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 566

[홍익인간 365]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대청(大淸) 연대기

[홍익인간 365]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대청(大淸) 연대기2012년 06월 29일 (금) 08:19:33천산(天山) sppopsj@yahoo.co.kr청나라는 소위 만주족(滿洲族)이 세운 나라이다. 만주(滿洲)라는 말은 지명이나 원래는 만주(滿珠)라는 족속의 명칭에서 나온 것이다. 만주(滿珠)는 주신(珠申)이라고도 불리는 숙신(肅愼)의 후예이다. 숙신은 곧 단군조선 초기에 마가(馬加) 신지(神誌)가 송화강 동쪽 지역에 봉해진 제후국인 것이다. 숙신은 이후 말갈, 읍루, 여진으로 불렸다가 역사상 마지막으로 만주(滿洲)로 불리고 있는 것이 된다. 청나라 왕족의 성씨인 애신각라(愛新覺羅)는 애신(愛新)의 만주말이 금(金)을 가리키며 신라 김씨에서 파생된 각라(覺羅) 김씨(金氏)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역사..

[홍익인간 364]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9

[홍익인간 364]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92012년 06월 28일 (목) 08:34:50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서기1876년 2월에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었다. 1. 조선은 자주국으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2. 부산과 2개의 항구를 개항한다. 3. 일본은 조선의 연해를 자유로이 측량할 수 있다. 4. 조선에서 범죄를 저지른 일본인은 일본 관리가 재판한다 등 서기1876년 7월에 일본과 조선은 몇 가지 보충 협약을 맺었다. 1. 개항장에서 일본인의 통행거리를 정한다. 2. 일본 화폐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3. 일본 선박의 항해세를 면제한다. 4. 일본 상품에 대하여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 서기1879년에 지석영이 종두법을 실시하였다. 서..

[홍익인간 363]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8

[홍익인간 363]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82012년 06월 27일 (수) 08:17:02천산(天山) sppopsj@yahoo.co.kr22. 제22대 정조(正祖:서기1776년~서기1800년)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아들인 세손이 즉위하였다. 세손의 즉위를 방해하고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앞장선 홍인한, 숙의문씨, 정후겸 등이 처형당하고 홍술해와 김귀주는 흑산도로 귀양갔다. 서기1776년에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서기1777년 8월에 홍씨 일파가 정조를 시해하기 위하여 50명의 자객을 궁궐안으로 들여 보냈는데, 모두 수비병에게 붙잡혔다. 이에 홍상범 일당과 은전군이 사약을 받았다. 이에 영조는 홍국영을 도승지 겸 숙위대장으로 삼아 나라일을 맡겼다. 홍국영은 누이를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냈으..

[홍익인간 362]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7

[홍익인간 362]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72012년 06월 26일 (화) 07:41:40천산(天山) sppopsj@yahoo.co.kr19. 제19대 숙종(肅宗:서기1674년~서기1720년) 현종의 세자가 14세로 즉위하였다. 이에 또다시 예론논쟁이 벌어져 결국 남인들이 정권을 잡았다. 남인은 송시열의 처리문제를 놓고, 처형해야 한다는 허목의 청남파와 귀양을 보내면 된다는 허적의 탁남파로 대립하였는데 허적이 승리하여 송시열은 귀양을 갔다. 서기1678년에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서기1680년에 숙종이 허적의 조부에게 시호를 내리는 날에 비가 오므로 유악(기름 바른 천막)을 갖다 주도록 하였는데, 이미 가져갔다 하므로 괘씸하게 여기어, 화가 난 숙종은 남인들을 쫓아내고 서인들을 조정에..

[홍익인간 361]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6

[홍익인간 361]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62012년 06월 25일 (월) 07:30:43천산(天山) sppopsj@yahoo.co.kr16. 제16대 인조(仁祖:서기1624년~서기1649년) 서인들에 의하여 선조의 5자인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이 즉위하였다. 이에 대북파는 모두 조정에서 축출되었다. 반정의 주역들은 모두 1등공신이 되었는데, 이괄은 2등공신으로 한성판윤에 봉해졌으나 불만이 많았다. 이에 이괄은 평안도 병마 절도사가 되어 영변으로 쫓겨났다. 이후 이괄은 자신과 아들 전 등이 역모를 꾀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군사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에 인조는 금부도사를 보내어 이괄을 체포하게 하였다. 서기1624년 1월에 이괄은 금부도사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괄은 1만여 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