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19]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5
-단군조선(번한,마한)과 하은주(夏殷周)의 관계역사 9-
[단군조선과 주(周)나라 서주(西周)시대 1]
1. 주나라 제1대 무왕(武王)
주나라 무왕은 서기전1122년부터 서기전1116년까지 7년 재위하였다.
주무왕은 서기전1134년에 주문왕의 대를 이어 은나라 제후국이던 주(周)의 서백(西伯)이 되었는데, 이해를 기준으로 3년상(三年喪)을 지난 서기전1132년부터 재위연도로 기록하기도 한다.
서기전1134년에 주문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여 3년상에 있으면서 은나라를 정벌하고자 할 때, 고죽군(孤竹君)의 아들들인 백이(伯夷)와 숙제(叔弟)가 충효를 언급하며 주무왕을 말렸다. 이때 강태공은 백이와 숙제를 의사(義士)라 하며 부축하여 모시고 길을 비키도록 하였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제후국으로서 서이(西夷)에 속하고,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견이(畎夷), 여(黎) 등의 근처에 있었다.
[중] 서기전1122년 “주무왕(周武王) 11년에 은(殷)을 정벌하기 시작하였는데, 주무왕이 서이(西夷)의 제후를 이끌고 은나라를 치고 목야(坶野)로 패퇴시켰다"<죽서기년>
서이(西夷)의 세력에는 지용(之踊), 촉(蜀), 강(羌), 미(微), 로(盧), 팽(彭) 등이 속한다<죽서기년>. 주나라는 서안(西安) 서쪽의 빈(邠), 기(岐)의 땅을 근거지로 하였다 하는 바, 이 빈, 기의 땅에 서기전1266년에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여(黎)라는 나라가 세워졌으며, 서이와 공존하였다.
[중] 서기전1122년 무왕(武王)이 주(紂)를 멸하자 숙신(肅愼)이 석노와 고시를 바쳤다.<후한서 동이열전>
숙신은 한배달조선의 구족(九族) 중 황족(黃族)의 일파가 되는 방족(方族) 즉 방이(方夷)의 나라이기도 하다.
주무왕이 은나라를 칠 때 단군조선 본국은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정치를 잘못 하므로 은나라를 도와주지 않고 그냥 방임한 것이 된다. 산동지역의 동해안 출신인 동이족의 강태공(姜太公)이 천하를 주유하면서 서쪽으로 가 서이(西夷) 출신인 주문왕과 주무왕을 보필하여 주나라를 세우게 하였던 것이다.
여기 숙신이 석노와 고시를 바쳤다라는 것은 숙신이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단순히 신하로서 조공을 한 것이 아니라, 단군조선 본국의 사자로서 주무왕이 천자(天子)로서 즉위하는 것을 축하하는 의례상의 선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활과 화살은 임금이 제후에게 징벌권(懲罰權)을 주는 상징물이 된다. 즉, 단군조선의 사자(使者)가 되는 숙신(肅愼)이 주(周)나라에 가서 무왕(武王)에게 활과 화살을 주었다는 것은, 단군 천왕(天王)이 제후인 천자(天子)에게 천명(天命)으로 은나라를 징벌한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며, 이는 징벌권한을 부여하였음을 사후에 인정한 것이 된다. 이로써 주무왕은 정식 천자(天子)가 된 것이다.
[한] 서기전1120년에 자서여(子胥餘)가 태행산(太行山)의 서북의 땅으로 피하여 가니, 막조선(莫朝鮮)이 이를 듣고 모든 주(州)와 군(郡)을 샅샅이 조사하더니 열병을 하고 돌아왔다.<馬韓世家>
자서여(子胥餘)는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를 가리킨다. 기자(箕子)의 성씨는 자씨(子氏)이며 서여(胥餘)는 이름이고, 기자(箕子)의 기(箕)는 봉해진 땅의 이름이며, 자(子)는 봉작의 하나인 자작(子爵)을 가리킨다.
막조선(莫朝鮮)은 마조선(馬朝鮮)을 가리킨다. 마조선의 마한(馬韓)인 아도(阿闍)가 서기전1120년에 기자 서여가 주(周)나라를 피하여 태항산 서북의 서화(西華)라는 땅으로 피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마한의 관경 내의 모든 주(州)와 군(郡)을 돌아다니며 경계를 하였던 것이 된다.
소위 기자(箕子)는 은나라 왕족으로서 당시 하남성에 있었던 기(箕) 땅의 자작(子爵)인 바, 마지막 주왕(紂王)의 폭정을 견디지 못하여 미친 사람 행세를 하다가 주왕에게 붙들려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서기전1122년에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무왕(周武王)이 기자를 석방하였던 것이며, 이에 주무왕이 기자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물었는데, 그 역사가 소위 주서(周書)의 홍범(洪範)과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의 홍범구주편(洪範九疇篇)에 기록되어 있다.
홍범구주는, 서기전2267년 요순시대의 대홍수의 치수와 관련하여 단군조선의 태자부루께서 주관한 도산회의(塗山會議)에서, 태자부루께서 순(舜)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에게 전수하였던 치수법(治水法) 등이 기록된 책으로서, 천자(天子)가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을 적은 책이다. 우가 이 홍범구주로 인하여 치수에 성공하였으나, 권력욕으로 이를 악용(惡用)하여 반역(反逆)을 일으켜 독립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단군조선으로부터 정식 천자국(天子國)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하나라 왕조를 시작하였던 것이 된다.
