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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21]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7

양해천 2018. 1. 22. 09:56

[홍익인간 221]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7

2012년 02월 07일 (화) 22:25:05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단군조선(번한,마한)과 하은주(夏殷周)의 관계역사 11- 

[단군조선과 주(周)나라 서주(西周)시대 3] 

9. 주나라 제9대 이왕(夷王) 

주나라 이왕은 서기전895년부터 서기전879년까지 16년 재위하였다. 

이왕은 이공(二公)이라고도 한다. 

이때 초(楚)나라가 왕을 칭하였다. 주나라 제후국 중에서 가장 먼저 왕을 칭한 나라는 초나라인데, 서기전741년에 웅거(熊渠)가 본격적으로 왕을 칭하였다. 

[한] 서기전895년 병인년(丙寅年)에 번한(番韓) 아륵(阿勒) 때 주나라 이공(二公)이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番韓世家> 

서기전895년에 이공이 즉위한 해인지 고왕이 죽고 대를 이은 해인지 불명이나, 번한에 조공을 바친 것으로 보아 즉위한 해가 될 것이다. 고대중국의 기록은 왕의 몇 년이라는 식으로 적고 있어 정확한 연대를 알기 어려운데, 실제 연대를 계산하다 보면 1~2년은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하은주의 역대 연대기록은 1~2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될 것이다. 

아륵(阿勒)은 번조선(番朝鮮)의 제45대 번한(番韓)으로서 서기전900년부터 서기전836년까지 재위하였다. 

주나라 제9대왕 이공(二公)은 이왕(夷王)이라고도 하며, 서기전895년부터 서기전879까지 재위한 것이 된다. 그리하여 주나라 이공이 즉위한 해인 서기전895년에 상국인 번조선에 조공한 것이 된다. 

이때까지도 주나라는 단군조선에 호의적인 것이 되며, 천자국(天子國)인 주나라의 상국(上國)이 되는 번조선(番朝鮮)에 조공한 것이다. 이는 번조선이 주나라의 내륙 바로 동쪽에 있는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을 관할하던 천왕격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10. 주나라 제10대 여왕(厲王) 

주나라 여왕은 서기전878년부터 서기전828년까지 51년 재위하였다. 

[중] 서기전878년~서기전828년 "여왕(勵王)이 무도하여 회이(淮夷)가 도적질을 하였고, 소공(召公)이 정벌하여 평정하였다"<후한서 동이열전> 

여왕은 주나라 제10대왕인데, 무도(無道)하였다 하는 바, 정치를 잘 못 하였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회이가 도적질을 하였다는 말은 앞뒤 논리가 맞지 아니하는 것이 되는데, 이때 회이는 도적질을 한 것이 아니라 주나라의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하여 또는 정치에 간섭하거나 견제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이는 고대중국이 예를 잃었을 때 사이에게서 배웠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여기 소공(召公)은 주나라 초기의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라 할 때의 소공이 아니라, 그 대를 이은 후손이 되는 다른 인물이 된다. 이 여왕 시대에 주나라는 주공과 소공이 서기전851년부터 서기전828년까지 공화정치를 14년간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주공(周公)은 주무왕의 아우인 단(旦)이 시조인데, 주나라의 수도이던 서안(西安)을 중심으로 어린 성왕을 보필하여 섭정하였으며, 소공(召公)은 주무왕의 아우인 석(奭)이 시조인데, 주공이 소공으로 하여금 장차 주나라의 수도로 하기 위하여 낙양(洛陽)을 건설하라 하였고, 낙양이 수도로서 완성된 후에 성왕은 서안에서 다스리고 주공이 낙양에서 다스렸다. 

소공은 주무왕 시절에 은나라 잔존세력을 북쪽으로 쫓아 내고 평정하여 연(燕)나라에 봉해졌던 것이다. 소공 석이 은나라 잔존세력을 필 때, 은왕족 기자(箕子)의 군대가 소공 석에게 쫓기어 북쪽으로 달아나 태항산(太行山) 서북쪽에 망명하여 정착한 것으로 된다. 

연나라의 초기 수도는 하남성에 있던 은나라의 연(燕) 땅에 있었으나, 이때는 연(燕)이라는 명칭을 피하여 언(匽)이라 하였고, 이후 소공 석이 수도를 지금의 안국시(安國市)가 되는 북쪽의 안(安)으로 옮긴 것이 되고, 이후 연나라는 다시 수도를 지금의 이현(易縣)이 되는 이(易)로 옮기어 계(薊)라고도 하였거나 다시 수도를 탁수(涿水) 지역에 옮기고 계(薊)라 하였던 것이 되며, 서기전226년에 진왕(秦王) 정(政)의 진(秦)나라에 피하면서 옮긴 수도는 요동이 되는 지금의 북경(北京)이 된다. 

