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25]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21
-단군조선(번한,마한)과 하은주(夏殷周)의 관계역사 15-
[단군조선과 주(周)나라 전국(戰國)시대 2]
[한] 서기전339년 임오년(壬午年) 번한(番韓) 수한 (水韓) 때, 연(燕)나라 사람 배도(倍道)가 쳐들어와서 안촌골(安村忽)을 공격하였으며, 험독홀(險瀆忽)에서도 노략질을 하니 수유(須臾)사람 기후(箕詡)가 자식과 제자들 5,000인을 데리고 와 싸움을 도왔고, 이에 군세가 떨치기 시작하더니 곧 진(眞), 번(番) 2한(韓)의 병력과 함께 협격(協擊)하여 이를 대파하고, 또 한쪽으로는 군사를 나누어 파견하여 계성(薊城)의 남쪽에서도 싸우려하니, 연나라가 두려워 하며 사신을 보내 사과하므로 대신과 자제를 인질로 삼았다.<番韓世家>
번조선의 번한 수한은 서기전340년부터 서기전324년까지 17년 재위하였다.
이때의 침입은 연나라 배도가 서기전365년에 침입한 이후 제2차 침입이 된다.
안촌홀은 번조선에 있던 군(郡) 단위 크기의 마을이 되는데, 단군조선 번한의 요중 12성에 속하는 탕지(湯池)가 속하는 곳이 분명하다. 즉 안촌홀은 후대에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으로 불리는 곳이 된다. 안시성은 곧 탕지보(湯池堡)라 하는 바, 지금의 난하 중하류에 있는 천안(遷安) 지역이 된다. 탕지는 번한의 동서남북중 5경의 오덕지(五德地) 중에서 북경(北京)에 해당하는 곳이다.
험독홀은 번조선의 수도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험독은 단군조선 초기부터 번한의 수도였는데 동서남북중의 5경 중에서 동경에 해당한다. 험독은 지금의 산해관(山海關) 자리가 분명하다. 갈석산 지역은 창려에 속하며 고구려의 요동성, 백암성 등이 있는 곳이다.
수유(須臾)사람 기후(箕詡)는 기자(箕子)의 먼 후손인데, 서기전650년경에 기후국(箕侯國)이 연제(燕齊)에게 망한 때 주류(主流)가 동쪽으로 이주한 것이 되고, 후대에 번조선에서 읍차의 벼슬을 한 것이 되며, 서기전339년에 연나라가 번조선의 수도인 험독까지 침범하여 노략질을 하자, 이에 기후가 자식과 제자들 5,000인을 데리고 와서 연나라 군사와 싸운 것이며, 이어서 진(眞), 번(番) 2한(韓)의 병력이 와서 함께 협격(協擊)하여 연나라 군사를 대파하고, 또 한쪽으로는 군사를 나누어 계성(薊城)의 남쪽으로 파견하여 그곳에서도 싸우려 하니, 연나라가 겁을 먹고 화친을 청한 것이 된다.
여기서 계성(薊城)은 연나라의 수도가 되는데, 지금의 북경 서남쪽에 위치하는 것이 되고 지금의 탁수(涿水) 지역에 있었던 것이 된다. 이 탁수가 곧 유수(濡水)인 것이며, 이 유수의 최상류 지역에 단군조선의 번한(番韓) 요중(遼中) 12성(城)의 하나였던 영지성(永支城)이 있었다. 즉 영지성은 대요수(大遼水)이던 지금의 영정하(永定河)의 서남쪽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요서(遼西)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이때 번조선에 인질로 잡힌 연(燕)나라의 대신과 자제는 연나라 소왕의 공자(公子)인 진개(秦開)를 비롯한 일당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후 진개는 번조선 조정에 인질로 잡혀있다 석방되었고, 복수심으로 서기전311년부터 서기전270년 사이에 번조선을 역습을 하여 만번한(滿番汗)까지 땅을 차지하여 만번한을 국경으로 삼았던 것이다.
