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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26]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22

양해천 2018. 1. 22. 10:05

[홍익인간 226]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22

2012년 02월 13일 (월) 15:08:5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단군조선과 진(秦)나라와의 관계역사 1- 

[주나라 제후국 진(秦)] 

진(秦)나라는 서기전771년 견융(犬戎)이 주나라 유왕(幽王)을 죽이자, 양공(襄公)이 주나라를 구원하여 많은 공로가 있어 제후로 봉해진 나라이다. 견융(犬戎)은 견융(畎戎)이며 견족(畎族) 즉 견이(畎夷)로서 한배달조선 9족의 하나이다. 견족은 주로 삼위산에서 서안에 걸쳐 사는 황족(黃族)의 일파인 것이며, 서기전3897년경에는 반고(盤固)가 제견(諸畎)의 가한(可汗)이 되었는데, 견족은 후대에 돌궐로 이어진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의 손자인 전욱고양씨(顚頊高陽氏:서기전2514년~서기전2436년)의 자손에 대업(大業)이 있었고, 대업의 아들이 백예(伯翳)로서 순(舜)임금(서기전2284년~서기전2224년)에게서 영(嬴)이라는 성(姓)을 하사받았으며, 백예의 자손에 비렴(蜚廉)이 있었고, 비렴의 아들에 여방(女防)이 있었다. 

여방의 자손인 비자(非子)가 주(周)나라 효왕(孝王:서기전910년~서기전895년)을 섬겨 견수(汧水)와 위수(渭水) 사이에서 말(馬) 기르는 일을 맡았는데 효왕이 땅을 주어 부용(付庸:제후에 속한 나라)을 삼아 진(秦)에서 살도록 하였으며, 이에 비자는 영성(嬴姓)이라 하고 영(嬴)의 조상을 제사지낼 것을 허락받아 영진(嬴秦)이라 하였다. 

비자로부터 2대를 지나 진중(秦仲)에 이르러 비로소 세력이 강해졌는데, 주나라 선왕(宣王:서기전827년~서기전782년) 때에 대부(大夫)에 임명되어 서융(西戎) 토벌의 명을 받았으나 도리어 패하여 융(戎)에서 죽었다. 

진중의 아들 장공(莊公)을 거쳐 양공(襄公)에 이르러 견융(犬戎)이 주나라 유왕(幽王:서기전781년~서기전771년)을 죽였는데, 양공은 주나라를 구원하여 많은 공로가 있었다. 그리하여 제후에 봉해져 기산(岐山) 서쪽의 땅을 받았다. 즉 진(秦)나라는 서주(西周)시대를 지나 동주시대 초기에 제후로 봉해진 나라인 것이다. 

서기전660년에 목공(穆公)에 이르러 서융(西戎)의 패자가 되었다. 

서기전641년에 양(梁)나라를 멸망시켰다. 

서기전361년에 효공이 상앙을 등용하였다. 

서기전350년에 함양으로 천도하고 상앙이 2차 개혁을 실시하였다. 

서기전338년에 효공이 죽고 상앙이 피살되었다. 

서기전328년에 혜문공 10년에 장의가 연횡책을 시행하였다. 

서기전324년에 진나라가 혜문공이 왕을 칭하여 혜문왕이 되었다. 

서기전317년에 촉을 점령하였다. 

서기전312년에 초나라를 대파하였다. 

서기307년에 진나라 무왕(武王)이 구정(九鼎)을 들다가 죽었다. 

서기전288년에 진나라 소양왕이 서제(西帝)라 칭한 후 포기하였다. 

서기전278년에 진나라가 초(楚)나라를 공격하여 수도를 점령하였다. 

서기전270년에 진나라가 조(趙)나라에 패하였다. 

서기전260년에 진나라가 조(趙)나라를 대파하고 포로 40만명을 생매장하였다. 

서기전259년에 정(政)이 출생하였다. 

서기전255년에 진나라 소양왕 52년에 주나라 마지막 제37대 난왕(赧王)이 진나라에 항복하여 망하였다. 

