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24]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20
-단군조선(번한,마한)과 하은주(夏殷周)의 관계역사 14-
[단군조선과 주(周)나라 전국(戰國)시대 1]
서기전403년부터 주(周)나라는 전국(戰國)시대가 된다. 이때 진(晋)나라는 한(韓), 위(魏), 조(趙) 나라로 삼분되었다.
[한] 서기전403년 무인년(戊寅年) 단군조선 제44대 구물(丘勿) 단군 때, 연(燕)나라가 사신을 보내와 새해 문안인사를 올렸다.<檀君世紀>
연(燕)나라는 주나라의 제후국으로서 춘추시대에는 패자였던 제(齊)나라의 보호를 받았는데, 서기전403년 전국(戰國)시대 이후에 주나라가 천자국으로서 유명무실하게 된 상황에서, 주나라 천자에게 예(禮)를 올리지 않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단군조선을 상국(上國)으로서 새해인사를 올려 예를 표한 것이 된다. 물론 연나라가 전략전술적으로 단군조선의 정치상황과 군사력 등의 정세를 탐지하기 위하여 행한 측면이 있었다고도 보인다.
서기전425년부터 단군조선도 왕권(王權)이 삼분되어 마조선(馬朝鮮)과 번조선(番朝鮮)도 왕을 칭하게 되어 독자적인 왕권 즉 군사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아마도 연나라가 번조선을 경계하고 견제하는 차원에서 진조선(眞朝鮮) 천왕에게 직접 예를 올렸을 가능성도 많다.
왕을 칭한 역사로 보면, 단군조선은 서기전425년부터 마조선과 번조선의 마한과 번한이 각 번조선왕, 마조선왕이라 칭하게 되어, 진조선 천왕의 비왕(裨王)이긴 하나 군사권을 독자적으로 가지게 됨으로써, 마조선과 번조선의 왕권이 강화되고 상대적으로 천왕의 권한이 축소된 것으로 된다.
이에 반하여 주나라 전국시대의 칭왕의 역사는 단군조선과는 차이점이 있게 되는데, 전국시대 제후국들은 아예 주나라 천자를 무시하고 스스로 왕(王) 즉 천자(天子)라고 칭한 것이다. 단군조선의 마조선왕과 번조선왕은 스스로 왕(王)이라 칭한 것이지 천왕(天王)이라 칭한 것이 아니다. 춘추시대에는 비록 패자(覇者)가 주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나 주나라 천자(天子)를 천자로 모신 점에서 전국시대와는 차이가 있다.
33. 주나라 제33대 안왕(安王)
주나라 안왕은 서기전401년부터 서기전375년까지 27년 재위하였다.
서기전386년에 제(齊)나라에서 전씨(田氏)가 제후가 되었다. 즉, 서기전1122년경에 강태공(姜太公)이 봉해진 제나라가 이때에 이르러 강씨(姜氏)가 아닌 전씨가 제후가 된 것이다. 전씨(田氏)는 진(陳)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한] 서기전380년 신축년(辛丑年) 단군조선의 제45대 여루(余婁) 단군 때, 연(燕)나라 사람이 변두리의 군(郡)을 침범하므로 수비장수 묘장춘(苗長春)이 이를 쳐부수었다.<檀君世紀>
전국시대에 연(燕)나라가 서서히 팽창하면서 번조선(番朝鮮)의 국경을 침범한 것이 된다. 즉, 서기전403년 이후 주나라가 전국시대가 되면서 제후들이 주나라 천자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천자 노릇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주나라 천자는 이를 통제하거나 진압할 힘이 없었던 것이다. 즉 주나라 제후국들이 모두 독자적으로 왕권을 수행한 것이 된다.
여기서 변두리의 군(郡)은 곧 진조선과 번조선의 서쪽 변경에 있던 군(郡)이 된다. 진조선의 서쪽 변경은 구려국의 서남단(西南端)이 되는 지금의 대동(大同)인 상곡(上谷) 지역으로서 대요수(大遼水)이던 지금의 영정하(永定河)의 상류지역이 되고, 번조선의 서쪽 변경은 영정하의 중하류 지역이 된다.
서기전378년에 진(晋)나라가 한위조(韓魏趙)에게 완전히 망하였다.
서기전375년에 정(鄭)나라가 한(韓)나라에 망하였다.
34. 주나라 제34대 열왕(烈王)
주나라 열왕은 서기전374년부터 서기전368년까지 7년 재위하였다.
맹자(孟子)가 추(鄒)나라에서 출생하였다.
35. 주나라 제35대 현왕(顯王)
주나라 현왕은 서기전367년부터 서기전320년까지 28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365년 병진년(丙辰年) 단군조선 제45대 여루(余婁) 단군 때, 연(燕)나라 사람 배도(倍道)가 쳐들어와 요서(遼西)를 함락시키고 운장(雲障)을 육박하였고, 이에 번조선이 대장군 우문언(于文言)에게 명하여 이를 막게 하고, 진조선(眞朝鮮) 막조선(莫朝鮮)도 역시 군대를 보내어 이를 구원하더니, 복병을 숨기고 연나라와 제나라의 군사를 오도하(五道河)에서 쳐부수고는 요서(遼西)의 여러 성을 남김 없이 되찾았다.<檀君世紀>
서기전365년에 연(燕)나라가 주축이 되어 제(齊)나라와 함께 요서(遼西)지역을 쳐들어왔던 것이 되고, 이 요서지역을 단군조선이 다시 회복하였다는 것이 된다.
