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第三節
訥祗王 登位 常以二弟之事傷心不能勵政
눌지왕 등위 상이이제지사상심불능려정
於是 堤上公慨然請行 出於高句麗 言王以符都之事曰
어시 제상공개연청행 출어고구려 언왕이부도지사왈
一根之裔 何有是事 一言而還卜好及歸
일근지예 하유시사 일언이환복호급귀
不入其門而直出於倭國 夫人金氏聞而追至
불입기문이직출어왜국 부인김씨문이추지
公 已乘船搖手作別 夫人亦勵之
공 이승선요수작별 부인역려지
公 已入倭國 知其言之不容 假稱反者歸化
공 이입왜국 지기언지불용 가칭반자귀화
留連歲餘好行船遊 一日 囑未斯欣潛歸
유연세여호행선유 일일 촉미사흔잠귀
斯欣言與公同歸
사흔언여공동귀
公曰公子歸則事成 何期雙全而危其成事乎
공왈공자귀칙사성 하기쌍전이위기성사호
遂泣別 優遊船中 使倭人勿疑 俟斯欣遠去 乃獨歸舘舍 倭主始知見欺而怒
수읍별 우유선중 사왜인물의 사사흔원거 내독귀관사 왜주시지견기이노
公 乃言符都之事 勸修舊誼
공 내언부도지사 권수구의
倭主頑强 自言東海之主 迫公稱臣
왜주완강 자언동해지주 박공칭신
公 笑曰吾非歸化者 卽鷄林之臣 倭主尤怒 乃設淫刑而脅迫
공 소왈오비귀화자 즉계림지신 왜주우노 내설음형이협박
公 終不屈 言必曰鷄林之臣 倭主遂燒殺於木島
공 종불굴 언필왈계림지신 왜주수소살어목도
公 視死如融雪 灰身化正氣 立節義於千秋
공 시사여융설 회신화정기 입절의어천추
[해설]
제3절
눌지왕이 임금이 되어서는
언제나 두 동생의 일로 상심(傷心)하여 정사(政事)에 힘쓰기가 어려웠다.
이에 제상공(堤上公)이 개연(慨然)히 청하여
고구려에 가서 부도(符都)의 일로써 왕에게 말하기를,
"한 뿌리의 후예로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하였다.
이 한 마디 말로 복호(卜好)를 돌아오게 하였다.
귀국하여서는 그의 집 문 안에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곧바로 왜국(倭國)으로 출국하였다.
부인 김씨가 듣고 쫓아가니
공이 이미 배를 타고 손을 흔들어 작별하므로
부인이 또한 그것을 권하고 장려하였다.
공(公)이 이미 왜국(倭國)에 입국하여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고
거짓으로 임금을 배반하고 귀화하였다고 하였다.
계속하여 2년 남짓 머물러 있으면서 뱃놀이를 즐기다가
하루는 미사흔에게 몰래 귀국할 것을 권하였다.
미사흔이 공과 함께 돌아가자고 하므로 공이 말하기를,
"공자께서 귀국하시면 일은 성공한 것입니다.
어찌 두 사람이 모두 온전하기를 바라다가 일을 위태롭게 만들겠습니까?" 하였다.
마침내 울면서 작별하고 뱃놀이를 계속하여 왜인들이 의심하지 아니하게 하고,
미사흔이 멀리 갔을 때를 맞춰 혼자서 관사로 돌아가니,
왜의 임금이 비로소 속은 것을 알고 노하였다.
공이 곧 부도(符都)의 일을 말하고 옛날의 정의를 수호할 것을 권하니,
왜의 임금이 완강하여 스스로 동해(東海)의 주인이라 말하고,
공을 협박하여 신하라 칭하라고 하였다.
공이 웃으면서
"나는 귀화자가 아니요, 계림(鷄林)의 신하(臣下)"라 하니,
왜의 임금이 더욱 노하여 곧 음형(淫刑)을 설하고 협박하였다.
공이 끝내 굽히지 아니하고 말할 때마다 반드시 '계림(鷄林)의 신하(臣下)'라고 하니,
왜의 임금이 마침내 목도(木島)에서 태워 죽였다.
공이 죽음을 보기를 마치 눈이 녹는 것과 같이 하고,
재가 되어버린 몸이 정기(正氣)로 변하여 천추(千秋)에 절의(節義)를 세웠다.
'얼(뿌리를 찾아서) > 부도지(符都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5절 견우성의 화신 제상공 (0) | 2018.01.26 |
---|---|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4절 백결(百結) 선생(先生) (0) | 2018.01.26 |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2절 제상공이 눌지왕을 세우다 (0) | 2018.01.26 |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1절 백결(百結) 선생과 가문의 전설 금척(金尺) (0) | 2018.01.26 |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6장(第六章) 허실견백(虛實堅白)에 대한 고금(古今)의 논급(論及) (0) | 2018.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