만번한(滿番汗)은 패수(浿水)가 되는 지금의 난하(灤河) 서쪽으로 고하(沽河) 하류의 사이에 있는 강(江)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되는데, 지금의 당산(唐山) 부근에 있던 강으로서 당산 쪽인 북동쪽에서 서남으로 흘러 서쪽으로 발해만에 들어가는 강이 된다. 이 만번한 부근에 소위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낙랑군(樂浪郡)의 남부지역을 나누어 서기204년에 공손강이 설치하였던 대방군(帶方郡)이란 곳이 있으며, 이 대방지역에 대수(帶水)가 있는 것이다.
진개는 서기전339년에 인질로 잡히어 서기전281년에 만번한을 국경으로 삼았는 바, 연대를 계산하면 진개는 약80세 이상 오래 산 것이 된다. 실제 고대중국의 기록에는 진개가 90세에 이른 노장(老將)이라고 한다.
서기전334년에 제(齊)나라가 왕을 칭하였다. 이해에 초(楚)나라가 월(越)나라를 멸망시켰다.
서기전324년에 진(秦)나라가 왕을 칭하였다.
서기전323년에 한(韓)나라와 연(燕)나라가 왕을 칭하였다.
이때 연나라가 왕을 칭하자 번조선의 읍차이던 기후가 번한성(番汗城)을 선점하여 비어 있던 번조선왕 자리를 차지하고서 번조선왕이라 칭하며 연나라에 대비하면서 진조선 천왕의 윤허를 구하였던 것이 된다. 여기 번한성(番汗城)은 의미상으로는 번조선의 수도인 험독(險瀆)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나, 여러 정황으로 보면 번한(番韓)의 요중(遼中) 12성(城)의 하나이던 한성(汗城)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는데, 번한의 동서남북중의 5경의 오덕지(五德地) 중에서 서경(西京)에 해당하는 곳이며, 또 이 한성은 고구려의 요서(遼西) 10성 중의 하나인 한성(韓城)이기도 하다.
[한] 서기전323년 무술년(戊戌年) 단군조선 제46대 보을(普乙) 단군 때의 1월에, 읍차(邑借) 기후(箕詡)가 병력을 이끌고 입궁(入宮)하여 자칭 번조선왕(番朝鮮王)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 윤허를 구하므로, 이를 허락하고 굳게 연나라를 대비토록 하였다. <檀君世紀>
[한] 서기전323년 마한(馬韓) 맹남(孟男) 때 연(燕)나라는 사신을 보내와 함께 기후(箕侯)를 치자고 하였으나 마조선(馬朝鮮)은 따르지 아니하였다.<馬韓世家>
[한] 서기전323년에 번한(番韓) 수한(水韓)이 훙(薨)하였는데 후사 없어 이에 기후(箕詡)가 명을 받아 군령을 대행하였다. 연나라는 사신을 보내 이를 축하하였다. 이해에 연나라가 왕이라 칭하고 장차 쳐들어오려고 하였으니, 기후(箕詡)도 역시 명을 받아 번조선왕이라 칭하고, 처음에는 번한성(番汗城)에 머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다.<番韓世家>
서기전323년에 번조선왕이 된 기후(箕侯)는 서기전323년부터 서기전316년까지 8년 재위하였다.
기후(箕詡)는 은(殷) 왕족 기자(箕子)의 먼 후손이고, 기후국(箕侯國)이 망한 이후 동쪽으로 이주한 기후의 선대는 번조선 땅에 살면서 읍차(邑借)의 벼슬을 이은 것이 되며, 서기전323년 1월에 번조선왕 수한(水韓)이 후사가 없이 훙(薨)하자 번조선왕 자리가 비어 이에 기후(箕侯)가 명을 받아 번한성(番汗城)에서 군령을 대행하였던 것인 바, 연나라가 이를 두고 번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기후(箕詡)를 축하하며 정세를 살폈던 것이 되고, 이해에 연나라가 왕을 칭하고 침공할 준비를 하니, 이에 기후가 스스로 번조선왕이라 칭하고서 연나라 침입에 대비하면서 진조선 천왕에게 사후윤허를 요청하여 허락받은 것이 된다.