연나라의 수도는 안(安), 이(易), 계(薊)가 되는데, 서기전226년 이전에는 모두 지금의 북경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서기전650년경 고죽국이 연나라와 춘추시대 패자였던 제나라의 합공에 망할 때 연나라의 수도는 이(易)가 되며, 고죽국이 연나라 땅이 된 때에 연나라가 수도를 탁수(涿水)의 계(薊)로 옮긴 것이 될 것이다. 후대에 북경이 계(薊)로 불리는데 이는 연나라가 서기전226년에 요동으로 옮긴 수도가 된다. 여기서 탁수지역의 탁주(涿州)는 한(漢)나라 말기인 서기184년경 황건적의 난이 일어날 때 유비(劉備)와 장비(張飛)가 살던 고향이다. 

[한] 서기전838년 계해년(癸亥年)에 제32대 추밀(鄒密) 단군 때 초(楚)나라 대부(大夫) 이문기(李文起)가 조정에 들어와 벼슬을 하였다.<檀君世紀> 

단군조선 제32대 추밀 천왕은 서기전847년부터 서기전820년까지 30년 재위하였다. 

초(楚)나라는 주(周)나라의 제후국이나 남만으로 불리어진 나라인데, 서기전890년경에 이미 왕을 칭하였고, 서기전741년에 초나라 웅거(熊渠)가 본격적으로 왕을 칭하였다. 이때 초나라의 왕족은 웅씨(熊氏)가 된다. 

초나라 대부(大夫) 이문기가 단군조선의 조정에 들어와 벼슬을 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단군조선과 주나라와의 인적교류가 원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서기전268년경 위(魏)나라 사람인 공빈(孔斌)이 지은 홍사(鴻史)의 서문에서 동이(東夷)와 중화(中華)가 1,000년을 넘게 우방의 나라였으며 사람들이 서로 오고가며 살았다라고 적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기록이 된다.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주나라 사람들이 단군조선에 귀화하거나 조정(朝廷)에 들어와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기록되고 있다. 

대부(大夫)는 제후(諸侯)의 아래 직위에 해당한다. 

11. 주나라 11대 선왕(宣王) 

주나라 선왕은 서기전827년부터 서기전782년까지 46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818년 계미년(癸未年) 단군조선 제33대 감물(甘勿) 천왕 때에 주(周)나라 사람이 와서 호랑이와 코끼리의 가죽을 바쳤다.<檀君世紀> 

단군조선 제33대 감물 천왕은 서기전819년부터 서기전796년까지 24년 재위하였다. 

특히 주나라는 양자강 남쪽에 사는 코기리를 잡아 가죽을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이 되는데, 이를 단군조선에 조공한 것이 된다. 

12. 주나라 제12대 유왕(幽王) 

주나라 유왕은 서기전781년부터 서기전771년까지 11년 재위하였다. 

[중] 서기전781년~서기전771년 "유왕(幽王)에 이르러 음란해지자 사이(四夷)가 번갈아가며 침입하였는데 제(齊) 환공(桓公)에 이르러 패권을 닦아 물리쳤다"<후한서 동이열전> 

여기서 유왕은 주나라 제12대왕으로 서기전781년부터 서기전771년까지 11년 재위하였다. 

유왕이 음란하여 정치를 잘하지 못하자, 이에 주변의 사이(四夷)가 주나라의 정치에 간섭하려는 차원에서 침공한 것이 된다. 

여기서 사이(四夷)는 동서남북의 사이인지 아니면 동이에 속하는 사이인지 불명이나, 아직 춘추전국시대 이전의 서주(西周)시대이기 때문에 주나라 동서남북의 주변에 있던 이족(夷族)으로서 즉 소위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의 사이(四夷)가 될 것이다. 물론 동이, 남만, 서융, 북적이라고 불리는 시기는 서기전403년 이후의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된다. 그이 전에는 동서남북의 동이(東夷), 서이(西夷), 남이(南夷), 북이(北夷) 등 사이(四夷)가 되는 것이다. 

사이(四夷)가 번갈아 가며 주나라 유왕 시기에 주나라를 침공하였는데, 서기전680년경에 이르러 제나라 환공(桓公)이 패자(覇者)가 되어 주나라 정치에 간섭하거나 통제하거나 접수하려는 이족(夷族)들을 물리치고 주(周)나라 조정을 지켰다는 것이 된다. 

유왕의 시기에서 제나라 환공이 패자가 된 시기까지는 약 100년의 시차가 있는데, 그 사이에 사이(四夷)가 주나라 정치에 간섭한 것이 된다. 

주나라 제12대 유왕(幽王)의 시기까지 서주(西周) 시대라 하고, 이후 서기전770년부터 서기전404년까지를 춘추시대(春秋時代)라 하며, 서기전403년부터 서기전221년까지 전국시대(戰國時代)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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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군(天君)임을 최초로 밝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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