여기서 운장(雲障)은 지금의 난하(灤河)의 동쪽에 있던 상하운장(上下雲障)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이곳이 서기전195년에 한(漢)나라의 연왕 노관의 신하이던 위만이 망명하여 정착한 곳이다. 우리의 요서지역이 되는 원래의 요수(遼水)인 영정하(永定河)의 동쪽 지역을 함락하고, 단군조선이 요동(遼東)과 요서(遼西)를 구분하던 지금의 난하인 패수(浿水)를 건너 운장까지 쳐들어 왔다는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의 요서지역은 패수인 지금의 난하 서쪽 지역을 가리키는데, 고대중국에서는 여전히 대요수(大遼水)인 지금의 영정하 동쪽 지역을 요동이라 하였던 것이 된다.
번조선의 대장군 우문언이 연나라와 제나라의 군사를 막았던 것이고, 이에 진조선과 마조선의 군사가 합류하여, 연제의 군사를 복병작전으로 오도하(五道河)에서 쳐부수고 패수 서쪽의 여러 성을 모두 수복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오도하(五道河)는 다섯 갈래의 물길이 있는 강이 되는데, 요서의 성(城)들을 모두 찾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패수인 난하의 서쪽에 있는 강이 될 것이며, 대요수인 영정하와 패수인 난하 사이에 오도하(五道河)가 있는 것으로 된다. 그런데, 제나라 군사를 패퇴시킨 것으로 보면, 제나라에 가까운 강일 수도 있는데, 이때 오도하는 황하의 하류에 다섯 갈래의 강을 이루는 곳으로서, 황하가 낙양 쪽에서 동류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면서 발해만으로 흘러드는 지점에 있는 강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여기의 막조선(莫朝鮮)은 마조선(馬朝鮮) 즉 마한(馬韓)을 가리킨다. 마한을 모한(慕韓), 막조선(莫朝鮮)으로 적은 것을 보면, 소리로서 “마”를 표기한 것으로 되는데, “마”는 남쪽을 뜻하는 말이 된다. 즉 마한은 진한(眞韓)의 남쪽에 있다는 뜻이 된다. 한편, 번한(番韓)은 차례를 서서 지키는 임금 또는 나라라는 의미가 되는데, 특히 단군조선의 서쪽을 지키는 비왕(裨王), 또는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즉, 지리적으로는 번한(番韓) 즉 번조선(番朝鮮)은 서쪽이 되는 단군조선의 오른쪽에 위치하여, 고대중국과의 국경지대를 방어하여 지키는 비왕이 번(番:당번, 불침번의 번)을 서는 나라라는 뜻이 되고, 마한 즉 마조선은 남쪽이 되는 단군조선의 앞쪽에 위치한 나라라는 뜻이 된다.
서기365년에 연나라가 제나라 군사와 함께 침범해오자 번조선(番朝鮮)이 비상권(非常權)을 발동하여 독자적으로 군대에 명을 내린 것이 되는데, 이는 국호가 대부여(大夫餘)로 바뀐 서기전425년부터는 진조선(眞朝鮮) 천왕(天王)의 명령없이, 번조선의 번한(番韓)이 번조선왕(番朝鮮王)으로서 왕권을 행사하여 군사를 부린 것이 된다.
[한] 서기전364년 정사년(丁巳年) 단군조선 제45대 여루(余婁) 단군 때, 연(燕)나라 사람이 싸움에 지고는 연운도(連雲島)에 주둔하며 배를 만들고 장차 쳐들어 올 기세이므로, 우문언(于文彦)이 추격하여 크게 쳐 부수고 그 장수를 쏘아 죽였다.<檀君世紀>
여기서 연운도는 발해만에 있는 섬으로서 당시 연(燕)나라의 관할 내에 있었던 것이 되는데, 단군조선의 우문언이 이끄는 수군(水軍)이 연나라의 연운도까지 추격하여 쳐부순 것이 된다.
[한] 서기전350년 신미년(辛未年) 단군조선 제45대 여루(余婁) 단군 때, 북막추장 액니거길이 조정에 찾아와 말200필을 바치고 함께 연나라를 칠 것을 청했고, 마침내 번조선의 젊은 장수 신불사(申不私)로 하여금 병력 만명을 이끌고 가서 합세하여, 연나라의 상곡(上谷)을 공격하고 이를 도와 성읍을 쌓게 하였다.<檀君世紀>
여기서 북막(北漠)은 연나라의 북쪽에 있던 사막지대가 되며 주로 내몽골지역으로서 구려국의 서쪽 또는 북쪽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북막추장이 연나라의 팽창을 염려하여 직접 단군조선의 천왕을 찾아 조공을 하면서 연나라를 칠 것을 청하였는 바, 이에 응하여 번조선에 명하여 장수 신불사로 하여금 출사하라고 한 것이 된다. 이로써 번조선이 비록 번조선왕이라 칭하는 왕국이지만 여전히 진조선(眞朝鮮) 천왕의 비왕의 나라인 것이며, 번조선왕이 천왕의 명을 받아 군사를 내어 연나라를 정벌한 것이 된다.
