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부도지(符都誌) 73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14절 “징심록”을 가지고 금화(金化)로 들어가 숨어버리다

[원문] 第十四節 當魯山朝乙亥遜位之日 朴氏大小家遂離京四散 당노산조을해손위지일 박씨대소가수이경사산 次家諸人入於金化 차가제인입어김화 是時 雲窩孝孫公 受澄心錄於宗家 시시 운와효손공 수징심록어종가 倉皇之中奉持入隱於金化 時余同蹤故始得奉讀 창황지중봉지입은어금화 시여동종고시득봉독 後再傳於次家逋臣公家 후재전어차가포신공가 公之子薰氏奉持入隱於文川雲林山中 공지자훈씨봉지입은어문천운림산중 [해설] 제14절 노산조(魯山朝, 단종端宗)1) 을해(乙亥, 1455년), 손위(遜位)2)의 날(6월)을 당하여 박씨 대소가(大小家)가 마침내 서울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지니, 차가(次家)의 사람들이 금화(金化)2)로 들어갔다. 이 때에 운와(雲窩) 효손공(孝遜公)이 종가(宗家)가 어찌할 겨를 없이 매우 급한 중에“징심록”을 받아 가지고 금화(..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13절 세종대왕이 영해 가문을 가까이 두다

[원문] 第十三節 本朝世宗大王登位 甚慇懃於寧海 周恤公家一門 본조세종대왕등위 심은근어녕해 주휼공가일문 又建赫居世王陵廟 乃命公之宗次二家 移居於京師泮宮之隣 우건혁거세왕릉묘 내명공지종차이가 이거어경사반궁지린 命長老入侍便殿恩顧甚重 명장로입시편전은고심중 徵次家裔昌齡公父子而登用 징차가예창령공부자이등용 時余在隣受業于宗嗣之門 시여재린수업우종사지문 [해설] 제13절 본조(本朝, 조선조), 세종대왕이 왕이 되어서는 은근히 영해(寧海)를 생각하여 공(公)의 문중(門中)을 두루 구제하였다. 또 혁거세왕(赫居世王) 능묘를 세우고, 곧 공(公)의 종가(宗家)와 차가(次家) 두 집에 명하여 서울 성균관 옆으로 옮겨 살게 하고, 장로로 편전에 들어 왕에게 알현하도록 명하여 은혜로 보살펴 주기를 심중(甚重)하게 하였다. 차가(次家)의 ..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12절 선류(仙流) 무학대사

[원문] 第十二節 麗末 儒佛武三派爭權 國勢將危 殆忘立國之本 려말 유불무삼파쟁권 국세장위 태망입국지본 世人目寧海爲卜筮仙述之家 세인목녕해위복서선술지가 時 李太祖奉命 犯潦已發大軍 儒者金生甚憂乃求言於寧海 시 이태조봉명 범료이발대군 유자김생심우내구언어녕해 金生得言直走太祖陣中 密禀回軍之事 김생득언직주태조진중 밀품회군지사 太祖前夜夢得金尺云 一說則有僧自東海走來 태조전야몽득김척운 일설칙유승자동해주래 稟回軍事云 此僧或非無學之徒耶 품회군사운 차승혹비무학지도야 自東海走來則如有關於寧海 而無學者本非佛徒卽仙流 而常伴一人云 자동해주래칙여유관어녕해 이무학자본비불도즉선류 이상반일인운 金生之事則見於史錄之上 太祖回軍事 有二人之稟達歟 김생지사칙견어사록지상 태조회군사 유이인지품달여 [해설] 12절 고려말에 유(儒), 불(佛), 무(武) 세파가..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11절 거무역리(居無役里)

[원문] 第十一節 麗朝靖宗時 王爲公家復興 以此家裔 命天公再封寧海君 려조정종시 왕위공가복흥 이차가예 명천공재봉녕해군 徵其裔孫 數代之間連次封君以勵之 징기예손 수대지간연차봉군이려지 忠烈王時 有蒙古之亂 王 遣使寧海 詳審理勢 충열왕시 유몽고지란 왕 견사녕해 상심리세 周恤公家一門而且免役其鄕 謂之居無役里 주휼공가일문이차면역기향 위지거무역리 徵次家裔孫世通公祖孫三代 징차가예손세통공조손삼대 繼任侍中而謀邦家之安泰云 계임시중이모방가지안태운 [해설] 제11절 고려 정종(靖宗)1)때, 왕이 공(公)의 가문의 부흥을 위하여 후예(後裔) 명천공(命天公)2)을 다시 영해군(寧海君)에 봉(封)하고, 그 후손을 불러 수대 사이에 군(君)을 봉(封)하여 격려하였다. 충렬왕(忠烈王)3)때에 몽고의 난이 일어나니, 왕이 영해로 사신을 보내 자..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10절 강감찬 장군이 영해(寧海)를 방문, 조언을 구하다

[원문] 第十節 麗朝顯宗時契丹之禍繼作 려조현종시계단지화계작 王使姜邯瓚 累訪寧海求言甚勤 周恤一門 왕사강감찬 누방녕해구언심근 주휼일문 徵次家裔淸虛先生 恩顧甚重 징차가예청허선생 은고심중 又修赫居世王陵 建塔供養 其搭文曰 우수혁거세왕릉 건탑공양 기탑문왈 奉爲邦家永泰 遐邇常安 敬造此塔 永充供養 云 봉위방가영태 하이상안 경조차탑 영충공양 운 姜邯瓚公 以其女欲奉宗嗣之巾櫛 妻之於次家之裔云 강감찬공 이기녀욕봉종사지건즐 처지어차가지예운 [해설] 제10절 고려 현종(顯宗)1)때에 거란의 화가 계속하여 일어나니, 왕이 강감찬2)에게 여러 차례 영해(寧海)를 방문하게 하여 매우 부지런히 조언을 구하고 문중을 두루 구제하며, 차가(次家)의 후예(後裔) 청허(淸虛)3) 선생을 불러 은혜로 돌보아주기(恩顧)를 심중하게 하였다. 또 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