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20]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6
[홍익인간 220]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6
-단군조선(번한,마한)과 하은주(夏殷周)의 관계역사 10-
[단군조선과 주(周)나라 서주(西周)시대 2]
3. 주나라 제3대 강왕(康王)
주나라 강왕은 서기전1078년부터 서기전1253년까지 26년 재위하였다.
[중] 서기전1078년~1053년 "강왕(康王)의 때에 숙신이 다시 왔고, 뒤에 서이(徐夷)가 왕을 참칭하고 구이(九夷)를 이끌고 종주(宗周)를 정벌하여 서쪽으로 하상(河上)에 이르렀다"<후한서 동이열전>
강왕 때 숙신(肅愼)이 다시 왔다는 것은, 주무왕(周武王) 때에 숙신이 와서 석노와 궁시를 바쳤다는 것과 같은 취지로서 조공을 하였다는 것을 적은 것이 된다. 그러나, 숙신은 단군조선의 천후국(天侯國)으로서 서열상 천자국(天子國)이 되는 주(周)나라와 같거나 한단계 위가 되는 바, 단순한 조공(朝貢) 차원이 아니라 주(周)나라가 정치를 잘 하는지 폭정을 일삼는지 등 정세(情勢)를 살피기 위하여 단군조선의 사자(使者)로서 활동한 것이 된다.
뒤에 서이(徐夷)가 왕을 참칭하고 구이를 이끌고 종주를 정벌하였다는 것은, 주나라 목왕(穆王) 때인 서기전1000년경에 서국(徐國)에 서언왕(徐偃王)이 출현하여 주나라와 전쟁을 벌여 황하유역까지 진출하여 36국을 거느린 대국(大國)이 되었던 것을 가리킨다.
서이(徐夷)는 서기전1236년에 산동지역의 중남부 지역에 세워졌던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천자국(天子國)인 주(周)나라보다 서열상 같거나 높은 단계가 되는 천후국(天侯國)인 바, 정치를 잘 못하는 경우에 주나라를 정벌할 권한을 가지는 것이 되므로, 서이가 왕을 참칭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단군조선의 천하 왕인 것이다.
여기서 구이(九夷)는 단군조선 전체 구족(九族)의 구이가 아닌, 중국내륙의 동쪽에 있는 동이(東夷)에 속하는 구이가 된다. 주나라 시대에 주나라 동쪽의 내륙으로 산동지역과 양자강 지역에 걸쳐 엄이(淹夷), 남이(藍夷), 서이(徐夷), 회이(淮夷), 래이(萊夷), 개이(介夷), 우이(隅夷), 양이(陽夷), 사이(泗夷) 등의 많은 동이족들이 존재하였다.
종주(宗周)는 주나라 조정(朝廷)이 있는 나라를 가리키는데, 주나라는 천자(天子) 직속의 나라와 8방의 나라로 이루어지며, 이 천자 직속의 나라가 곧 천자국(天子國)으로서 종주(宗周)이다. 서이가 이 종주를 쳐서 황하까지 쫓은 것이 된다.
하상(河上)은 황하 물가라는 뜻이 된다. 그리하여 서이가 주나라 천자국과 전쟁하여 서북쪽으로 황하까지 진출하여 주나라 천자를 압박하고 주나라 천자에 속하였던 제후국들을 포함한 36국을 거느린 대국이 되었던 것이다.
주나라 천자국은 방(方:넓이) 1,000리의 나라이며, 서이(徐夷)는 이때 중국의 기록상으로 방(方) 500리의 나라가 되어 제후국인 36국을 거느렸는데, 주나라로 볼 때는 종주 천자국의 1/4에 해당하는 대국(大國)이 되었던 것이다. 일반 공후(公侯)의 제후국이 방(方) 100리에 불과한 것을 볼 때 25배나 되는 큰 나라인 것이다.
주나라 전체의 크기는 방(方) 3,000리로서 일면 3,000리와 일면 3,000리로 이루어진 9,000리의 나라가 되는데, 북쪽의 항산(恒山), 서쪽의 화산(華山), 동쪽의 태산(泰山), 남쪽의 형산(衡山)을 기준으로 넓이 9,000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나라의 땅넓이도 단군조선에 비하면 1/4에서 1/100에 해당하는 나라일 뿐이다. 왜냐하면 단군조선은, 나라의 중심을 태백산인 지금의 백두산을 기준으로 하여 반경 3,000리 즉 일면 6,000리에 해당하는 지역이 천상(天上)에 해당하는 삼한(三韓) 관경에 해당하는 나라이며, 삼한관경 밖의 땅은 천하로서 경계가 없는 바, 이는 단군조선이 한배달 나라의 정통을 이은 나라이기 때문에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단군조선 삼한의 넓이는 주나라 전체 땅 넓이의 4배가 되며,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로 기준을 잡으면 100만리의 나라로서 9,000리라고 기록되는 주나라의 100배가 넘는다. 즉 주나라는 바깥 경계가 있는 천하(天下)의 천자국(天子國)이며, 단군조선은 바깥 경계가 없는 천상(天上)의 천제국(天帝國), 천왕국(天王국)이기 때문이다.
4. 주나라 제4대 소왕(昭王)
주나라 소왕은 서기전1052년부터 서기전1002년까지 51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1047년 갑오년(甲午年)에 주하(周瑕)가 번한(番韓) 을나(乙那, 서기전1054~1015)에게 조공하였다.<番韓世家>
주나라 하(瑕)가 제4대 소왕(昭王)이다.
