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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358]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3

양해천 2018. 1. 23. 13:27

[홍익인간 358]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3

2012년 06월 22일 (금) 07:45:23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0. 제10대 연산군(燕山君:서기1494년~서기1506년) 

성종의 세자 연산군이 즉위하였다. 

<무오사화> 
서기1498년 무오년(戊午年)에 훈구파의 이극돈이 성종실록의 편찬을 위하여 사림파의 김일손이 쓴 사초를 정리하던 중, 사림파의 시조격인 김종직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욕하는 조의제문을 발견하고는, 훈구파인 유자광을 찾아가 알렸고, 이에 연산군이 사림파에게 불만이 많던 중에 유자광과 이극돈의 청을 받아들여 사림파 김일손 등 인사들을 처형하고 유배시켜 축출하였다. 이때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연산군이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갑자사화> 
서기1504년 갑자년(甲子年)에 훈구파이던 임사홍과 신수근이 출세를 위하여 폐비윤씨의 어머니 신씨가 유배에서 풀려나자, 임사홍이 신씨를 연산군에게 데려갔다. 이에 연산군은 폐비윤씨가 사약을 받은 경위를 알고서는 임사홍의 계략대로 복수를 하였다. 페비에 찬성한 사람들뿐 아니라 성종의 후궁들과 그 자손, 침묵을 지켰던 중신들 증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였다. 이때 한명회, 정창손 등은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무오사화 때의 일을 다시 조사하게 하여 무오사화 때 화를 면했던 사림파들도 처형시키거나 귀양을 보냈다. 

서기1504년 갑자년(甲子年)에 이맥(李陌) 선생이 괴산(槐山)에 유배되었다. 

연산군의 폭정을 욕하는 언문투서 사건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안다는 이유로 옥에 갇혔다. 범인이 잡히지 않자 언문 사용을 금하고, 한글로 된 책은 모조리 불태워졌다. 

<중종반정> 
서기1506년 9월에 연산군의 미움을 사 관직에서 쫓겨났던 전 이조참판 성희안과 지중추 부사 박원종, 이조판서 유순정 등은 거사를 모의하였고, 박원종이 영의정 유순, 우의정 김수동, 좌의정 신수근에게 이 사실을 알려 유순과 김수동의 동의를 얻고 심수근은 세자를 기다리자 하였는데, 결국 박원종과 성희안 등은 거사를 일으켰다. 연산군은 강화도 교동으로 귀양갔다가 이해에 병으로 죽었다. 19세의 성종의 둘째 아들인 진성대군이 즉위하였다. 

11. 제11대 중종(中宗:서기1507년~서기1544년)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이 19세로 즉위하였다. 

연산군이 없앴던 경연을 다시 열고, 무오사화 때 화를 입었던 김종직, 김일손 등에게서 빼앗았던 재산을 돌려주고, 그 자손들에게 벼슬을 주었다. 또, 왕조실록을 만들 때 사초의 내용을 누설하는 자를 엄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삼포왜란> 
서기1510년에 3포 왜란이 일어났다. 

<임신조약> 
서기1512년에 일본과 임신조약을 맺었다. 

서기1519년에 향약을 실시하였다. 청년 도학자 조광조 등의 사림파가 다시 등용되었다. 조광조는 여씨향약이라는 책을 만들고, 전국에 향약을 실시하게 하였다. 조광조는 훈구파들이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사림파 인재들이 합격하기 힘들어 현량과를 설치하도록 하여 사림파 학자들을 많이 뽑으니 훈구파 대신들이 강력히 반대하였다. 

서기1519년에 홍문과, 한성부, 예문광 등의 관원이 도교의 본관인 소격서를 없애자 하여 중종이 반대하였으나, 조광조가 밤새도록 간청하여 결국 소격서를 없앴다. 

<기묘사화> 
서기1519년 기묘년(己卯年)에 조광조는 중종을 설득하여 공신 가운데 3/4의 공신칭호를 박탈하고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였다. 이에 훈구파의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이 조광조를 몰아내고자 희빈 홍씨와 모의하여 주초위왕을 위작하여 중중이 알게 하니, 이에 중종이 조광조 일당을 모두 잡아들였다. 영의정 정광필과 성균관 유생들이 조광조의 무죄를 주장하자 중종은 조광조, 김구, 김식, 김정 등 사림파를 귀양보냈다가 훈구파에 밀려 결국 조광조는 사약을 받았다. 이에 훈구파는 현량과를 폐지시켰다. 

서기1520년 경진년(庚辰年)에 일십당주인(一十堂主人) 이맥 선생이 찬수관(撰修官)으로 뽑히어 내각(內閣)의 비밀 서적들을 얻어 읽고 이전의 원고에 곁들여 편차(編次)하고, 태백일사(太白逸史)를 완성하였다. 태백일사에는 삼신오제본기 제1, 한국본기 제2, 신시본기 제3, 삼한관경본기 제4, 소도경전본훈 제5, 고구려국본기 제6, 대진국본기 제7, 고려국본기 제8이 포함되어 있으며 실로 방대한 내용이다. 이맥 선생은 고려시대 이암(李嵒) 선생의 현손(玄孫)이며, 성격이 강직하여 연산군에게 직간을 하였다가 서기1504년에 충청도 괴산에 유배되었고, 거기에서 많은 사서를 보고 평일에는 노인들로부터 들은 것을 적어두었던 것이며, 16년후인 중종 15년인 서기1520년에 찬수관이 되어 내각에 수장된 사서를 접하여 태백일사를 지었던 것인데, 몰래 숨겨오다가 한말 이기(李沂:1848~1909) 선생에 의하여 계연수(桂延壽:?~1920) 선생에게 전해져 한단고기(桓檀古記)에 실린 것이다. 

서기1543년에 주세붕 선생이 백운동 서원을 설립하였다. 

12. 제12대 인종(仁宗:서기1544년~서기1545년) 

중종의 세자 호가 30세로 즉위하였다. 윤임의 세력인 대윤이 권력을 잡았다. 세자 호는 서기1515년에 장경왕후 윤씨의 아들로 외삼촌인 윤임이 보호하여 이를 따르는 무리를 대윤이라 하고, 서기1534년에 계비 문정왕후 윤씨가 낳은 경원대군을 낳으니 경원대군의 외삼촌 윤원형을 따르는 무리를 소윤이라 하였다.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붕하고 12세이던 경원대군이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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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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