1. 제31대 진양왕(秦襄王) 

진(秦)나라 양왕(襄王)은 제후로 봉해진 양공(襄公)으로부터 제31대이며, 서기전249년부터 서기전247년까지 3년 재위하였다. 

진나라의 소양왕이 서기전255년에 주(周)를 멸망시켜 난왕(赧王)을 폐위시키고 군반왕(君班王)을 즉위시켰는데, 진양왕이 서기전249년에 군반왕을 폐위시킴으로써 주(周)나라가 완전히 멸망하였던 것이 된다. 

[한] 서기전248년 계축년(癸丑年) 단군조선 제47대 고열가(高列加) 단군 때의 겨울에, 북막(北漠) 추장(酋長) 아리당부가 군사를 내어 연(燕)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했으나, 임금께서는 허락하지 않았으니, 이때부터 원망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檀君世紀> 

이때까지 북막은 조공국(朝貢國)으로서 단군조선을 섬겼음을 알 수 있다. 북막은 북쪽의 사막지대로서 몽골지역에 있는 사막이 되는데, 연(燕)나라의 위치로 보아 북막은 연나라의 북쪽에 위치한 것이 되며, 단군조선의 군후국이 되는 구려국(句麗國) 인근에 있던 땅이 된다. 

북막이 단군조선에 연나라를 정벌해 달라 청한 것으로 보아 북막이 장차 연나라의 침입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되는데, 단군조선도 이때에 이르러 국력이 쇠락하여 군사를 함부로 내지 못하였던 것이 되고, 또한 제후국들도 통제할 수 없었던 상황에 처하였던 것이 되어, 북막의 청을 들어주지 못 하였던 것으로 된다. 

이 이후로 북막은 독자적으로 활동하면서, 후에 북부여 땅을 침략하여 약탈을 하기도 하였다. 

2. 제32대 진왕(秦王) 정(政) 

진왕 정은 서기전246년부터 서기전210년까지 37년 재위하였는데 서기전221년까지 왕으로 25년 재위하고, 황제로는 서기전210년까지 12년 재위하였다. 

진왕 정은 서기전240년에 위(衛)나라를 멸망시켜 제후를 앉혔다가, 진시황 이후 제2대 호해(胡亥) 황제 때 위나라 제후를 폐위시킴으로써, 제후국으로서는 위나라가 가장 마지막으로 완전히 망하였던 것이 된다. 

서기전237년에 진왕(秦王) 정(政)이 승상 여불위를 파면시켰다. 

서기전233년에 진나라의 한비자(韓非子)가 졸(卒)하였다. 

서기전230년에 진(秦)나라는 한(韓)나라를 멸망시켰다. 

서기전228년에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대량을 함락시키고 항복을 받았다. 

서기전226년에 진(秦)나라가 연(燕)나라 수도를 함락시켰다. 이에 연나라를 요동으로 도망갔다. 이때 연나라가 새로 수도를 삼은 곳이 또한 계(薊)이며, 이 계는 요동 땅에 있어 대요수(大遼水)가 되는 영정하(永定河) 동쪽에 위치한 지금의 북경(北京)이 된다. 후대에 계(薊)라는 지명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북경의 동쪽에 위치한 지금의 계현(薊縣)으로 옮겨졌다. 

서기전225년에 진(秦)나라가 위(魏)나라를 멸망시켰다. 

서기전223년에 진(秦)나라가 초(楚)나라를 멸망시켰다. 

서기전222년에 진(秦)나라가 조(趙)나라와 연(燕)나라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서기전221년에 제(齊)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전국시대의 육국(六國)을 모두 통일하였다. 

서기전221년 진왕 정이 육국을 통일할 때, 회대지역의 회이(淮夷), 사이(泗夷) 등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던 동이족(東夷族)의 나라도 완전히 망하고서, 진나라에 통합흡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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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http://keywordtab.co.kr/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군(天君)임을 최초로 밝혔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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