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第二節
新羅奈勿王時朴堤上公 以祗摩王之高孫 經寶文殿大夫
신라내물왕시박제상공 이지마왕지고손 경보문전대부
爲鄕里歃良州(梁山)干 築澄心軒 辨證細理 述始原傳來之史曰澄心錄
위향리삽량주(양산)간 축징심헌 변증세리 술시원전래지사왈징심록
時 奈勿王薨 三王子年少
시 내물왕훙 삼왕자연소
次家弟實聖王 脅威自立
차가제실성왕 협위자립
奈勿王長子訥祗 豫察來變 佯爲訥言作痴 放浪市肆
내물왕장자눌지 예찰래변 양위눌언작치 방랑시사
實聖王 置之度外 其二弟卜好 質放高句麗 末斯欣 質於倭國而除之藺後慮
실성왕 치지도외 기이제복호 질방고구려 말사흔 질어왜국이제지이두후려
至是 堤上公 以先世傳統 乃立言而擧實聖之不當
지시 제상공 이선세전통 내입언이거실성지부당
於是 世論 潝然 申自天裵仲良等六臣 辭去
어시 세론 흡연 신자천배중량등육신 사거
實聖王 遂讓位於訥祗王
실성왕 수양위어눌지왕
此前後十餘年之策謀而乃順成反正
차전후십여년지책모이내순성반정
申自天公曰堤上勇而精略 能辯細理云者 亦由於斯矣
신자천공왈제상용이정략 능변세리운자 역유어사의
[해설]
제2절
신라 내물왕(奈勿王)1)때
박 제상공(朴 堤上公)이 지마왕(祗摩王)2)의 고손(高孫)으로
보문전(寶文殿) 대부(大夫)를 지내고,
향리(鄕里)인 삽량주(歃良州)3)의 간(干)이 되어
징심헌(澄心軒)4)을 짓고
상세하게 이치(理致)를 변증하여 시원전래(始原傳來)의 역사를 저술한 것을
‘징심록’이라 하였다.
때에 내물왕이 죽으니, 세 왕자는 나이가 어렸다.
차가(次家)의 동생 실성왕(實聖王)5)이 위협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내물왕의 장자 눌지(訥祗)6)는 변란이 올 것을 미리 살피고,
거짓으로 말을 더듬으며 미친 짓을 하고 거리를 방랑하였다.
실성왕(實聖王)이 도외(度外)로 치고,
그 둘째 동생 복호(卜好)를 고구려에 인질로 추방하고,
말사흔(末斯欣)8)은 인질로 왜국(倭國)에 보내
그들을 없애고 뒷날의 염려를 끊어버렸다.
이에 이르러 제상공(堤上公)이 선세(先世)의 전통으로써
곧 실성왕(實聖王)의 부당한 처사를 거론하니,
이에 세론(世論)이 쏟아져 나와 신자천(申自天) 배중량(裵仲良) 등
육신(六臣)이 사퇴하였다.
실성왕(實聖王)이 마침내 눌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것은 전후 십여 년간의 책모였으며 순조롭게 반정이 성공하니,
신자천공(申自天公)이
제상(堤上)은 용감하고 지략이 깊고 말 잘하고 이치(理致)에 밝다고 하였다.
이 말은 역시 이에서 연유한 것이다.
[세부해설]
1) 내물왕 : 신라 제17대 왕. 재위356-402년. 미추왕의 조카이며 사위
2) 지마왕 : 신라 제6대왕. 재위 112-134년
3) 삽량주 : 지금의 양산.
남제서에 나오는 백제 동성왕과 북위의 전쟁기록 등을 고려해 보면
신라는 무한 인근 양자강 유역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4) 징심헌 : 양산 징강 언덕에 있음.
대륙 신라를 추측해 보면 무한 적벽이 있는 황학루 앞강을 추측해 본다.
5) 실성왕 : 신라 제18대 왕. 재위402-417년. 미추왕의 동생인 각간 대서지의 아들.
6) 눌지 : 신라 제19대 왕. 재위 417~458년. 내물왕의 아들
7) 말사흔 : 삼국사기에는 미사흔(未斯欣), 삼국유사에는 미해(미해)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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