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35] 대진-신라 남북국시대 신라 연대기 2

양해천 2018. 1. 23. 13:08

[홍익인간 335] 대진-신라 남북국시대 신라 연대기 2

2012년 05월 31일 (목) 07:22:06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41. 제41대 헌덕왕(809~826) 

김언승이 즉위하였다. 

<김헌창의 반란> 
서기822년에 무열왕계의 김주원(金周元)의 아들인 웅천주 도독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長安)이라 하고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하였다. 이에 김균정과 아들 김우징 등이 평정하였다. 

<김법문의 반란> 
서기825년에 김헌창의 아들 김범문(金梵文)이 반란을 일으켰다. 

42. 제42대 흥덕왕(826~836) 

헌덕왕의 아우가 즉위하였다. 

<청해진> 
서기828년에 장보고가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였다. 

서기834년에 백관의 복색제도를 공포하였다. 

김대렴이 차(茶)를 전래하였다. 

43. 제43대 희강황(836~838) 

김명과 이홍의 후원을 얻은 김제융(金悌隆)이 김균정(金均貞)을 제거하고 즉위하였다. 

김우징은 처자를 데리고 청해진으로 도피하였다. 

김명(金明)과 이홍이 반란을 일으키고 희강왕이 자살하였다. 

44. 제44대 민애왕(838~839) 

김명이 즉위하였다. 

김균정의 편을 들었다 화살을 맞고 달아난 김양은 군사를 모아 청해진으로 가서 김우징을 만났다. 장보고는 김양을 평동장군으로 삼고 염장, 정연 등과 함께 도성으로 향하였다. 

서기838년 12월에 장보고는 무주의 철야현에서 왕의 군사와 싸워 승리하였다. 

김양의 군사가 민애왕과 싸워 승리하고 민애왕은 피살되었다. 

45. 제45대 신무왕(839) 

김균정(金均貞)의 아들인 김우징(金祐徵)이 청해진에서 나와 즉위하였다. 

이때 이홍이 처자를 버리고 산으로 숨었으나 신무왕이 보낸 군사들에게 피살되었다. 

신무왕이 종기로 인하여 7개월만에 붕하였다. 

46. 제46대 문성왕(839~857) 

신무왕의 태자 경응이 즉위하였다. 

서기845년에 문성왕이 장보고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려 하였으나 신료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장보고 피살> 
서기846년 봄에 장보고가 난을 일으켰다. 이에 염장이 문성왕의 명을 받아 청해진으로 가서 장보고를 속여 술을 마시고 취하게 하여 살해하였다. 

서기851년에 청해진을 폐지하고 그곳의 백성들을 벽골군으로 이주시켰다. 

47. 제47대 헌안왕(857~861) 

신무왕의 아우 의정이 즉위하였다. 

15세의 김응렴이 헌안왕의 첫째 공주와 혼인하였다. 

서기860년경 헌안왕의 서자 궁예가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다. 

48. 제48대 경문왕(861~875) 

헌안왕의 사위 응렴이 즉위하였다. 

서기863년에 경문왕이 헌안왕의 둘째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서기873년에 높이 22자(6.6미터) 황룡사 9층 목탑이 완성되었다. 

요극일이 구앙순체로 삼랑사비문(三郞寺碑文)을 지었다. 

49. 제49대 헌강왕(875~886) 

경문왕의 태자 정이 즉위하였다. 

서기879년에 헌강왕이 동쪽의 주군을 순행 중에 처용이 처용무를 추었고, 헌강왕이 도성으로 데려와 미녀와 혼인시켰다. 

50. 제50대 정강왕(886~887) 

헌강광의 아우 횡이 즉위하였다. 

51. 제51대 진성여왕(887~897) 

정강왕의 여동생 만이 즉위하였다. 유모였던 부호부인과 그 남편 김위홍이 권력을 잡았다. 

<삼대목> 
서기888년에 김위홍과 대구화상이 왕명으로 향가집 삼대목을 완성하였다. 김위홍이 죽었다. 

서기889년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서기890년 경술년(庚戌年)에 조겸(曺謙)이 출생하였다. 

서기891년 궁예가 약 30세의 나이로 도적 기훤을 찾아갔다. 

서기892년에 견훤이 무진주를 점령하여 후백제를 건국하였다(서기900년이라고도 함). 궁예가 북원의 양길의 부하로 들어가 신임을 얻어 백여명의 군사를 얻었다. 

서기894년에 궁예가 명주(강릉)를 점령하였다. 

서기895년에 궁예가 인제(저족), 금성, 철원 등 강원도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송악의 대호족인 왕륭과 왕건 부자는 궁예의 부하가 되었다. 궁예는 왕륭을 금성태수로, 왕건을 부하 장수로 삼았다. 

최치원이 계원필경, 제왕연대력, 사육집(四六集), 사산(四山)비명, 개혁안10조 등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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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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