주무왕이 기자에게 치세법을 묻고 주나라의 신하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기자는 이를 거절하고 패잔병 5,000을 이끌고서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피하였는데, 서기전1120년에 기자는 고죽국의 서쪽이 되는 태항산(太行山) 서북의 땅으로 망명하였던 것이다. 이 태항산 서북지역이 곧 흉노(匈奴)의 근거지가 되는 지금의 오르도스 지역의 동쪽에 해당하는 곳이며,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구려국(句麗國)의 서남쪽 지역이 되고, 고죽국(孤竹國)의 서쪽이 된다.
이후 소위 기자국은 수유(須臾)라 불리는 단군조선의 기후국(箕侯國)이 되어 주나라의 제후국인 연(燕)나라와 제(齊)나라와 전쟁을 수행하기도 하였는데, 서기전650년경에 고죽국과 거의 동시대에 주나라 춘추시대 패자였던 제(齊)나라의 침공으로 망한 것이 되어, 그 주류(主流)는 동쪽의 번한(番韓)지역으로 이동하고, 기자의 차자(次子)의 후손인 선우씨(鮮于氏)는 남하하여 춘추전국시대에 조(趙)나라와 연(燕)나라 사이에 선우중산국(鮮于中山國)을 세우게 된다. 선우중산국은 서기전296년에 조(趙)나라에 망한다.
서기전650년경 번한으로 이주하였던 기자의 장자족은 서기전323년에 읍차(邑借) 기후(箕詡)가 번조선왕(番朝鮮王)이 되어 서기전194년에 위만에게 속아 나라를 잃기까지 번조선을 이었고, 다시 기준왕(箕準王)과 상장(上將) 기탁(箕卓)이 이끄는 번조선 유민들이 마한 땅이던 한반도의 서쪽으로 남하하여 마한(馬韓)을 세우고 마한왕(馬韓王)이 되어, 서기9년 백제(百濟)에게 망하기까지 후삼한 시대의 진왕(辰王)으로서 군림하였다.
2. 주나라 제2대 성왕(成王)
주나라 성왕은 서기전1115년부터 서기전1079년까지 37년 재위하였다.
[중] 서기전1116년 무왕이 붕하니, 삼감(三監)과 회이(淮夷)가 배반하였고 주공이 정벌하였다"<尙書, 후한서 동이열전>
삼감(三監)은 주나라 천자(天子)의 직속 대부(大夫)가 3명씩 조를 짜서, 8방(方)의 주(州)의 방백(方伯)을 감시하던 체제를 가리키는데, 여기 삼감은 은나라 주왕(紂王)의 왕자이던 무경(武庚)이 녹보(祿父)가 되어 봉해진 은(殷)나라를 감시감독하던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을 가리킨다.
회이(淮夷)는 서기전1236년에 회수(淮水)지역에 봉해진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동이세력이 되는데, 이때 은나라 무경에게 동조한 것이 된다.
주공(周公)은 주무왕(周武王)의 아우이며 성왕(成王)에게는 숙부가 된다. 주나라 초기에는 아직도 은나라를 따르는 반란세력이 있어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였던 것이 된다.
[중] 서기전1115년~서기전1079년 "성왕(成王) 시대에 관(管)과 채(蔡)가 주나라를 배반하여 이적(夷狄)을 불러들이니 주공(周公)이 정벌하고 드디어 동이를 평정하였다"<후한서 동이열전>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어린 성왕을 거부하고 은(殷)나라의 주(紂)왕의 아들 무경(武庚=祿父)을 받들어 모반을 일으켰던 것이고, 이러한 반란을 성왕을 보필하던 주공이 평정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이적(夷狄)은 동이와 북적을 가리키는데, 주나라 동쪽에 있던 중국내륙의 동이세력으로는 회이(淮夷), 서이(徐夷), 엄이(奄夷), 웅(熊) 등이 있었으며, 북적 세력으로는 주나라 북쪽으로 은기자(殷箕子)의 기후국(箕侯國), 고죽국(孤竹國), 흉노(匈奴) 등이 있었다.
주나라의 삼감(三監)이던 관숙, 채숙, 곽숙이 은나라 왕자였던 무경(武庚)을 받들어 회이, 서이, 엄이 등의 동이(東夷)세력의 동조를 얻어, 주나라를 전복시키려 하였던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던 것을, 어린 조카인 성왕(成王)을 보필하던 주공(周公)이 이를 평정하였던 것이다.
[중] 서기전1115년~서기전1079년 "성왕(成王)이 관숙과 채숙을 정벌하고 회이(淮夷)를 멸하였다"<상서, 후한서 동이열전>
성왕의 명을 받은 주공(周公)이 군대를 이끌고 동정(東征)을 하여 은나라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과 반란에 참가하였던 관숙(管叔)을 죽이고, 채숙은 귀양을 보낸 뒤, 무경이 통치하던 땅을 강숙(康叔)에게 주어 위(衛)나라 제후로 봉하였다.
이때 주공이 회이(淮夷)를 정벌하여 멸하였다 하나, 이는 춘추필법에 의한 기록인데, 회이는 이때 멸망한 것이 아니라 서기전221년 진시황(秦始皇)에 의하여 진(秦)나라에 흡수될 때까지 존속한 나라로서, 서기전1236년부터 1,016년의 역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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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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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군(天君)임을 최초로 밝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