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부도지(符都誌)

징심록연의후기_제5장

양해천 2018. 1. 26. 14:50

* 요증 징심록연의(要正 澄心錄演義) 후기(後記)_5장 

- 박금 

5장(五章) 

我檀裔有史以來最慘之庚寅十二月大小寒之間에 
余率眷離京하야 乘無蓋車하고 費半月而僅抵蔚山之避難所하니 眷率이 殆至於死境이라 
喫極風雲之苦難하고 驗知末世之虛妄하야 乃發表自存原理之實在하고 仍以繼續考證之業이러라 
一年有半에 幾整三十餘年之業하고 壬辰夏에 始沈潛回憶而起筆此稿하야 終於癸巳夏라 
其爲事也가 覓求於暗記之中故로 勞神焦思하야 纔得斷片則因之以會通傍系而後乃綴이라 
如是一年之間에 晝以繼夜하여 頓忘病侵而臥하니 其爲難事를 可以推知也라 
아단예유사이래최참지경인십이월대소한지간에 
여솔권이경하야 승무개차하고 비반월이근저울산지피난소하니 권솔이 태지어사경이라 
끽극풍운지고난하고 험지말세지허망하야 내발표자존원리지실재하고 잉이계속고증지업이러라 
일년유반에 기정삼십여년지업하고 임진하에 시침잠회억이기필차고하야 종어계사하라 
기위사야가 멱구어암기지중고로 노신초사하야 재득단편칙인지이회통방계이후내철이라 
여시일년지간에 주이계야하여 돈망병침이와하니 기위난사를 가이추지야라 

[해 설] 

우리 단씨의 후예가 유사 이래로 가장 처참했던 것은 경인년 12월 대한과 소한의 사이일 것이다. 
나는 권속을 이끌고 서울을 떠났는데, 무개차를 타고 보름을 허비하면서 겨우 울산의 피난소에 도착하였다. 

식구들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풍운의 고난을 지독하게 맛보고, 말세의 허망함을 경험하고 알게 된 것이다. 

이에 자존원리의 실재, 즉 스스로 존재함과 그 참된 이치를 발표하고, 거듭하여 이를 고증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1년하고도 반을 지나는 동안, 삼십여 년의 일을 거의 정리할 수 있었다. 

임진년 여름 비로소 깊이 회고하고 기억함에 몰두하여 붓을 들어 이 글을 쓰기 시작하여, 계사년 여름에 이를 마쳤다. 
그 일이라고 하는 것이 암기해 둔 것들 가운데서 찾고 구하는 까닭에, 
노신초사, 즉 정신은 수고롭고 생각은 애가 타는 가운데, 겨우 단편들을 얻어낸 즉, 
이를 근거로 하여 모아서 통하게 하고 이후에 다시 이어 나아갔다. 

이와 같이 한 지 일 년 사이 낮으로 밤을 이어 문득 침식을 잊기도 하니, 병이 침입하여 드러눕게 되었다. 
그 일의 어려움이야, 이로써 가히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해 설] 

동란을 피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며 울산으로 피난을 와 
30여년 연구한 내용을 복원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울산 태화강을 바라보며 부도지 복원 작업을 하였을 박금 선생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태화강 십리대밭의 대나무들아 너희들은 그 맘을 이해 하겠지~ 

복본(復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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