이로써 기후는 번조선왕 기씨(箕氏)의 시조가 되며, 서기전194년 기준왕 때에 연나라의 망명자 위만(衛滿)에게 속아 나라를 잃었고, 이에 기씨(箕氏) 일족은 마한 땅으로 이동하게 된다.
연나라가 왕을 함부로 왕을 칭하고 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번조선의 대부(大夫) 례(禮)가 연나라로 가서 주나라 천자(天子)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왕을 창하는 것은 무도(無道)한 일임을 일깨워 주었다고 하는데, 연나라는 이를 듣지 않았던 것이 된다.
천하(天下)의 왕(王)은 천자(天子)이다. 주(周)나라 전체는 천하로서 그 천하 안에 각각의 제후국인 국(國)이 있었고, 그 제후국의 제후들이 스스로 천자 즉 왕이라고 칭한 것이 된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고 할 때의 치국(治國)의 국(國)은 제후국(諸侯國)을 가리키며, 천하(天下)는 곧 제후국을 거느린 천하왕의 나라인 천자국(天子國)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주(周)나라를 예로 들면, 주나라 천자(天子)는 천하왕(天下王)으로서 9주(州)를 다스리며, 중앙의 주(州)가 천자의 직할국이고, 팔방의 8주(州)는 방백(方伯)의 나라가 되며, 9주 안에 각각의 수많은 공후백자남의 제후국들이 있었던 것인데, 8주에 각 210개의 제후국들이 있었고, 천자 직할지 안에는 93개의 제후국이 있어, 총 1,773개국의 제후국이 있었던 것이 된다. 그래서 이들 1,773개국은 각 경계가 있는 제후국으로서 국(國)이 되며, 주나라 9주(州) 전체가 천하가 되는 것이다. 1주는 방(方) 1,000리 즉 가로, 세로 각각 1,000리가 되는 땅이 되고, 구주는 9개의 방(方) 1,000리가 된다.
이 주(周)나라에 대하여, 단군조선의 삼한(三韓)은 천상(天上)의 천왕국(天王國)의 나라가 되는데, 원폭 6,000리의 나라로서 가로, 세로 각각 1,000리가 되는 땅이 36개 되어 주나라의 땅의 4배가 된다. 천하가 되는 단군조선 삼한 밖의 땅에는 주나라도 포함되는데, 단군조선은 한배달의 정통계승국이므로 동서 2만리, 남북 5만의 나라인 바, 가로, 세로 각각 1,000리의 땅이 1000개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므로, 주나라의 111배가 되는 셈이다.
번조선은 위계질서상으로 보면 종주(宗周) 즉 천자국(天子國)인 주(周)나라의 상국(上國)이기도 하므로, 연나라의 상국(上國)이 되는데, 연나라가 팽창하면서 번조선을 침공하기도 하여 예(禮)를 잃은 것이 된다.
이때 연나라가 번조선을 칠 목적으로 마조선(馬朝鮮)을 방문하여 마한(馬韓) 맹남(孟男)에게 함께 번조선을 치자고 부추겼으나, 마한 맹남은 연나라의 계획을 알고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 된다.
마한(馬韓:마조선)은 서기전323년 이후로 왕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맹남을 마지막으로 마한의 대가 끊긴 것이 되고, 서기전232년에 단군조선이 해모수의 북부여에 접수된 후 단군조선의 유민들이 정치적 불안으로 많이 이동하였던 것이 되는데, 서기전209년에 소백손(蘇伯孫)이 마한(馬韓) 땅의 동쪽인 서라벌에 자리잡고 진한(辰韓)을 세웠으며, 이후에도 특히 서기전209년에 진(秦)나라에서 연제조(燕齊趙) 사람들 수만명이 번조선에 망명하고 지속적으로 마한 땅인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된다.
