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후기(後記)
此 淸寒金時習先生澄心錄追記也
차 청한김시습선생징심록추기야
先生 自幼至長 殆奇於吾家
선생 자유지장 태기어오가
更結歲寒之盟而同歸雲林
갱결세한지맹이동귀운림
此當時事勢之末由故也
차당시사세지말유고야
一朝立志於符都復建之大業
일조입지어부도복건지대업
東奔西走南征北來 尋人逞謨而傾注一生之精力
동분서주남정북래 심인령모이경주일생지정력
及基李澄玉李施愛兩次之失敗 遂晦跡乃己
급기이징옥이시애양차지실패 수회적내기
此爲躬行無餘之道也
차위궁행무여지도야
以故 先生 熟知吾家先世之事
이고 선생 숙지오가선세지사
記狀修牒 殆成於先生之手
기상수첩 태성어선생지수
無異於吾家同族
무이어오가동족
今次本文 億記於騷亂離散之中
금차본문 억기어소란이산지중
或不無贅附指沒之嘆
혹불무췌부지몰지탄
先生之本文己成於離散之中則時色 偶合 事勢相同
선생지본문기성어리산지중칙시색 우합 사세상동
然則先生在天之靈 必憫察而怒之
연칙선생재천지령 필민찰이로지
且將冥助天符之理之闡明於世矣
차장명조천부지리지천명어세의
금당(琴堂) 삼가 씀
[해설]
후기
이는 청한(淸寒) 김시습 선생의 “징심록 추기”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거의 우리집에서 지내셨다.
다시 세한(歲寒)의 맹세를 맺고 함께 운림(雲林)1)으로 들어갔다.
이는 당시의 사세(事勢)에 연유한 것이었다.
어느날 부도를 복건할 대업에 뜻을 세우고 동분서주 남정북래하며
사람을 찾아 왕성하게 도모하고 일생의 정력을 기울여 쏟더니,
이징옥(李澄玉)2)과 이시애(李施愛)3)의 두 차례에 걸친 실패에 당하고는
마침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이는 무여의 도를 몸소 실천하기 위한 것이였다.
그러므로 선생이 우리 가문 선대의 일을 익히 알아,
행장(行狀)4)을 쓰거나 족보를 만드는 일이 거의 선생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선생은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이번에 본문을 어수선하고 시끄러우며 이산(離散)중에 기억하여 쓰니,
혹 군더더기를 붙이고 뼈를 없애는 한탄이 없을 수 없겠으나,
선생의 본문이 이산(離散)중에 완성되었으니
시대의 추세(時色)가 우연히 들어맞고(偶合) 사세가 일치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시는 선생의 영혼이 반드시 불쌍하게 여겨 이를 용서하고,
장차 저승에서 이 세상에 천부의 이치를 드러내어 밝히는 것을 도울 것이다
금당(琴堂)5) 삼가 씀
[세부해설]
1) 운림 : 문천 운림산
2) 이징옥 : ?~1453. 조선 세종때의 무관.
스스로 대금황제(大金皇帝)라 했으나 정종(鄭種)에게 붙잡혀 살해되었다.
3) 이시애 : ?~1467. 조선 세조때 무관.
대대로 길주에서 살아온 호족 출신이며 이주, 이운로 등에게 살해되었다.
4) 행장 : 사람이 죽은 뒤 그 평생의 지낸 일을 기록한 글
5) 금당 : 박금 씨의 호.
* 김시습(金時習) '아생(我生)'
百歲標余壙
백세표여광
當書夢死老
당서몽사노
庶畿得我心
서기득아심
千載知懷抱
천재지회포
백년 뒤 나의 무덤에 비석을 세울때
꿈속에 살다 죽은 늙은이라 써 준다면
거의 내 마음을 알았다 할 것이니
천년 뒤에 이 내 회포 알아나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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