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42] 고려(高麗) 연대기 4

양해천 2018. 1. 23. 13:14

[홍익인간 342] 고려(高麗) 연대기 4

2012년 06월 06일 (수) 07:41:18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1. 제11대 문종(文宗:서기1047년~서기1083년) 

정종의 아우 악랑군 휘가 28세로 즉위하였다. 

전제와 형법을 개혁하고 흉년제면법과 삼원신수법을 제정하여 시행하였다. 또 고교법을 만들어 낙제제도로 자질이 부족한 학생들을 국자감에서 탈락시켰다. 

서기1049년에 공음전시법을 제정하였다. 

서기1055년에 거란이 압록강 동쪽에 성을 쌓고 다리를 만들므로, 문종이 사신을 보내어 항의하였으나 거절당하여, 송나라와 수교를 추진하였다. 

서기1063년에 거란의 제8대왕 도종(道宗:서기1059년~서기1106년)이 대장경 전질을 고려에 보냈다. 

서기1065년에 왕자 후(의천)가 승려가 되었다. 

서기1067년에 흥왕사가 준공되었다. 

서기1069년에 양전보수법을 제정하였다. 

서기1071년에 송나라에서 국교를 맺자고 먼저 제안하여 고려는 김제를 송나라에 보내어 국교를 맺었다. 

서기1075년에 혁련정이 균여전을 완성하였다. 

서기1076년에 전시과를 개정하고 관제를 개혁하였다. 

서기1083년 문종은 65세로 붕하였다. 

12. 제12대 순종(順宗:서기1083년) 

문종의 태자 훈이 37세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3개월만에 붕하였다. 유언에 따라 아우 운이 즉위하였다. 

13. 제13대 선종(宣宗:서기1083년~서기1094년) 

순종의 아우 운이 즉위하였다. 

승과를 설치하였다. 

<속장경> 
서기1086년에 의천(서기1055년~서기1101년)이 교장도감(敎藏都監)에서 초조대장경을 보완한 속장경을 서기1092년부터 10년에 결쳐 조판하였다. 

서기1094년에 선종은 병으로 붕하였다. 11세의 아들 욱이 즉위하였다. 

14. 제14대 헌종(獻宗:서기1094년~서기1095년) 

선종의 아들 욱이 11세로 즉위하였다. 사숙 태후가 섭정을 하였다. 

선종의 세 번째 부인인 원신궁주의 오빠 이자의가 모의하자 헌종의 삼촌 계림공 왕희가 평장사 소태보를 불러 이자의를 제거토록 하엿고, 소태보는 상장군 왕국모에게 역적을 처단케 하여 결국 이자의와 그 일당이 모두 살해되었으며, 원신궁주와 세 아들은 귀양갔다. 계립공이 중서령에 임명되었다. 

서기1095년에 헌종은 병을 핑계로 계림공 왕희에게 선양하였다. 

15. 제15대 숙종(肅宗:서기1096년~서기1105년) 

계림공 왕희가 42세로 즉위하였다. 

서기1096년에 유학자들의 건의로 6촌 이내의 혼인을 금하였다. 

서기1097년에 숙종은 아우 대각국사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을 설치하였다. 

<속장경 완성> 
서기1101년에 속장경을 10년만에 완성하였다. 

서기1102년에 해동통보를 주조하였다. 

국자감에 서적포를 설치하여 책을 만들었다. 

원효와 의상을 국사로 추증하고 불교를 진흥시켰다. 

서기1104년에 여진의 추장 오야속이 동북쪽 국경을 침범하였다. 이에 숙종은 임간을 동북면 병마사로 임명하여 보냈으나, 임간은 여진족에게 패하여 정주성으로 달아났으며, 여진은 정주성까지 쫓아와 성안의 백성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임간의 부하 척춘경이 기습하여 정주성을 수복하였다. 이에 윤관이 군사를 이끌고 여진군을 정벌하러 갔으나 군사력이 만만치 않아 일단 화친을 시도하여 여진의 추장 오아속에게 사람을 보냈다. 여진이 국가로 인정해 달라는 조건으로 물러갔다. 

<별무반> 
윤관은 여진을 대비하여 기병의 신기군, 보병의 신보군, 승병의 항마군으로 별무반 17만 대군을 만들었다. 

서기1105년 숙종이 붕하고 태자 우가 27세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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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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