서기전194년에는 번조선왕 기준이 위만에게 나라를 탈취당하자 배를 타고 마한 땅의 서쪽인 금마(金馬:益山)로 이동하여 자리잡고 마한왕(馬韓王)이 되었다가, 서기전193년에 직산(稷山:평택과 천안 사이)에 자리잡았던 기탁(箕卓)의 중마한(中馬韓)으로 대가 이어져, 기씨(箕氏)의 마한(馬韓)이 서기9년에 백제 온조왕에게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36. 주나라 제36대 신정왕(愼靚王)
주나라 신정왕은 서기전319년부터 서기전314년까지 6년 재위하였다.
서기전319년에 위(魏)나라와 조(趙)나라가 왕을 칭하였다. 이로써 주나라 전국시대에 가장 먼저 왕을 칭한 초(楚)나라를 비롯하여 소위 전국(戰國) 7웅(雄)이 모두 왕을 칭한 것이 된다.
서기전318년에 한(韓), 위(魏), 조(趙), 초(楚), 연(燕)의 5개 연합국이 진(秦)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37. 주나라 제37대 난왕(赧王)
주나라 난왕은 서기전313년부터 서기전255년까지 59년 재위하였다.
서기전296년에 선우중산국(鮮于中山國)이 조(趙)나라의 무령왕에게 망하였다. 선우중산국의 선우(鮮于)는, 서기전1120년 은왕족으로서 주나라를 피하여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망명하였던 기자(箕子)의 둘째 아들이 우(于)에 봉해져 앞에 조선(朝鮮)의 선(鮮)을 붙여 만든 성씨가 된다.
서기전289년에 맹자가 84세로 졸(卒)하였다.
서기전288년에 진(秦)나라 소양왕이 서제(西帝)라 칭한 후 포기하였고, 제(齊)나라 민왕이 동제(東帝)라 칭한 후 포기하였다.
서기전286년에 송(宋)나라가 제(齊), 위(魏) 초(楚) 나라 등에게 망하였다.
서기전284년에 악의가 이끄는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진(秦)의 연합군이 제(齊)나라를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춘추시대 이후 제(齊)나라의 구원을 받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 통제를 받던 연(燕)나라가 제(齊)나라를 이기고 복수한 것이 된다.
[한] 서기전276년 을유년(乙酉年) 번한(番韓) 기석(箕釋) 때, 연나라가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바쳤다.<番韓世家>
번조선(番朝鮮)의 번한(番韓:번조선왕) 기석은 서기전290년부터 서기전252년까지 39년 재위하였다.
연나라는 이때 번조선에게 조공을 바치는 등으로 상국(上國)으로 대하면서 정세를 살핀 것이 된다.
서기전268년에 단군조선의 사절이 위(魏)나라를 방문하여 위세를 보였다.
서기전267년에 공빈(孔斌)이 홍사(鴻史) 서문을 지었다. 공빈이 이 홍사 서문을 지은 해는 주(周)나라 난왕(赧王) 47년이고, 위(魏)나라 안리왕 10년이 되는 해인데, 공빈은 위(魏)나라 사람으로서 공자(孔子)의 7세손으로서, 선대의 공자가 구이(九夷)에 살고 싶다하여 동이(東夷)에 관한 기록을 남겼듯이, 1년전인 서기전268년에 동이(東夷)의 사절이 위(魏)나라를 방문하여 위세를 보인 사실을 손수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서기전259년에 후대의 진시황이 된 정(政)이 출생하였다.
서기전255년에 진나라 소양왕이 주(周)나라를 멸하고, 군반(君班)을 세웠다.
38. 주나라 제38대 군반(君班)
주나라의 군반은 서기전255년부터 서기전249년까지 7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252년 기유년(己酉年) 단군조선 제47대 고열가(高列加) 단군 때,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 새해 인사를 올렸다.<檀君世紀>
연(燕)나라가 새해인사를 올림으로써 단군조선의 진조선(眞朝鮮)을 상국(上國)으로 대하였던 것이 된다.
서기전249년에 진(秦)나라 양왕(襄王)이 주나라 군반(君班)을 폐하여 주(周)나라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해에 진(秦)나라 왕자 정(政)의 친부(親父) 여불위가 승상이 되었다.
이로써 주나라는 서기전1122년부터 서기전249년까지 38대 874년의 역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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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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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군(天君)임을 최초로 밝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