 일어난 나라로서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이던 구려(句麗) 땅에서 발생한 나라가 되고, 서기907년에 시작된 야율씨(耶律氏)의 거란은 고구려 왕족 고씨 출신의 나라가 된다. 즉 야율씨는 고구려 고씨에서 나온 성씨이다. 이러하므로 거란의 요나라 역사는 곧 한국의 역사인 것이다. 

고려(高麗)는 신라 말기 후삼국 시대의 후고구려를 이은 나라로서 국호에서부터 고구려(高句麗)의 계승국이다. 

금(金)나라는 여진족(女眞族)의 나라라 하는데, 여진(女眞)이라는 말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던 숙신(肅愼)이 변음된 소리를 글자로 적은 것이 된다. 

한편, 여진이라는 말소리가 고구려(高句麗)의 려(麗)와 대진국(大震國)의 진(震)을 합친 명칭인 려진(麗震) 또는 리진(里眞)과도 소리가 유사한 글자가 된다. 금나라의 본 이름이 주리진(珠里眞)이며, 만주에 소속된 것을 주신(珠申)이라 불렀는데, 주리진(珠里眞)과 발음이 비슷하다. 여기서 주신과 주리진은 곧 숙신의 발음이 변한 것이 된다. 즉, 그 뒤에 잘못 전해져 여진(女眞)으로 불린 것이다. 

금나라를 세운 주인공은 바로 신라 왕족 출신인 김씨로서 김아골타(金阿骨打)인데, 아골타(阿骨打)라는 글자가 곧 “아버지”로 읽히는 “아뼈치”라는 이두식 표기가 된다. 이리하여 금나라는 왕족은 신라 김씨 출신이며 백성은 고구려와 대진국의 백성들인 것으로서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 한국의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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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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