주나라 소왕이 번조선의 번한(番韓) 을나에게 조공한 것인데, 번조선은 단군조선 천왕(天王)의 비왕(裨王)이 다스리는 나라로서 천군(天君)보다 한 단계 높은 지위의 천왕격(天王格)의 나라가 되어, 천왕의 일반 제후인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 중에서 자작(子爵)에 해당하는 천자국(天子國)인 주나라의 상국(上國)으로서 조공을 받은 것이 된다.
5. 주나라 제5대 목왕(穆王)
주나라 목왕은 서기전1001년부터 서기전947년까지 55년 재위하였다.
[중] 서기전1001년~서기전947년 "목왕(穆王)이 두려워하여 동방의 제후를 나누어 서언왕(徐偃王)을 주인으로 섬기도록 명하였다"<후한서 동이열전>
이 기록이 서이(徐夷)가 종주(宗周)를 쳐서 하상(河上)에 이르러 500리의 대국(大國)이 되어 36국을 거느렸다라고 하는 기록과 상통하는 것이다.
목왕은 주나라의 제5대왕으로서 서이(徐夷)에게 쫓기어 항하 이남을 내어주고, 주나라에 속하였던 제후국들과 동이족의 나라 등 합 36국이 서이를 종주국(宗主國)으로 삼도록 하였던 것이다.
서기전1000년경에 출현한 서언왕 시대부터 초나라 문왕에게 수도를 점령당한 서기전680년경까지 약300년간이 주나라 천자국도 함부로 못한 서이(徐夷)의 전성기가 된다.
6. 주나라 제6대 공왕(共王)
주나라 공왕은 서기전946년부터 서기전935년까지 12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943년 무인년(戊寅年) 제29대 마휴(麻休) 단군 원년에 주나라 사람이 공물을 바쳤다.<檀君世紀>
단군조선 제29대 마휴 단군 천왕은 서기전943년부터 서기전910년까지 재위하였다.
이때는 주나라 제6대 공왕 시기이며 조공을 한 왕이 된다. 즉, 지방의 천하(天下) 왕(王)인 천자(天子)가 천상(天上) 천조(天朝)의 천왕(天王)에게 조공한 것이다.
7. 주나라 제7대 의왕(懿王)
주나라 의왕은 서기전935년부터 서기전911년까지 25년 재위하였다.
8. 주나라 제8대 효왕(孝王)
주나라 효왕은 서기전910년부터 서기전896년까지 15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909년 임자년(壬子年)에 제30대 내휴(奈休) 단군 때 청구(靑邱)의 정치를 둘러보시고 돌에 치우천왕의 공덕을 새기고, 서쪽으로 엄독홀(奄瀆忽)에 이르러 분조(分朝)의 여러 한(汗)들과 만난 후 병사들을 사열하고 하늘에 제사지내고, 주나라 사람과 수호를 맺었다.<檀君世紀>
서기전909년은 주나라 효왕 2년이 되는 해이다.
단군조선의 제30대 내휴 천왕은 서기전909년부터 서기전875년까지 재위하였다.
청구는 배달나라 제14대 치우천왕(서기전2707~서기전2598)이 도읍을 한 땅이며, 그 서쪽에 엄독홀이 있는 것이 된다. 서쪽인 엄독홀은 고대중국 기록에서 엄이(淹夷)라고 기록되는 동이의 땅이며, 서기전1236년에는 단군조선에서 엄국(淹國)을 세운 곳이다.
분조(分朝)는 조정(朝廷)을 나누었다는 뜻으로 봉국(封國) 또는 군후국(君侯國)을 가리키며, 특히 구려분정(九黎分政)인 분조는 중국내륙의 동쪽이 되는 회대지역의 남국(藍國), 청구(靑邱), 엄국(淹國), 서국(徐國), 회국(淮國) 등의 대국을 포함하여 그 외 수많은 소국들을 가리킨다. 고대중국의 서쪽에 있던 단군조선의 분조는 크게는 견이(田犬 夷)와 백이(白夷=西夷)가 되고, 남쪽의 분조는 적이(赤夷)가 된다. 이들 분조는 제후들이 각각 세습자치로 다스리는 나라이다.
청구는 지금의 태산의 남북으로 그 동쪽에 위치한 것이 되며, 청구의 서쪽에 엄국(淹國)이 되는 엄독홀이 있고, 청구의 서남쪽에 남국(藍國)이 있으며, 남국의 남쪽에 서국(徐國)이 있고, 서국의 남쪽의 회수지역에 회국(淮國)이 있는 것이 된다.
주나라 춘추전국 시대에 제(齊)나라, 연(燕)나라가 팽창하면서, 제나라에게 회대지역의 청구, 남국, 서국, 엄국 등을 잃은 것이 되고, 고죽국의 땅은 연나라에 내 준 것이 된다. 후대에 이 회대지역은 백제가 차지하였다가 고구려 문자제(文咨帝)에 의하여 고구려에 속한 적이 있고, 백제와 신라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던 지역이기도 하다.
[한] 서기전902년 기미년(己未年)에 번한(番韓) 이벌(伊伐) 때 상장(上將) 고력(高力)을 파견하여 회군(淮軍)과 합쳐 주(周)나라를 치게 하였다.<番韓世家>
서기전902년은 주나라 효왕 9년이 되는 해이다.
이벌(伊伐)은 번조선의 제44대 번한(番韓)으로서 서기전926년부터 서기전900년까지 재위하였다.
상장 고력은 번조선의 장군이다.
회군(淮軍)은 회수(淮水)지역에 있던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회국(淮國:회이)의 군대를 가리킨다. 회국은 서기전1236년 단군조선이 회대(淮岱)의 땅을 평정한 후 방고씨(邦古氏)를 봉한 나라이다.
서기전902년에 회대지역을 관할하던 번조선의 번한 이벌이 상장군 고력을 파견하여 회국의 군대와 함께 주나라를 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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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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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군(天君)임을 최초로 밝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