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59]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4

양해천 2018. 1. 23. 13:27

[홍익인간 359]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4

2012년 06월 23일 (토) 06:37:55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3. 제13대 명종(明宗:서기1545년~서기1567년)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가 낳은 경원대군이 12세로 즉위하였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에 윤원형의 무리인 소윤이 권력을 잡았다. 

<을사사화> 
서기1454년 명종 즉위 원년 을사년(乙巳年)에 윤원형의 무리인 정순봉은 중종이 붕하자 윤임이 계림군을 내세웠다고 모함하여 윤임, 유관, 유인숙 등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하고 귀양갔다. 

을사사화 직후에 경기도 광주 양재역에서 대비를 욕하는 벽서가 발견되니, 윤원형, 정순봉이 다시 윤임의 잔당들의 짓이라 고하자, 대비가 이에 응하여 을사사화 때 화를 면했던 사람들 중 20여명이 죽거나 귀양을 갔다. 이후 윤원형의 무리는 벼슬을 팔아 재물을 모으는 등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서기1554년에 비변사를 설치하였다. 

<을묘왜변> 
서기1555년에 을묘왜변이 일어났다. 

서기1559년에 임꺽정(林巨正)이 출현하였다. 

서기1562년 1월에 임꺽정의 무리가 토포군에 의하여 소탕되었다. 임꺽정은 황해도를 중심으로 평안도, 강원도, 개성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욕심 많은 부자와 탐관오리의 재물이나 봉물짐을 주로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을 도와 주어 백성들은 그들을 의적이라 불렀다. 

서기1565년에 대비 문정왕후가 죽자 백성들이 윤원형의 집으로 몰려갔으며 이에 명종은 신하들의 청을 들어 벌주려 하였는데, 윤원형은 강원도 강음 땅으로 피신하였다가 금부도사가 잡으러 온다는 말에 자살하였다. 이에 윤원형을 따르던 무리들이 축출되었다. 

명종은 퇴계 이황을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서기1567년에 명종은 34세로 붕하였다. 명종에게 아들이 없어 중종의 7자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16세로 즉위하였다. 

14. 제14대 선조(宣祖:서기1567년~서기1608년) 

중종의 7자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16세로 즉위하였다. 왕대비(명종의 왕비) 인순왕후가 수렴청정하였다. 

즉위 직후부터 선조는 사림파를 등용하였다. 이황에게 대제학의 벼슬을 내렸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조광조에게 영의정을 추서하였다. 사화를 일으킨 남곤, 윤원형 등의 벼슬과 공신칭호를 박탈하였다. 

현량과를 부활시켰다. 

서쪽에 집이 있던 구세력의 심의겸을 중심으로 하는 서인과 동쪽에 집이 있던 신세력의 김효원을 중심으로 하는 동인이 대립하였다. 

서기1583년에 이이가 시무육조를 올렸다.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건의하였다.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서기1589년 기축년(己丑年)에 이율곡의 제자로 서인이던 정여립이 이율곡이 죽자 동인으로 변절하였는데, 선조가 스승을 버렸다 하여 관직에서 내쫓았다. 이에 정여립은 고향 전주로 내려가 무사들과 노비들을 모아 대동계를 조직하여 무술훈련을 시켰으며, 반란을 꾀하였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정여립은 자살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동인들을 배척하였는데, 정여립과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죽거나 귀양을 갔다. 

기축옥사 이후로 동인들은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갈라져 대립하였다. 

서기1590년에 일본의 전국시대를 마감시키고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군함을 만들고 군량을 모으기 시작하였는데, 서인인 황윤길을 정사로, 동인인 김성일을 부사로 임명하여 일본에 통신사로 보내어 왜의 정세를 살펴보게 하였다. 

서기1501년 3월에 통신사 일행이 서울로 돌아왔는데, 서인 황윤길은 침략가능성이 있다라고 하고, 동인 김성일은 침략가능성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대비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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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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