이때 상곡(上谷)은 연(燕)나라 땅임을 알 수 있다. 상곡은 지금의 대동(大同)인데, 단군조선의 구려국(句麗國)의 서쪽 하단 지역이자 기후국(箕侯國)의 북쪽 지역이 되는데, 서기전365년 연나라가 단군조선의 요서지역을 침공한 후로 서기전350년 사이에, 연나라가 상곡을 점령하였던 것이 된다.
서기전350년에 단군조선이 북막추장 액니거길의 청을 받아들여, 북막의 군사와 함께 번조선 장수 신불사가 상곡(上谷)을 공격하고 상곡 주변에 성읍을 쌓은 것이 되는데, 서기전343년에 다시 연나라의 침공으로 상곡을 잃고 조양(造陽)의 서쪽을 경계로 삼았던 것이다.
[한] 서기전343년 무오년(戊午年) 단군조선 제45대 여루(余婁) 단군 때, 상곡(上谷) 싸움 후 연나라가 해마다 침범해 오더니 이때에 이르러 사신을 보내 화해를 청하므로 허락하고, 조양(造陽)의 서쪽을 경계로 삼았다.<檀君世紀>
서기전350년 상곡(上谷) 전투 이후로 연나라가 계속하여 동침(東侵)을 한 것이 되며, 서기전343년에 연나라가 화친을 청하고 조양(造陽)의 서쪽을 경계로 삼은 것이 된다.
상곡(上谷)은 지금의 대동(大同)으로서 대요수(大遼水)가 되는 영정하(永定河)의 최상류 부근에 위치하고, 조양(造陽)은 대요수의 동쪽에 위치한 백하(白河) 또는 고하(沽河)의 상류에 위치 한 것이 되는데, 여기 조양은 지금의 요령성에 있는 조양(朝陽)과는 다른 지명이 된다.
그리하여 서기전343년에 단군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은 대체적으로 지금의 영정하 와 난하 사이에 있는 고하(沽河)가 된다. 고하(沽河)는 습여수(濕餘水), 조하(潮河) 등을 지류로 둔 강인데, 습수(濕水), 조수(潮水), 산수(汕水)를 가진 열수(列水)로 불린 강으로서 습수는 습여수이며 조수는 조하(潮河)가 된다.
[한] 서기전341년 경진년(庚辰年) 단군조선 제46대 보을(普乙) 단군 때의 12월에, 번조선의 왕 해인(解仁)이 자객(刺客)에게 해를 당하니 오가(五加)가 다투어 일어났다.<番韓世家>
자객이 어느 나라 또는 어느 지역 출신인지 불명인데, 아마도 연나라가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번조선왕 해인이 암살당하자 번조선의 오가(五加)들이 혼란에 빠져 서로 왕이 되려고 하였던 것이 되는데, 이로써 단군조선(진조선) 조정(朝廷)에도 천왕을 중심으로 하여 삼사오가(三師五加)가 있으며, 마한(마조선) 조정에도 삼사오가가 있으며, 이러한 삼사오가에 해당하는 제도가 각 지역의 주(州), 홀(忽), 원(原), 군(郡), 성(城), 현(縣), 읍(邑), 허락(墟落)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지방의 마을에 있던 삼로(三老)가 곧 삼사(三師)에 해당한다.
한국(桓國)시대의 9황(皇)64민(民)은, 나라의 땅을 천제(天帝)가 다스리는 중앙과 바깥의 8방으로 나누고, 이 8방을 다시 각 8방으로 나누어 만들어지는 64방이 지역백성의 수가 된다. 중앙과 8방의 임금은 중앙을 다스리는 천제(天帝)를 포함하여 모두 한인(桓因)의 형제 9황(皇)이라 하는 것이며, 8방의 8방은 곧 64방으로서 백성(民)이 되는 씨족이나 부족의 수가 되는 것이다.
한국시대는 그 땅이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라 하는 바, 1방의 크기는 대략적으로 동서 7천리, 남북 1만7천리가 되는데, 주(周)나라 땅의 크기는 1방 동서 1,000리, 남북 1,000리로서 9방이 되어 총 동서 3천리, 남북 3천리이므로, 한국(桓國)의 크기는 주나라의 111배가 된다. 한편,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의 크기만으로도 동서 6,000리, 남북 6,000리로서 주나라 9방 9주(州)의 4배가 된다.
서기전365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쪽으로 단군조선의 국경을 침략하기 시작한 연나라가, 번조선의 정세를 탐지한 후 자객을 보내어 번한 즉 번조선왕 해인(解仁)을 암살한 것이 된다. 해인은 일명 산한(山韓)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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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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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군(天君)임을 최초로 밝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